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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제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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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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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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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천황제 파시즘이란?4. 논쟁
4.1.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다4.2.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었다4.3.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고 테크노파시즘이다
5. 관련 정파, 조직6. 관련 이념7. 관련 인물8. 참고 문헌9. 관련 문서10. 외부 링크11. 둘러보기

1. 개요

천황제 파시즘(天皇制ファシズム / Emperor-system fascism)는 쇼와 연간,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 제국의 정치 체제에 관한 이론 및 논쟁이다.

일본의 정치학을 지배했던 "시민사회파"에서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파시즘>,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명명하여 일본 특유의 파시즘 현상을 정의한 데에 반하여, 20세기 서구학계에선 일본이 파시즘 국가였다는 것에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양자 모두 일본의 후진성에 의해 일반적인 파시즘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착안에서 시작하였으나, 시민사회파는 일본군부가 당시 후진적이었던 일본의 봉건적 천황제 사회에 전제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파시즘을 정착시키려고 했다고 해석한 반면 서구의 일본학에서는 파시즘에 대한 일련의 척도를 세워두고 여기에 일본의 사례를 맞추어 본 후 파시즘이 아니라고 규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파의 거장이었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1996년 사망한 것을 기점으로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개념은 일본 학계 내에서 사어로 쇠락하고 그 자리는 "총력전체제론"이라든가 "국민국가론" 등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천황제 파시즘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는 국체론에 대한 연구로 전전에 규명이 시도되었던 국체의 개념이 어떻게 전후로 계승되었는가를 논하고 있으나, 그 방향성은 전전과 전후를 단절된 관계로 보고 전전을 천황제 파시즘으로, 전후를 민주주의로 규정했던 시민사회파적 전제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또한 독일사에 대해 이른바 "특수한 길" 논쟁이 촉발된 것과 같이 서구에서의 일본 파시즘에 대한 부정 또한 비슷한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파시즘의 특수성에 대한 의식이 허물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파시즘이 긍정되기 시작하였는데 일본 파시즘의 경우 기시 노부스케 등 경제관료들의 전체주의적 근대성 추구에서 이른바 테크노파시즘을 발견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긍정되지만 서구에서는 부정된다"던 전전 일본 체제의 파시즘성은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부정되고 서구에서는 긍정되는 조류가 발생하고 있다.

2. 명칭

당시 일본 제국내지인(=일본 본토인) 90프로 이상이 야마토 민족이였고, 대만인과 조선인은 일본 국적이기는 하였으나 일본인과 동등한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명백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조선을 식민지로서 통치하기 위한 학술적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이른바 "혼합민족론" 즉 야마토 민족은 순수혈통이 아니라 북방인 (즉 조선인)과 남방인 (즉 대만인)의 혼혈로 탄생한 민족이라는 인종론이 국책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연장선으로서 내선일체가 추구되었다. 이렇게 제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자 탄생한 혼합민족론에 저항하고자 반대로 야마토 민족이 다른 아시아 민족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그 특수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나치적 인종과학이 보급되면서 근대화적, 과학화적 입장에서 야마토 민족의 우수성을 혈통적 순수성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전시기 일본은 총력전체제을 구축하여 식민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빨아들이면서 내선일체의 논리를 사용하여 창씨개명 등 강제동화 정책을 수립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 내선일체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한일혼혈 문제에 대응해 야마토 민족의 혼혈성을 보존하려는 대책을 입안하는 등, 혼합민족론과 순혈민족론 사이에서 총력전 수행의 필요에 따라 그 때 그 때 입장과 말이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나치적 인종주의라든가 파시즘적 대중동원이 불가능한 후진적 일본 사회에서 일본 전시체제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체 즉 봉건적 천황제였다는 것이 천황제 파시즘론이며 그리하여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통칭되게 되었다.

3. 천황제 파시즘이란?

일본 파시즘을 말할 때, 일본 사회 전반에서 군대의 가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앤터니 제임스 조스(Anthony James Joes)

최초로 일본을 파시즘 국가로 분석한 이들은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 선전원들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1935년 8월 2일 제7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발표한 보고서에 응답하여 세계 각국의 파시즘 운동 및 이념의 전파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일본학자 오스카르 타르하노프[1]와 예브게니 욜크[2]는 일본 파시즘을 "일본의 사회구조가 일본군의 봉건 제국주의와 잘 융화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일본 파시즘론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이 뿌리내리게 된 중요 요인은 다음과 같다.

