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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3:33:08

허조(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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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
2.1. 태종 시기2.2. 세종 시기
3. 여담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의 등장인물로 배우 김하균이 맡았다.[1]

2. 작중 행적

2.1. 태종 시기

태종 때 황희의 건의로 영의정으로 제수된 유정현과 예조판서로 제수된 맹사성과 함께 예조참판으로 제수되면서 처음으로 등장[2]하는데, 시작하자마자 함께 예조판서로 제수된 맹사성[3]에게 아래와 같이 한 마디를 갈구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
(궁궐까지 소를 끌고 온 맹사성이 소를 군관에게 맡기고 비청에 들어가려는 순간 등장했고, 그 군관은 소를 이끌고 자리를 뜬다.)

아직도 기행을 일삼고 계십니까? 아무리 도성을 떠나 한직을 전전한 지 오래라 하나 저런 비루한 가축을 관리하는 곳은 사축서[4]란 것도 잊으신 겝니까?

(맹사성 : 저 녀석(소)을 빈청으로 끌고 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대감!

(맹사성 : (빈청을 가리키면서)저기 저 곳하고 저 녀석들이 모여있는 짐승 우리하고 다를 게 뭔가? 시끄럽지. 당췌 뭔 소리를 떠들어대는지 알아듣기 힘들지.)

조정을 능멸하는 말씀! 듣기 거북합니다.

(맹사성 : 거북하면은 자네부터 그 음성 좀 낮추게나. 내 아무리 맹물이라 하나 불경한 휘하를 거느리는 것은 납득치가 않구먼.)

'휘하'라 하셨습니까? 허면... 혹... 대감께서?

(맹사성 : 내 자네가 참판으로 제수되었다길래 내 조금은 망설였지.(그러면서 먼저 빈청으로 들어간다.))

(허조는 맹사성에게 한 판 먹은듯한 표정으로 그가 간 방향을 본다.)

<대왕 세종> 29회 中

이후 태종 면전에서 대놓고 태종이 잠시 궁을 비운 사이 벌인 일[5]을 가지고 끝까지 간언을 하면서 결국 심기가 불편해 다같이 대전에서 쫓겨나왔다.

이를 두고 맹사성이 "그 목 붙어있는 거 진짜 용타! 허허…"라고 말하는데, 본인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영의정 유정현과 좌의정 박은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제가 뭐 틀린 말했습니까? 대체 전하께서는 왜 저러시는 겁니까?"라며 대놓고 뒷담까지 깠다! 유정현이 옆에서 "전하께서는 장자 세습을 고집하고 있으니 이해하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도, "아직도요? 아직도 그 안하무인을?"이라면서 비꼬았다.

그리고 세자(양녕대군)가 궁에 도착하자 다른 대신들과 마중하러 나갔는데, 세자가 대죄 대신 말을 돌려 혼자 다른 곳으로 떠나자, 이를 보고 유정현이 앞에서 한 말을 곱씹으면서 비꼬았고, 더 나아가 이수, 김종서, 정인지 등 하급 관원들이 심한 말로 세자를 비판하는 것을 뭐라고 꾸짖지 않고 고개만 끄떡인다.

2.2. 세종 시기

세종이 즉위한 이후 예조판서로 오래 있었지만, 그 특유의 기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 때 주로 당하는 인사는 집현전 학사로 있던 신장[6].

그러다가 태종이 병으로 몸져 누웠던 와중에 당시 조정의 실세라 할 수 있는 병조판서 조말생이 주도한 파업에 동참하자 태종과 세종의 부탁으로 조정으로 복귀한 황희가 55회에서 일부러 예조의 인사를 엉터리로 구성했고, 심지어 집현전 학사(직제학)인 신장이 허조의 집에 찾아와서 자신이 명에 가는 정기 사진인 하정사(명으로 가는 정기 사신)로 간다면서 그가 건네준 황희가 작성한 예조의 인사안에 놀라[7] 그야말로 미친듯이 화를 내면서 황희와 윤회와 이수, 하급 관리들이 있던 관청에 난입했다.[8] 그리고 아래와 같이 따지다가 황희의 역공에 할 말을 잃고 결국 복직해서 예조의 일을 다시 맡았다. 대노한 허조에게도 굴하지 않고 역공을 펼친 황희를 바라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윤회가 나중에 황희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고, 허조 옆에서 여러 표정을 지은 신장도 킬링포인트.
(빈청에 난입한 허조가 황희에게 다가섰고, 일어선 황희가 허조를 맞이한다.)

누구 마음대로 예조의 인사에 손을 대라 했습니까?

(황희 : 불만입니까?)

내가 해 놓은 인사에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황희 : 그럴리가 있나요? 빈청을 다 뒤져도 예판만큼 인사에 탁월한 재주를 가진 이는 없는걸요.)

헌데, (신장이 보낸 예조의 인사안을 내밀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사안을 보낸 연유가 뭡니까?

(황희 : 그야 물론 대감을 불러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선택을 하세요. 예판. 복귀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인사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대왕 세종> 55회 中

이후 57회에서 의정부 참찬 황희에 대한 서경권을 발동하고자 할 때 이에 반대하면서 중신들(특히 조말생)을 향해 한 아래의 발언도 일품이다.
난 반대에요. 서경권 발동, 당장 중지해야 합니다.

(조말생: 자중하세요, 예판.)

닥치고 내 말 잘 들으세요.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 황희를 잘라야 한다면 우리가 먼저 옷 다 벗어야 돼요. 젊은 날의 실수만 패륜이랍니까? 개인적 약점 악용해 정적을 자르려고 한 거, 이것도 관원으로써 저지르지 말아야 할 패륜입니다. 그렇지 않소이까, 병판?

