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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1:13:18

유승민/정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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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계 입문2. 한나라당 시절
2.1. 한나라당 최고위원 시절
3. 새누리당 전반기 시절
3.1.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3.2.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4. 무소속 시절
4.1. 제20대 총선에서의 공천배제4.2. 새누리당 탈당4.3. 20대 국회의원 당선
5. 새누리당 후반기 시절
5.1. 새누리당 복당5.2. 복당 이후5.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국
6. 개혁보수신당 시절
6.1. 어젠다 2050 활동
7. 바른정당 시절
7.1.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7.2. 대선 낙선7.3. 낙선 이후7.4. 바른정당 당 대표 취임
8. 바른미래당 시절
8.1.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직 사퇴8.2. 사퇴 이후8.3. 손학규와의 갈등
9. 새로운보수당 시절
9.1. 자유한국당과의 합당
10. 미래통합당 시절
10.1. 제21대 총선10.2. 총선 참패 이후10.3. 대선 출마 선언
11. 국민의힘 시절

1. 정계 입문

파일:유승민 빅딜비판.jpg
▲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는 유승민 박사[1]
당시 유승민 박사는 김대중 정부의 빅딜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IMF당시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은 좌우 양쪽에서 ‘종속적 신자유주의’이거나 ‘관치경제의 부활’이라며 비판받았는데, 유승민은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을 관치경제라며 비판하였다.[2]

1997년 말 김영삼 정부가 결국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였고,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게 된다. 이에 당시 KDI원장은, '유승민 박사에게 IMF위기극복에 대한 종합보고서 작성을 지시한다.' 이에 유승민은 각 분야별로 팀을 꾸려 두달간 보고서 작성에 매진하게 되고, 마침내 금융, 기업, 사회안전망, 재정, 거시, 공기업민영화, 한국산업의 미래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위기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 이라는 보고서가 완성되었고, 작성 직후 김대중 대통령과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보고된다. 이 보고서는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의 기본틀이 되어 외환위기 극복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경제 싱크탱크]<2>한국개발연구원(上)
경제위기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 - KDI 원문링크

IMF위기 1년 전 이 사태를 정확히 예측했던 당시 자딘플레밍(JP모건에 매각)서울지점 이사였던 스티브 마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97년)에 발표했던 보고서들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4월(98년)에 발표된 보고서는 정말 너무 좋았다. 어떻게 불과 4개월 사이에 이렇게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까. 아마 작년에도 KDI의 젊은 친구들은 정말 좋은 보고서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1997년 김영삼 정부 세계화추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유승민 박사는,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이던 고 강봉균 장관의 추천으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또한, IMF사태 타계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았던 공정거래위원회에 처음으로 자문관제도가 설치되었고, 당시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추천으로 초대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으로 유승민 박사를 위촉해 활동하게 되었다.

제3회 경쟁정책 국제심포지엄 - 유승민 박사

이때 김대중 정부의 경제 정책, 특히 '빅딜', 즉 정부가 직접 기업에 관여하여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함과 동시에 기업의 역할을 정해버리는 정책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유승민 박사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IMF, IBRD 등 외부기관의 지시를 너무 맹목적으로 따른다[3], "빅딜같은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은 한국의 산업기반을 무너트린다", "빅딜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빅딜이 정말 돈이 된다고 판단하면 가만둬도 기업 스스로 할 것이다.", "외국에선 정부주도의 빅딜을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의 신뢰감도 떨어지고 통상마찰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부실기업이 제 때에 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치경제의 부활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은후 손을 딱 뗄 수 있겠는가. 관료의 속성상 그렇게 못할 것이다. 시장이 완전히 죽을 우려가 있다."[4]라는 취지의 발언들을 하였다.
파일:유승민2.jpg
파일:유승민 98.jpg
▲ 1998년 4월 KBS대토론 '한국 이렇게 바꿉시다'에 출연한 유승민 KDI 박사
이 토론에서도 유승민은 2022년 현재 주장하는 바와 매우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재벌혁신과, 금융혁신, 정부의 구조조정 3박자가 맞물려야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경영자에 대한 감시와 문어발식 경영의 폐해, 지배구조 개선과 마지막으로 정경유착의 폐지로 인한 정치권에서 자유로운 기업활동 보장을 주장하였다.1998년 KBS 대토론 내용 기사
파일:유승민 클린턴.jpg
▲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원탁회의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유승민 KDI 수석연구위원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 당시, 유승민 당시 KDI 수석연구위원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원탁회의 멤버 중 하나로 초청되었다는 연락을 미 대사관으로부터 받게 된다. 비공개 회담이니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당시 고려대 장하성 교수, 두산 박용오 회장 등 6인과 서울 경복궁에서 회담을 가졌다. 유승민 연구위원은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균형을 갖고 재벌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야지, 무조건 구조조정만 빨리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발언하였다. 즉 미국 정부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 IMF에 대한 쓴소리를 경제학자가 미국 대통령 면전에다 날린 것이다. 클린턴, 시민대표와 「원탁간담회」- 유승민 KDI 수석연구위원