마루야마 마사오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은 기타 잇키로부터 비롯되었으며[3] 왕도, 유교사상, 니치렌의 종교철학, 무사도 정신과 서양 파시즘을 결합하여 군국주의, 근대화, 범아시아주의를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파시즘은 1919~1931년에 걸친 시민들 사이의 우익운동이 첫 단계이며 만주사변이 군대가 파시즘의 원동력이 되게 한 두번째 단계, 중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 시기가 일본 파시즘을 단순한 운동에서 국가구조로 전환시킨 절정기로 보았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또한 일본 파시즘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4. 논쟁

일본 학파와 영미 학파 간의 의견 차이가 있지만 지역 간의 차이라기 보단 성향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 학계에서도 진보 성향 학자들은 일본 제국을 파시즘 국가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동양에서도 보수 성향 학자들은 일본을 파시즘 국가가 아닌 단순 제국주의 국가로 보기도 한다.[4]

4.1.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다

일본 제국을 파시즘이라고 보는 쪽은 일본의 시민사회학파와 더불어 허버트 빅스, 베링턴 무어 같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다. 통상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지만 일본에서는 파시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려면 기존 보수주의 권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동맹이론>의 결정적이고 극단적인 예시였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등 시민사회파는 1931년부터 발흥하기 시작한 황도파 등 반체제적 극우세력을 소위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운동으로 분류하고, 이를 통제파 등 "위로부터의 파시즘"과 대치시키며, 정치적 파벌로서의 황도파가 붕괴한 36년 2.26 사건을 "위로부터의 파시즘"이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을 대체한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즉 봉건적 천황제 등과 같은 일본의 낙후성으로 인해 일본에는 유럽과 같은 대중사회가 구축되지 못하였고, 그래서 대중적 파시즘 정당도 등장할 수 없었으며, 일본에 등장한 파시즘 이데올로기는 유럽에 비하면 질적으로 극히 저질이었다고 비판한다.

한편 서구의 맑스주의학파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의 권력 구조가 군부, 의회, 혁신 관료로 분산되었지만, 거국일치 내각이 1932년에 이미 형성되었으나 천황은 실질적 지도자가 아니었음에도 대중들에게 절대적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또한 쇼와연구회의 핵심 멤버인 류 신타로, 미키 기요시, 료야마 마사미치 등은 정책 고안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니시다 미쓰기, 다치바나 고자부로 등의 폭력을 옹호하는 민간 우익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4.2.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었다

마루야마와 시민사회학파는 그간 일본 정치과학계에서 주류로 군림했던 마르크스주의 학파를 대체하고, 천황제파시즘론을 통념적 학설로 위치시켰다. 그러나 실증주의 사학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던 일본 사학계 한켠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특히 파시즘의 정체에 대해 정치관념적인 논의가 계속되면서 천황제파시즘의 이념성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불편함은 이토 다카시(伊藤隆, 1932-)가 천황제파시즘론에 대해 정면으로 논박하면서, 진보적 혹은 복고적 방법론을 받아들여 사회의 변혁을 꾀하던 이른바 '혁신파' 세력이, 자본주의의 위기가 닥친 대공황 시기 서구식 자유주의의 붕괴를 확신하고, 고노에를 옹립하고 신체제의 탄생을 주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을 파멸로 몰아넣었다고 하는 혁신파론을 내놓으면서 폭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사회당 등 진보세력이 혁신정당이라고 불리던 것을 가져와 혁신파라고 명명한 데에서 그 정치적 의도는 투명할 정도로 뻔한 것이었고, 또 일본을 파멸에 몰아넣었다고 주장하는 이 혁신파의 근원을 안보투쟁 이후 재발견 열풍이 불었던 다이쇼 데모크라시기 대중운동의 활성화에서 찾는 등 논쟁적인 담론을 많이 품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회대중당 등 비마르크스 사회주의자들이 군사독재에 의한 국가개조를 주장했던 통제파 등에 접근한다든지, 친군파 의회세력이 대정익찬회 등 전체주의화에 반대한다든지, 특히 시민사회학파나 마르크스주의에서 잘 다루지 못하고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 일쑤였던 30년대 일본 좌파의 전향 현상을, "복고적" 혁신파와 "진보식" 혁신파의 이념적 지근성 등으로 설명하는 등 명쾌하고 시원한 것이 장점이었다. 혁신파론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천황제파시즘론은 90년대까지 학계의 통설로 남았지만, 혁신파론에서 제기했던 "혁신파"의 존재와 그 성격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받으면서 부득불 혁신파론이 제기한 비판들을 수용하고 수정하기에 이르른다. 특히 천황제파시즘론의 핵심인 소위 "위로부터의 파시즘" 개념을 완전히 뒤집고, 풀뿌리파시즘론처럼 "아래로부터의 파시즘" 즉 대중적 지지에 기반한 파시즘 체제였다고 하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즉 변화를 갈구하며 현상유지의 타파를 요구하던 일본 민중과 지식인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체제라는 것이 인정되면서, 본디 천황제파시즘론과 시민사회파가 주장하였던 "위로부터의 파시즘", 즉 일본에는 군부에 의해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파시즘 체제가 건설되었으며, 이 체제는 유럽의 파시즘과는 성질을 달리한다는 근본적 전제가 송두리째 붕괴한 것이다. 1990년대 일본학계를 휩쓸었던 총력전체제론은 이런 시류의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전시기 일본를 파시즘체제로 분류하면서도 이를 뉴딜체제와 맑시즘체제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론적 차이로 규정하며, 파시즘이냐 뉴딜이냐 같은 체제적 대결에는 대중동원이라는 목적에는 서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하여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대신 이들 근대적 체제들이 어떻게 사회적 변혁을 일으켰고 근대화, 현대화를 수행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서구에서는 21세기 이전까지는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닌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5] 이들은 파시즘과 같은 20세기형 전체주의 체제의 성립은 단순히 소수의 악당들이 다수를 억압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치과정에서 동원되는 민주정치가 어느 정도 발달한 국가에서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구 학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 당시 일본 제국의 정치는 지배자층이 계급제도를 민주주의로 이름만 바꿨다고 해야 될 정도로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즉, 세계 대공황만주사변으로 일본의 민주주의는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기타 잇키를 비롯한 일부 서구식 파시스트들이 등장했으나 쇼와 덴노 자기 자신이 2.26 사건을 진압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소멸되었으며 이후 권력을 잡은 고노에 후미마로 등은 대중 정치가가 아니라 정당 정치를 반대하고 귀족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보수 권위주의자였다고 봤다. 설령 고노에가 파시스트라 해도 1년 안 가 사임했으니 무의미하다. 또한 이후 권력을 잡은 도조 히데키 같은 일본의 권력자들은 동방회[6] 지도자 나카노 세이고 등을 가택 연금시키는 등 파시즘 운동을 탄압했으며 이들의 싱크탱크를 맡았던 쇼와연구회에서 내놓은 조언들 중에서 사회 연대주의, 반자본주의 요소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버트 팩스턴은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라 파시즘의 도구를 일부 취사선택한 국가로 보고 있으며 일본 제국을 파시즘으로 보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타도된 결과로 파시즘 국가가 설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또한 일본 제국은 당시 일본 제국 지도층의 생각과는 별개로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볼셰비즘 혁명의 위협에 결정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으며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이는 공식 정당이나 자생적 대중운동이 끝내 궤도권에 들어서지 못했으므로,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대중운동이 적당히 가미된 군부 독재 및 단순 제국주의 국가라고 결론 내린다.

