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문서: 탈쥐효과/사례/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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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탈쥐효과의 사례를 정리한 문서.2. 타자
- 박종호(1998년 1:1 트레이드)
어찌보면 탈쥐효과의 원조 격인 사례. 데뷔 초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이후 방위병 복무와 부상 등의 문제로 성장이 정체됐던 박종호는 1998년 좌완투수 최창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로 이적하자마자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차고[1] 박진만과 호흡을 맞춰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 - 강기웅 키스톤 콤비 이래 박진만 - 박종호라는 최강의 키스톤 콤비가 탄생되었다.[2] 이후 1998년 한국시리즈, 2000년 한국시리즈, 2003년 한국시리즈를 모두 우승하며 현대 왕조 시절 3번이나 우승을 맛보게 된다. 2000년 소속 팀인 현대가 역대 최강팀으로 불리울 때는 미묘하게도 성이 같은 박경완, 박재홍, 박진만과 같이 역사상 최강의 골글 센터라인[3]을 구성하였고, 특히 121경기 3할 4푼의 타율로 타격왕[4]에 올랐으며 59경기 연속 출루 기록도 세웠다.[5] 그해 시드니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같이 출전한 현대 소속 투수들이 부진한 가운데 박재홍과 함께 맹활약했다. 2001년에 잠깐 부진했으나 2002년과 2003년에는 [6]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팀의 3번째 우승을 이끌었다.[7] 삼성 이적 첫 해인 2004년에는 2003년 후반기부터 이어온 연속 안타 기록을[8] 그대로 이어가는 등 꾸준히 활약을 하였으며, 3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9] 이때는 삼성이 박종호의 연속 안타 이벤트를 열었을 정도.[10][11] 이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10년 후인 2014년에 KBO가 비 더 레전드라는 일종의 게임으로 쓰이게 된다. 2004년에도 작년과 비슷한 성적을 찍었다. 수비에서는 괜찮았고 골든글러브도 4년만에 탈환하였다. 그러나 두산과의 2004년 플레이오프에서 큰 부상을 당한 것을 기점으로 이후 2005년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2008 시즌 도중 한화에서 건너온 용병 제이콥 크루즈와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사실상 은퇴에 몰렸지만, 2008 시즌 후 친정 팀 LG 트윈스 감독으로 있던 옛 스승 김재박[12]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받아 2009 시즌 괜찮은 성적을 올리긴 했으나 박경수가 2루수로 전향하면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2010년 5월 27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2010년 9월 26일 잠실 삼성전에서 은퇴식을 열고 은퇴했다. 그 날 LG는 차우찬의 완투 쇼에 막혀 패했다. 공교롭게도 박경수는 또다른 탈쥐효과의 주인공이 되고, 차우찬도 나중에 LG로 오게 된다.
사실 냉정히 보면 이 시즌 이후 김상현은 LG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활약을 남겨서 탈쥐효과라기엔 애매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KIA에서도 2010시즌부터는 폭발의 원동력이던 고향팀 복귀+주전 3루수 자리 확보+최희섭과 내는 타선 효과가 모두 사라져 영 애매한 활약만 남겼고[15], SK와의 2:2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이후로도 부활하지 못했다. 2015년에 은사 조범현 감독의 지명을 받아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신생 팀 kt wiz로 이적한 뒤 28홈런을 기록하고 134경기에 출전하며 뎁스가 얇은 kt에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이 해가 워낙 타고투저 시즌인 데다 김상현은 출루율이 썩 좋지 않은 편이라 wRC+는 106.0에 그쳤다. 그럼에도 트레이드 직후 2관왕+MVP+골든글러브+팀의 12년만의 우승이라는 임팩트가 워낙 강한 데다, 탈쥐효과라는 말이 나온 원인 자체에도 김상현이 있다보니 여전히 탈쥐효과가 맞다는 의견이 강한 편이다.
다만 개인의 성적과는 별개로 인간성에 관해서는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SK 시절 성적도 별로인데 싸인 사건으로 팬들에게 찍힌 바 있고, kt에서도 첫 시즌 괜찮게 쳐주다가 2016시즌에는 열심히 삽을 들더니 뉴스를 본 사람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하는 대형사고를 쳐버리며 kt에게 자위즈라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안기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임의탈퇴되며 선수 생활이 끝났다.
탈쥐 역사상 최고의 탈쥐효과 선수이다. 고교 시절부터 초특급 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은 가운데 2005년 1차 지명으로 입단했지만, 정작 LG 입단 후에는 주위의 기대에 인한 부담감에 코치진의 무책임한 뜯어고치기식 육성, 1군에서의 박한 기용 등으로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2005~2010년까지 커리어 하이는 9홈런 25타점. 그런데 2011년 시즌 도중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2011년 후반기에만 12홈런 28타점을 때려내 가능성을 보이더니, 2012년부터 타격 대폭발을 시작하여 3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2012~2014)는 물론, 2년 연속(2012년, 2013년) KBO MVP에, KBO 역사상 유일무이한 2년 연속 50홈런(2014, 2015), 4년 연속 홈런왕, 타점왕(2012~2015)에 장타율왕, 득점왕 등도 수차례 수상하여 4년간 리그를 지배하다시피 했고[16], 결국 포스팅 시스템으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진출하게 되었다.하지만 2016년, MLB에서 공의 속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완전히 말아먹으며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로 직행했다. 마이너로 간 이후에도 타율이 2할 밑으로 떨어져버리면서 삼진을 미친듯이 적립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라서 입쥐효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한국에 돌아온 2018년에는 부상으로 경기를 좀 빠졌음에도 장타율-출루율 1위를 기록하였고, 2019년에는 다시 홈런왕을 탈환하고 2019 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에도 합류하고 미국전에서 홈런도 쳤다.
2020년부터는 나이로 인해 에이징 커브 때문인지 매우 부진했다. 그럼에도 2021년까지 KBO에서의 8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는 등 힘만은 여전했다. 그리고 2021 시즌이 끝나고 FA로 KT로 이적하였다. 2022시즌 35홈런을 기록하며 개인통산 6번째[17] 홈런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에이징 커브 논란을 잠식시켰다.
거론된 인물 중 유일하게 KBO 포스트시즌에서 LG를 만났는데, 2014년 플레이오프, 2019년 준플레이오프, 2020 와일드카드 결정전, 그리고 2023년 한국시리즈, 2024년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2014년 플레이오프, 2019년 준플레이오프만 박병호의 소속팀인 키움이 이겼고 두 년 다 2014년 한국시리즈, 201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2019년 준플레이오프에는 1차전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9회말에 선두타자로 나서서 초구 패스트볼을 통타하여 끝내기 홈런까지 날리고 시리즈 MVP까지 타가면서 LG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 2020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팀이 졌으나 홈런 포함 멀티 히트를 치며 LG팬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하지만 KT 소속으로 나온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친정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며 LG 우승의 숨은 공신이 되어버렸다.
다시 KT로 이적한 2015년과 2016년에도 3할대의 타율을 찍으며 타격이 상당히 좋아진 모습이다. 또한 빠른 발도 다시 살아나 번트 2루타라는 진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포가 주류인 탈쥐효과 선수들 중에 30이 넘은 나이에 흔치 않은 비거포형 탈쥐효과를 본 놀라운 케이스. 비거포 유형으로 이용규의 경우도 있지만 이용규는 LG에서의 1군 경력이 입단 직후 단 1년에 불과해 매우 짧아 타석이나 경기수의 표본이 너무 작다. 모든 팀이 1년차에 1군 데뷔도 못하는 선수도 엄청나게 많고 나와도 타율 1할인 경우도 널렸고, 그러다가 결국 1군 선수로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대형처럼 10년도 넘게 LG에 있다가 나가서 타율이 확 상승한 케이스가 훨씬 정확한 비거포 탈쥐효과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wRC+가 2007년 말고는 100 미만이라서 타격 생산력이 약하지 않냐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LG에서의 마지막 3년과 KIA와 KT에서 보낸 2014, 2015, 2016의 3년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클래식 기록이 더 좋아진것은 당연하고 경기수[18]와 타석수 wRC+까지 모두 의미있게 늘어났다. 안타, 루타 등 누적 스탯과 출루율-장타율 등 비율 스탯은 LG 시절 커리어 하이 2007시즌보다 뛰어나다. wRC+도 100 아래라 분명 좋은 타자는 아니지만 2007 시즌을 제외하면 이대형 커리어 상에 2014~16 시즌만큼 찍어준 시즌도 없다. 툴이라고는 주루밖에 없어서 노쇠화가 오면 직격타를 맞을 선수가 32~34세에 팀을 옮겨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급 혹은 그 이상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타이틀도 이적 후보다 전에 더 많이 탔다.
- 박경수(2014년 11월 28일, FA 이적)
허나 이는 억울한 면이 있는데, 자신은 이적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기자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졌고, 정의윤은 무심결에 대답하다가 탈쥐효과 관련 발언 인터뷰에 낚이고 말았다. 이후 LG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하고 다녔음이 밝혀졌고 탈쥐효과를 누리라는 질문에 무심결에 알겠다고 했다가 자기도 탈쥐효과를 누리겠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것도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는 덜 까인다. 거기에다가 대신 받아 온 진해수가 홀드왕을 차지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서 묻힌 감이 있다.
}}} ||탈쥐효과가 잠실 탓이 아니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을 해준 선수. 리빌딩 과정에서 오랫동안 LG에 있다가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으로 옮긴 양석환마저 터지게 되면서 과거 타자 쪽에서 연달아 탈쥐효과가 터지던 와중에 잠실의 이점을 많이 본 것이라는 일부 LG 팬들의 반박이 단박에 소용이 없는 짓이 만들어 버리게 되었다.[20]이적 첫 해부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인 28홈런을 기록하였고, OPS 0.827 wRC+ 130.3으로 그 동안 LG에서 뛰면서 그 타고투저 시즌에도 불구하고 OPS 0.8은 커녕 단 한번도 wRC+도 100을 넘기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기록이다. 이때만 해도 LG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이미 양석환을 탈쥐효과로 보았다. 다만 두산에 와서도 바깥쪽 변화구에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고, 시즌 막판과 포스트시즌에 체력 문제인지 공략을 당한 건지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물음표가 있었다.
2022년 초반 활약을 하면서 작년이 플루크가 아니란걸 증명하나 했으나 옆구리 부상의 여파로 인해 2022년 타율 2할 4푼대에 홈런 20개 OPS 0.741 WRC+ 113으로 2021년에 비해 많이 부진하였으며 후반기 무지막지한 홈런 페이스로 20홈런을 달성하긴 했지만 이미 LG 시절에도 22홈런을 기록했으며 타점도 LG시절에도 80개를 기록한 게 51타점만 기록하여 다른 스탯들은 작년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유보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2023년 10월 13일을 기준으로 타율 0.281, 출루율 0.333, 장타율 0.458, OPS 0.791, 홈런 21개, 타점 89개, WAR 2.60, wRC+ 124를 찍며 완벽하게 탈쥐 확정. 커리어하이인 2021년보다는 조금 못미치는 정도이나 이 정도 성적만 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이며 3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건 덤이다. 애초에 두산에서 가장 성적이 안 좋은 2022년조차도 WRC+ 113으로 LG에 있을 때 100도 넘기지 못한 우르크를 생각해보면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2023년 말, 양석환은 4+2년 총액 78억이라는 FA 대박을 터뜨린다.[21]
2024시즌에는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클래식 스탯은 괜찮게 쌓았지만 타율과 세이버가 하락하여 공갈포가 되었다.
정의윤과 함께, 어쩌면 정의윤보다 더 LG팬을 빡치게한 선수이기도 하다. 21시즌 도중 LG 덕아웃과 말다툼을 하는듯한 장면과 준플레이오프때 안타 후 본인 가슴팍의 두산 로고를 흔드는 도발성 세레머니로 인해 많은 팬들의 분노를 샀고, 시간이 꽤 지난 현재까지도 배신자 소리를 듣는 등 이미지가 매우 좋지않다. 트레이드 전 LG에서 실력에 비해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본인의 인터뷰도 한몫 하였다.[22] 이 때문인지 타팀으로 이적한 LG 출신 선수들이 거의 모두 나온 박용택 은퇴식 영상편지에서도 빠져있었다.
