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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전경 | 내부 전경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글 | 바티칸 |
영어 | Vatican City | |
프랑스어 | Cité du Vatican | |
국가·위치 | 바티칸 시국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4년 | |
등재기준 | (i)[1], (ii)[2], (iv)[3], (vi)[4] | |
지정번호 | 286 |
라틴어 | <colbgcolor=#fff,#191919>Sacellum Sixtinum |
이탈리아어 | Cappella Sistina |
영어 | Sistine Chapel |
프랑스어 | Chapelle Sixtine |
스페인어 | Capilla Sixtina |
포르투갈어 | Capela Sistina |
독일어 | Sixtinische Kapelle |
일본어 | システィーナ礼拝堂 |
중국어 | 西斯廷小堂 |
에스페란토 | Siksta Kapelo |
1. 개요
시스티나 경당Virtual Tour2013년 콘클라베, 2013년 3월 12일 |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경당으로, 15세기 후반에 건설되었다. 평소에는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곳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콘클라베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부를 구성하는 사면의 벽과 천장이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필생의 역작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도 이곳을 장식하고 있다. 본디 미켈란젤로의 라이벌인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 10개도 양측 벽의 가장 아래를 장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나 보존 문제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나온다.[5] 관람객들이 벽면과 천장의 성화에만 시선을 집중하는 통에 덜 주목받긴 하지만, 코즈마테스크 양식으로 장식된 대리석 모자이크 바닥도 아름답다. 1984년 바티칸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콘클라베가 거행되는 동안에는 추기경단과 소수의 전례 담당자들을 제외한 인원 일체의 출입이 불허되어 있으며, 특히 여성은 입장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6] 하지만 '여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수녀 파스칼리나 레네르트는 이런 전례를 깨고 역사상 최초로 콘클라베 동안 시스티나 경당에 출입한 여성이 되었다.
2. 역사
식스토 4세 때 재건축된 모습. 천장에 천장화가 아니라 별이 그려져 있다. |
시스티나 경당의 외부는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창문도 적으며, 경당에서 바깥으로 직접 나갈 수 있는 출입구 없이 교황 궁전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데 용이해 콘클라베를 여는 장소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경당의 평면은 길이 40.23m, 너비 13.41m인데 이것은 구약성서에 언급된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의 치수를 그대로 본뜬 것으로, 바티칸이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새로운 성전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했다. 이외에도 바닥의 중앙부를 가르는 대리석 칸막이를 통해 경당을 두 구획으로 나누어 각각 교황 일행과 일반 신자를 위한 자리로 삼았는데, 이것 또한 솔로몬의 성전을 재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교황 일행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사용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칸막이를 옮기는 바람에 지금은 한쪽에 치우친 상태다. 경당의 높이는 20.7m이고, 내부의 천장은 아치형이며, 그 밑에 있는 남쪽과 북쪽 벽면에는 각각 6개의 창문이, 동쪽과 서쪽 벽면에는 각각 2개의 창문이 있다. 이 중 서쪽 벽면의 창문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폐쇄했다. 1564년 최후의 심판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으로 인해 나체와 성기를 가리는 옷이 덧그려졌다. 이 작업을 맡았던 화가 다니엘레 다 볼테는 일 브라게토네(Il Braghettone), 즉 ‘기저귀 화가’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어 오늘날까지도 회자된다. 1549년 화가 마르첼로 베누스티가 덧칠 이전의 모습을 그린 최후의 심판 모사품이 이탈리아 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현전하는 시스티나 경당의 최후의 심판이 얼마나 수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마르첼로 베누스티가 그린 최후의 심판 모사품
남쪽과 북쪽 벽면의 창문 아래에 그려진 그림은 1481-82년에 그려졌으며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루카 시뇨렐리, 피에로 디 코지모, 코지모 로셀리, 바르톨로메오 델라 가타의 작품이다. 동쪽 벽면에는 본디 기를란다요와 시뇨렐리의 본 그림이 있었는데 1572, 74년에 헨드릭 반 덴 브록, 마테오 다 레체의 그림이 덧그려졌다.
남북 벽면의 가장 아랫 부분은 라파엘로의 카툰을 바탕으로 제작된 베드로와 바울의 삶을 그린 태피스트리가 장식하는 것이 본디 레오 10세의 계획이었으나, 사코 디 로마로 인한 약탈로 훼손되고 유럽 각지로 흩어졌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태피스트리가 바티칸으로 모두 회수되어 라파엘로 출생 500주년인 1983년에 다시 걸릴 수 있었다. 이후 보존 문제로 중요한 행사에만 나오고 평시에는 피타코테카에 전시되어 있다.[7]
3. 관람
바티칸 미술관을 방문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나, 항상 그렇듯이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며 말조차도 해선 안 된다.[8] 들어가면 "silence (please)"라는 말만 울려퍼진다. 제발, 제발 좀 찍지 말자. 걸리면 개인관람 시 최소 사진 삭제, 최대 즉시 쫓겨난다. 단체관람 시 업체가 3달간 출입금지당해서 같이 보는 그룹 전체에게 피해가 간다. 보는 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나 목이 아프니 적당히 목 생각하며 관람하도록 하자.사진 촬영이 처음 금지된 것은 1982년으로, 그림 및 성당의 보수 비용 900억원을 일본의 NHK가 부담하면서 그 대가로 시스티나 성당 촬영권을 독점하게 되었었으나,[9] 이 독점권은 1987년 복원 완료 3년 뒤인 1990년 부로 만료되었다.#[10][11][12] 그러나 NHK의 촬영 독점권이 만료되었음에도 시스티나 경당 측에서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 금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13]
4. 내부의 프레스코화
