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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1:32:07

탈쥐효과/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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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타자3. 투수4. 감독5. 입쥐효과6. 탈쥐효과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경우7. 입쥐효과를 받지 않은 선수8. 이적 배경9. 구단별 손실 관계10.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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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탈쥐효과의 사례를 정리한 문서.

2.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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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고졸 우선지명으로 LG에 입단하였으나 크게 활약하지 못하고 2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진필중[13]의 FA 보상선수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듬해 114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71, 82안타, 13홈런, 42타점을 기록하여 보상선수 최다 홈런 기록[14]을 세웠고 2005년에도 107경기, 타율 0.278, 88안타 11홈런 44타점를 기록하며 오히려 진필중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누가 FA고 누가 보상선수냐?"는 말까지 듣게 된다. 2007년에 무보살 삼중살을 기록한 것은 덤. 사실 활약상 자체만 보면 이적 후 2년 정도 반짝 하고 원래 수준으로 돌아간 뒤 30대 초반에 일찌감치 은퇴했기 때문에 탈쥐라고 하기엔 조금 약할 수 있지만, 마침 손지환과 자리를 맞바꿔 LG로 온 진필중이 역대급 먹튀짓을 하면서 반사효과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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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탈쥐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없는 사실상 유일한 케이스. 2001년 해태에서 데뷔해 이듬해 트레이드로 LG에 입단했지만,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2008 시즌까지 5시즌 평균 타율 0.258에 한 자리수 홈런을 기록하며 별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 극초반에 트레이드로 KIA로 돌아오자마자 시즌 1, 2, 3호 홈런을 전부 만루홈런으로 기록하더니, 그해 0.315의 타율과 장타율 1위, 36홈런/127타점으로 홈런왕, 타점왕을 차지하며 KIA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를 차지하였다.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된 선수가 MVP를 차지한 것은 역대 최초.
사실 냉정히 보면 이 시즌 이후 김상현은 LG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활약을 남겨서 탈쥐효과라기엔 애매하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KIA에서도 2010시즌부터는 폭발의 원동력이던 고향팀 복귀+주전 3루수 자리 확보+최희섭과 내는 타선 효과가 모두 사라져 영 애매한 활약만 남겼고[15], SK와의 2:2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이후로도 부활하지 못했다. 2015년에 은사 조범현 감독의 지명을 받아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신생 팀 kt wiz로 이적한 뒤 28홈런을 기록하고 134경기에 출전하며 뎁스가 얇은 kt에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이 해가 워낙 타고투저 시즌인 데다 김상현은 출루율이 썩 좋지 않은 편이라 wRC+는 106.0에 그쳤다. 그럼에도 트레이드 직후 2관왕+MVP+골든글러브+팀의 12년만의 우승이라는 임팩트가 워낙 강한 데다, 탈쥐효과라는 말이 나온 원인 자체에도 김상현이 있다보니 여전히 탈쥐효과가 맞다는 의견이 강한 편이다.
다만 개인의 성적과는 별개로 인간성에 관해서는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SK 시절 성적도 별로인데 싸인 사건으로 팬들에게 찍힌 바 있고, kt에서도 첫 시즌 괜찮게 쳐주다가 2016시즌에는 열심히 삽을 들더니 뉴스를 본 사람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하는 대형사고를 쳐버리며 kt에게 자위즈라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안기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임의탈퇴되며 선수 생활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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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쥐 역사상 최고의 탈쥐효과 선수이다. 고교 시절부터 초특급 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은 가운데 2005년 1차 지명으로 입단했지만, 정작 LG 입단 후에는 주위의 기대에 인한 부담감에 코치진의 무책임한 뜯어고치기식 육성, 1군에서의 박한 기용 등으로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2005~2010년까지 커리어 하이는 9홈런 25타점. 그런데 2011년 시즌 도중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2011년 후반기에만 12홈런 28타점을 때려내 가능성을 보이더니, 2012년부터 타격 대폭발을 시작하여 3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2012~2014)는 물론, 2년 연속(2012년, 2013년) KBO MVP에, KBO 역사상 유일무이한 2년 연속 50홈런(2014, 2015), 4년 연속 홈런왕, 타점왕(2012~2015)에 장타율왕, 득점왕 등도 수차례 수상하여 4년간 리그를 지배하다시피 했고[16], 결국 포스팅 시스템으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6년, MLB에서 공의 속도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완전히 말아먹으며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로 직행했다. 마이너로 간 이후에도 타율이 2할 밑으로 떨어져버리면서 삼진을 미친듯이 적립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라서 입쥐효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한국에 돌아온 2018년에는 부상으로 경기를 좀 빠졌음에도 장타율-출루율 1위를 기록하였고, 2019년에는 다시 홈런왕을 탈환하고 2019 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에도 합류하고 미국전에서 홈런도 쳤다.

2020년부터는 나이로 인해 에이징 커브 때문인지 매우 부진했다. 그럼에도 2021년까지 KBO에서의 8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는 등 힘만은 여전했다. 그리고 2021 시즌이 끝나고 FA로 KT로 이적하였다. 2022시즌 35홈런을 기록하며 개인통산 6번째[17] 홈런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에이징 커브 논란을 잠식시켰다.

거론된 인물 중 유일하게 KBO 포스트시즌에서 LG를 만났는데, 2014년 플레이오프, 2019년 준플레이오프, 2020 와일드카드 결정전, 그리고 2023년 한국시리즈, 2024년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2014년 플레이오프, 2019년 준플레이오프만 박병호의 소속팀인 키움이 이겼고 두 년 다 2014년 한국시리즈, 201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며, 2019년 준플레이오프에는 1차전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9회말에 선두타자로 나서서 초구 패스트볼을 통타하여 끝내기 홈런까지 날리고 시리즈 MVP까지 타가면서 LG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 2020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팀이 졌으나 홈런 포함 멀티 히트를 치며 LG팬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하지만 KT 소속으로 나온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친정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며 LG 우승의 숨은 공신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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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프로야구 미스터리에서 볼 수 있듯 2007년 딱 한 번 3할을 넘으며 커리어하이를 찍었을 뿐 그저 발만 빠른 선수라 3단분리 타법이라며 욕을 많이 먹던 타자였고, 탈쥐 직전의 3년간 성적이 타율 1할 후반에서 2할 초중반에 머무르며 시즌 중 2군 생활도 꽤 많이 할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4년 FA로 KIA로 옮기자마자 3할대의 타율을 찍었다. 타고 시즌 성적이라서 2007년만큼의 활약은 아니었지만 개인 WAR 2위 시즌이다.

