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 인물에 대한 내용은 양규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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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colbgcolor=#070707><colcolor=#fff>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 楊規 | |
캐릭터 | |
지위 | 흥화진사 (1 ~ 4회) → 서북면 도순검사[1] (4 ~ 16회) → 공부상서 (16회, 추증) |
가족 | 양규 처 (배우자) 양대춘 (아들) |
등장회차 | 1 ~ 7회, 10 ~ 16회 |
배우 | |
지승현[2] |
[clearfix]
1. 개요
|
적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싸움을 멈추겠는가. 창칼이 모두 부러질 때까지 우리는 적과 싸울 것이다. 야만족의 포로로 끌려가는 고려의 백성들을 모두 구해낼 것이다. |
2. 작중 행적
자세한 내용은 양규(고려 거란 전쟁)/작중 행적 문서 참고하십시오.3. 인간관계
- 강조: 원작에서는 서로 딱히 잘 아는 사이라고 묘사되지는 않지만, 드라마에서는 서로 신뢰하는 상하관계이나 이현운처럼 무작정 강조에게 동조하지는 않는다. 다만 서로가 고려를 위한 충성심을 가졌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강조가 반역자가 되었어도 인연을 파하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현종에게 출전하는 강조를 격려해 달라고 청하기까지 한다. 이후 김숙흥에게 강조가 패전하여 거란에게 잡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상당히 슬퍼했다.
- 현종: 상황상 많은 교류를 할 겨를은 없었지만 현종을 직접 알현한 자리에서 자신에게 부탁이 아닌 명령을 내리라고 하는 등, 충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종 역시 그런 양규의 모습을 보고 신뢰하며 그의 가족을 만나 위로해준다.
- 강감찬: 현종 몽진 이후 강감찬의 행적이 극중 각색됨에 따라 서경에서 거란의 심리전을 무산시키며 양규와 만났고, 서로 덕담을 나눈다. 실제 역사나 원작에서 딱히 아는 사이는 아니며, 친분을 형성하는 관계도 아니었다.
- 김숙흥: 통제하기 까다로운 성질 과격한 부하. 그러나 한편으론 그에게 귀주를 맡길 만큼 믿는 구석은 있고, 이후 도순검사가 되고서도 흥화진에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신을 정성이 '김숙흥과 닮았다'고 놀리자 인정하기도 한다.극중 양규는 다른 사람들을 부를 때 직함이나 벼슬 이름, 또는 '장군' 등으로 부르는데, 김숙흥만큼은 '김 별장' 등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김숙흥'이라고 이름을 부른다. 이 역시 양규가 김숙흥을 각별히 여긴다고 볼 수 있는 소소한 묘사. 이후 곽주성 탈환 작전부터 시작해 최후까지 거란군을 무찌름과 동시에 포로들을 구출해냈고 이후 둘이서 같이 고슴도치가 되어 선 채로 죽는다.
- 정성: 직속 부하. 거란이 한창 흥화진에 공세를 퍼부을 때 정성이 양규에게 지휘관을 잃는 것은 위험하니 성벽에 오르지 말고 성 안쪽에 머물러달라 요청하나 양규는 "유능한 흥화진사가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냐?"며 가볍게 넘긴다. 생사의 문턱에서 어깨를 맞대고 싸우는 전우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양규가 떠난 이후 계속 흥화진을 지키다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군사를 모아 퇴각하던 거란군을 쫓았고[7], 이후 성루에 서 있다가 활을 든 채 죽은 양규의 시신이 오자 내려와서 "이제 좀 주무시라."면서 오열한다.
- 아내[8]와 아들 양대춘: 본인은 줄곳 최전방을 지켰고 끝내 전사했기에 가족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6회에서 현종이 개경의 어느 사찰에 불공을 드리러[9] 행차하였다가 양규의 처, 양규의 아들 양대춘을 만났고, 이곳에서 현종은 이들 모자와 강조의 처까지 세 사람을 통해 전쟁터로 가족을 떠나보낸 백성들의 마음과 각오를 전해 듣는다.
