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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드라마)/등장인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천추태후(드라마)

1. 개요2. 출연진
2.1. 주요 인물2.2. 고려 인물
2.2.1. 황실
2.2.1.1. 황제2.2.1.2. 태조~광종 관련 황족2.2.1.3. 경종 관련 황족2.2.1.4. 성종 관련 황족2.2.1.5. 목종 관련 황족2.2.1.6. 현종 관련 황족
2.2.2. 내관 또는 상궁2.2.3. 조정 신료
2.2.3.1. 북방 근기계 문신2.2.3.2. 신라계 유학파 문신2.2.3.3. 중립파 및 기타 문신2.2.3.4. 문무겸장2.2.3.5. 무신2.2.3.6. 문제가 있는 무신
2.2.4. 기타 인물
2.2.4.1. 천추태후 관련 인물2.2.4.2. 강조 관련 인물2.2.4.3. 김치양 관련 인물
2.3. 요나라 인물
2.3.1. 황실과 문신2.3.2. 무신
2.4. 여진족2.5. 송나라 인물

[clearfix]

1. 개요

2009년 1월 3일 ~ 동년 9월 27일까지 방송된 KBS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의 출연진[1]을 소개하는 문서이다.

이 외 출연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위키백과의 이 드라마 문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2. 출연진

★는 가상 인물이다. 그리고 실존인물도 그 행적이 사서(史書)와 완전히 따로 놀다 못 해 선(善)과 악(惡)이 완전히 뒤집혀져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2.1. 주요 인물

드라마 오프닝과 2008년 연기대상 당시 예고로 등장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2.2. 고려 인물

2.2.1. 황실

2.2.1.1. 황제
2.2.1.2. 태조~광종 관련 황족
2.2.1.3. 경종 관련 황족
2.2.1.4. 성종 관련 황족
극 초반에는 성종과 왕족들에게 따뜻하며 지고지순하고 무개념한 아버지 김원숭에게 백성을 위해 재산을 일부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는 등 현숙한 왕후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성종의 병환으로 잠시 대리를 맡은 뒤로는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종이 강조와 싸우면서 밀쳐내 사망하자[12] 천추태후에 적개심을 품고 악역으로 변모, 김원숭, 신라계와 손잡고 천추태후를 방해하지만, 매번 천추태후와 김치양에게 발릴뿐더러 아버지 김원숭마저 처형당했다. 그나마 목종의 비호로 살아남고 결국 김치양의 난 이후 목종을 강조의 명을 참칭하여 시해한 흑막이 됐으며, 딸을 현종의 비로 들이고 다시 입궁해서 최종 승리자로 보였으나 제2차 여요전쟁 중에 황후와 합궁을 요구하고 피난 중에 거란군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 현종과 길이 갈라진 이기적인 태도[13]에 지쳐서 제2차 여요전쟁 이후 발언권이 강해진 현종이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쫓았고 물러나던 중 천추태후가 지나가다가 비웃자 뒷목 엔딩으로 퇴장.[14]
2.2.1.5. 목종 관련 황족
2.2.1.6. 현종 관련 황족

2.2.2. 내관 또는 상궁[19]

2.2.3. 조정 신료

2.2.3.1. 북방 근기계 문신
2.2.3.2. 신라계 유학파 문신
실제 기록을 보면 김원숭이 장사꾼에 사료에 악행을 행했다는 내용이 없고, 김심언이나 최숙은 충신임에도[29]임에도 본 작품에서는 신라계 문신들을 천추태후와 대적하는 인물로 그리면서 죄다 사악한 인물로 왜곡해버린다. 드라마 천추태후를 감상하면서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2.2.3.3. 중립파 및 기타 문신
2.2.3.4. 문무겸장[35]
2.2.3.5. 무신
2.2.3.6. 문제가 있는 무신

