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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7:05

강조(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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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로고 화이트.svg

[ 등장인물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676767,#010101><bgcolor=#454545><color=#ffffff><-3> ||
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양규_neat_ver.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tablewidth=100%><tablebgcolor=#676767><tablecolor=#ffffff><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2.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width=25%>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
[[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
안예은
2024.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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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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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07><colcolor=#fff> 강조
康兆
파일:고거전 강조01.jpg
캐릭터
지위 서북면 도순검사 (1 ~ 4회)
중대사 (4 ~ 5회)
→ 행영도통사 (5 ~ 8회)
등장회차 1 ~ 8회
배우
이원종

1. 개요2. 배우3. 작중 행적
3.1. 1회3.2. 2회3.3. 3회3.4. 4회3.5. 5회3.6. 6회3.7. 7회3.8. 8회3.9. 이후
4. 묘사5. 총평6. 인간 관계7. 어록8. 여담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황제를 시해했지만 결코 고려를 배신한 반역자로 남을 수 없던 강조는 역적의 오명을 씻기 위해 직접 고려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한다. 삼수채에서 끔찍한 기습을 맞이한 그는, 거란의 황제를 직접 대면하게 된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원종.

2. 배우

이원종은 〈야인시대〉의 구마적으로 주목받았고, 2008년 작 〈대왕세종〉의 윤회 이후로는 15년만에 출연하며 대하드라마 출연 총 4회차[1]가 되었다. 주인공 강감찬 역을 맡은 최수종과는 2005년 작 〈해신〉 이후 18년 만의 재회인데, 원래 62년 12월생 최수종이 66년 1월생 이원종보다 형이지만, 해신에서는 이원종이 최수종이 맡은 장보고의 무술 스승 최무창 역을 맡았다.[2] 또한 2009년 작 〈천추태후〉에서는 최재성이 맡은 강조이덕화가 맡은 강감찬을 존대했고 실제로 강감찬이 강조보다 윗선으로 묘사되었는데[3] 본작에서 최수종이 맡은 강감찬과는 상호 존대하는 형태로 대화하는 것이 예고편에서 묘사되었다. 최수종과는 야망의 전설사랑하세요에서도 함께 나왔었는데, 그 두 작품에서는 악연 관계였고, 해신에서는 좋은 관계였으며,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관계로 나온다. 야율융서 역의 김혁과는 21년 전 야인시대에서 각각 구마적이정재 역할로 출연했지만, 작중에서는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3. 작중 행적

3.1. 1회

서북면 도순검사로서 서경에 주둔하고 있으며 흥화진양규의 상관으로 등장한다. 거란2차 침공 조짐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 양규의 흥화진 군사들이 거란의 척후병을 쫓다가 김숙흥이 포로로 잡히는 상황이 발생하자, 거란 포로와 김숙흥의 교환을 허락해달라는 양규의 청을 허락해준다. 그 후 거란의 침공이 머지 않았다며 부하 무장들과 서경부유수 원종석 등과 함께 대비책을 세운다. 원종석은 고려는 거란을 상국으로 예우하고 있으니 명분이 없지 않느냐며 거란의 침공에 회의적으로 반응하지만, "명분은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힘이 있으면 아무 이유나 대도 다 명분이 되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아무리 높은 대의가 있어도 초라한 항변일 뿐이다."라고 반박하며 거란은 반드시 고려를 다시 침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회의가 끝난 후에는 병사들을 격려해주는 모습이 보이는데, 열흘에 한번 고깃국을 먹이라고 지시하며 여러 병사들을 위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부하 장수들을 꽤나 잘 대해주는 덕장으로 그려진다.

3.2. 2회

개경의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여전히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다가 이현운거란과 싸우기도 전에 이 나라 조정이 먼저 무너지겠다고 한탄하는 것을 듣고 고심 끝에 김치양유행간을 처단하고 조정을 바로세우라는 편지를 쓰고 최충을 통해 목종에게 직접 전달한다. 하지만 개경의 일은 걱정하지 말라는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답변이 돌아오자 깊게 고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목종이 비록 강조의 서신을 혼자 읽긴 했지만 옆에 여전히 유행간이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내용을 알지 못하도록 편지를 불태워버리고는 구두로 답을 준 것이었다. 비록 표면상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주변인들에게도 내용을 알지 못하도록 얼버무리는 등 어떤 면에서는 직언으로 인해 신변이 위험해질 지도 모르는 강조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볼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목종에 대한 믿음이 바닥난 건지 서경에서는 아무도 그러한 가능성은 예측하지 않고 착잡해 한다.

3.3. 3회

신이 반란을 일으켜서, 그분을 시해하였사옵니다.
김치양의 경계병에 의해 개경서경 사이의 연락이 차단되면서 목종이 자기에게 군대를 이끌고 개경으로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4] 김치양이 목종을 시해하고 궁을 장악했다는 소문만 전해 듣고 마침내 대량원군 옹립을 기치로 내걸고 군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행군 도중 소문과 정반대로 아직 목종이 살아있으며 김치양도 도성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고뇌한다.

이현운어차피 이렇게 된거 개경으로 가 김치양을 제압하고 사태를 수습하면 되는데 뭘 망설이냐고 묻지만, 김치양만 죽인다고 해도 유행간천추태후, 목종이 남아있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니 결국 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 뒤 쿠데타를 마음먹고 계속해서 개경으로 진격한다.[5] 이후 개경을 공격해 김치양의 세력을 격파한 뒤 김치양과 그의 아들 을 죽이고, 목종이 내어준 유행간마저 냉혹하게 처단한 후 정전에 갑옷과 칼을 착용한 채 들어가 이를 막던 유충정까지 죽였다. 이후 목종과 천추태후 앞에 서서 "조금만 더 일찍 고려를 바로잡으려고 했다면 자신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겁니다."고 일갈하고, 그 둘을 폐위한 뒤 개경에서 추방한다. 그리고 화근을 없애기 위해 태후와 함께 떠나고 있던 목종을 호송하던 병사들을 시켜 시해한다. 이후 대신들과 함께 신혈사에서 돌아온 대량원군을 맞이하며 그를 용상에 올린다. 개경에 돌아온 뒤 목종의 생사를 묻는 대량원군의 질문에 자신이 반란한 뒤 시해하여 승하하셨다고 냉혈하게 받아치는 강조의 태도가 압권. 이때의 표현 자체도 '대의'이니 '거병'이니 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지 않고 대놓고 '반란', '시해'라고 나타낸다.

