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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21:17:09

룡천역 열차 폭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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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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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피해3. 원인
3.1. 어째서 충돌했는가?3.2. 김정일 암살 시도?3.3. 모사드 공작설3.4. 꽃제비 석유 절도설
4. 관련 문서

1. 개요


2004년 4월 22일, 북한 평안북도 룡천군 룡천역에서 일어난 열차 폭발 사고.

웬만한 사건 사고 보도는 잘 하지 않는 북한 매체의 관행을 생각하면[1][2] 이례적으로 북한 정부가 직접 지원을 요청하고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규모인지라 북한에서 일어난 사고 중 이례적으로 잘 알려진 몇 안 되는 사고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출연하는 방송이나 북한 관련 프로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2. 피해

소학교(초등학교)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고 인구 13만명의 룡천군에서 54~150명 사망, 1,249명 부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3]

당시 엄청난 크기로 폭발하면서 헬게이트를 열었다. 그 자존심 쩌는 북한이 세계에 도움을 청하고 여러 곳에서 원조 물자와 적십자 구조대가 파견될 정도였으니 엄청난 스케일의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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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 사고 전후 위성 사진 비교. 위쪽이 폭발 사고 전, 아래쪽이 폭발 사고 후. 위성 사진으로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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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피해구역은 룡천역 반경 1km에 이르며 특히 반경 500m 안의 건물들은 대부분 완파되었다.

3. 원인

북한 당국은 사고 이틀 뒤 공식 발표를 통해 두 열차 간 화차 추돌로 인해 생긴 전선 합선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두 열차의 화차가 충돌한 뒤 전주가 무너졌는데 이 때 고압전선이 끊어지면서 생긴 스파크가 석유를 가득 실은 유조열차에 옮겨붙어 폭발을 일으켰다. 뒤이어 유증기가 질산 암모늄 비료 열차에 옮겨붙어 질산 암모늄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질산 암모늄은 기름과 배합하면 폭발 위력이 약 2배로 매우 강해지기 때문에 절대로 유류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이 두 재료는 혼합하면 ANFO(Ammonium Nitrate and Fuel Oil, 질산암모늄과 유류연료)이라는 폭약이 되는데 기름을 한 가득 실은 탱크와 질산암모늄을 가득 실은 화물칸이 터졌으니 당연히 폭발 규모도 매우 커져 버렸다.[4]

ANFO는 질산암모늄에 경질유를 적당히 섞어서 만든다. 경질유는 주로 난방유나 디젤유를 쓴다. 그런데 유조열차로 수송하는 건 바로 이 디젤유고 암모늄 비료에는 비료의 3요소인 N, P, K가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질산암모늄이 섞여 있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비료폭탄이다. 폭발 강도는 낮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열차 2대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생긴 큰 충격력이 더해져서... 게다가 하필이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게 주변에 있던 전신주까지 쓰러뜨리면서 고압선이 가연성 물질인 질산암모늄에 접촉해 그대로 폭발물을 터뜨리는 뇌관 역할을 해 버렸다.[5]

즉,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부 실현되면서 이런 엄청난 사고가 터져 버렸다.

3.1. 어째서 충돌했는가?

알다시피 북한의 철도 환경매우 좋지 않다. 특히 1990년대에 경제 악화로 인한 전력난으로 인해 열차가 정시 운행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고 전력이 떨어져서 열차가 멈추는 일도 간혹 있다.[6] 심지어 비상시 무전기조차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때문에 여러 곳에서 사고가 벌어졌으니 이 사고도 그런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 현재 복구된 승강장은 3면 9선인데 이 중 3선은 승강장 가운데쯤에서 분기하고 승강장의 길이 자체도 상당히 긴 편이다. 역 북쪽으로 인입선이 나 있어 검수 및 화물 수송의 역할도 겸하는 듯하다.

3.2. 김정일 암살 시도?

다만 만약 이 사건이 사고가 아닌 테러라면 고의적으로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이리역 폭발사고와 비교해 운이 없다고 하는 것은 오류가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암살설이나 테러설이 증거가 좀 불충분하여 사고라는 것이 정설이다.

2011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전문에 의하면 김정일은 이 사고를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라고 여겼다고 한다. 2009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캐슬린 스티븐스 당시 주한 미국 대사에게 김정일과의 면담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룡천역은 평양역신의주청년역을 잇는 평의선에 위치한 역인데 사건 당시 김정일이 중국에서 철도로 귀국하는 중이었기 때문에[7] 이런 의심을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이후 암살 시도까지는 아니라고 분석 결과가 나왔으나 이 사건 때문에 김용삼 철도상은 눈 밖에 났다가 2010년 기관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숙청당했다.

