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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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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로고 화이트.svg

[ 등장인물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676767,#010101><bgcolor=#454545><color=#ffffff><-3> ||
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양규_neat_ver.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tablewidth=100%><tablebgcolor=#676767><tablecolor=#ffffff><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2.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width=25%>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
[[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
안예은
2024. 01. 18.
[[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tablebgcolor=#454545><tablewidth=100%><width=1000> 방영 목록 ||<width=25%> 명대사 ||<width=25%> 역사 탐구 ||<width=25%> 평가(논란) ||
<colbgcolor=#070707><colcolor=#fff> 고려 제8대 황제
현종
顯宗
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캐릭터
이름 왕순(王詢)
지위 대량원군 (1 ~ 3회)
고려 황제[1] (3회 ~ 32회)
묘호 현종(顯宗)
시호 원문대왕(元文大王)
가족 원정황후 (배우자)
원화황후 (배우자)
원성황후 (배우자)
원혜황후 (배우자)
원평황후 (배우자)
왕흠 (아들)
목종 (외사촌형[2] 겸 5촌 조카[3])
효숙태후 (어머니)
천추태후 (이모[4] 겸 사촌누나[5])
등장회차 1 ~ 32회
배우
김동준[6] (아역: 유지완)

1. 개요2. 작중 행적3. 인간관계4. 묘사5. 총평6. 어록7. 여담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운명의 저주를 짊어진 19살의 어린 황제.

열아홉에 갑자기 황제가 되었을 때, 나의 눈앞에는 40만의 거란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두려웠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다.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고려를 하나로 만들어 그 힘으로 거란을 격퇴하는 것 뿐이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주인공으로 작중 고려의 제8대 황제이다.[7] 배우는 김동준.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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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관계

4. 묘사

원작 소설에서 현종은 즉위 초기에는 그가 성정이 좋지만 나약한 군주로 묘사된다. 좋게 말하면 조심하고 신중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보였던 것이다. 이는 사안을 결정할 때에 원로 대신들의 자문을 구하는 일이 많아 강단이 없어 보였던 것이며, 강감찬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주장에 호응을 제대로 해줄지도 반신반의할 정도였다. 이에 강감찬이 확고하게 의견을 내기 시작하자 원로 대신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묵살하고 그를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강감찬 및 채충순을 포함한 신하들이 그를 다시 보기 시작하며, 드라마에서는 몽진에 크게 반대하며 끝까지 개경에서 버틴 것과 달리 원작의 현종은 몽진이 항전의 수단인 것을 인지하여 곧바로 강단 있게 결정하는 차이를 보여준다.[16] 또한 자신이 몽진을 선택하면서 항복 결정보다 더해진 무게를 분명히 명시하는 모습도 보이며, 처음에는 반대한 채충순도 현종의 담대함과 침착함 및 자기 주관이 뚜렷한 모습 등 유능한 군주의 자질을 보고 감복하여 이런 임금과 함께라면 어떤 위험이든 감수하겠다며 다짐한다. 드라마에서는 젊은 군주로서의 미숙한 면모가 더 강조되는데 현종이 젊은 군주라는 사실이 부각되는 부분은 작중 고려 왕족들이 평소엔 상호존대를 하여도 몇몇 신하들에게는 반말을 하지만, 현종은 대화하는 상대가 어린 아이인 경우를 제외하면 신분 차이에 상관없이 대체로 경어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체 회차가 적은 탓에 인물의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인데, 첫 회에서 자기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동자승이 진관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다음 회에서 승려들의 목숨이 위협받자 위험을 무릅쓰고 은신처 밖으로 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승려들을 구하며 빠르게 강단있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변해 간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한 최상궁과 병사들도 살리려 할 정도로 자애로운 성품을 지녀 성군으로 성장할 자질을 보여주었다. 극 초반부에는 이모에 의해 강제로 출가하여 쫓겨난 처지임에도 자신은 태조대왕의 피를 이어받아 언젠가 황위에 오를 용손이라고 확신하는 등, 핏줄에 대한 자부심도 강한 인물이다. 그래서 항상 위험을 피해 절에 숨어 있어야만 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부지 도련님같은 모습으로 진관 몰래 절 밖으로 빠져나가는 시도를 하거나, 숨어있을 곳을 마련한 진관에게 화를 내기도 하는 등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때의 현종은 고작 10대 후반에 절에서만 살아왔고 왕씨 집안으로부터 제왕학을 배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감각이 미숙하고 식견도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기간 출가했고, 여기에 더해 늘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영향으로 황제에 즉위한 이후에는 정사와 주변 상황에도 미숙한 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은 원정황후와 강감찬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착실히 성장해가기 시작하며, 4회 후반부터 전쟁의 명분이 강조라는 것을 파악한 후 5회에서 그를 자신의 손으로 제거하려고 하는 등, 점차 자주적이고 강인한 군주의 모습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거란 측에서는 애당초 고려를 침공할 구실을 엿보고 있었던 만큼 그 상황에서 강조를 제거한다고 한들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까지 눈치채지는 못한다.[17]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요나라 사신과의 대면에서 강조의 목숨을 건 사신과의 대화로 점차 이 전쟁은 강조가 죽더라도 멈춰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후 전쟁과 몽진을 통해 개경 밖 고려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개혁 군주로서의 서사도 점점 쌓이고 있다. 작품 외적으로는 미숙하게 묘사되는 '주인공 군주 캐릭터'라는 점이 사극 각본에서 꽤 유용한 구조를 가진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존 사극에서처럼 작중 인물이나 해설 등으로 부자연스럽게 혹은 스토리의 흐름을 끊으면서 시청자에게 상황 해설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여요전쟁 당시의 치세와 정국을 모를 수밖에 없는 군주가 시청자들도 잘 모를만한 정보와 상황을 질문하고 이를 신하들이 답변을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의 정보와 해설로 이어지는 해설 유도 역 캐릭터로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여말선초처럼 사극으로 자주 다뤄진 시대와는 다르게 작중에서 여요전쟁 이후의 고려 시대가 거의 사극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만큼, 시청자들도 고려시대 역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상황이라 주인공의 비중을 갖고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고 풍부한 해설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은대중추원을 통폐합하자는 강조 일파의 주장에 대해 "은대와 중추원이 뭐하는 곳이오? 그것이 뭔지 알아야 없애도 되는지 아닌지 판단할 것 아니오? (강감찬에게) 경은 누구요? 좀 더 알기 쉽게 말해주시겠소?" 라는 질문을 하고 이를 강감찬이 은대와 중추원의 중요성을 직접 설명하면서 새로운 갈등과 이야기의 흐름을 보였기 때문에 아주 적합한 모습이다.[18] 이후 17화부터 현종의 캐릭터성에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역사기록에 없는 허구적인 분야에서 말이다.

