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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의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이다.2. 의복
자세한 내용은 델(의복) 문서 참고하십시오.3. 음식
자세한 내용은 몽골 요리 문서 참고하십시오.옛날부터 유목을 했기 때문에 요리들도 고기와 유제품이 많은 편이다. 옛날에는 아예 주식 자체가 신선한 말고기, 양고기[1]와 유제품들이였는데, 이때 당시만 해도 몽골인들은 계절에 따라 수시로 이동해야했고 양이나 말을 치는 것이 생각 외로 고된 일이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은 데다가, 대체로 싱겁게 먹어서 육식 위주의 식사에도 대체로 건강했지만,[2] 몽골의 도시인구가 늘어난 이후에도 도시 지역 사람들이 이전의 식습관을 유지하고 자극적인 음식들도 많아지는 바람에 비만율이 급증하여 사회문제가 되었고, 덕택에 채소와 과일을 서서히 먹기 시작하는 중이다. 대체로 당근 같은 뿌리는 옛날부터 잘 먹었지만, 풀잎이나 줄기류 식재료는 사람이 아닌 말이나 양들이 먹는 것이란 인식이 있었어서 잘 안 먹었던 편이다. 또 홍차와 우유차를 함께 마신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젓가락 대신 포크를 주로 쓴다. 물론 과거엔 몽골도 젓가락 문화권에 속했고 젓가락에 대한 예절까지 존재했다.[3] 그러나 근대 이후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젓가락 사용이 줄고 포크 사용이 늘게 되어 지금은 젓가락을 거의 쓰지 않고 포크를 쓴다. 그나마 내몽골 자치구의 차하르인이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오이라트인 같은 몽골계 중국인들 사이에서 몽골족의 젓가락 문화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 유학 온 몽골 학생이 포장지에 새우가 그려진 새우깡을 먹는 한국 학생을 보고 "벌레가 함유된 과자를 먹는다"며 경악했다는 일화도 있었다. 물론 옛날 얘기로, 내륙지방이라 해산물을 별로 접하지 못해서 그런 것[4]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시내 식당이나 마트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산물이나 새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잘 먹는 사람들은 잘만 먹는다. 울란바토르 시내 노점상에서도 새우 꼬치 등을 팔며, 심지어 살아있는 생선을 수조에 넣어서 파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새우를 꺼릴 수는 있어도 마치 새우가 뭔지도 모르는 것처럼 오버하며 경악했다는 썰은 몽골에서도 저 어디 시골에서 온 소수자거나 아니면 21세기 이전 옛날 일화일 가능성이 높다.
어류는 당연히 먹을 줄 안다. 내륙이라 바다에서 나는 것 자체를 잘 먹진 못하는 환경이지만, 호수와 강에서는 타이멘 등 각종 어류가 서식하기 때문에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은 생선을 잘 먹는다. 몽골 최대의 호수 훕스굴 호가 있는 훕스굴 지방에서는 호수 물고기를 통째로 구운 것과 잼 병에 넣어 삭힌 것처럼 보이는 음식이 특산물이다. 서나래, 김진, 필냉이, 이렇게 웹툰 여작가 셋이서 몽골 여행을 갔을 때도 현지인 길라잡이는 훕스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그 자리에서 요리해준 걸 맛있게 먹고 다같이 먹는 내용이 나온다. 다만 과거에는 확실히 어류를 그닥 고급 재료로 취급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칭기즈 칸이 젊었을 때 아버지가 죽고 부족이 붕괴되어 거지꼴이 되자, 물고기를 잡아 먹던 일화가 당시의 비참함을 상징하던 일로 통할 정도.
4. 음악
몽골의 전통 악기로는 머릉 호르(морин хуур)가 있으며, 이는 한국어로 마두금이다. 현악기인 야특, 텁쇼르, 관악기인 에웨르 부레, 림베가 있다.흐미(Хөөмий)라는 독특한 전통 창법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대기관을 단련시켜 한 사람이 여러가지 목소리를 내게 하는 창법이다. 주로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근현대 들어와서는 러시아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90년대 민주화 이후로는 미국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한국 노래도 많이 참고하는 모양.
몽골 전통 악기와 흐미를 메탈과 결합시킨 포크 메탈 밴드인 The HU의 Yuve Yuve Yu.[5]
몽골의 현대적 모습 중 하나인 몽골어 갱스터 랩. 노래 제목은 Буруу газар зөв цагт(Buruu gazar zuv tsagt). 부른 그룹의 이름은 Click Click Boom.