2.2.4. 기타 인물

2.2.4.1. 천추태후 관련 인물
2.2.4.2. 강조 관련 인물
2.2.4.3. 김치양 관련 인물

2.3. 요나라 인물

2.3.1. 황실과 문신

2.3.2. 무신

2.4. 여진족

2.5. 송나라 인물



[1] 많은 출연진이 전작 대조영에도 출연했다.[2] 전작 대조영에서 당나라의 명장 설인귀를 연기했다. 전작의 설인귀가 거란 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수가 뒤바뀐 셈이며, 동 시대를 다루는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해당 배역자신과 교분이 깊었던 이의 아들이자 라이벌 역을 연기한 최수종이 맡게 되었다. 참고로 이덕화 씨는 제작 발표회 및 2008년 연기대상 당시 "처음에 강감찬 역을 제의 받고 오랜만에 주인공을 맡는 줄 알았다"며 "알고보니 주인공이 천추태후여서 아쉬움이 컸다" 라면서 특히, 강부자씨 뿐만 아니라 씨 문중에서도 많이 연락왔더라라고 밝혔다. 주요 인물들 중에서 나름 인지도가 높았던 탓인 듯.[3]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연예계에서 은퇴하였다.[4] 전작인 대조영에서 걸사비우 역을 맡았다.[5] 전작인 대조영에서 검모잠 역을 맡았다.[6] 이전인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인 장화왕후 오씨 역을 맡았는데, 이번엔 태조의 네 번째 부인으로 등장했는데, 남들(제국의 아침에서는 정종과 광종(왕요, 왕소 세력)에게, 이 드라마에서는 경종이나 신라계 유학파 입장) 눈에는 욕심 많은 할머니로 표현되었다.[7] 당시 이를 본 경종이 6세에 불과했지만, 이 일로 심한 충격을 겪었고, 서경에서 있었던 발해 유민 난동 사건 당시 본인에게 따지면서 막던 황보수(천추태후)를 보고, "어마마마"라면서 쥐고 있던 칼도 버리고, 울면서 다가가서 현장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후에 그 일을 서희이지백에게 들은 신정왕태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그 아이(황보수)는 고모와도 닮지 않았어요. 내 딸인데 내가 그걸 모르겠냐?"라면서 넘긴 듯하였지만, 후에 황보수에게 사실을 얘기하긴 했다.[8] 강감찬과 최항이 사병이라도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없다면서 그만 나가라고 하기까지 했다.[9] 광종과 대목황후의 딸이다. 어머니의 성을 따르지 않고(둘 다 본래 왕씨이기 때문에), 할머니인 신명순성왕태후의 성인 유씨를 취했다. 성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기반을 주었다. 성종은 광종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10] 극 중에서는 왕위 계승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신정황태후의 뜻에 따라 정략결혼한것으로 설정되었다.[11] 그것도 왕후가 쓰는 곳은 아래의 연흥궁주에게 주고 뒷방으로 물러났다.[12] 다만 1차적인 원인은 유언장을 고치고자 성종에게 마약을 먹인 것이다.[13] 다만 그 끝은 좋지 않았다. 김신언 등 신라계 신료들과 황제와 갈라져 고향인 선주(구미시)로 가던 중, 거란군에 의해 따르던 조선이 죽었고, 본인과 딸은 거란군에게 잡혀 죽을 뻔 했지만, 현종을 구하러 남진하던 천추태후 일행에게 구출되었다. 물론 천추태후는 "난 당신들을 구하러는 것이 아니라 황후가 능욕되는 걸 못 참았다."면서 들고 온 군사들을 데리고 현종을 찾으러 갔다.(여기까지가 76회) 우여곡절 끝에 고향 선주에 도착했지만 거기서 주민들에게 돌팔매를 당했는데, 촌장과 주민 대표의 말을 종합하면, '네 아비가 여기 주민들 등골 짜내다가 개경 간 이후로는 콧방귀도 안 뀌었고, 역적으로 처형되면서 우린 주현(主縣)에서 속현(屬縣)으로 강등되어 핍박을 받았다.' 라고 밝혀 일행을 떼굴멍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선주 이후로는 신라계 대신들마저 도망가 딸과 상궁만 남은 채 비를 맞는 모습을 보이면서 실성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담으로 77회에서는 이들의 비참한 행보와 무사히 호구를 벗어나 공주 절도사 김은부의 환대를 받은 현종과 천추태후 일행이 대비된 장면으로 지나간다.