사건 현장에서 테이프가 부착된 휴대폰이 발견되었고 김정일이 이 사건을 핸드폰을 원격 기폭 장치로 이용하여 자신을 암살하려고 한 시도로 인식했기 때문에 북한의 GSM 통신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훗날 외무상을 지낸 리수용이 핸드폰 기술을 국가에서 통제하면 오히려 테러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이집트오라스콤텔레콤과의 합작으로 2008년에 고려링크를 설립하여 다시 핸드폰을 허용했다.

웹툰 스틸레인열린북한방송의 만화 <김정은>에서도 이 사고를 김정일의 암살 시도라고 묘사했다.

2015년 12월 신동아탈북자 출신으로 자칭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간부라는 인물이 "김정일 암살 용천역 테러 우리가 했다."는 인터뷰가 실렸다. 다만 국내외에 워낙 이슈가 많아서 그런지 별다른 반향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실제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북한에서는 CIA의 김정일 암살 시도로 선전되는 것으로 보인다. #[8]

3.3. 모사드 공작설

이스라엘 모사드의 공작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김정일 암살이 목적은 아니었고 시리아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폭발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모사드의 역사적 공작 사례들을 다룬 저서 '기드온의 스파이' 2권에는 폭발 사건에 대해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고 (모사드의 공작은 아니었으나) 이 사고로 화물칸 옆 객차에 타고 있던 시리아의 과학자 12명이 사망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과학자 12명은 시리아의 핵무기 프로젝트 관련자들이며 이란 나탄즈 핵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력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되었다. 모사드는 시리아 과학자들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시리아와 북한 간의 커넥션에 대한 정보 수집에 착수하여 북한發 시리아행 핵무기 관련 물질 수송을 추적하고 시리아 핵무기 개발단지 위치를 추적하여 과수원 작전을 실행했다.

3.4. 꽃제비 석유 절도설

주성하 기자는 주성하TV에서 룡천역 사고 수습 탈북자의 진술을 토대로 룡천역 화재의 원인은 꽃제비들의 석유 절도 중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역 주변에는 석유가 돈이 되니 중국으로 오가는 유조 열차를 노리는 꽃제비가 많았는데 이 때 도둑질 중 담뱃불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4. 관련 문서


[1] 사실 북한의 언론들은 박명식 장기적출 연쇄 살인사건, 개고청년역 열차 전복 사고, 단천시 여객열차 전복 사고처럼 다른 나라라면 나라가 뒤집힐 사건조차 전혀 보도하지 않았을 정도로 내부에서 살인 등의 범죄, 대규모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언론실태의 북한조차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였으니 사고의 심각함을 충분히 알 만하다.[2] 북한이 외부에 공개한 사고는 이로부터 10년 뒤에 발생한 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도 있는데 이것도 주민들에게 인트라넷(참고로 북한은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다)으로 퍼져서 도저히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3] 사실상 룡천군 인구의 0.1%가 죽고 1%가 부상을 입은 것이다.[4] 비슷한 폭발 사고인 이리역 폭발 사고가 나름대로 최악의 상황을 피해갈 운이 작용한 것과 대조적이다. 폭발 사고 당시 이리역에 정차 중인 유조 열차가 있었는데 폭발 사고 직후 이리역 인근에 거주하던 기관사가 역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폭발이 더 커지기 전에 유조열차를 몰고 다음 역으로 긴급 대피시켜서 이리역 사고는 우리가 아는 규모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 유조 열차마저 폭발에 휘말려 터졌으면 아마 이리시가 통째로 날아가고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5] 이리역 폭발 사고 당시 폭약이 전기 뇌관을 탑재한 것이었으니 고압 전류에 유류가 닿아 폭발이 일어나던 중 질산 암모늄까지 휘말렸다면 대폭발이 일어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6] 이러한 노후화로 인해 일어난 것이 2011년 량강도에서 일어난 백암군 열차 전복사고다.[7] 김정일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 평생 철도를 이용했다. 항상 테러리스트들이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해서 항공편은 절대 이용하지 않고 철도를 이용했는데 그 철도에서 대폭발, 그것도 (일설에 따르면) 자신이 통과하고 불과 15분 후에 발생한 사고니...[8] 여기서 인터뷰를 한 사람이 김성일 사건의 주모자 김성일이다.[9] 이 사건도 은폐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발이 남한에서도 보일 정도로 컸기에 북한 언론에서 보도했다. 다만 북한 언론은 이 사건을 '이런 사건이 있었으며 복구 중' 정도로만 언급하여 사고의 진상을 철저히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