이쪽 곡은 몽골 + 부랴티야 공화국의 웬만한 래퍼들이 모여 만든 Az Jargal[6]이다. 몽골에는 래퍼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몽골과 부랴티야 래퍼들이 상당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5. 영화
자세한 내용은 몽골 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6. 스포츠
6.1. 농구
추위 등 기후적 원인으로 실내 스포츠 종목이 주로 많이 이뤄지고, 그중에서도 곧잘 하는 편이던 농구가 구기 스포츠 중에선 가장 인기를 얻고 있다.남녀 모두 대학리그, 자국 프로리그를 갖추고 있고 외국인 선수도 뛰고 있을 정도로 기본 구성이 탄탄한 편이다.
농구 실력 자체는 그닥 내세울건 없지만, 그래도 축구 등 다른 구기 종목보다는 훨씬 잘한다. 특히 한국에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3X3 농구는 아시아 선두권이다. 심지어 2022년엔 FIBA에서 U23이긴 하지만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2017년 자국에서 열린 3X3 농구 아시안컵에서 남자 우승, 2018, 2019 대회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8 대회 결승에서 호주에게 16-17로 아쉬운 패배였지만 2018 대회는 9-21로 완패했다. 이 대회는 코로나 19 여파로 대회가 중단되었다가 2022년 싱가포르에서 열렸는데 조별리그에서 몽골은 한국을 19-12로 이기며 조별리그 1위로 8강에 올라갔으나 필리핀에게 20-21로 분패해 탈락했다.
여자 대회도 201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대회에서 준우승 1번을 거뒀다. 2022년 싱가포르 대회에서 조별리그 1위로 8강에 올라갔으나 준우승한 호주에게 8강에서 10-21로 참패했다.
2018 아시안 게임에서 첫 정식종목이 된 3X3 농구에선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대만에게 패해 토너먼트 진출은 실패하고 21개국 참가국에서 전체 순위 12위에 그쳤다. 그래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가 한국을 제치고 동메달을 받았고 여자는 홈팀 중국에게 아쉽게 져서 은메달을 받으며 3X3 농구 2022 아시안 게임에서 남녀 모두 메달을 받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농구에서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농구에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농구 7위를 거둔 몰디브를 112-54로 이겼고[7] 농구를 좀 하는 편인 요르단까지 83-74로 이기며 2차 토너먼트를 넘어섰다.[8] 비록 한국에 67-90, 중국에 67-108, 이란에 69-107 같이 강호들에게 참패를 면치 못했으나, 그나마 농구 다음으로 인기가 있는 구기 종목인 축구에서 그야말로 동네북인 걸 생각하면 농구는 아시아 중위권 성적 정도는 된다.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참가국 16개국에서 8위를 차지했다.
2018 아시안 게임에서는 태국에게 아쉬운 86-87, 1점차 패배를 당해 남자농구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인도네시아를 이겼지만 승자승에서 몽골이 밀려 인도네시아가 8강에 올라갔기 때문. 전체순위는 13개국 가운데 10위. 여자농구는 15개국 가운데 12위로 마무리했다. 2022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농구는 16개국 중 14위, 여자 농구도 13개국에서 10위로 마무리했다.
박성근 전 성균관대학교 감독이 2005년부터 5년 간 몽골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6.2. 축구
실외 스포츠 분야는 아무래도 기후 탓에 영 잼병이다. 축구가 그래도 개중에선 인기가 많지만, 세계적인 최약체이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0:15로 대패당하면서 역대 아시안 게임 축구 실점기록을 현재까지도 가지고 있다. 몽골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고할 것.몽골은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가 들이닥치고 여름은 상당히 더우며[9], 봄에는 거친 바람과 황사까지 닥쳐 제대로 축구 경기를 치르기 어렵다.
덕분에 국내 리그인 몽골 내셔널 프리미어 리그[10]가 겨우 7월부터 9월까지 단 2달 동안 치러진다. 모두 10팀으로 구성된 리그에선 9, 10위가 다이렉트 강등. 8위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에르침(ERCHIM)과 호르무혼(KHOROMKHON)같은 구단들이 우승을 주로 차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2년이 되어서야 AFC프레지던트컵에 겨우 참가할 수 있었을 정도.
추위와 더위 문제로 지장을 받던 국제대회 예선 등을 치르도록, FIFA의 지원을 받아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2010년대 들어 전천후형 돔 경기장을 만들었는데, 에어돔이라는 일종의 풍선 같은 구조이다. 유지비 문제로 흔히 생각하는 돔 경기장은 불가능에 가깝고, 혹독한 혹한기에 훈련을 하거나, 불가피하게 잡힌 국제대회 예선의 홈경기 혹한기 일정을 소화시키는게 목적인 시설이다.
국제경기를 주로 내셔널 스포츠 스타디움(몽골 최대 종합 운동장, 관중석 수용 인원 12,500명)이나 MFF 풋볼 센터(축구전용구장, 관중석 수용인원 5,000명)에서 치른다.