다시 KT로 이적한 2015년과 2016년에도 3할대의 타율을 찍으며 타격이 상당히 좋아진 모습이다. 또한 빠른 발도 다시 살아나 번트 2루타라는 진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포가 주류인 탈쥐효과 선수들 중에 30이 넘은 나이에 흔치 않은 비거포형 탈쥐효과를 본 놀라운 케이스. 비거포 유형으로 이용규의 경우도 있지만 이용규는 LG에서의 1군 경력이 입단 직후 단 1년에 불과해 매우 짧아 타석이나 경기수의 표본이 너무 작다. 모든 팀이 1년차에 1군 데뷔도 못하는 선수도 엄청나게 많고 나와도 타율 1할인 경우도 널렸고, 그러다가 결국 1군 선수로 성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대형처럼 10년도 넘게 LG에 있다가 나가서 타율이 확 상승한 케이스가 훨씬 정확한 비거포 탈쥐효과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wRC+가 2007년 말고는 100 미만이라서 타격 생산력이 약하지 않냐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LG에서의 마지막 3년과 KIA와 KT에서 보낸 2014, 2015, 2016의 3년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클래식 기록이 더 좋아진것은 당연하고 경기수[18]와 타석수 wRC+까지 모두 의미있게 늘어났다. 안타, 루타 등 누적 스탯과 출루율-장타율 등 비율 스탯은 LG 시절 커리어 하이 2007시즌보다 뛰어나다. wRC+도 100 아래라 분명 좋은 타자는 아니지만 2007 시즌을 제외하면 이대형 커리어 상에 2014~16 시즌만큼 찍어준 시즌도 없다. 툴이라고는 주루밖에 없어서 노쇠화가 오면 직격타를 맞을 선수가 32~34세에 팀을 옮겨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급 혹은 그 이상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타이틀도 이적 후보다 전에 더 많이 탔다. 도루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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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 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LG에 입단했지만, 하라는 유격수는 안 하고 2루수를 한 것은 물론이요, 박경수의 나비 효과라는 빅엿을 날렸다. 게다가 두 번째 해가 커리어하이일 정도로 만년 유망주로 머물렀고, 유리몸이기까지해서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2014년에는 제발 KT로 꺼져달라고 자팀 팬들한테 '전드'라고 불렸다. 2014 시즌 후 FA 원소속팀 LG와 우선협상이 결렬되었고, 4년 총액 18억 2천만 원에 보상선수 없이 KT로 이적하여 정말로 '콱전드'가 됐다.
그런데 이적하자마자 첫 해 6월부터 갑자기 타격이 폭발하며 3할 타율, OPS 1.070을 기록했고 감독 추천이긴 하지만 3년 연속으로 KBO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거기에 8월 9일에는 멀티 홈런을 추가하면서 시즌 16호 홈런을 기록. 참고로 2015 시즌 8월까지 LG가 버렸던 박경수, 브래드 스나이더 모두 15홈런을 넘기는 사이에 LG 타자 중 어떤 선수도 15홈런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망의 8월 27일, 4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3할 타율을, 8월 28일 쓰리런 홈런으로 시즌 20홈런을 기록하였다. 거기다 홈런만 많은 공갈포 스타일도 아니고, 풀타임 2루수로서 아주 모범적인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성적을 냈다.
여담으로, 2015 시즌 박경수보다 타격 성적이 높은 LG 타자는 아무도 없다. 시즌 타율 0.284 22홈런 73타점. 지난 성적들에 비하면 엄청난 커리어하이로 저 정도라면 진짜 콱전드가 될 기세이다. 2016 시즌에도 타-출-장 3-4-5의 매우 훌륭한 성적에다가 토종 2루수 최초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하면서 장타력을 갖춘 2루수임을 증명해보이며 2015 시즌 성적이 자신의 실력임을 입증했다. 2017 시즌에는 15홈런으로 주춤했으나 FA 계약 마지막 해인 2018 시즌에 커리어 하이인 25홈런을 기록했다.[19] 박경수가 LG에서 머무른 10시즌 동안 기록한 sWAR가 10을 조금 넘기는데 KT 가서 단 3시즌만에 넘겨버렸다. 그나마 잘 못했다는 2017년에도 LG에서의 2004, 2010년을 제외한 8시즌보다는 나은 성적이다. 2021년에는 노쇠화로 성적이 안났지만 생애 처음 정규리그 1위 멤버가 되었다. 게다가 2021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수상했다.
그래도 박경수가 LG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쳐 욕을 먹었을지언정 인성이나 성실함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KT 팬덤이 신생이라 팬덤끼리 충돌할 일도 적어서 까이지는 않는다. 박경수 본인이 이적해서도 인터뷰를 신중하게 하고 있고, LG 팬덤도 그전에 콱전드라고 놀리는 등 많이 애증섞어 욕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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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4일, 3:3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이로써 LG의 2005년 신인 드래프트 1, 2차 지명자들은 모두 LG를 떠난 게 되었다. 후반기에 타율 0.346, 14홈런, 44타점, 35득점을 기록하며 9월 MVP를 차지했으며, 2016년에 들어서 확실한 4번타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16년 5월 4일까지 32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내 타점 1위를 차지하며 탈쥐효과를 증명하였으며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으로 2016시즌 전반기 동안 전체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타점 능력으로 리그 최고급 4번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출전 경기수보다 타점이 많을 정도였으나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던 시점에 흐름이 주춤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였고 7월에는 탈쥐 후 첫 잠실구장 홈런까지 기록하며 살아나, 여전히 리그 TOP 5를 유지하는 타점 생산 능력을 보인다. 그리고 9월 30일 1타점을 추가하여 100타점 달성에 성공했다. 2017시즌 지명타자로 주로 뛰고, 경기도 30경기 정도 못 뛰면서 뭔가 가면 갈수록 성적이 하락하고 있긴 한데 그래도 타격 생산력으로 보면 리그 주전급은 상회하는 수준의 타자다. FA를 앞둔 2017 시즌에는 부진을 보이다가 후반기 다시 SK의 4번타자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 우승반지까지 가져갔다.
탈쥐효과를 본 선수들 중에 LG 팬들을 가장 빡치게 한 선수로도 이름이 남아 있다. 박병호도 옹호여론이 있는 LG 팬덤이지만 정의윤은 단 한 명도 옹호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인터뷰의 숫자부터 많고, 단 1년만에 "내 야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기는 못쳐도 뭐라고 할 사람들이 없다." 라는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날리며 LG 팬덤 사이에서는 이름조차도 언급해서는 안되는 금지어에 들어갔다. 나무위키에서도 LG 문서에서 정의윤은 그 놈, 그 자식, 24번이었던 선수로 불리며 실명으로 언급이 안 된다. 워낙 명대사가 많은지라 "너는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냐?"는 소리도 나왔다. 이때문에 LG 팬인 개그맨 최우선에게 대놓고 CV윤 소리까지 들었다.

허나 이는 억울한 면이 있는데, 자신은 이적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기자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졌고, 정의윤은 무심결에 대답하다가 탈쥐효과 관련 발언 인터뷰에 낚이고 말았다. 이후 LG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하고 다녔음이 밝혀졌고 탈쥐효과를 누리라는 질문에 무심결에 알겠다고 했다가 자기도 탈쥐효과를 누리겠다는 기사가 나왔다는 것도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는 덜 까인다. 거기에다가 대신 받아 온 진해수가 홀드왕을 차지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쳐서 묻힌 감이 있다.

파일:빠던석환.jpg}}} ||탈쥐효과가 잠실 탓이 아니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을 해준 선수. 리빌딩 과정에서 오랫동안 LG에 있다가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으로 옮긴 양석환마저 터지게 되면서 과거 타자 쪽에서 연달아 탈쥐효과가 터지던 와중에 잠실의 이점을 많이 본 것이라는 일부 LG 팬들의 반박이 단박에 소용이 없는 짓이 만들어 버리게 되었다.[20]
이적 첫 해부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인 28홈런을 기록하였고, OPS 0.827 wRC+ 130.3으로 그 동안 LG에서 뛰면서 그 타고투저 시즌에도 불구하고 OPS 0.8은 커녕 단 한번도 wRC+도 100을 넘기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기록이다. 이때만 해도 LG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이미 양석환을 탈쥐효과로 보았다. 다만 두산에 와서도 바깥쪽 변화구에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고, 시즌 막판과 포스트시즌에 체력 문제인지 공략을 당한 건지 심각한 부진에 빠지며 물음표가 있었다.

2022년 초반 활약을 하면서 작년이 플루크가 아니란걸 증명하나 했으나 옆구리 부상의 여파로 인해 2022년 타율 2할 4푼대에 홈런 20개 OPS 0.741 WRC+ 113으로 2021년에 비해 많이 부진하였으며 후반기 무지막지한 홈런 페이스로 20홈런을 달성하긴 했지만 이미 LG 시절에도 22홈런을 기록했으며 타점도 LG시절에도 80개를 기록한 게 51타점만 기록하여 다른 스탯들은 작년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유보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2023년 10월 13일을 기준으로 타율 0.281, 출루율 0.333, 장타율 0.458, OPS 0.791, 홈런 21개, 타점 89개, WAR 2.60, wRC+ 124를 찍며 완벽하게 탈쥐 확정. 커리어하이인 2021년보다는 조금 못미치는 정도이나 이 정도 성적만 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이며 3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건 덤이다. 애초에 두산에서 가장 성적이 안 좋은 2022년조차도 WRC+ 113으로 LG에 있을 때 100도 넘기지 못한 우르크를 생각해보면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2023년 말, 양석환은 4+2년 총액 78억이라는 FA 대박을 터뜨린다.[21]

2024시즌에는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며 클래식 스탯은 괜찮게 쌓았지만 타율과 세이버가 하락하여 공갈포가 되었다.

정의윤과 함께, 어쩌면 정의윤보다 더 LG팬을 빡치게한 선수이기도 하다. 21시즌 도중 LG 덕아웃과 말다툼을 하는듯한 장면과 준플레이오프때 안타 후 본인 가슴팍의 두산 로고를 흔드는 도발성 세레머니로 인해 많은 팬들의 분노를 샀고, 시간이 꽤 지난 현재까지도 배신자 소리를 듣는 등 이미지가 매우 좋지않다. 트레이드 전 LG에서 실력에 비해 기회를 받지 못했다는 본인의 인터뷰도 한몫 하였다.[22] 이 때문인지 타팀으로 이적한 LG 출신 선수들이 거의 모두 나온 박용택 은퇴식 영상편지에서도 빠져있었다.