3. 투수
없다. 타자의 경우 팀을 나가자마자 잘하는 케이스가 넘쳐나는데 반해 투수의 경우는 전무하다. LG가 일단 임선동이라는 금지어급 사례를 빼면 자팀 투수를 제대로 쓰지 않고 타팀에 트레이드로 내준 사례가 많지 않아서 샘플이 매우 적기도 하며, 거기다 홈구장인 잠실이 극단적인 투수친화 구장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LG의 암흑기를 조롱하고 놀리기 바빴던 타팀 팬들조차도 "투수 탈쥐는 없다."는 걸 인정할 정도. 오히려 LG가 버린 투수는 함부로 주워가면 안 된다고 경계할 정도다.같은 구장을 쓰는 팀과 비교해 봤을 때 탈돡효과는 탈쥐효과와는 많이 다른 케이스다. 탈돡효과의 대부분은 선수 본인의 실력은 있지만 팀에 자리가 없어 나간 경우고, 주로 포수나 외야수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의 진갑용, 최기문은 1999년 루키시즌에 신인왕을 차지하며 혜성같이 나타난 홍성흔에게 밀려서 나간 것이고, 2010년대의 최승환, 용덕한은 양의지가 전역 직후 시즌에 신인 포수 최다 홈런인 20홈런을 때리고 당해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주전 자리를 채갔기에 팔려간 것이다. KBO 역사상 포수 신인왕은 1990년 김동수를 포함해 3명 뿐이다. 즉, 다들 삽질만 하다가 팀을 나가서 포텐이 터진 게 아니라 두산에서도 주전 경쟁을 하다가 경쟁에 밀려 팀을 떠난 것.
트레이드로 팀을 나간 투수들 중 커리어를 지속하거나 리그에 안착한 경우 심수창과 김광수, 신재웅 정도가 있는데, 이미 앞의 두 선수는 30대 중반의 나이라 롱런하기는 어려웠던 상황. 이후 김광수는 은퇴했고, 심수창은 다시 LG로 돌아갔다. 신재웅은 LG 시절과 크게 차이가 없다가 2017시즌 부활했으나 LG에서도 2014시즌 활약했기 때문에 탈쥐효과로 보기 애매하다. 탈쥐효과 기준인 트레이드, FA 보상 등을 제외하고 LG를 나가서 가장 커리어가 성공적인 투수는 NC의 원종현이다. 그러나 원종현은 위 선수들과 달리 탈쥐효과로 보기는 힘들다. 자세한 건 후술. 2017년에 FA로 삼성으로 이적한 우규민은 2017년, 2018년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2019년에는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2018년 시즌 SK로 이적한 신재웅이 마무리 투수로서 2승 3패 16세이브 6홀드를 기록하며 활약했고, 2019년에는 한화로 트레이드된 신정락이 이적 이후 패전처리조와 스윙맨으로 21경기 등판해 25.2이닝을 소화하며 4승 무패 1홀드 방어율 3.16을 기록하는 등 LG에 있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신재웅은 다음 시즌인 2019년 부상을 겪으며 많이 부진했고 신정락은 순위싸움 부담이 사라진 상태에서 좋아진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 탈쥐효과 이론을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2017시즌 전에 차우찬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한 이승현이 2019년 들어 포텐이 터져 전반기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지만, 후반기를 부상으로 날렸다. 2020년에도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LG에서도 20인 명단에 들지 못했던 원인이 된 제구 난조는 아직까지도 해결이 되지 못해서 롤러코스터급 피칭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범주에 넣기는 힘들었다. 필승조에 들어가기는 애매한 제구력이고, 그렇다고 패전조에서 쓰기에는 공이 너무 좋아서 어중간하게 자리를 잡아버린 케이스. 하지만 2020년부터는 두자릿수 홀드를 3시즌이나 기록하며 활약하고 있으니 그나마 탈쥐효과 사례에 부합한다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4. 감독
2017년 이후로 이젠 감독 탈쥐 표본지표마저 충분하다. LG에서 가을야구를 이끌지 못하다가 LG를 떠난 뒤에는 여지없이 소속팀을 가을야구로 이끄는 기염을 토한다. 감독판 입쥐효과의 경우 현대의 V4를 이끈 명장인 김재박의 예가 있고 삼성 왕조의 주역이던 류중일의 LG 감독 생활이 순탄치 않게 진행되어가며 입쥐효과의 표본마저 생겨 버렸다. 헌데 류중일은 첫해를 제외하고 재기하는 조짐이 보였지만 막판에 제대로 말아먹고 사퇴하면서 입쥐효과를 받아버렸다. 다만 넥센 구원투수진과 SK 전체를 말아먹고 LG에 온 염경엽이 LG 감독 부임 첫해에 통합우승을 달성하여 이 징크스는 깨졌다.- 김성근: 2002년 LG 감독 부임 첫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하필 상대가 한국시리즈를 9번이나 우승한 레전드 감독이라 준우승을 했고 프런트와 야구관이 맞지 않는다며 2002년 시즌 종료 후 LG 감독에서 해임되었다. 그리고 치바 롯데 마린즈 코치 등을 전전하다 2006년 말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비인기 구단의 감독으로 선임됐고[23] 그 팀에서 감독으로 있던 4년 내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그 중 우승 3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한다. 하지만 말년에는...
- 양승호: 원래는 두산에서 잔뼈가 굵었던 인물이지만 2005년 LG 수석코치로 입단했다. 2006년에 이순철의 중도 사퇴로 감독 대행을 맡은 경험이 있었으며 대행으로의 평도 좋았던 탓에 정식 감독 논의도 나왔지만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재박의 취임이 결정되면서 그대로 팀을 떠났다. 이후 고려대 감독으로 부임해 현장에서 좋은 평을 들었고 2011년에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취임해 재임 2년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고려대 감독 당시 입시비리에 연루되면서 지도자로 받은 좋은 평가를 다 까먹고 흑역사행.
- 김기태: 2012년 전체 8팀중 7위라는 성적표를 받았지만, 그 다음해에 10년만의 지옥같은 비밀번호 DTD를 끊고 정규시즌 2위 기록을 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초반 부진한 성적을 내자 결국 Run하고 다음해에 대놓고 리빌딩 모드로 들어간 하위팀의 감독이 되었다. 결국 미래를 내다보며[24] 서서히 도약을 준비하다가 3년차인 2017년에 드디어 우승을 하게 된다. 이후 재계약을 하자마자 또윤동, 또기준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혹사의 아이콘이자 그 제자임이 드러났고, 2연패를 할 전력임에도 중위권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그리고 2019년에는 9연패를 하며 아예 밑바닥에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에도 9위 KT와 2게임차 꼴찌를 하자 5월 16일자로 사퇴해버렸다. 여러모로 탈쥐 감독들은 다들 끝이 안 좋아보인다.[25]
5. 입쥐효과
- 홍현우 : 1999년에 30-30 클럽 달성을 한 호타준족의 28세 젊은 내야수여서 LG가 잡았지만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 결국 LG 최초의 FA 먹튀로 등극했고 2005년에 친정팀인 KIA로 돌아갔지만 거기서도 별다른 활약은 보이지 못하고 조용히 은퇴했다. 사실 LG로 오기 직전 시즌인 2000년 시즌에 성적이 하락하는 기세가 보였고 FA를 앞둔 시즌이다 보니 무리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LG에서는 일시적인 하락이라고 판단하여 거액으로 FA계약을 하였다. 선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태 시절에는 시즌 중 컨디션 난조로 성적이 내려갈 때 홈런이 나와서 그걸 계기로 컨디션을 회복하였으나 LG 시절에는 잠실이 너무 넓어서 타구를 멀리 보내도 홈런이 안 나오다보니 제대로 안 풀렸다고 한다. 처음부터 궁합이 안맞았던 셈. 헌데 사실 1999년 댄 로마이어와 수비 중 충돌로 무릎에 심한 부상을 입었던터라 구장 문제가 아닌 부상 이후 기량 급락이 맞다.
- 톰 퀸란 : 현대에서는 상당한 공갈포라는 불안요소는 있었지만 힘은 확실했고 안정적인 3루 수비도 보여줬지만, LG에서는 무안타로 삽질하다 시즌 초에 퇴출. 사실 퀸란은 애초에 은퇴할 예정이었고 현대가 퀸란을 포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LG는 무슨 생각인지 은퇴 예정이던 퀸란을 잡았고 이미 퇴직자 모드로 운동을 푹 쉬고 있던 퀸란은 LG와의 계약 후 부랴부랴 몸을 만들었지만 결국 21타석 무안타 행진으로 삽질만 하다가 방출됐다.
- 진필중 : 2000년에 42세이브, 2002년에 31세이브를 올린 투수이나 두산에서 김인식에게 신나게 혹사당한 결과 LG에서는 먹튀가 되었다. 거기에 구단과도 연봉협상도 매 해를 질질 끌다시피 해서 팬들에게는 분노를 안겨주었다. 결국 2007년에는 1군에 못 올라왔고 2008년에 2군에서도 탈탈 털리다가 은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의 보상선수가 탈쥐효과의 대표적 케이스인 손지환이다.
- 박명환 : 2007년에 10승을 거둔 것을 끝으로 극심한 부진 + 부상을 겪었다. 2008~2009시즌은 0승, 2010년에는 4승을 거두었다. 40억을 받고 14승을 올린 건데 1승에 3억씩 줬다고 봐야할 듯. 결국 2011~2012년은 1군에 못 올라오고 방출되었다. 참고로 FA 계약 직전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도핑에서 노르안드로스텐디아올이 검출되며 짐을 싸서 돌아왔다. 이 후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두산 시절에는 아프면 진통제를 맞으며 버텼지만 LG로 이적하고 난 뒤로 진통제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을 하였으나 수술 뒤에는 부상 재발의 공포가 있었다고. 여담으로 FA 재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한뒤 재계약하면서 5억에서 5천만원까지 연봉이 떨어진 희대의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 이택근 : LG에 있던 2년 동안 상당히 오래 드러 누워서 팬들을 빡치게 했지만 두 자릿 수 홈런을 친 적도 있었을 만큼 2010년 한정으로
겉보기에는좋은 성적을 낸 건 사실이다. 물론 당연히 스탯관리고 전반적으로 병원비만 지급받으며 사실상 2년간 요양했다는 게 대체적인 LG팬들의 평가이다. 2011년 시즌 종료 이후 당시 기준으로 역대 FA 타자 중 2위에 해당하는 4년 50억계약[26]으로 넥센에 복귀해서 야구계에 엄청난 파란을 몰고왔다.[27][28] 너무 재활만 하다가 간 이미지가 강해서 LG팬들은 거의 '유학생', '슈퍼먹튀' 등으로 아예 실명 언급조차 꺼리는 상태. 현역 선수가 볼드모트화된 흔치 않은 케이스.[29]
- 마해영 : 사실 FA로 왔던 KIA 시절에도 나이에 따라 기량이 노쇠화 되어서 먹튀소리는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내긴 했다. 그리고 트레이드로 LG로 온 후 2007년 7푼 1리의 압도적 성적을 보여준다. 다만 LG 시절 두 자릿수 홈런은 없다. 그리고 법정소송까지 벌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마해영 문서 참조.
- 제이미 브라운 : 2006년과 2007년 삼성에서 좋은 투구로 인정을 받았지만, 2008년 LG로 온 후 평균자책점 7.93으로 망했다.
- 팀 하리칼라 : 2006년 삼성에서 12승 7패의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듬해 LG로 온 후에 6승 8패 평균자책점 5.21을 기록하고 웨이버 공시되었다. 사실 이쪽은 이미 LG에 입단을 했을 때 만으로 35에 곧 36세가 되는 나이였음을 감안하면 언제 하락세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던 선수.