그 중 하나는 호족 개혁 과정에서의 충돌이다. 여기서 현종은 굉장히 고집스럽게 호족들에 대한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인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본인과 눈물의 장면까지 연출한 강감찬을 파직시키는 강수까지 둔다. 게다가 같은 회차에서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지만) 유족들을 위해 불공을 드린답시고 탁사정과 대도수의 부인 및 양규의 가족들 등을 같은 자리에 있게 하는 실책으로 인해 시청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19] 실제 탁사정은 조정 복귀 이후 약 4개월 만에 파직되어 귀양을 갔기 때문에 늦어도 18화 쯤에는 그렇게 되어야 했으나,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며 싸고도는 모습 때문에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 까지 작중 신료들과, 전사한 장수들의 유족들과 한 마음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이후 전개를 진행할 수록 더욱 더 심해져서 사실상 고려의 암군인 양 왜곡되어 작품 전체의 질을 하락시키는 수준까지 갔다. 최소한 기록이 비어있는 기간이나 인물에 대한 변곡이라면 몰라도 2차 여요전쟁 이후 시점에선 전후수습과 재침공대비 등으로 당시 바쁘게 돌아간 고려조정의 대응에 대한 기록이 나름 디테일한 기간이기 때문에 현종 자체가 낙마사고로 리타이어 할 틈도 없는 것이다. 강감찬의 인생 초중반기의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그 빈자리를 메꾸는 것은 타당했지만, 이 건 처럼 엄연히 역사 기록이 모자르지 않는 기간을 상상력으로 덧칠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때문에 18회 마지막에 수레에 부딪쳐 낙마하는 장면에서 성상(현종)발사대, 왕문철TV 같은 드립으로 이런 무리수를 비꼬는 반응도 나왔다.