3.4. 4회

현종이 심리적, 육체적 피로로 인해 즉위 축하연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자[6] 강조는 그렇게 하시라고 하고는 신하들끼리만 모인 축하연에 가 있는데,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 탓에 풍악을 파한 뒤 재상들에게 자신을 따라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최항과 채충순이 따르기야 하겠지만 재상으로서의 책무 외에는 더 바라지 말라고 일침을 놓자, 강조는 쿨하게 그거면 됐고, 다만 자신도 고려를 위한 충정으로 일하고 있으니 자신을 경멸하지는 말아달라고 말한 뒤 자리를 뜬다. 이후 본격적으로 왕을 압도하는 권신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현종이 황제가 된 상황에서 강조는 조직 개편[7]으로 황제의 실권을 가져온다. 예부시랑이 된 강감찬이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라며 반대하지만, 다른 대신들이 강조의 눈치를 봐 동조하지 않았고, 결국 강조의 기세에 눌린 현종은 마지못해 조직 개편을 승인한다.

이에 현종과의 독대에서 "태자로 살아본 적도 없고 정치 교육도 못 받은 폐하가 뭘 아신단 말씀이십니까?", "연회나 즐기고 사냥이나 다니셔도 됩니다."라는 식으로 깔보고, 이에 현종이 "고려를 바로잡으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권력을 탐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오? 날 허수아비로 삼느니 차라리 그대가 직접 황제가 되시오!"라고 반발하자 격노해 청자를 깨부수고[8] 역으로 "무능한 임금이 자기 주관을 내세워 나라를 망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며 압박하며 "이미 황제를 시해한 입장인데, 두 번은 못할 것 같으십니까?!"라며 몰아세운다. # 이후 곧 황후가 생겨서 혼인하게 될 것이니 후사나 잘 보라면서 그것조차 제대로 못해서 충직한 신하를 역적으로 만들지는 말아달라고 울분을 토하고 물러간다. [9][10]

한편 강감찬이 출사하여 조회 중에 돌직구를 날리는 것과 자신이 일으킨 정변이 전쟁의 단초가 되었다면서 팩트로 때리는 것을 두고는 "말 앞뒤 안 가리고 하는 것은 여전하시구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친다. 그와 함께 "그럼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다 내 탓 하겠구려?"라고 강감찬에게 비꼬자 강감찬은 "그럴 탓조차 할 시간도 없을 겁니다."라고 받아치고, 이에 강조는 "내가 전쟁의 원인이라면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겠소!"라고 응수하는데, 강감찬은 "장군 한 사람으로 되겠습니까?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다면, 전쟁이라 부르지도 않사옵니다. 온 고려가 총력을 다해야 하기에 전쟁이라 하는 겁니다."라는 팩폭만 맞는다.[11]이후 부하 장수 이현운에게 검차를 만들며 동원령을 준비하라고 명하고, 이윽고 사신을 통해 외교적으로 전쟁을 막아보려는 노력이 실패하자 전쟁이 일어날 것을 꺼리는 현종에게 "동원령을 내려 전쟁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하자 현종의 강력한 반발을 산다.

3.5. 5회

거란족[12]이 자신을 온 고려인의 역적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분노한다.[13] 그러나 양규가 "어떻게 포장해도 반역이라는 것을 감출 수는 없으며, 찬사를 바라고 벌인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며 "전쟁이 목전에 다다랐으니 약해지지 말고 이길 방법만 생각하십시오!"라고 충고하자, 마음을 다잡고 전쟁 준비를 한다. 이후 현종이 자신을 불러 암살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오히려 이현운과 군사들을 동원해서 내관들을 제압한다. 그러나 "고려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시오."는 현종의 말에 "소신이 꼭 죽어야 한다면 고려를 위해 싸우다 죽을 것이옵니다. 폐하의 칼에 죽는다면 영원히 역적으로 남을 뿐이옵니다.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사옵니다."라면서 이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고 하고 나온다. 그리고, 자신을 주살하려는 현종의 계략을 알았음에도 분노하기는커녕 담담하다.[14] 현종이 고려를 위해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기에 그랬던 듯하다.[15] 결단을 내린 현종의 태도 자체는 마음에 들었는지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왕보다 더 낫다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벌인 일이니 탓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이후 현종의 안위를 걱정하며 초조하게 밖에 있던 강감찬[16]을 발견하곤 사신의 귀국 일정을 묻고, 현종의 안위를 넌지시 물어보는 그에게 "내일 정전에 드실 것이오."라고 대답하고 떠난다.[17]

앞의 사건에서 영감이라도 받았는지 다음날 자신의 처단을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우며 고려 조정을 위협하던 거란 사신 한기가 할 말을 다하고 정전을 나가려고 하자 그를 멈춰 세우고, 아예 칼까지 건네면서 그럼 지금 당장 자신을 죽여서 수급을 갖고 가라고 뻗대기 시작한다. 자신은 거란 황제의 명을 전달할 뿐이고 그 일은 황제가 직접 할 것이라며 한기가 빠져나가려 하자, 이번엔 그럼 순순히 동행할 테니 자신을 압송해 가라고 떠본다. 역시 한기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당황하자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냐며 거란의 진짜 목적이 자신인지 전쟁인지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히라고 엄포를 놓는다.[18] 이에 한기는 현종에게 강조를 물려달라고 요구하지만 현종 역시 그 전에 강조의 질문에 대답부터 하라며 그를 압박하고,[19] 이에 한기는 이 자리에 있었던 일을 요 성종에게 모두 고할 것이라고 딴소리를 하여 결국 강조의 생사와 무관하게 거란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현종과 고려 조정이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부터 현종에 대한 강조의 배려가 엿보이는데, 저번처럼 독단으로 "동원령을 내리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종에게 "동원령을 내려주소서"라고 청하고, 현종이 임명할 관직을 마련한다.[20] 이후 거란에 맞서 동원된 고려군 전 병력을 전장에서 통솔하는 도통사가 되어 통주로 병력을 집결시킬 것을 명하고, 먼저 흥화진으로 떠나려는 옛 전우 양규에게 폐하를 뵙고 가라고 권하고 서로 무운을 빌며[21] 헤어진다. 모든 전쟁 준비를 마친 후 떠나기 직전, 현종으로부터 군권을 상징하는 부월을 하사받는다.[22] 이 자리에서 현종에게 "반드시 승리하시오. 승리하면 조정과 나 모두 그대를 왕을 죽인 반역자가 아닌 충신이자 고려를 구한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오."라는 격려를 받자 감격하면서[23][24] 도통부사 장연우와 통군사 최사위 등과 함께 고려군을 이끌고 서북면으로 출전한다.[25]