한편, 2015년부터 2부 리그격인 몽골 퍼스트 리그가 출범했다. 총 10팀으로 구성되어있으며 1, 2위팀은 다이렉트 승격, 3위는 내셔널 프리미어리그 8위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6.3. 야구
몽골 야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아시안게임에 가끔 참가하며 자국 내에선 존재감이 희박한 편이다. 몽골 일반인들은 야구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비주류 종목이다.6.4. 개인 격투 종목
후술되어있지만 몽골식 씨름인 부흐가 인기가 있고 잘한다. 때문에 부흐 등으로 단련된 혹은 진짜 부흐 선수 출신 몽골인들이 스모나 유도, 레슬링 등의 개인 격투종목에 나가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21세기 일본의 스모대회는 아예 몽골인들이 장악했을 정도로 압도적. 21세기에 접어든 이후로 나온 4명의 요코즈나(아사쇼류[11], 하쿠호[12], 하루마후지[13], 카쿠류)가 몽골인이었다. 물론 수가 많은 만큼 사고도 많이 쳐서 아사쇼류는 부상 핑계를 대고 몽골에서 축구를 하다가 일본 언론에게 1달간 씹혔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복싱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함상명 선수를 비난했다가 한국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이는 아무래도 기후 탓에 실외 구기종목은 제대로 된 훈련이나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것과 달리 실내경기장에서 치르는 이 종목들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도 있다. 몽골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방계 몽골리안은 대체로 몸집이 크고 전통적으로 육식 위주의 식문화가 발달하여 소위 말하는 장사형 체형[14]이 상당한데다가 팔다리가 길어 근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게다가 추운 날씨 때문에 지방이 잘 붙는 체질이 많아 비슷한 양을 먹어도 증량이 더 잘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체중이 곧 파워로 작용하는 스모나 씨름같은 레슬링 계열 종목에서는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하며 반대로 유연성이 중요한 농구나 축구 등의 구기종목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시안 게임에서도 몽골인 금메달리스트가 유도와 레슬링에서 여러번 나왔다. 여담으로 몽골 유도 발전에 일본도 아닌 한국이 기여한 부분이 있는데, 한국인 코치를 초빙하고 경기장 시설이 열악한 탓에 한국 가서 훈련받은 몽골 선수들이 2000~2010년대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과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제법 받았다. 일본에선 아시안 게임에서 자국 유도 유망주가 몽골 선수에게 패해 중도 탈락하자 한국을 비꼬는 기사를 실은 적도 있었지만, 일본에도 유도나 실내 종목 연습을 하러 몽골 선수가 가기에 제 얼굴에 침뱉기일 뿐이다.
몽골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도 유도에서 나왔다. 유도 선수 나이단 투브신바야르(Найдангийн Түвшинбаяр)는 2008년 남자 100kg 금메달리스트, 2012년 동 체급 은메달리스트이다. 다만 그는 어려서부터 유도를 해오던 선수가 아닌, 몽골 씨름인 부흐를 하던 선수였다. 덕분에 올림픽에서도 부흐 기술을 응용한 하체 공격 위주의 유도를 보여주었으나, 다리만 잡고 넘어뜨려서 치사하다는
여담으로 몽골에 이란 출신 망명 유도 선수 사에이드 몰라에이가 있다. 2018 세계 유도권 선수대회 남자 금메달을 받았던 몰라에이는 이란 정부가 강압적으로 자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이스라엘 출신 선수들과의 대결을 거부하도록 명령하고 있었던 걸 폭로했다. 그는 2019년 8월에 독일에서 2년짜리 비자를 받으면서 유럽으로 건너갔다. 독일에서 그의 망명을 받아주기로 했지만 그는 독일이 아닌 몽골을 선택해 2019년 12월에 몽골 시민권을 얻었으며,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유도 은메달을 받았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몽골은 은 1개, 동 3개를 받았는데 몰라에이가 은메달을 받은 것. 그는 "몽골과 이스라엘을 위한 응원"이라며 "스포츠에 국경은 없다"라고 이란 정부를 비난했다.
권투도 잘하는 편이다. 몽골 2번째 올림픽 금메달이 권투에서 나왔는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엥흐바팅 바다르오강이 받았다. 엥흐바팅 바다르오강은 2012 런던 올림픽도 참가하려고 했으나 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쳐서 은퇴해야 했고, 몽골국가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레슬링도 꽤 잘한다. 올림픽 은메달까지 받은 적도 있다. 한국이 8.15 광복 이후 첫 금메달 획득한 것도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 선수) 바로 몽골 선수를 상대로 이겨 얻어낸 것이다.[15] 그 밖에 국제레슬링 대회나 아시안게임에서도 꽤 상위권 성적을 거두고 있다.