[14] 이 부분에서는 설명이 조금 필요한데, 환궁 이후 현종이 김은부의 딸을 후비로 들이는 것에 반대해 내관의 만류에도 현종을 만나 이것저것 따지다가 현종이 빡쳐서 "당신이 황제냐?"면서 절대 들어오지 말라면서 내쫓았고, 조 상궁의 부축을 받으면서 나오다가 황제를 만나러 온 천추태후에게 "당신이 나와 황후를 내쫓으려고 황제에게 후비를 들이라고 했지?"라면서 악담을 퍼붓다가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본 천추태후의 "댁에 들어가서 맑은 물에 얼굴을 대 보세요. 완전히 흉했다."라는 말에 기겁해 거침없이 악담을 하다가 그만 뒷목을 잡고 쓰러진 것이다.[15] 어릴 때부터 선정왕후가 목종을 잘 챙겼으며 천추태후가 숭덕궁주이던 시절부터 깍듯하게 대했고 천추태후도 이런 그녀를 좋게 보아서 목종의 왕후로 추천했다.[16] 목종 즉위 후 여러번의 숙청 이후에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다 잊고 살자고 말하기도 한다.[17] 이건 그럴만도 한 게 신라계의 압박에 정략결혼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18] 정확히는 현종과 원혜태후 소생인 문종이 현종의 뒤를 이어 고려의 중시조가 된 것이다.[19] 유행간 아래부터는 모두 가상인물[20] 태조 왕건에서 능환 역을 맡았다.[21] 능환 때보다 많이 굽어진 모습이었으며, 이 드라마를 끝으로 몇 편의 영화와 연극 활동을 하다가 2016년 별세.[22] 김치양과 유행간의 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강감찬이 유행간을 견제하기 위해 강조에게 부탁한 발해인 출신이다.[23] 이 때 의심하는 이현운과 안패를 안심시키느라 먼저 독주를 마셨다.[24] 후에 제대로 된 사극 정도전에서 우왕 역할을 맡는데, 공교롭게도 동성애 상대였던 목종과 동성애와 간질을 제외하면 후반부에 비슷한 행보를 걷는다. 폐위당한 왕이 되는 점이나 후에 암살당해 죽는 면이다. 작중 목종이나 정도전의 우왕 역시 소년기와 청년기가 참 좋지 못했다. 여담으로 박진우는 정도전에서의 자신의 연기를 이 드라마에서 배웠다고 한다.[25] 2002년 제국의 아침에서는 신정왕태후역할을 연기했었다.[26] 대왕 세종에서 성인 안평대군 역을 맡았다.[27] 전작인 대조영에서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 역을 맡았다. 대조영에서 설인귀 역을 맡은 이덕화가 본작에서는 강감찬 역을 맡아서 같은 고려 진영에서 움직이게 되었다. 무인시대에는 두경승이의민 [28] 이전 태조 왕건에서는 후백제의 책사 최승우을 맡았다.[29] 김심언은 목종 대 지방관리로 부임하면서 민생을 잘 살펴 큰 명성을 얻었다고 나와있고, 최숙은 최승로의 아들로 목종 사당에 배향된 배향공신이다.[30] 전작인 대조영에서 부지광 역을 맡았다.[31] 전작인 대조영에서 광기어린 매국노 부기원 역을 맡았다.[32] 전작인 대조영에서 고사계 역을 맡았다.[33] 전작인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군 양소위 역을 맡았다.[34] 명성황후에서는 고종의 내관인 이 내관을 하는 등 KBS 사극에 나름 감초 역할을 한 사람으로, 특히 무인시대(이광정)와 불멸의 이순신(배설) 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배우이다.[35] 이 인물들은 칼 들고 적과 싸우는 장면 때문에 헷갈리기 쉽지만 엄연히 문신이다. 사실 고려 시대 초·중기 전투에서 주요 지휘관으로 나섰던 인물들 대부분이 문신이다![36] 다만 강조나 양규, 김숙흥 처럼 거란 진영 무력 상위권의 장수들이 아닌 적당히 강한 자들을 베었으며, 더군다나 거의 난전중에 1대1 상황으로 각각 상대해서 최강 반열까지는 인정을 못받는다. 다만 그렇다해도 이 시대 전쟁 특성상 장수의 역할이 거의 90% 정도 된다. 이런 와중에 적장이 사망하면 패배로 연결되는 건 당연지사. 