그러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유승민의 주장에 대해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며 원칙대로 하는 것일 뿐이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하게 된다. 이후 클린턴 대통령은 이 원탁회의가 마음에 든다며 내용을 보도해도 좋다고 하여 언론에 보도되었다.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한[5] 국민의 정부측에서는 "왜 미국 대통령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여 갈등을 불러오려 하냐"라며 당연히 난리가 났고, 유승민은 문제아로 찍히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실시한 강연회에서도 당시 국민의 정부의 빅딜정책을 아예 '백지화'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청와대 경제수석이 다음날 조간을 보고는 당시 감기몸살을 앓고 있는 유승민을 "빨리 불러오라"고 한 뒤 호통쳤다고 한다.
... (중략) 그 관료는 KDI박사를 본인 부하쯤으로 생각하고 야단치고 있었다. 나는 국책연구소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니 당신의 부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할 뿐이다라고 되뇌이며 지지 않고 차분하게 반박하였다.
유승민 자서전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내용 중 -

이 이후 유승민은 본봉 반토막의 징계를 받았고, 1997년 KDI 성과급(연구장려금) 1등이었던 유승민은 성과급이 본인 여비서 보다 낮게 평가되는 모욕적인 보복을 당했다. 또한 신문기고나 세미나 등의 외부활동이 금지되었고, 유승민이 제출하는 학회 참석이나 토론 사전신청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의 경제참모이자 KDI원장을 맡았던 이진순 숭실대 교수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서울대학교 선후배 관계이자 위스콘신에서 같이 유학한 두 사람은 서로의 경제적 관점이 상이하여 밥을 먹다가도 날선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KDI 연구위원 출신인 이종훈 의원에 의하면, 당시 새로 부임한 이진순 원장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에 대해 유승민은 반대 입장을 펴며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는데, 이에 당시 이진순 원장이 결국 포기하고 유승민 박사의 의도대로 일을 처리한 바가 있다며 권력 앞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훗날 이진순 숭실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 앞이나 경제관료들, 혹은 정치거물들 앞에서도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소신과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유승민 의원에 대해 '정말로 똑똑한 사람, 그리고 지독하다'이라 회자하며 왜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면서 내버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평했다.

훗날 한국의 IMF 구제금융에 대해, 당시 IMF 총재로서 IMF 협상을 지휘했던 미셸 캉드쉬는 당시 조치가 가혹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 IMF조직 자체적으로 외환위기 처방이 가혹하다며 자기반성하기도 하였다. IMF 거듭된 자기반성 - 외환위기 처방 가혹했다
파일:예타 유승민.jpg
그 이후 국내에서 드물었던 산업조직론 전공자로서 정신없이 바빴던 KDI의 에이스 유승민 박사는 '국책연구소 연구원 주제에' 정부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본인의 주 분야 활동이 가로막히게 되자, 후배 연구원의 제안으로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 500억원 이상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실시하는 '예비타당성조사' 였고, 유승민은 1999년 대형SOC사업으로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실시된 예비타당성조사보고서 작성의 총괄 책임을 맡게 된다. 이 보고서는 현재 유승민 의원의 의원회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본인 스스로 국회 재경위나 예결위 활동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파일:유승민 대우.jpg
그 와중에 1999년 쌍용자동차를 집어삼키며 삼성을 제치고 재계순위 2위로 떠오른 대우그룹이 IMF사태와 분식회계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자, 유승민 KDI 연구위원은 위와 같이 워크아웃과 같은 과감한 조치와 정부의 재정투입이 이루어져야 대우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후, 실제로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이 결정되었으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저서로 세계경영을 리드해온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은 그렇게 순식간에 해체되고 말았다.