내부의 프레스코화는 1480년, 당시 피렌체와 교황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소하고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자신이 후원하던 화가를 보내어 제작하게 한 것이다. 성당의 벽면은 라파엘로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 미켈란젤로를 잠시 가르쳤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산드로 보티첼리, 루카 시뇨렐리 등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당대 유수의 화가들이 참여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경당의 내부 벽면에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공통된 부분을 부각시켜 남쪽과 북쪽 벽에 각각 6개씩, 동쪽과 서쪽 벽에 각각 1개씩 도합 14개의 성화를 그리도록 했다. 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합일을 나타냄과 동시에, 하느님이 부여한 권리가 모세 → 예수 → 베드로 → 교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14장면의 성화들 가운데서 제대가 있는 서쪽 벽에 그려졌던 '강에서 발견된 모세'와 '그리스도의 탄생'은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위해, 지워져 현재는 12장면만 현존한다. 피렌체의 화가들은 성화의 통일성을 위하여 가급적 개성을 자제하고 안정감을 추구하는 구도와 화풍을 추구했다.4.1. 남쪽 벽
남쪽 벽: 모세의 일생을 주제로 6개의 성화가 그려졌다. | ||
<colcolor=#373a3c>이집트로 떠나는 모세 | ||
상단부 명문 | OBESRVATIO·ANTIQVE·REGENERATIONIS·A·MOISE·PER·CIRCONCISIONEM | |
화가 |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 |
내용 | 탈출기 4장 18~26절의 내용으로, 미디안에서 지내던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돌아가는 장면, 하느님이 보낸 천사가 모세를 죽이려 하는 장면,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아들을 할례시키는 장면이 그려졌다. | |
모세의 선택 | ||
상단부 명문 | TEMPTATIO·MOISI·LEGIS·SCRIPTAE·LATORIS | |
화가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
내용 | 탈출기 2장 12~17절과 3장 5~12절의 내용으로, 모세가 유대인을 학대하던 이집트인을 죽이는 장면, 모세가 이집트를 빠져나와 미디안으로 도망치는 장면,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방해하는 목동들을 모세가 쫓아내는 장면, 모세가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 장면, 양을 치던 도중 호렙산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들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신발을 벗는 장면,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소명을 받는 장면, 하느님의 지팡이를 가진 모세가 이집트로 떠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 |
홍해를 건너다 | ||
상단부 명문 | CONGREGATIO·POPVLI·A·MOISE·LEGEM·SCRIPTAM·ACCEPTVRI | |
화가 | 코시모 로셀리(Cosimo Rosselli),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또는 비아조 단토니오 투치(Biagio di Antonio Tucci) | |
내용 | 탈출기 14장 15~31절의 내용으로, 도주하는 유대인을 잡으려고 파라오와 신하들이 회의를 연 장면, 유대인을 추격하던 파라오의 군대가 홍해에 빠져 몰살당하는 장면, 모세가 이끄는 유대인들이 추격을 따돌리고 무사히 홍해를 건너는 장면이 그려졌다. | |
시나이 산을 내려오는 모세 | ||
상단부 명문 | PROMVLGATIO·LEGIS·SCRIPTE·PER·MOSEIM | |
화가 | 코시모 로셀리(Cosimo Rosselli) 또는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 | |
내용 | 탈출기 31~34장의 내용으로, 시나이 산에 오른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 그가 없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자 이걸 보고 대노한 모세가 십계가 새겨진 석판을 던져 금송아지를 파괴하는 장면, 우상숭배를 했던 사람들이 징벌을 받는 장면, 다시 시나이 산에 올라 십계를 받아온 모세에게 백성들이 복종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 |
코라의 형벌 | ||
상단부 명문 | CONTVRBATIO·MOISI·LEGIS·SCRIPTAE·LATORIS | |
화가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
내용 | 민수기 16장 1~35절의 내용으로, 하느님이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선택한 것에 불만을 품은 코라와 다탄과 아비람이 사람들을 선동해 대항하는 장면, 모세가 향로를 통해 하느님의 선택을 확인하는 장면, 모세에 대항한 무리들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갈라진 땅 밑으로 집어삼켜지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림의 중앙 뒷배경에 있는 개선문은 티투스 개선문을 모델로 한 것이며, 성화의 주제에 걸맞게 라틴어로 '아론처럼 하느님께 불리지 않고서는, 누구도 (사제의) 명예를 취하지 말기를(NEMO·SIBI·ASSVMMAT·HONOREM·NISI·VOCATUS·ADEO·TANQVAM·ARON)'이라고 적혔다. | |
모세의 죽음 | ||
상단부 명문 | REPLICATIO·LEGIS·SCRIPTAE·AMOISE | |
화가 |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 또는 바르톨로메오 델라 가타(Bartolomeo della Gatta) | |
내용 | 신명기 34장의 내용으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서를 백성에게 들려주는 장면, 느보산에 오른 모세에게 천사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보여주는 장면, 모세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여호수아에게 넘겨주는 장면, 모세가 세상을 떠나 모압에 매장되는 장면이 그려졌다. |
4.2. 북쪽 벽
북쪽 벽: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주제로 6개의 성화가 그려졌다. | ||
<colcolor=#373a3c>그리스도의 세례 | ||
상단부 명문 | INSTITVTIO·NOVAE·REGENERATIONIS·A·CHRISTO·IN·BAPTISMO | |
화가 |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 |
내용 | 마태오 복음서 3장 13~15절의 내용으로, 세례자 요한이 설교하는 장면, 세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 |
그리스도의 유혹 | ||
상단부 명문 | TEMPTATIO·IESV·CHRISTI·LATORIS·EVANGELICAE·LEGIS | |
화가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
내용 | 마르코 복음서 1장 12~13절의 내용으로, 사탄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는 예수를 계속해서 유혹하다가 실패하는 장면, 천사들이 예수를 시중드는 장면, 예수가 나병 환자를 치유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성화의 중앙 뒷배경에 있는 건물은 교황 식스토 4세 때 세워진 성 스피리토 병원인데, 예수의 치유 기적을 식스토 4세와 연관시키려는 의도로 삽입했다. | |
사도들을 부르는 그리스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hirlandaio%2C_Domenico_-_Calling_of_the_Apostles_-_1481.jpg | |
상단부 명문 | CONGREGATIO·POPVLI·LEGEM·EVANGELICAM·ACCEPTVRI | |
화가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 |
내용 | 마태오 복음서 4장 18~22절의 내용으로, 예수가 갈릴래아 호수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를 불러 제자로 삼는 장면, 그물을 수선하던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본 예수가 그들을 부르는 장면이 그려졌다. | |