4.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중화군 출신이며 40대 초반의 나이[10]에 "얼굴이 검고 단단한 몸집의 사람"으로 설명하였고, 드라마에서는 휘하 장수들에게 낮춤말을 쓰는 것과 달리 원작 소설에서는 군율에 엄격하면서도 그들에게도 주로 존댓말을 사용하며, 몇몇 인물들과 대화할 때나 항전을 위해 군사들의 사기를 올릴 때에는 추상같이 호령하며 반말을 사용하기도 한다.[11] 또한 원작에서는 말수도 적은 편이라서 정성을 포함한 흥화진의 군사들도 양규의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라고 묘사되며, 자신이 무언가를 행하고자 할 때에는 주장을 확실히 하여 반대 의견이 없도록 한다. 그 외에 원작에서는 이현운을 죽일 때에도 유감을 표하면서 크게 미동도 없이 바라보는 반면, 삼수채에서 도망치다가 고려군이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숨어있던 어린 병사를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다독여주는 등의 따뜻한 면모도 보여준다.[12] 원작에서는 강조와의 관계가 딱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드라마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추정되는 바와 같이 강조와 가까운 관계로 그려진다.[13] 하지만 비굴하게 아첨하지 않고 강직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고언을 건네며,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매우 많은 본작에서도 퇴장 시점까지 비판받을 바가 전혀 없는 무결한 인간성을 선보였다.[14] 전쟁을 앞두고 선전을 부탁하는 현종에게 자신은 신하이니 그저 명령을 내리시라 당부하며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이다. 현종과 강감찬이 성장형 주인공이라면 양규는 완성형 주인공 포지션인 셈이다.[15]방영 당시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함에 따라 그의 영웅적 활약이 어떻게 묘사될지 기대가 모아졌는데, 흥화진 전투 후부터 전쟁의 묘사가 약해지는 만큼 양규의 활약에 힘이 실릴 것이란 추측이 많고[16], 실제 행적이 영웅적인 만큼 나오기만 하면 명장면을 찍고 있다.[17] 원작에서는 애전(艾田)에서 포로들을 구하느라 화살도 부족해지고 적군이 산 위로 올라와 역공을 가할 수도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거란의 황제를 죽이기 위해 싸웠던 그와 김숙흥의 최후 자체는 정성 등이 시신을 찾아 오열한 후 그의 뜻을 받들어 남아있는 거란군을 공격하는 식으로 생략하였기에 더 기대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작중에서는 주로 쓰는 무기는 활. 아마 양규 사후 현종이 내린 조서에서 "6균의 활[18]을 당겼다"는 표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활시위를 걸거나 전통에 화살을 넣는 모습[19][20], 깍지를 끼는 모습,[21] 명적[22]이나 불화살을 다루는 모습,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술 등 활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기존 사극에서도 명궁 캐릭터는 자주 나왔지만, 이렇게까지 능숙하게 사용하는 장면은 잘 안 나왔기에 신선하고 양규만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있다.[23] 또한 장기전에 시달리며 활시위가 헤져 끊어지고 시위에 쓸려서 깍지엔 금이 가고 손가락은 피칠갑이 되도록 부르트는 등, 처절한 전투로 마모되어 가는 묘사까지 일품이다.
