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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나레 돗토리 | |
Gainare Tottori | |
<colbgcolor=#6eba3d><colcolor=#043459> 정식 명칭 | ガイナーレ鳥取 |
라이센스 | J2 |
창단 | 1983년[1] |
2006년 12월 28일([age(2006-12-28)]주년)[2] | |
구단 형태 | 시민 구단 |
소속 리그 | J3리그 |
연고지 | 돗토리현 전현 |
홈구장 | Axis 버드 스타디움 (16,033명 수용) 올가이나레 YAJIN 스타디움(7,390명 수용) |
대표 | 쓰카노 마사키(사장) 오카노 마사유키(GM) |
감독 | 하야시 겐타로 |
키트 스폰서 | Soccer Junky |
링크 | | | | | |
역대 한국인 선수 | 정광식[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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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돗토리현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단. 현재는 J3리그에 소속되어 있다.구단명 가이나레는 시마네현 동부와 돗토리현 서부에 걸쳐 쓰이는 방언에 '크다'는 뜻의 '가이나'(がいな)와 이탈리아어로 '희망'을 뜻하는 'Sperare'의 합성어다.
1983년 돗토리 교원단 축구부(鳥取教員団サッカー部)로 창단되었고 1989년 프로화 의지를 나타내면서 SC 돗토리로 개명하였다. 2001년에는 일본 풋볼 리그로 승격하였고 2007년에 현재의 가이나레 돗토리로 개명하였다.
가이나레 돗토리의 마스코트는 2012년 5월 2일 등장한 가이나맨으로 J리그 최초의 히어로형 마스코트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강소전사 가이나맨.
2. 역사
2.1. 창단과 J리그 가입 이전
1983년 돗토리 교원단 축구부로 창단되었다. 창단 후 돗토리 사회인 축구 리그에서 뛰다가 1987년 주고쿠 축구 리그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2년 후인 1989년에 다시 강등 당하였다. 이때 돗토리 현의 대표 클럽이 되기 위해 SC 돗토리로 팀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듬해 다시 주고쿠 리그로 승격하였고, 계속해서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였다. 98년에 다시 주고쿠 축구 리그로 승격하였을 때에 돗토리 현 출신의 전 J리거 쓰카노 마사키를 영입하였다. 이후 2000년 주고쿠 축구 리그에서 첫 우승을 이뤄내었고 전국 지역 축구 리그 결승 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돗토리 SC는 4위를 기록하며 일본 풋볼 리그 자동 승격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전국 사회인 축구 연맹의 권고로 승격할 수 있었다.2001년 일본 풋볼 리그에서의 첫 시즌에 2승 2무 26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다. 2002년에는 일본 풋볼 리그와 지역 리그 간의 강등제가 도입되어 강등될 위기에 처했었으나 강등권인 15위보다 1점 앞서 13위를 기록하여 간신히 잔류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매년 SC 돗토리는 계속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성적 부진의 이유는 프로 선수의 전무였다. 그러나 2007년 팀 명칭을 가이나레 돗토리로 개명하고 J리그 연맹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덕분에 좋은 코치진과 선수들을 수급하였지만 14위에 그쳤다. 2008년에는 일본 국가대표였던 오무라 노리오와 코네 하메드와 같은 용병 선수를 포함하여 15명의 선수를 영입하였고, 연습 구장도 새로 옮겼다. 새롭게 돌입한 2008 시즌에 5위를 기록하여 최고 성적을 내었지만 4위 안에 들지 못하여 J리그로의 승격은 좌절되었다. 이듬해에도 5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승격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0 시즌에 우승을 차지하며 J리그 디비전 2로 승격하게 되었다.
2.2. J리그
2.2.1. J2리그
J리그 가입 첫 해인 2011시즌 20개팀중 19위로 마쳤다. 이 때에는 디비전 2에서의 강등은 없었기에 무사히 넘어갔다.2012 시즌에는 22팀체제가 되었고 20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이때부터 시작된 JFL과의 승강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2013 시즌에 최하위를 기록하게 된다.