3.6. 6회

본대를 통주성에 집결시킨 후 진법을 훈련시키고 병력을 배치하며 대회전을 준비한다. 흥화진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도순검사(양규)를 믿는다고 하면서 본대에만 집중한다. 이후 최사위가 흥화진의 안위를 염려하면서 대회전이 아닌 수성전을 펼칠 것을 건의하나, 강조는 만약 성 안에 움츠러 들어 있으면 거란군의 '섬멸'이 불가하고 인근 고려 영토가 초토화될 것이며 그렇기에 대회전으로 맞붙어야 함을 역설하고 비장의 무기인 검차를 믿으라고 다독인다.[26]

3.7. 7회


먼저 삼수채에 머물면서 검차와 군사들을 정렬한 가운데, 거란이 흥화진을 포위할 일부 병력만 남겨두고 남하하는 기세[27]를 보였고, 흥화진이 건재하다는 봉화 소식을 접하자 연설을 통해 관군들의 사기를 결집시킴과 동시에 다음날 거란 기병이 처들어오자 검차를 활용해 승리를 거둔다.[28] 그러나 그 날 밤, 부하 장수 이현운과 바둑을 두면서 다가올 전투 계획을 이야기하는 와중, 군량 창고 쪽으로 온 기습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장연우에게 본진의 군사들을 데리고 가게 하여 이를 막게 했으나, 이는 함정이었고 야율분노와 야율적로가 이끄는 적의 별동대에 당해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잡히고 만다. 잠시 후 포박당한 채 모닥불 위의 높은 곳에 올려진 뒤 거란군들한테 놀림감이 되는 수모를 당하는데, 모닥불 위에 있었기 때문에 뜨거움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29][30] 그리고 강조가 포로로 잡힌다는 소식이 군내 전해지면서 비숙련병 출신 광군이 주력으로 되어 있던 고려군은 지금껏 끌어모은 사기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와해되기 시작한다. 빠른 진행 속도 때문에 묘사가 자세하지 않다보니 놓치기 쉽지만, 삼수채 전투를 시작하기 전 장수들에게 임무를 배정할 때 강조는 장연우가 두려워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전방이 아니라 본진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겼다. 본래는 통군사인 최사위가 맡았어야할 임무지만 전방 회전에 집중한다는 명목으로 최사위를 우위로 돌릴 정도로 힘을 과하게 싣고, 후방 정도는 싸움을 두려워하는 장연우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볼 정도로 거란군의 기습 가능성을 대수롭게 여기고 있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3.8. 8회


포로로 잡혀 거란 진영 내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산발한 상태에서 사로잡힌 다른 장수들과 함께 야율융서 앞으로 끌려와서 회유를 받지만 넘어가지 않고 "난 고려의 신하다!"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31] 이때 이현운이 야율융서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격분해 이현운의 이름을 외친 뒤 그를 발로 찼다가 거란 장수들에 의해 또 강제로 뜯어말려졌다.[32] 결국 다른 장수들이 전부 항복을 표하자[33] 야율융서는 다시 한 번 강조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강조는 도리어 "도끼나 휘두르는 야만인 놈들에게 항복할 바에는 차라리 사지가 찢겨 죽더라도 고려의 신하로 남겠다!"라며 도발하고[34], '야만'이란 단어에 격분한[35] 야율융서에게 손수 도끼[36]로 난도질 당한다.[37] 이후 목이 잘려 거란군 진영에 효수된 것을 마지막으로 극에서 퇴장한다.

실제 역사에서 강조는 요 성종의 첫번째 회유를 거절하자 산 채로 살을 베이는 고문을 당하면서 계속 회유를 받았으나 끝까지 절개를 잃지 않으면서 죽었다. 본작에서는 그런 잔인한 고문 없이 야율융서에게 깔끔하게 죽었으나, 대신 분노한 야율융서에게 항복한 다른 고려 장수들에게까지 그 피가 튈 정도로 시체를 잔혹하게 도륙 당하고,[38] 이후에는 효수를 당하는 등 딱 심의에 걸리지만 않을 정도로 잔혹함이 충실히 재현되었다. 그리고 이후 군신간의 회의 중에 좌복야 유진에 의해 그가 세웠던 계획과 정당성 마저 비판받는다. 그를 믿고 보냈던 현종은 그 말에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고, 오히려 강감찬은 그 전략은 틀린 것이 없었다고 말하며 옹호하며 유진과 대치를 하며 덕분에 강조의 대회전 검차 전술이 완전히 부정당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마침 강조의 회전으로 맞서겠다는 전술을 옹호한 강감찬이 실제로 귀주 대첩에서 대회전을 치러 거란군을 섬멸한 것을 생각하면 재밌는 부분이다.[39]

3.9. 이후

9회에서 거란 진중에 사신으로 간 강감찬이 효수된 강조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강감찬은 비통해하며 "도통사..."라고 읊조리지만, 야율융서 앞에서는 고려를 구하기 위해 그를 '역신 강조'라고 부르며 그에게 책임전가를 한다. 이는 어떻게든 야율융서와 거란을 기만해야 했던 강감찬이, 아직 싸울 전력이 있음에도 항복 의사를 표시하는 것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대답한 것이었다. 10회에서도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와 흥화진사 정성, 그리고 귀주별장 김숙흥의 대화에서 언급됐는데, 삼수채에서 패한 이후 죽었다는 김숙흥의 말을 듣자 강조와 깊은 사이였던 양규가 상당히 놀라 착잡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13회에서는 대도수가 이현운의 매국 행위에 분노한 끝에 "가서 도통사께 사죄하라"는 말을 하며 그를 살해하였다.

그리고 20회에서 현종이 탁사정의 죄목으로 강조의 반역에 동조했다는 이유[40]를 들며 오랜만에 언급됐다. 26회부터 시작된 김훈, 최질의 난에서는 사건의 특성상 자주 언급되는데, 원정황후가 겁박당해 내린 회군 교서에 유방은 강조의 일을[41] 예시로 들며 회군했다. 신하들 사이에서는 강조가 "반역을 일으켰으나 충심을 갖고 있던 신하"로 인지되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김훈, 최질과는 격부터 다르다고 묘사된다.[42]

최종화에서 현종의 눈 앞에 환영으로 이미 사망한 여러 인물들과 함께 등장한다.