20회까지 4화(전체 분량의 1/8에 해당하는 분량이다)가 전개 되는 동안 강감찬의 "호족을 견제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상당한 시일을 요구하는 것인 만큼, 우선은 임박한 거란의 재침공을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반론도, 원정왕후의 "호족도 황제에 협조하고 성실한 호족이 있고, 황제의 통치 의도를 거부하고 백성들을 억압하는 불경한 호족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호족을 적으로 돌리려 하나, 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황제에 충성하는 충실한 호족이 배신감을 느끼고 돌아설 만하다"라는 반론도 "어차피 그게 다 호족의 자기 보호 논리이고, 거란의 침공보다도 이게 더 급한 일이다"는 우격다짐을 감행하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적으로 만들고 점점 고립되어 간다. 역사 기록 연구에 의하면 극중 현종이 의도하는 바를 위한 작업은 선대 왕들인 광종과 성종 대에서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이미 큰 진전이 있었던 상태였다. 호족을 제압해서 고려 권력의 기틀을 세운 것이 좋은 군주로 평가되는 광종의 최고 업적으로 소개될 지경이다. 결국 이는 드라마의 독자적인 상상력을 더한 전개일 뿐이다.

또 하나는 원정왕후에 대한 부분이다. 17화 이전에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 주던 황제 부부가 타협할 수도 있을 법한 작은 관점의 차이 때문에 크게 갈라선다. 현종은 독선적인 행동과 언사로 원정왕후를 무시하고, 힘든 고생길과 고난을 같이 나눈 사이임을 잊어버리고 "나의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너도 적이다"식으로 맞대응 한다. 자신이 부상 당해서 생명이 위험해질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하고 병상을 지켜온 왕후에게 깨어나서 바로 적대하게 된다. 원정왕후 또한 현종의 부상 기간 중 월권을 저지르고, 현종의 마음에 고통을 주는 한이 있어도 몰아세우는 방법도 서슴치 않으며, 원성왕후에 대해서는 질투의 화신인 양 묘사된다. 심지어는 탁사정 같은 인물의 욕심마저 이용하는 면모까지 보인다. 이는 당연히 역사 기록에 없는 드라마의 독자 상상 전개일 뿐이고, 원성왕후가 간택되면서 궁궐 여인들의 대립을 부각시켜서 극중 긴장감을 돋보이기 위한 의도로 읽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원정왕후는 갑자기 빌런적인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 붕괴를 겪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1회에서 자신이 강감찬을 파직시키고 개경에서 쫓아 냈으면서 더이상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말라는 모순되는 말을 하며 작가의 엉성한 필력에 희생되었다. 다행히 22회에서는 흥화진을 내놓으라는 거란 사신의 요구를 단호하고 자신감 있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명군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4회를 기점으로 다시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는데, 극 중 김훈과 최질이 불만이 많은 것을 재상들도 알고 있는 시점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아 최질이 더 방자해졌고, 결과적으로 김훈 최질의 난에선 자신 있으면 베어보라는 말 빼고는 무작정 화만 내면서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아무리 최질과 김훈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해도 실제역사에도 없었던 박진이 과거 본인을 시해하려 했던 자였다는 게 명백해 졌음에도 황제의 권한으로 처형하라는 명령도 내리지 못하는 것 또한 지나친 왜곡이며 급기야 자신 앞에서 칼을 들고 조롱과 멸시를 일삼는 박진에게 아무것도 못하고 벌벌 떠는 것처럼 묘사하는 등[20] 역대 모든 사극 드라마의 왕 캐릭터들 중에서 최악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21]

5. 총평

빈약한 성장 서사 : 이상을 실현시키는 능력 향상의 부재

본 드라마의 중후반부 인물 묘사는 현종, 강감찬, 재상을 위시한 대신들, 호족들, 왕비들의 맞는 의견들 간에 입체적인 대립을 꾀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의도를 위해서 역사적인 사료 근거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도 넘었다. 그 시절 고려 현종 대의 실책이라고 할만한 일은 무신 대우를 잘못해서 벌어진 김훈최질의 난 정도이고, 그 외에는 탁사정을 왜 바로 벌하지 않고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는지 의문을 가져 볼 만한 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실제 역사의 '고려 최고 성군들 중 하나'인 현종과는 달리 '성장형' 군주인 현종 수준을 넘어서 '독선적이고 꽉막힌 암군' 현종이란 것으로 캐릭터가 망가져 버렸다는 등의 혹평이 주를 이룬다.

