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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박정희 정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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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작성하는 문서다.2. 사회·문화에 대한 평가
당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종인을 주축으로 한 교수단이 박정희에게 근로자 사회의료보험을 제안했고, 당시 경제팀의 반대에도 박정희는 이를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시행했다.[1] 1977년 500명 이상 사업장에 직장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었다.1960 ~ 70년대 당시 박정희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농·어촌 전화 사업은 전기 설치에 따른 농·어촌의 영농 기술 현대화, 경공업의 농·어촌 유치 증가 등의 경제적 효과와, 라디오와 TV의 대중 보급 등 문화적 효과는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생활수준 향상과 의식 구조의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또한 산림용 비료를 개발하여 무상으로 공급했는데, 일반 비료는 농민들이 농사에 쓸 것이 자명하기에 천천히 녹아나오는 완효성 비료인 고형복합비료로서 산림녹화에만 쓸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1962년 산림법의 제정으로 공식적으로 공인된 산림조합인 산림계를 마을마다 설립하게하여 연료의 자급자족을 시도하였고, 산림계원의 강화하여 조림사업을 독려하여 자조와 협동 정신을 배양을 기치로 정했고, 이는 곧 새마을운동의 전체의 정신이 되면서 산림계와 새마을부녀회를 통한 새마을운동=녹화사업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1966년 만들어진 것이 국내 최초의 국영 과학연구소인 KIST이며, 이후 과학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1967년 과학기술처 발족[2]과 과학기술진흥법이[3] 제정되었으며, 1971년에는 과학계 인력 부족을 해결하고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KAIST가 설립되었다. 이후 1970년대 동안 대덕연구개발특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수많은 과학기술 관련 인프라와 시스템이 설립되었다. 아직 보릿고개가 가시지도 않은 1960년대부터 빠르게 시작된 국가차원의 과학 기술 개발과 적극적 투자는[4] 향후 경제성장과 현재 대한민국의 과학경쟁력과 기술경쟁력 세계적인 수준까지 올라가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덕분에 과학계 원로들 사이에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인 편이며, 사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과학 관련 부분에 있어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5]
또한 공고 특성화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는 학교별로 국가가 필요시하는 부문별 산업의 특성에 맞게 전문화 시키는 것으로서, 특수 공고로서 지정되어 전문화된 공고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받으며 육성되었고 입학생들에게는 학비, 병역, 진로에 관련하여 상당한 특혜가 주어졌다.[6] 특수 공고는 기술의 종류에 따라 세부적으로 기계공고[7], 시범공고[8], 특성화공고[9]로 나누어졌다. 이러한 공고 특성화 정책은 1973년 4월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는 금오공고, 서울성동공고, 광주공고, 부산한독직업훈련원 등을 시범학교로 선정하여 시작되었고, 다음해 1974년 고교 평준화를 단행하여 인문계에선 대입의 열기와 버금가던 고입 경쟁을 철폐한 와중에, 실업계에선 특성화 정책으로 정부가 직접 1974년에 한해에만 특수 공고의 관련 설비에 50억 원을 투입하여 명문 공고로서 육성함에 따라 오히려 인위적으로 경쟁적 고입 체계를 신설했다. 특수 공고는 교육과정 또한 일반공고보다 상당한 내실이 있었고, 당시 함께 추진되고 있던 중화학공업화에 따라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술 인력의 수요가 공급을 아득히 초과하는 상황과 여러가지 특혜로 특수 공고의 졸업생들은 고급 인력으로서 취업을 100%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특수 공고는 당시 경제적으로 중하층 출신의 학생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고, 대부분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입학이 가능했기에 기술계에 있어 전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게 된다. 이후 70년대 동안 특수 공고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1979년 기준 전국의 93여개 공고 중 41개의 공고가 특수 공고로서 전문화되어 육성된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정부/평가/긍정적 평가/사회·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3. 안보·국방에 대한 평가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정부/평가/긍정적 평가/안보·국방 문서 참고하십시오.4. 외교에 대한 평가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정부/평가/긍정적 평가/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5. 경제에 대한 평가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정부/평가/긍정적 평가/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1] 김종인의 회고록인 영원한 권력은 없다#를 인용하자면 “‘왜 근로자만 해당하느냐’, ‘다른 복지 제도도 실시할 것이 많은데 왜 의료보험부터 해야 하느냐’는 등 남덕우, 신현확 장관 등 정부 경제팀 전체가 의료보험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했지만 박정희는 ‘정부 정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대학 교수도 이렇게 의료보험을 먼저 하라고 하니 복지연금 말고 의료보험부터 실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2] 1998년까지 과학 진흥 업무를 담당하다 이후 개편되어 과학기술부와 교육과학기술부로 이어졌고 2013년에는 미래창조과학부로 개편되었으나, 2017년 다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3] #.[4] 이러한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개발과 지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축에 속했는데, KAIST가 좋은 성과를 내자, 이를 벤치마킹한 연구중심 이공계 전문 대학인 일본의 JAIST와 홍콩과기대학의 설립일이 이보다 약 20년 늦은 1990년대였다.[5] 2021년 과학기술 관련 기업 CEO 등 임원 대상 200명을 대상으로한 역대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25.5%로 1위의 평가를 받았고, 2위로는 19.5%로 문재인 대통령, 3위로는 17.5%로 노무현 대통령이 차지하였다. https://m.dailian.co.kr/news/view/1045864.[6] 다만 그 대가로 병영생활과 다를바 없는 3년간의 기술교육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해야했고, 졸업 후에는 일정기간 동안 국가가 지정한 업체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강제성이 있었다.[7] 기계공고는 고도의 정밀가공능력을 갖춘 기계를 가공할 수 있는 정밀가공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정밀기계, 배관, 금속, 전기, 용접, 공업계측 등 전공 분야가 있었다.[8] 시범공고는 중동 진출에 필요한 기능공 중 기계조립, 판금, 배관, 제관, 전기공사 관련 인력의 배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중동 건설 진출을 담당했던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은 이들 학교들과 산학(産學)협동을 맺어 양성 기능사들에게 1인당 20만 원씩의 운영비와 실습재료비를 제공했다.[9] 특성화 공고는 전자, 건설, 금속, 제철, 화학, 전기 등 특정 분야의 기능 인력 양성을 위해 지정된 학교였다. 이들 학교 역시 기계공고와 거의 동일한 혜택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