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0:20:10

대왕 세종/등장인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대왕 세종
1. 개요2. 주역3. 왕실
3.1. 국왕3.2. 후궁 및 세자빈3.3. 왕자, 공주들
4. 외척5. 집현전6. 조정 대신들7. 무관들8. 궁관(宮官)들9. 고려 부흥 세력10. 몽고11. 명나라12. 여진족13. 일본14. 그 외

[clearfix]

1. 개요

KBS 대하 드라마 대왕 세종의 등장 인물을 다룬 문서.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부득이하게 하차했거나 가상으로 설정한 인물들이 있다.

2. 주역

3. 왕실

3.1. 국왕[20]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문종(대왕 세종)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2. 후궁 및 세자빈

3.3. 왕자, 공주들

4. 외척

5. 집현전

전하, 우린 말이지요. 우린 여전히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수와 더불어 세종의 심복. 초반은 예문관 응교 벼슬을 지내고 있었다. 충녕대군이 우연히 만난 인물로, 처음에는 그저 시정잡배 술고래인줄 알았으나 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을 버리고 나왔음에도 조선과 그 백성들을 향한 마음만은 남아있어서 혼자서 조선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인물이었다. 신분을 숨긴 충녕과 함께 다니며 문제를 해결하고 다니다가 다시 관원이 되었다. 충녕의 능력을 알아보고 큰 뜻을 품으라며 계속 몰아붙여 세종이 왕이 되기로 결심하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한다. 본인 또한 능력이 출중하여 대제학의 자리까지 올라 세종 옆에서 큰 활약을 한다. 또한 술을 좋아하는 주당으로 개그 캐릭터의 이미지도 있는데, 술을 하도 마셔 보다 못한 세종이 소주잔 정도 되는 크기의 은잔 하나를 내 주며 '이걸로 하루에 세 잔만'이라며 음주를 제한시키기까지 한다.[33] 결국 술이 원인이 되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세종에게 숨기고 혼나면서까지 무리하다가 결국 병이 악화되어 세종이 곁에서 자는 사이에 숨을 거둔다. 윤회 사후, 윤회가 1년 이상 투병해 왔음을 뒤늦게 안 세종은 그를 질책했던 지난날을 크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윤회가 제에 올릴 술은 세종이 자신에게 술을 줄이라며 주었던 작은 잔을 올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세종은 유언을 물리치고 큰 잔을 올리게 한다.
당대는 언제나 난세, 전하와 또한 소신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난세를 건너왔습니다. 허나 소신은 끝내 당신이 만든 문자. 그 문자를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 헌신만은 인정합니다. 설령 후대가, 또한 역사가,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리다 그리 판단한다 해도, 오늘의 저는 당신께 집니다. 육신이 무너지고 종당엔 눈을 잃을 지경까지 내몰리면서도 헌신을 멈추지 않았던 당신의... 이 나라 조선에 대한 당신의 그 헌신에 지는 것입니다...
성균관-집현전 라인의 주요 멤버로 처음에는 기존 조정 신료들, 즉 기득권층과 대립하며 후반에는 의견 차이로 정인지와 갈라져 세종과 대립한다. 김종서와 더불어 집현전 출신 중 조말생을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었으나 장영실 건으로 조말생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고, 조말생 역시 그의 기질을 알아보곤 그를 끌어들여 세종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라고, 오히려 조말생을 뇌물사건으로 끌어내리고 자기가 주도해서 세종을 공격하는 자리를 꿰차는 기가 막힌 정치력을 선보이며 악역에 등극한다. 고집 세기로는 둘째가면 서러운 인물로 그의 행동엔 늘 자기만의 철학과 이유가 있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말이 안 통하는 꼴통. 집현전 부제학을 역임하며, 세종의 한글 창제에 격렬히 반대했으나 최종화에서 마지막으로 설득차 세종을 찾아왔으나 자신을 항상 세종을 보필한 내관 엄자치로 착각하며 못알아보면서도 몸에 좋은 보약과 함께 덕담을 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세종이 눈이 먼 상태에서도 문자 창제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이 모시던 왕이 스스로를 맹인으로 만들어가면서도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그의 문자 창제에 대한 진심과 희생에 감복하여 조용히 사직한다. 사직서를 두고서 퇴장하는 장면에서의 최만리의 독백은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명장면이다.
열망입니다. 아버님의 열망. 그 위로, 할아버님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의 열망이 켜켜이 쌓이고 있는 것입니까?
신장의 아들이자 윤회의 손주사위. 성삼문과 함께 세종의 문자창제를 도운 주요 인물로 나온다. 자세한 행적은 항목 참고.

