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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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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
2.1. 어린 왕자, 정치의 현실을 깨닫다2.2. 왕재가 되기까지2.3. 마침내 왕좌에 오르다2.4. 끝없는 시련, 그 속에서 피워낸 애민 정신2.5. 한 사람의 눈먼 자, 만인의 눈을 뜨게 하다
3. 극중 묘사4. 명대사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의 주인공으로, 아역은 이현우, 성인은 김상경[1]이 열연했다.

2. 작중 행적

2.1. 어린 왕자, 정치의 현실을 깨닫다

어린 시절 스승 이수가 책을 불태우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 세상을 모르고 백성을 몰라 <대학연의>를 배울 수 없다는 스승 이수에게 "허면, 세상을 알면 될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며 내관인 장원과 함께 잠행을 나섰다가, 그만 왈짜패들에게 납치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조선 왕실을 무너뜨리고 고려 황실을 부활시키려는 고려 부흥세력이 충녕을 조정에 정치적 분란을 일으킬 씨앗으로 삼기 위해 그를 구출하고, 충녕이 몰랐던 세상의 진짜 모습에 대해 보여준다. 이때 충녕은 억압받는 삶을 사는 백성들이 부왕인 태종을 폭군[2]이라고 부르며 불만을 표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에 조정 신료들과 부왕과 의논하여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신문고를 치며 궁으로 복귀하나, 이것이 오히려 권신들에게 정치적으로 해석되면서 위기에 처한다.[3]

결국 태종이 충녕을 살리고 다시는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 내관 장원이를 충녕이 보는 앞에서 고문하여 죽이자, 큰 충격을 받은 충녕은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죽인 거 아니야, 마음 같은 거 안 써. 지가 못났으니까 지혼자 죽은거야."라는 말만 중얼거리며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이에 이수가 찾아와 일갈하자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린 후 장원이의 시신을 수습하고, 언덕 위에 올라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품으려면 자신의 사람됨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이수에게 질문하다. 그리고 세상에는 책에서 보았던 백성들은 없었고, 염치없고 덧없는 백성들만 있었다고 스승에게 고백하고. 그리고 그런 백성들의 모습이 마치 한 번도 부왕에게 애정을 받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과 닮아 미워할 수가 없었다며 이수에게 안겨 오열한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나 싶었으나, 외숙들인 민무구와 민무질이 충녕을 제거하기 위해 내관 엄자치를 겁박하여 충녕의 필체를 똑같이 배껴 세자를 비방하는 글을 써 궁궐에 붙이게 되고, 결국 또 죽을 위기에 처한다.[4] 그러나 이미 이들의 속셈을 파악한 태종과 세자가 충녕을 죽이는 척 하면서 역으로 민무구와 민무질을 추포하여 목숨을 건진다. 이후 외숙들이 유배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2.2. 왕재가 되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충녕은 어엿한 성인이 되고, 여전히 잠행을 나서며 백성들의 삶을 지켜보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억압받는 백성들을 보고도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쉽사리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점점 삐뚤어져가는[5] 세자와 부왕의 폭압적인 정책, 그리고 고려 황실 부흥이라는 명분으로 살인행각을 벌이는 고려 황실 부흥세력을 보다못한 충녕은 결국 다시 한 번 정치판에 나서기로 한다.

태종과 양녕대군에게 거침없이 직언을 하는 모습에 충녕은 세자파 대신들인 민무회, 민무휼, 김한로 등은 물론, 고려 황실부흥세력에게까지 정치적/물리적 위협을 받게 된다. 결국 장남이 태어나던 날 밤 고려 황실 부흥세력의 무비가 쏜 총통에 맞고 쓰러지게 된다.

이후 이 총통이 민무휼과 민무회의 집에서 발견되면서 세자와 민씨가문이 충녕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수사에 나선 충녕은 수사 과정에서 총통을 만들고 있던 장영실을 잡는다. 이후 장영실이 전향하면서 고려 황실 부흥세력의 배후에 있던 전판석과 옥환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세자에 대한 오해는 풀린다. 이후 고려 부흥세력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형의 방식에 불만을 품으며 또 다시 그와 대립하고, 고려 황실 부흥세력과 협상하기 위해 몰래 접선했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상황이 뒤집혀 오히려 충녕이 위기에 몰린다. 이후 부왕으로부터 고려 황실부흥세력의 2인자인 전판석[6][7]을 직접 베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처형식 당일이 되자, 조선 왕실이 고려 왕족들에게 충분한 사죄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군이 무도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때가 이들을 베어야 할 때 라며 이를 거부한다. 결국 이는 조선의 정통성을 조선의 왕자가 부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태종은 충녕을 북삼도로 유배 보낸다.