- 정상호 : 2016년 FA를 신청하여 4년 32억(옵션 2억)에 SK에서 LG로 이적했으나 젊은 포수 유강남보다도 못했고 2019 시즌까지 4년 합계 sWAR -0.49를 찍었다. 결국 2019년 시즌 종료 후 LG에서 방출되고 라이벌 팀 두산에 입단했다.
- 제임스 로니 : MLB 기준으로도 뛰어난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30], 누적연봉이 무려 3650만 달러[31]나 되고 전성기때는 3년 2100만달러의 FA 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LG에서 성적부진으로 2군행 통보를 받자 MLB에서 화려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으로 가 버렸다.
- 최원태: LG로 트레이드 전 성적과 트레이드 후 성적이 완전히 비교된다. 트레이드 전 성적이 17경기 3.25였으나 트레이드 후 성적이 9경기 6.70. 결국 2023년은 우승을 했으나, 최원태 개인 성적은 좋지 않았다. 참고로 이쪽은 키움 히어로즈 시절부터 고척 스카이돔에서의 성적과 그 이외 구장에서의 성적 편차가 상당히 컸고 그 상태로 트레이드된 결과 이 스플릿을 LG 이적 후에도 그대로 적용받은 케이스다.[32] 2024년에는 시즌 초중반 다른 선발들이 모두 부진할 때 1선발 급의 활약을 해주고 있었지만, 중요한 시기에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다가 복귀한 뒤에는 다시금 오락가락하는 모양새. 복귀 직후인 7월에는 먼지나게 털렸고, 8월에는 다시 1선발 모드로 돌아갔지만, 9월이 되면서 다시금 페이스가 좋지 않다. 특히 전담포수로 허도환을 붙여줘야 제대로 된 투구를 보여주기 때문에 허도환 은퇴 이후에도 제 성적을 낼 지 회의적인 의견도 있는 편. 심지어 멘탈이 그리 좋지 않아서 윈나우를 노릴 팀이 데리고 있기에는 어려운 투수였다. 당장 2024년 포스트시즌을 말아먹은 투수가 최원태다.
보다시피 여기선 투수 예시도 많다. 잠실이 투수친화적 구장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도 안 통하는 부분.
6. 탈쥐효과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경우
탈쥐효과는 LG에서 부진했던 유망주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자마자 갑자기 포텐셜이 터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 선수들은 탈쥐효과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므로 여기에 기록한다.범례 | |
LG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린 경우 | ★ |
이적 이후 성적이 모자라 포텐셜이 터졌다고 보기는 힘든 경우 | ☆ |
LG를 떠나고 한참 뒤에 포텐셜이 터진 경우 | ◆ |
LG 시절에도 기대감이 큰 유망주는 아니었던 경우 | ◇ |
LG를 떠나고 포텐셜이 터졌지만 이것을 LG의 실책이라고 보기는 힘든 경우[33] | # |
- 이용규#
사실 이용규야말로 어떻게 보면 탈쥐효과에 부합하다 보기엔 가장 무리가 있는 케이스다. 일단 프로지명 순번부터 2차 2라운드 15순위였고 그만큼 LG에서도 기대를 걸었던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입단 후 타격스타일에 대해 완강한 뜻을 갖고 있었던 이용규는 당시 여러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34] 이로 인해 당시 LG 감독이었던 이순철에게 찍혀 2004 시즌 종료 후 2대2 트레이드로 KIA로 이적하게 되었다. 즉, 실력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타팀에 이적한 경우이며[35] 애초에 1년 밖에, 그것도 대주자 대수비로만 주로 나왔던 선수가 타팀에서 터졌다고 단순히 탈쥐효과로 들긴 무리이다. 허나 탈쥐효과로 언급된 사연은 있는데 2009 시즌 탈쥐효과의 대표 사례인 김상현과 더불어 단순히 LG 출신이었다며 세트로 언론에까지 언급된 적이 있어서[36] 하나의 밈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 있다. 후술된 이성열의 사례와 약간 비슷하다는 것. 허나 김상현과 달리 이적 전 표본이 너무 적고 이적의 배경도 다른지라 탈쥐효과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으며 지금도 LG와 KIA의 팬들은 이용규를 탈쥐효과 운운하며 얘기하는 경우가 없다.
- 서건창◆◇
LG 1기 시절은 신고선수인데다가 1군 출장 경기가 겨우 한 경기[37]였고 어깨부상으로 방출되었기 때문에 탈쥐가 확실히 아니다. 넥센 입단 이후 신인왕 수상, 200안타 기록, 시즌 MVP를 기록한 것은 LG의 선구가 잘못된 것이 아닌 넥센의 코치진과 서건창의 노력을 칭찬할 일이다.[38] 신고선수의 경우 웬만하면 계약금이 없고 정식선수가 아니기때문에 구단 입장에서도 굳이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실제로 시즌 후 방출 당하는 선수들 중에 대부분이 신고선수이고 공지 하나 제대로 못 받는게 현실이다. 즉, 당시 LG 구단으로써는 부상당한 신고선수를 기다려줄 이유가 없어 바로 방출시킨거고 일처리를 제대로 한 것이다.
다만 LG 2기 시절 방출되고 KIA로 이적한 이후에는 탈쥐가 맞는지 아닌지 다시 입방아에 오른 편. 2021년 7월 27일 트레이드를 통해 12년만에 다시 LG 유니폼을 입게 된 이후 2023시즌까지 누적 WAR 0.41에 그칠 정도로 폭망해 LG의 2루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었기 때문. 사실 이것도 키움 시절부터 에이징 커브의 징후를 보이고 있던 만큼 입쥐효과라기 보다는 어차피 떨어질 성적이 떨어졌다고 보는 의견도 많지만, KIA 입단 이후 9월 중순까지 타출장 3-4-4에 wRC+ 124.6이 찍히는 등 타격에서는 LG 시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39] 규정타석 미달인 데다 이제 첫 시즌인 만큼 탈쥐효과로 단언하기엔 어렵지만, 기세를 이어간다면 히어로즈 시절과 달리 빼도박도 못하는 탈쥐효과로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안 터지는 유망주가 LG를 떠나서 포텐 폭발'은 아니지만, 한 차례 전성기를 맞았던 선수가 부활하지 못하고 부진하다가 30대가 넘어서 이적하더니 귀신같이 부활한 이대형의 사례도 탈쥐로 분류되는 만큼 서건창이 KIA에서 살아난다면 탈쥐는 물론이고 입쥐라고 봐도 문제는 없어보인다.
- 강승호◆
LG 1라운더 출신[40]으로 두산에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어 탈쥐효과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으나 음주운전으로 자숙한 기간까지 3년이나 지났고 또한 바로 두산으로 이적한 것이 아닌 SK(현 SSG)에서 최주환의 보상선수로 이적한 사례로 옮겨서 활동하는 것이라 탈쥐효과로 들기는 무리다.[41]
- 임선동#
LG에 있을 때의 성적과, 후일 LG를 떠나서 현대에서 낸 성적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압도적이지만, 이는 임선동이 해외 진출 못했다고 태업을 부린 것으로 탈쥐효과로 거론하기는 어렵다. 자기 원하는 대로 하다가 간 선수.
- 홍성용◆◇
서건창과 비슷한 케이스. 입단 당시 2차 5라운드 지명으로 애초에 큰 기대를 받았던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LG에 몸담은 기간이 4년, 그나마 경찰 야구단 복무로 실질적으로는 2년에 불과했고 방출 후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6년만에 KBO 리그로 복귀했기 때문에 탈쥐효과로 들기는 무리다.
- 심재학★
심재학은 LG 코치진의 뻘짓이 더해진 경우로, 첫 해는 타자였는데 교정 잡느라 부진하면서 계속 나간탓에 성적은 깍아먹었지만 이듬해부터 일취월창했다. 그리고 1999년 정삼흠 코치가 투수로 전향하라 해서 투수로 전업. 물론 투수로서의 결과는 3승3패 방어율 6점대로 폭망했다. 그리고 현대에서 타자로서 괜찮은 성적을 냈으며, 2001 시즌에는 두산 선수로 커리어 하이를 찍고 팀의 우승에 공을 세웠다. 다만 이후에는 KIA로 이적한 2004년을 빼면 박살이 났다.
- 김상호★
LG 출신 선수 중 타팀 이적 후 MVP를 탄 건 사실이지만, MBC 청룡에 있을 1989년 시즌 홈런 5위를 기록하는 등 상당히 기대받던 선수였다. 거기다 MBC에서 보낸 시간은 2년 뿐이고 3년차에 트레이드 되어 OB 베어스에서 꾸준히 선수생활을 하여 MVP를 탄 것은 OB로 가서 5년이나 지난 후이다. 역시 그냥 OB에서 선수를 잘 키웠다고 봐야 할 듯. 본인도 두산 구단도 두산 프랜차이즈로 본다.[42] 다만 김상호와 트레이드 상대였던 최일언은 LG에서 단 3승만을 남기며 사라졌기 때문에 상당한 손해를 본 트레이드는 맞다.
- 김태군☆
LG 시절만 해도 수비도, 공격도 아쉬운 포수였다. 그러나 NC의 특별 지명을 통해 NC로 이적한 다음, 최소한 수비면에서는 기량이 향상된 면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공격력도 다소 과대평가되면서 탈쥐효과에 해당된다는 팬들도 있으나, 탈쥐효과라 불릴 정도의 포텐 폭발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다만 내구성이 좀 떨어지는 선수였지만 팀을 옮기면서 풀타임을 5년 연속으로 뛰면서 팀을 한국시리즈까지도 이끌었다. 공격 부문에선 많이 아쉽지만 어쨌든 NC에서 꼭 필요한 선수인 것만은 사실이다.[43] 결론은 선수 입장에서야 이적 이후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고, 연봉도 크게 올랐으니 탈쥐효과로 볼 수는 있겠지만, 리그 전체로 봤을 때는 그 효과가 미미하다.
- 브래드 스나이더☆
2014 시즌의 스나이더는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을 빼면 미미했다. 물론 시력 문제를 해결한 덕에 포스트시즌과 2015년의 활약이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2015 시즌, 넥센으로 이적하면서 탈쥐효과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말도 많았지만. 시즌 초반에는 여전히 부진했었다. 그러나 2군에 내려가고 다시 올라와서는 충분한 활약을 해주며 탈쥐효과의 외국인 선수 예시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특성상 에릭 테임즈급 포텐 폭발도 아니고, 트리플 A에서의 꾸준한 활약 등을 생각해보면 탈쥐효과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 원종현◆#
서건창과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인해 LG 시절에는 1경기도 등판한 적이 없었다. NC로 가서 잘한 건 맞지만 그 중간에는 4년이라는 긴 공백기가 존재한다. 이 기간동안 자비로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여 간신히 NC로 올 수 있었던 것이지 LG의 잘못이 아니다.[44] 이런 이유때문에 라이트팬이나 유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NC 팬들 중에서는 원종현이 LG 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제법 많다. 단순히 LG에 있었다는 이유로 탈쥐효과로 엮는 것은 애당초 무리수다. 하지만 2020시즌 불안불안했지만 마무리를 담당하였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마무리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우승반지까지 획득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45]
- 최영진◆◇
2011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고 2012년 6월 1일 1군으로 콜업되어 백업 내야수로 기대할 만한 선수라는 활약을 했으나 2013년에는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6경기밖에 나오지 못했다. 2014년 2차 드래프트로 두산으로 이적 후에는 시즌 초 어떻게든 써먹으려는 송일수 감독에 의해 대수비, 대주자로 출장했으나 하도 답이 안 나오는 1할대의 타격 때문에 결국 2군으로 내려갔고 2016년 퓨처스 리그가 끝난 후 스스로 방출을 요청하면서 두산에서 퇴단했다. 이후 입단 테스트를 거쳐 삼성에 이적했는데 2017년에는 백업으로 좋은 출발을 하였고 2018년에는 무난하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후 늦게나마 터지며 내야백업으로 공수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였다. 중간에 두산을 거치긴 했지만 늦게나마 터지며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걸 갖고 탈쥐효과 운운하는 것은 무리다.LG에서 뛰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강승호처럼 LG에서 이적 후 바로 기량을 올린게 아닌 한 팀을 거쳤으니 더더욱이 탈쥐효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기도 하다. - 이성열◆
이쪽은 LG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못 기록해본 20홈런을 LG를 떠나 두산으로 이적한 2010년에 같은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달성해버려서 급격히 주목받은 케이스다. 특히나 이성열이 20홈런을 넘긴 시기가 김상현, 이용규 등의 영향으로 탈쥐효과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와 겹치고, 이성열 또한 다른 탈쥐효과의 대표주자인 박병호, 정의윤처럼 나름대로 팀이 키우려는 시도를 안 한 것도 아닌데 절대로 안 터질 것 같아서 트레이드로 처분했더니 갑자기 20홈런을 넘기는 임팩트를 보여 LG 팬들의 복장을 터트렸기에 더욱 임팩트가 있었다.