6. 조정 대신들


* 맹사성: 안대용[49]
29화에서 태종이 선위를 위해 유정현을 영입한 뒤,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입궐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낙천적이고 푸근한 성격으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마다 중재하며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치가보다는 관료에 가까운 캐릭터.[50] 단, 조말생 체포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했다. 특히 이수에게 "군부... 다른 수장들 알기 전에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겠나? / 조말생, 잡아들여! 지금 당장!"이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압권.

7. 무관들

8. 궁관(宮官)들

9. 고려 부흥 세력

10. 몽고

11. 명나라

12. 여진족


13. 일본

14. 그 외



[1] 세종 역의 김상경과 마찬가지로, 장영실에서 다시 태종역을 맡는다 그리고 JTBC 나의 나라, KBS 태종 이방원에서는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할아버지인 이성계 역을 맡는다.[2] 양녕대군 역할의 박상민과의 관계는 정말 재미있게도 둘 다 김두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김영철은 야인시대에서 장년 김두한을, 박상민은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을 각각 담당했다.[3] 세자에게 붙어 권세를 취하려 했던 민무휼과 민무회를 숙청한 뒤 양녕에게 신하에게 쉽게 마음을 주고 벗 삼는 것은 군왕이 누릴 호사가 아니라는 말을 양녕에게 남겼다.[4] 세자로서 가뭄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기우제를 지내지 않고 해결책을 찾고자 식음을 전폐하다가 쓰러진 충녕에겐 수라상을 가져다주면서, "백성들 다 굶어죽게 생겼어도, 형제를 죽이고, 벗처럼 아끼는 신하를 내치고, 내자의 가슴에 대못을 치고 와서도, 그 지경이 되어서도... 입안으로 밥을 욱여넣고 잠을 자야하는 염치없는 사람들이 군왕"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5] 애초 이미숙이 낙점되었으나 고사했다.[6] 실제로 용의 눈물이 방영된지 10여년만에 원경왕후로 재출연한 것. 특히 조선 건국 전의 젊은 시절부터 연기해야 하는 용의 눈물에서와 달리, 태종 이방원의 즉위 후부터 연기해야 하는 대왕 세종에서의 출연인 셈이다. 현실 시간이 반영된 싱크로까지 어느 정도 일치.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표기 상으로는 '특별출연'이다. 한편, 명성황후에서 중도 하차한 이미연의 뒤를 이어 명성황후를 연기했다.[7] 과거 어린아이 시절의 경녕군과 효빈 살해를 사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자신이 폐서인 될 것을 각오하는데, 태종은 민씨를 폐비하는 대신, "지아비로서는 당장 폐서인시켜버리고 싶지만 군왕으로서는 남겨둬야겠으니 가서 국모 노릇 착실히 하라"고 일갈해버린다. 태종이 자기가 연루된 사건을 민무휼과 민무회의 토지 착복과 엮어서 동생 둘을 대신 숙청하는 것으로 묻어버리려는 것을 깨달은 민씨는 절규하면서 막으려 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고, 원지로 보내지는 두 동생들에게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면서 절규할 수 밖에 없게 된다.[8] 병세가 심각했기 때문에 전염을 피해 문 앞에 금줄을 걸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민씨가 절간에 머물면서 요양을 하고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온 사람들이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왕족이 절에 간다니 말도 안된다며 극렬히 반대한다. 