본작의 현종은 성품은 선하고 어질지만, 정작 그 성품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정리가 가능하다. 이는 작가의 전작인 태종 이방원 때부터 지적된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22] 작중에서 현종은 허울 좋은 이상을 설파하지만 정작 본인의 힘으로 실행하지는 못하고 그저 믿어달라, 싫으면 배째라는 식으로 생떼만 부린다.[23] 과연 성품은 선할지언정 이런 자를 명군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국 현종의 무대포적인 지방 개혁 과정에서 고려는 크게 흔들렸고 끝내 김훈·최질의 난이 일어나 나라가 통째로 박살날 뻔한 위난을 불러왔다.[24] 이 때문에 시청자들 입장에서 본 드라마의 현종은 성군이 아닌, 독선적이고[25]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암군으로 인식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또한 그 선한 인품에 대한 묘사도 어색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최 상궁을 용서하고 바로 보내주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성을 버리고 도망쳐 군사와 백성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혀 전쟁에서 패할 뻔하게 만든 탁사정에게도 무작정 관용을 베푸는 등 꼭 저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싶은 일이 많은데, 가장 압권은 서경에서 최질과 반란군 일당을 제압한 29화라 할 수 있다. 본 회차에서 최질과 박진을 비롯한 역적들을 멋지게 소탕하고 응징한 건 나름 사이다였지만 문제는 최질과 박진을 처단한 이후 그들의 일가와 식솔들에겐 죄를 묻지 않겠다 한 것도 모자라 장례까지 치러주도록 허락했다. 이들은 전술한 최 상궁과 탁사정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역죄인에다 매국노[26]로 묘사됐는데, 본 드라마보다 훨씬 강도가 약한 실제 역사 속에서도 김훈과 최질을 비롯한 반란 주모자들의 가족들의 목숨 만큼은 살려준 대신, 그들의 아들들과 친형제들 만큼은 외딴 곳으로 유배시키고, 주모자의 일가는 3대에 걸쳐 관직 박탈 및 과거 참여 금지 조치를 취했는데 드라마에서 나온 수준이라면 구족을 멸해도 모자랄 정도다.[27] 그런데 그러한 작자에게 장례까지 치르게 해줬다는 건 현종의 선함에 대한 지나친 묘사와 동시에 시대에도 맞지 않는 핍진성 붕괴이다.[28]

그나마 작품 최후반부인 29회 이후부터 32화까지는 확실하게 강인한 군주가 되면서 더 이상의 캐릭터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여전히 시청자들 사이에서 현종의 인식이 나빠진 것은 변함이 없으며, 사실상 운에 의존하여 제3차 여요전쟁에서 거란군을 몰아낸 전개도 비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초반은 좋았는데 후반부 묘사가 실패한 현종 캐릭터이지만, 담당 배우 김동준의 열연 덕분에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살릴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 어록