그러나 전일지[8]가 보낸 편지를 통해 고려 부흥세력이 범궐하여 아버지인 태종을 살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 말을 돌려 강상인과 함께 도성으로 돌아간다.

도성은 이미 관군과 고려 부흥세력의 싸움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비밀통로[9]로 가 궁궐에 잠입한 전일지와 마주한다. 전일지에게 조선에 대한 증오심을 자신에게 대신 물을 수는 없냐고 하지만,충녕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았던 전일지는 그에게 살아서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그때 무비가 나타나 어째서 적을 베지 않는 것이냐고 물으며 충녕에게 칼을 휘두르고, 결국 전일지가 이를 대신 맞고 사망한다.
결국 고려 부흥세력이 일으킨 쿠데타는 실패하고, 고려부흥세력의 수장인 옥환이 자결하면서 고려부흥세력은 소탕된다. 사태가 끝난 후, 왕실과 종묘 사직을 지키기 위해 돌아온 것이라면 죄를 사해줄 수도 있다는 태종에게 자신은 그저 인륜을 끊지 못하여 돌아온 것이며, 뜻은 변함이 없다고 대답한 후 다시 유배길에 오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천이 북삼도로 충녕대군을 찾아오고, 누더기 옷을 걸치고 수염을 기른 상태로 창으로 멧돼지를 잡는 후덜덜한 모습(...)으로 재등장한다.[10] 더 이상 정치나 세상과는 관심을 뗀 채 아이들에게 이야기책이나 읽어주며 살아가지만, 북삼도에 찾아온 윤회 등의 설득으로 태종이 온양행궁을 나선 사이 몰래 군사들을 움직여 요동 정벌을 하려는 세자를 이천, 최윤덕, 강상인 등과 함께 막아서게 된다.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세자에게 날 베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으나, 형님은 세자의 자격으로 역도를 베는 것이 아니라 형으로서 뜻에 반하는 동생을 죽이려는 것이라며 세자 저하, 저하는 이 나라의 역도입니다.라고 팩트폭력을 가한다. 이에 분노한 세자가 그를 베려고 하자 강상인이 이를 막고, 군사적인 대치 상황으로 이어질 뻔하나 이때 윤회가 북삼도 아이들을 이끌고 온다. 이후 북삼도의 아이들을 보고 마음을 돌린 세자의 군사들이 결국 전의를 상실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된다. 그리고 충녕이 환궁하게 되자 마을사람들은 물론 충녕이 책을 읽어주던 아이들까지 펑펑 울며 슬퍼하고, 충녕은 "담이는 목소리가 아름답고 명민하여 글을 쉬이 배울 테니 이제 이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것은 담이의 몫이다"라며 자신이 읽어주던 이야기책을 '담이'라는 아이에게 물려준 후 마침내 정든 경성을 떠나 한양 귀경길에 오른다.

한편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은 진노하여 이숙번, 이종무 등 세자파 신하들을 모조리 유배보내버리고, 이후 어리 사건까지 터지면서 결국 세자는 폐위된다.

2.3. 마침내 왕좌에 오르다

세자가 폐위되자 이제 누가 세자 자리에 오를 것인가를 두고 신하들이 파벌을 가르게 된다. 능력은 충분하나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한 경험이 있는 충녕을 쉽사리 세자로 선택하지 못하는 태종을 보고, 상왕 정종은 자신이 직접 충녕의 자질을 시험해 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자질 시험의 자리에서 충녕은 또 다시 조선 왕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한다.
이후 자신을 찾아온 맹사성에게 숙청이 없는 조선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였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런 답변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충녕의 뜻을 잘 알게 된 맹사성은 충녕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간언하고, 두 번째 자질 시험에서 마침내 충녕은 끊임없이 대화하여 타협해 나갈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마침내 시험을 통과한다. 때마침 양녕과 대화를 마친 효령 역시 왕좌에 대한 생각을 버리면서 드디어 충녕이 세자로 책봉된다.