3. 투수

없다. 타자의 경우 팀을 나가자마자 잘하는 케이스가 넘쳐나는데 반해 투수의 경우는 전무하다. LG가 일단 임선동이라는 금지어급 사례를 빼면 자팀 투수를 제대로 쓰지 않고 타팀에 트레이드로 내준 사례가 많지 않아서 샘플이 매우 적기도 하며, 거기다 홈구장인 잠실이 극단적인 투수친화 구장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LG의 암흑기를 조롱하고 놀리기 바빴던 타팀 팬들조차도 "투수 탈쥐는 없다."는 걸 인정할 정도. 오히려 LG가 버린 투수는 함부로 주워가면 안 된다고 경계할 정도다.

같은 구장을 쓰는 팀과 비교해 봤을 때 탈돡효과는 탈쥐효과와는 많이 다른 케이스다. 탈돡효과의 대부분은 선수 본인의 실력은 있지만 팀에 자리가 없어 나간 경우고, 주로 포수나 외야수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의 진갑용, 최기문은 1999년 루키시즌에 신인왕을 차지하며 혜성같이 나타난 홍성흔에게 밀려서 나간 것이고, 2010년대의 최승환, 용덕한양의지가 전역 직후 시즌에 신인 포수 최다 홈런인 20홈런을 때리고 당해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주전 자리를 채갔기에 팔려간 것이다. KBO 역사상 포수 신인왕은 1990년 김동수를 포함해 3명 뿐이다. 즉, 다들 삽질만 하다가 팀을 나가서 포텐이 터진 게 아니라 두산에서도 주전 경쟁을 하다가 경쟁에 밀려 팀을 떠난 것.

트레이드로 팀을 나간 투수들 중 커리어를 지속하거나 리그에 안착한 경우 심수창김광수, 신재웅 정도가 있는데, 이미 앞의 두 선수는 30대 중반의 나이라 롱런하기는 어려웠던 상황. 이후 김광수는 은퇴했고, 심수창은 다시 LG로 돌아갔다. 신재웅은 LG 시절과 크게 차이가 없다가 2017시즌 부활했으나 LG에서도 2014시즌 활약했기 때문에 탈쥐효과로 보기 애매하다. 탈쥐효과 기준인 트레이드, FA 보상 등을 제외하고 LG를 나가서 가장 커리어가 성공적인 투수는 NC의 원종현이다. 그러나 원종현은 위 선수들과 달리 탈쥐효과로 보기는 힘들다. 자세한 건 후술. 2017년에 FA로 삼성으로 이적한 우규민은 2017년, 2018년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2019년에는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2018년 시즌 SK로 이적한 신재웅이 마무리 투수로서 2승 3패 16세이브 6홀드를 기록하며 활약했고, 2019년에는 한화로 트레이드된 신정락이 이적 이후 패전처리조와 스윙맨으로 21경기 등판해 25.2이닝을 소화하며 4승 무패 1홀드 방어율 3.16을 기록하는 등 LG에 있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신재웅은 다음 시즌인 2019년 부상을 겪으며 많이 부진했고 신정락은 순위싸움 부담이 사라진 상태에서 좋아진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 탈쥐효과 이론을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2017시즌 전에 차우찬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한 이승현이 2019년 들어 포텐이 터져 전반기 필승조로 자리를 잡았지만, 후반기를 부상으로 날렸다. 2020년에도 그럭저럭 활약했지만 LG에서도 20인 명단에 들지 못했던 원인이 된 제구 난조는 아직까지도 해결이 되지 못해서 롤러코스터급 피칭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범주에 넣기는 힘들었다. 필승조에 들어가기는 애매한 제구력이고, 그렇다고 패전조에서 쓰기에는 공이 너무 좋아서 어중간하게 자리를 잡아버린 케이스. 하지만 2020년부터는 두자릿수 홀드를 3시즌이나 기록하며 활약하고 있으니 그나마 탈쥐효과 사례에 부합한다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4. 감독

2017년 이후로 이젠 감독 탈쥐 표본지표마저 충분하다. LG에서 가을야구를 이끌지 못하다가 LG를 떠난 뒤에는 여지없이 소속팀을 가을야구로 이끄는 기염을 토한다. 감독판 입쥐효과의 경우 현대의 V4를 이끈 명장인 김재박의 예가 있고 삼성 왕조의 주역이던 류중일의 LG 감독 생활이 순탄치 않게 진행되어가며 입쥐효과의 표본마저 생겨 버렸다. 헌데 류중일은 첫해를 제외하고 재기하는 조짐이 보였지만 막판에 제대로 말아먹고 사퇴하면서 입쥐효과를 받아버렸다. 다만 넥센 구원투수진과 SK 전체를 말아먹고 LG에 온 염경엽이 LG 감독 부임 첫해에 통합우승을 달성하여 이 징크스는 깨졌다.

5. 입쥐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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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여기선 투수 예시도 많다. 잠실이 투수친화적 구장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도 안 통하는 부분.

6. 탈쥐효과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경우

탈쥐효과는 LG에서 부진했던 유망주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자마자 갑자기 포텐셜이 터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 선수들은 탈쥐효과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므로 여기에 기록한다.
범례
LG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린 경우
이적 이후 성적이 모자라 포텐셜이 터졌다고 보기는 힘든 경우
LG를 떠나고 한참 뒤에 포텐셜이 터진 경우
LG 시절에도 기대감이 큰 유망주는 아니었던 경우
LG를 떠나고 포텐셜이 터졌지만 이것을 LG의 실책이라고 보기는 힘든 경우[33] #










그러나 이성열이 은퇴한 이후 기록을 통해 재조명하면, 이성열도 2010시즌에만 반짝했을 뿐이지[46] 이후에는 주목할만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고 팀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2018 시즌에야 커리어하이를 기록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탈쥐효과로 언급하는 것은 무리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보기에는 이성열이 왜? 라는 의문을 제기할 만 하지만, 용어가 처음 유행할 당시 마침 LG를 떠나 잠재력을 터뜨린 시즌의 존재로 대표적인 탈쥐효과 적용선수로 언급될만한 사정은 있었다는 것.
* 최승준
2015년 12월 6일 FA로 LG로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해 시범경기에서는 타율 1할에 25개의 삼진으로 시범경기 삼진왕의 불명예를 얻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도 4월에는 그저 그런 성적만 기록했으나 2군에 내려갔다 복귀하는 등 조정을 거친 뒤 롯데전에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날린 대타 역전 만루 홈런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여 슬슬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6월중순부터 7월까지 팀 내 홈런의 분위기를 정의윤과 함께 이끌며, SK의 21경기 연속 팀홈런 신기록 달성의 주역이 되었다. 2016시즌 1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보상선수 역대 최다홈런 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6월 28일 수원 KT 경기에선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대폭발했다. 7월 2일 LG와의 잠실 경기에는 정의윤과 함께 9회초에 백투백 홈런[47]을 치며 탈쥐의 위엄을 대대적으로 선보였고, 다음 LG전에서도 정의윤에 안타에 이은 투런포를 쳐내어 연이틀 홈런으로 친정팀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다. 오죽했으면 정의윤과 최승준으로 거포 2명을 졸지에 얻게 된 솩갤러들은 모 솩갤러가 탈쥐하세요 그대[48]를 직접 불러서 올렸는데 이게 힛갤까지 갔다. 심지어 8월 18일 기준 최승준의 홈런 수(19개)가 정상호의 안타(18개)보다 많았다. 그러나 2016시즌 후반 부상으로 주춤하더니 2017시즌 들어서는 1군에 종종 나오긴 하지만 작년같은 활약은 못 보여줬다. 2018시즌은 1군에서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고(27경기 타율 .250, 4홈런 11타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면서 팀의 우승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다만 SK 시절 하락세를 탄 이후에도 유난히 친정을 상대로 활약상이 많다 보니 탈쥐라는 점이 부각된 것도 있다. 시즌 후 남태혁이 KT에서 이적하면서 더욱 심한 경쟁에 돌입하게 됐지만 2019시즌에도 이렇다 할 기회를 받지 못하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한화에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됐으나 2020년 6월 9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그런데 반대로 은퇴 후에 입쥐효과를 증명했는데, 2024시즌 타격보조코치로 LG에 돌아왔으나 팀 타선이 안 좋아진 것도 모자라 2024년 7월 말에 음주운전 측정 거부라는 대형 사고를 쳐서 팀에서 쫓겨난 것(...).

* 배정대#
2014년, KT의 신생 팀 20인 외 특별지명[49]으로 이적했다. LG 팬들은 유망주가 떠났다며 아쉬워했지만 이쪽은 아예 1군에서 뛰어본 적도 없는 데다가 LG에서 단 한 번도 못 긁어보고 보내야했던 선수인지라 탈쥐라고 못 보는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LG에서도 2차 1라운드 3번으로 지명한 데에는 배정대를 높게 본 것으로 안목이 틀리지 않은 것. 다른 탈쥐 거론자들이 한 번이라도 LG가 긁어본 선수들라면 이쪽은 아예 한 번도 못 긁어보고 보냈다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는 선수.