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오. 살아남아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오! 만약 그대가 승려들을 해친다면 내 그대를 용서치 않겠소! 황제의 명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할 것이오!
이 고려에서 용손을 해친 자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소.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거병하였다더니, 실은 황실의 권력을 탐했던 것이오? 차라리 경이 용상에 앉으시오. 더는 날 내세우지 말고, 경이 용상을 차지하란 말이오. 만백성들을 향해 의 본심을 드러내란 말이오!
우리에게 신의를 맹세한 자들[29]을 무참히 학살한다면, 거란이 고려의 신의를 팽개치고 침략해 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지금 누구 마음대로 동원령을 내리겠다는 것이오! 이 무슨 권한으로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이오! 경이 무슨 자격으로! 이 고려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넣는단 말이오! 경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소?! 경이 저지른 반역을 감추려 수없이 압록강을 넘어가는 사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소?! 그걸 날마다 지켜보고서도 감히 전쟁을 입에 올리는 거요...?! 경 때문에 죄 없는 군사들이 죽어가고... 경 때문에 온 백성이 피눈물을 흘려도 상관없다는 거요?! 다시는, 전쟁을 입에 올리지 마시오. 내 아무리 힘없는 황제라 해도... 그것만큼은 묵과할 수 없소! 아시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전장에 나서는 장수에겐 부월을 하사한다 들었소. 받으시오. 꼭... 승리하시오. 승리하여 고려의 백성들을 구원하시오. 그대가 온 고려의 백성들을 구한다면, 단 한 명의 황제를 시해한 죄는 모두 사라질 것이오. 다시는 그 누구도 경을 반역자라 칭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경을 향해 더는 역적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오. 진심으로, 경을 이 고려의 충신으로 생각할 것이며, 경을 이 고려를 구한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오. 그러니 부디... 잘 싸우시오.
패전의 고통이 아무리 극악하다 하여도, 황제와 백성간의 신의만 살아 있다면 이겨내지 못할 것은 없소!
대체... 은 어떤 사람이오? 처음에는 아버지처럼 자상한 늙은 신하였소... 그 다음에는, 바른 말하기 좋아하는 고집쟁이 신하였소. 한데, 이제 보니 승리에만 미쳐있는, 광인 같소...[30]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경들에게는 미리 소상히 논의하지 못하였소.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오. 허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 거란에게 항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한번 적국에게 엎드리면 다시는 그들과 동등해질 수 없소. 항복하면 내어주는 것들도 결코 되찾을 수 없소. 경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나라를 보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리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분명 우리를 원망할 것이오.
지금 우리들은 후손들을 대신하여 이 전쟁을 치르고 있소. 우리가 지금 적들에게 갖다 바치려는 강토는 후손들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을 땅이오. 우리가 지금 적국에게 갖다 바치려는 세패 또한 후손들이 고혈을 짜내 갚아야 하는 빚이오.
부디 그걸 명심해 주시오. 우린... 항복할 권한이 없소.
다시... 조정에 나와주시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오. 신하를 잃고 싶지도 않고, 승리를 잃고 싶지도 않소. 조정에 나오시오. 경은 평생을 조정에 헌신한 신하요.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순간이 도래한다면, 경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오. 부탁하오... 나의 욕심을 채워 주시오.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하며) 하지 못했소... 죽지를 못했소. 나도 어리석다 생각했소. 하나.. 방법이 없었소... 이것 말고는, 선택할 수가 없었소.
도망치고도 싶었소. 이 황제자리가 너무 버거웠소.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소... 누가 되더라도 나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소.[31]
그래, 너희들 마음대로 하거라.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지금 누구와 싸우는 것이냐! 누구를 죽이는 것이냐! 너희들의 눈에는 우리가 거란군으로 보이느냐? 이 황제가 적으로 보이느냐!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벌이는 것이냐. 호장 놈들이냐? 그 놈들을 위해서 너희들의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냐! 쌀 한 말에 딸자식을 빼앗아가고, 늙은 부모에게까지 매질을 하여도, 너희는 그저 그놈들이 시키기만 하면 따르는 것이냐? 그놈들이 그리 두려운 것이냐? 정녕! 이 황제보다 그놈들이 더 두려운 것이냐!
그래... 어찌 그러지 않겠느냐. 그자들이 왕이거늘, 어찌 거역하겠느냐. 저 먼 곳에 있는 황제가 뭘 어쩌겠느냐? 자, 어서 원하는 대로 하거라. 거란군에게 넘기고 싶으면 넘기거라. 베고 싶으면 베거라, 어서!
나는 너희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황제다. 나는 너희가 이렇게 살아가는 줄도 몰랐다. 얼마나 억울한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했다. 미안하다... 부디... 용서하거라...
거란의 사신은 들으시오. 흥화진은 절대로 내어줄 수 없소.
흥화진은 단지 하나의 성이 아니오. 우리 고려에게 흥화진은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항전의 표상이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우리 고려인의 기상이오! 흥화진을 내어달란 말은 이 고려를 내어달라는 말이오.
하니 돌아가서 귀국의 황제께 분명히 전하시오. 고려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흥화진은 절대로 거란의 땅이 되지 않을 거요.

(거란 사신: 전하! 지금 거란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그들이 곧 압록강을 넘어 진격해올 것이옵니다. 정녕 그것이 두렵지 않으시옵니까?)