산상설교 | ||
상단부 명문 | PROMVLGATIO·EVANGELICAE·LEGIS·PER·CHRISTVM | |
화가 | 코시모 로셀리(Cosimo Rosselli) | |
내용 | 마태오 복음서 5장 3~12절의 내용으로, 예수가 산 위에서 기도를 드리는 장면, 산 아래에 모인 군중들을 향해 내려가는 장면,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 나병 환자를 치유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 |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 | ||
상단부 명문 | CONTVRBATIO·IESV·CHRISTI·LEGISLATORIS | |
화가 |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 |
내용 | 마태오 복음서 16장 18~19절의 내용으로, 남쪽과 북쪽 벽에 그려진 성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수여하는 모습을 통해,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권위를 신성화시켰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돔형 건물은 솔로몬 성전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고, 그 양쪽에 있는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본뜬 것이다. 왼쪽 개선문에 적힌 'IMENSV SALOMO TEMPLVM TV HOC QVARTE SACRASTI'와, 오른쪽 개선문에 적힌 'SIXTE OPIBVS DISPAR RELIGIONE PRIOR'는 시스티나 경당을 건설하도록 한 교황 식스토 4세를 찬양하는 라틴어 문구로, '이 거대한 성전을 축성한 그대 식스토 4세는 부유함으로는 솔로몬에 미치지 못하나, 믿음으로는 솔로몬을 능가했다'는 의미다. | |
최후의 만찬 | ||
상단부 명문 | REPLICATIO·LEGIS·EVANGELLCAE·A·CHRISTO | |
화가 | 코시모 로셀리(Cosimo Rosselli) | |
내용 | 마태오 복음서 26장 26~29절의 내용으로, 그림 속에 최후의 만찬 후 예수가 겪는, 십자가 수난에 관한 작은 그림 3개가 포함되어 있는 형식으로 그려졌다. 우선 큰 그림에는 제자들을 사이에 두고 예수가 가운데에 앉은 장면, 다른 제자들과 달리 어깨 위에 악마가 올라탄 이스카리옷 유다가 예수와 마주보고 앉은 장면이 그려졌다. 작은 그림 3개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예수가 잡혀가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 이스카리옷 유다가 예수에게 입맞추는 장면,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
4.3. 동쪽 벽
동쪽 벽: 남쪽 벽에서 전개된 모세의 일생과 북쪽 벽에서 전개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만나는 부분이다. 경당에 그려진 그림들 중 가장 주목받지 못해서, 천장은 물론 남쪽·북쪽·서쪽에 그려진 각각의 그림에 대한 항목이 모두 개설되어 있는 영어·이탈리아어 위키피디아에서도 동쪽 벽에 그려진 그림들만 항목이 없는 상태다. | ||
<colcolor=#373a3c> 그리스도의 부활 | ||
상단부 명문 | RESVRRECTIO·ASCENSIO·CHRISTI·EVANGELICAE·LEGIS·LATORIS | |
화가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원작을 헨드릭 반 덴 브로엑(Hendrick van den Broeck)이 다시 그림 | |
내용 |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그리스도의 부활 장면을 묘사. | |
모세의 시체에 대한 논쟁 | ||
상단부 명문 | 없음 | |
화가 | 루카 시뇨렐리의 원작을 마테오 다 레체(Matteo da Lecce)가 다시 그림 | |
내용 | 신약성경 <유다서> 1장 9절에 언급되는, 미카엘 대천사와 사탄이 모세의 주검을 놓고 다투며 논쟁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
5.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
시스티나 경당을 보지 않고서, 한 인간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Ich kann euch nicht ausdrücken, wie sehr ich euch zu mir gewünscht habe, damit ihr nur einen Begriff hättet, was ein einziger und ganzer Mensch machen und ausrichten kann; ohne die Sixtinische Kapelle gesehen zu haben, kann man sich keinen anschauenden Begriff machen, was ein Mensch vermag.)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남긴 말, 1787년
(Ich kann euch nicht ausdrücken, wie sehr ich euch zu mir gewünscht habe, damit ihr nur einen Begriff hättet, was ein einziger und ganzer Mensch machen und ausrichten kann; ohne die Sixtinische Kapelle gesehen zu haben, kann man sich keinen anschauenden Begriff machen, was ein Mensch vermag.)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남긴 말, 1787년
5.1. 천장화
1483년에 축성식을 가진 시스티나 경당은 21년 후인 1504년, 건물의 배수 구조에 문제가 생겨 파란 바탕에 금빛 별을 그렸던 천장[14]에 금이 갔다. 보수 작업 도중 천장화가 손상되자, 교황 율리오 2세는 별이 그려진 기존의 천장화를 지우고 새로운 천장화를 그리기로 결정하면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게 책임을 맡겼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다른 사람도 아닌 율리오 2세의 의뢰로 교황 본인이 안장될 영묘를 만드는 조각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어서 다른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고사했지만[15], 교황이 강하게 압박하자 하는 수 없이 영묘 작업을 중단하고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 계약서에 1508년 5월 10일 서명했다.[16]원래는 12사도를 그리라는 것이 율리오 2세의 주문이었지만, 그런 구성으로는 천장화를 짜임새있게 그릴 수 없다고 판단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창세기, 예수의 조상, 예언자와 시빌라, 이뉴디와 메달리온 등을 포괄한 장대한 내용으로 주제를 전환해 교황의 승인을 받아낸다. 1508년 12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경당 벽면에 비계를 고정시키고 작업에 착수했다. 고향 피렌체에서 불러들인 조수들과 함께 작업을 했지만, 대부분의 주요 그림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혼자서 그렸는데,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초반에는 프레스코화가 변색되는 일이 벌어져 당황한 나머지 작업을 중단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천장화 작업을 그만두고 영묘 조각에 복귀하려 했지만, 율리오 2세가 보낸 건축가 줄리아노 다 상갈로가 사태를 분석한 결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그림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벽면에 바른 석회의 수분이 너무 많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상갈로가 수분을 조절하면서 변색 문제는 해결됐지만, 다소 아깝긴 했으나 원래 처음부터 하기 싫었던 작업이고 이 사태를 핑계로 천장화 작업을 때려치우려 했던 미켈란젤로 입장에서는 상갈로가 야속하기도 했을 것이다.(...)