연이은 승리로 거란군에게도 경계 대상이 되어, 노전이 소배압에게 서경의 고려군의 숫자가 20만은 된다고 블러핑 칠 때 "어차피 광군이라는 오합지졸 아니냐?"라며 무시하는 소배압에게 노전이 "그건 맞는 말이지만 흥화진을 지키고 곽주를 탈환한 도순검사가 지금은 서경에 있어 사기가 높을 것"이라고 하자 소배압도 수긍할 정도로 적도 인정하는 명장으로 굳어졌다. 오프닝 영상에서 강감찬이 들어올린 '피 묻은 활'이 바로 양규가 썼던 활, 즉 그의 유품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주연급의 지승현 배우가 오프닝 영상에서 등장하지 않은 점이나 포스터에서는 양규는 깍지를 끼지 않고 있다는 점, 6회에서 손가락에 피를 흘리며 활을 쏘는 묘사로 보아 꽤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고, 이후 16회에서 전사한 이후 시신이 수레에 실려 흥화진으로 오는데, 계속해서 굳게 활을 쥐고 있었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양규의 유품인 활은 곧 고려를 수호하겠다는 양규를 비롯한 제2차 여요전쟁에서 쓰러진 장병들의 의지 그 자체이며 그 의지를 강감찬이 이어받아 제3차 여요전쟁의 적장이자 최종보스인 소배압에 맞서 싸우게 되는 걸 미리 예고한 합축적 의미가 담겨졌다고 볼수 있다. 16회에서 전사한 뒤에 나온 장면을 자세히 보면 애전 전투에서 자신들의 뒤에 있던 거란군들까지 활에 맞아 죽은 모습들이 있었는데 6회에서 포로들을 인간방패로 자신의 동족에게 활을 겨누게 만든 거란에게 양규 장군은 자신이 전사하기 직전 거란 역시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활을 겨누어 같이 죽게 함으로써 6회의 인간방패의 만행에 대한 복수를 완벽하게 마무리 했다. 전작인 천추태후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한 홍일권의 모습과 목소리가 상당히 흡사하다는 반응도 있는데, 특히 두 배우는 저음 발성이 매우 훌륭하다.
5. 총평
전반부인 제2차 여요전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며 드라마 전체로 따져도 현종, 강감찬과 함께 세 명의 주연으로 꼽히고 있다. 원작 소설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양규와 김숙흥, 그리고 현종이 주인공이었으나,[24] 드라마에서는 현종과 강감찬의 서사에 보다 비중을 두게 되면서 소설에 비하면 양규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제작진은 조선에 이순신이 있다면 고려엔 양규가 있었다고 소개하며[25], 드라마에선 통주나 서경같이 규모론 훨씬 거대한 전투의 묘사를 줄여서라도 양규의 서사에 집중하였고, 이와 같은 연출 방향은 결과적으로 극의 화제성을 높이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원작 소설이나 전작에서 홍일권이 연기했던 양규와는 자잘한 차이가 있었지만, 배우 지승현의 열연, 잘 구축한 캐릭터, 사법의 충실한 재현 등 철저한 고증에 힘입어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만의 양규를 묘사해내면서 시청자들은 물론 소설 원작자 또한 본 드라마의 양규에 대해 호평을 남겼다. 양규의 활약은 〈고려 거란 전쟁〉의 주요 인기 요인으로 자리매김 했으며, 그가 이끈 흥화진 전투 또한 본 작품의 전투 묘사 중에서 가장 크게 찬사를 받았다.〈고려 거란 전쟁〉의 최대 의의가 '양규의 재발견'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는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청자들조차도 명백히 인정하는 부분으로 오히려 비판 측에서 양규의 서사와 등장씬을 더 보여주는 편이 주제의식 전달에 더 나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다. 1차 침입 때 외교로서 거란을 무찌르고 강동 6주를 얻은 서희나[26] 3차 침입 때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한 강감찬보다 한참 모자란 인지도를 가진 양규였으나[27]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양규라는 역사적 인물을 강하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16회에서 애전 전투 직전 양규가 휘하 병사들에게 하는 격려 연설이나, 양규의 시신을 보고 통곡하는 흥화진사 정성 뒤편의 흥화진 성벽에 핀 물망초가 비춰졌는데,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작진이 양규와 그 휘하에서 싸웠던 장병들을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를 상징하는 무기는 단연 활과 효시이며, 작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지휘하는 전쟁은 항상 그가 쏘는 효시를 신호로 시작하며, 부관인 김숙흥에게도 자신의 상징인 효시를 맡겨 자신을 대신하게 했다. 그리고 15회를 자세히 보면, 철군하는 거란군의 적장 야율분노의 목을 꿰뚫은 화살도 바로 효시였다.[28] 특히 15회와 16회에서 그의 효시 소리만 들려도 거란군이 기겁해 도망가거나 그의 효시를 사용한 김숙흥을 대장이라고 생각해 추격했으며, 김숙흥과 그가 벌인 최후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팔로 혼신의 힘을 쥐어짜 야율융서를 향해 쏜 마시막 효시가 그로기 상태에 빠진 김숙흥을 깨웠고, 그의 마지막 일격이 되었다. 마지막까지도 활과 효시를 잡은 채 죽음을 맞이했고, 그대로 시신이 흥화진으로 실려 왔다. 여기에 더해 『고려사』의 기록을 인용해 그와 김숙흥의 전사를 알리는 장면이 나간 직후, 그가 전쟁 내내 사용하던 효시의 소리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듯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양규가 극중에서 퇴장하고 난 뒤부터 드라마가 안드로메다로 가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지탱한 최후의 보루로 양규를 뽑았다. 오히려 다른 주인공인 강감찬 그리고 현종이 엄청난 너프와 말도 안되는 왜곡을 당한지라 이쯤 떠난게 천만 다행일 정도로 행운이었다.