또한 옆동네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삼보도 꽤 잘하는 편이며, 삼보 세계 선수권 선수들도 많고 유소년 삼보도 발달되어 있다. 종합격투기에서의 성적이 좋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 입식이나 종합격투기에서도 간간히 좋은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단, 인프라가 열악한 것이 흠. 성공하는 선수들은 대개 해외에 정착해 급성장하는 경우다.
6.4.1. 부흐
매년 7월에 열리는 몽골 최대 스포츠 축제 나담 축제(эрийн гурван наадам,Naadam Festival)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몽골식 씨름인 부흐(Бөх)이다. 여담으로 나담 축제는 몽골 기마병과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주민들의 행진으로 시작되며, 열띤 스포츠 경기 외에 몽골 전통 음악 공연, 음식과 공예품 판매 등이 함께 이뤄져 몽골의 전통과 문화가 집약된 축제인데 기마, 활쏘기 등 고유 놀이를 한번에 다한다. 부흐나 활쏘기, 기마에서 우승하면 후한 상금에 명예를 누리기에 인지도가 높다.나담 부흐에서 우승한 씨름선수는 '아와르가(Аварга)'라고 불리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더불어 부흐는 일상 유목생활에서도 가장 흔하게 즐기는 스포츠이기에 이를 이용하여 스모나 레슬링 선수 등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스모 챔피언이 더 경제적으로 큰 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인지 주로 스모로 많이 진출한다. 스모에선 몽골 출신 역사들이 여럿 있고 상술되어있듯 요코즈나도 많이 나왔다. 2010년대부터는 한국 씨름 대회에도 몽골인 선수가 등장하는 등 부흐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6.4.2. 밴디
아이스하키와 유사한 동계스포츠 밴디를 그나마 좀 하는 편이다.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 해당 종목 은메달 획득. 사실 카자흐스탄(금메달), 키르기스스탄, 몽골 이렇게 3개팀이 출전해서 그 중에 2등한 것이라 잘한다기보다 아시아에선 보기 드물게 이 스포츠를 즐기는 나라이다.[16]6.5. e스포츠
일반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APAC)-동아시아권[17]에 포함돼있다. 인근 러시아, 중국이 e스포츠가 활성화돼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고 2010년대부터 여러 무대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FPS에서는 몽골인이라는 말이 '시력이 좋다'라는 이미지도 있어서[18] 에임이 좋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인터넷상의 PUBG, 발로란트 등 매드무비에선 몽골인이라는 말이 극찬으로 취급된다(...). VCT에선 아직 몽골인 선수가 뛰고 있지는 않다.CS:GO에서는 한때 동남아가 잘 나갈 땐 약소국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성장하면서 현재 아시아 내에선 중국을 넘어선 CSGO 아시아 최강국에 위치해있다. 아직 서양팀에 대등한 경기력을 갖추진 못하고 있지만 국제대회에 선수를 꾸준히 보내고 있으며 외국으로 나간 선수들이 큰 활약을 하면서 국제 대회에서의 아시아 성적을 높이는 데 공을 세우는 일도 자주 있다. 몽골 플레이어 중 가장 유명한 Machinegun은 아시아 최강 중 하나였던 The Mongolz에서 활동했고 미국의 Splyce에 이적해서 북미로 진출하기도 했는데 이건 아시아권에서 서양권으로 최초로 진출한 케이스이다. 현재 몽골 내에서 CS:GO 최강팀은 IHC Esports로, IHC 외에도 여럿 팀이 존재하며 2023년 기준 거의 유일한 한국 CS:GO 프로선수인 이현표(닉네임 XigN) 또한 몽골인이 다수인 Team NKT에 소속되어있다.
스타크래프트 2 몽골 선수인 Sioras가 WESG 2017년 일본을 누르고 아시아태평양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최종예선 12강에서 케유펑에게 0대3으로 완패를 당했으나, 본선 진출전에서 싱가포르의 게이머 Elusory를 3대0으로 누르며 WESG 32강 본선 무대에 진출한다.
7. 언어
자세한 내용은 몽골/언어 문서 참고하십시오.몽골은 몽골어가 공용어이지만, 몽골내엔 위구르인 등 여러 소수민족도 거주하고 있어서 각 언어가 쓰이기도 한다.
8. 종교
몽골은 전통적으로 텡그리(Tengri) 사상을 중심으로 한 샤머니즘을 신봉하였다. 이는 몽골 제국 시절까지 이어졌으며 특별히 다른 종교를 편애하거나 탄압하지도 않았다.▲ 몽골 최대의 절인 간단 사원의 법당. 높이 26m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금동불상이 안에 모셔져 있다.