천장화는 상술한 것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초반에는 작업이 느리게 진행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업 속도에 탄력이 붙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는 '빛과 어둠의 분리' 같은 하나의 장면을 밑그림 스케치 없이 하루 만에 완성하기에 이른다.[17] 1511년 8월 15일에는 아직 미완성이었던 천장화가 부분적으로 공개되었으며[18], 마침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4년 만인 1512년 10월 31일, 율리오 2세의 축하 미사를 거쳐 같은 해 11월 1일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시스티나 천장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508~1512년, 프레스코, 40.5 x 14m,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 |||||||||||
Ⅰ. | Ⅱ. | Ⅲ. | Ⅳ. | Ⅴ. | Ⅵ. | ||||||
ⅰ. | ⓐ | 가족 | ⒜ | 가족 | ⓑ | 가족 | ⒝ | 가족 | ⓒ | ⅱ. | Ⅶ. |
⒞ | ㉮ | ㉯ | ㉰ | ㉠ | ㉡ | ㉢ | ㈎ | ㈏ | ㈐ | ⒟ | |
ⅲ. | ⒠ | 가족 | ⓓ | 가족 | ⒡ | 가족 | ⓔ | 가족 | ⒢ | ⅳ. | Ⅷ. |
Ⅸ. | Ⅹ. | ⅩⅠ. | ⅩⅡ. | ⅩⅢ. | ⅩⅣ. | ||||||
천장화의 구성 |
5.1.1. 예수의 조상
예수의 조상: 이전까지 예술가들이 창작의 소재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내용으로, 복음서에 등장한 예수의 조상들을 나타냈다. 그림마다 인물명을 명시했지만 인물 군상 가운데서 누가 누구인지까지는 정확하게 지목하지 않아 대략적인 추정만 하고 있다. | ||
<rowcolor=#373a3c> Ⅰ. | Ⅱ. | Ⅲ. |
나흐손(NAASON) | 이사이(IESSE), 다윗(DAVID), 솔로몬(SALOMON) | 아사(ASA), 여호사팟(IOSAPHAT), 여호람(IORAM) |
<rowcolor=#373a3c> Ⅳ. | Ⅴ. | Ⅵ. |
히즈키야(EZECHIAS), 므나쎄(MANASSES), 아몬(AMON) | 요시야(IOSIAS), 여고니야(IECHONIAS), 스알티엘(SALATHIEL) | 아조르(AZOR), 차독(SADOCH) |
<rowcolor=#373a3c> Ⅶ. | Ⅷ. | Ⅸ. |
엘아자르(ELEAZAR), 마탄(MATHAN) | 야곱(IACOB), 요셉(IOSEPH) | 암미나답(AMINADAB) |
<rowcolor=#373a3c> Ⅹ. | ⅩⅠ. | ⅩⅡ. |
살몬(SALMON), 보아즈(BOOZ), 오벳(OBETH) | 르하브암(ROBOAM), 아비야(ABIAS) | 우찌야(OZIAS), 요탐(IOATHAM), 아하즈(ACHAZ) |
<rowcolor=#373a3c> ⅩⅢ | ⅩⅣ. | |
즈루빠벨(ZOROBABEL), 아비훗(ABIVD), 엘야킴(ELIACHIM) | 아킴(AHIM), 엘리웃(ELIVD) |
5.1.2. 성경의 내용
성경의 내용: 창세기와 탈출기의 주요 내용을 나타냈다. | ||
<colcolor=#373a3c> ㉮ | | 빛과 어둠의 분리 창세기 1장 1~4절의 내용으로, 천지창조의 첫째 날에 해당한다. 상반신을 뒤틀어 두 손을 뻗은 하느님이 하늘을 갈라 왼손으로 빛을, 오른손으로 어둠을 나누는 장면이다. 창세기의 첫 번째 장면이지만, 미켈란젤로가 이걸 그린 때는 천장화 작업이 거의 끝나가던 1512년이었다. 작업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미켈란젤로는 다른 프레스코 화가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신들린 속도로 프레스코화를 완성시켜 나갔는데, 그는 이 장면을 그릴 때 밑그림도 그리지 않고 도와주는 조수도 없이 하루 만에 혼자서 끝냈다. |
㉯ | 해와 달의 창조 창세기 1장 14~19절의 내용으로, 천지창조의 넷째 날에 해당한다. 하느님이 오른손으로는 태양을 만들어 낮을 주관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달을 만들어 밤을 주관하게 한다. 미켈란젤로는 달을 그릴 때 태양과는 달리 어떠한 물감도 칠하지 않고, 프레스코화의 밑바탕으로서 벽면에 바른 회반죽의 색깔을 그대로 노출시켜 보다 생생한 느낌을 연출했다. | |
㉰ | 물과 흙의 분리 이 장면의 주제는 일반적으로 창세기 1장 9~10절의 셋째 날인 '물과 흙의 분리'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6~8절의 둘째 날인 '물과 물의 분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림을 보면 흙은 보이지 않고 하느님이 두 팔을 뻗어 아래에 있는 물을 내려다 보는 모습만 묘사되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2가지 주제 중 어떤 것을 나타내고자 했는지를 두고 미술사가들이 수백년 동안 머리를 싸맸다. | |
㉠ | 아담의 창조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흙을 빚어 아담을 창조한 하느님이 오른손을 뻗어 영혼을 불어 넣고, 비스듬하게 앉은 아담이 왼손을 뻗어 영혼을 받는다. 하느님의 오른손과 아담의 왼손이 닿을 듯 말 듯한 모습으로, 처음 그려진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주되어 모방과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E.T.에서 소년과 외계인이 저 장면을 연출했으며, 영화 2012에서는 추기경단이 모여 시스티나 경당에서 기도할 때 지진이 발생해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 사이가 갈라지고 천장이 무너져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함을 극대화시켰다. 한편 과장된 옷자락과 여러 인물들이 모인 하느님의 모습이 뇌의 단면을 나타낸 것이며, 이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해부학적 지식을 은밀하게 보여주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다. | |
㉡ | 이브의 창조 하느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고 그의 갈비뼈로부터 이브를 창조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아담은 말라 죽은 나무등걸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며, 아담의 옆구리에서 걸어나온 이브는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고 있다. | |
㉢ | 유혹받은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이 그림은 2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왼쪽 장면은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하는 순간을 나타냈고, 오른쪽 장면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는 뱀은 상반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뱀의 바로 옆에는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는 천사가 대칭적으로 그려졌다. 주름 없이 젊었던 아담과 이브는, 죄를 범해 낙원에서 추방되면서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박탈당하고 늙어가기 시작한다. | |
㈎ | 노아의 번제 대홍수가 끝난 후 무사히 육지에 다다른 노아가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제단을 세우고 희생을 바치는 장면이다. 제단의 가운데에 위치한 노아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제단 주변에 있는 노아의 가족들은 희생으로 바칠 각종 동물들을 잡고 장작을 준비하고 있다. 1568년에 이 장면의 왼쪽 부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지자 해당 부분을 다시 그렸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새로 그려넣은 부분의 색깔만 어둡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 |
㈏ | 대홍수 성경의 순서를 따르면 대홍수 다음에 번제를 올려 희생을 바치는 장면이 나와야 하지만, 대홍수 장면의 스케일이 워낙 크고 등장인물이 많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순서를 바꿔서 그렸다. 이 장면의 오른쪽 부분, 즉 해안가의 천막에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부분의 위쪽 역삼각형 모양을 보면 물과 하늘과 구름의 색깔이 주변보다 약간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1795년에 산탄젤로 성에 비축된 탄약이 사고로 터지면서 생긴 폭발로 주변이 크게 진동하면서 떨어져 나간 흔적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방주를 유선형의 선체로 묘사했지만, 미켈란젤로는 네모난 상자 형태로 그렸다. | |