두렵소. 이 고려의 군사들이 죽어가고 백성들이 죽어가야 하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소? 군주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군주의 자격이 없는 거요. 하나 그 두려움에 짓눌려 싸우기도 전에 굴복하진 않을 것이오.
하니 어서 가서 전하시오. 흥화진을 갖고 싶으면, 이 고려를 굴복시키라 하시오!
경들도 알겠지만, 태후께서 날 낳으시다 숨을 거두셨소. 나는 태어나면서 한 생명을 빼앗았소. 그것이 나에게는 일생을 짊어야 할 멍에였소. 그래서 난 보위에 오르면서 다짐했소. 절대로 한 사람의 목숨도 빼앗지 않겠다고 말이오. 그 어떤 죄인에게도 참형을 내리지 않고 이 나라를 다스려 가겠다고 말이오.
허나 이제 그 생각을 버리기로 했소. 세상에는 절대로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되는 죄인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내 안의 연민에만 갇혀 있어서는 황제의 책무를 완성할 수 없소. 나는 이제 이 고려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칼을 드는 강인한 군주가 될 것이오.
황제의 군사들은 들으라! 저 역도들을 모두 처단하라!!
거란 놈들을... 살려보내지 마시오!
전쟁이 일어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하오. 그러나 승전보다 더 값진 일은 전쟁을 미리 막아내는 일이오. 송이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혹은 거란이 손을 내밀어도 우리는 절대로 전쟁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고 해서 송과 거란을 모두 끊어내고 고립되지도 않을 것이오. 모두와 교류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기울지 않을 것이오. 힘을 바탕으로 한 엄정한 중립! 그것이 우리 고려가 두 대국 사이에서 평화를 지켜나가는 길이오.

우리 고려는 마침내 거란의 10만 대군을 전멸시켰소. 온 천하에 우리 고려의 저력을 보여주었소. 우리는 이제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주변국과의 외교를 주도해 나갈 것이오. 우리가 먼저 판을 짜고 우리가 먼저 제안하여 우리의 의도대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이끌어 나갈 것이오.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마련한 평화의 기틀을 반드시 수호해 나갈 것이오.

평화는 승리를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소. 그리고 그 평화는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지켜야만 유지될 수 있소. 부디 그걸 잊지 마시오.
따뜻하구려...어린 시절 잡았었던 아버님의 손 같소. 을 잊지 않겠소. 살펴 가시오.