하지만 세종은 계속 반대와 효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이성을 잃고 상왕의 명령과 왕후의 제지조차 물리치고는 통행금지 표시로 걸어놓은 금줄을 끊어버리고 직접 노모를 들쳐업고 혼자서 절로 떠나 어머니를 간병한다. 이때 "아무도 과인을 막지 못한다"라고 선언하며 제대로 이성을 잃은 세종의 광기어린 모습이 압권이다.[9] 태종도 중병을 앓고 실권도 거의 다 잃은 시점이었다.[10] 명성황후에서 어린 고종 황제를 연기했다.[11] 여진족 정벌 사건 때 막장의 정점을 찍는데, 제 아들을 낳아놓은 멀쩡한 세자빈과 어머니인 원경왕후 앞에서 '세자빈을 내치고 어리를 빈 자리에 앉힐 의사도 있다'는, 일국의 미래를 책임질 세자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망언을 내뱉는 것도 모자라 '건방지게 개기면서 서방 가르치려는 건 어마마마랑 아주 빼다박았다'는 아들로서도 실격인 망발을 지껄인다. 안그래도 몸이 좋지 않았던 원경왕후는 이 사건으로 제대로 충격을 받아 아예 졸도해버리고, 삶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버린다.[12] 황희는 양녕에게 폐위당하고 싶지 않으면 유정현이 돌아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도발을 유도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기 전에 태종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라 충고했으나 양녕은 모르는 일이라고 끝까지 잡아뗐고, 결국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았다.[13] 그러나 태종은 화통군이 파견된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유정현을 경차관으로 보냈던 것은 '충녕이 역모를 꾸미고 있는가'가 아니라 '파견된 화통군이 양녕이 보낸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아들 충녕대군과 최측근인 강상인이 역모를 꾸밀 자가 아니라는 건 태종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세자가 왕의 눈을 피해 수천에 달하는 군사를 어명도 없이 차출한 것도 모자라 전쟁까지 일으키려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세자의 입지가 땅에 떨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 결국 이번 사건에서 가장 불안에 떨고 있던 것은 양녕 본인도 아닌 태종이었다.[14]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온행을 다녀오도록 설득했다. 물론 나이어린 성녕이 이런 일을 알았을 리는 없고, 온행이라도 다녀와야 한다는 어의의 말을 믿고 어머니가 낫기를 바라는 효심으로 태종에게 간청해 한 일이었다.[15] 어리와 양녕의 관계를 까발리는 비방이 궁궐 전체에 나붙자 양녕과의 관계에 대해 심온과 거래관계에 있던 어리는 처음엔 심온이 고변한 것인가 의심했지만, 이후 태종이 포기하도록 양녕이 스스로 비방을 붙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양녕이 충녕에게 국본 자리를 주고자 스스로 저위를 내려놓았다는 야사를 어느정도 반영한 셈.[16] 결국 분노가 폭발하여 제 손으로 양녕을 퇴출시켰으나 그렇게 분노할 만큼 기대를 걸었던 아들이었기에 태종은 홀로 휑한 양녕의 방에 주저앉아 통곡하기도 한다.[17] 정확히는 심온 사사~태종 사망 즈음에 전염병으로 인해 하차했는데, 배우 본인도 이 일을 '흑역사'라고 평하기도 했다.[18] 심지가 굉장히 강한 인물이다. 자신의 시부인 태종은 외척 세력을 막아 왕권 강화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결국 집안이 반역죄로 풍비박산나고 아버지는 사사되고 어머니는 노비가 되었다. 딸 정소공주는 심씨의 어머니를 축하해 드리겠다고 약속한 아버지를 빗속에 하루종일 기다렸지만 정작 세종은 장영실 벼슬 부여 사건으로 인해 가지 못했고 공주는 이 일을 계기로 병에 걸려 죽음을 맞았다. 