4.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42세의 나이에 키는 5척 8치 정도 되며, 밝은 피부와 짙은 눈썹을 지녔다고 묘사되어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다고 나온다. 또한 원작에서 자신의 검차방진 계책[43]을 강하게 신뢰하며 방심하는 모습은 드라마와 동일하며, 진이 무너질 때에 생길만한 약점을 인지하면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여긴다.[44] 드라마와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으나 원작의 강조도 군사들로부터 높은 신뢰도를 지녔고 본인의 충성심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45] 드라마에서는 명실상부 양규와 함께 초반부의 진 주인공으로서 충성과 야심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입체적인 권신으로 다루었다.[46] 권신이 되기 이전에는 호방하며 부하들을 잘 챙겨주는 덕장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쟁 명분이 없다는 말에 명분은 만들면 된다거나 거란과의 전쟁이 임박했음을 파악하는 등 통찰력을 갖고 있는 모습도 묘사된다. 또한 왕실과 조정을 걱정하여 목종에게 간언하는 등, 나라에 대한 충성심은 확실한 캐릭터로 나타난다.

4화까지의 장면을 보면 강조 특유의 애매한 권신으로서의 입지를 보여주고 있다. 왕은 후사만 만들면 된다고 왕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신하들이 일을 처결하는 방식으로 조정을 이끌려하지만 실상은 전왕인 목종이 이런 식의 정치를 펴고 있었다는 걸 감안했을 때[47] 그런 왕에게 실망하여 시해하고 권신이 된 그는 권신의 위치에 오른 태생부터가 모순적인 입지에 처한 인물로서 묘사된다.[48] 물론 도자기를 던지며 왕을 겁박할 때 장면은 동탁이나 조조급의 권신으로 보이기도 하지만[49][50], 실상 애국자로서도 권신으로서도 반역자로서도 애매하기 그지 없다. 현종 상대로 권력을 과시하면서 따질 때도 "왕으로서의 최소한의 일(후계)조차 못하다가 충심 있는 장군을 역도로 만들지 말라!"면서 반쯤 울먹거리면서 화내고[51] 또 현종이 신하들 모인 면전에서 대놓고 "이거 다 당신 때문이다!"라고 대놓고 꼽을 줘도 아무 말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으며 강감찬이 찾아와 거란에게 명분을 주었다고 따지듯이 물어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본인이 실세라서 남들은 아무도 태클을 못 거는데 정작 본인이 가장 반역자라는 걸 마음 한구석에서 찔려하고 있다는 게 계속 묘사되는 것이다.[52] 이렇듯 애매한 입지였으나 죽음 이후엔 그래도 나라를 위해 죽은 충신으로 여겨진다. 현종부터 직접 강조의 처에게 강조의 부고를 알리며 위로하고, 대도수가 매국노 이현운을 죽일 때 한 일갈도 저승에서 도통사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최항 역시 난을 일으킨 최질, 김훈을 김은부가 강조에 비유하자 강조와 달리 저들은 폐하에 대한 최소한의 충심도 없는 자들이라며 반박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문신들 역시 강조가 비록 황제를 시해한 대역죄를 저지르긴 했어도 강조의 최소한의 충심은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5. 총평

뜨거운 충심을 간직하고 있으나 임금의 시해로 역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 방향성에 논란이 있으나 과단성과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는 권신, 쿠데타 자체로 전쟁의 명분으로 언급되어 비난을 받는 처지, 이를 동시에 전쟁 발발여부와는 전혀 무관한 허울뿐인 명분이라는 점, 회전에서의 승부 시도와 위기 등 캐릭터성과 서사에서 연개소문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53] 실제로 커뮤니티나 리뷰에서는 연개소문이 상당히 많이 언급되어 떡밥이 불타오르곤 한다.[54] 기이하게 역적이자 충신이며, 양쪽으로 모두 일관적인,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장군이자 권신 캐릭터인데 정성을 들인 빌드업과 그에 걸맞은 배우의 체격[55], 훌륭한 연기력[56]으로 드라마 초반부의 한 축을 이끌었다.

6. 인간 관계

7. 어록

명분이야, 찾으면 되지요. 성종 폐하 시절 거란이 고려를 처음으로 침범했을 때도 그랬잖소? 거란이 옛 고구려의 영토의 새 주인이 되었으니 고려도 고구려의 영토를 다 내놓으라는 것이었소. 명분이란 건 힘에서 나오는 거요. 힘이 있으면 아무 이유나 갖다 붙여도 다 명분이 되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아무리 대의를 부르짖어도 초라한 항변에 불과한 거요.[58][59]

- 명분이 없어 거란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을 거라는 서경부유수 원종석에게 반론하며
그래. 그거면 됐네.[60]

- 양규의 충심을 확인하며

- 정변의 시작
그리 되었사옵니다. 소신도 진정 바라지 않던 일이옵니다. 폐하께서 조금만 더 일찍 결단을 내리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이 고려를 바로잡았다면, 소신도 반역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 자신을 반역자로 만들어버린 목종을 향한 일갈
오늘 승하 하셨습니다. 소신이 반란을 일으켜서, 그 분을 시해하였사옵니다

- 현종과의 첫만남에서 목종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할 일이 필요하십니까? 황제가 되셨으니 권력을 휘두르고 싶으시옵니까? 그 짧은 혜안으로 조정을 들쑤시고, 그 미미한 통찰력으로 군정을 뒤흔들고 싶으시옵니까?! 그러다! 입안의 혀처럼 구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이 나라를 망쳐놓고 싶으시옵니까!?
곧 황후를 맞이하실 것이옵니다. 국사를 돌보는 일은 소신에게 맡기시고 속히 후사나 보시옵소서.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시고 그 아들에게 순조롭게 아비의 자리를 물려주시옵소서. 그 쉬운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여 황실이 혼란에 휩싸이고 그 때문에 충직했던 장수가 반역자가 되게 만들지는 마시옵소서. 그게 폐하가 할 일이옵니다.

- 유약한 새 황제를 압박하는 권신 강조[61]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사옵니다. 황제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벌인 일을 어찌 탓하겠사옵니까. 그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군주보다는 나은 일이옵니다. 그럼 편히 주무시옵소서.