7. 여담



[1] 거란 입장에서는 고려국왕.[2] 모계를 따라가면 이모 천추태후의 아들이기에 외사촌이 된다.[3] 부계를 따라가면 본인은 왕건의 손자, 목종은 왕건의 증손자이기에 5촌이 된다.[4] 모계를 따라가면 어머니의 언니이기에 이모가 된다.[5] 부계를 따라가면 본인은 왕건의 손자, 천추태후는 왕건의 손녀가 된다.[6] 김동준은 대하드라마 연기가 본작이 처음이다. 사극으로는 <천명>과 <조선구마사>에 조연으로 출연하긴 했지만, 전자는 퓨전사극에 시청률이 부진했고, 후자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폐기처분된 적이 있었다. 이번 작품은 그의 군 복무 이후 복귀작이기도 하다.[7] 다만, 역사에서 현종이 실제로 추존받은 호칭은 원문대왕(元文大王)으로 황제가 아닌 대왕이었다.[8] 실제 역사상 강감찬은 성종 때 상당히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지만, 목종 때까지는 뚜렷한 기록조차 없다가 현종 때 등장한다. 그리고 귀주 대첩까지 현종을 보좌하다가 귀주대첩 이후 얼마 안가 물러나고 현종이 죽고 3개월 뒤에 그의 뒤를 따르듯이 세상을 떠난다.[9] 당연히 파직까지 시킨건 각색이며 얼마뒤 그냥 굉장히 쉽게 화해해버렸고 이후에는 거의 현종의 최측근이 되어서 활동하였다.[10] 이후 4회에서 자신의 내관 양협으로부터 목종의 시신을 불태운 뒤 아무데나 묻어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분을 삼키면서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나왔다.[11] 목종에 의한 권력 기반 마련이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즉위했으니 힘 없는 꼭두각시 황제가 되었을 것이고 현종 입장에서는 덕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마이너스 상황이 된 셈이다.[12] 이 이전까지는 어린 군주라 거란이 강조 때문에 공격하겠다는 거짓 명분을 있는 그대로 믿어서 강조에 대한 분노가 매우 컸었다.[13]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해당 사극에서의 현종은 강조를 역적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에서 자신과 고려의 참된 충신이자 잠시나마 승리를 안겨준 영웅으로 생각이 바뀐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강조가 거란의 황제에게 현종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고 최후를 맞이하고, 이어 현종이 강조의 처에게 강조가 용맹스러웠고 고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하며 치하한다. 이들이 처음에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헤아려 본다면 서로에 대한 평가가 180도 바뀐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 2차 여요전쟁이 끝난 이후 현종은 탁사정 등 조정 내 남아있는 강조 일파를 숙청하고 강조가 멋대로 지어올렸던 선대인 목종의 '시호'와 '묘호' 등을 고치는 등의 행동을 했는데, 해당 내용이 극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따라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미 현종이 탁사정이 서경을 버리고 도주한 것을 들었던 터라 이것과 관련되어 자연스럽게 숙청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결국 20회에 강조의 도당이라는 명분을 가차없이 이용하여 탁사정을 내친다.[14] 거란 진영에서도 야율융서와 면담하던 소배압이 새로운 정변의 승리자인 최질에 대해 모든 면에서 강조보다 못한 인물이라며 박한 평가를 남겼다.[15] 여인이 임금을 모시고 잠자리에 든다는 뜻이다.[16] 특히 원작에서 몽진 도중에 가족들에게 잠시 돌아가겠다는 인원들을 막지 않고 보내주거나 불충한 행동을 한 자들의 처벌도 불문에 부치는 등의 관대함을 보여주는데, 이에 지채문과 채충순이 그래도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가족만을 위해서는 안 되고 군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자 어차피 도망갈 사람은 갈 것이고 군사들에게 강제로 싸우라고 해서는 적을 이길 수 없으며, 사람이 모여야하는 현실에 굳이 엄격함을 우선한다면 다른 짓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후에도 자신의 주장을 유지하며 각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잘하는 일에 따라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발언한다.[17] 오히려 강조를 제거하면 전쟁이 끝나기는커녕 수십만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최고 지휘관을 잃는 것이므로 앞으로의 전세가 매우 불리해진다. 게다가 강조가 사라진다 해도 강조가 옹립한 현종 본인이 있는 한, 명분은 남아있는 셈이다. 극중 통찰력이 높은 인물인 강감찬은 현종의 결단을 듣자마자 무모한 일이라면서 무릎을 꿇고 제지하려 했다.[18] 이렇게 미숙해 보이는 연출과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연기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평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4회 이후 권신에게 맞서는 군주의 위엄을 제대로 보이고 있어서 우려를 상당수 불식시키고 있다. 다만 그의 연기에 비해 각본이 엉망이라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19] 우스갯소리로 지금 다시 보니 "그 미미한 통찰력으로 조정을 들쑤실 것"이라면서 경고했던 강조의 통찰력이 옳았다는 반응도 있다. 참고로 앞서 언급했듯이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강조조차도 자신에게 반대입장을 대놓고 밝히는데도 내버려둔 강감찬을 파직하거나 전쟁 영웅들의 유족들과 탁사정을 같은 자리에 있게 하는 일 모두 실제로는 없던 일이기에 실제 현종 입장에서는 당시 미숙한 군주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격하시킨 왜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0] 동탁과 조조에게 끌려다니던 삼국지의 헌제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있으나, 실제로 헌제는 옹립된지 얼마 안 된 동탁 시기에나 무력하게 굴었지 조금씩 경험이 쌓인 조조 시절에는 의대조 사건으로 조조를 적극적으로 암살하려 시도하거나, 후한서 헌제복황후전에는 자신을 능멸하는 조조에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나를 폐위시켜라!"라고 일갈하자 조조가 깨갱하고 다시는 헌제를 혼자 만나려 하지 않는 등 위엄을 내보인 일이 있다. 고종과 순종도 일제의 꼭두각시였다고는 하나 일제가 박진 수준으로 그들을 능멸하고 막 대하지는 못했다.