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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7 12:42:30

박용수(배우)

파일:external/img2.sbs.co.kr/WE83747525_w666.jpg
성명 박용수(朴鎔秀)
출생 1956년 2월 15일 ([age(1956-02-15)]세)
경상남도 부산시
(現 부산광역시)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 / 75학번 / 학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 / 석사)[1]
데뷔 1978년 극단 '연우무대' 입단
가족관계 아내, 슬하 1남 1녀

1. 개요2. 일생3. 출연작 목록
3.1. 연극3.2. 드라마/시트콤3.3. 영화3.4. 오페라
4. 수상 경력5. 여담6. 출처

1. 개요

대한민국배우.

2. 일생

1956년 부산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선장을 거쳐 도선사로 정년까지 일했다. 경남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서울대학교 성악과로 진학했으나 오페라가 형식에 치중되어 사회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회의감을 느끼던 터에 1976년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생애 처음으로 추송웅, 차혜영, 기정수 등이 나오는 연극 <해변풍경>을 보고 연기에 눈을 떴다. 1978년 3월 창고극장을 찾아가 연출가 이원경(1916~2010)이 지도하는 화술워크숍에서 3개월 배우고 12월 실험극장 제8기 연구생으로 들어가 윤호진이 지도하는 워크숍 작품 <긴 귀항 항로>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연극 수업을 거쳐 복학 후 서울대 총연극회에 들어가 연극 활동을 했으나 학교 측의 방해로 잘 안 되다가 가정대학에서 최종률 연출의 <기적을 만드는 사람>에 참여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1979년 10월 연우무대 작품 <한줌의 흙>에 출연했지만 4학년이 된 1980년 들어 음악미학 공부를 위해 1년여 간 연극에서 손을 뗐다. 1981년 3월 결혼 후 9월 KBS <TV문학관>을 보다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 이해랑, 김동원, 이원경 셋이 만든 배우예술원 1기생으로 연극 공부를 다시 하고 연우무대를 비롯 국립극단, 현대극장, 성좌, 여인극장, 아리랑, 현장, 산울림, 배우극장, 한양레퍼터리 등을 돌며 <한씨연대기>, <변방에 우짖는 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오픈커플>, <아버지마다>, <세일즈맨의 죽음>, <고도를 기다리며>, <갑오세 가보세>, <노동의 새벽>, <붉은 방> 등 숱한 작품들에 나와 입지를 다졌다.

연기 커리어 면에서 장관, 사단장, 검사, 의사, 변호사 류의 지위 높은 역이 많으며 1986년 KBS <백마고지>를 시초로 특집극 위주로 나오면서도 여전히 홈그라운드는 연극이었고, 한동안 선역 위주로 안정된 연기를 주로 하다 1998년 영화 <여고괴담>의 폭력교사 오광구 역으로 악역을 처음 맡아 이미지 변신을 이루어냈다. 당시 폭행신은 학생 인권에 대한 불씨를 당겼다. 이것 말고도 <접속(1997)>, 연극 <미친키스(2000)>를 통해 '일탈자'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2011년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를 통해 데뷔 이래 처음으로 고향 부산 사투리 연기를 구사했다.

3. 출연작 목록

3.1. 연극

3.2. 드라마/시트콤

3.3. 영화

3.4. 오페라

4. 수상 경력

5. 여담

6. 출처


[1] 석사 학위 논문: Stanislavsky System에 나타난 신체적 행동의 방법 연구(1998)[2] 일본 후지 테레비와의 합작 드라마.[3] 악역으로 주로 나왔던 박용수는 여기에서는 힘없고 나약한 사람으로 나온다. 불멸의 이순신을 집필한 윤선주 작가의 또 하나의 작품인 대왕 세종에서는 악역으로 나왔다.[4] 한국영화아카데미 제3차 실습작.[5] 1984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6]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7] 한일 합작 영화.[8] 2020 울산국제영화제 출품작.[9] 우미화와 공동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