당시 국민의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활동이 크게 위축된 유승민 KDI박사에게 우연히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와의 만남이 성사된다. 이회창 총재는 신문칼럼 등을 통해 평소 유승민 박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경제관련 현안에 관한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유승민 박사는 주말을 이용하여 비정기적으로 경제자문을 도왔고, 그 이후 이회창 총재는 정치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유승민 박사는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6] 소장직을 제안받고 승낙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KDI를 사퇴하고, 윤여준 소장에 이어 야당 정책연구소장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유승민은 여의도연구소장을 3년간 하면서 경제는 물론이고 환경, 여성, 노동, 교육, 복지, 통일, 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친 고된 정책 능력 트레이닝을 거쳤고, 그 외에도 이회창 총재의 국회 연설문 작성과 같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판단능력도 기르기 시작했다. 2000년 7월 교섭단체 대표연설 경제분야 작성을 맡았는데, 과거의 정부정책의 실패만 이야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항목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말하는 등 주목을 받아 정치권으로의 성공적인 데뷔를 시작으로 이회창 총재의 높은 신임을 얻게 되기 시작한다.

[경제분야 연설내용] 경제부문...유승민소장 '작품'

여담으로 아들 유훈동 군이 당시 대입준비로 논술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아들의 논술 과제를 하는 걸 본 유승민이 "이런 걸 뭣하러 비싼 돈 주고 배우냐, 차라리 나한테 배워라"라고 했다고 한다. 아들 유훈동 군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는데, 어찌 보면 아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선배인 유승민이었던 셈이다.

당시 월간잡지 신동아에서 분석한 정치 경제 사회학자 110명이 분석한 대한민국 지식인 45인의 성향기사에 따르면,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은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모든 면에서 훌륭한 모범적 학자라고 평가받았으며,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세련된 자유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유승민 소장 본인은 이에 대해 '실용주의자에 가깝다'라고 평한 바 있다.
파일:유승민 이회창캠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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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이회창 후보와 논의 중인 유승민 소장 ▲ 여의도연구소장 당시 유승민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의 작전참모로 지근거리에서 도우며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정책 개발, 메시지, 연설 담당을 하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이었으며, 이회창 후보의 경제 개인교습을 할 정도로 이회창 후보는 유승민을 신뢰했다.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성실함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최연소 대법관이자, 대통령 빼고는 다해본 사람 이었던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 답게 엄청난 양의 자료를 꼼꼼히 읽고 소화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각종 이슈를 꿰뚫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본인의 개인적 입신양명이 아닌, 조직을 우선으로 생각하며[7] 입이 무겁고 신중하며, 무엇보다도 이회창 후보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유승민은 이회창의 연설문도 담당했는데 대통령 빼고 다 해 본 사람의 연설문 담당자였던 경험 때문에 그는 훗날 뛰어난 스피치라이터가 되었다. 이 때 훗날 이명박의 최측근이 되는 정두언과 친해졌다고 한다.

당시 김만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에게서 '최고의 브레인'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고, 심지어는 너무 지나친 신임을 받아 몇몇 현직 의원들마저 질투했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월간조선 정보철 - 이회창의 작전참모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하였고, 한나라당의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와 맞물려 당 자체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그 후 유승민은 한나라당을 나와, 한림대학교 한림연구원에서 잠깐동안 연구 교수를 지낸다. 3학기 동안 '한국경제론' 등의 강의를 진행하였고, 초반에는 "한나라당의 수구꼴통(!)이 웬말이냐"며 우호적이지 않았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강의를 진행했고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은 덕분에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젊은 청춘들의 애환도 같이 느꼈다고 한다.