그러나 이성열이 은퇴한 이후 기록을 통해 재조명하면, 이성열도 2010시즌에만 반짝했을 뿐이지[46] 이후에는 주목할만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고 팀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2018 시즌에야 커리어하이를 기록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탈쥐효과로 언급하는 것은 무리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보기에는 이성열이 왜? 라는 의문을 제기할 만 하지만, 용어가 처음 유행할 당시 마침 LG를 떠나 잠재력을 터뜨린 시즌의 존재로 대표적인 탈쥐효과 적용선수로 언급될만한 사정은 있었다는 것.
* 최승준☆
2015년 12월 6일 FA로 LG로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해 시범경기에서는 타율 1할에 25개의 삼진으로 시범경기 삼진왕의 불명예를 얻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도 4월에는 그저 그런 성적만 기록했으나 2군에 내려갔다 복귀하는 등 조정을 거친 뒤 롯데전에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날린 대타 역전 만루 홈런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여 슬슬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6월중순부터 7월까지 팀 내 홈런의 분위기를 정의윤과 함께 이끌며, SK의 21경기 연속 팀홈런 신기록 달성의 주역이 되었다. 2016시즌 1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보상선수 역대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6월 28일 수원 KT 경기에선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대폭발했다. 7월 2일 LG와의 잠실 경기에는 정의윤과 함께 9회초에 백투백 홈런[47]을 치며 탈쥐의 위엄을 대대적으로 선보였고, 다음 LG전에서도 정의윤에 안타에 이은 투런포를 쳐내어 연이틀 홈런으로 친정팀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다. 오죽했으면 정의윤과 최승준으로 거포 2명을 졸지에 얻게 된 솩갤러들은 모 솩갤러가 탈쥐하세요 그대[48]를 직접 불러서 올렸는데 이게 힛갤까지 갔다. 심지어 8월 18일 기준 최승준의 홈런 수(19개)가 정상호의 안타(18개)보다 많았다. 그러나 2016시즌 후반 부상으로 주춤하더니 2017시즌 들어서는 1군에 종종 나오긴 하지만 작년같은 활약은 못 보여줬다. 2018시즌은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고(27경기 타율 .250, 4홈런 11타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면서 팀의 우승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다만 SK 시절 하락세를 탄 이후에도 유난히 친정을 상대로만 활약상이 많다 보니 탈쥐라는 점이 부각된 것도 있다. 시즌 후 남태혁이 KT에서 이적하면서 더욱 심한 경쟁에 돌입하게 됐지만 2019시즌에도 이렇다 할 기회를 받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한화에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됐으나 2020년 6월 9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그런데 반대로 은퇴 후에 입쥐효과를 증명했는데, 2024시즌 타격보조코치로 LG에 돌아왔으나 팀 타선이 안 좋아진 것도 모자라 2024년 7월 말에 음주운전 측정 거부라는 대형 사고를 쳐서 팀에서 쫓겨난 것(...).
* 최승준☆
2015년 12월 6일 FA로 LG로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해 시범경기에서는 타율 1할에 25개의 삼진으로 시범경기 삼진왕의 불명예를 얻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도 4월에는 그저 그런 성적만 기록했으나 2군에 내려갔다 복귀하는 등 조정을 거친 뒤 롯데전에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날린 대타 역전 만루 홈런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여 슬슬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6월중순부터 7월까지 팀 내 홈런의 분위기를 정의윤과 함께 이끌며, SK의 21경기 연속 팀홈런 신기록 달성의 주역이 되었다. 2016시즌 1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보상선수 역대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6월 28일 수원 KT 경기에선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대폭발했다. 7월 2일 LG와의 잠실 경기에는 정의윤과 함께 9회초에 백투백 홈런[47]을 치며 탈쥐의 위엄을 대대적으로 선보였고, 다음 LG전에서도 정의윤에 안타에 이은 투런포를 쳐내어 연이틀 홈런으로 친정팀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다. 오죽했으면 정의윤과 최승준으로 거포 2명을 졸지에 얻게 된 솩갤러들은 모 솩갤러가 탈쥐하세요 그대[48]를 직접 불러서 올렸는데 이게 힛갤까지 갔다. 심지어 8월 18일 기준 최승준의 홈런 수(19개)가 정상호의 안타(18개)보다 많았다. 그러나 2016시즌 후반 부상으로 주춤하더니 2017시즌 들어서는 1군에 종종 나오긴 하지만 작년같은 활약은 못 보여줬다. 2018시즌은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고(27경기 타율 .250, 4홈런 11타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면서 팀의 우승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다만 SK 시절 하락세를 탄 이후에도 유난히 친정을 상대로만 활약상이 많다 보니 탈쥐라는 점이 부각된 것도 있다. 시즌 후 남태혁이 KT에서 이적하면서 더욱 심한 경쟁에 돌입하게 됐지만 2019시즌에도 이렇다 할 기회를 받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한화에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됐으나 2020년 6월 9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그런데 반대로 은퇴 후에 입쥐효과를 증명했는데, 2024시즌 타격보조코치로 LG에 돌아왔으나 팀 타선이 안 좋아진 것도 모자라 2024년 7월 말에 음주운전 측정 거부라는 대형 사고를 쳐서 팀에서 쫓겨난 것(...).
* 배정대#
2014년, KT의 신생 팀 20인 외 특별지명[49]으로 이적했다. LG 팬들은 유망주가 떠났다며 아쉬워했지만 이쪽은 아예 1군에서 뛰어본 적도 없는 데다가 LG에서 단 한 번도 못 긁어보고 보내야했던 선수인지라 탈쥐라고 못 보는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LG에서도 2차 1라운드 3번으로 지명한 데에는 배정대를 높게 본 것으로 안목이 틀리지 않은 것. 다른 탈쥐 거론자들이 한 번이라도 LG가 긁어본 선수들라면 이쪽은 아예 한 번도 못 긁어보고 보냈다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는 선수.
- 김재성☆
박해민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한 포수 김재성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대타로 띄엄띄엄 출전해[50] 타격감을 유지하는게 힘들었던 LG 시절과 달리 삼성에선 김재성을 지명타자로 돌리면서까지 꾸준히 기회를 준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 LG에서 7년동안 받은 기회보다 삼성에서 2022 시즌 동안 받은 기회가 더 많다.내다버린 7년...즉, 이런 선수를 LG에서는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51] 다만 확실한 탈쥐효과인지는 내년을 봐야 (꾸준히 맹활약을 하는 지에)따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시즌에 타율이 1할때로 떨어져 버리며 포수 3옵션으로 밀려버리고 2군행을 받았다. 아직 까진 알수없는 결과.
- 이주형#
키움으로 이적한 후에 정말 매서운 활약을 하고있긴한데 LG에 있을때부터 포텐이 크다는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장기적 육성자원이라고 판단되어 돌아간 기회가 적었다.[52] 그러나 윈나우를 위해서 미래를 포기하고 키움으로 보낸 것이다. LG에 남았어도 포텐이 터졌을 가능성도 컸기 때문에 탈쥐효과라고 보긴 힘들다. 애초에 LG에서 그나마 적게라도 기회받은 2021년에 12경기 출장한게 전부라 표본이 적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 김기연◇#
LG 시절 차기 포수로 밀어주던 자원이었으나 공수 모두에서 안일한 모습만 보이며 실망감을 주며 은퇴 준비 중이던 허도환을 다시 1군에 부르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반전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서 2024 시즌을 앞두고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적 후 타격에서 크게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며 주전 포수 양의지의 수비부담을 줄여주고 있으며, 덕분에 두산도 노쇠화로 수비력이 많이 떨어진 양의지[53]를 지명타자로 적극적으로 돌리면서 김기연을 자주 기용하고 있다. 다만 LG 시절보다 나아지긴 했어도 wRC+가 100을 못 넘기는 등, 그렇게 임팩트가 크지 않기도 하고[54], LG가 김기연 대신 차기 포수로 밀기 시작한 김범석이 시즌 중반에 잠시 맹타를 휘두르는 등 타격 재능은 충분함을 이미 드러냈으며, LG의 성적도 꾸준한 상위권 팀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한참 암흑기를 겪을 당시 탈쥐효과 소리가 나와서 LG 팬들의 상처가 크게 남았던 시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아쉬운 자원이기도 했다. 실제로 대다수의 반응도 LG에 그냥 남아있었으면 이 정도로는 기회를 못 받았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서 그다지 덜 거론되는 편이다.[55]
- 손호영★#
LG에서는 수 차례 부상에 시달리는 등 여러 이유로 1군에 자리잡지 못했고, 결국 2024시즌 초 우강훈과의 맞트레이드로 롯데로 이적했다. 그런데 롯데 이적 후 모튼 부분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9월까지도 페이스를 이어가며 140이 넘는 wRC+[56]를 기록하는 등 롯데의 최고 핵심 타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LG 입장에서도 군 제대 후 복귀한 구본혁과 시즌 중 복귀 예정인 이영빈까지 있어서 만 30세에다 유리몸인 손호영을 위한 자리는 없었고[57], 반대급부로 온 우강훈도 어쨌든 아직은 더 긁어봄 직해서 LG 입장에서도 크게 아쉽지는 않다.