[21] 더군다나 김훈 - 최질의 난은 엄밀히 말하면 고려사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현종의 유일한 흑역사인데 이를 잘 활용하면 현종을 위한 훌륭한 성장 빌드업 과정으로 이어졌겠으나 드라마 전개 이상은 높고 현실은 시궁창이 되어 버렸다.[22] 전작의 주인공인 이방원 역시 캐릭터성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정작 그에 걸맞은 능력을 작중에서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이방원은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정치적 괴물이자 명군이었으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매우 옅었다.[23] 17화에서 강감찬과의 언쟁에서도, 탁사정을 용서하겠다는 현종에게 강감찬은 "공허한 이상"이라면서 일축한다. 이에 현종은 충분히 이룰 수 있는 현실이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정작 "어떻게" 이룰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현종의 기대와는 달리 탁사정은 끝끝내 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참다 못한 현종이 그를 내쳐버리면서 결과적으로 자기 말을 자기가 어긴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24] 실 역사에서의 이 반란은 현종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이기는 하나, 본작처럼 나라가 위태로운 대규모 사건까지는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반란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매우 작았다.[25] 작중 현종이 탁사정 등의 죄인을 용서하는 이유는 거국적인 안목이 아닌, 그저 "나도 죄인이다"라는 사적인 죄책감에 불과하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 감정으로 집단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데 하물며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탁사정을 용서한 것뿐만이 아니라 탁사정의 배신으로 죽은 장군들의 가족들과 탁사정을 같은 자리에 있게 하는 희대의 모욕까지 저지르고 유가족들의 절규 섞인 호소에도 현종은 이를 외면한다. 마치 "내가 용서했으니 너희들도 닥치고 용서해라"라는 식의 독선적인 행동에 현종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26] 작중 최질과 박진은 난을 일으킨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황제와 고려 전체를 통째로 거란에 갖다 바치는 매국을 획책했고, 심지어 박진은 황제를 암살하려 시도한 것도 모자라 그 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황제의 침소에 난입해 흉기로 위협과 난동을 부리는 전무후무한 역적으로 나왔다.[27] 드라마 태조 왕건 에서도 나왔던 그토록 최고로 지혜로웠던 고려 최고의 첫 성군이었던 왕건조차 호족들의 배신으로 삼년산성 전투에서 패배하자 공산 전투의 희생을 되새기며 배신자들의 일가족을 죄다 철퇴로 때려 죽여 단죄하는 등 필요할 땐 아주 강경하고 혹독한 엄벌을 내렸다.[28] 저런 식의 묘사라면 실제 한국사에서 능지처참이나 거열형, 멸문지화는 단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어질고 자애로운 임금이라도 저런 대역죄를 벌인 자의 가족들에게도 연좌제가 존재하지 않는 현대마냥 관용을 베푸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다. 비유하자면 현대 대한민국에서 나라를 북한팔아넘기려 한 자에게 사형이나 무기징역도 아닌 유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29] 당시 하공진 등이 죽인 고려에 귀부한 여진족들을 가리키는 부분이다.[30] 8화 마지막에 남긴 말. 글로만 보면 강감찬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강감찬의 기만작전에 감탄하는 것이다.[31] 이에 강감찬은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현종에게 몽진을 권유하였고, 결국 강감찬의 뜻을 따르게 된다.[32] 전술한 대로 젊은 나이에 사극에 채용됐고, 동안이라 나이에 구애받지 않은 배역을 맡았으며, 초기엔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연기력을 가졌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33] 실제로 김동준은 샤이니민호, 비투비이민혁과 함께 대표적인 체육돌로 꼽힌다.[34] 참고로 드라마의 시작과 끝 부분에는 최수종과 관련된 광고들이 등장하며, 9화의 엔드롤에서 박진이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장면에 상조업체 광고가 나온 것으로 노렸단 이미지를 가져갔다. 한편, 광고 내용은 13화까진 잘 먹고 잘 자면서 좋은 하루를 보내는 밝은 이미지의 광고였으며, 신구가 하차한 뒤엔 그나마 시작할 때엔 어두운 조명으로 소화관련 증상에 힘들어하지만 결국 밝은 화면으로 끝난다. 무거우면서 때론 처절한 드라마와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인 셈.[35] 심지어 해당 화에선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단 묘사를 위해 수염이 밥풀을 덕지덕지 붙인 병사가 나오거나 그 자리에서 물통에 물을 떠다 마시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36] 상처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잘못한거고 황제는 포로들을 잘 보살피고 있다'고 말했다.[37] 신성왕후는 신라 문성왕의 후손이고, 문성왕은 원성왕의 현손이며, 원성왕은 무열왕의 딸의 증손자이고, 무열왕은 부계로 진흥왕의 증손자이다.[38] 물론 인물들의 복장으로 보아 2차 여요전쟁 이후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39] 같이 춤을 춘 사람들 중에는 채충순 역을 맡은 한승현이 돋보인다는 평이 많았다.[40] 유일하게 춤을 못춰서 점프하며 뛰고있다.[41] 황보유의가 실제 기록에서는 현종의 몽진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없으나, 이 드라마에서 장연우와 세트로 엮어서 몽진에 참여했기 때문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42] 이 영상을 찍은 날은 16화 촬영분을 찍은 이후로 추정된다. 지채문 역의 한재영의 복장이 친종장군으로 승차 이후 입는 복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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