7. 입쥐효과를 받지 않은 선수

8. 이적 배경

여기서는 팀을 떠난 선수가 어떤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됐는지 배경을 서술한다.
- 홍현우, 이용규이원식, 소소경(2004.11.2): 이 트레이드의 주 목적은 FA 먹튀가 되어버린 홍현우 털어내기였지만 결과적으로 핵심은 이용규가 되었다. 이용규는 LG 시절 0.129의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였지만 KIA로 넘어가자 3할 타자로 대 변신하였고 태극마크도 달고 병역특례도 받고 2010년에는 3점홈런, 만루홈런을 기록해 1이닝 팀 사이클링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1년에도 타율 0.333, 출루율 0.427, OPS 0.828를 기록한 뒤 결혼까지 하여 이용규는 박병호와 함께 탈쥐효과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반면에 이원식은 2005년 13경기 16이닝 평균자책 3.38찍고 1년만에 은퇴하였고 소소경도 2005년에 2경기 뛰고 은퇴하였다. 결국 이 트레이드는 LG가 KIA에게 선사한 조공 트레이드 1호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고 그리고 이순철이 LG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금지어로까지 지정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용규 대신 살아남은 이대형은 해가 지날수록 깝깝한 공격력을 보여주면서 이 트레이드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재미있는 건 이후 이대형은 LG를 떠나 KIA로 갔는데, 희대의 타고투저 덕을 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부상병동이던 KIA에서 끝까지 사람구실을 해준 거의 몇 없는 선수였다. KT로 이적해서는 3년연속 3할타율을 기록중이고 2016년엔 도루까지 회복했다.

- 김상현, 박기남강철민(2009.4): LG가 KIA에게 선사한 조공 트레이드 2호. 정성훈 영입으로 자리가 없어진 김상현 처리는 물론 선발 투수를 급히 보강하기 위해 이뤄진 트레이드 였지만 결국 추진자인 김재박 감독은 강철민을 써보지도 못했다. 김상현과 박기남은 2009년 KIA가 우승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2009년에는 KIA 팬들이 사랑해요 LG를 입에 달고 살게 하였다. 둘 중에 한 명 만 잘 해줘도 무조건 KIA의 승리였는데 둘 다 터져서[67] LG가 제대로 조공한 게 되어 버렸다. 참고로 처음에는 김상현과 강철민의 1:1 트레이드였다. 박기남은 KIA에서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찔러본 거였는데, LG가 너무 쉽게 승낙해서 놀랐다고.
- 정의윤, 신재웅, 신동훈임훈, 진해수, 여건욱 3:3트레이드 (2015): 2015년 후반기에 이루어진 트레이드이다. 당시 LG는 큰 잠실 구장 특성상 수비 범위 넓은 빠른 외야수를 원했고, SK는 작은 행복드림구장 특성상 한방있는 선수를 원했다. 그리고 그 두 팀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트레이드를 했다. 당초 트레이드는 정의윤과 임훈 1:1로 하려 했으나 선수를 끼워 맞추느라 3:3이 된 것이다. 트레이드 직후 SK에서는 정의윤을 4번 붙박이로 출전시켰으며 정의윤은 9월 월간 MVP를 따게 된다. 임훈 또한 LG에서 좌익수로 꾸준히 나오며 준수한 성적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2016년에 둘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게 되고 말았는데 정의윤은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시즌 초반 타점 1위를 달리는 것에 비해 임훈은 가끔 출전하고 만다. 2017 시즌 이후 평가해보면 LG도 손해만 본 것이 아닌게 진해수가 커리어하이를 찍으면서 홀드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 허나 2018년에는 진해수소폭탄으로 리셋된 사이 신재웅이 활약하면서 다시 LG의 손해로 평가받는다.

- 최승준(보상선수)↔정상호(FA)(2015 시즌 종료 후): SK는 FA로 LG에 이적한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2013년 2군 홈런왕을 차지한 최승준을 지명한다. 시범경기 내내 최승준은 연거푸 삼진만 당하며 SK 팬들 사이에서도 최승준에게는 탈쥐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다.하지만 정작 시즌이 시작하고 1달이 약간 지나고 나서 최승준은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기 시작했고 6월에만 홈런 10개를 쏘아 올리고 특히 6월 28일 KT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에 반해 정상호는 신인들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내주면서 가끔 나온다.

그리고 결국에는 7월 2일 대참변이 터졌다. 2대 1로 앞서던 상황에서 마무리로 올라온 임정우에게 정의윤과 최승준이 백투백 솔로홈런을 날린 것. 취약한 포수진 보강을 위해 정상호를 영입한 LG였지만 정상호가 32억 받는 백업포수로 전락해 먹튀가 되어버리고 이 참변이 터지는 바람에 양상문의 목을 조이는 결과가 되었다.

2017년 이후에는 최승준도 1군에서 그다지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애매해지긴 했지만, 정상호가 백업에 머물러있는것도 마찬가지라서...
- 박종호최창호(1998): 1998년 현대는 정규 리그 1위를 질주하면서도 확실하게 우승을 노리기 위해, 당시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던 이명수를 대신하여 2루를 맡아 줄 젊은 내야수를 보강하고자 했다. 결국 투수진 보강을 노리던 LG와 내야수를 찾던 현대의 이해관계에 따라 박종호를 상대로 LG에 트레이드됐다.
- 박병호, 심수창김성현, 송신영 2:2트레이드 (2011): 당시 2011년 내려가기 전 4강싸움을 하던 LG는 불펜에 믿을맨이 없는 투수진이 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즉시전력인 송신영과 유망주 투수 김성현을 영입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대는 많이 받았지만 터지지 못한 유망주 박병호와 덤으로 심수창을 보낸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에 뒷돈이 있다던가 하는 넥센의 역대급 조공 트레이드로 평가받았지만....

막상 까보니 박병호는 파괴신이 되어 KBO를 평정한 다음에 넥센에 포스팅 비용 1,250만을 안겨주면서 천조국의 트윈스로 건너갔고,[68] 심수창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1승을 넥센에서 깼다. 반면 LG는 송신영이 불펜에서 활약하긴 했지만 팀이 광속으로 추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게다가 송신영은 LG에서 꼴랑 19경기 뛰고 FA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던 투수 유망주 김성현은 뭐 다들 잘 알다시피... 결국 손해보는 트레이드가 되었다. 여기에 2018년 2011 시즌 직후 LG가 넥센에 뒷돈으로 15억 원을 줬다는 중앙일보 기사가 나왔다. LG, 아리송한 ‘FA’ 참조. 이렇게되면 LG는 반 시즌 반짝 쓴 송신영과 승부조작범을 받겠다고 KBO 최고의 슬러거에 15억을 그대로 조공해버린 셈이다.

- 서건창 방출 후 신고선수: 사실 이 경우는 서건창이 대단한 경우로, 당시 LG가 1타석 출장에 그친데다가 부상 중이었던 선수를 방출한 것이기 때문에 LG의 잘못은 없다.
- 박경수 2014 FA : 관심만 받고 터지지는 않던 내야수였던 박경수가 2014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하였다. 그 당시에 박경수가 홈스틸을 2번이나 기록하고 후반기 성적이 최고로 올라왔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구단은 잔류를 시키지 않았으며,[69] 그로 인해 KT로 이적하고 말았는데, 안 터지던 포텐이 타자 친화구장을 가진 KT에서 폭발하며 주장까지 맡는 대선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KT는 신생팀 혜택으로 보상선수를 내 주지 않아도 되었었기 때문에 결국 이득은 아무것도 없이 조공만 해준 셈.