4.3.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고 테크노파시즘이다

파시즘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려던 시도가 서구 정치학에서 붕괴한 이후, 그 이전까지 일본의 파시즘성을 부정하던 기존의 통설을 깨고 제니스 미무라, 아론 무어 등 서양 과학기술사학계에서 제기한 담론.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혁신관료 집단에 주목해서 일본 제국은 과학기술적 합리성을 이념화하고 소련식 계획경제로 군수생산에 최적화된 사회재조직화를 추구한 "테크노파시즘" 사회였으며, 이런 측면이 일본 혁신관료 뿐 아니라 독일의 보수혁명파, 이탈리아 미래파에게서도 나타난다며 과학기술의 이념화가 파시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기존 서양 사학계에서 나치로 대표되는 "서양 파시즘"의 양태를 기준으로 삼아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반하여, "일본 파시즘"의 양태야말로 파시즘의 일반적 현상이었다고 파시즘의 정의 근간 자체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연구되는 것이 혁신관료들의 테스트베드 국가였던 만주국.[7]

문제는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기시 노부스케를 선두로 한 혁신관료들이 만주국을 운영하면서 벤치마크했던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야말로 파시즘의 프로토타입이고 파시즘 국가들은 스탈린을 벤치마킹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전통적으로 "일본 파시스트"라고 불린 기타, 오카와, 나카노 같은 사상가들의 위치가 붕 떠버린다는 것도 약점.

5. 관련 정파, 조직

극우 파시즘뿐 아니라 사회대중당 등 넓은 의미의 파시즘 세력들도 포함된다.
전후에 전범들 중 현실 정치에 복귀한 이들 다수는 파시즘을 버렸으나[8] 이후에도 파시즘 운동을 계승한 정치 세력들도 소수 있긴 있었다.

6. 관련 이념

7. 관련 인물

8. 참고 문헌

9. 관련 문서

10. 외부 링크

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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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Оскар Сергеевич Тарханов(1901-1938). 본명은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라주모프(Сергей Петрович Разумов). 대숙청 당시 처형됨.[2] Евгений Сигизмундович Иолк(1900-1937). 타르하노프와 마찬가지로 대숙청 당시 처형됨.[3] 마츠모토 켄이치와 같이 기타 사상의 인민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나, 이런 견해는 일본 학계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소수설에 머물렀다.[4]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자체를 본다면, 일본 제국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W.G. 비즐리 등이 지적한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 것이 명백하다.[5] 다만 위에서 언급하듯, 마르크스주의 계통에서는 대체로 일본 제국이 파시즘 국가였다고 보고 있었다. 천황제 파시즘의 정의 자체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내려진 것이기도 하고...[6] 일본에 있었던 나치즘 단체이다.[7] 또한 1930년대 만주국과 2차대전 패전 이후 경제재건을 주도한 혁신관료들의 경제개발 노선을 그대로 베껴왔던 1960~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도 파시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8] 기시 노부스케 등이 대표적이다.[9] 파시즘과 연관성에 대한 내용은 있으나, 그 자체로는 파시즘으로 보지 않는지 파시즘 분류조차 사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