모 커뮤니티에 2022년에 올라왔던 당시 한림대학교에 재학했던 유저가 유승민의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수시로 학생에게 질문을 받고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으며, 가끔 굉장히 당돌한 질문을 받아도 잘 받아줬다고 한다. 그에게 한림대에서의 1년 반은 이른바 '힐링'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후 유승민은 정치적 야인으로 지낼 때마다 강연정치를 했다.

유승민이 서울대 경제학부 동문회보에 게제한 '춘천 가는 길' #

2. 한나라당 시절

시험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유승민이 대통령이라고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이 말했을정도로 유승민 의원은 친박 진영에서 굉장히 인정받는 에이스였다 - 이두아 전 국회의원
파일:유승민 국회 첫등판.jpg
▲ 2004년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질문하는 유승민 의원
당시 참여정부의 신행정수도 공약을 '수도이전은 가장 악랄한 형태의 지역주의이자 포퓰리즘이며 분열주의에 불과하다' 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초선 비례대표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 국회 정무위와 예결위에서 활동할 정도로 한나라당 대표 경제통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이었던 이준석이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2004년 약 3개월간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을 하여 이때부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훗날 인터뷰에서 이준석은 유승민이 여의도연구소장 출신 경제학자이기에 배울 점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일했다고 한다.
어떤 과제가 주어지더라도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결과물을 가져오는 지독한 구석이 있었다.(그와 함께 캠프에서 일했던 모 인사의 증언. 월간중앙 2015년 8월호)
유승민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첫 등판을 하자마자 경제통 에이스 초선의원으로 활약했고, 당 내에서는 '똑똑한 초선의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의 현역의원이 국정감사 자문을 받으러 올 정도. 국가보훈처, 국민권익위원회, 국무총리실 등 각기 다른성격의 기관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고, 특히나 유승민 의원의 주특기 분야인 구조조정, 공정거래정책을 기반으로 한나라당 대표 경제통으로서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팩트폭격을 시전했다.

게다가 당시 정무위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카드대란 사태나, 국정교과서 검정위원 공개 논란 등 정무위원회 이외의 이슈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등 정치권의 거의 모든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등 약방의 감초같은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시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8]까지 명실공히 한나라당의 장자방으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파일:유승민 3인토론회.jpg
▲ 공정거래법 이슈에서 토론회를 연 전병헌, 노회찬, 유승민
당시 공정거래법 이슈는 정국에서 제일 뜨거운 이슈였고 이때 토론회를 연 전병헌, 노회찬, 유승민 의원이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입담꾼들이었는지라 여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심지어는 감사원과 정부혁신위같은 금융에 무식한 기관(!!!)이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하냐며 대놓고 윤증현 당시 금감원장에게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재경부가 금융감독기관에게 갑으로 군림하는데 무슨 조직개편을 하냐는 유승민 의원에게 윤증현 금감원장은 '유 의원의 지적에 대해 많이 공감하며 동의하는 바가 많다'고 수긍한 뒤 '감독기구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데 대해 아주 많은 아쉬움이 있다.'고 실토했을 정도였으며 또한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최대 숙제인 공정거래법 통과의 문턱에서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이었으나 현재는 야당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유승민 의원을 국회에서 만나 공정위측에서 당황했을 정도. 정무위에서 담당하는 공정위, 금융감독위 등은 전문적 지식 없이는 굉장히 까다로운 분야라 당시 문화일보에서는 '정무위 위원들, 경제공부 어렵네'라는 기사까지 실었을 정도다. 그러나 당시 유승민 의원의 KDI시절 주연구분야들이 기업지배구조와 공정경쟁정책이었고, 야당인 한나라당의 '재경위, 정무위 법안과 정책을 총괄하는 제3정조위원장'까지 하고 있었으니 당시 공정위 측에서는 최대의 난적을 만나게 된 셈이다.