따라서 이 사람이 없었으면 고려는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을 수도 있었다. 또한 승리에 도취된 성종이 판단을 성급하게 한 것도 있다. 수도인 개경이 함락되었는 상황이라 현종은 이미 사신을 보내 거란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려 했던 참이었다. 즉, 가만히 있었어도 되었는 상황을 급하게 행동하여 장수 3명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고려에는 호재를 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고려가 말을 안 듣는다고 소배압을 통해 3차 침입을 강행했지만 결과는 알다시피...[37] 전작인 대조영에서 당나라 대신 조문홰 역을 맡았다.[38] 죽기 전 거란 장수들을 힘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39] 전작인 대조영에서 고구려 장수 온사문 역을 맡았다.[40] 무인시대에서 이의민의 동료 장수인 박존위가 이 분이다.[41] 코미디언 출신 배우로 무인시대에서 이의방의 부관이 이 분이다. 청춘행진곡의 좌우로 정렬 코너에서 고구려 군 병사로 출연해서 인기를 끌었다.[42] 김훈과 최질은 현종 때 반란을 일으키다가 죽게 되는데 이때 고려 장군 19명이 참살당하였다고 한다. 자세한 건 왕가도 문서 참조. 다만 드라마에서는 해당 반란은 표현되지 않고 에필로그로 가게 되었다.고려 거란 전쟁에서 다르게 다뤄지긴 하지만 문제는...[43] PD의 전작들인 명성황후무인시대에서도 간지나는 무인 역할로 이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44] 힘이 다해서 죽은 것보다(물론 막판에 지치긴 했다.) 야율융서가 이 둘에게 질려버려서 궁수들을 부른 것이다. 화살비를 맞을 때까지 두 사람 모두 야율융서가 보낸 적들에게 한대도 맞지 않았다. 물론 양규는 요 성종의 화살을 1대 맞기 전까지 전투 중, 특히 냉병기 싸움에서는 단 한 대도 안 맞았으며, 어지간한 적에게 합을 허용한 적도 거의 없다. 심지어 다리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후퇴가 불가능했을 상황으로 설정하여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설정으로 진행되었다.[45] 무인시대에서는 두경승의 사위인 유삼락을 맡았다.[46] 강조, 양규 급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강신이 있지만 가상인물이므로 논외한다. 극 중 설정대로라면 거란군 진영에서는 김숙흥을 이길 수 있는 장수는 아무도 없었다.[47] 극 중 무술대회에서 이 둘이 결승전까지 올라가서 겨룬 것이다. 참고로 양규는 서희와 강감찬이, 김숙흥은 천추태후가 눈여겨보아 천거했다는 설정이 있다. 양규는 요 성종에게 화살 1대라도 맞았지만, 김숙흥은 극 중에서 맞은 적이 단 1대도 없다. 또한 야율적렬을 제외하고는 양규처럼 어지간한 적에게 합을 허락한 적도 거의 없다.[48]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동생인 능애를 연기한 배우. 참고로 PD의 전작인 명성황후에서는 전봉준을 연기했었다.[49] 죽기전 야율분노와 10합을 넘게 겨루는걸 보면 어느정도의 무예실력은 갖추고 있었던 듯 하다[50] 무인시대에서 최충헌의 생질인 박진재를 연기한 배우이다. 최근 배역 중에는 정도전에서 윤소종 역할을 맡은 걸로 유명하다.[51] 요즘으로 치면 대령급 장교[52] 지채문에게 반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고참 중랑장 급으로 묘사된다. 고참이라고는 하지만 장군들에게 면박을 받는 묘사가 나오는데, 현종이 몽진하던 도중에 신세를 한탄하자 하공진이 사신으로 가겠다고 직접 현종 앞에 나섰는데 이 때 극중 설정상 대장군인 조선이 "나도 가만히 있는데 어디 중랑장 따위가 감히 폐하 앞에 나서느냐" 운운한다.[53] 이때는 중랑장이었다. 하공진이 반말하는 것으로 보아 낭장에서 올라온지 얼마 안되는 중랑장인 듯 싶다. 중랑장 1호봉[54] 이쯤이면 강조, 양규, 김숙흥, 강신의 1티어급 다음 레벨로 칠 수 있다.