즉 고려 거란 전쟁 초반부 장점의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캐릭터이며 이는 후반부 단점의 상징이 되어버린 박진과 대치된다.
6. 어록
(웃음) 네놈은 정말 미쳤구나. |
저는 국경을 지키는 장수입니다. 싸우라는 명이 내려오면 싸우고, 지키라는 명이 내려오면 지킬 뿐입니다. |
어쨌든 새 황제께선 우리와 함께 국경을 바라보고 계시네. 난 그게 중요한 거라 생각하네. |
그래도 반역인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모든 걸 감수하십시오. 어차피 찬사를 갈구하며 벌이신 일은 아니잖습니까? 중대사, 약해지지 마십시오. 전쟁이 목전에 다다랐습니다. 이젠 이길 방법만 생각하십시오. 다른 것들은 승리한 다음에 생각하시면 됩니다. |
폐하. 소장은 폐하의 신하이옵니다. 부탁하실 게 아니라 명하시면 되옵니다.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
예, 폐하! 반드시 지켜내겠사옵니다! |
(항복을 권유하는 한기에게) 호의는 감사하나 사양하겠소. (흥화진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한기에게) 그럼 거란군 역시 전멸할 것이오. |
겁먹지 마라! 적은 절대로 우리의 성벽을 넘지 못한다! 거란 놈들의 시체가 쌓여서 우리의 성벽보다 높아지기 전에는, 단 한 놈도 이 흥화진의 성벽 위로 오르지 못할 것이다. 알겠는가?! |
온다. |
일점사![30] |
자네 흥화진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어차피 성벽이 한 군데라도 뚫리면 우린 모두 다 죽네.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겠나?[31] |
쏴라... 쏴라!![32] |
갚아줄 것이네...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것이네...! |
내 손으로 또 고려인을 죽일 수는 없네.[33] 떠도는 패잔병들을 모아서라도 곽주를 꼭 탈환하겠네. 그동안 흥화진을 부탁하네. |
곽주를 탈환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우리밖에 없을 걸세. |
우리가 언제 승산 있는 싸움만 했는가? 곽주를 꼭 탈환해야 하네. 그래야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어. |
그럼 지금 즉시 돌아가서 성상 폐하의 시신을 서경으로 보내시오. 그럼 믿겠소. 아니면, 거란의 황제께 내 말을 전하시오. 거란군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34] |
전쟁을 또 겪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이번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도 적을 섬멸하지 못한다면 놈들이 또 다시 이 고려를 침범해 올 거다. 그래서 싸우는 거다. 여기서 끝내려고. |
저들을 버릴 순 없다! 저들이 지금 얼마나 간절하게 우리를 기다리겠느냐. |
지금까지 모두 잘 싸웠다. 너희들의 용맹한 모습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만백성이 기억할 것이며, 온 산천이 기억할 것이다. 이 고려가![35] 우릴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다. 마지막 싸움이다. 모두 거란주를 향해 돌진하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 자의 목을 향해 달려가라! 알겠는가!! - 애전 전투 직전 휘하 군사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 |
7. 여담
- 본 드라마 메인 포스터에 얼굴이 실려있는 4명의 배우들 (최수종, 김동준, 김준배, 지승현) 중 유일하게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중간에 사망한 캐릭터이다.