㈐ | 술에 취한 노아 대홍수가 끝나고 번제를 올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노아는 밭을 일구고 포도를 심어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장막 안에서 옷을 벗은 채 잠들자, 이걸 본 차남 함은 아버지에게 옷을 덮어 가리는 대신 장남 셈과 삼남 야벳에게 이를 알렸고,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반신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 옷으로 가리는 장면이다. 나중에 술에서 깨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이 셈과 야벳의 후손의 종이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 |
5.1.3. 예언자와 시빌라
예언자와 무녀 : 구세주의 강림을 예지한 예언자 12명을 나타냈다. 유대인인 예언자 7명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로마 신화의 무녀(시빌라) 5명도 그려진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를 위한 구세주로서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 ||
<colcolor=#373a3c> ⒜ | 다니엘(DANIEL)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심판하셨다'를 의미하며, <다니엘서>의 주인공이자 구약성서의 4대 예언자 중 하나다. 바빌로니아가 유다를 정복한 후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이방인의 신을 믿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지켜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지혜를 얻었고, 이를 통해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꾼 2개의 꿈을 해몽해 고위 관직에 올라 왕의 조언자로 활약했다. 그렇지만 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시기한 제사장들이 꾸민 음모로 누명을 쓰고 사자굴에 던져졌는데, 하느님의 가호를 받아 무사했으며, 나중에 진상이 드러나자 다니엘을 모함한 자들이 사자밥이 되었다. 천장화에서는 펼쳐진 책을 왼손으로 잡고, 미간을 약간 찌푸린 얼굴을 오른편으로 돌려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 |
⒝ | 이사야(ESAIAS) 히브리어로 '하느님은 나의 구원이시다'를 의미하며 <이사야서>의 주인공이자 구약성경의 4대 예언자 중 하나다. 아시리아의 침략과 지배층의 부패 등 내우외환으로 민심이 어수선할 때, 이사야는 장차 유다에 닥칠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구원에 대한 희망을 함께 언급했다. 특히 <이사야서>는 하느님에 대한 경배에 열중하면서도 고아와 과부는 돌보지 않는 당시의 사회를 '소돔과 고모라'에 견주어 비판해 사회적 정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천장화에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책을 완전히 덮지는 않은 채 읽고 있던 부분을 오른손으로 표시해둬 나중에 다시 펼치려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 |
⒞ | 요나(IONAS)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를 의미하며, <요나서>의 주인공이다. 요나는 니네베로 가서 회개할 것을 경고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니네베는 그동안 요나의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아시리아의 수도였다. 이에 요나는 불만을 품고,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 위해 니느웨가 아닌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풍랑이 일어 난파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하느님의 말에 불응했기 때문이라며 바다에 투신했고, 하느님이 준비해둔 큰 물고기에 의해 삼켜졌다. 그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 동안 지낸 요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니네베로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불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자 하루 만에 도시 전체가 속죄해 멸망을 피했다. 이는 유대인만이 선민이라는 편견을 깨고, 이방인도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천장화에서는 비스듬하게 앉은 자세로 허공을 바라보며 하느님에게 항의하는 듯한 표정을 한 모습으로 나타냈으며, 그 옆에는 입을 벌린 물고기도 함께 배치했다. | |
⒟ | 즈가리야(ZACHERIAS)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기억하셨다'를 의미하며, <즈카르야서>의 주인공이다. 그는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던 도중에 사업이 멈추면서 믿음이 흔들리자,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즈카르야가 그려진 곳은 시스티나 경당에서 교황의 자리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율리오 2세는 여기에 예수를 넣고자 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교황의 계획을 백지화하고 새로 도안을 잡는 과정에서, 율리오 2세의 비위를 맞추려 즈카르야의 얼굴을 교황의 얼굴로 그리고, 그가 입은 옷도 교황의 출신 가문인 로베레 가문의 색인 청색과 금색으로 칠했다. 하지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며 본업도 아닌 프레스코화를 그리라고 명령한 율리오 2세가 아니꼬웠던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얼굴을 한 즈카르야의 뒤에 있는 푸토가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우고 주먹 쥐게 해 교황을 디스했다. 물론 그 부분은 어둡고 흐릿하게 처리해,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렵도록 했다. 천장화에서는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 넘기며 읽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 |
⒠ | 예레미야(HIEREMIAS)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나를 높이셨다'를 의미하며, <예레미야서>의 주인공이자 구약성경의 4대 예언자 중 하나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 중 가장 강하고 통렬한 어조로 유대의 백성과 지도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비판의 날을 세우며 회개하라고 외쳤기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며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죄악을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유다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며 성전도 파괴되는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 경고했고, 이는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현실화되었다. 천장화에서는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나타냈다. | |
⒡ | 에제키엘(EZECHIEL)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강하게 하신다'를 의미하며, <에제키엘서>의 주인공이자 구약성경의 4대 예언자 중 하나다. 바빌로니아가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직전에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유대인의 신망을 받는 사제였던 그는,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심판을 예언했다. 그러나 이 예언을 귀담아 듣지 않던 유다가 결국 멸망하자, 절망에 빠진 동포들에게 "앞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성전을 재건하리라"는 희망도 함께 예지했다. 천장화에서는 두루마리를 읽다가 잠시 멈추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푸토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 |
⒢ | 요엘(IOEL) 히브리어로 '야훼는 하느님이시다'를 의미하며 <요엘서>의 주인공이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을 예언했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예언자임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언급했다. 그는 메뚜기 떼가 출몰하는 재앙이 일어난 것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간주해,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요엘서>는 <요나서>와 달리 이스라엘 백성, 그중에서도 신실한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 종교적 배타주의가 강하다. 천장화에서는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 |