9. 구단별 손실 관계

트레이드를 한 팀별로 LG의 손익분기점을 따져보면 KIA, 넥센과의 트레이드는 사실상 LG 팬들이 잊고 싶은 완전한 흑역사, SK와의 트레이드는 정의윤, 최승준, 임정우, 정상호, 진해수 등을 고려해보면 손해는 맞지만 앞선 두 팀보단 덜하다. 롯데, 두산, 한화와의 트레이드는 소소한 이득을 봤거나 이득을 따지기 힘든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 김상현, 박기남, 이용규 등을 보낸 KIA와, 박병호, 김성현, 송신영, 이택근, 53억원[70]의 사례에서 명분도 실리도 완전히 잃은 넥센의 경우에는 명백한 손해이다. 위 두 팀과는 아무래도 선례가 좋지 않아서 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력보강을 한다는 것은 팬 정서상 거의 힘들 것으로 보였지만, 2013년 4월 24일 LG는 뜬금없이 넥센 상대로 최경철을 받고 서동욱을 주는 트레이드를 다시 단행했다. 2013년에는 최경철이 부상으로 많은 경기 출장을 못했기에 아주 약간의 넥센 WIN쪽이라고 생각되었으나, 2014년 전반기에 서동욱은 1할대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최경철은 LG의 구멍난 포수자리를 메워주는 정도를 넘어서서 아예 LG의 주전 안방마님으로 활약하며 클러치 히터 등으로 활약하면서 준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이 트레이드는 LG의 우세로 기울고 있다가... 서동욱은 무상 트레이드 형식으로 KIA로 복귀했고 최경철은 부진하다 스스로 방출을 요구해 상호 합의 하에 방출 후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금지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 72경기 출장 정지를 먹고 튄 셈이 되었다.

박현준을 받은 SK와의 트레이드도 흑역사로 볼 여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 시즌이나마 선발로 잘 써먹었고, 같이 이적해 온 윤요섭이 2012년, 2013년에 어느 정도 활약을 했고, KT로 넘어가면서 투수 유망주 이준형을 받아왔으니[71] 아주 실패한 트레이드로 보기는 힘들다.

한편, 탈쥐효과에서 삼성 라이온즈 문서는 2013년까지 아예 없었는데, 재계 라이벌인 삼성의 선수 트레이드는 사실상 절대 불가라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 이 불문율은 23년[72]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 2012년 시즌 후에 23년간 이어져 온 불문율을 깨뜨리고 LG가 현재윤, 김효남, 손주인을 받고 삼성이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을 받는 3:3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이 딜은 양쪽 모두의 승리라는 것이 중론. 현재윤은 부상이 있긴 했지만 2013시즌 잠시나마 LG의 주전포수 역할을 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고, 손주인은 2017년까지 붙박이 2루수 주전으로 활약하며 강승호, 김용의, 박지규 따위의 수비형 선수를 볼 일이 없게 해 줬다. 김태완과 정병곤은 잠깐이었지만 2013년도 삼성의 대타/대수비 역할을 잘 해주면서 우승반지를 가져가기도 했다. 물론 LG가 손주인을 1군에서 잘 써먹다가 반품했고, 김태완과 정병곤이 롱런했으니 LG가 더 이득에 가깝다.

정의윤, 신재웅 - 임훈, 진해수 트레이드는 정의윤이 2015년은 물론 이듬해에도 대폭발한 반면 임훈은 2015시즌 그럭저럭 좌익수로 선방하면서 LG가 아주 손해본 트레이드는 아니라는 평이었으나 2016시즌 들어 망해버리면서 SK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정상호 - 보상선수 최승준+보상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건 그간 탈쥐효과로 놀림받아온 루즈 트레이드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두 선수는 어렵게 비교할 필요도 없이 16안타 vs 17홈런으로 이미 LG가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다. 거기다 정상호는 예의 유리몸끼가 도져서 6월까지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 리빌딩 운운하더니 자기 팀대신 SK 중심타선 리빌딩해준 양상문 감독에 대한 LG팬들 사이에서 신뢰는 한동안 가라앉았지만 양상문이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자 다시금 평가가 바뀌었다.

2017시즌에는 정의윤과 임훈이 지난 해만한 활약을 못 하는 가운데[73] 진해수가 리그 홀드왕 타이틀을 먹어버리면서 양팀 모두 손해는 안 본 트레이드로 남았다.

2018년 군필 키스톤 강승호와 30대 노망주 문광은을 트레이드 하였다. 내야 유망주들은 그래도 그럭저럭 있는 반면 투수진이 심히 부족한 LG와 키스톤콤비 자원이 이래저래 부족한 SK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는데, 강승호가 이적하자 마자 뛰어난 활약을 하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하며 또 하나의 탈쥐사례가 추가될 가능성이 생겼었다. 그런데 강승호가 음주 접촉 사고를 내고, 문광은은 한동안 1군에서 보이지 않다가 2019년 갑작스럽게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며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어 트레이드의 손익관계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생겼으나, 문광은이 2020시즌 끝나고 팀에서 방출되면서 사실상 SK의 승리였다. 강승호가 최주환의 보상선수로 나가면서 두 팀 모두 트레이드 당시 선수들이 없어지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강승호를 데리고 한국시리즈 우승하고 최주환의 보상 선수로 내줌으로써 유망주들을 보호해낸 SK가 조금 더 이익이 된 트레이드가 되었다.

2021년에는 양석환, 남호함덕주, 채지선의 13년만의 한 지붕 두가족 트레이드가 진행되었다. 애당초 메인은 양석환과 함덕주였고, 남호랑 채지선은 어떻게보면 그냥 얹혀서 같이 간 케이스이며 2021~2022년에는 양석환은 두산으로 오고 날라다닐 때, 함덕주는 LG로 와서 부화도 못한 상태라는 평을 내렸다.[74] 그러다가 잠시 윈윈 트레이드로 전환된 건 2023년. 양석환은 여전히 두산에서 클린업 자리를 지키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고, 함덕주가 드디어 부활 신호탄을 쏘며 LG의 29년만의 우승의 일조를 하며 이제서야 함덕주가 번식을 하는 듯 했다.[75] 그러고 양석환, 함덕주 둘 다 FA 대박을 터트이며 원 소속팀 잔류에 성공했고 양석환은 여전히 두산의 클린업 자리를 맡으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해 함덕주는 부상 장기화로 제 2의 xxx가 될 우려를 사는 중이다. 고로 현 시점으로는 두산의 완승으로 남아있다.

10. 정리

역대로 살펴보자면 LG에서 터진 선수도 많고 밖에 나가서 망한 선수도 많다. 하지만, 탈쥐효과는 선수 입장에서 따지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탈쥐효과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LG에서는 저조한 성적 끝에 일부는 은퇴 종용까지 받는 등 선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탈쥐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팀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안정적인 선수생활과 고연봉을 보장받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가 있다기 보단 2000년대 들어와서 LG의 처참한 6668587667의 성적으로 타팀 팬들에게 주목을 받은 면이 크다는 쉴드가 있는데, 사실 이는 KBO MVP라는 단적인 예로 간단하게 논파가 가능하다. 선수층이 두꺼워서 대형 트레이드가 자주 일어나는 MLB와는 달리 선수층이 얆아서 대형 트레이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KBO 리그에서는 보통 각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거나 그에 준하는 선수들이 MVP를 받기 마련이다. FA 자격 취득에 고졸 9년, 대졸 8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중간에 군복무 2년까지 고려하면 FA시장에 나올 때 쯤이면 이미 전성기를 지나서 노쇠화의 길을 걷는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간혹 MVP를 노릴 수 있는 선수가 FA시장에 나온다 하더라도[76] FA나 포스팅을 통해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노리는데다가 해외 진출을 안하더라도 이정도 선수면 팀의 간판선수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소속팀에서 안간힘을 쓰고 붙잡기 마련이라 이적 후 MVP 수상은 더더욱 나오기 힘들다. 이 때문에 30년이 넘는 KBO리그 역사에서 타팀으로 이적한 다음에 MVP를 받은 선수가 고작 6번! 문제는 이 6개 중 5개가 전 소속구단이 LG인 선수들이 받았다는것.[77] LG가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MVP를 배출한 적이 없는 구단이란 걸 생각해보면 정말 기이할 노릇. 2013년과 2015년에 처음 1군에 올라온 NC와 KT도 각각 2015년2020년에 MVP를 배출하였다.

이적생 출신으로 MVP를 받은 6명 중 유일하게 LG 출신이 아닌 나머지 한 명은 쌍방울에서 이적해서 현대에서 2000년 MVP가 된 박경완인데, 이쪽은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쌍방울의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팀의 기둥을 판[78] 현금 트레이드였기에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힘들다.

다만 용병을 포함하면 2007년의 리오스와 2019년의 린드블럼도 있긴 하다. 허나 이들은 투수라 얘기가 좀 다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 둘은 원 소속팀에서도 못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적하게 되었을 뿐... Lg 팬 입장에서 둘다 홈구장이 같은 두산 소속으로서 저들이 MVP를 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답답할 것이다.