- 양규 배역을 맡은 지승현은 실제로 학군사관 42기 장교로 임관하여 육군 중위로 만기전역한 군인 출신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녔던 과거가 나와서 '문무겸비를 한 양규'를 정말로 닮은 셈이다.
- 동시기를 다룬 천추태후에서 천추태후로 출연한 채시라와는 인수대비에서 같이 나온 적이 있는데, 해당 작품에서 지승현은 남이 장군을 연기했다. 또한 원정황후 역할을 맡은 이시아와는 하녀들에서 같이 나온 적이 있으며, 해당 작품에서 지승현은 국유의 충복 덕구를 연기했다.[37]
- 이 드라마의 메이킹 영상에서 드러난 바로는 양규로서 마지막 촬영을 한 날이 마침 지승현의 생일(12월 19일)[38]이라 김한솔 감독이 "양규 장군이 돌아가시고 지승현이 다시 태어나는 날"이라 말해줬으며, 양규가 죽을 무렵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다. 이후 손에 화살을 든 채 생일 케이크 촛불을 불었고 같이 싸웠던 김숙흥 역의 주연우와 자신들과 맞섰던 야율융서 역의 김혁, 소배압 역의 김준배와 기념 촬영[39]도 하였다. 그리고 흥화진에서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김숙흥 역의 주연우와 함께 캐릭터 인형도 받았다. 촬영을 마친 후 전사할 때 분장으로 주연우와 서로 포옹하려 했으나 화살이 전부 앞에 박혀서 포옹을 못하자 지승현이 "고슴도치가 왜 서로 사랑을 할 수 없는지 몸소 깨달았습니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 배우의 이전 배역 때문에 "어이 내 흥화진의 양규다! 끄지라 이 거란놈아!" 하는 밈이 돌았는데, 지승현도 이 밈을 인지하고 있는지 메이킹 필름에서도 촬영 중간에 직접 이 대사를 치기도 했고, 하차 후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기도 했다.
- 김한솔 감독에 따르면, 양규 장군의 최후를 연출했던 얼굴의 절반만 클로즈업하는 독특한 기법은 원래 NG 였다고 한다. 카메라 감독의 실수로 양규 장군의 연설하는 얼굴이 절반만 촬영되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마지막 촬영도 그렇게 진행했던 것. 관객은 보이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면서, 그 명장면은 우연히 얻어진 필연이었다고 하였다. 링크
- 그리고 양규의 죽음으로 제2차 여요전쟁이 종료된 16화 이후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평가 받던 드라마가 갑작스럽게 원작과 실제 사료에도 없는 전개로 흘러가 비판을 받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의 진 주인공, 혹은 본체였다, 드라마는 16화가 마지막화다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당연한 것이 애초에 고려 거란 전쟁은 양규가 주인공인 작품이며 원작의 결말도 양규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즉, 양규의 죽음 이후의 전개를 드라마 각본가인 이정우가 자기 입맛에만 맞는 막장 전개로 범벅을 해놨으니 이런 평가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 피투성이가 된 몸,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세면서도 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점에서 비담을 떠올린 사람들도 있다.
- 비록 전 회차 절반만에 퇴장한 인물이었음에도 상술했듯 거의 모든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어 Daum 에서 고거전 캐릭터 인기투표에서도 무려 두 주인공인 현종과 강감찬까지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41]
- 흥화진사로 있던 시절엔 회색 찰갑과 회색 실로 만든 갑옷을 착용하다 서북면 도순검사에 임명된 후에는 짙은 회색과 붉은 실로 만든 갑옷을 착용한다.