(조말생: 황희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인사인지, 설명을 해야 합니까?)

그건, 빈청에서 머리 터지게 싸우면 될 일이에요. 일이 터지기도 전에 먼저 술수부터 부리려고 하니, 금상과 또한 젊은 관원들이 우리 중신들 모두를 꼰대 취급하는 겁니다. 위험천만하고, 한때 부도덕했다 해도 난… 황희는 꼭 중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허조는 조말생의 앞에 두루마리 하나를 놓는다.)

(조말생: …뭡니까, 이게?)

황희가 금상의 특명을 받아 만들던 인사안이에요.

(조말생: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반대에요. 이거, 아주 부실해요.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요. 허나, 이건 황희가 무능한 탓이 아니에요. 그만큼 조선에 인재가 없는 탓이에요. 나라 세운 지 30년… 오늘의 조선엔, 여전히 인재가 부족합니다. 지금 이 자리는 말이에요, 황희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서경의 자리입니다. 우리들은 적어도 능력 있는 인재를… 그것이 설령 '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인정할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대왕 세종> 57회 中

이후 명나라 예부상서여진 앞에서 "산 사람을 무덤에 생매장하는 짓이나 하는 나라는 대국이 아닙니다!"라면서 명의 순장 문화를 대놓고 지적하는 패기도 보였다.[9]

그리고 세월이 흘러 흰 수염이 나고 이조판서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 기질은 여전해 75회에서 한 노비가 억울하게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낙인찍혔음에도 지방 관원이 조사를 대충 마무리하고 보고를 올리자 이에 화를 내면서,
닥치고 내 말 잘 들어! 심정적으로 나도 옷을 벗고 싶은 심정이야. 인사 담당관[10]으로서 너같은 놈을 관직에 앉힌 게 수치스럽기 때문이야. 죄인이 누구건 상관없이 넌 파직이야. 왜? 관원(공무원)으로써 자격이 없으니까.

중앙에 보고할 땐 말이다, 특히 이런 살인사건 같은 경우에는 말이지.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사가 다 끝냈을 때 보고하는 것이다. 백성의 목숨을 최소한 네놈 목숨만큼 귀하게 여겨야 네가 관원 자격이 있다는 얘기야!

<대왕 세종> 75회 中

이렇게 또 일갈했다.

그러다가 윤회가 사망한 78회를 마지막으로 아무련 언급도 없이 하차했는데, 실제 윤회는 1436년에 죽었고, 다음 에피소드인 79회가 한글 창제 과정 등을 다룬 1441년을 다루면서 그 사이에 허조가 1439년에 사망[11]했기 때문이다.

3. 여담


[1] 이 사람도 KBS 대하드라마에 많이 출연한 인물인데, <왕과 비>에서는 박팽년, <태조 왕건>에서는 태평, <무인시대>에서는 김광립,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진린, <대조영>에서는 부기원에 출연했으며, 이 드라마 이후 <천추태후>에서는 최항(현종의 배향공신), <근초고왕>에서는 실성 마립간, <대왕의 꿈>에서는 진평왕, <징비록>에서는 양호 등을 열연했다.[2] 황희 자신은 공조판서로 내려갔는데, 이 안을 받아본 영의정 유정현도 놀랄 정도이고, 김한로와 민무휼, 민무회 형제가 이를 따지려 황희에게 달려들 정도였다.[3] 사실 맹사성도 한 성격을 하는 인물인데, 한직을 떠돌던 그조차 알 정도면 허조 역시 한 성격을 부려 그동안 한직에 머물었던 것으로 보인다.[4] 조선시대, 궁궐에서 가축의 사육에 관한 업무를 맡은 관청.[5] 당시 원경황후가 병이 든 바람에 요양차 태종과 원경왕후가 잠시 궁을 나온 사이에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자신의 업무 밖이던 군사권을 행사해 군사 수천을 이끌고 함길도 경성으로 달려가 여진족과 전쟁을 벌이려고 했다. 이에 공조판서 황희가 말리려고 했지만, 끝까지 세자를 포기하지 못하고 그와 행보를 같이 했는데, 이들의 행보는 당시 경성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던 충녕대군(후에 세종)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 실패되었고, 이에 영의정 유정현과 허조가 '황희의 파직'은 물론 여러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허조가 제일 심하게 반대했는데, 태종 또한 '장자 세습'을 고집하고 있어서 얼버부리고 있었다.[6] 우리가 잘 아는 신숙주의 아버지이다.[7] 아래에 링크를 건 허조의 유명한 발언이 그 가운데 나온 말이다. 사실 신장은 학문과 시서(詩書)에 있어서는 '예조 최고의 천재'이나 하나 행정 업무에 있어서는 늘 실수를 연발하던 '최악의 덜렁이'라서 그를 진짜 외교관으로 보내면, 그야말로 '나라가 망할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8] 이 상황도 웃긴 것이 황희의 심부름을 다녀오고 나서 허조의 험한 분위기를 전한 신장의 말에 그저 눈을 감고 손가락을 두드리던 황희가 "예판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면서 갑자기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그 말이 다 끝나기가 무섭게 허조가 난입했다.[9] 조선, 정확히 한반도는 신라 지증왕 이후로 엄연히 금지된 반면, 명은 작중 시점인 1420년대까지도 이어졌는데, 영락제가 죽을 당시 그의 후비였던 한씨(드라마에서는 장영실의 연인이던 한다영으로 각색)가 순장되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허조는 이를 가지고 맹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10] 예판에서 이판으로 바뀌었지만, 업무는 그대로 보았다고 한다.[11] 여담으로 맹사성도 78회에 하차했는데, 그는 허조보다 1년 먼저(1438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