2014 시즌부터 J3리그가 출범하게 되었는데 JFL에서 승격 예정이었던 카마타마레 사누키가 J2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돗토리는 사누키와 승강전을 펼치게 되었고 사누키가 1승 1무로 승리하면서 사누키는 J3리그를 거치지 않고 J2리그로 올라갈 수 있었고 돗토리는 J3리그로 강등된다.
2.2.2. J3리그
2014 첫 시즌은 4위에 머물면서 승격이 좌절되었고 2015 시즌은 채무초과가 되면서 J2 라이센스마저 박탈되고만다.2016 시즌에 다시 J2 라이센스 취득에 성공하지만, 하위권인 15위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고 2017 시즌에는 최하위까지 기록하게 된다.
2018 시즌에는 재정비에 성공하면서 3위를 기록했다.
2019 시즌은 초반에 부진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살아나면서 4경기를 앞두고 6위까지 올라왔다. 순위는 6위지만, 승격권인 2위와의 승점차가 8점이기 때문에 승격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러나 2경기를 남기고 승격권과의 승점차가 벌어져서 승격에 실패한다.
3. 역대 주요 선수[4]
- 오카노 마사유키(2009~2013): 현 GM
- 핫토리 도시히로(2010~2011)
- 정동호(2011)
- 김선민(2011~2012)
- 레오나르도(2018)
- 유리 조나탄(2019)
- 문인주(2022~2023)
- 타무라 료스케(2022~2023)
4. 여담
- 여러모로 안타까운 팀이다. 팀이 한때 부채 문제로 J2 라이센스가 박탈되었을 만큼 재정이 열악한데, 연고지인 돗토리현이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낙후된 지역이라 새로운 투자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홈구장은 구기 전용 구장[5]이지만, J1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총 수용인원이 1만 6천여명이지만 소방 조례에 맞지 않는 좌석을 제외하면 1만 2천여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 J1 라이센스를 위해서 돗토리시가 증설을 약속했었지만, 2014년 J3 강등이 확정되면서 취소했다고 한다.
- 클럽 하우스는 요나고시의 폐업한 골프장 부지를 임대해 마련했으며 '올 가이나레 YAJIN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을 붙여 J3 경기도 일부 열고 있다. 다만 간이 연습 구장이다 보니 조명과 전광판이 없이 점수 표기는 간이 게시판으로 한다.
- 연고지가 일본에서 손에 꼽는 낙후지역인 탓에 클럽의 열악한 재정과도 별개로 고생이 심하다. 대부분의 클럽이 원정에 신칸센과 항공편을 잘 이용하는 것과 달리 신칸센 역까지 가는 데만도 3시간 가까이 걸리다 보니 편도 10시간 걸리는 나가노 원정까지는 버스로 때울 수밖에 없다. 근처에 J3 클럽도 얼마 없어서 6시간 걸리는 기타큐슈 정도는 거의 옆동네 가는 감각으로 움직인다. 심지어 돗토리시의 홈구장과 요나고시의 클럽하우스 사이에만도 2시간 가까이 걸린다. J리그에서 홈경기는 당일 소집이 일반적이지만 돗토리는 낮경기만은 원정처럼 전날 합숙을 한다.(소속 선수의 원정 V로그)
-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및 게임 제작회사 가이낙스와도 인연이 있다. 팀명에서 '가이나'는 '크다'는 뜻의 돗토리현 서부 방언에서 유래했는데 가이낙스의 회사명도 여기서 따 온 것. 실제로 가이낙스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아카이 타카미가 디자인한 '강소전사 가이나만'이 가이나레 돗토리의 마스코트로 채택됐다.
- 연고지가 고령화되어 노인들이 농사를 포기한 빈 땅에 잔디를 심어서 파는 수익 사업을 하면서 재정을 채우고 있다.
[1] 전신 돗토리 교원단의 창단 연도[2] SC 돗토리 법인의 설립일[3] 은퇴 이후 정민구로 개명.[4] 링크가 있는 선수 또는 성인대표 경력자.[5] 럭비의 인기가 좋은 편인 일본에서는 럭비-축구 공용의 구기장을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J리그 경기장 중에서도 축구전용구장보다 구기장으로 분류되는 곳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