과거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기도 했지만 현대에는 과반수 이상의 몽골인들이 티베트, 부탄 등과 같은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과거 몽골 제국의 영향으로 힌두교가 유입되었으나 현재는 인도 이주민 이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8.1. 샤머니즘 신앙
몽골 제국 이전부터 몽골인들이 가졌던 텡그리 신앙은 지금도 몽골에서 불교 다음으로 영향력이 크다. 도시를 벗어나 변방으로 나갈수록, 소수 부족일수록 샤머니즘을 믿는 성향이 강하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토착 신앙과 융합된 것도 있는데, 예를 들어 게르의 한켠에 불단을 두는 것은 본래 샤머니즘적 우상을 배치하던 것이 불상으로 대체된 것이다.8.2. 불교
몽골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흉노족이 몽골초원을 지배했던 기원전 1세기부터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이를 부정하지만, 기원전 3세기부터 비단길과 초원길을 따라 전해진 불교는 중국이 서역이라고 불렀던 중앙아시아로 전해졌고, 이들 지역과 활발하게 교역했던 흉노족 일부도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몽골 일대에서 발견된 당시 불교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흉노족, 선비족, 돌궐족, 거란족 등 몽골초원 지배자들의 흥망으로 명맥이 끊겼던 불교가 국교화된 것은, 칭기즈 칸의 손자로 13세기말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 때부터였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에 멸망되기 전까지 원나라 내에는 4만여 개가 넘는 절과 20만 명이 넘는 승려가 활동할 정도로 불교 영향력은 막강했고 그 중심에는 티베트 불교가 있었다. 원나라 승려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은 파스파였다. 티베트 불교 승려였던 그는 제국의 불교계를 지배했고 티베트 문자를 기본으로 파스파 문자를 만들기도 했다. 14세기 말 원나라가 멸망하고 초원으로 물러간 몽골족은 불교로 인해 제국이 멸망했다는 이유로 이전 신앙인 샤머니즘으로 돌아갔다.
몽골 지역에서 불교가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말 몽골 초원을 지배한 알탄 칸이 티베트 접경인 칭하이성 일대를 공격하면서부터였다. 티베트 고승 소남 갸초를 만난 알탄 칸은 그의 법력에 감탄해 달라이 라마(지혜의 바다)라는 칭호를 선사했고 소남 갸초 역시 알탄칸을 칭기즈칸 집안의 후계자로서 권위를 부여했다. 알탄 칸의 비호 아래 티베트 불교는 몽골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지배 하에서도 불교는 더욱 확산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전 몽골의 수령들이 모여 모든 귀족 가문에서 아들 하나는 라마승으로 출가시키기로 합의했다.
몽골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당시에는 청나라 조정에서 몽골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승려들을 지원했고 불교의 정치·경제적인 영향력이 커지자 많은 몽골인이 승려가 됨으로서 19세기 말엽에는 성인 남자의 절반 이상이 승려가 될 정도였다. 한때 초원을 지배했던 몽골 남성들이 승려가 되고, 사원을 중심으로 한 정착이 이루어지면서 몽골인의 상무정신과 기상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지금의 몽골 지역에만 4천 개 이상의 사찰이 있었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붕괴하자 불교 지도자인 복드 칸이 몽골 최고통수권자이자 법왕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1924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몽골 불교는 거의 뿌리가 뽑힐 정도로 암흑기를 맞이했다. 처음에는 복드 칸을 군주로 인정해주었지만 1930년대 들어서며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몽골 인민혁명당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간주하고 불교는 물론 전통 신앙인 샤머니즘도 철저히 탄압했다. 1930년대 허를러깅 처이발상 시대에는 약 1만 7,000명에 달하는 승려들이 처형당하거나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거의 모든 사찰이 폐쇄되었다. 공산당의 불교 정책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1940년대 초까지 몽골에는 공식적으로 단 1명의 승려나 신자, 절도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1950년대에 불교에 대한 탄압이 완화되었음에도 1980년대에도 몽골인 대부분은 자신들이 무신론자 또는 무종교인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찬란했던 몽골 불교의 유산이 소련으로 넘어가면서 오늘날 러시아의 불교 연구가 상당 수준에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몽골도 동아시아 국가인 만큼 오늘날에도 무종교인들은 적지 않다. 일단 몽골인의 3명중 1명은 무종교인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종교는 대체로 유목민들이 믿고 있으며 울란바토르에는 무종교인들이 많은 편. 명목상으로는 불교도이지만 사실상 무종교인에 가까운 삶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 몽골도 무혈 민주혁명이 성공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티베트 불교가 국교처럼 존중되면서 많은 사찰이 복원되었고 승려 양성기관을 통해 많은 승려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1990년 민주화 혁명 이후 집권한 오치르바트는 취임과 동시에 소련으로 실려 간 간단사 관음전의 관음보살상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불사를 추진했고 몽골 국민 대부분이 보시했는데 그 열기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몽골 불교는 티베트 불교(주로 겔룩파)의 영향으로 달라이 라마를 여러 차례 초청해 대규모 법회를 열고 개별 가정에서도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나 조형물을 모셔놓은 경우가 많다. 승려들의 경우는 소련 지배 시절 강제결혼정책의 영향으로 독신인 비구승(Gelon)과 결혼한 대처승(Genen)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신의 근기에 따라 결정할 수 있고, 가문을 이어야 하는 독자들은 승려가 되더라도 대처승이 되어야 한다.
