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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4 00:52:27

던바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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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수비대를 지휘하는 아그네스 랜돌프.webp
찰스 리케츠(Charles Ricketts, 1866 ~ 1931) 작, <던바 공방전의 블랙 아그네스, 1338년>, 1905년.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1338년 1~7월, 윌리엄 몬타구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던바를 포위 공격했지만 공략에 실패한 공방전.

2. 상세

1337년, 지난 수년간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괴뢰왕으로 앉히기 위해 스코틀랜드를 잇따라 침략해 심각한 피해를 안겼던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스코뉴를 침공한 프랑스에 맞서는 데 전념하느라 스코틀랜드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하는 틈을 타, 데이비드 2세를 추종하며 에드워드 3세에 맞섰던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반격에 착수했다. 앤드류 머레이, 윌리엄 더글러스, 패트릭 5세 드 던바 등이 지휘하는 스코틀랜드군은 파이프 주를 통과하여 포클랜드 마을을 파괴했으며, 루카르 성을 점령한 뒤 3주 간의 포위 공격 끝에 세인트 앤드류스 성을 점령하고 약탈했다. 뒤이어 그해 3월에 잉글랜드군으로부터 보스웰 성을 탈환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세를 벌인 끝에 초여름에 북부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 요새 대부분을 공략했으며, 발리올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갤로웨이를 파괴했다. 1337년 11월 잉글랜드 영토인 칼라일을 습격해 컴벌랜드를 황페화했으며, 애든버러 성을 포위했다.

1338년 1월, 잉글랜드 정부는 갈수록 악화되는 스코틀랜드 전선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원정을 벌이기로 했다. 초대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가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은 잉글랜드군에 맞서는 스코틀랜드 거물인 패트릭 5세 드 던바가 다른 곳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는 사이에 그의 본거지인 던바 성을 포위했다.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가의 핵심 요새인 이곳을 공략한다면,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군을 지원하는 잉글랜드 함대의 핵심 거점이 될 수 있었다. 일부 연대기에는 윌리엄 몬타구가 지휘한 병력이 20,000명에 달했다고 기술되었지만, 현대 학자들은 명백한 과장으로 간주하며 수천 명을 넘지 않았을 거라 추정한다. 다만 던바 성에 남아있던 수비대를 압도하는 숫자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던바 성 수비대를 이끈 인물은 패트릭 5세 드 던바의 아내인 아그네스 랜돌프였다. 초대 모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와 이사벨라 스튜어트[1]의 딸인 그녀는 검은 눈, 검은 머리,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검은 아그네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전승에 따르면, 아그네스는 던바 성을 포위한 뒤 항복을 요구한 잉글랜드 사령부에게 아래의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스코틀랜드 국왕의 은혜로 내 성에 살고 있으며, 그 대가로 고기와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내 집이 나를 지켜주는 한, 나도 내 집을 지킬 겁니다."

이후 잉글랜드군이 투석기를 사용해 거대한 돌과 납 공을 성벽에 발사했고, '암퇘지'라는 별명을 붙인 거대한 공성탑을 성벽에 바짝 대려 했다. 이에 아그네스는 윌리엄 몬타구에게 "암퇘지가 곧 분만할 테니 돌봐라"라고 소리친 뒤, 수비대에게 적군이 성벽에 발사했던 모든 돌과 납 공을 모아서 공성탑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공성 탑은 산산조각났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잉글랜드군을 조롱하기 위해 하녀들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힌 뒤 적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벽과 탑에 적의 포탄이 남긴 흔적을 헝겊으로 조심스럽게 닦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정면 공세로 던바를 공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윌리엄 몬타구는 계책으로 던바를 공략하기로 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전사 한 명에게 뇌물을 줘서 밤에 성문을 열게 했다. 그러나 전사는 곧 아그네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후 몬타구가 선두에 서서 열린 성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그네스는 그를 가두기 위해 성문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전사 한 명이 성문을 양손으로 들어서 몬타구가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버텼다. 전승에 따르면, 아그네스는 도망치는 몬타구를 향해 이렇게 조롱했다고 한다.
"몬타구여! 나는 당신이 점심을 먹으러 우리에게 올 것이라 생각했소.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 성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했소!"

이후 잉글랜드군은 어느 시점에서 아그네스의 형제인 존 랜돌프를 체포했다. 그들은 존의 목에 밧줄을 묶은 뒤 성 앞에 보여서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그녀 앞에서 존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그녀는 존이 죽으면 자신이 그의 재산을 상속받으므로 그의 죽음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렇듯 그녀가 끝까지 버티자, 윌리엄 몬타구는 갤리선을 사용하여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성을 완전히 차단해 굶겨 죽이려 했다. 그러나 1338년 7월, 알락산더르 램지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분견대가 해상 봉쇄를 뚫고 던바 성에 물자를 제공했다.

결국 몬타구는 7월 10일에 던바 포위를 풀고 잉글랜드로 철수했다. 잉글랜드 왕실은 던바 공략에 실패하면서 6,000 파운드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이후 잉글랜드 측은 프랑스와의 대규모 전쟁을 벌이느라 스코틀랜드 전선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했고, 스코틀랜드군은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339년 퍼스를 탈환하고 1340년 에딘버러를 탈환했으며, 잉글랜드 북부 지대를 지속적으로 습격했다. 프랑스로 망명갔던 데이비드 2세는 1341년 6월 스코트랜드 민중의 환호를 받으며 퍼스로 귀환했다. 1342년 3월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군 최후의 거점이었던 스털링 성이 함락되면서,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 세력은 허물어졌다.
[1] 윌리엄 월레스의 동지로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인물인 본킬의 존 스튜어트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