그러나 그가 세자로 등극하자마자 가뭄이 들고, 왜구가 침탈하는 등의 재앙이 일어나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첫째가 아닌 삼남이 세자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하늘이 노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게 된다. 한편 충녕은 이러한 백성들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잠행을 나서면서 강연에 빠지게 되고, 이 때문에 충녕과 심온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박은이 이를 빌미로 세자의 자질이 없다고 태종에게 고하며 충녕에게 기우제를 시킬 것을 간언한다.
하지만 기우제를 했다가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이는 세자의 자질이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사실상 충녕을 정치적인 위기에 몰아넣으려는 박은의 속셈이었다. 이러한 박은의 저의를 눈치 챈 윤회는 박은을 찾아가 충녕이 즉위할 시 그에게 주요 관직을 주겠다고 포섭하려 하지만, 비겁한 수를 쓰기를 거부했던 충녕은 식음까지 전폐하고 서책 속에서 백성들을 구제할 방도를 찾다가 결국 쓰러진다.

쓰러진 충녕을 찾아온 태종은 백성들 다 죽게 생겼어도, 벗처럼 아끼는 신하를 내치고 내자의 가슴에 대못을 치고 와서도 입안에 밥을 욱여넣고 잠을 자야 하는 염치없는 사람이 군왕이라며, 상선 노희봉에게 밥상을 대령하라고 명한다. 그리고는 군왕은 곧 이 나라 조선이니, 함부로 옥체를 상하게 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긴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태종은 충녕에게 양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당연히 박은 등의 신하들은 시기상조라고 반박하고, 충녕 또한 양위의 명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던 중 드디어 비가 내리게 되고, 태종은 신하들에게 과인의 치세 올해로 18년, 호랑이 등 위에 그만큼 탔으면 됐다라고 말하며 설득한다.
그리고 태종으로부터 모든 악업은 이 아비가, 아비의 손으로 거둘 테니 너는 성군이 되라는 말을 듣고, 마침내 옥새를 받고 왕위에 오른다.

2.4. 끝없는 시련, 그 속에서 피워낸 애민 정신

그러나 왕이 된 세종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역시나 새로운 정치적인 압박과 시련이었다,
우선 대마도주 종정성이 조선에게 전쟁을 선포하며 약탈을 일삼자 대마도에 대한 처분을 두고 부왕 태종 및 그의 신하들과 갈등한다. 그 사이 태종이 심온을 숙청하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이들의 압박에 시달리던 세종은 어쩔 수 없이 심온의 체포 영장에 도장을 찍게 되고, 결국 소헌왕후와도 사이가 틀어진다. 이후 왜구가 무력 도발을 계속하자 태종은 종정성에게 왜인 간자들을 조선에 넘기지 않으면 직접 목을 벨 것이라고 경고하며,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결국 대마도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조선군을 승리를 거둔다. 이후 대마도를 식민지로 삼을지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는데, 이때 세종은 자신의 장인을 죽이는 데 앞장선 정적 박은을 끝내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 박은은 집현전에 합류하여 세종이 태종을 설득하여 대마도를 식민지로 삼지 않고 자치권을 인정하게끔 설득하는 데에 힘을 보탠다.