[1] 원작에서는 그가 실제 역사대로 형부낭중을 역임한다고 소개되며, 휘하 장수들이 그를 '도순검사 각하'로 부르는 것과 달리 이현운은 그를 '양 낭중'이라고 불렀다.[2] 본작으로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아 2023 KBS 연기대상에서 인기상과 장편 드라마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커리어에 있어서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3] 현종, 강감찬, 양규.[4] 드라마에서는 서브 주인공이지만, 원작에서는 메인 주인공이다. 원작 소설의 소개에서도 아예 "조선에 이순신이 있다면 고려에는 양규가 있다"라고 시작될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일찍 퇴장해서 서브인 것이며, 등장할 때의 비중은 메인 못지 않다.[5] 이렇다 보니 개인의 무력은 이 세계관에서 "세계관 최강자"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하긴 당시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해서 중원 등을 비롯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다던 거란국의 정예 40만을 기껏 수천의 병사로 막아내는 것은 물론 본인도 전선에 나가서 싸웠으니 그런 평가를 받을 만도 했다.[6] 심지어 각본을 쓴 이정우 작가는 물론, 해당 배역을 연기한 지승현 또한 극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양규는 잘 모르는 인물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종전에 양규가 등장하는 사극으로는 천추태후(드라마)가 있지만, 해당 드라마에서는 여요전쟁은 간략하게 묘사되었고 드라마가 조악한 완성도로 묻힘에 따라 양규의 업적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조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7] 10회에서 곽주성을 탈환하겠다면서 나선 양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더 이상 군사를 내줄 수 없다."라고 반발했던 정성이 양규의 전사 소식을 듣고 바로 출정한 것을 보면, 그만큼 양규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했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로는 돌아가던 거란군을 많이 베었다고 했지만, 그가 출정할 때 야율융서를 비롯한 거란군 수뇌부는 압록강을 건넌 뒤였고, 후미 일부만 처치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8]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에 '은율군군(殷栗郡君) 홍씨'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본작에서는 양규 처로만 나온다.[9] 고려 본대의 출정 이후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려 강감찬의 충언을 받고 한 행동이다.[10] 정확히 말하자면 설정상 제1차 여요전쟁 당시에는 24세였다고 적혀 있기에 제2차 여요전쟁 시점에서는 약 41~42세라고 보면 된다. 이는 방영 당시 담당 배우 지승현의 나이와 일치한다. 또한 원작 소설에서는 양규의 아버지가 제1차 여요전쟁 당시 죽었고 이후 그간 보던 서책을 멀리하고 무예를 연마하게 되었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는 실존 인물 양규가 형부낭중 출신으로서 문무를 겸비하였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지승현도 원작의 설정을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상상하면서 연기하였다고 하며, 김숙흥이 젊은 양규라면, 양규야말로 성숙한 김숙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11] 원작에서 군율에 엄격한 면이 가장 잘 부각되는 부분은 작전 회의 중에 곽주 탈환을 계획하면서 지속적으로 회의적인 의견을 표하는 장수들에게 어려운 작전이니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알 수 있는데다가 자신의 명령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아예 그를 가리켜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군'이라는 표현도 나온다.[12] 다른 병사들에게도 이런 인간미를 보여주는데, 곽주와 안주가 함락된 소식에 통탄스럽게 여기면서도 이를 모르는 병사에게는 일단 사실을 숨겨 안심시키기도 하였으며, 자신의 글을 지니면 힘이 날 것 같다는 병사에게도 자신이 글을 쓰는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더라도 흔쾌히 적어준다. 