공정위 ‘유승민의원’ 속앓이…한솥밥 식구서 최대 난적으로

그리하여 공정거래법 처리를 위해 열린우리당 소속 김회선 정무위원장 주최로 강행처리를 하려고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위원장석을 점거하여 회의 개회를 저지하는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는데 그 선봉과 중심에 놀랍게도 당시 유승민 의원이 있었다.
파일:유승민 위원장석 점거.jpg
당의 브레인으로 여겨지던 유승민 의원이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대여(對與) 투쟁을 하는 걸 보고 당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모두 꽤나 당황했었다고 한다. 정무위원장석에 담배와 물병을 가져다놓고 밤을 샜다는 소식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얌전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라는 반응까지 나오기도. 실제 본인은 '할 만하다'며 이미지 하락 같은 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9]
파일:유승민 강봉균.jpg
▲ 2004년 7월 SBS 생방송 토론에서 맞붙은 유승민, 강봉균 의원
당시 강봉균은 DJ정부의 핵심이자 열린우리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이었는데, 이러한 강봉균도 유승민의 노무현, 열린우리당 디스에 당황하기도 하였다.

또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를 놓고 여당과 야당이 대치할 때, 연기금 사회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정부와 여당을 공격했는데, 당시 최대 이슈였던 경제이슈와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색깔론을 적절히 배합한 이 신조어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이 무척이나 애용 할 정도의 파괴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주관으로 열린 연기금법 끝장토론회에서, 당시 이 이슈를 선점했던 유승민 의원을 향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작정한 듯 공격을 퍼부었는데, 유승민 의원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한나라당의 토론 에이스의 면모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이에 감명받았는지 천정배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에게 꽤나 호의적인 발언을 하였고, 심지어는 2015년 원내대표 시절 신당 이야기가 나오자 함께하고 싶은 인물로 유승민 의원을 1순위로 꼽기도 하였다. 한편 이 '연기금 사회주의' 즉 정부가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를 통해 기업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는 이 논리는 2016년 말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논란이 터지면서 다시금 주목받았다.

유승민, 11년전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사태를 예견했나

그해 유승민 의원은 정무위원회 베스트 의원 으로 꼽혔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서 수여하는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다.
파일:유유대전.jpg
▲ 2004년 5월 TV토론에서 맞붙은 유승민과 유시민
유시민과 유승민의 한국 경제를 놓고 벌인 일명 유유 대전이라 불리는 이 토론으로 인해 이후 유승민은 다른 당에서 TV토론 파트너로 기피하는 대상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2005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유승민에게 부탁한다. 이 때 박근혜 대표는 3차례 유승민에게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는데, 2차례 거부 끝에 유승민은 수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 나서 몇 가지 후회가 되는 것 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직언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승민은 자기가 할 말은 해도 되겠느냐는 조건부 하에 수락하여 대표 비서실장이 된다. 이후 2005년 10월까지 약 9개월간 비서실장직을 수행했다.

당시 원조친박이었던 전여옥한나라당은 정치인 세습이 빈번한 당으로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이면 성골, 친족이 고위직이면 진골이라는 식이었는데 유승민에 대해 세습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서 안 좋게 본 편이었다고 한다.[10] 하지만 이와 별개로 유승민의 연설문 작성 능력은 인정했다고. 이때 유승민은 박근혜의 연설문 담당이었는데 이 완벽하게 완성된 연설문을 박근혜는 늘 어디론가 가져갔고, 아니나다를까 항상 연설문이 걸레짝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안 고치고 그대로 한 건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 패배 승복 연설뿐이었다고 한다.

