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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총화

총화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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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형3. 역사4. 방식5. 강도6. 사상투쟁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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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Life Review Session

북한의 주민통제 중 하나. 본래 '총화'라는 말 자체는 '모여서'(총화) 사람들과 토의를 한다는 것인데 현재 북한에서는 서로 감시를 하면서 고발하는 상호 감시 통제체제로 변질되었다.

조직생활 평가 자체는 다른 공산국가들에서도 하던 거라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는데 북한의 이 제도가 한발짝 더 나간 점은 다른 사람을 의무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 사회 구조의 특징이 철저하게 "감시의 감시"를 통해서 사회통제를 유지한다는 점인데 생활총화는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2. 어형

북한 정치에서 '총화'는 '업무평가'를 일컫는 데 사용된다. 원래 '총화'란 한국어에서는 '모음', '화합'의 의미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국민총화' 같은 말에서 보듯 화합을 명분으로 모든 정신을 국가(일본 제국)에 바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던 단어였다고 한다. # '총화와 단결'에서의 총화와 같은 단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의 화합이라는 본 의미와 반대로 실제로는 주민 서로를 이간질시켜 권력 앞에서 주민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Life Review Session이라는 번역 명칭은 대한민국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 '한영 북한인권용어집' 기준 표현이다. 링크 다만 해당 시간은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을 위시한 조선로동당의 규범체계에 맞게 생활했는지를 평가하는 시간'이므로 'Review Meeting of The Party Life(당 생활 사후평가 모임)'처럼 번역하는 것이 그 본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역사

김길선유튜브에 의하면 소련의 당원들과 청년동맹단원들이 월 1회씩 하던 것을 수입했던 것이라고 한다. 김일성이 1946년 함경북도 청진시로 시찰을 갔는데 그곳에서 참석한 어느 회의에서 김치구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사상이 어긋나면 자신의 아버지조차도 비판하는 것에 감명받아 김치구를 주요 지역에 정치위원으로 파견했다. 한 마디로 암행어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김정일이 후계자로 추대되던 1974년부터 여성연맹, 직능연맹, 소년단 등 모든 조직들이 생활총화를 하도록 강화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초창기엔 이틀에 한번씩에 유치원생과 주부, 환자, 은퇴한 노인들도 생활총화에 참여하고 해외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생활총화를 '보충'해야 했다고 한다. 다만 이틀에 한 번은 너무 빡빡하다고해서 일주일에 한번으로 변경되었다.

생활총화는 김일성 시대에는 철저하게 진행되었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사회가 파편화, 개인화되면서 많이 형식적으로 변했는데 그래도 중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면 참석해야 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김정은 시대에는 주민 불만을 수용해서 무작정 비판하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사례를 보고 배우자"는 추세라고 한다. 그래서 부담이 덜해져서 동네 친목모임 수준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北 “생활총화 비판 아닌 긍정적 부분 강조하라”, 속내는? 하술할 로동신문 기사에서도 "비판의 목적은 동지들 사이의 단결을 강화하고 맡은 임무 수행에 투신하도록 제때에 경종을 울려 도와주자는 것이지 결함을 범한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골라내어 우리 대오에서 내보내자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김정은은 2021년 제6차 세포비서대회, 청년동맹 제10차 대회에서 생활총화를 강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생활총화에 빠지지 말고 무조건 참가하며 특히 당생활총화에서 "자기비판과 호상비판(상호비판), 특히 밑으로부터의 올리비판[1]을 강화하여"라는 언급이 있는 것을 보아 극도의 강한 통제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3월 24일에도 로동신문에서 "비판은 혁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필수양식이며 당성 단련의 보약"이라고 주장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해당 기사에서는 "비판은 동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표시"로 표현하고 있다. #

4. 방식

탈북자들이 진행하는 "생활총화" 가상 재연 장면
북한 생활총화의 모든 것

총화 제도는 북한 사회에 조직적이고 뿌리깊게 내려박혔다. 단순히 거주지역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학교, 직장 등 소속단체에서 노동총화 등 다른 명목으로도 의무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학교, 직장, 군대에서도 당연히 이뤄지고 심지어 전업주부조차도 녀맹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 주 1회 실시한다. 소학교청년동맹[2], 녀맹[3], 직맹, 농근맹, 군대 등 모든 조직에서 시행하고 조선로동당원들은 또 따로 모여 엄격하게 실시한다. 애초에 청년동맹과 녀맹 간부들은 조선로동당원들로 이들이 총화를 주도하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한다.

직업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 1회, 월 4회로 진행하며 월말에는 월생활총화, 분기별로 1회, 거기에 상반기 하반기 각각 생활총화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마다 하는 생활총화는 보통 토요일에 진행하는데 북한에서는 남한의 2000년대 중반 이전처럼 토요일에도 출퇴근하거나 학교에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과 농장 사정이나 재량에 따라 토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에 하기도 한다.