[55] 물론 이 드라마에서는 양규에게 한 큐에 썰리는 요 성종의 호위무사조차 천추태후가 날린 화살을 언월도로 막을 수준으로 웬만한 실력자라면 거의 정면 화살 한 발은 막아낸다.[56] 드라마에서는 우상시로 임명이 되며, 후에 상장군과 좌상시까지 한다.[57] 무인시대에서 석린, 대조영에서는 대중상의 의동생인 고돌발 역을 맡았다.[58] 오늘날로 치면 중령급 장수[59] 무인시대에서도 무신 중에 문제가 제일 심각한 이지영을 맡았다.[60] 드라마 초반에는 "조행수"라고 불렸다.[61] 강조의 정변 당시의 관직이 이부시랑이었던 만큼 본래는 문신이다.[62] 여기서는 강조가 시킨 게 아닌 설정이라 강조는 죽일 듯 화를 냈다.[63] 웃기는 건 이 작품에서는 정작 토종 거란인들은 한화가 진행되어서 변발을 안 하고 머리를 대충 기른 모습으로 나온다.[64] PD의 전작들인 무인시대에서는 이영진을, 명성황후에서는 대원군의 충직한 심복인 장순규 역을 맡았다.[65] 제국의 아침에서는 효은태자 역을 연기했었다.[66] 배우가 착하게 생겨서 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67] 현재 근황은 확실치 않으나 당시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였다. 하필 운 나쁘게도 SM에는 그보다 훨씬 유명한 변백현이 있었다.[68] 40회에서 두 명의 이주정이 연달아 등장하는데, 하는 몸짓이나 말투에 분위기가 전부 비슷하고 모두 명복궁 안에서 등장하는 신이라 헷갈리기 쉽다. 이쯤되면 왜 가상의 인물 명복궁 집사 이주정을 실존인물 이주정과 동명이인으로 등장시켰는지 의문일 정도.[69] 천향비를 구하고 대신 칼을 맞는데, 여기서 천향비가 '이 교관님!'이라며 오열한다.[70] 천향선이며, 정안국이 내분이 될 때, 강조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 탈출하다가 추격해오는 적에 의해 어머니와 함께 죽는다. 마상 위 강조 뒤에서 활을 쏘는 장면이 비장미 넘치는 BGM과 함께 안타까움을 뿜어낸다.[71] 고려의 장수인 윤서안 따위는 상큼하게 쳐발라버리는 실력이다. 극 중에서는 강조, 양규와 동급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가상인물이므로 논외가 되는 처지.[72] 전란 중에 가족들이 모두 죽은 가운데 한덕양이 독연을 거두었다는 설정이 있다. 이는 나중에 독연이 고려에서 은밀하게 한덕양의 밀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언급된다.[73] 실제로 맞붙을 때마다 혈매를 제압한다.[74] 사실상 극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싸움이라고 하기 뭐한 상황이긴 하지만 야율분노가 독연에게 꼼짝 못하는 상황도 묘사되었다.[75] 이 때문에 거란에서는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76] 여담으로 아이를 낳을 때가 천추태후가 황주소군을 낳을 때였다.[77] 순식간에 십수명 정도를 죽일 수 있는 부메랑 같은 무기인데, 다시 회수까지 가능하다.[78] 그런데 박양유의 부장에게는 졌다. 극을 보면 박양유의 부장이 셌던 것이라고 봐야한다.[79] 2008년 10월 첫 방영 당시에는 양금석(대조영에서 당나라의 여제인 측천무후 역)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으나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1TV 일일극 너는 내 운명의 연장방영으로 캐스팅 제의를 포기했다.[80] 이미 작중에서도 자신이 죽으면 바로 고려를 침공할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덕양을 통해 최대한 고려를 약화시키는 방도를 묻고 그를 통한 내분이 성공하는것까지 보았지만 문제는 한덕양의 시나리오로는 아직 3년은 더 기다려야한다는 거였고, 소태후의 병환은 심각해서 사망하고, 당연히 3년이나 기다릴수 없었던 성종은 소태후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한덕양을 무시하고 바로 침공했다.[81] 신돈에서 쿤란태자를 맡은 배우이다. 안타깝게도 2011년에 교통사고로 요절했다.