어머니 입장으로서 보면 세종의 행동은 가족보다 신하를 더 생각한다는 분노가 생겨서 거리를 둘 만한데 끝까지 부군 세종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19]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같은 방송사의 태조 왕건에서 종간 역을 맡아 당시 궁예 역할을 맡은 김영철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 김영철태종 이방원 역을 맡아 또한번 군신관계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배우 김갑수는 맡는 배역 대부분 자기 명에 못 살고 사망한 사망전대 캐릭터 비율이 많은데 황희는 90대까지 천수를 누린 인물이기도 하다.[20] 세종 이후에 국왕으로 즉위한 세자 이향과 진양대군 이유도 언급한다.[21] 특별출연으로 나왔다.[22] 제국의 아침에서 고려 혜종 역할을 맡았고, 이 드라마의 초반과 비슷한 시기를 그린 <태종 이방원>에서는 조준을 맡았다. 여담으로 현재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 중 몇 안 되는 고인(故人)이다.[23] 재미있게도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5남 광평대군 역을 맡았다. 한 번 더 사극에서 왕자 역을 맡으면 왕자 전문 배우가 될지도.[24] 실제 세조는 소헌왕후와 세종이 죽고 뒤이어 형인 문종마저 죽은 이후에야 야심을 드러내 피를 부르면서 왕권을 차지하게 된다.[25] 명성황후에서 미치코를 연기했는데, 원경왕후 민씨 역의 최명길과 애증의 관계라 할 수 있다.[26] 원경왕후가 과거에 효빈과 꼬꼬마 경녕군을 암살할 것을 사주했다는 충격적인 비밀도 밝혀졌다.[27] 실제로는 세종 사후 세조 때까지 생존한다.[28] 왕과 비에서 김자원 역,야인시대에서 박인애 오빠 역, 대조영에서 의 황자인 이현, 근초고왕에서 위례공 부여민을 연기했다. 장영실에서는 최만리 역으로 출연했다.[29] 하필 이 때 세종은 장영실의 승차 문제로 신료들과 대립하며 단식을 선언하고 칩거해버리는 바람에 정소와의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없었다.[30] 명성황후에서 조영하를, 대조영에서 흑치상지를 연기했다.[31] 이에 태종이 왕후를 불러 따지자 "그러게요. 내가 어쩌자고 당신같이 신의도 뭣도 없는 사람 약속을 믿고 그런 짓을 했을까요"하며 오히려 분노한다. 젊었던 민씨는 태종의 '평생 함께할 내자이자 동지이니 평생 함께하겠다'라는 약속을 믿었는데 고작 자기 후궁이었던 김씨를 취하려고 자신을 버린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 일갈한다.[32] 원경왕후가 후궁을 죽이려했다는 사실이 공연히 밝혀진다면 왕후는 폐서인을 면치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왕후의 장남인 양녕의 세자 자리가 위태로워지기 때문. 태종에게는 당연히 중전을 폐할 의사도, 아끼던 양녕의 위치를 위태롭게 할 의사도 전혀 없었고,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었으니, 세자의 측근이었던 민무휼 형제를 제물로 낙인찍은 것이다.[33] 다만 나중에 밝힌 바는 세종이 준 그 술잔을 아예 넓혔다.[34] 명성황후에서 고종 황제를, 대왕의 꿈에서 백제의자왕을 연기했다.[35] 변계량이 조말생에게 매수되었다고 판단해서 다짜고짜 천문학에 대하여 토설하였는가를 따졌다가 내용은 1도 모르는 변계량에게 뒷덜미를 잡혀버리고 최만리에게 한소리도 들었다, 조말생이 주도한 파업에서 황희가 하급 관원들을 복귀시켜 국무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대신들은 필요없다는 현실성 없는 소리를 좋다고 말했다가 황희가 핀잔을 주기도 했다.[36] 명성황후에서 김옥균, 근초고왕에서 부여휘, 정도전에서 윤소종을 연기했다.[37] 여진족의 기습으로 인연을 맺었던 담이가 전사하자 분노하여 오랑캐 때려잡을 수만 있다면 악귀와도 손을 잡겠다고 하며 조말생과 북벌을 함께한다.[38] 대조영에서 이해고의 수하 장수인 설계두를 연기했다.[39] 과거에서도 문장으로는 장원에 이를만한 능력이지만 시험지에 이름 적는 걸 깜빡하고 제출하는 바람에 최하위인 동진사로 급제했고, 예조에서 일하면서 외교 문서에 대압(서명)을 깜빡해 허조에게 폭풍갈굼을 먹었으며, 황희가 파업에 동참한 허조를 복귀시키기 위해 신장을 대명 사신의 대표로 넣자 허조가 어이가 없어서 뒤집혀버리기까지 한다.[40] 공교롭게도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을 맡은 배우도 박철호. 대왕 세종의 이 사람과는 동명이인이다.