7. 입쥐효과를 받지 않은 선수
- 양준혁
2000년 시즌 전에 선수협 파동으로 인한 동계훈련 불참으로 인해 5월달까지는 부진을 겪는가 했지만 시즌이 끝날 때는 wRC+ 140 정도의 상위 성적을 유지하였고, 그 다음해인 2001년에는 LG 트윈스라는 이름을 걸고 난 후[58] 첫 타격왕 타이틀 수상자가 되었고, 당연히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홈런 개수는 입쥐 전후와 비교하면 많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는 당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 탁구장이라 불릴 정도[59]로 타격 생산성이 좋은 구장이며 잠실은 예나 지금이나 타 구장에 비해 비교적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 구장[60]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흠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준혁은 전형적인 이미지의 홈런타자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 최향남
해태에서 LG로 이적한 이후 기량이 폭발한 투수. 1997~1999년 동안 LG의 에이스로 거듭났었다. 특히 1999 시즌에는 당시 김용수를 제외한 LG 투수진은 전멸한 상태나 다름이 없었을 정도로 부진했는데 이 때 최향남이 거의 유일하게 사람 구실을 했었다. - 이진영
SK 시절의 일발장타는 많이 죽어서 왔지만 2015년까지 타율 3할 이상이 5시즌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 정성훈
역시 매년 10홈런 이상씩은 쳐 주는 중장거리 타자로 LG 시절이 전성기나 다름없을 정도로 잘 해줬고, 당시 LG의 FA 잔혹사를 끝낸 선수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9년간 쌓은 WAR이 같이 입단한 이진영이 7년간 쌓은 WAR인 13.31의 2배가 넘는 27.17로 외부 FA 중에는 압도적이다. 6년차에 22.76을 기록중인 김현수 정도만이 이를 넘을 만 하다. - 류제국
다만 애초에 해외에서 보여준 것도 딱히 없고 LG에서만 뛰었기 때문에 입쥐니 탈쥐니를 논할 수가 없다. - 한대화
기록만 보면 LG에서의 성적은 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입단했고 무엇보다도 1994년 우승 당시 4번 타자를 맡으면서 팀에 공헌한 게 큰지라 입쥐효과의 사례로 볼 수는 없다. - 손주인
보기 드물게 탈쥐효과가 부정적으로 터진 사례. 원래 삼성에 있었지만 내야 뎁스가 상당히 두터워 LG로 이적했는데, 오히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암흑기를 끊어내는 일등공신이 되는 등 제 몫을 다 했다. 2018년 삼성으로 다시 돌아갈 때는 아예 2루수 주전자원이 이적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다른 2루수와 함께 폭망하면서 드물게 LG를 떠난 선수 중 실패한 사례가 되었다. 물론 당시 나이가 37살이었으니 망해도 이상할 나이는 아니었다.[61] 삼성은 이것을 보고 손주인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 다음 시즌부터 김상수를 2루로 돌리고 성공을 거뒀다. - 유원상
한화에서 애증의 존재였다가 2011년에 김광수와의 트레이드로 LG로 입단했다. 입단 후 2012년에는 평균자책점 2.19를 기록하며 리그 최강 우완 계투진으로 각성하였고, 2014년엔 희대의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나름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국대 멤버로 뽑혀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것은 덤. 2013년과 2015년 이후로는 한화에서의 모습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KIA의 나지완이 까이듯 심심찮게 까이기도 했다. KIA에서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안치홍이 동정을 받았듯 LG는 반대급부로 2014 시즌 맹활약한 신정락이 공익으로 잠시 떠나자 보고 싶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 김용의
LG에서 커리어 로우를 찍은 적이 있긴 했지만 시즌을 거듭하면 할수록 사람 구실은 했던 김용의의 당시 기대치[62]를 생각하면 LG에서 포텐이 만개한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2016년 전반기에는 부진했지만 후반기에는 1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거의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보여주면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대주자로서의 효용 가치가 크고 대타로는 어느정도 가치가 충분해 처음 왔을 때 방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입지에서 FA까지 버티는 데 성공했으니 야구선수로서는 가늘고 길게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 케이스다. 여기에 커리어 내내 야구 외적으로 사건사고에 단 한 번도 엮이지 않았다보니 선수 개인 기량에 비해 최애 선수로 꼽는 LG 팬들조차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편이기도 했다.[63] - 헨리 소사
KIA, 넥센 등을 거치다가 LG에 입단했는데 오히려 커리어 하이는 LG에서 찍었다. 일단 소사는 KIA와 넥센 시절에도 유독 잠실 야구장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LG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투심 패스트볼을 구사하던 2016 시즌 안타왕이 될 뻔한 것을 빼면 원래 뜬공 투수라서 그런 듯하다. - 임정우
- 윤지웅
이 선수는 올 때는 몇 시즌간 꽤 준수했으나, 2016 시즌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후유증으로 하락세를 겪다가 2017 시즌에 이병규의 은퇴식 당일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서 금지어로 등극하고 말았다. 차우찬
LG에서 10승을 3시즌이나 거두긴 했으나, 2017년과 2019년 후반기를 제외하면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20년에는 7월 이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입쥐를 해서 망한 사례가 되었다. 단, 차우찬의 경우 류중일 감독 시절에 당한 혹사의 여파로 보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덧붙여서, 선수 커리어 내내 어깨가 굉장히 늦게 풀리는 스타일이었다는 점 때문에 삼성 시절부터 선발 등판에 맞춰서 어깨를 풀기 위해 불펜 피칭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하는 것도 모자라 한계 투구수조차도 최대한 많이 가져가면서 셀프 혹사까지 하는 일도 많았던 편이라 우려했던 것이 터졌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삼성 입단 초기 시절에도 선발, 불펜 가리지 않고 선동열이 막무가내로 굴렸기도 하고 그 10년 동안에 신기하게도 큰 부상을 안 당한 게 아이러니. 결국 2022 시즌 이후 방출되었다.- 진해수
KIA, SK 시절 폭탄으로 핵실험을 했지만 LG 와서 홀드왕까지 먹고 평균자책점 2점대, 통산 홀드 3위까지 찍는 리그 최상급 불펜이 되었다. 이미 밥값 하고도 남은 실정이다. 이 경우는 탈갸효과라고도 한다. - 김현수
김현수는 2018년 타격왕을 차지하며 입쥐를 무시했으나, 2019년 초반기와 준플레이오프 때 역대급 부진에 빠지면서 입쥐와 그 반대의 기로에 선 상황이다. 물론 김현수는 두산 시절에도 포스트시즌만 되면 부진했던지라 입쥐와는 별 상관이 없다. 사실 두산은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진출한 강팀이어서 이게 가려진 것이지 중심타자 역할을 해야하는 LG에서 그 단점이 더욱 부각된 케이스. 물론 정규시즌에서는 에이징 커브로 조금씩 성적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한 팀의 중심타자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입쥐로 볼 수는 없다. - 김대유
이쪽은 넥센, SK, KT를 거치면서 저니맨 생활을 하다가 우연찮게 팀을 잘 만난 케이스. LG 입단 후 팔각도를 다시 사이드암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패스트볼 구속이 오르면서 영점도 그대로 잡힌 것이 결정적이었는데, 그 결과 데뷔 첫 홀드, 데뷔 첫 승리를 기록하는 등 LG에서 본인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2022 시즌 이후 박동원의 보상선수로 KIA로 이적했다. 손주인처럼 탈쥐 후에 심하게 부진하고 있다. 또한 LG에서도 잘했기 때문에 KIA에서 설사 잘한다고 해도 탈쥐라 보긴 어렵다. - 박해민
LG에 오자마자 잠시 부진했다가[64]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로 달려갔다 결국 삼성 시절의 평균 스탯과 비슷하고, 도루 개수는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감소하고 있다. 다만 투고타저 시절과 비슷한 수치이기 때문에 타격 생산성이 미묘하게 좋아졌으며 LG의 외야 수비가 안정되었다.
- 박동원
FA 계약을 맺고 LG에 오자마자 LG의 하위타선을 책임지고 있으며, 한때 홈런 1위를 달리기도 했고, 유강남이 떠날 시의 우려도 말끔하게 지워주면서[65] 시즌 초반의 장타 갈증[66]을 해소시켜줬던 선수다. 또한, 한국시리즈에서 팀의 우승을 이끈 결정적인 홈런 2방을 날렸다. 그래서 한 시즌만 뛰고도 모범 FA로 평가받고 있다. 위의 박해민과 비슷한 사례.
8. 이적 배경
여기서는 팀을 떠난 선수가 어떤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됐는지 배경을 서술한다.- 홍현우, 이용규 ↔ 이원식, 소소경(2004.11.2): 이 트레이드의 주 목적은 FA 먹튀가 되어버린 홍현우 털어내기였지만 결과적으로 핵심은 이용규가 되었다. 이용규는 LG 시절 0.129의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였지만 KIA로 넘어가자 3할 타자로 대 변신하였고 태극마크도 달고 병역특례도 받고 2010년에는 3점홈런, 만루홈런을 기록해 1이닝 팀 사이클링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1년에도 타율 0.333, 출루율 0.427, OPS 0.828를 기록한 뒤 결혼까지 하여 이용규는 박병호와 함께 탈쥐효과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반면에 이원식은 2005년 13경기 16이닝 평균자책 3.38찍고 1년만에 은퇴하였고 소소경도 2005년에 2경기 뛰고 은퇴하였다. 결국 이 트레이드는 LG가 KIA에게 선사한 조공 트레이드 1호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고 그리고 이순철이 LG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금지어로까지 지정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용규 대신 살아남은 이대형은 해가 지날수록 깝깝한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이 트레이드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재미있는 건 이후 이대형은 LG를 떠나 KIA로 갔는데, 희대의 타고투저 덕을 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부상병동이던 KIA에서 끝까지 사람구실을 해준 거의 몇 없는 선수였다. KT로 이적해서는 3년연속 3할타율을 기록중이고 2016년엔 도루까지 회복했다.
-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2009.4): LG가 KIA에게 선사한 조공 트레이드 2호. 정성훈 영입으로 자리가 없어진 김상현 처리는 물론 선발 투수를 급히 보강하기 위해 이뤄진 트레이드 였지만 결국 추진자인 김재박 감독은 강철민을 써보지도 못했다. 김상현과 박기남은 2009년 KIA가 우승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2009년에는 KIA 팬들이 사랑해요 LG를 입에 달고 살게 하였다. 둘 중에 한 명 만 잘 해줘도 무조건 KIA의 승리였는데 둘 다 터져서[67] LG가 제대로 조공한 게 되어 버렸다. 참고로 처음에는 김상현과 강철민의 1:1 트레이드였다. 박기남은 KIA에서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찔러본 거였는데, LG가 너무 쉽게 승낙해서 놀랐다고.
- 정의윤, 신재웅, 신동훈 ↔ 임훈, 진해수, 여건욱 3:3트레이드 (2015): 2015년 후반기에 이루어진 트레이드이다. 당시 LG는 큰 잠실 구장 특성상 수비 범위 넓은 빠른 외야수를 원했고, SK는 작은 행복드림구장 특성상 한방있는 선수를 원했다. 그리고 그 두 팀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트레이드를 했다. 당초 트레이드는 정의윤과 임훈 1:1로 하려 했으나 선수를 끼워 맞추느라 3:3이 된 것이다. 트레이드 직후 SK에서는 정의윤을 4번 붙박이로 출전시켰으며 정의윤은 9월 월간 MVP를 따게 된다. 임훈 또한 LG에서 좌익수로 꾸준히 나오며 준수한 성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2016년에 둘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게 되고 말았는데 정의윤은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시즌 초반 타점 1위를 달리는 것에 비해 임훈은 가끔 출전하고 만다. 2017 시즌 이후 평가해보면 LG도 손해만 본 것이 아닌게 진해수가 커리어하이를 찍으면서 홀드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 허나 2018년에는 진해수소폭탄으로 리셋된 사이 신재웅이 활약하면서 다시 LG의 손해로 평가받는다.
- 최승준(보상선수)↔정상호(FA)(2015 시즌 종료 후): SK는 FA로 LG에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2013년 2군 홈런왕을 차지한 최승준을 지명한다. 시범경기 내내 최승준은 연거푸 삼진만 당하며 SK 팬들 사이에서도 최승준에게는 탈쥐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다.하지만 정작 시즌이 시작하고 1달이 약간 지나고 나서 최승준은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기 시작했고 6월에만 홈런 10개를 쏘아 올리고 특히 6월 28일 KT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에 반해 정상호는 신인들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내주면서 가끔 나온다.
그리고 결국에는 7월 2일 대참변이 터졌다. 2대 1로 앞서던 상황에서 마무리로 올라온 임정우에게 정의윤과 최승준이 백투백 솔로홈런을 날린 것. 취약한 포수진 보강을 위해 정상호를 영입한 LG였지만 정상호가 32억 받는 백업포수로 전락해 먹튀가 되어버리고 이 참변이 터지는 바람에 양상문의 목을 조이는 결과가 되었다.
2017년 이후에는 최승준도 1군에서 그다지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애매해지긴 했지만, 정상호가 백업에 머물러있는것도 마찬가지라서...
- 박종호↔최창호(1998): 1998년 현대는 정규 리그 1위를 질주하면서도 확실하게 우승을 노리기 위해, 당시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던 이명수를 대신하여 2루를 맡아 줄 젊은 내야수를 보강하고자 했다. 결국 투수진 보강을 노리던 LG와 내야수를 찾던 현대의 이해관계에 따라 박종호를 상대로 LG에 트레이드됐다.