비구승도 한국의 스님들처럼 절 안에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이나 제도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절에 가고 저녁 때면 퇴근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가족들과 지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몽골의 불자들은 절에 가는 것보다 스님들의 집으로 찾아가 축복을 받거나 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다. 승려 대부분이 세속과 분리되지 않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유흥업소나 극장을 자주 가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몽골인들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비구승인 티베트 고승들이 몽골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고 비구승들이 우대를 받으면서 몽골의 승려 사회가 조금씩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8.3. 기독교
8.3.1. 가톨릭
몽골 가톨릭의 기원은 13세기 원나라 때 몬테코르비노 신부의 선교활동이 처음이었으나 ,1368년 원나라의 붕괴로 소멸되었다.소련이 무너지면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경제가 갑자기 무너지자 몽골 정부는 서방 세계와의 교류와 지원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교황청에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1992년 교황청이 몽골 정부와 수교를 시작하였다. 주한교황청대사관 산하 지목구로서 한국 가톨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몽골 교회를 돕는 대표적 교구이며, 총 68명의 외국인 선교사들 중 한국인 선교사는 23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현재 본당 수는 6개다. 4개 본당은 수도 울란바토르에, 2개 본당은 다르항, 우르항가이에 있다. 이외에도 5개 공소가 있다.
몽골 가톨릭교회에서 중요한 사업은 버려진 아이들, 노숙자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선교사를 초청하였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오히려 외국 종교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따라서 종교 활동을 교회 건물 안으로 제한하였고, 아직도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활동에는 추방'이라는 강한 제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형식상으로나마 종교의 자유가 있긴 하지만, 몽골 여론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또한 몽골인들은 신에 대한 종교성은 있지만 동방의 여러 나라처럼 기복신앙적인 면이 강하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누군가 아플 때, 죽을 때 신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몽골인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자신이 힘들 때 찾는 신’으로만 받아들이는 수준이다. 그런 면에서 매주 주일 및 의무대축일 미사 참례가 의무인 가톨릭을 이해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한편 2016년 8월 28일 몽골인 최초의 사제가 서품되었다. 바타르 엥흐 (요셉) 신부는 한국의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고 2015년 부제품을 받았으며, 2016년 8월 28일 사제품을 받았다. 몽골 대목구장 웬치슬라오 파딜랴 주교의 주례하에 유흥식 라자로 주교, 교황청 한국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사와 몽골 내 선교사, 대전교구 성소국장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신부 등이 참석하였다.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에 몽골인 신학생 1명이 재학중이며, 대전가톨릭대에 진학할 예정으로 논산대건고등학교에서 재학 중인 학생이 1명 있다.
2023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최초로 몽골을 사목 방문하였다. 신자수 1,500명 남짓의 소규모 지역에 이례적으로 찾은 것.
8.3.2. 정교회
정교회권인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교회는 가톨릭 교회에 비하여 몽골 내에서 의외로 역사가 짧다.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냉전 시절에조차 몽골과 소련의 국가 무신론 탓에 러시아어권의 정교회가 몽골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몽골 민주화 및 소련 해체 이후 몽골이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 연방과 새롭게 국교를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정교회가 몽골로 전파되기 시작했다.8.4. 이슬람
몽골 내 카자흐족[19], 위구르족[20], 타타르족[21], 튀르키예인[22] 등 튀르크계 소수민족들은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다.9. 유목 문화
20세기까지도 유목 생활이 이어지던 지역인 만큼 목축업을 하고 게르(Ger)에 살면서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는 유목민들이 많았다. 21세기 들어선 유목민의 수는 많이 줄었지만 가축의 수는 늘어난 것으로 통계되고 있다. 몽골의 카자흐 유목민들은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 검독수리를 길들여서 늑대를 사냥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유목민들은 먼지가 많고 건조한 날씨를 견디는 방법 중 하나로 코담배를 한다. 진짜 담배가 아니라 향초와 약초 등을 섞어 만든 향유의 일종으로 손가락이나 손등에 발라 콧 속에 흡입하거나 바른다. 코담배는 찻잎을 넣어 끓인 우유차인 수테차와 함께 손님에게 제일 먼저 권하는 접대 중 하나이며,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만약 손님도 코담배를 가지고 있다면 서로의 코담배를 바꾸어 나누며, 아울러 손님 접대시 내온 음식 역시 남김없이 먹는 것이 전통 식사 예절이지만 현재는 많이 완화된 상태라고 한다.