- 새 황제의 잠재된 결단력을 확인한 강조
멈추시오! 그럼 지금 내 목을 가져가시오. 내가 그 역신 강조요! 허니 지금 여기서 내 목을 베시오!
자! 뽑으시오! 뽑아서 내 목을 치시오! 어서! 왜 망설이는 거요? 날 베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게 거란의 황제가 아니요? 내 목 하나를 가져가기 위해 40만 대군을 일으킨 게 그대들의 황제가 아니요? 헌데 왜 망설이는 거요? 왜?
어서 말하시오! 이 고려의 황제 폐하와 신하들 앞에서 분명하게 말하시오! 거란이 진정 원하는 게 뭐요? 나요? 아니면 전쟁이요?

- 거란의 사신을 압박하며 전쟁의 진의를 밝혀내는 강조
난 고려의 신하다!
왜 또 묻는 것이냐? 대거란의 황제가 어찌 이리 구차하게 구는 것이냐? 어서 죽여라! 도끼나 휘두르는 야만인의 신하가 되느니, 사지가 찢어발겨도 고려의 신하로 남을 것이다. 이 반역자를 믿고 대군을 맡겨주신 고려의 황제 폐하를 위하여 죽어도 영원히 충성을 다할 것이다!

-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고려의 신하로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강조