- 박병호, 심수창 ↔ 김성현, 송신영 2:2트레이드 (2011): 당시 2011년 내려가기 전 4강싸움을 하던 LG는 불펜에 믿을맨이 없는 투수진이 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즉시전력인 송신영과 유망주 투수 김성현을 영입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대는 많이 받았지만 터지지 못한 유망주 박병호와 덤으로 심수창을 보낸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에 뒷돈이 있다던가 하는 넥센의 역대급 조공 트레이드로 평가받았지만....
막상 까보니 박병호는 파괴신이 되어 KBO를 평정한 다음에 넥센에 포스팅 비용 1,250만을 안겨주면서 천조국의 트윈스로 건너갔고,[68] 심수창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1승을 넥센에서 깼다. 반면 LG는 송신영이 불펜에서 활약하긴 했지만 팀이 광속으로 추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게다가 송신영은 LG에서 꼴랑 19경기 뛰고 FA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던 투수 유망주 김성현은 뭐 다들 잘 알다시피... 결국 손해보는 트레이드가 되었다. 여기에 2018년 2011 시즌 직후 LG가 넥센에 뒷돈으로 15억 원을 줬다는 중앙일보 기사가 나왔다. LG, 아리송한 ‘FA’ 참조. 이렇게되면 LG는 반 시즌 반짝 쓴 송신영과 승부조작범을 받겠다고 KBO 최고의 슬러거에 15억을 그대로 조공해버린 셈이다.
- 서건창 방출 후 신고선수: 사실 이 경우는 서건창이 대단한 경우로, 당시 LG가 1타석 출장에 그친데다가 부상 중이었던 선수를 방출한 것이기 때문에 LG의 잘못은 없다.
- 박경수 2014 FA : 관심만 받고 터지지는 않던 내야수였던 박경수가 2014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하였다. 그 당시에 박경수가 홈스틸을 2번이나 기록하고 후반기 성적이 최고로 올라왔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구단은 잔류를 시키지 않았으며,[69] 그로 인해 KT로 이적하고 말았는데, 안 터지던 포텐이 타자 친화구장을 가진 KT에서 폭발하며 주장까지 맡는 대선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KT는 신생팀 혜택으로 보상선수를 내 주지 않아도 되었었기 때문에 결국 이득은 아무것도 없이 조공만 해준 셈.
9. 구단별 손실 관계
트레이드를 한 팀별로 LG의 손익분기점을 따져보면 KIA, 넥센과의 트레이드는 사실상 LG 팬들이 잊고 싶은 완전한 흑역사, SK와의 트레이드는 정의윤, 최승준, 임정우, 정상호, 진해수 등을 고려해보면 손해는 맞지만 앞선 두 팀보단 덜하다. 롯데, 두산, 한화와의 트레이드는 소소한 이득을 봤거나 이득을 따지기 힘든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그 중에서 김상현, 박기남, 이용규 등을 보낸 KIA와, 박병호, 김성현, 송신영, 이택근,
박현준을 받은 SK와의 트레이드도 흑역사로 볼 여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 시즌이나마 선발로 잘 써먹었고, 같이 이적해 온 윤요섭이 2012년, 2013년에 어느 정도 활약을 했고, KT로 넘어가면서 투수 유망주 이준형을 받아왔으니[71] 아주 실패한 트레이드로 보기는 힘들다.
한편, 탈쥐효과에서 삼성 라이온즈 문서는 2013년까지 아예 없었는데, 재계 라이벌인 삼성의 선수 트레이드는 사실상 절대 불가라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 이 불문율은 23년[72]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 2012년 시즌 후에 23년간 이어져 온 불문율을 깨뜨리고 LG가 현재윤, 김효남, 손주인을 받고 삼성이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을 받는 3:3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이 딜은 양쪽 모두의 승리라는 것이 중론. 현재윤은 부상이 있긴 했지만 2013시즌 잠시나마 LG의 주전포수 역할을 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고, 손주인은 2017년까지 붙박이 2루수 주전으로 활약하며 강승호, 김용의, 박지규 따위의 수비형 선수를 볼 일이 없게 해 줬다. 김태완과 정병곤은 잠깐이었지만 2013년도 삼성의 대타/대수비 역할을 잘 해주면서 우승반지를 가져가기도 했다. 물론 LG가 손주인을 1군에서 잘 써먹다가 반품했고, 김태완과 정병곤이 롱런했으니 LG가 더 이득에 가깝다.
정의윤, 신재웅 - 임훈, 진해수 트레이드는 정의윤이 2015년은 물론 이듬해에도 대폭발한 반면 임훈은 2015시즌 그럭저럭 좌익수로 선방하면서 LG가 아주 손해본 트레이드는 아니라는 평이었으나 2016시즌 들어 망해버리면서 SK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정상호 - 보상선수 최승준+보상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건 그간 탈쥐효과로 놀림받아온 루즈 트레이드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두 선수는 어렵게 비교할 필요도 없이 16안타 vs 17홈런으로 이미 LG가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다. 거기다 정상호는 예의 유리몸끼가 도져서 6월까지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 리빌딩 운운하더니 자기 팀대신 SK 중심타선 리빌딩해준 양상문 감독에 대한 LG팬들 사이에서 신뢰는 한동안 가라앉았지만 양상문이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자 다시금 평가가 바뀌었다.
2017시즌에는 정의윤과 임훈이 지난 해만한 활약을 못 하는 가운데[73] 진해수가 리그 홀드왕 타이틀을 먹어버리면서 양팀 모두 손해는 안 본 트레이드로 남았다.
2018년 군필 키스톤 강승호와 30대 노망주 문광은을 트레이드 하였다. 내야 유망주들은 그래도 그럭저럭 있는 반면 투수진이 심히 부족한 LG와 키스톤콤비 자원이 이래저래 부족한 SK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는데, 강승호가 이적하자 마자 뛰어난 활약을 하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하며 또 하나의 탈쥐사례가 추가될 가능성이 생겼었다. 그런데 강승호가 음주 접촉 사고를 내고, 문광은은 한동안 1군에서 보이지 않다가 2019년 갑작스럽게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며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어 트레이드의 손익관계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생겼으나, 문광은이 2020시즌 끝나고 팀에서 방출되면서 사실상 SK의 승리였다. 강승호가 최주환의 보상선수로 나가면서 두 팀 모두 트레이드 당시 선수들이 없어지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강승호를 데리고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최주환의 보상 선수로 내줌으로써 유망주들을 보호해낸 SK가 조금 더 이익이 된 트레이드가 되었다.
2021년에는 양석환, 남호와 함덕주, 채지선의 13년만의 한 지붕 두가족 트레이드가 진행되었다. 애당초 메인은 양석환과 함덕주였고, 남호랑 채지선은 어떻게보면 그냥 얹혀서 같이 간 케이스이며 2021~2022년에는 양석환은 두산으로 오고 날라다닐 때, 함덕주는 LG로 와서 부화도 못한 상태라는 평을 내렸다.[74] 그러다가 잠시 윈윈 트레이드로 전환된 건 2023년. 양석환은 여전히 두산에서 클린업 자리를 지키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고, 함덕주가 드디어 부활 신호탄을 쏘며 LG의 29년만의 우승의 일조를 하며 이제서야 함덕주가 번식을 하는 듯 했다.[75] 그러고 양석환, 함덕주 둘 다 FA 대박을 터트이며 원 소속팀 잔류에 성공했고 양석환은 여전히 두산의 클린업 자리를 맡으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해 함덕주는 부상 장기화로 제 2의 xxx가 될 우려를 사는 중이다. 고로 현 시점으로는 두산의 완승으로 남아있다.
10. 정리
역대로 살펴보자면 LG에서 터진 선수도 많고 밖에 나가서 망한 선수도 많다. 하지만, 탈쥐효과는 선수 입장에서 따지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탈쥐효과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LG에서는 저조한 성적 끝에 일부는 은퇴 종용까지 받는 등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탈쥐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안정적인 선수생활과 고연봉을 보장받곤 하기 때문이다.이런 효과가 있다기 보단 2000년대 들어와서 LG의 처참한 6668587667의 성적으로 타팀 팬들에게 주목을 받은 면이 크다는 쉴드가 있는데, 사실 이는 KBO MVP라는 단적인 예로 간단하게 논파가 가능하다. 선수층이 두꺼워서 대형 트레이드가 자주 일어나는 MLB와는 달리 선수층이 얆아서 대형 트레이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KBO 리그에서는 보통 각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거나 그에 준하는 선수들이 MVP를 받기 마련이다. FA 자격 취득에 고졸 9년, 대졸 8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중간에 군복무 2년까지 고려하면 FA시장에 나올 때 쯤이면 이미 전성기를 지나서 노쇠화의 길을 걷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간혹 MVP를 노릴 수 있는 선수가 FA시장에 나온다 하더라도[76] FA나 포스팅을 통해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노리는데다가 해외 진출을 안하더라도 이정도 선수면 팀의 간판선수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소속팀에서 안간힘을 쓰고 붙잡기 마련이라 이적 후 MVP 수상은 더더욱 나오기 힘들다. 이 때문에 30년이 넘는 KBO리그 역사에서 타팀으로 이적한 다음에 MVP를 받은 선수가 고작 6번! 문제는 이 6개 중 5개가 전 소속구단이 LG인 선수들이 받았다는것.[77] LG가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MVP를 배출한 적이 없는 구단이란 걸 생각해보면 정말 기이할 노릇. 2013년과 2015년에 처음 1군에 올라온 NC와 KT도 각각 2015년과 2020년에 MVP를 배출하였다.
이적생 출신으로 MVP를 받은 6명 중 유일하게 LG 출신이 아닌 나머지 한 명은 쌍방울에서 이적해서 현대에서 2000년 MVP가 된 박경완인데, 이쪽은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쌍방울의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팀의 기둥을 판[78] 현금 트레이드였기에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힘들다.
다만 용병을 포함하면 2007년의 리오스와 2019년의 린드블럼도 있긴 하다. 허나 이들은 투수라 얘기가 좀 다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 둘은 원 소속팀에서도 못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적하게 되었을 뿐... Lg 팬 입장에서 둘다 홈구장이 같은 두산 소속으로서 저들이 MVP를 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답답할 것이다.
또한 LG가 보낸 선수 중 KBO 골든글러브를 1회 이상 받은 선수로는 윤덕규, 김상현, 이용규, 김재현, 김상호, 박종호, 심재학, 임선동, 박병호, 그리고 서건창 등등이 있지만, 타팀에서 LG로 이적한 선수 중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사례는 1994년의 한대화와 2001년의 양준혁뿐이다. 게다가 이 두 선수는 이미 이전팀에서부터 다수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선수들였음을 감안하면 LG에 들어와서 성장했다고 할 수 없다. 한대화는 LG에서의 3년간 팀 내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고 양준혁은 LG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1년 타율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단 한대화는 나이 때문에 2년 반 동안 LG에 있다가 쌍방울로 가서 은퇴를 했고 양준혁은 2년간 3할 타율 25홈런을 쳤지만 FA 계약 조건 때문에 LG에서 계약을 다시 고려했지만 친정팀 삼성이 먼저 다가와 러브콜을 하면서 이듬해 모두가 잘아는 유명한 2002년 한국시리즈 에서 본인이 이루고 싶던 친정팀의 우승과 본인 커리어 첫 우승을 갖는다 단 그 때 10년연속 3할 달성이 실패되었지만 2003년 다시 부활했다.
이 외로 탈쥐효과로 기록들을 갱신하는 등 어마어마한 사건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손지환의 무보살 삼중살이나 이용규의 3점홈런과 만루홈런으로 팀 이닝 사이클링 홈런, 박병호의 2012년 3관왕(홈런, 장타율, 타점)에 이은 2013년 4관왕[79]& 2012년, 2013년 MVP 수상이 있다.