ⓐ | 리비아의 시빌라(LIBICA) 리비아의 시빌라는 오늘날의 리비아가 아니라, 이집트의 리비아 사막에 있는 시와 오아시스 출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포세이돈의 딸이자 리비아의 여왕인 라미아와 제우스의 딸이라고 하며, 플루타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시와 오아시스를 찾아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가 위대한 정복자가 되고 이집트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기록했다. 미켈란젤로는 그녀를 두 손으로 커다란 책을 펼치거나 덮는 자세를 취한 젊은 여성으로 묘사했다. | |
ⓑ | 쿠마이의 시빌라(CVMAEA) 쿠마이는 오늘날의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에 있으며, 이곳 출신인 쿠마이의 시빌라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자신이 손에 움켜쥔 모래알의 개수만큼 수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해 소원을 이루었다. 하지만 영원한 젊음을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는 바람에, 나이가 들어 젊음을 잃고 아폴론에게 버림받아 죽지도 못한 채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이 점을 반영해 미켈란젤로는 그녀의 얼굴을 노파로 그렸지만, 얼굴 이외의 부분은 페르시아의 시빌라와 마찬가지로 근육질의 남성으로 그렸다. 그녀가 고대 로마 초기 왕정 시대의 타르퀴니우스 왕에게 판 <시빌라의 신탁>은 국가 로마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신의 뜻을 묻는데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83년에 원본은 소실되었고, 각지에서 구한 예언서를 모아 재편집한 것마저 408년에 플라비우스 스틸리코가 불태웠지만, 이후에도 <시빌라의 신탁>이라는 이름의 가짜 판본이 널리 퍼졌다. 워낙에 유명한 무녀와 예언서이다 보니, 미켈란젤로 당시의 교황청은 "<시빌라의 신탁>에 율리오 2세가 교황이 되리라는 예언이 적혀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 |
ⓒ | 델포이의 시빌라(DELPHICA) 같은 그리스 델포이 출신의 무녀이지만,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던 피티아와는 다르다. '델피카'라는 명칭은 문자 그대로 '델포이 출신의 시빌라'라는 의미이지, 특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인명이 아니다. 후대에 추가된 전승에 따르면, 델포이의 시빌라의 어머니는 포세이돈의 딸 라미아로 알려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델포이의 시빌라를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냈다. 그녀가 그리스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풍 옷을 입고 있으며, 머릿수건 뒤쪽으로 늘어진 금발 머리카락을 통해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 |
ⓓ | 페르시아의 시빌라(PERSICHA) 페르시아의 시빌라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루게 될 업적을 예언했다는 것 이외에는 자세한 사항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에서는 쿠마이의 시빌라처럼 글자를 읽기 위해 책에 얼굴을 바싹 붙여야 하는 주름진 얼굴의 노파로 묘사되었지만 정작 책을 들고 있는 팔은 건장한 근육을 자랑하는데, 이는 미켈란젤로가 여성 모델 대신 남성 모델만을 고용해 천장화 등장인물을 그렸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
ⓔ | 에리트레아의 시빌라(ERITHRAEA) 에리트레아의 시빌라는 현재의 이라크 지역인 칼데아 출신의 바빌로니아인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예언을 할 때 그 내용을 나뭇잎에 썼고, 이 나뭇잎들의 첫 번째 글자들을 올바르게 나열하면 그녀의 예언을 해석하는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 까닭에 각 행의 첫 글자를 아래로 연결하면 특정한 어구가 되는 어크로스틱(acrostic)의 창안자로 알려져 있다. 델포이의 시빌라처럼 젊은 여성으로 묘사되었으며, 활짝 펼쳐진 책의 낱장을 넘기려고 왼손을 뻗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녀가 펼쳐 놓은 책장의 첫머리는 'Q'로 시작한다. |
5.1.4. 펜던티브
펜던티브 : 유대 민족을 구원한 남녀 영웅 4명과 그에 대한 사건을 나타냈다. | ||
<colcolor=#373a3c> ⅰ. | 모세와 청동 뱀 | |
ⅱ. |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 |
ⅲ. | 하만의 처벌 | |
ⅳ. | 다윗과 골리앗 사무엘상 17장 48~51절에 나오는 내용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장면, 즉 슬링으로 골리앗의 미간을 맞춰 쓰러뜨린 다윗이 땅바닥에 엎어진 골리앗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칼집에서 칼을 뽑아 목을 치려는 순간을 나타냈다. 펜던티브에 그려진 다윗은 유디트와 더불어 하느님의 정의를 상징한다. 인물 뒤쪽에 있는 천막의 색깔을 가장 밝은 색으로 칠해 천막의 둥근 모양이 강조되고 다윗과 골리앗의 입체감이 표현됨과 동시에, 건축 구조상 가운데 부분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펜던티브의 한계를 극복해 오목한 표면이 볼록하게 보이도록 처리했다. |
5.2. 최후의 심판(서쪽 벽)
최후의 심판, 1534~1541년, 프레스코, 13.7 x 12m,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
하느님, 심판의 날에 저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
- 바오로 3세, 최후의 심판을 처음 보았을 때 무릎을 꿇고 감탄하며 남긴 말
- 바오로 3세, 최후의 심판을 처음 보았을 때 무릎을 꿇고 감탄하며 남긴 말
성화의 부분 | 설명 |
수난의 도구를 든 천사들(왼쪽 루네트) 왼편에 있는 천사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하늘을 향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 십자가를 짊어진 천사들 가운데서 한 천사가 아래쪽에 있는 축복받은 자들을 가리키자 다른 천사는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구원을 상징한다. 십자가 오른편에 있는 천사들의 시선은 십자가를 향해 있으며, 손에 든 가시관은 예수를 향하고 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천사들을 그리면서 천사의 전통적인 도상인 날개를 그리지 않아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
수난의 도구를 든 천사들(오른쪽 루네트) 여러 무리의 천사들이 예수가 묶여 채찍질 당했던 기둥을 에워싸고 있으며, 가장 오른편에 있는 천사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목을 축였던, 식초를 적신 해면이 꽂힌 갈대를 들고 있다. 왼쪽 루네트에 그려진 장면과 비교했을 때 오른쪽 루네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기둥과 그 기둥을 둘러싼 천사들의 자세인데,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성화의 가운데 부분을 향하도록 기둥을 배치해 관람자의 시선을 중앙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 |
심판자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미켈란젤로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예수가 가시관도 쓰지 않고 수염 없는 젊은이로 그려진 것이 아폴론을 연상시킨다는 것과, 성모가 최후의 심판이 시작될 때 예수와 인류를 중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예수는 오른손을 치켜 들면서 시선이 성화의 오른쪽을 향하는데, 이는 지옥으로 떨어질 죄인들을 심판하는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한편 예수의 왼손은 성화의 왼쪽을 향하는데, 이는 축복받은 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상징한다.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성모의 시선이 성화의 왼쪽을 향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예수를 그리면서 고대의 조각을 참고해 몸통은 '벨베데레의 아폴론'을, 오른팔은 '라오콘'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축복받은 자들(왼쪽) 최후의 심판에 그려진 성인들은 각자를 상징하는 지물과 함께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어떤 사람인지 분간할 수 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가 성인에게 후광을 그려넣지 않아 이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성모 마리아 왼쪽에서 X자 십자가를 오른손으로 잡고 등을 돌린 남자는 사도 안드레아이다. 사도 안드레아의 왼편에 있는, 동물 가죽을 걸치고 국부도 동물 가죽으로 가린 남자는 세례자 요한이며, 성모 마리아의 발치에서 석쇠를 왼쪽 어깨에 짊어진 남자는 성 라우렌시오이다. 성 라우렌시오 바로 뒤쪽에 있는 여자는 사시이기 때문에 성녀 루치아로 비정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미켈란젤로가 흠모했던 귀족 부인 비토리오 콜론나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