현재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서 유목을 하는 이들은 소수가 되었으며 인구의 절대 다수는 도시민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몽골 이야기가 나오면 열에 아홉은 초원에서 양 치고 염소 젖 짜먹고 '게르'에서 거주하는 장면이다보니 지금도 몽골하면 유목 생활과 게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긴 하다.[23] 허나 실제로는 몽골도 이미 도시화된 지역이 많고, 상대적으로 '촌'이 있을 뿐이다. 많은 몽골인들과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국내 언론이 몽골의 발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24] 다만 현재도 게르에 사는 사람은 많다. 휴가철때 별장 용도로 게르를 소유하는 경우도 많지만[25] 무엇보다 울란바토르의 집값이 비싸다보니까 돈이 모자라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도시로 온 유목민들 입장에선 게르에서 사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하다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없어서 개발이 안된 땅이 널려있다보니 가능한 현상이다. 다만 도시 인프라는 당연히 이런 게르촌을 상정하지 않았다보니 수도나 전기 문제 등 탈이 많은 모양. 달동네마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지만, 어찌됐든 지금도 빈민층들은 게르에서 사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런 이촌향도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프로그램으로 몽골판 1박2일(?) "도시 아들"이란 예능프로가 있다. 2016년 몽골에서 가장 인기있는 예능이었으며, 컨셉은 1박 2일과 비슷하게 도시(울란바토르) 출신 몽골인이 몽골의 각 지방을 돌며 게르에서 먹고 자면서 전통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연기자(예능인)가 아닌 PD가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 다를 뿐.
10. 건축
게르의 이미지가 커서 천막만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몽골의 궁전, 절들도 다른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건축물처럼 기와를 사용한다. 복드 칸 겨울궁전, 초이진 라마 사원이 대표적인 예. 중국, 티베트 건축과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에르덴 조 사원, 간등 사원이 대표적인 티베트식 건축물이다.
또한 수도 울란바토르를 비롯한 몇몇 주요 도시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지어진 흐루쇼프식 아파트도 꽤 많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도시의 형태 및 분위기는 러시아와도 꽤 흡사한 편이다. 다만 21세기 들어 신시가지는 한국식 아파트촌이 제법 들어섰다.
한편, 위 사진에 나와 있는 건축물은 울란바토르에 있는 몽골에서 가장 높은 호텔(105m)이다. 과거 이곳에서 활동하던 한국 사업가가 지은 건물이라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건축 양식인 커튼월 유리로 마감처리를 해 놓은 것이 보인다.
11. 성 문화
유목민 출신이라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성 문화가 개방적인 편이었다. 허나 이게 좀 과장되어서 오늘날에도 왈가왈부가 있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엔 본인이 몽골 지역에 갔을 때 부인을 빌려주는(...) 풍습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는지 확대되어 재생산되는 바람에 개방을 넘어 문란하다는 오해도 받았다. 일부 오지의 이누이트들이 고립된 지역의 근친결혼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던 풍습이 있는 것과 달리 이쪽은 주거구역도 여성 구역, 남성 구역을 나누기에 그런 거 없다.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개방적인 성 풍속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것과 문란함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몽골 정부는 2007년부터 성매매 단속법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보여주기 식인지 크게 단속하진 않아 실질적인 효과는 적다는 말도 있다. 연애 문화도 러시아처럼 동거가 흔한 편이고, 이혼도 흔하지만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론, 성에 대한 관념이라는게 어느 지역이든 개인차도 커서 누군 보수적일 수도 있고 누군 개방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1] 다만 가축이 곧 재산이기 때문에, 늙어 죽기 전의 가축이나 겨울철을 앞둔 것이 아닌 이상은 유제품 위주로 먹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양꼬치를 잘 먹는 사람들도, 몽골의 양고기는 주로 성체 양을 사용하기에 누린내가 심해 못 먹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어린 양을 잡기 때문에 누린내가 덜 나는 것인데 만약 몽골로 가서 어린 가축을 잡자고 말하면 몽골인들은 '오래 산 것을 안 잡고 왜 어린 걸 잡아?'