또한 LG가 보낸 선수 중 KBO 골든글러브를 1회 이상 받은 선수로는 윤덕규, 김상현, 이용규, 김재현, 김상호, 박종호, 심재학, 임선동, 박병호, 그리고 서건창 등등이 있지만, 타팀에서 LG로 이적한 선수 중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사례는 1994년의 한대화와 2001년의 양준혁뿐이다. 게다가 이 두 선수는 이미 이전팀에서부터 다수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선수들였음을 감안하면 LG에 들어와서 성장했다고 할 수 없다. 한대화는 LG에서의 3년간 팀 내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고 양준혁은 LG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1년 타율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단 한대화는 나이 때문에 2년 반 동안 LG에 있다가 쌍방울로 가서 은퇴를 했고 양준혁은 2년간 3할 타율 25홈런을 쳤지만 FA 계약 조건 때문에 LG에서 계약을 다시 고려했지만 친정팀 삼성이 먼저 다가와 러브콜을 하면서 이듬해 모두가 잘아는 유명한 2002년 한국시리즈 에서 본인이 이루고 싶던 친정팀의 우승과 본인 커리어 첫 우승을 갖는다 단 그 때 10년연속 3할 달성이 실패되었지만 2003년 다시 부활했다.

이 외로 탈쥐효과로 기록들을 갱신하는 등 어마어마한 사건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손지환무보살 삼중살이나 이용규의 3점홈런과 만루홈런으로 팀 이닝 사이클링 홈런, 박병호의 2012년 3관왕(홈런, 장타율, 타점)에 이은 2013년 4관왕[79]& 2012년, 2013년 MVP 수상이 있다.

유독 이 팀은 탈쥐효과와 인연이 없다. 그나마 감독 쪽으로 딱 한명을 받아서 2위까지 해봤으나 입시비리로 흑역사가 되면서 의미가 사라졌다. 그나마 2024년에 손호영이 성공사례를 쓰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또한 한화도 눈에띄는 활약을 했던 선수가 없으며[80], 삼성도 LG 선수가 이적하는 경우도 얼마 없었고 탈쥐효과도 그렇게 재미를 보지 못한 편이다.[81]

탈쥐효과에 반론을 제기한 최훈의 웹툰이다. 결론만 따지자면 이게 다 잠실 때문이다라는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당장 같은 잠실 구장을 쓰고 있는 두산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최훈이 LG팬이라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 결국 최훈도 탈쥐효과를 인정했다.

그나마 현재는 구단이 꾸준히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성공하고 이호준 타격코치의 부임 이후 타자 육성 문제도 해결되면서 2023년에 결국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성공했고, 이 우승도 자체 육성한 선수들이 주축이 된 덕분에 과거에 비하면 탈쥐효과 자체는 많이 없어진 편. 오랫동안 돌고 돌아서 구단의 체질 개선에 성공한 덕분에 양석환 이후로는 그래도 탈쥐효과에 추가로 리스트를 올리는 선수를 보기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82] 설사 탈쥐효과가 나오더라도 과거처럼 LG가 못 키워서라기보단 김기연이나 손호영의 사례처럼 LG의 기존의 두터운 전력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해서 다른 팀에서 터지는 케이스도 볼 수 있을 정도.