그러자 박은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조말생이 집현전과 세종을 향한 공세를 시작하고, 상왕 태종의 통수를 쳐 병권마저 회수하여 무시무시한 권신으로 등극한다. 이후 충격으로 쓰러진 태종은 얼마 안 가 승하하며, 집현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박은이 스스로를 희생하고 사직한다.[11]
조선에 천문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세종은 장영실을 명나라로 몰래 보내 천문 기기를 훔쳐 오라고 명령하고, 이 과정에서 조말생과 대립하며 또한 명나라의 경계를 사게 된다.
한편, 세종은 귀화한 여진족을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주겠다는 교서를 내리고, 여진족에게 시달리던 북삼도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광화문 앞까지 도달한 폭도들에게 세종은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렇게 백성들의 민심을 달랜다.
한편, 조말생은 세종을 폐위하고 경녕군을 옹립시키기 위해 한양 대화재를 일으켜 민심을 악화시킨다. 효빈 김씨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린 경녕군이 세종에게 모든 사실을 자복하고, 이후 수사를 통해 한양 대화재의 배후에 조말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종은 그를 몰래 납치한다.
세종 : 그 많은 재물이 왜 필요했나? 그대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사야? (멱살을 잡는다) 어디까지 갈 생각이었나? 그대에게 돈으로 벼슬을 산 자들은 학정에 주구가 되고, 허면 나의 백성은 굶주리게 된다. 알고 있나?! 안보, 안보, 안보! 그댄 안보란 패를 잘도 빼들고 과인을 겁박해왔다! 헌데, 헌데, 안보를 목숨보다 귀히 여기던 자가 북방에서 군사를 빼내려했다? 어떻게 돼도 상관 없다는건가? 그대가 용상을 훔치고 권력을 잡긴 위해선 이 나라가 망해도 좋으냐 물었다!
조말생 : 이 나라, 소신의 나라이기도 하옵니다. 안보, 특히 북방의 안보는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명국에서 반란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승하한 영락제의 아우이자, 황제의 숙부인 주고구가 그 수괴입니다. 적장 이만주가 그 자에게 붙었으니 이만주의 군사는 조선이 아닌 명국으로 향할 것입니다. (명나라와 여진의 내부 문제가 묘사된다.)
세종 : 과인에게 그대의 충심이 없는 것이 아쉽군. 이제, 그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라 보는가?
조말생 : 휘하들 앞에서 처형되는 것이 원이옵니다.
세종 : 충성 서약을 하고, 과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어떤가?
조말생 : 그럴 의사 없사옵니다. 전하가 생각하시는 나라와 신이 생각하는 나라는 너무도 다르옵니다. 휘하들 앞에서 처형해주십시오. 그렇게 일벌백계를 해야, 신을 따르는 자들이 다른 마음 먹지 않을 터, 내란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소신이 전하가 아닌 이 나라 조선에 바칠 수 있는 마지막 충심이옵니다.
세종 : 뜻대로 해주지.

이후 그의 장죄 규모를 들은 세종은 그대는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사냐며 분노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조말생을 살려주기로 결정한 뒤 그를 유배 보낸다.
이후 세종은 여진족 족장 이만주에 대한 정벌전을 개시하는데, 이에 조선의 요동 진출을 경계하던 명나라와 또 다시 대립한다.
여진족이 침범한 곳이 조선의 국경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세종은 고려 시절 윤관 장군이 세운 정계비를 찾고자 하고, 이수와 담이[12], 강휘 등을 국경 지대로 보낸다. 그렇게 정계비를 찾은 이수는 정계비를 세종과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언덕에 묻어 숨기고, 본인 혼자서 먼저 환궁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명나라 정보조직 동창에게 잡혀 독을 주입받고, 해독제를 줄 테니 정계비의 위치를 불라는 동창의 요구를 거부한다. 그렇게 독에 중독된 체 숲 한복판에 버려진 이수는 자신을 따라온 말을 타고 세종에게 돌아가고, 그와 윤회가 보는 앞에서 사망한다.
결국 새로운 병조판서가 필요했던 세종은 조말생을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인다.[13] 한편,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담이가 사망하게 되고, 세종이 대군 시절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던 천지인이 적힌 종이를 김종서로부터 건내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스승이었던 신장의 죽음으로 인해 세자가 여진 정벌을 반대하고, 세종은 과로로 인해 소헌왕후의 권유로 잠시 온양행궁을 나서기로 하면서 여진 정벌은 전쟁을 반대하는 세자가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장영실의 설득으로 결국 세자는 마음을 돌리고, 장영실, 최해산, 이천, 최윤덕은 신무기와 일성정시의를 활용하여 마침내 파저강 전투에서 이만주의 여진족을 물리친다.

2.5. 한 사람의 눈먼 자, 만인의 눈을 뜨게 하다

진양대군[14]과 윤회, 강휘와 함께 잠행을 나선 세종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 노비 천둥을 만나게 된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세종은 평범한 생원인 척하며 관아를 찾아가 천둥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지만 무시당한다. 진양과 윤회의 수사로 진범은 밝혀지지만,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세종은 백성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선만의 문자를 창제할 것을 결심한다.