[41] 작중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했던 집현전 관료들을 처벌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42] 심지어 저 호통을 들으면서도 세종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커녕 고개를 빳빳이 드는등 끝까지 세종을 기만하는 등 작중 최악의 인간성을 드러낸다.[43] 다만 최만리를 배신한 것은 최만리 자신이 세종의 문자 창제를 막기 위해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자신이 움직일 경우 조말생에게 직접 변고하라고 김문에게 시킨 것이다. 즉 최만리가 김문을 통해 조말생에게 자수한 것.[44] 무인시대에서는 이름만 뒤바뀐, 이의민의 장남 이지순을 연기했다.[45] 여진 올량합족의 임합라로 출연한 배우 강민석과 동명이인으로 1984년생.[46] 굳이 따지면 효령, 충녕의 스승이지만 효령이랑 함께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47] 옛 고려가 세운 영토를 증명하는 비석으로 조선은 고려를 이은 국가라는 명분으로 여기까지는 우리땅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찾아다녔고 명나라 동창은 여진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하려고 했는데 이를 인정해버리면 여진과의 회유가 실패되고 조선이 요동땅을 넘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48] 참고로 실제 이수는 병조판서에 제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중에 낙마해 숨졌다고 한다.[49] 대조영에서 의 재상인 장손무기를 연기했다.[50] 매우 현실적인 정치인의 면모도 보여서 중신들이 세종의 정책에 현실적인 이유로 태클을 걸 때 중론에는 동참하지만, 조말생의 단체 파업에는 동참하지 않고, 복귀한 황희를 빈청에서 가장 먼저 만나 환영하는 등 온건한 모습을 보인다.[51] 명성황후에서 사이온지 긴모치, 태조 왕건에서 왕건의 군사인 태평, 대조영에서 부기원, 광개토태왕에서 가렴, 대왕의 꿈에서 신라진평왕을 연기했다.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단역으로 백윤(실제 역사의 지윤에 대응)을 연기했다. 이 외에도 연평해전에서는 참수리 357호정의 갑판장 역을 맡았다.[52] "닥치고 내 말 들으세요"가 주된 화법으로, 이 말을 명나라 관원에게까지 뱉을 뻔했다.[53] 이때 대사가 일품인데, 허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54] 불멸의 이순신에서 교활한 노대신인 윤두수를 연기했다. 야인시대에서는 최동열 기자 역을 맡았고,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는 이영준 신부 역을 맡았다.[55] 그가 사술을 마다하지 않는 정객인 것도 있지만 본인의 능력 또한 작중에서 독보적일 정도로 뛰어나다.[56] 유배 갈 때 자신을 보러 온 최만리에게 "너네 집현전 똑바로 해 이 멍충아"라는 말을 넘긴 뒤 악당처럼 웃으며 퇴장하는 장면이 일품. 나중에 최만리가 그에 맞먹는 세종의 반대파로 흑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57] 후일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하륜과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이인임을 모티브로 한 이인겸을 연기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높고 가는 노인의 목소리인데 비해, 이인겸 역에서는 낮게 깔린 목소리를 주로 선보여 대비된다.[58] 용의 눈물에서는 이숙번과 동지였다가 적이 되는 회안군을 연기했었는데, 2차 왕자의 난 당시 이숙번이 선봉에서 자신의 군사들을 썰어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있었다.[59] 과거 왕자의 난 때 자신이 두려워 숨어 있을 때 술을 들고와서 자신을 북돋아주고 곁에서 지켜주겠노라 하던 옛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하며 망설이는 모습에 이숙번도 대충 눈치챈다.[60] 그러면서도 자신은 글렀으니, 자신을 대신해 세자를 데려갈 사람으로 이종무를 보내라고 추천하며 그는 왕권을 넘볼 그릇이 못된다고 말하며 자신은 스스로 벌을 택하자, 태종을 위해 떠나겠다 하자 태종은 슬퍼하며 고얀 놈이라고 욕한다.