[1] 박종호가 오기 전까지 현대의 2루수 자리는 매우 오랫동안 구멍에 가까웠다.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에는 3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를 받았던 정구선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이렇다 할 2루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태평양 돌핀스로 넘어와서까지 이 문제가 아킬레스 건으로 지적됐을 정도였는데, 이때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영입했던 선수가 염경엽, 이근엽 등이었지만 공격력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말았다. 박종호 이전에는 이명수도 데려왔지만 나이가 많기는 매한가지였고 결국 팀에서 에이스 노릇까지 했던 최창호를 내주고 박종호를 데려와서야 오랜 구멍을 메우게 된다.[2] 원래는 기존의 2루수 이명수가 따로 있어 박종호는 2루와 3루를 번갈아 보다가 후에 철벽수비와 한방을 자랑하던 톰 퀸란이 오고 김경기가 이적, 이명수가 1루로 가면서 2루수로 완전히 안착했다.[3] 또는 밀레니엄 4박이라고 불렀다.[4] 역대 최초 스위치 히터 타격왕. 그리고 타격왕에 오르는 타자는 그 해 우승을 못한다는 징크스를 완벽하게 깼다.[5] 이 기록은 이듬해 롯데 자이언츠펠릭스 호세가 63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경신했다.[6] 2002년 0.266, 2003년 0.293[7] 현대의 자율 훈련에 본인도 너무 만족한 나머지 훈련을 제때 하지않고 노는것에 정신 없었다고. 박동희 칼럼 참고.[8] 2003년 8월 29일 수원 두산전~2004년 4월 21일 수원 현대전.[9] 종전 국내 기록은 1999년 박정태의 31경기 연속 안타, 아시아 기록은 1979년 히로시마의 다카하시 요시히코의 33경기 연속 안타. 다만 박종호의 기록은 2년 연속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 시즌 연속안타 신기록은 여전히 박정태가 가지고 있다.[10]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결과,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걸리고 링거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경기에 출장했다고 한다.[11] 2004년 4월 18일 두산 베어스와의 대구 홈 경기에서 두산 선발 게리 레스에게 1~3번째 타석에서 범타로 막히며 37경기 연속 안타 기록 달성 실패 위기에 몰렸고 4번째 타석에서도 플라이볼을 날렸으나 좌익수가 잡지 않아 안타로 기록되면서 기록행진을 이어 나갔다. 마운드에 있던 레스가 화를 냈던 건 덤.[12] 당시 현대 감독.[13] 참고로 진필중은 이 FA 계약 이후 부진하면서 입쥐효과의 대표 사례로 불리게 된다.[14] 두 달만에 17홈런을 쳐 버린 최승준에 의해 깨졌다. 근데 이쪽도 탈쥐. 그뿐만 아니라 당시 최승준을 가르친 SK 와이번스의 코치 중 한 명이 바로 손지환이기도 했다. 물론 메인인 진짜 타격코치는 정경배였지만, 어쨌건 손지환도 보조타격코치였으니 손지환도 타격지도 자체는 했었다. 아무튼 이런 배경때문에 당시 인터넷 스포츠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15] 그래서 2009년의 김상현은 우주의 기운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이들 나온다. 더구나 당시 김상현의 홈런을 보면 김상현의 KIA 시절 홈런을 보면 변화구가 정타로 맞지 않거나 넘어가긴 힘든 발사각을 가진 타구가 김상현의 어마어마한 힘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보면 비교적 사이즈가 작은 무등 야구장월명 야구장의 덕도 있었다. 물론 그 전의 홈구장이 잠실이긴 했지만. 또한 최희섭을 거른 뒤 김상현에게 승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피꺼솟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여기서 집중력이 발휘되어 좋은 결과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듯 여러 요인이 겹쳐 드라마틱하게 1시즌에 모두 불태우고 우승반지까지 가져단 선수다 보니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의혹까지 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고 실제로도 도핑 검사에서 걸린 적도 없다. 더 알고 싶다면 선수 항목으로.[16] 그나마 같은 1루수 자리에 NC 다이노스에릭 테임즈라는 외국인 레전드 선수가 있어서 경쟁자라도 있었지만, 그 테임즈마저도 2015년에만 박병호의 수상을 막는 정도(박병호를 제치고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로 끝났다. 그나마도 테임즈가 40-40 클럽 달성이라는 전무후무한 KBO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세웠으면 2년 연속 50홈런 겸 4년 연속 홈런왕의 박병호에게 돌아갔을 수도 있다. 둘 다 한국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대기록이지만 40-40이 더 월드클래스 기록이라서 그랬다. 2014년에도 같은 팀의 서건창의 200안타 임팩트로 MVP를 넘겨줬지만,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팀의 서건창과 강정호 3명이 서로 특출나서 너무 압도적이라 비교가 힘들었다.[17] KBO 역대 최다 수상[18] 2015년부터 144경기로 늘어났다고 해도 100경기 약간 넘게 나오던 과거 3년과 달리 거의 전경기에 다 나올 정도로 이후 3년은 달랐다.[19] 워낙 탱탱볼 시즌이었던지라 wRC+는 15,16에 비해 낮지만 어차피 LG에 있던 어떤 해보다 높다.[20] 물론 애초에 양석환이 나오기 전에도 MBC(LG 전신)에서 OB(두산 구 명칭)로 넘어온 김상호로 반박이 된다. 다만 김상호가 MBC를 나온 뒤 잠실 홈런왕에 오르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차가 있고, 그 시즌을 제외하면 MBC 시절 성적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서 완벽한 탈쥐라기엔 조금 애매하지 않냐는 평. 사실 이것도 김상호가 MBC 시절에도 그렇게 타격이 못써먹을 선수는 아니었던 점도 컸다. 공교롭게도 탈쥐효과를 본 선수 중 LG에서도 어느 정도 활약하고 떠났다는 점에서 양석환과도 비슷한 편.[21] 대신 이 해, LG는 2년간 헤매던 함덕주가 부활하면서 29년만의 우승반지를 끼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돌고 돌아 3년만에 윈윈 트레이드가 된 셈이다.[22] 이는 명백한 본인의 착각으로, 20시즌 중반 류중일 감독은 상무에서 막 전역한 양석환을 김민성, 라모스가 부상으로 결장한 1,3루에 꾸준히 기용했으나 어정쩡한 타격과 최악의 수비로 인해 벤치에 앉게 된것이다. 오히려 류중일은 양아들이 양석환이냐는 소리까지 들을정도로 양석환에게 기회를 많이 줬었다.[23] 다만, SK를 마냥 약팀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SK의 창단 초창기는 1999시즌 97패를 적립했던 최약체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그대로 인수했기에 꿈도 희망도 없는 독보적 꼴찌였으나, 2003년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고, 2005년에도 가을야구에 진출했던 팀이었다. 그나마 초대 감독이던 강병철이승호, 페르난도 에르난데스, 채병용을 신나게 굴리며 구단을 성장시켰고 2대 감독 조범현정근우, 최정 등 야수진들을 훌륭하게 육성하고 단련시켜 꾸준히 가을야구를 갈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어놨다. 김성근 감독 본인도 부임 직전 SK가 6위를 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조범현 감독이 선수 육성을 잘해놓고 갔다며 극찬했다.[24] 이 선수 역시 FA 보상선수의 또다른 신화를 썼다.[25] 위에 있는 염경엽도 넥센과 SK 소속 때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26] 이택근 이전까지 FA 타자 최고액은 삼성 심정수의 4년 옵션 포함 60억이였다.[27] 이 액수가 하나의 기준이 되면서 다음해인 2012 시즌 종료 뒤에 김주찬이 4년 50억 계약을 맺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다시 한해 건너 2013시즌 종료뒤에는 이용규 4년 67억, 정근우 4년 70억으로 본격적인 FA 대폭등 시대가 도래하였다.[28] 이런 FA 대폭등은 마침 프로야구의 인기가 대폭발한 시점에 가장 돈 없다는 넥센이 4년 50억이라는 충격적인 액수를 들고 나오면서, 최소한 우리가 저기에 밀릴 수는 없다는 데에 각 구단 고위층들과 팬들의 생각이 일치한 결과이다. 여기에 여러 재벌들이 모기업의 악재를 상쇄하기 위해서 기업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회수가 불가능한 정도의 거액을 쏟아붓기 시작하였다. 그 정점이 바로 2016 시즌 종료 뒤에 MLB에서 복귀한 롯데 이대호의 150억 계약이다.[29] 다만 이택근은 이미 넥센 시절부터 허리부상이 있어서 충분한 휴식과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현금 트레이드 이후 팀 분위기 때문에 무리한 출전을 강행하다가 몸상태가 최악으로 망가져서 사실상 유리몸에 먹튀로 전락한 측면도 있다. 거기에 중견수비만 가능한데 외야수가 넘쳐나는 팀 상황상 때문에 잘 하지도 못하고 본인도 꺼리는 1루수와 좌익수로 출전하면서 수비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FA계약 과정에서 본인이 스스로 유학드립, 50억드립을 치면서 원소속구단을 물먹인건 LG팬들 입장에선 엄연히 빡치는 행동인건 맞다. 여러가지 전후상황을 감안해보면 이택근은 본인이 원치도 않았던 트레이드로 정든 친정팀을 떠난 것도 불만인데, 새로 들어온 팀의 환경도 자신이 최적으로 뛸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다 보니 불만이 심각하게 쌓여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렇다고 대놓고 LG를 엿먹인 건 누가봐도 잘못된 행동이며 이때부터 전 구단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성에 대해 운운하는 글들이 많이 생겼는데 2012년에 다시 넥센으로 돌아가서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리다가 2015년에 같은 팀 후배를 방망이로 때리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되어 선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하게 되었다.[30] MLB 통산 1400안타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KBO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중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는 많았으나 로니만큼 높은 경력을 가진 선수는 거의 없었다. 이 분 빼고.[31] 한화 약410억 원[32] 통산 성적으로 봐도 홈원정 편차가 상당히 큰 투수였다. 고척 다음으로 통산 커리어 내내 많이 등판한 구장이 바로 잠실인데, 투수 친화 구장인데도 커리어 통산으로 2023년까지 잠실 등판 경기에서 4.82의 ERA로 부진하면서 집을 심하게 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입쥐효과라기보다는 원래 기록하던 스플릿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정도로 잠실에서 이상하리만치 등판 성적이 안 좋았던 비슷한 예시로는 바로 전 삼성의 투수 윤성환 정도가 있다.[33] 선수가 실력 외적인 문제로 인해 이적한 경우, 제도적 문제 등으로 인해 LG가 키워 보기도 전에 선수를 빼앗긴 경우 등.[34] 다만 이용규 본인이 훗날 스톡킹에서 얘기한 바로는 싸운 적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코치의 조언에 따라 연습하다가 코치가 안 볼때엔 본인의 스타일대로 연습해보기도 했었다고. 이게 맞는 말이라면 이용규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는 코치가 뒤에서나마 계속 보고 있었고 코치 본인의 말을 안 듣는다 생각해서 찍혔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용규의 말대로 싸우거나 찍힌건 아닌데 당시 막장이었던 감독이나 단장이 지들 멋대로 보낸걸 수도 있다.