그리고 훗날 정성을 포함한 흥위위 군사들이 양규 등의 시신을 통주성으로 옮기고 갑옷을 벗겨 수습할 때에 양규의 의지가 담겼던 글을 보고 거란군을 섬멸하려던 그의 유지를 받들어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도망치던 다수의 거란군을 화살로 쏘아 공격하여 익사시킨다.[13] 관직 목록이나 시점을 보면 강조와 가까웠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흥화진에서 항복을 권유받았을 때 "강조의 명은 받지 않는다"라고 답한 점을 생각해 이렇게 묘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강조의 명은 받지 않는다는 양규의 말 자체는 원작 및 드라마 둘 다 생략하였지만, 지승현은 강조가 그런 서신을 보냈을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14] 하물며 성향 면에서도 다른 두 주인공인 현종과 강감찬이 각각 준비되지 못한 군주로서의 미숙함과, 주변 대신들과 타협하지 않는 융통성의 부족이라는 명확한 단점을 가진 것과 달리 양규는 무장으로서의 역량과 제장들을 포용하고 합심할 수 있게 하는 융통성까지 모두 갖춘 사령관으로 묘사된다.[15] 아래의 총평 항목에서 "조선에 이순신이 있다면 고려엔 양규가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를 보면 이순신의 인물됨을 양규에게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도 배우 지승현은 배역 연구를 하면서 난중일기도 읽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역사 속 위인 중 이순신 정도나 작중 양규처럼 완전무결한 인품을 지녔다.[16] 김한솔 감독은 양규 부분을 편집하다 네 번 울었다고 밝히기도 했다.[17] 특히 같이 다니는 김숙흥이 그야말로 웃으며 싸우는 반면 양규는 묵묵히 전투에 임해 성과를 올리기에 영웅같은 모습이 더 부각된다.[18] 1균(鈞)은 30근을 의미하는데, 현대 우리가 흔히 쓰는 1근=약 600g 기준이 아니라, 당시에는 1근이 약 250g 이하였다. 즉 약 40kg, 파운드로 약 89파운드 쯤 되는 장력의 활을 썼을 것이다. 사실 국궁은 그 특성상 합성궁 중에서도 드로우 렝스가 길고 활몸의 탄성을 화살의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는 효율이 높았다. 따라서 파운드 수는 타국의 동급 활보다 다소 낮은 경향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89파운드의 장력은 활을 전투 기술로 수련하던 당대 기준으로도 약한 활은 아니었을 것이다. 체격과 과학적 훈련, 의료 혜택 면에선 훨씬 더 유리한 현대의 국궁 궁사들은 잘 쏘는 사람들도 70파운드를 거의 넘기지 못한다. 시판 되는 최대 수준의 합성궁이 66~68파운드 장력 수준. 국내에서는, 동호인 수준을 넘어 국궁을 직업 삼는 궁사들 중 간혹 몽골 활을 보유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들은 (시판되는 물건들보다) 근중량이 훨씬 높긴 하다. 단 현대 한국에서의 궁술은 체력 및 심신 단련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100파운드는 기본이어서 몸을 상하게 만드는 전투용 활은 수요가 없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고려시대 근이 당,송제국처럼 630그램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이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113.4kg, 252파운드란 결과가 나오며 비현실적인 수치로 보이지만 유튜브에서 실전궁술 재현하는 유튜버들 영상을 보면 150파운드를 넘어 190파운드의 터키궁을 쏘는 사람이 있으며 210파운드도 당기는 이도 있으니 252파운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해 보인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정예병이었던 예니체리 중 200파운드 정도 되는 활을 쓴 사람도 있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고려시대 근중량을 정확히 모른다는 한계에서 오는 계산착오, 기록의 오류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6균의 활을 당겼다'는 현종의 교서는 이 문제 때문에 그냥 '강궁을 당겼다'고 번역되는 편이다.[19] 2화에서 귀주로 부임하라 명을 받은 김숙흥이 양규를 죽여서라도 흥화진에 남겠다고 행패를 부리며 양규가 서 있는 성루로 뛰어오르는데, 그 몇 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다리 사이로 활몸을 끼워 구부려 활시위를 간단하게 걸고 코앞까지 달려온 김숙흥에게 화살을 겨누는 모습은 간지폭풍. [20]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서 빠르게 소총을 재장전하는 베테랑 특수부대 캐릭터를 연상시키며, 김숙흥도 이 모습에 반했는지 귀주로 떠날 때와 이후 10회에서 양규와 재회할 때, 16화에서 양규에게 효시를 받아든 후 포로를 구출할 때와 전사 직전 양규가 효시를 쐈을 때 활을 겨누는 모습을 보였다.[21] 한국 사극에서 거의 선보인 적이 없는 손가락 보호대 깍지도 거의 양규의 상징 아이템처럼 나온다. 