[61] 발로 차였는데도 망설이는 병졸들을 보면 그럼에도 이숙번을 병사들이 많이 존경한 듯 하다.[62] 명성황후에서 대원군의 오랜 벗인 김병학을 연기했다.[63] 나중에 대왕세종 나레이션을 김종성 성우의 뒤를 이어 담당했고, 장영실에서는 태조 이성계 역으로 잠깐 출연했다.[64] 충녕이 유배가 있는 함길도 경성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에 자신이 직접 가서 살펴보겠다 청했다. 이에 태종이 그를 불러 상방검을 주며 '충녕이 반란 모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참해도 좋다'는 명령까지 받았다. 하지만 막상 경성에 와보니 반란 모의는 고사하고 충녕이 아이들을 모아 옛날 이야기 책이나 읽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저런 한가한 역도가 세상에 어딨나'하면서 그 길로 돌아가 충녕이 역모를 꾸민다고 거짓 상소한 이천을 심문하며 그를 참수하려 하지만 자리에 나타난 충녕의 만류로 무산된다.[65] 불멸의 이순신징비록에서 권율 장군을 연기했다.[66] 근초고왕에서 위사대장군 막고해, 징비록에서 의 장수 이여송을 연기했다.[67] 다만 실록에 의하면 태종을 죽기 전까지 오랫동안(30년) 보필한 것은 맞지만, 실제로는 생원 출신으로 서제(상급 서리)부터 시작해서 순금사 대호군, 상의원 제조 등을 거쳐 병조참판이 된 인물이라고 한다.[68] 다만 이 일은 강상인에게도 정치 문제를 떠나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일본의 간자(간첩)가 연루된 사건이 터져서 수사를 진행해야 했는데, 태종의 방식을 아주 잘 아는 강상인은 이 일을 태종이 직접 처리할 경우 자칫 무고한 사람들까지 대거 휘말리는 유혈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태종이 아닌 세종에게 이 일을 보고하며 진언한 것.[69] 43회 초반 거열형을 시작하는 장면만 나오고 이후 자막으로 처형되었다고 언급한 뒤 퇴장한 것으로 처리했다.[70] 부검 현장에 태종이 직접 와서 신원을 확인하고, 본가에 장례비 명목으로 넉넉히 사례하라고 직접 명할 정도이다. 이 부하도 태종이 사가 시절부터 아끼던 자여서 즉위 후 왕실 경호부대인 내금위에 넣어준 것이다.[71] 용의 눈물에서 이숙번, 불멸의 이순신에서 여진족 장수인 맛니응개(...), 대조영에서 당나라의 이적을 연기했으며 정도전태종 이방원에서는 이지란 역을 맡았다.[72] 태조 왕건에서 금강 왕자, 불멸의 이순신에서 무의공 이순신을 맡았으며 대조영에서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승사, 정도전에서 조준을 연기했다.[73] 그래도 처음에는 작중에서 양녕대군이 화약 무기에 관심이 많아 이래저래 투자를 많이 해줘서 양녕은 충녕만큼 좋아했다.[74] 그래서 외부 사람들은 장영실을 거진 최해산네 종놈으로 취급한다.[75] 다만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은 작중에서도 어필하기는 했다 왜인들에게 납치 됐을 때도, 사람들이 않았던 이유가 평소에도 술을 먹고 길거리에 널부러져 잠든 거겠지하고 무시하다가 대처가 늦어졌다.[76] 대조영에서 고구려의 장수 온사문을 연기했다. 후속작인 천추태후에서는 유금필의 손자인 유방을 연기했다.[77] 이후 태종 이방원에서는 이화 역을 맡아 이성계 역을 맡은 김영철을 또 배신하게 된다.[78] 대조영에서 고구려의 장수 지명천을 연기했다.[79] 중군도총제 최윤덕은 세종 쪽 사람이다.[80] 같은 시기를 다룬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조말생역을 맡았다.[81] 후계자 자리를 탐낸 경녕군이 세자를 끌어내려는 속셈으로 형님 기 좀 세워주라고 이숙번을 부추겼는데, 고지식한 이숙번은 아무 생각없이 좋다고 수락한다.[82] 같은 시기를 다룬 용의 눈물에서 이방간의 아들 이맹종 역을 맡았다.[83] 선덕여왕에서 10화랑 중 한 명인 임종을 연기했다.[84] 해수에게 들켜서 죽기 직전까지 갔지만 해수의 음모를 발빠르게 조선 측에 알려 역으로 해수를 없애버린다. 해수가 간첩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명나라 사신 신분인데 죽여버리는 바람에 황희와 조정 대신들이 골머리를 앓는데, 풍개가 죽은 해수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면서 자기가 직접 처단한 것으로 주작한다. 