주민통제의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생활총화 참석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불참한 경우 보통 사로청 여맹 규찰대가 집으로 찾아와 끌고 가 버리는 데다 불참이 많을 경우 로동단련대로 보내 6개월에서 1년간 정치범수용소 체험을 해야 한다.[4] 결국 본인과 가족을 위해 한 주에 한 번씩 조직생활에 강제로 참가하여 주변의 이웃을 고자질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철저하며 탈북 외교관 고영환과 김동수에 따르면 외교부장을 지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국가원수를 지낸 김영남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라 귀국시에 새파란 아들뻘 외무성 파견 로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에게 보고해야 하며 간부들은 분기별, 연도별 사업총화를 준비하여 중앙당과 상급조직에 보고하여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간부들은 개인차원의 생활총화뿐만 아니라 사업총화, 조직총화까지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과 그 가족, 유학생, 외화벌이 사업자도 대사관에 1주일에 1번 모여 생활총화를 하는 동시에 부문별로 사업총화를 하고 귀국 후 해당 직장이나 부서 로동당 파견 지도원에게 가서 "해외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식으로 당 과업을 수행했습니다"라고 보고를 해야 한다.

5. 강도

탈북자 학교 교사가 말하는 북한의 총화 장면

내용만 보면 매우 빡빡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듯 매주 진행되는 매우 빈번한 활동이기 때문에 매번 치열하게 서로 파고들면서 진행하면 피차 피곤하다. 총화에서 비판하거나 받는 내용도 사소하거나 뻔한 경우가 대다수인데 서로 비방하는 것도 수위 조절을 적당히 해 놓지 않으면 주민들끼리 서로 빈정이 상하거나 진짜로 싸움까지 벌어지기도 하는 등 사회생활이 매우 피곤해지므로 알아서 조절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설렁설렁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부 동네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주민들끼리 비밀리에 알아서 입을 맞추어가며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5] 어차피 마을의 어지간한 일들은 인민반장이 모조리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뭘 더 부풀리거나 숨기기도 어렵다.

학교에서도 북한은 입학하면 반과 담임 선생이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친해져 결국 친구끼리라도 그다지 강도도 높지 않으며 결국엔 서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반성하겠습니다"로 마무리하는 게 보통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이런 현상이 더 심해져 인민학교 코흘리개들까지 파철줍기(고철), 김매기, 고사리캐기, 다리보수, 인분 수거, 별의별 과제와 동원이 많아 학교수업이 개판이 될 때가 태반이라 어쩔 때는 총화 기록지만 대충 써놓고 했다고 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일성 부자 초상화를 닦는 '정성사업'가라로 하다가 먼지가 쌓인 것이 생활총화의 비판 안건으로 올라오기도 한다는 모양이다.[6] 다만 공부를 못하거나 몸이 약한 학급 친구가 표적이 되어 매주 혼나는 경우가 많아 학급 선생이 "아무개는 그만 됐으니 다른 애로 하라"고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물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비생산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여주기식 요식행위다 보니 자아비판까지는 그냥 대충 하면 되지만 상호비판은 그야말로 되지도 않는 꼬투리를 잡아서 해야 하고 비판이 시원찮으면 또 그걸 가지고 억지스럽게 지적을 당하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하는 것도 분위기가 좋을 때 얘기고 잘못 걸리면[7] 남한 드라마 시청이나 외제 물품 사용, 밀수, 중국과의 연락 등등 오늘날의 북한에서 거의 대부분이 하고 있는 행위나 개인의 사생활[8]조차도 바로 고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위험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다구리를 맞는 생활총화의 집중 대상이 될 때의 정신적 고통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한국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생활총화를 안 해도 된다!" 같은 점이라고 한다. 아무리 사소한 단체여도 행해지는데 어느 북한이탈주민은 식당 알바를 하게 된 첫날 일이 끝나고 "그런데 로동총화는 어디서 합니까?" 라고 물어봤다는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6. 사상투쟁