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2] 다만 이건 소금과 향신료가 구하기 쉽지 않거나 구하려고 해도 비쌌기 때문이다.[3] 예를 들자면 남자들은 외출할 때 항상 담뱃불 붙일 부싯돌과 칼과 함께 젓가락을 챙겨가야 했다. 또 젓가락을 놓을 때는 절대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놓아선 안 된다는 예절이 있었다.[4] 이건 내륙국가, 게다가 수출입이 잘 안되는 폐쇄적인 국가일수록 더 그러기 쉽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의료 봉사를 하러 간 종교 봉사단체 JTA측이 겪은 일화인데 새우 사진을 보여주자 아프가니스탄 오지 사람들은 이런 벌레를 먹냐고 어이없어 했다는 반응을 똑같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륙국이 아니라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인도 여행 간 배낭여행자가 말린 새우를 가져가 먹자, 인도 사람들도 벌레를 먹냐며 어이없게 반응했다는(다만 여기도 바다와 멀리 떨어진 지역) 일화가 있다.[5] "무엇이냐?"라는 뜻으로 가사 전체가 현재 몽골인의 근거 없는 자신감, 자국 내 타민족에 대한 차별 등을 까고 있다. 유튜브 조회수 1억을 돌파한 영상이다.[6] 행복이라는 뜻이다.[7] 2003년 축구에서 몰디브에게 0-12로 참패한 몽골이다. 뭐 몰디브가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16위 꼴지이긴 했다.[8] 더불어 4년전 이 대회에서 요르단에게 패했던 걸 설욕했다.[9] 그래도 습도가 낮아 제법 선선하다. 기온적으로도 한국보단 낮다.[10] 니슬렐 리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11] 최초의 몽골인 요코즈나. 일본으로 유학 가서 하쿠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역대 요코즈나들 중 최고 승률과 우승률을 자랑하며 일본 스모판에 혁명을 선사한 리키시이다.[12] 90%에 가까운 승률과 역대 요코즈나들 중 압도적인 우승률을 가지고 있는 현역 리키시.[13] 스모선수 중에서는 체중이 가벼운 편이다.[14] 쉽게 예를 들면 강호동, 마동석 같은 체형. 다만 키는 작은 편이다. 주륵.[15] 당시 레슬링은 경기를 치르면서 전적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선수들이 차례로 탈락하고 마지막 3명이 남으면 리그를 통해 1-3위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사실은 양정모 선수는 몽골 선수를 이긴 게 아니라 그에게 졌다. 그러나 최후 3인의 리그와 그 앞 경기를 종합한 결과로 인해 양 선수가 1위, 몽골 선수가 2위가 된 것이었다.[16] 국제 밴디 스포츠 협회 가입국만 보면 인도, 일본, 미국, 캐나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도 가입(한국은 미가입)은 했으나, 그냥 동호회 수준으로 하며 사실상 밴디를 확실히 자주 즐기는 나라는 러시아, 옛 소비에트 연방 나라 및 몽골,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래도 2년마다 세계 대회를 꾸준히 치르고 있다.[17] 한국, 중국, 일본, 대만(+홍콩, 마카오)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성적을 잘 내기도 하는 데다가 혼자만 인구가 너무 많아서 참가자끼리의 비례가 안맞는지 2020년대 들어 그때그때 필요하다면 동아시아가 아닌 독자적인 아시아 하위권으로 분리될 때도 있다. 홍콩과 마카오는 반대로 이런 규모가 너무 적어서 그냥 중국에 들어갈 때가 많다.[18] 물론 몽골 초원에서 지내다보니(=평소에도 멀리 보다보니) 시력이 좋아질 여건은 이론상 되지만, 사실 다수가 유목민 생활을 포기하고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 몽골에서도 이게 통용될지는 확인이 필요하다.[19] 카자흐스탄 사람이 아닌 몽골에 사는 카자흐 민족이다.[20] 마찬가지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람이 아닌 몽골에 사는 위구르 민족이다.[21] 몽골 내 러시아인 공동체에 러시아계 타타르족이 일부 존재한다.[22] 몽골 민주화 이후에 이주해온 튀르키예인들이다.[23] 한국의 남매 가수인 AKMU의 사례에서 이러한 편견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악동뮤지션은 부모님이 개신교 선교사라 어렸을 때부터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넘어가 살았다고 하는데, 처음에 몽골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소위 몽골의 스테레오 타입, 즉 게르와 초원, 양과 함께하는 생활을 상상했으나 현실은 아파트에서 한국 아이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자랐다고 밝혔다.[24] 다만 2020년대 들어선 몽골 관련 영상들도 제법 퍼졌긴 하다.[25] 구 소련권과 그 영향을 받은 국가에서는 과거 국가에서 땅을 나누어줬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별장 문화가 보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