실제로 전통 국궁은 길이가 짧은 대신 잘못 당기면 손가락이 잘릴 정도로 시위가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손가락 보호대는 필수다.[22] 휘파람이 달려 울리는 신호용 화살. 어떠한 현상의 맨 처음을 일컫는 효시라는 단어 역시 이 신호용 화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최종병기 활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23] 그래서인지 양규 역의 배우 지승현도 2023 KBS 연기대상 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작중 활 쏘는 동작을 세레머니로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승현 배우는 활 시위가 터졌을 때 활을 얹는(활줄을 다시 거는) 장면을 위하여 활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몇천번은 연습했다고 한다.[24] 서경성의 장수들인 강민첨과 조원 역시 드라마보다 원작에서의 비중이 주연급으로 더 높다.[25] 활약상에 있어서 양규와 이순신은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한 전선을 맡은 야전사령관(서북면 도순검사, 삼도수군통제사) 입장에서 아군 주력군이 붕괴(통주 전투, 탄금대 전투)하고, 왕(현종, 선조)이 몽진하는 바람에 중앙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병력을 확보해서 적의 보급로를 교란시켜서 결국 적의 전쟁수행능력을 돈좌시키고, 전쟁의 마지막 전투(애전 전투, 노량 해전)에서 전사했다.[26] 이쪽은 등장 사극이 망작이라는 천추태후 정도지만 그나마 역사서나 교과서에는 많이 나오는 인물이고, 천추태후에서도 사실상 거의 왜곡을 안당한 인물에다가 인지도가 꽤나 있는 임혁이 열연한지라 조금 더 알려져있다.[27] 역사 교과서에서 '양규 결사대' 혹은 '양규의 분전' 등 딱 한 줄로 나온다. 배우 지승현 역시 캐스팅 당시 양규에 대해 잘 몰랐다고 밝힌 바 있다.[28] 삐이이이이-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다가 야율분노의 목에 박힌 순간 소리가 끊어졌다.[29] 담당 배우 지승현은 이 장면에 대해 흥화진에 미친 놈으로는 자신이 있으니 귀주에"도" 그런 놈이 한 명 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한다.[30] 원작에서는 거란군을 향해 '일제사(一齊射)'가 행해졌다고 묘사된다.[31] 군영에 머물러 지휘관으로써 몸을 보호하라는 정성의 말을 듣고 하는 말이다.[32] 6회 말미에 거란군이 인간방패로 내세운 고려 백성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지시를 내린다.[33] 정성이 곽주 탈환이라는 무모한 작전을 벌이려거든 자신을 베고 가라고 항명하자 한 대답. 정성을 베지 않겠다는 의미와 흥화진에서 거란군의 화살받이로 죽어간 고려인 포로들과 같은 일을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두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34] 전투 이전 병사들을 독려하는 말처럼 예고편에서 나왔지만 사실 거란 사신더러 황제에게 전하라며 최후 통첩을 날리는 대사였다.[35] 오늘날 대한민국의 영문 명칭인 코리아(KOREA)의 어원이 '고려'인 것에서, 작중의 고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한국까지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는 감상이 많다.[36] 이때부터 뭔가 위험함을 감지한 야율융서가 양규가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화살을 퍼부으라 명했고, 결국 양규는 화살을 무더기로 맞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감는다.[37] 다만 하녀들에서는 지승현은 특별출연이었고, 이시아는 주연이었기 때문에 본작과 마찬가지로 서로 마주친 적은 없다.[38] 아래의 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당시 영하 10도의 날씨 속에서 3일간 마지막 전투를 고되게 촬영했다고 밝혔다.[39] 이 때 전사할 당시의 분장으로 찍어서 '거란주의 고인능욕', '야율베어의 혐성', '거란의 인증샷' 등의 농담이 속출했다.[40] 여담으로 이 날 지승현은 '12시 뉴스'뿐만 아니라 라디오와 뉴스에도 여러차례 출연했다. 또한 해당 뉴스 인터뷰 이전 '흥화진 전투'에서의 명장면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장면의 브금으로 김장훈의 '폭풍'의 인트로를 집어넣었고, 인터뷰 전 앵커 맨트 이전과 인터뷰 종료 시점에 오프닝 대표 브금을 넣었다. 스튜디오도 증강 현실로 당시 배경을 표현했는데, '고려'라고 하기에는 뒷 부분이 '고려' 같지 않았다.[41] 놀랍게도 강감찬과 현종 등을 합친 투표 수보다도 많은 전체 득표의 절반 이상인 51%나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