8. 여담


[1] 대왕 세종 이전 용의 눈물왕과 비에 출연했다.[2] 정말 우연히도 본작에서 목종을 맡은 백성현은 마침 또 당시 해신에서 최수중이 맡은 장보고의 아역으로도 출연하여 이원종에게 무예를 수련받는 역할로 나오게 되었고 이후 20여년만에 백성현과 이원종은 본작에서 다시 재회했다.[3] 공교롭게도 해신과 천추태후에는 채시라가 출연했다.[4] 목종의 명령을 전하고 있던 전령이 김치양 일파에 의해 사살되었기 때문이다.[5] 만약 목종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됐다고 하더라도 군사행동의 명분만 세워질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장치이다.[6] 선왕이 다짜고짜 시해당하고 자신은 의도치 않게 즉위해 공포에 질려 있는데 선왕을 죽인 강조 일파까지 섞인 신하들과 회식을 하고 싶을 리가 없다.[7] 왕명을 출납하고 궁궐을 숙위하는 국왕의 보좌 기구인 은대와 중추원을 폐지하고 이를 중대성으로 통합한 뒤 스스로 그 중대성의 수장인 중대사에 앉아 왕의 권력을 빼앗는다.[8] 깨지는 소리도 비교적 조용하고 매우 곱게 가루를 내며 깨지는 걸로 보아 이런 종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설탕으로 만든 소품을 쓴 것으로 보인다.[9] 사실 다른 현종의 항의에는 잘 참다가 스스로 옥좌에 앉으라는 현종의 힐난에는 버티지 못하고 격분하여 폭언을 한 것인데, 반역자라는 오명이 어지간히 거슬리고 신경 쓰이는 듯하다.[10] 분노한 강조의 울분 섞인 대사들을 살펴보면 고려왕조에 대한 너무 큰 실망이 담겼음을 느낄 수 있다. 현종을 깔보면서 하는 말에도 강조 자신이 고려왕조에 대해서는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11] 강조가 죽든 말든 거란은 강조가 왕위에 올린 현종이 있는 이상 고려를 때릴 명분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화에서 자신의 생사 여부와 무관하게 거란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란 걸 본인이 직접 거란 사신을 추궁하며 모두에게 입증하게 된다.[12] 정확히는 4회 후반부 고려에 사신으로 온 한기를 뜻한다.[13] 정변 이후 자신을 경멸하던 신하들에게도 침착했던 그가 현종에게서 분노한 이후 두 번째로 화를 내는 장면이다. 제대로 본인의 입장에서 콤플렉스를 건드려버린 것.[14] 자신을 죽이려는 현종이 아닌 멀쩡한 현종 앞에서도 도자기를 깨트리고 광분했던 강조가 담담한 것은 고려를 위하는 현종의 심경을 십분 이해한 것으로도 해석된다.[15] 군왕을 두 번이나 죽이는 건 전쟁을 앞두고 고려 내부에 균열을 일으킬 일인데다가 다른 용손도 없으니 현종은 못 건드린다 해도 내관이나 군사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음에도 제압에만 그칠 뿐 아무도 죽이지 않은 것에서 더는 고려인끼리 피를 보고 싶지 않은 심경도 드러났다. 또한 실권을 쥔 자신을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 죽이려 시도한 그 기개를 높이 산 것이 가장 클 것이다.[16] 사실 암살 기도 직전에 현종이 강조를 암살하겠다고 하자 이를 만류하던 강감찬에게 현종이 오늘은 일찍 퇴궐하라고 명하기는 했다.[17] 이는 표면적인 대화에 가깝고, 속뜻은 강감찬이 현종을 시해했냐고 묻자 강조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18] 실제로 강조의 정변은 거란에겐 개전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 화북을 평정하고 안정시킨 요 성종이 언제든 고려를 침공하고자 했던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투에서 패하여 거란에 압송된 강조가 처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 성종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양규의 결사항전으로 전쟁을 잠시 멈추었다가 또 다시 침략하고, 결국 귀주(현재의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강감찬에게 처참하게 두들겨 맞아 수많은 병사들을 요단강으로 보내고 나서야 전쟁을 멈추었다.[19] 이때 화면 구성이 의미심장한데, 현종과 강조가 똑같이 왼편에 자리해서 오른편을 바라보며 시선과 각도가 정확히 일치된다. 현종과 강조의 입장이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연출.[20] 전쟁에서 이기면 강조에 대한 위세가 그만큼 강해지기에 현종이 임명한 장수로 하여금 공적을 나누려는 행위라 할 수 있으며, 먼저 흥화진으로 떠난 양규 또한 강조가 이 전쟁을 현종과 같이 치르고 싶기에 그랬다고 언급한다.[21] 이 때,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 걸세. 우리는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만날 걸세"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강조와 양규는 이승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 이 때가 마지막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 저승에서 서로 재회하게 된다.[22] 부월을 하사하기 전에 강조의 뒤에 서 있는 병사들도 모두 무릎을 꿇는데, 원래는 강조만 꿇는 장면이었으나 이원종의 제안으로 바꿨다고 한다.[23] 이 장면에서 강조의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젖어 있으며 "예, 폐하..."라고 대답할 때는 눈물까지 흘렸고, 겨우 목이 매여서 처음에 제대로 현종에게 대답도 못했다. 자신이 옹립한 허수아비 황제가 진정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진정한 군주가 되었음을 깨닫고 감격하며 무릎꿇고 황제에게 부월을 하사받으며 황제를 존경과 경의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눈빛이 참으로 명장면이다. 이 상황을 표현하는 이원종의 연기력이 특히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본작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장면으로, 현종과 강조 두 사람의 캐릭터성이 더욱 일신했다는 평을 받는다. 양규의 조언을 듣고 황제로서 역적을 향한 1차원적인 적대감을 버리고 자신의 적마저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용인술을 보여주는 현종의 성장과 잠재력을 알려주는 동시에, 정변의 빠른 전개로 인해 미처 다 설명되지 못한 강조 자신의 충심을 이해하고 믿는 황제에 대해 감격하는 등, 역적이자 충신으로서의 면모가 뒤섞인 강조의 복합적인 캐릭터성이 단번에 설명된다. 많은 시청자들이 뽑는 고려 거란 전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다.[24] 이후 강조는 비록 통주 전투에서 대패했을지언정 요성종의 회유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고려의 애국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물론 『고려사』에는 '반역' 열전에 그 이름이 실렸지만 『고려사』는 조선 시대에 편찬되었지 고려 시대에 편찬된 게 아니다. 그리고 그를 반역자로 분류한 고려사에서도 그의 죽음까지 모두 기록되어 강조가 일방적인 역신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남겼다. 오히려 강조를 그리 부추겼던 이현운은 역사서에서 당장 항복을 하면서 강조와 비교되는 모습을 보여준다.[25] 개경에 모여 있는 병사들을 향해서 부월을 하늘 높이 치켜드는데, 이는 부월을 통해 황제에게 인정받은 통수권자라는 의미와 함께 그가 그토록 바래왔던 진정한 황제의 신하로서 나아간다는 의미로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26] 훌륭한 기동력을 장점으로 하는 침략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피침략국의 군이 나뉘어서 각기 성만 수성하고 있다면,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우회하여(물론 보급이 따라주는 한은) 최대한 빨리 적국 수도의 전략 목표만 타격하면 아군의 피해도 최소화 하고 전략 목표도 단기간에 획득하는 최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침략국이 공성전을 강요받는 상황은 보급 기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거나 아니면 적국 수도에 거대한 성곽이 있는 두 경우가 해당된다. 그런데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에 제대로 된 성곽이 세워지는 것은 귀주 대첩으로부터도 10년 이상 더 지난 후였다. 그것을 고려하여 강조의 의도는 이 전쟁이 고려 전체로, 더 나아가서 현종이 있는 개경에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북부에서 전화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최사위의 의도도 그렇다면 성에 들어가서 농성을 하다가 거란군이 남하하면 후방을 공격함으로서 전술적 잇점을 취하자는 의도임까지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거란의 성종은 군사적으로도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고, 그랬다면 40만 대군을 보병위주의 공성군과 기병위주의 수도타격대로 나누어서 성 안의 강조를 고립시키고 바로 현종을 노린다는 전법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강조는 거기까지 예상하고 단기결전을 노린 작전을 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8화에서 강조의 전략이 잘못되었다는 유진에게 강감찬이 반박하면서 언급된다.[27] 압록강을 건너 온 40만 중 흥화진에 20만을 남기고, 남은 군대를 이끌고 남하했다.