2005년 대구광역시 동구 을 재보궐선거[11]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 출마하였다. 해당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예비 후보가 15명이나 되었지만 당시 경쟁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3철' 중 한 명이라 불린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이었다. 심지어 보수성이 짙은 대구에서도 '대통령 친구가 내려온다' 라는 기대감에 지지율이 높아서 여론조사에서 모든 예비후보가 뒤지는 상황이었다. 이 때 현직 의원인 유승민을 넣고 여론조사를 돌리자 나름 대등한 지지율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대구 영향력 강화를 위해 현직 의원인 유승민을 사퇴시킨 뒤 전략공천했다.

당시 유승민은 현직 의원이라 재보궐선거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박근혜 대표와 김무성 당시 사무총장의 지시를 받고 당을 위한 일이라 생각해 수락했다. 맞붙은 곳이 대구광역시였으니 언뜻 보기엔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유승민에게 유리해 보였지만,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험지에서 5번째이자 마지막 도전을 하는 이강철 수석의 막판 거센 추격에 직면했고 결국 박근혜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 등의 거물급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수 차례 지원 유세를 해준 끝에 8%p 차이로 52%의 득표율을 올리며 대구치고는 적은 표차로 당선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강철 후보가 민주당계 정당의 불모지에서 44%로 선전하여, 유승민 본인으로서는 간신히 국회로 다시 들어간 셈이었다.

이 일을 두고 이른바 친박계 및 박사모에서는 '유승민은 박근혜 덕분에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으면서 자기를 키워준 박근혜를 배신했다'며 배신자 논리를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유승민을 발굴해 트레이닝시킨 것은 이회창이고, 당시 보수의 텃밭인 대구에서 지속적으로 밭을 간 열린우리당 이강철 전 수석으로 인해 대구 동구 을이 함락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당 내부에서 퍼져나가고 있었으며, 이러한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를 지켜낸 것은, 오히려 유승민이 비례대표직을 희생하고 동구 을 보궐에 당선되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준 업적을 세운 것이다. 유승민 입장에서는 1년 몇 개월간 멀쩡히 잘 하던 국회의원을 졸지에 사퇴하고 재보궐선거를 뛰는 도박수를 걸게 된 것이다. 만약에 당선되지 못했다면 정치 커리어 자체가 2년도 안 돼서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보궐선거에 나가게 된 것은 유승민 입장에서도 절대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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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보궐 당시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를 도와 대구를 방문한 이회창 전 총재[12]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매우 유력했다. 당시 노무현참여정부는 대국민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하였고, 그 반증으로 2006년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승리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에서 개가 나와도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로 한나라당 경선이 대선일 정도였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후보와 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 후보 간에 경쟁이 치열하였고 친이, 친박 간 갈등은 화약고와 같았다.