[82] 천추태후 출연 당시에는 예명을 쓰지 않고 본명인 유주희로 활동했다.[83] 거란에서 고려나 옛 발해인들을 죽일 때 형틀에 묶고, 군사들에게 활로 쏴 죽이는 방법.[84] 그 당시 고려 성종과 국혼 대상으로 거론되었던 여성은 소손녕의 딸이었다.# 그러나 고려 성종이 죽고 목종 즉위 후 폐백을 돌려받고# 국혼은 무산됐다.[85] 영화 올드보이의 주환 역과 해바라기의 병진이형으로 유명한 그 배우 맞다. 영화에 조연, 단역으로 자주 출연했으며 경찰청 사람들의 범죄자 배역으로 유명하다.[86] 야인시대신영균 역으로 유명한 배우. 전작인 대조영에서는 계필사문 역을 맡았다.[87] 사실은 그 제압한다는 장면도 제압했다고 보기에는 참 뭐한 게, 야율분노와 싸우다가 부상당한 강조에게 뒤통수를 때린 것에 불과하고, 나머지 한 번도 묶인 강조의 뒷덜미를 친 것에 불과하다. 강조의 마지막 전투 씬에서도 100명과 상대하며 체력이 떨어진 강조에게 4명의 수하 장수와 함께 다구리를 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극에서 묘사한 정황상 강조가 제대로 된 상황에서 싸웠으면 강조에게 쳐발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드라마에서 세계관 최강자의 순위가 양규=강조(=강신)>=김숙흥 쯤이 원투쓰리펀치이기 때문이다. 극 중 설정으로 치자면 강조는 커녕 김숙흥을 이길 장수는 요나라 진영에서는 별로 없다.[88] 앞서 양규가 강조와 함께 세계관 최고의 장수라는 어필이 몇번 나온데다가, 요나라 측이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극의 흐름상 양규가 야율적로를 이긴 것 자체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다. 즉, 드라마 전투씬이 격투 게임처럼 레벨이 정확히 정해진 것도 아니니까 몇 합에서 수십 합 정도 주고 받았다면 완벽한 스토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나라 제1의 장수라는 자가 난전도 아니었고 서로 말을 타면서 달려왔는데, 제대로 칼 한 번도 휘두르지도 못하며 마치 병사처럼 단칼에 전사했다면 이해가 너무 안 가는 스토리가 된다. 아마도 최강자라고 알려진 강조를 두 번이나 제압했다는 자신감에 방심을 한 점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도 보인다. 애초에 양규는 강조와 동급인 상대인데...안패와 이현운이 강조보다 더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했으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강조를 제압했다는 것도 실력으로 제압한 상황이 아니다. 강조가 제대로 컨디션을 발휘할 상황이었다면, 설정으로 봤을 땐 단칼에 썰렸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다른 장수들은 고려 장수들과 어느정도 무예씬을 보여주고 사망했는데 거란 최고 장수가 제일 어이없게 썰려버렸다.양규와 야율적로의 멋진 무예씬을 기대했던 팬들은 매우 실망했던 씬이기도 했다.[89] 채연의 둘이서 뮤직비디오에서 채연의 상대로 등장한 배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개파이를 연기하였다.[90] 여기서 둘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분명히 먼저 일격을 먹인 것은 야율분노였고, 강조는 이미 요나라의 대군을 상대하느라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일격으로 사망하지 않은 반면, 야율분노는 강조의 일격에 즉사했다.[91] 고려거란전쟁에서 현종에 적대하는 호족으로 나왔는데 폐하는 제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패드립을 날렸다.[92] 전작인 대조영에서 당태종 역을 맡았다.[93] 야인시대에서 털보 역을 맡았다.[94] 무인시대에서 환관 왕광취 역울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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