[28] 드라마에서는 삼수채의 고려군 병력이 기록 그대로 30만이라고 언급되지만, 원작에서는 기록상 과장의 가능성을 인지하여 10만으로 설정하였다.[29] 드라마에서는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연출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대사에 기대 상황을 묘사하고, 정사에 나온 이야기를 너무 많이 칼질한 탓에 다른 의미로 모양새가 빠지게 되었다. 정사 및 원작 소설에서는 거듭된 승리로 거란을 얕보다가 한 방면의 검차진을 뚫고 들어온 거란의 급습에도 "음식이 적은 것보다 많은게 좋으니 오히려 적이 많이 들어오게 내버려두라"며 태업하다가 이미 많이 몰려온 것을 알았을 때에 야율적로 등에 의해 당했지만, 작중에서는 단 한 번의 승리 후 그날 밤에 거란 별동대의 전략에 걸려 대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잡힌 것으로 묘사되었다. 참고로 모닥불 위에 놓여서 거란군들의 놀림감이 된 장면을 보고 강조의 직책인 도통사를 본떠 '도통닭'이라는 별명이 나왔다.[30] 정사에서는 탄기를 하다가 거란군에게 사로잡힌다. 알까기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원작 소설의 묘사대로 바둑으로 표현하였다. 참고로 하루종일 거란군과 격전을 벌인 후 쉬는 와중에 아침에 바둑을 두면서 방심하다가 옆에서 부관들은 그래도 방비를 해야하지 않겠냐며 말을 거는데, 곧바로 이미 많이 몰려왔다는 것을 알자 재빨리 조치를 하러 가다가 야율적로 등이 막사로 들어와 그를 포함한 고려의 지휘관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고려군의 분전과 강조가 사로잡힌 과정이 많이 스킵된 탓에 삼수채에서의 패전 묘사에 차이가 생겼다.[31] 이 과정에서 야율융서 앞에서 다른 장수들이 전부 고개를 숙인 와중에도 강조만큼은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의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빳빳이 드는 용맹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강조도 거란 병사에 의해 강제로 고개가 숙여져야 했다.[32] 참고로 원작에서는 그의 용기를 시험하려던 거란의 병사들에 의해 이미 두 다리의 살점이 뜯겨나가 주저 앉아 있었으나 이현운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일어나 그를 걷어차며 정사의 기록대로 "너는 고려 사람인데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가?"라며 일갈한 후 전장에서 패했을지언정 자신들의 정신이 패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또한 원작에서 강조가 불상처럼 다시 앉으며 꿋꿋이 입장을 바꾸지 않자 야율융서도 그를 곁에 두고 싶은 사내라고 감탄하면서 한덕양도 강조는 기개가 있는 자이니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고 청한다.[33] 잘 보면 장수들이 하나둘씩 따르겠다고 할때는 실망과 분노에 찬 얼굴을 하지만, 노전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항복이 맞는지에 대한 고뇌에 휩싸여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뭔가를 깨달은 듯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인다. 모든 장수들이 이현운처럼 진심으로 항복하려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한데, 어쩌면 이후 야율융서에게 강한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은 부하 장수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거란군에게 패한 책임을 모두 짊어지고 죽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34] 이 대사는 진심으로 거란족을 낮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야율융서를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라 보는 것이 옳다. 이전 대사에서도 대 거란국(거란-요의 정식 국호이다.)이라며 상대 세력이 더 이상 일개 야만족이 아닌 국가임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먼저 했으며, 한 번 거절했음에도 회유가 계속되자 야만족이라며 매도한다. 회유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임과 동시에 상대의 화를 돋구어 자신을 죽이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때 결국 본인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반역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며 "이 반역자를 믿고 대군을 맡겨 주신 고려의 황제 폐하를 위하여 죽어도 영원히 충성을 다할 것이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가히 일품이다. 다만 이는 항복을 권유하는 야율융서와 대조해 현종을 한껏 띄워 절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며 거란 황제를 한껏 조롱하려 하려는 의도도 있다.[35] 거란족은 요태조 시절부터 공자의 제사를 지낼 정도로 중화문명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애초에 요태조부터가 한족 문화에 심취해 자기가 한고제처럼 되고 싶다며 자기 성을 유씨로 주변 부족은 소씨로 갈아버리려다가 주위의 이뭐병스러운 반응에 유씨로 변경한건 취소할 정도였다.(소씨는 취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난 고제는 아니나 그래도 소하같은 신하를 가지고 싶다는 이유...) 물론 아직 한화된건 아니라서 다음 대인 태종때는 소원대로 중원에 진출했다가 야만적인 통치로 쫓겨났다.[36] 현종에게 수여받은 부월과는 다른 도끼이다. 현종에게 수여받은 부월은 금빛을 띠나 야율융서가 휘두른 도끼는 은빛에 용 장식이 없다. 참고로 이 도끼는 7회 초반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한 패장들을 처형하려고 야율융서가 잡았던 도끼이다. 극중에서 강조는 요 성종을 도발하기 위해 도끼나 휘두르는 야만족이라고 조롱했는데 진짜로 도끼질에 죽었다.[37] 원작에서는 야율융서가 자신과 같이 있으면 부귀영화가 보장되는데 왜 죽음을 자초하냐면서 병사에게 참수하도록 시키고, 강조는 자신이 만세토록 왕을 시해한 자로 남을지언정 나라의 변절자가 되지는 않겠다고 말한 직후 노전의 눈 앞에서 참수당하는데, 야율융서는 절조를 위해 목숨 따위에 아랑곳하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멋진 기개라면서 고려에 이만한 장수가 또 어디 있겠냐며 그의 마음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잡혀 온 고려의 지휘관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거란의 신료들도 낯빛이 엄숙해진다. 여러모로 드라마에선 야율융서가 더 잔혹한 인물로 각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38] 9화에서는 그가 사지를 토막내어졌다고 언급된다.[39] 다만 귀주대첩은 퇴각하는 거란군을 상대로 벌인 것이고, 그마저도 김종현의 1만 기병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대회전으로 거란군을 섬멸했기에 재침공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 전투에서 거란군의 최고 친위대를 포함한 정예군 90%가 박살났는데 이러한 전투는 보기 드문 일이다. 또한 드라마 상에서는 강감찬이 강조를 현종 앞에서는 옹호했지만, 실제 역사 및 원작 소설에서는 몽진을 주장하면서 오늘의 일은 죄가 강조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40] 실제 역사와 동일한 부분이다. 다만 현종이 강조를 거론해 내쫓은 것은 작중에서는 끝까지 철면피로 나오는 탁사정에 대한 분노와, 명분 운운하며 뻗대던 탁사정에게 장단을 맞춰준 것에 불과하다고 묘사된다.[41] 강조가 목종의 서신이 김치양의 속임수인 줄 알고 진군을 망설였다가 목종이 승하했다는 소문을 사실로 믿고 김치양을 처단하기 위해 진군했다가 목종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황제의 명 없이 군대를 일으킨 반역을 저지른 꼴이 되어버려 목종을 폐위시킨 걸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42] 심지어 적대국인 거란에서도 김훈과 최질을 두고 강조보다 훨씬 못하다고 평가한다. 뭐 이들이야 강조의 능력과 비장한 최후를 직접 보고 겪은 입장이니 그를 높게 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43] 거란군이 가까이 올 때까지 수동적으로 방어하다가 능동적으로 공격하게 될 거란군이 방심한 틈을 타, 허점을 노려 검차로 기병들을 상대하는 식이다. 그렇게 기병들을 후퇴시키고 보병대를 무찌른 후 철기와 후미의 보병을 투입하거나, 고려군의 경기병을 좌우위의 기병들을 포함하여 집결시키는 등 드라마보다 더 상세하게 전술이 나온다.[44] 한편 그의 최후 직전에 야율융서가 훌륭한 수레진으로 거란군의 공격을 여러번 잘 막아냈는데 패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묻자 전장에서의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생각하며, 패전의 책임은 완벽한 검차진이 뚫릴 리가 없다는 자신의 교만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야율융서는 앞으로 신하로서 공을 세울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고 자신과 함께 천하를 움직여보지 않겠냐고 회유하나 강조는 고려 사람으로서 거란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거부한다.