왕진이 아무리 배신했어도 그렇지 다짜고짜 없애버리면 어떡하냐고 뭐라하자 배신자에게 죽을 자리까지 찾게 해줘야하냐며 뻔뻔하게 응수.[85]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호위무사인 날발 역을 맡았다. 본작에서도 비슷하게 세종의 호위무사 기믹으로 출연. 한국사의 문무(文武) 양대 최고의 위인들을 모두 호위한 먼치킨 호위무사[86] 장영실에서 이순지를, 태종 이방원에서 강상인을 연기한다.[87]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 12척을 빼돌리는 배설을, 명성황후에서 고종 황제를 모시는 이 내관을 연기했다.[88] 넉넉하게 넣었다는 것으로 보아 은자로 보인다. 하지만 상선은 이를 상왕전 앞에 고이 내려두고 옛 주인께 큰절을 올리며 퇴장한다.[89] 명성황후에서도 명성황후의 지밀 홍 상궁 역으로 나왔는데, 여기서는 원경왕후의 지밀 상궁으로 나왔다.[90]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민무구 역을 맡았다.[91] 이 과정이 좀 그런데, 하도 회상 속 충녕의 이미지 때문에 잠도 못 이루다가 밤길을 가는데, 느닷없이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다행히 무사히 도착해 진실을 어느정도 알렸다.[92] 같은 시기를 다룬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세종의 장인인 심온 역을 맡았다.[93] 드라마 장영실에서는 정인지 역을, 태종 이방원에서는 조사의 역을 맡게 된다.[94] 대조영에서 의 장수인 부복애, 징비록에서 유조인을 연기했다.[95] 실제 황엄은 한족 출신이다. 원래 영락제가 연왕일 때부터 내관이었던 자로, 무려 3대가 지난 정통제 때의 환관이란 주장은 근거가 없다. 초기 명나라의 환관 중 조선 출신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므로 차라리 가상 인물로 설정했다면 좋았을 것이다.[96] 원래는 6회 분량의 단역이었지만 최후반까지 출연했다고. 배우의 중국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으로, 이 탓에 대사가 많은 편이다.[97] 드라마 주몽에서 현토성 태수 양정의 무사인 '동선' 역을 맡았다.[98] 처음에는 중국어만 했지만 나중엔 국익을 위해 조선말을 배웠다는 설정이 붙으며 뻔뻔당당하게 조선말을 쓴다.[99] 명성황후에서 최익현, 징비록에서 재상 정탁 용의 눈물에서 이래, 태조 왕건에서 도선 대사, 그리고 드라마 야인시대염동진을 연기했다.[100] 태조 왕건에서 박술희, 야인시대에서 조병옥을 연기하였으며 대조영에서는 흑수돌 역을 맡았다.[101] 어학자로 여러 나라 말에 능통하다 보니 당연히 조선말도 잘 한다.[102] 진헌녀로 영락제의 후궁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한확의 누나 여비 한씨가 모티브이다.[111][103] 대조영에서 의 명장 조인사를 연기했다.[104] 같은 시기를 다룬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처남이자 세종의 외숙인 민무구 역을 맡았다.[105] 대조영에서 퉁소 역을 맡았다.[106] 대조영에서 돌궐의 장수 퀼테긴 역을 맡았다.[107] 황산벌평양성에서 당 고종역을 연기했다.[108] 야인시대에서 문영철 역을 맡은 그 배우 맞다.(...) 그 덕분에 대마도 정벌 편 한정으로 김두한과 문영철의 대결이라는 배우개그가 성립했다.[109] 당시 활동명 민지[110] 물론 노비가 되어 고생하고 사대부 부인들에게 괄시당하는 모습은 재현 오류일 것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애초에 태종이 이런 일이 없도록 조처한 기록이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74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74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11] 한확의 동생은 선덕제의 후궁이 된다. 한확은 팔아먹을 게 없어서 누이들을 팔아먹고 온갖 부귀영화 등 누릴 거 다 누리다가 객사. 딸이 인수대비, 외손자가 성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