이 당시 이명박 캠프의 대표적인 책사는 정두언 의원이었고 박근혜 캠프의 대표적인 책사는 유승민 의원이었다. 이 둘은 중앙일보 주최의 토론회에서 격론을 벌였는데, 당시 유승민 의원은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전격 비판하고 그의 재산 문제, BBK 문제를 집중 공격하였다.[13] 그러나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고, 결국 대선에서도 상대인 정동영 후보를 따돌리고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후에 썰전에서 이 시기를 언급하면서 이 때 경선을 치르면서 박근혜 후보에 대해 "이 분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엔 좀 문제가 있겠다"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였기에 경선은 끝까지 도와주었지만 경선이 끝난 이후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증거로 2007년말 박근혜가 연 송년회 자리에 유승민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흔히들 유승민이 박근혜와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을 2011~2012년 정도의 당명개정 갈등사태로 잡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2005년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이었던 박근혜 의원에게 정수장학회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유승민은 '대통령 하실 분이 왜 그런거 하시냐, 나중에 그만둘꺼 지금 빨리 손 떼는 게 좋다' 고 권유했지만 당시 박근혜는 '비서실장이 왜 그런거에 신경쓰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2006년 제 17대국회 후반기에는 재정경제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는데, 외환은행 - 론스타 문제부터 변양균 신정아 스캔들, 국세청의 국회의원 현금로비사건 등 각종 참여정부의 실책 비판과 함께 권오규 정책실장이 경제부총리로 임명되자 "청와대 앉아서 경제를 망가뜨린 장본인", "대통령과 경제철학을 공유한다고 했는데 그 철학을 갖고 있다가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냐"라며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정책뿐만 아니라 의혹 제기까지 더욱 더 강력해진 참여정부 저격수로 거듭나게 되었다.
▲ 행시출신 경제관료인 강만수 재경부 장관과 논쟁하는 영상
17대 국회진출 당시 워낙 한나라당의 에이스 및 참여정부 저격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지라, 이른바 친이계의 '공천학살'에서 벗어나 무사히 공천을 받았고, 84.4%라는 역대급 득표율로 18대 국회에 입성하였다. 이때 상임위원회를 국방위원회로 변경하였는데, 17대 국회 시절의 명성을 살려 여당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또한 다른 주요 정책들에 대해서도 꽤나 비판적인 주장을 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였기에 4대강 사업의 찬반 여부를 묻는 기명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한나라당 의원 중 반대라고 표기한 극소수 의원 중 하나였고, 결국 표결에 기권하였다. 또한 무상급식에 대해서 찬성하고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실제로 시간이 꽤 지난 2017년 현재에도 유승민은 4대강 사업에 부정적이고 개혁적 보수 노선을 천명했기에 무상급식에는 찬성 입장을 보이며 대선 공약으로는 증세, 특히 부자 감세와 대치된다고 할 수 있는 법인세 인상을 내세웠다. 특히 감세에 대해서는 유승민은 부정적으로 생각한 세월이 오래됐다.관련기사

2011년 4월,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강제적 셧다운제 법안”)에서는 반대표를 행사했다.

2.1. 한나라당 최고위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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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연설하는 유승민
보수가 무엇입니까?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재벌대기업은 수십조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을 굶는 결식아동, 수천만원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대학생, 월 백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받는 할머니 할아버지,이 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라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제가 꿈꾸는 보수는 그런 보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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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좀 잘하지, 선거 앞두고 박근혜 대표 잘 지키겠다 그럽니다. 여러분, 박근혜 대표 끝까지 지키고 아무리 위기가 오더라도 끝까지 지킬 사람 누굽니까 여러분~!
(유승민! 유승민!)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의원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최고위원이 되었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밀렸지만, 친박계 단독 후보로 출마해 친박 표심을 쓸어담아 당원 투표에서 높은 득표율을 올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전당대회 출마선언문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유승민의 지지자가 아니면 주목해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후에 야당도 호평하며 화제가 된 2015년 국회 대표연설과 메시지가 거의 일치한다. 당시 유시민이 호의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유승민 의원, 차기 전대 출마선언문 전문

지도부 내에서는 홍준표 대표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특히 무상급식 국면과 박근혜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넘겨주는 과정에서 그 갈등이 절정을 달했다.

# 2011년 8월 21일에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여부를 정하는 주민 투표에 자신의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표하기 전인 8월 17일에,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 의원이 오세훈 시장을 당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쳐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14] 유승민은 '서울시는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한곳에 불과하다, 무상급식 반대를 당론으로 하려는 노력은 했는가' 등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고 [15], 결국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개표 가능 투표율 미달로 인해 오세훈 시장은 사퇴하고 말았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2011년 10월에 열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 등 한나라당에 악재가 겹치자 유승민은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하면서 현재의 한나라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의 전권을 넘겨준 뒤 박근혜 체제 하에서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표는 사퇴를 거부하였으나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이 유승민의 사퇴에 가세해서 동반 사퇴를 결의하자 결국 당헌 당규에 따라 내려와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홍준표 체제는 무너지고 박근혜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당시 유승민의 행위에 대해서도 친박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유승민은 이미 박근혜와 멀어진 상태였다. 심지어 당시 박근혜는 유승민의 최고위원직 사퇴를 반대했었다(!) 유승민의 진의는 여러 악재로 당이 국민들의 신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곧 총선과 대선이라는 굵직한 이벤트가 닥치는 만큼 당의 승산을 위해서는 현재의 지도부가 총사퇴하여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며 당내 악재들을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대위원장으로 박근혜 전 대표가 추대된 것은 어차피 박근혜는 대선 주자로 나가기 위해 언젠가는 당의 전면에 나서야 할 입장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당이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어쨌거나 당시 박근혜는 지지세 결집력 하나는 끝내줬으니깐 이른바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당시 박근혜는 보수 결집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이른바 '비대위원장'이란 직함 자체는 이미 당대표와 대선 경선까지 치렀던 박근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고 타 당의 비대위원장들만 봐도 정치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른바 독배를 마셔야 하는 자리이기에 박근혜는 당시 이 비대위원장 추대를 상당히 언짢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도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대선 승리로 이어지는 박근혜 정부 창출과 총선으로 얻은 많은 의석을 바탕으로 한 박근혜 정부 실정의 초기 책임자가 된 셈이다.