축복받은 자들(오른쪽)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사도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수여받은 천국의 열쇠를 돌려주고 있고, 그의 왼쪽에는 사도 바오로가 약간 놀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은 베드로와 바오로의 왼쪽 위에서 예수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왼손은 가슴을 누르며 진정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예수의 발치에 있는 사도 바르톨로메오는 자신의 살가죽과 그걸 벗겨낼 때 사용한 칼을 들고 있는데, 미켈란젤로는 자기 얼굴을 살가죽에 나타냈다. 이외에도 톱을 잡고 있는 사도 시몬, 십자가를 쥔 채 시선을 아래로 향한 사도 필립보, 쇠빗 2개를 양 손에 움켜쥔 성 블라시오[19], 못이 박힌 수레바퀴를 들어올리는 듯한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화살 묶음을 왼손으로 든 성 세바스티아노가 묘사되었다.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나르는 남자는 골고타에서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옮겼던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 비정되고 있다. | |
심판의 나팔을 부는 천사들 벽화의 가운데 위치한 천사들은 심판의 나팔을 불어 죽은 자들을 깨우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나팔 부는 천사들의 볼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으로 그려, 이것 또한 비난을 받았다. 왼쪽에 있는 천사는 구원받은 자들을 향해 생명의 책을 펼치고 있고, 오른쪽에 있는 천사 둘은 지옥으로 끌려가 심판을 받을 죄인들의 명부를 펼쳤다. 생명의 책은 일반적인 책의 크기와 비슷한 반면 죄인들의 명부는 두 사람이 매달려야 할 정도로 큰데, 이는 구원받은 자보다 심판받을 죄인의 숫자가 월등하게 많다는 것을 상징한다. | |
축복받은 자들에게 올라가는 구원받은 자들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 구원을 받은 자들은 땅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있으며, 이미 축복을 받아 천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이들에게 손을 뻗어 천국으로 끌어올린다. 이들 중에서 어두운 피부 빛깔의 남자 두 사람은 묵주를 잡고 천상으로 끌어올려지는데, 이는 인종이 다르더라도 기도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상징한다. 트리엔트 공의회 때 내려진 결정으로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많은 나체 군상에 '기저귀'가 덧그려졌으나, 1990년대에 이루어진 보수 작업을 통해 이 장면에 있는 남자 한 사람의 엉덩이를 가린 천을 지울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빨간색과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른손을 뻗어 천국으로 인도하는 남자로, 다른 사람들의 국부가 미묘하게 천으로 가려진 것과 대비하면 쉽게 차이가 난다. | |
죽은 자들의 부활 천사들이 부는 심판의 나팔 소리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장면으로, 땅에서 바로 올라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석판을 들어올리면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생전의 지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무덤에 묻힌 데서 비롯되었다. 죽은 자들은 앙상한 해골, 핏기 없이 수의를 감싼 모습, 신체의 일부만 땅으로 나온 모습 등 다양한 상태로 그려졌으며, 몇몇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오른쪽 부분에는 2명의 죽은 자를 놓고 천사와 악마가 서로 대치하는데, 악마들은 죽은 자의 발에 휘감긴 뱀을 잡아당기거나 죽은 자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땅으로 끌어내리려 하지만, 천사들은 이들을 안아올려 천상으로 데려가려 하고 있다. | |
지옥으로 끌려가는 자들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끌려가 심판을 받게 되는 죄인 중에는 여기에 저항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성경의 칠죄종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으면서 악마가 성기를 잡아 아래로 끌어내리는 자는 색욕, 색욕 위쪽에서 몸이 뒤집힌 자는 자만,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자는 폭식, 녹색 옷의 천사와 싸우는 자는 분노, 천으로 몸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자는 나태, 악마에게 상체를 잡히고 돈주머니와 열쇠를 찬 자는 탐욕, 구원받은 자들을 따라가려다가 녹색 옷의 천사에게 제지당하는 자는 질투를 상징한다. 가장 왼쪽에 있는 자는 칠죄종과 동떨어져 좌절 또는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으며 왼손으로 머리를 짚고 있다. 혹자는 이 포즈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한다. | |
지옥의 입구 카론은 심판을 받게 될 죄인들을 노로 위협하며 지옥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악마들은 카론에게 떠밀린 죄인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으며, 죄인들이 가게 될 종착지인 지옥은 성화의 오른쪽 아래에 그 입구가 묘사되었다. 지옥의 입구는 화염과 연기로 가득하며 악마들이 줄지어 서서 죄인들을 기다리는데,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이 나체로 그려진 것에 대해 혹평한 교황청 의전관 비아조 다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지옥의 왕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넣고 몸을 휘감은 거대한 뱀이 미노스의 성기를 물게 해 체세나 추기경에게 복수했다. |
6. 복원
복원 전 | 복원 후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과 벽면에 프레스코화를 그린 이래, 보존을 위한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17세기 초와 18세기 초, 그리고 20세기 초에 그림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 행해졌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된 것은 1984년 11월 7일이었다. 10년 넘는 작업 끝에 복원이 완료된 천장화는 1994년 4월 8일에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성화는 1994년부터 복원에 착수해 1999년 12월 11일에 공개되었다. 전례 때 켠 촛불의 그을음과 먼지가 500년 동안 덮이면서 어둡게 변했던 프레스코화는, 최신 과학 기술을 동원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당대의 광채를 되찾았다. 이에 대해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사용한 풍부한 색채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옹호론과 더불어, 그을음과 먼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림이 가지고 있던 어두운 깊이감이 사라졌다는 비판론이 제기되어 팽팽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복원하면서 500년 묵은 세월의 때를 벗겨내기 전과 후를 비교하기 쉽도록, 프레스코화의 일부를 그대로 두었다. 요나가 그려진 위의 복원 이후 사진을 보면, 오른쪽의 기둥 장식 부분에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주변보다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때를 벗겨내지 않은 부분 중 하나다. 복원이 끝난 후에는 빛에 약한 프레스코화를 보호하기 위해 사진 촬영을 엄금하고 있다.