[35] 이 당시 프로야구 지도자들의 보수적인 자세로 자기들 말을 안 따르는 선수들을 여러 방식으로 타팀에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아마 야구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부분이 많아 지도자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야하지만 프로에선 최소 2010년대부터 지도자들이 선수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모습이 있어서 선수와 코치의 소통으로 선수가 커가는 모습이 보여지는 현재로써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되었다.[36] 심지어 야구 팬들은 이용규가 원래 LG 출신인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 언급조차 안되고 있는 타이밍에 이런 얘기가 나온 것.[37] 그 한 경기는 우리 히어로즈와의 경기였고 상대투수는 당시 서건창의 데뷔 첫 삼진을 잡던 송신영.[38] 원래 서건창은 NC에 입단하기 위해 테스트 준비를 했었던 것인데 당시 박흥식 코치의 추천으로 좀 더 빨리 넥센에 가서 테스트를 거친 후 신고선수 신분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39] KIA는 예전부터 은퇴 전에 몰려있던 선수를 주워와서 쏠쏠하게 활용한 사례가 많았다. 정성훈이라거나 나주환이라거나.[40] 당시 1차지명이 없던 시기라 1라운더 지명이면 현 1차지명으로 볼 수 있다.[41] 물론 SK에서 뭐라도 보여줬다면 충분히 목록에 포함이 되었을 수 있고 애당초 두산으로 가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42]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한 때 소원했지만, 2011년 시구를 하고, 이후 2015년 우승 축하 영상을 구단 유튜브를 통해 보내면서 다시 관계를 회복.[43] 여담으로 김태군이 2017 시즌이 끝나고 나이 서른에 입대할 때까지 NC는 그를 대체할 포수를 단 하나도 키워내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부 육성도 시도했고, 미국물 먹은 유망주를 밀어보기도 했고, 은퇴한 선수를 현역으로 복귀시키기도 하고, 초고교급 유망주였던 투수초고교급 유망주였던 포수를 바꿔도 봤으나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결국 2018 시즌 종료 후 구단의 선택은 현질(...). 린의지 내[44] 오히려 LG는 원종현이 부상당했을 때 그를 신고선수로 전환시키면서까지 기다려줬다.[45] 사실 투수의 경우 이렇게 전 소속 팀에서 정리가 되거나 방출 요청으로 팀을 떠난 이후 다른 팀에서 여러 이유로 자리를 잡고 핵심 투수가 되는 경우가 여러 팀을 돌아봐도 꽤 있다. 이 경우는 그냥 팀을 잘 만난 케이스인데, NC의 경우 원종현 외에도 김진성이 비슷한 케이스이며 키움의 경우 KT에서 방출 후 핵심 좌투 불펜이 된 이영준이 이렇고, 한화의 경우 전 삼성 소속이던 윤대경이 이와 유사한 케이스이며 LG의 경우 넥센-SK-KT에서 오랫동안 저니맨 생활을 하다가 2021년에 다시 사이드암으로 팔각도를 낮춘 이후에 새로운 좌투 셋업맨으로 자리잡은 김대유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김대유는 넥센에서 SK로 2차 드래프트, SK에서 방출 후 KT로, KT에서 2차 드래프트 형태로 LG로 이적을 한, 무려 세 번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케이스.[46] 사실 이때도 홈런 수는 많았지만 볼넷 대비 삼진이 너무 많은 것 때문에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이 성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47] 팀이 스코어 1:2로 지던 상황에서 정의윤은 동점 솔로홈런, 최승준은 역전 홈런을 쳤다.[48] '걱정말아요 그대' 의 패러디.[49] 이 경우 기존 소속팀에서 보호한 20명 외의 다른 선수를 신생팀에서 임의로 선수를 가져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2 조영훈, 송신영 김태군 등이 이 혜택으로 NC에 이적했다.[50] 어쩌다 선발출전하더라도 끝까지 경기를 소화하기보다는 대타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51] 물론 박해민의 22시즌은 성공적이었고, 포수는 육성에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당시 팀 내 특유의 베테량 선호 기조로 인해 기회를 매우 적게 주고, 보호선수로 묶지 않은 것은 LG의 큰 실책이다.[52] 사실 이주형이 기회를 적게 받은 이유는 좋지 못한 수비력때문이다. 포지션이 고정되지 않아 1군에서 써먹기는 영 애매한 수준이었는데 마침 감독도 주전 맹신 비주전 불신으로 쓸놈쓸 운영하는 것에 도가 트여있는 류중일, 류지현이었기때문에 LG에선 12경기 13타석만 나온 것이 전부이다.[53] 사실 FA로 NC에 한 번 다녀왔을 당시부터 이미 지명타자로 자주 빠졌을 정도로 2019년부터는 한 번도 포수로 단일 시즌 900이닝 이상을 먹은 적이 없었다.[54] 9월 18일 기준 95.4다. 물론 포수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준수한 것은 사실.[55] 쉽게 말하면 과거에는 LG가 유망주는 있는데 선수를 키워내지를 못해서 팀은 팀대로 바닥을 드러내고 선수는 다른 팀에 가서 잠재력이 터지면서 '탈쥐효과'라고 놀림받았다면, 2020년대 들어서는 LG도 이제 선수를 키워내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오르고, 동시에 뎁스도 두터워지면서 실력은 있음에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자연스레 기회를 찾아 다른 팀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 형태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옆집 두산 베어스와 같은 길을 걷는 셈인데, 화수분 야구로 전성기를 열었던 2010년대 두산도 팀에서는 1.5군 역할을 전전하다 타 팀에서 확실한 주전이나 키플레이어로 자리잡은 사례가 심심찮게 나왔음에도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만큼 '탈돡효과'라는 말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과거 LG가 유망주들에게 자리를 주고 키워볼 만한 상황임에도 도저히 키워내지 못하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나올 정도로 육성 수준이 처참했다는 뜻이기도 하고.[56] 만약 이 성적을 유지하고 규정타석을 채웠다면 리그에서 거의 다섯손가락에 근접하는 성적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홈런 선두 맷 데이비슨 바로 다음가는 수준이다.[57] 실제로 롯데 이적 후에도 부상 탓에 온전히 시즌을 소화하지 못하며 규정타석을 못 채웠다.[58] MBC 청룡 시절까지 포함하면 1988년 김상훈이 있다.[59] 현재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도 타자 친화구장인 것이 사실인데, 그 당시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좌우 95m, 중앙 펜스 117m였다. 당연히 이 시기부터 전통의 타자 친화구장으로 악명이 높았었다.[60] 다만 잠실은 양준혁이 전성기를 보내던 90~00년대와 LG에 입단했던 2000년과 2001년 당시에는 현재 펜스까지의 거리인 100-125-100이 아니라, 지방 구장에 비해 너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인해 95m로 펜스를 당겨서 운영했던 시기였다. 그 때문에 이 당시 좌측 담장은 류지현이 이 곳을 당겨서 넘기는 홈런을 많이 뽑아내서 류지현 존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었을 정도. # 현재의 외야 크기로 다시 환원된 것은 양준혁이 삼성으로 다시 돌아간 뒤인 2003년의 일이며, 잠실은 일본프로야구 구장 중에서는 나고야 돔,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등의 구장과도 비슷한 편이다. 대신 중앙 담장까지의 거리가 NPB 구장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먼 편이며 이 때문에 펜스 높이는 KBO 리그 전체 구장 중에서도 꽤 낮은 편.[61] 사실 손주인은 이미 2017년 중반부터 에이징 커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수비 실책도 많아지고 배트 스피드가 느려져서 이미 퇴보하고 있었다는 뜻. 어차피 어느 팀으로 옮겼더라도 이미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62] 사실 당시 두산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위치긴 했다. 당시에만 해도 주로 키스톤 자원으로 분류가 되었었는데, 비슷한 연배의 선수로는 이 자리에 붙박이 주전으로 고영민이 있었기 때문에 설 자리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입단한 지 얼마 안 돼서 트레이드된 것도 있다.[63] 정작 팬 서비스는 꽤 호불호가 갈렸다고 한다. 선수 개인의 루틴에 따라 팬 서비스도 기복을 심하게 타는 유형으로 꼽히는 선수.[64] 다만 4월에 부진하는 건 삼성 시절에도 똑같았다.[65] 오히려 유강남이 부진과 부상으로 2023시즌을 망치며 LG, KIA, 롯데 포수 바꾸기의 실익은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66] 이렇게 된 이유는 작년 48홈런을 합작한 김현수+오지환이 올해는 고작 7개 쳤기 때문[67] 김상현은 KIA로 트레이드된 이후 성적만으로도 정규시즌 MVP와 홈런왕을 모두 달성했다. 그리고 박기남은 수년간 좋은 백업 선수로 활약하며, 이범호와 김상현의 부상을 잘 메웠다.[68] 같은 해 심수창과 송신영은 한화에서 만난다.[69] 사실 당시에 팬들도 프랜차이즈 박용택의 FA에 더 신경을 썼지 박경수는 큰 관심이 없었다. 또한 후반기의 활약이 FA로이드로 보일 여지도 있었다.[70] 이택근 트레이드 당시 언더머니 38억원 + 송신영 트레이드 당시 언더머니 15억원[71] 이 윤요섭+박용근-이준형 의 2:1 트레이드는 KT가 투수 유망주를 쩌리들을 받고 내주었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72] LG의 전신인 MBC 시절에는 삼성과 두 차례 트레이드를 했지만 LG로 바뀐 후에는 FA 계약과 보상선수 이동을 제외하고 두 팀 사이의 트레이드가 없었다. 2002 시즌 종료 후 LG에서 웨이버 공시된 뒤 삼성으로 간 심성보는 규약상 트레이드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트레이드라고 하기는 어렵다.[73] 그래도 정의윤은 그럭저럭 했다.[74] 이때만 해도 13년 전의 모습과 비슷하다며(당시에는 이성열이 2010년 24홈런을 터트리며 완전 두산의 승리인 줄 알았으나 김용의가 추후 포텐을 터트리며 무승부로 끝나는 듯 했는데... 이성열이 추후 오재일과 트레이드가 되고 그 오재일이 두산에서 포텐을 완전히 터트렸고 한국시리즈 MVP까지 받은 탓에 이 트레이드는 두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소름이 돋는 것은 당시의 트레이드 메인은 이재영최승환 이었다는 것인데, 얹혀 간 선수들로 승부가 나고 말았다.[75] 그사이 채지선은 다시 한 번 트레이드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76] 성적이 좋아 빨리 1군에 자리 잡고 국가대표로 군면제를 받으면 20대 후반에 FA가 가능한데 야구선수는 보통 이때가 한창 전성기일 시점이다.[77] 1995년 김상호, 2009년 김상현, 2012~2013년 박병호, 2014년 서건창.[78] 트레이드 당시 26세의 군필 주전포수도 모자라 심지어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까지 가지고 있는 포수였다. 야구에서 포수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탱킹이나 구단의 부채 문제 등 재정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절대로 트레이드 시장에 나올 일이 없는 위치다.[79] 홈런, 장타율, 타점, 득점. 볼넷 1위는 덤.[80] 대표적으로 추승우이시찬(개명 전 이학준)이 그나마 2013년에 한화에서 두 자릿 수 도루를 성공한 유이한 선수이며 이학준은 이 해에 데뷔 첫 홈런도 쳤으나 그게 다다. 이보다 한화로 가서 더 망가진 백진우(개명 전 백창수)의 사례로 보면...[81] 2023년에 유강남과 채은성이 FA로 빠져나갔지만 이들이 이적한 팀이 그나마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롯데, 한화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팬들도 많다.[82] 사실 그 양석환도 문보경 터지는거 보자마자 팀에서 필요 없다는 판단이 서서 내보낼 수 있었기에 기존의 다른 탈쥐 선수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다만 LG에서 그렇게 타석을 먹이고도 안 터지던게 두산으로 가자마자 터져서 탈쥐 평가를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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