세종은 세자에게 모든 정무를 맡기고 문자 창제 연구에 돌입한다. 한편, 과거 장영실이 명나라의 천문의기를 빼돌린 사실과, 세종이 조선만의 역법을 제정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세종을 경계하고 있던 명나라의 실권자 왕진은 자신의 심복인 해수와 정보조직 동창을 조선으로 보내어 천문의기들을 검문하도록 한다. 세종은 가마를 이용하여 문자 창제 연구의 증좌와 천문의기를 몰래 옮겨 위기를 모면한다.

한편, 세종이 명나라 환관 황찬에게 보냈던 친서가 발각당하면서 왕진과 동창은 세종이 문자창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명나라에서 장영실을 잡아올리라는 압박을 가하고, 조말생 파직 이후 세종의 새로운 정적이 된 최만리가 문자 창제의 증좌[15]를 손에 넣는다. 수년동안 지기로 지낸 자신에게조차 문자 창제에 대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 정인지 역시 최만리의 편에 서기로 한다.[16]

최만리는 장영실과 문자 창제의 증좌를 맞바꾸어 세종의 문자 창제 연구를 좌절시키기로 하였고, 결국 세종은 장영실과 문자창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다. 세종은 공식적으로는 장영실을 명나라에 넘기기로 하고, 강휘를 통해 그를 몰래 외국으로 대피시키려고 했으나, 조말생의 방해로 실패한다.[17] 이후 장영실과 독대하여 이번 한번만큼은 자신의 명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줄 수 없겠냐고 하지만, 끝내 장영실은 이를 거부한다.

그렇게 장영실을 명나라에 넘기는 날, 장영실이 손을 본 세종의 가마가 부서진다. 장영실 역시 세종의 뜻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을 명나라에 넘기지 않는 동시에 문자 창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었다. 세종은 장영실을 조선에서 처벌하기로 하였고, 결국 장영실은 곤장 100대를 맞고 실신한다. 장영실이 죽었다고 생각한 집현전 신진 학사 하위지와 박팽년 등은 문자 창제 때문에 장영실을 죽게 만든 세종에게 불만을 품었고, 최만리는 이들을 포섭하여 진관사의 비밀 연구실에서 문자 창제 연구를 하고 있는 세종을 감시하게끔 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장영실을 친아들처럼 아끼던 최해산 역시 세종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최만리는 그 역시 포섭하기 위해 신무기 기술을 명나라에 넘기라고 제안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세종은 최해산을 납치하여 그에게 살아있는 장영실 을 만나게 해주며 이를 저지한다.

한편, 그 사이 세종의 시력은 점점 악화된다. 극소수에게만 이 사실을 알게 한 세종은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문자 창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진척이 없는 문자 창제를 빨리 완수하기 위해 세종은 사체 해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진양대군이 반발한다. 진양이 문자 창제 연구에 반감을 품었다는 사실과, 그의 숨겨진 왕좌에 대한 야망을 감지한 최만리는 그를 회유하지만, 일단은 거절당한다.
그 사이 세종은 최해산과 장영실을 통해 사체 해부를 위한 이름없는 백성의 시체를 모으고자 하고, 이때 시신을 찾기 위해 잠시 진관사 밖으로 나온 장영실을 동창의 일원들이 목격한다.

한편, 세종은 사체 해부를 위해 회회인(위구르인) 의원을 부르기로 하고,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된 장영실이 그를 데려오기로 한다.장영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창의 2인자 해수는 동창 일원들을 이끌고 진관사를 빠져나온 장영실과 맞닥뜨린다.이전에 동창에 심어 두었던 스파이 풍개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종은 강휘를 보내어 해수를 처단하고 그를 구출하지만,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최해산이 결국 해수에게 죽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후 김종서가 단신으로 회회인 의원을 데려오고, 최해산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시체를 해부하기로 한다.한편, 회회인 의원이 진관사에 출입하는 것을 본 최만리의 심복 정창손과 김문은 이를 최만리에게 일러바치고, 이후 최만리는 지방 유생들과 집현전 신진 학사들을 이끌고 진관사에 쳐들어간다.