누군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일반적인 생활총화에서 한 사람이 여러 사람들에게 지적을 받아 문제가 불거지면 생활총화는 사상투쟁회로 바뀌게 된다. 규모에 따라서는 한개 군(郡)과 시(市)의 인원이 운동장이나 회관 같은 곳에 모여서 진행하기도 한다. 사상투쟁의 대상이 된 사람은 연단 앞으로 나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잘잘못을 지적당하고 비판을 받게 되는데 말만 사상투쟁이지 사실상 조리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당간부들의 생활총화는 일반 주민들과는 달리 늘상 엄격하고 진지하게 진행되는데 조직에서 지적을 많이 받아 사상투쟁 연단에 서면 생사가 오가는 위기로 숙청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출석은 당원인 이상 당연히 하는 것이고 전염병이라도 걸리지 않은 이상 기어서라도 나와야 하며 말 그대로 인민재판식 사상투쟁을 당하면 몇 주 동안 폐인처럼 혼이 나간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있는 유학생이나 해외 북한식당 역시 집중적인 감시의 대상이다 보니 보위부 간부들이 주도해서 상당히 살벌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북한의 사상투쟁을 경험한 인물은 전투기를 타고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이철수 대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예능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인터뷰로 밝힌 사실에 따르면, 8살 아이가 김정일에게 바칠 자두밭에 뿌려진 설탕을 몰래 먹다가 걸려서 공개총살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아무리 잘못했어도 어떻게 어린 아이를 그렇게 죽이는가? 이건 좀 너무한게 아니냐?"며 그 일에 대해 비판을 하였으나 그 믿었던 친구가 하필 부대에 있던 정보원(스파이)이였던지라 상부에 그대로 보고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철수는 부대원 70명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상투쟁을 당한 뒤 집단으로 왕따를 당하는 치욕스런 경험을 했다. 이철수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었던 듯한데 해당 인터뷰에서 수십년이 지났어도 억울한 감정에 치를 떠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데 그 공개총화가 한 번이 아니라 수년이 지나도 지속되었고, 감시도 귀순하기 직전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그것도 사격훈련을 하는데 보위원이 권총을 뽑아든 채로 감시를 하거나, 전투기 훈련을 할 때마다 무장 전투기들이 싹다 뒤로 붙어서 비행을 하고, 이 과정에서 "이철수가 이웅평 다음으로 귀순할거 같다"는 의심병에 가까운 억지를 내놓으면서 사상투쟁 강단에 다시 세우려고 시도하는 등 완전히 숨도 못 쉬도록 괴롭혔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도 없었고 이탈할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다. 결국 이철수는 "자신이 귀순한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북한에 남아있으면 곧 죽을 것이 뻔하니 살아남기 위해서 탈북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자기들이 등떠밀어서 왔지. 내가 오고 싶어서 왔나?" 라고 분노하는 심정으로 탈북을 선택했다고 한다.#

7. 기타



[1] 즉, 간부의 비리를 아래에서 고발하라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주민들의 불만을 수용하겠다는 말로 보이지만 사실은 내부고발을 통해 간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2] 중고생에서 30세 미만[3] 기혼 또는 30세 이상 여성[4] 정치범수용소/북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단 몇 개월이라도 가축 이하의 취급을 받으니 살아돌아오면 다행이며 기본으로 영양실조를 달고 나오게 된다.[5] 엄격한 형식에 집착한 나머지 내용은 적당히 넘어가는 현상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소련 붕괴 직전의 소련 사회를 묘사한 알렉세이 유르착의 저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에서는 매번 참석해야 하는 코뮌 모임에 친구랑 놀러나가려고 빠지는 과정에서 번지르르하게 형식에 맞춰 변명을 하는 것이 체화된 소련 주민의 모습이 묘사된다. 소련 체계가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과정에서도 이런 형식화는 너무나 완벽했던 나머지 소련 붕괴 당시 다들 '언젠가 무너질 줄은 알았지만 당장 오늘 무너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이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메시지이다.[6] 초상화에 먼지가 묻었다고 3대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다는 주장은 잘못 알려진 것으로, 안드레이 란코프가 말하길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이런 건 경미한 죄 정도로 취급한다고 한다.[7] 이는 그레이하게 스리슬쩍 넘어가는 분야들이 다 그렇다. 대충 슬그머니 넘어가다가 1번 단속이 들어오면 우수수 잡히는 식이다.[8] 특히 불륜 같은 도덕적 흠결은 물론이고 연애나 가족 챙기기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조국과 수령에 대한 충성보다 개인적 일을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사소한 말 실수도 바로 비판의 대상이 되니 오죽하면 북한 속담 중에는 '세 치 혀에 한 자 목이 달아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9]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정확히는 간접적으로 끌어냈다), 6월 항쟁, 박근혜 탄핵 집회 등이 있다.[10] 덤으로 크메르 루주는 려행증 비슷한 제도도 실시했다. 북한 이상으로 억압적인 독재를 펼친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와 1차 집권기의 탈레반도 생활총화는 전혀 도입하지 않았으며 특히 탈레반은 이동의 자유만큼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크메르 루주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오마주한 듯한 모습(캄보디아인들이 모두 크메르 루주의 보호를 받는 커다란 가족이라고 주장)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