유독 이 팀은 탈쥐효과와 인연이 없다. 그나마 감독 쪽으로 딱 한명을 받아서 2위까지 해봤으나 입시비리로 흑역사가 되면서 의미가 사라졌다. 그나마 2024년에 손호영이 성공사례를 쓰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또한 한화도 눈에띄는 활약을 했던 선수가 없으며[80], 삼성도 LG 선수가 이적하는 경우도 얼마 없었고 탈쥐효과도 그렇게 재미를 보지 못한 편이다.[81]
탈쥐효과에 반론을 제기한 최훈의 웹툰이다. 결론만 따지자면 이게 다 잠실 때문이다라는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당장 같은 잠실 구장을 쓰고 있는 두산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최훈이 LG팬이라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 결국 최훈도 탈쥐효과를 인정했다.
그나마 현재는 구단이 꾸준히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성공하고 이호준 타격코치의 부임 이후 타자 육성 문제도 해결되면서 2023년에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성공했고, 이 우승도 자체 육성한 선수들이 주축이 된 덕분에 과거에 비하면 탈쥐효과 자체는 많이 없어진 편. 오랫동안 돌고 돌아서 구단의 체질 개선에 성공한 덕분에 양석환 이후로는 그래도 탈쥐효과에 추가로 리스트를 올리는 선수를 보기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82] 설사 탈쥐효과가 나오더라도 과거처럼 LG가 못 키워서라기보단 김기연이나 손호영의 사례처럼 LG의 기존의 두터운 전력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해서 다른 팀에서 터지는 케이스도 볼 수 있을 정도.
[1] 박종호가 오기 전까지 현대의 2루수 자리는 매우 오랫동안 구멍에 가까웠다.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에는 3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를 받았던 정구선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이렇다 할 2루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태평양 돌핀스로 넘어와서까지 이 문제가 아킬레스 건으로 지적됐을 정도였는데, 이때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영입했던 선수가 염경엽, 이근엽 등이었지만 공격력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말았다. 박종호 이전에는 이명수도 데려왔지만 나이가 많기는 매한가지였고 결국 팀에서 에이스 노릇까지 했던 최창호를 내주고 박종호를 데려와서야 오랜 구멍을 메우게 된다.[2] 원래는 기존의 2루수 이명수가 따로 있어 박종호는 2루와 3루를 번갈아 보다가 후에 철벽수비와 한방을 자랑하던 톰 퀸란이 오고 김경기가 이적, 이명수가 1루로 가면서 2루수로 완전히 안착했다.[3] 또는 밀레니엄 4박이라고 불렀다.[4] 역대 최초 스위치 히터 타격왕. 그리고 타격왕에 오르는 타자는 그 해 우승을 못한다는 징크스를 완벽하게 깼다.[5] 이 기록은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의 펠릭스 호세가 63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경신했다.[6] 2002년 0.266, 2003년 0.293[7] 현대의 자율 훈련에 본인도 너무 만족한 나머지 훈련을 제때 하지않고 노는것에 정신 없었다고. 박동희 칼럼 참고.[8] 2003년 8월 29일 수원 두산전~2004년 4월 21일 수원 현대전.[9] 종전 국내 기록은 1999년 박정태의 31경기 연속 안타, 아시아 기록은 1979년 히로시마의 다카하시 요시히코의 33경기 연속 안타. 다만 박종호의 기록은 2년 연속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 시즌 연속안타 신기록은 여전히 박정태가 가지고 있다.[10]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결과,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걸리고 링거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경기에 출장했다고 한다.[11] 2004년 4월 18일 두산 베어스와의 대구 홈 경기에서 두산 선발 게리 레스에게 1~3번째 타석에서 범타로 막히며 37경기 연속 안타 기록 달성 실패 위기에 몰렸고 4번째 타석에서도 플라이볼을 날렸으나 좌익수가 잡지 않아 안타로 기록되면서 기록행진을 이어 나갔다. 마운드에 있던 레스가 화를 냈던 건 덤.[12] 당시 현대 감독.[13] 참고로 진필중은 이 FA 계약 이후 부진하면서 입쥐효과의 대표 사례로 불리게 된다.[14] 두 달만에 17홈런을 쳐 버린 최승준에 의해 깨졌다. 근데 이쪽도 탈쥐. 그뿐만 아니라 당시 최승준을 가르친 SK 와이번스의 코치 중 한 명이 바로 손지환이기도 했다. 물론 메인인 진짜 타격코치는 정경배였지만, 어쨌건 손지환도 보조타격코치였으니 손지환도 타격지도 자체는 했었다. 아무튼 이런 배경때문에 당시 인터넷 스포츠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15] 그래서 2009년의 김상현은 우주의 기운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이들 나온다. 더구나 당시 김상현의 홈런을 보면 김상현의 KIA 시절 홈런을 보면 변화구가 정타로 맞지 않거나 넘어가긴 힘든 발사각을 가진 타구가 김상현의 어마어마한 힘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보면 비교적 사이즈가 작은 무등 야구장과 월명 야구장의 덕도 있었다. 물론 그 전의 홈구장이 잠실이긴 했지만. 또한 최희섭을 거른 뒤 김상현에게 승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피꺼솟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여기서 집중력이 발휘되어 좋은 결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여러 요인이 겹쳐 드라마틱하게 1시즌에 모두 불태우고 우승반지까지 가져단 선수다 보니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까지 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고 실제로도 도핑 검사에서 걸린 적도 없다. 더 알고 싶다면 선수 항목으로.[16] 그나마 같은 1루수 자리에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라는 외국인 레전드 선수가 있어서 경쟁자라도 있었지만, 그 테임즈마저도 2015년에만 박병호의 수상을 막는 정도(박병호를 제치고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로 끝났다. 그나마도 테임즈가 40-40 클럽 달성이라는 전무후무한 KBO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세웠으면 2년 연속 50홈런 겸 4년 연속 홈런왕의 박병호에게 돌아갔을 수도 있다. 둘 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대기록이지만 40-40이 더 월드클래스 기록이라서 그랬다. 2014년에도 같은 팀의 서건창의 200안타 임팩트로 MVP를 넘겨줬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팀의 서건창과 강정호 3명이 서로 특출나서 너무 압도적이라 비교가 힘들었다.[17] KBO 역대 최다 수상[18] 2015년부터 144경기로 늘어났다고 해도 100경기 약간 넘게 나오던 과거 3년과 달리 거의 전경기에 다 나올 정도로 이후 3년은 달랐다.[19] 워낙 탱탱볼 시즌이었던지라 wRC+는 15,16에 비해 낮지만 어차피 LG에 있던 어떤 해보다 높다.[20] 물론 애초에 양석환이 나오기 전에도 MBC(LG 전신)에서 OB(두산 구 명칭)로 넘어온 김상호로 반박이 된다. 다만 김상호가 MBC를 나온 뒤 잠실 홈런왕에 오르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차가 있고, 그 시즌을 제외하면 MBC 시절 성적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서 완벽한 탈쥐라기엔 조금 애매하지 않냐는 평. 사실 이것도 김상호가 MBC 시절에도 그렇게 타격이 못써먹을 선수는 아니었던 점도 컸다. 공교롭게도 탈쥐효과를 본 선수 중 LG에서도 어느 정도 활약하고 떠났다는 점에서 양석환과도 비슷한 편.[21] 대신 이 해, LG는 2년간 헤매던 함덕주가 부활하면서 29년만의 우승반지를 끼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돌고 돌아 3년만에 윈윈 트레이드가 된 셈이다.[22] 이는 명백한 본인의 착각으로, 20시즌 중반 류중일 감독은 상무에서 막 전역한 양석환을 김민성, 라모스가 부상으로 결장한 1,3루에 꾸준히 기용했으나 어정쩡한 타격과 최악의 수비로 인해 벤치에 앉게 된것이다. 오히려 류중일은 양아들이 양석환이냐는 소리까지 들을정도로 양석환에게 기회를 많이 줬었다.[23] 다만, SK를 마냥 약팀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SK의 창단 초창기는 1999시즌 97패를 적립했던 최약체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그대로 인수했기에 꿈도 희망도 없는 독보적 꼴찌였으나, 2003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고, 2005년에도 가을야구에 진출했던 팀이었다. 그나마 초대 감독이던 강병철이 이승호,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채병용을 신나게 굴리며 구단을 성장시켰고 2대 감독 조범현이 정근우, 최정 등 야수진들을 훌륭하게 육성하고 단련시켜 꾸준히 가을야구를 갈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어놨다. 김성근 감독 본인도 부임 직전 SK가 6위를 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조범현 감독이 선수 육성을 잘해놓고 갔다며 극찬했다.[24] 이 선수 역시 FA 보상선수의 또다른 신화를 썼다.[25] 위에 있는 염경엽도 넥센과 SK 소속 때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26] 이택근 이전까지 FA 타자 최고액은 삼성 심정수의 4년 옵션 포함 60억이였다.[27] 이 액수가 하나의 기준이 되면서 다음해인 2012 시즌 종료 뒤에 김주찬이 4년 50억 계약을 맺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다시 한해 건너 2013시즌 종료뒤에는 이용규 4년 67억, 정근우 4년 70억으로 본격적인 FA 대폭등 시대가 도래하였다.[28] 이런 FA 대폭등은 마침 프로야구의 인기가 대폭발한 시점에 가장 돈 없다는 넥센이 4년 50억이라는 충격적인 액수를 들고 나오면서, 최소한 우리가 저기에 밀릴 수는 없다는 데에 각 구단 고위층들과 팬들의 생각이 일치한 결과이다. 여기에 여러 재벌들이 모기업의 악재를 상쇄하기 위해서 기업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회수가 불가능한 정도의 거액을 쏟아붓기 시작하였다. 그 정점이 바로 2016 시즌 종료 뒤에 MLB에서 복귀한 롯데 이대호의 150억 계약이다.[29] 다만 이택근은 이미 넥센 시절부터 허리부상이 있어서 충분한 휴식과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현금 트레이드 이후 팀 분위기 때문에 무리한 출전을 강행하다가 몸상태가 최악으로 망가져서 사실상 유리몸에 먹튀로 전락한 측면도 있다. 거기에 중견수비만 가능한데 외야수가 넘쳐나는 팀 상황상 때문에 잘 하지도 못하고 본인도 꺼리는 1루수와 좌익수로 출전하면서 수비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FA계약 과정에서 본인이 스스로 유학드립, 50억드립을 치면서 원소속구단을 물먹인건 LG팬들 입장에선 엄연히 빡치는 행동인건 맞다. 여러가지 전후상황을 감안해보면 이택근은 본인이 원치도 않았던 트레이드로 정든 친정팀을 떠난 것도 불만인데, 새로 들어온 팀의 환경도 자신이 최적으로 뛸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다 보니 불만이 심각하게 쌓여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렇다고 대놓고 LG를 엿먹인 건 누가봐도 잘못된 행동이며 이때부터 전 구단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성에 대해 운운하는 글들이 많이 생겼는데 2012년에 다시 넥센으로 돌아가서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리다가 2015년에 같은 팀 후배를 방망이로 때리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되어 선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하게 되었다.[30] MLB 통산 1400안타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KBO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중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는 많았으나 로니만큼 높은 경력을 가진 선수는 거의 없었다. 이 분 빼고.[31] 한화 약410억 원[32] 통산 성적으로 봐도 홈원정 편차가 상당히 큰 투수였다. 고척 다음으로 통산 커리어 내내 많이 등판한 구장이 바로 잠실인데, 투수 친화 구장인데도 커리어 통산으로 2023년까지 잠실 등판 경기에서 4.82의 ERA로 부진하면서 집을 심하게 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입쥐효과라기보다는 원래 기록하던 스플릿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정도로 잠실에서 이상하리만치 등판 성적이 안 좋았던 비슷한 예시로는 바로 전 삼성의 투수 윤성환 정도가 있다.[33] 선수가 실력 외적인 문제로 인해 이적한 경우, 제도적 문제 등으로 인해 LG가 키워 보기도 전에 선수를 빼앗긴 경우 등.