그 사이 사체 해부를 마치고 장영실을 통해 인체의 발음 기관 모형을 제작한 세종은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모면한다.[18]한편, 문종을 통해 장영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집현전 신진 학사인 박팽년과 하위지도 세종의 문자 창제 연구에 합류하고, 결국 노력 끝에 세종은 신체 기관을 본떠 자음을 만든다. 그리고 모음은 그가 예전에 북방 지역에서 만난 소녀 담이에게 가르쳐 주었던 글자 천, 지, 인을 본떠서 만든다. 그렇게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은 조말생과 황희를 통해 최만리 일당보다 먼저 삼사를 움직여 훈민정음을 반포한다.

명나라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국경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고 세종을 위협한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역시 집현전의 공식 입장을 문자 창제 반대로 결정한다. 집현전에 직접 방문한 세종은 처음에는 반대파의 의견 역시 존중하여 그들이 자신을 꺾어 본다면 문자 창제를 없던 일로 할 수 도 있다고 하나, 정창손의 발언을 통해 이들이 애초에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릴 의도가 없었음을 알게 된 세종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의지가 없는 자는 집현전을 떠나라고 일갈한다. 한편, 명나라의 실권자 왕진 역시 세종과 독대하여 그에게 문자 창제를 그만두라고 경고하지만, 세종은 역으로 설령 조선이 명과의 싸움에서 지더라도 주변국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며, 이들 역시 제2, 제3의 조선이 되어 명나라에게 맞설 것이라고 하며 역으로 왕진을 데꿀멍시킨다.

한편, 최만리로부터 왕위에 오르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진양은 어머니 소헌왕후로부터 집현전에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집현전으로 향한다. 세종은 진양에게 왕실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어 형을 잘 보필하라는 뜻에서 그에게 수양이라는 호를 내려준다. 이미 부왕이 자신의 야욕을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양은 적어도 부왕과 모후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한 후, 사직서를 제출한 최만리에게 다시 집현전에 남아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그 사이 왕진은 세종이 연구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진관사에 방문한 때를 노려 그를 암살하고자 한다. 이에 동참하게 된 최만리는 세종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고뇌하고, 결국 김문을 통해 조말생에게 이 사실을 자복하고 세종을 만나러 간다. 최만리의 자백으로 동창의 암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왕진은 정치적인 위기에 처한다. 한편, 진관사의 비밀 연구실에서 최만리를 만난 세종은 눈이 멀었던 탓에 그를 상선 엄자치로 착각하여 인정머리 없는 신하들이 자꾸 과인의 곁을 떠나가고 있으니, 그대라도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한다. 이를 통해 세종이 눈이 멀어가면서까지 문자 창제에 헌신했다는 것을 안 최만리는 결국 뜻을 접고 그의 곁을 떠난다. 한편, 뒤늦게 그가 상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안 세종은 최만리를 쫓아가 보지만, 끝내 붙잡지 못한다.[19]

한편, 소헌왕후와 수양은 명나라로 가 황제로부터 문자 창제를 허락하는 교서를 받아온다. 이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왕진이 사신 신분으로 세종에게 찾아와 왕후의 승하에 유감을 표하며, 문자 창제를 허락한다는 교서를 전해준다. 이후 왕진은 세자에게 한 사람의 눈 먼 자가 만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을 남기고 미소를 지으며 떠난다.[20][21] 이후 훈민정음을 공식적으로 반포한 후, 옛날 스승 이수와 마음을 나누었던 곳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후, 흡족하게 풍경을 바라보는 세종과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장영실의 모습을 끝으로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은 대단원의 끝을 맻는다.

3. 극중 묘사

이전까지만 해도 세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전형적인 성인군자로 그려졌다. 특히 충녕대군 시절은 그냥 전형적인 욕심없는 모범생 정도로 묘사되었던 전작 용의 눈물과 달리, 왕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에 나설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이나, 부왕,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와 갈등하고 또 화해하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점차 완성형 군주로서 성장하는 모습 등 인간으로서의 세종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세종의 인간적인 고뇌와 시련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역대 사극 중 가장 생고생을 많이 한 세종이 되었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대군 시절에 부각되는데, 1화부터 납치당해 죽을 위기해 처하고, 겨우 풀려났더니 시장통 싸움에 휘말려 옥에 갇히고, 형틀에 묶인 체 죽어가는 내관을 지켜보며 멘탈이 박살나고, 커서는 아예 암살 미수 사건에 휘말리고 유배형에 처해지는 등 온갖 개고생을 현장에서 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상에 따르면 어린 시절 2차 왕자의 난 당시 회안대군에게 인질로 잡히기까지 했다 이렇게 자주 굴렀는데 공부는 대체 어떻게 했지? 게다가 자신이 좋은 의도로 한 행동들이 그저 충녕은 세자가 아닌 대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봐야 했다.