7. 기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에지오 아디토레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전투를 벌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쌔신 크리드 2에서 최종보스와 싸우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만 시대적 배경이 1500년이라,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아직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나온다. [20]문명 시리즈에서는 문명 1부터 문명 5까지 개근했다. 아직 위인 시스템이 없고 대신 불가사의에 위인의 이름이 나와 위인의 업적을 표현했던 문명 1과 문명 2에서는 "미켈란젤로의 경당(Michelangelo's Chapel)" 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며, 문명 3부터 시스티나로 나온다.
- 문명 1: 성당(불행한 주민 넷을 만족한 상태로 만듦)의 효과를 50% 증가시킨다. 공산주의를 연구하면 퇴보되어 효과가 사라지기는 하지만, 효과를 볼 수 있는 기간이 꽤 길기 때문에 한동안 행복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 문명 2: 완공 즉시 모든 도시에 성당을 건설한다. 성당은 불행한 주민 넷을 만족한 상태로 만들지만 건설 비용이 비싼데다 유지비도 많이 잡아먹는데, 이걸 모든 도시에 즉시 준다는 점은 무척 강력하다는 평을 받는다. 다만 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하면 주민 넷이 아니라 셋이 만족하게 되어 효과가 줄어든다는 점에 유의.
- 문명 3: 짭짤한 양의 문화를 매 턴 제공하고 성당의 효과(도시의 불행한 주민 셋을 만족시킴)를 두 배로 증가시킨다. 성당의 건설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짓기는 어렵지만, 일단 시스티나를 짓고 성당을 세우면 행복도 관리는 신경을 꺼도 되는 수준.
- 문명 4: 위대한 예술가 점수와 짭짤한 문화를 매 턴 제공하고, 모든 전문가와 국교로 지정한 종교의 건물이 문화를 매 턴 추가로 생성하게 한다. 문화 승리를 노리고 있다면 유용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강력한 불가사의가 많다.
- 문명 5: 모든 도시의 문화 생성을 증가시키며, 걸작 예술품 슬롯 둘을 제공한다. 문화 승리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다른 문명이 지었을 경우 골치가 아파지기에 반드시 건설하거나 이른 시기에 빼앗아야 한다.
- 문명 6: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제작할 수 있는 걸작 가운데 시스티나 천장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로 등장한 영화 <고통과 환희>(1965년)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를 그리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 2012 |
이 성당의 주제대는 트리엔트 미사처럼 신자들과 사제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ad orientem) 집전하게 되어 있다.[21] 사제와 신자가 제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는 방식(versus populum)이 일반적인 현대에 들어서는 이동식 제대를 미사때마다 따로 설치해서 그 위에서 미사를 드리곤 했으나, 옛 전통의 보존을 중시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기존의 주제대 위에서 미사를 거행해왔으며 이 관행은 현 교황 프란치스코 역시 유지해오고 있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유리벽 안에 들어있는 상태로 바티칸 피나코테카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밑그림은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소장한다.[6] 이는 가톨릭에서 여성이 성직자가 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녀는 그냥 수도자일 뿐, 성직자로 분류되지 않으며, 성직자가 아니다.[7] 카툰은 7개가 남아있다.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8]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워낙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생각보다 웅성거린다. 그럴 때마다 방송으로 Silence를 외치지만 그때 잠시 조용해졌다가 얼마 지나면 또 웅성대기 시작한다... 세계 어딜 가든 선생님 말 안 듣는 건 똑같다[9] NHK 측은 독점권을 전문 사진가만을 대상으로 행사했으나, 일반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촬영하는 이들 탓에 전면 금지가 되었었다.[10] 당시 뉴욕타임즈 기사. 로그인 필요[11] 최후의 심판 또한 NHK에서 복원 비용을 댔기 때문에 94년에 복원이 마무리된 후 97년까지 촬영 독점권이 있었다.[12] 이를 두고 지금의 촬영금지가 아직도 독점권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헛소문을 퍼트리는 경우가 있다. #[13]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실내이고 천장이기 때문에 상당히 어둡다. 때문에 플래시를 자동으로 두면 터질 가능성이 크고, 일부러 터트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아예 금지하고 있는 것.[14] 피렌체의 화가 피에르 마테오 다멜리아가 그렸으며 바탕을 청금석으로 하고 별을 금으로 그려서 돈지랄의 정점을 보였다.[15] 더욱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피에타>, <다비드> 등을 통해 당대에 이미 조각가로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화가로서 본격적으로 프레스코화를 그려본 적은 없는 상태였다.[16] 이때 그는 조각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라고 서명했다.[17] 당시 프레스코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던 화가들도 같은 면적을 프레스코화로 완성시키기 위해 며칠은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업 속도는 매우 빠른 편에 속했다.[18] 천장화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절대 공개하지 않으려던 것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입장이었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한 율리오 2세가 성화를 부린 결과였다.[19] 원래 성 블라시오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으나,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의 나체에 기댄 자세가 음란하다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지적을 받아,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최후의 심판에 그려진 사람들에게 '기저귀'를 입힐 때 성 블라시오의 얼굴을 위쪽으로 향하도록 바꿔놨다.[20] 지하에 먼저 온 자들이 만들어놓은 시설이 따로 존재한다.[21]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스티나 경당이 건설된 르네상스 시대는 이러한 전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