[45] 드라마에서는 강조가 잡히자마자 다들 도망가지만, 원작에서는 야율적로의 우피실군 부대에 의해 사로잡힌 그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부대도 있었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야율융서의 분노에 의해 직접 참살당하였지만, 원작의 야율융서는 강조의 기개를 두고 멋지다면서 높이 평하며, 그의 마음을 닮고 싶다는 말도 한다.[46] 인물 소개는 조연으로 다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최후를 맞이하는 8화까지는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이었다. 같은 시대를 다룬 2009년 KBS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에서 최재성이 연기한 강조발해 유민 출신으로 천추태후가 어릴 때부터 그녀를 돌봐주며 그녀를 짝사랑하게 되고, 충성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다 김치양 몰락 이후 천추태후와 함께 거란에 맞선 창술의 신으로 실제 역사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물로 묘사되었다. 천추태후의 인물들의 해석은 그냥 정규 사극이 아닌 대체 역사 정도로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47] 목종 시기는 김치양과 유행간 같은 권신들이 태후와 왕의 권한을 앞세워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빴던 시기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48] 다만 이 부분은 현종이 차기 왕으로서의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제왕학까진 아니더라도 왕족은 일정수준의 교육을 받는데 현종은 왕이 되기 이전까지 절에서 틀어박혀 지냈다. 아무 교육조차 받지 못한 현종이 함부로 나라를 망칠까봐 그걸 참지 못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아들을 낳아 그 왕위를 물려주라 한 것을 보면 확실하다. 참고로 드라마에서는 현종에게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군을 통솔하던 것과는 달리 원작에서는 겉으로는 여유롭게 압록강의 참게가 맛있다는 등의 담소를 나누면서도 최사위의 무모한 작전에 의문을 표하는 등 은근히 조심하는 면모를 보인다.[49] 상당히 파격적인 장면이다. 당시의 고려는 외왕내제를 표방했기에 내부에서나마 군왕은 황제의 취급을 받으며 신성시되었다. 황제를 옹립한 제후에 불과했던 동탁과 조조는 물론이요, 중국사와 국사를 통틀어 재상 격의 인물이 군주를 앞에 두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성질을 내고 군주를 겁박한 예는 거의 없다. 권신이 황제로부터 그 지위를 빼았더라도 형식적으로는 예우해주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다.[50] 역설적이게도 이런 강조의 모습은 작중 강조 본인은 권신이 될 생각이 없는데, 권신으로 전락한 스스로에게 자격지심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의 권신들은 오랫동안 임금을 이용해먹기 위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임금이 뭐라고 힐난을 하든 뻔뻔하게 넘겨버리기 마련이다. 권신이라고 욕해도, 그게 목적이고 권신이라고 불려도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중에서 강조는 고려에게 충성을 하고픈 신하였지만 반역자에 권신이 되었고, 이런 자신의 상태를 현종에게 지적당하니 울분이 터진 거다. 만약 강조가 권신이 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현종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을 때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51] 전왕 목종이 가장 못하던 일이며 실각의 원인이 되었던 일이라 강조 입장에선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52]고려사》에서 거란군에게 패배한 이후 자신을 보며 일갈하는 목종의 혼령에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잘못을 빌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를 보면 강조가 목종 시해에 대해 마음 한 구석에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실제로 정변 이후 대신 중 한 명인 최항이 "옛날에도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 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일갈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53] 재밌는 것은 이원종이 황산벌(영화)평양성(영화) 영화에서 연개소문을 연기했다는 것이다.[54] 물론 둘의 기량과 성과는 천지 차이이다. 연개소문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 고구려를 침공한 모든 외적을 물리치며 나라를 지켜냈지만, 강조는 직접 출진한 통주 전투에서 대패해 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러니하게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계속 권력을 잡다가 죽고 난 뒤, 그 아들 대에 장남인 연남생이 적국인 당나라에 귀부하는 등의 막장 행보를 보이는 등, 지속되는 외세의 침략으로 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일어난 내분으로 비교적 허무하게 멸망해버리고, 고려는 강조의 빠른 퇴장 이후 멸망 직전까지 몰리지만 이를 극복하고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상반된 결과는 연개소문의 개인적 기량이 강조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는 점도 있지만, 모든 권력을 쥔 자신이 갑자기 죽어 없어지더라도 뒤를 맡길 수 있는 훌륭한 리더가 있었느냐의 여부도 크다. 강조의 뒤에는 강감찬현종이라는 걸출한 리더가 있었으나, 연개소문의 뒤에는 그를 이어 나라를 휘어잡을 카리스마성이 있는 군주나 리더가 없었다.[55] 이원종은 전형적인 장사 체격에서 나오는 위압감과 낮은 저음이 연기력과 섞여 황제를 압박할 때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다.[56] 현종에게 출정 전 도끼를 하사받는 장면과 야율융서에게 굴복하지 않고 최후를 맞는 부분의 연기력이 특히 고평가 받는다.[57] 혹은 죽은 뒤에 저승에서나 다시 보자는 중의적인 표현도 담겨있다.[58] 아이러니 하게도 강조 본인이 그 명분을 만들어준다. 한편, 이 대사는 이원종이 영화 황산벌연개소문 역을 하면서 내벹었던 말(전쟁은 정통성 읎는 놈들이, 정통성 세울려고 하는 기야야!)이나, 바로 전작인 태종 이방원에서 작가가 이방원을 통해서 표현했던 대사("권력은 욕망이다. 명분은 그 욕망을 실현시킬 만한 힘이 생겼을 때 내세우는 껍데기일 뿐이다.")와 비슷하거나 직관적으로 풀었다는 평가가 많다.[59] 여담으로 이런 배우 개그는 용의 눈물에서 이숙번 역을 맡았던 배우 선동혁이 나중에 이지란 역을 맡았던 정도전에서 배우 조순창이 연기한 이숙번을 만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고 한다거나,(선동혁과 조순창은 이후 태종 이방원에서 재회하며 선동혁은 정도전에 이어 또 한번 이지란으로 나와 말년까지 다루었고, 조순창은 주인공 이방원의 손윗형이자 정적인 이방간을 연기했다.) 무인시대에서 이의방 역을 맡은 배우 서인석숙흘종 역을 맡은 대왕의 꿈에서 비록 음성이 음악에 의해 묻혔지만, 일종의 이스터 에그처럼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 대사를 치는 장면 등이 있다.[60] 극중 강조가 정변 전후로 주변인에게 하는 말로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만 그래도 고려를 위한 애국과 충정으로 살아간다는 본인의 신념을 함축하는 대사다. 정변 직전 양규에게 흥화진을 지켜달라는 당부와, 자신에 대한 이전의 신뢰를 저버리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듣고 고민하던 양규가 자신은 그저 장수로서 싸우고 지키는 일에만 충실한다고 답했을 때 이와 같이 말했고, 현종 즉위식 축하연 때 강조가 자신을 따라달라고 재상들에게 요구했을 때 최항과 채충순이 정변에 대한 반발심으로 재상으로서의 책무만 다할 거니 그 이상은 바라지 말라고 일침을 놓자 이에 위와 똑같이 말한다.[61] 그리고 이는 2차 여요전쟁이 끝난 직후의 시점에서 대부분 맞는 모습을 보였다. 짧은 혜안으로 조정을 들쑤시고 미미한 통찰력으로 군정을 뒤흔들고 있다는 소리는 호족 척결 정책으로 인한 관료들의 분열과 탁사정에 대한 관용 등으로 신상필벌이 흔들리는 것을 뜻하며, 입안의 혀처럼 구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이 나라를 망치고 싶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장연우가 간신은 아니지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무관들의 녹봉이 빠져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음을 뜻하고, 후사를 보는 그 쉬운 일은 원정황후의 유산으로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결국 이로 인해 기존에 원정황후, 원화황후와 김은부의 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씨앗이 된 데다 충직했던 장수가 반역자가 되는 것은 이후 김훈과 최질의 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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