4. 명대사

백성이, 이 나라 정치의 주인이다.
신하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이젠 제 사람됨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대감에게 정치는 무엇입니까?
아니 이제, 수양이라고 해야 하나?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길게 하진 마라.
조선의 문자, 그 반포를 막고자 하는 것은 곧 조선의 자주성을 짓밟고자 하는 책동. 과인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게 누구든 비타협적으로 싸워나갈 것이외다.
"측우기라... 어쩌면 저것이 재는 것은 비가 아니라 국왕의 눈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1] 훗날 장영실에서도 동일 배역으로 출연했고, 부왕인 태종 역을 맡은 김영철과는 홍국영 역을 맡은 경험이 있다.[2] 비록 태종이 신하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절대 권력자였을지는 몰라도, 자기 백성들에게만큼은 자비로운 임금이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세종과 태종의 대비를 주기 위해서였는지 태종을 국가의 안위를 위해 백성들마저 탄압하는 임금으로 그렸다.[3] 이때 하륜이 조정 신료들을 사주하여 충녕을 원지부처하라는 시위를 하게끔 만든다.[4] 그러나, 충녕은 당시에 이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할 정도였는데, 과거 자신을 목숨 걸고 구해주러 온 자신의 외삼촌에 대한 존경이 더해져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5] 이 드라마에서는 양녕대군이 여진 정벌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무리한 싸움으로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물론 이는 실록 그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며,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상당히 미화된 어리, 초궁장과의 불륜이 실제 역사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였다.[6] 장영실의 자백으로 추포당했다.[7] 여담으로 전판석 역을 맡은 배우인 김승욱은 훗날 <태종 이방원>에서 세종의 장인인 심온 역을 맡게 되는데, 이 심온 역시 태종에 의해 세종이 반강제적으로 제거하게 된다.[8] 전판석의 조카이자 고려의 마지막 황손으로, 한때 충녕의 내관으로 지내면서 친분을 쌓았다.[9] 태조 이성계의 내관이었던 김사행이 1차 왕자의 난 당시 세자 이방석을 피신시키려고 했던 통로로, 이후 고려부흥세력이 이방원을 암살하기 위해 이 통로를 사용한다.[10] 이때 여러 무리와 함께 사냥을 했는데, 이천조차 충격받아 대체 저들 중 누가 충녕대군이란 말인가!라며 경악한다.[11] 다만, 실제로 박은은 태종보다 하루 일찍 세상을 떠난다.[12] 세종이 대군 시절 북삼도에 유배갔을 때 만났던 꼬마아이이다.[13] 이후 완전히 세종의 편이 된 조말생은 여진족의 동맹가 부자를 납치하는 공을 세운다.[14] 후일의 수양대군[15] 조선어라는 말이 적힌 종이였다.[16] 하지만 장영실의 일갈과 세종과의 독대를 통해 그의 진심을 알게 된 정인지는 문자 창제의 증좌를 불태우고 세종의 조력자가 된다.[17] 조말생은 장영실을 명나라에 넘길 경우 명나라에서는 그를 죽이는 대신 회유하여 그의 기술을 훔칠 것이라고 예상했고, 장영실에게 자결을 권유한다.[18] 우선 회회인 의원을 의술 뿐만 아니라 천문학에도 능통한 인물이라고 둘러대어 칠정산과 회회력을 비교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사체해부에 쓰기 위해 쓸 시체를 구하던 과정에서 최해산이 가져온 돌림병에 걸린 시체의 장례를 치러 주며 최만리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장영실이 최해산의 시체를 수습하여 옮기게 한다.[19] 이때 최만리의 독백과 OST, 배경이 어우러져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도 상당히 손꼽히는 명장면이 탄생했다.[20] 정황상 왕진 역시 최만리처럼 세종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안 후 그의 헌신에 감복하여 마음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21] 또한 그런 이유가 아니여도 이미 일국의 군왕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려다 걸린 만큼,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문자 창제를 허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