[34] 다만 이용규 본인이 훗날 스톡킹에서 얘기한 바로는 싸운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코치의 조언에 따라 연습하다가 코치가 안 볼때엔 본인의 스타일대로 연습해보기도 했었다고. 이게 맞는 말이라면 이용규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코치가 뒤에서나마 계속 보고 있었고 코치 본인의 말을 안 듣는다 생각해서 찍혔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용규의 말대로 싸우거나 찍힌건 아닌데 당시 막장이었던 감독이나 단장이 지들 멋대로 보낸걸 수도 있다.[35] 이 당시 프로야구 지도자들의 보수적인 자세로 자기들 말을 안 따르는 선수들을 여러 방식으로 타팀에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아마 야구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부분이 많아 지도자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야하지만 프로에선 최소 2010년대부터 지도자들이 선수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모습이 있어서 선수와 코치의 소통으로 선수가 커가는 모습이 보여지는 현재로써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되었다.[36] 심지어 야구 팬들은 이용규가 원래 LG 출신인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 언급조차 안되고 있는 타이밍에 이런 얘기가 나온 것.[37] 그 한 경기는 우리 히어로즈와의 경기였고 상대투수는 당시 서건창의 데뷔 첫 삼진을 잡던 송신영.[38] 원래 서건창은 NC에 입단하기 위해 테스트 준비를 했었던 것인데 당시 박흥식 코치의 추천으로 좀 더 빨리 넥센에 가서 테스트를 거친 후 신고선수 신분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39] KIA는 예전부터 은퇴 전에 몰려있던 선수를 주워와서 쏠쏠하게 활용한 사례가 많았다. 정성훈이라거나 나주환이라거나.[40] 당시 1차지명이 없던 시기라 1라운더 지명이면 현 1차지명으로 볼 수 있다.[41] 물론 SK에서 뭐라도 보여줬다면 충분히 목록에 포함이 되었을 수 있고 애당초 두산으로 가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42]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한 때 소원했지만, 2011년 시구를 하고, 이후 2015년 우승 축하 영상을 구단 유튜브를 통해 보내면서 다시 관계를 회복.[43] 여담으로 김태군이 2017 시즌이 끝나고 나이 서른에 입대할 때까지 NC는 그를 대체할 포수를 단 하나도 키워내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부 육성도 시도했고, 미국물 먹은 유망주를 밀어보기도 했고, 은퇴한 선수를 현역으로 복귀시키기도 하고,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투수로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포수를 바꿔도 봤으나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결국 2018 시즌 종료 후 구단의 선택은 현질(...). 린의지 내[44] 오히려 LG는 원종현이 부상당했을 때 그를 신고선수로 전환시키면서까지 기다려줬다.[45] 사실 투수의 경우 이렇게 전 소속 팀에서 정리가 되거나 방출 요청으로 팀을 떠난 이후 다른 팀에서 여러 이유로 자리를 잡고 핵심 투수가 되는 경우가 여러 팀을 돌아봐도 꽤 있다. 이 경우는 그냥 팀을 잘 만난 케이스인데, NC의 경우 원종현 외에도 김진성이 비슷한 케이스이며 키움의 경우 KT에서 방출 후 핵심 좌투 불펜이 된 이영준이 이렇고, 한화의 경우 전 삼성 소속이던 윤대경이 이와 유사한 케이스이며 LG의 경우 넥센-SK-KT에서 오랫동안 저니맨 생활을 하다가 2021년에 다시 사이드암으로 팔각도를 낮춘 이후에 새로운 좌투 셋업맨으로 자리잡은 김대유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김대유는 넥센에서 SK로 2차 드래프트, SK에서 방출 후 KT로, KT에서 2차 드래프트 형태로 LG로 이적을 한, 무려 세 번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케이스.[46] 사실 이때도 홈런 수는 많았지만 볼넷 대비 삼진이 너무 많은 것 때문에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이 성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47] 팀이 스코어 1:2로 지던 상황에서 정의윤은 동점 솔로홈런, 최승준은 역전 홈런을 쳤다.[48] '걱정말아요 그대' 의 패러디.[49] 이 경우 기존 소속팀에서 보호한 20명 외의 다른 선수를 신생팀에서 임의로 선수를 가져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2 조영훈, 송신영 김태군 등이 이 혜택으로 NC에 이적했다.[50] 어쩌다 선발출전하더라도 끝까지 경기를 소화하기보다는 대타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51] 물론 박해민의 22시즌은 성공적이었고, 포수는 육성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당시 팀 내 특유의 베테량 선호 기조로 인해 기회를 매우 적게 주고, 보호선수로 묶지 않은 것은 LG의 큰 실책이다.[52] 사실 이주형이 기회를 적게 받은 이유는 좋지 못한 수비력때문이다. 포지션이 고정되지 않아 1군에서 써먹기는 영 애매한 수준이었는데 마침 감독도 주전 맹신 비주전 불신으로 쓸놈쓸 운영하는 것에 도가 트여있는 류중일, 류지현이었기때문에 LG에선 12경기 13타석만 나온 것이 전부이다.[53] 사실 FA로 NC에 한 번 다녀왔을 당시부터 이미 지명타자로 자주 빠졌을 정도로 2019년부터는 한 번도 포수로 단일 시즌 900이닝 이상을 먹은 적이 없었다.[54] 9월 18일 기준 95.4다. 물론 포수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준수한 것은 사실.[55] 쉽게 말하면 과거에는 LG가 유망주는 있는데 선수를 키워내지를 못해서 팀은 팀대로 바닥을 드러내고 선수는 다른 팀에 가서 잠재력이 터지면서 '탈쥐효과'라고 놀림받았다면, 2020년대 들어서는 LG도 이제 선수를 키워내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오르고, 동시에 뎁스도 두터워지면서 실력은 있음에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자연스레 기회를 찾아 다른 팀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 형태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옆집 두산 베어스와 같은 길을 걷는 셈인데, 화수분 야구로 전성기를 열었던 2010년대 두산도 팀에서는 1.5군 역할을 전전하다 타 팀에서 확실한 주전이나 키플레이어로 자리잡은 사례가 심심찮게 나왔음에도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만큼 '탈돡효과'라는 말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과거 LG가 유망주들에게 자리를 주고 키워볼 만한 상황임에도 도저히 키워내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나올 정도로 육성 수준이 처참했다는 뜻이기도 하고.[56] 만약 이 성적을 유지하고 규정타석을 채웠다면 리그에서 거의 다섯손가락에 근접하는 성적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홈런 선두 맷 데이비슨 바로 다음가는 수준이다.[57] 실제로 롯데 이적 후에도 부상 탓에 온전히 시즌을 소화하지 못하며 규정타석을 못 채웠다.[58] MBC 청룡 시절까지 포함하면 1988년 김상훈이 있다.[59] 현재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도 타자 친화구장인 것이 사실인데, 그 당시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좌우 95m, 중앙 펜스 117m였다. 당연히 이 시기부터 전통의 타자 친화구장으로 악명이 높았었다.[60] 다만 잠실은 양준혁이 전성기를 보내던 90~00년대와 LG에 입단했던 2000년과 2001년 당시에는 현재 펜스까지의 거리인 100-125-100이 아니라, 지방 구장에 비해 너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인해 95m로 펜스를 당겨서 운영했던 시기였다. 그 때문에 이 당시 좌측 담장은 류지현이 이 곳을 당겨서 넘기는 홈런을 많이 뽑아내서 류지현 존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었을 정도. # 현재의 외야 크기로 다시 환원된 것은 양준혁이 삼성으로 다시 돌아간 뒤인 2003년의 일이며, 잠실은 일본프로야구 구장 중에서는 나고야 돔,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등의 구장과도 비슷한 편이다. 대신 중앙 담장까지의 거리가 NPB 구장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먼 편이며 이 때문에 펜스 높이는 KBO 리그 전체 구장 중에서도 꽤 낮은 편.[61] 사실 손주인은 이미 2017년 중반부터 에이징 커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수비 실책도 많아지고 배트 스피드가 느려져서 이미 퇴보하고 있었다는 뜻. 어차피 어느 팀으로 옮겼더라도 이미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62] 사실 당시 두산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위치긴 했다. 당시에만 해도 주로 키스톤 자원으로 분류가 되었었는데, 비슷한 연배의 선수로는 이 자리에 붙박이 주전으로 고영민이 있었기 때문에 설 자리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입단한 지 얼마 안 돼서 트레이드된 것도 있다.[63] 정작 팬 서비스는 꽤 호불호가 갈렸다고 한다. 선수 개인의 루틴에 따라 팬 서비스도 기복을 심하게 타는 유형으로 꼽히는 선수.[64] 다만 4월에 부진하는 건 삼성 시절에도 똑같았다.[65] 오히려 유강남이 부진과 부상으로 2023시즌을 망치며 LG, KIA, 롯데 포수 바꾸기의 실익은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66] 이렇게 된 이유는 작년 48홈런을 합작한 김현수+오지환이 올해는 고작 7개 쳤기 때문[67] 김상현은 KIA로 트레이드된 이후 성적만으로도 정규시즌 MVP와 홈런왕을 모두 달성했다. 그리고 박기남은 수년간 좋은 백업 선수로 활약하며, 이범호와 김상현의 부상을 잘 메웠다.[68] 같은 해 심수창과 송신영은 한화에서 만난다.[69] 사실 당시에 팬들도 프랜차이즈 박용택의 FA에 더 신경을 썼지 박경수는 큰 관심이 없었다. 또한 후반기의 활약이 FA로이드로 보일 여지도 있었다.[70] 이택근 트레이드 당시 언더머니 38억원 + 송신영 트레이드 당시 언더머니 15억원[71] 이 윤요섭+박용근-이준형 의 2:1 트레이드는 KT가 투수 유망주를 쩌리들을 받고 내주었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72] LG의 전신인 MBC 시절에는 삼성과 두 차례 트레이드를 했지만 LG로 바뀐 후에는 FA 계약과 보상선수 이동을 제외하고 두 팀 사이의 트레이드가 없었다. 2002 시즌 종료 후 LG에서 웨이버 공시된 뒤 삼성으로 간 심성보는 규약상 트레이드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트레이드라고 하기는 어렵다.[73] 그래도 정의윤은 그럭저럭 했다.[74] 이때만 해도 13년 전의 모습과 비슷하다며(당시에는 이성열이 2010년 24홈런을 터트리며 완전 두산의 승리인 줄 알았으나 김용의가 추후 포텐을 터트리며 무승부로 끝나는 듯 했는데... 이성열이 추후 오재일과 트레이드가 되고 그 오재일이 두산에서 포텐을 완전히 터트렸고 한국시리즈 MVP까지 받은 탓에 이 트레이드는 두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소름이 돋는 것은 당시의 트레이드 메인은 이재영과 최승환 이었다는 것인데, 얹혀 간 선수들로 승부가 나고 말았다.[75] 그사이 채지선은 다시 한 번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76] 성적이 좋아 빨리 1군에 자리 잡고 국가대표로 군면제를 받으면 20대 후반에 FA가 가능한데 야구선수는 보통 이때가 한창 전성기일 시점이다.[77] 1995년 김상호, 2009년 김상현, 2012~2013년 박병호, 2014년 서건창.[78] 트레이드 당시 26세의 군필 주전포수도 모자라 심지어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까지 가지고 있는 포수였다. 야구에서 포수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탱킹이나 구단의 부채 문제 등 재정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로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일이 없는 위치다.[79] 홈런, 장타율, 타점, 득점. 볼넷 1위는 덤.[80] 대표적으로 추승우와 이시찬(개명 전 이학준)이 그나마 2013년에 한화에서 두 자릿 수 도루를 성공한 유이한 선수이며 이학준은 이 해에 데뷔 첫 홈런도 쳤으나 그게 다다. 이보다 한화로 가서 더 망가진 백진우(개명 전 백창수)의 사례로 보면...[81] 2023년에 유강남과 채은성이 FA로 빠져나갔지만 이들이 이적한 팀이 그나마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롯데, 한화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팬들도 많다.[82] 사실 그 양석환도 문보경 터지는거 보자마자 팀에서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서서 내보낼 수 있었기에 기존의 다른 탈쥐 선수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다만 LG에서 그렇게 타석을 먹이고도 안 터지던게 두산으로 가자마자 터져서 탈쥐 평가를 받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