여담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2011년에 이미 유승민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전 대표와는 꽤 멀어진 상태라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물론 당시나 지금이나 안 알려진 건 매한가지라 이 당시에도 친박이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2007년 경선 패배 이후, 이명박 정부 시기를 유승민의 정치적 자폐 시기라 표현하기도 한다. 4대강, BBK, 내곡동 사저 등 거듭된 MB 비판 행보에 친박이라는 딱지 때문인지 이후 유승민은 지역구와 상임위원회 활동 정도만 찾아볼 수 있을 뿐 중앙정치에서 잠시 소외되고 사라졌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흔히 떠도는 '이명박근혜 시기 동안 온갖 꿀 빨다가 이제와서 깨끗한 척' 으로 시작되는 묻지마 댓글이 본인에게는 억울한 면이 있을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승민은 권력의 중심에 있어본 적이 별로 없다. 정치에 입문한 시기가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이었고, 이회창 대선 캠프에서는 노무현에게 패배를 맛보았다. 당이 깨지니마니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던 이명박근혜의 2007년 경선에서는 초반부터 열세가 점쳐져 모두가 꺼리던 박근혜 측 경선 캠프를 책임졌으며 그 댓가로 한동안 정치적 소외를 받게 된다. 박근혜 정부 때의 대립은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유승민은 늘 그 당시 권력자와 대치되는 편에 있으면서 대립하고 불이익을 받아온 쪽이라 할 수 있다.

3. 새누리당 전반기 시절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게 되고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 비대위원을 꾸려서 당명과 당헌을 고치는 등 기존 한나라당 색깔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유승민은 새누리당의 쇄신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지만 '새누리당'이라고 하는 당명 개정과 정강 정책에서 '보수'를 빼는 작업에 대해서는 전격 비판했다. 세간에는 이 시기부터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멀어졌다고 알려졌으며 유승민과 박근혜의 갈등이 거의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새누리당 의총 당명 수용. 유승민만 반대

하지만 19대 총선이 끝나기 전까지는 대놓고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았고, 김희국[16], 류성걸[17], 김상훈[18], 권은희[19], 이종훈[20], 조해진[21] 등 자신의 측근들이 모두 소위 보수의 텃밭 지역구에 공천을 받은 뒤에야 박근혜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해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22] 후에 국회법 파동으로 유승민이 청와대에 제대로 찍힌 이후 20대 총선에서 19대 때 공천받았던 유승민계 의원들이 줄줄이 공천 학살 당한 것을 보면 본인들을 따르는 의원들을 챙겨주는 부분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이후 대선 국면에서는 아예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2007년 경선 때 브레인 역할을 했지만 그 이후 박근혜와 멀어진 상태라는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당시에는 아직 친박계라는 인식이 있던 유승민이 빠지자 도리어 언론에서 주목하며 둘의 불화설을 제기하는 바람에 박근혜 측에서 부담을 느끼고 부랴부랴 선대위 부위원장 직함을 주었을 정도였으며 당연히 이건 하는 일 없는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자리다. 이회창에 의해 한나라당에 영입된 인사인데, 그가 박근혜랑 갈등을 맺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내각은 물론 청와대에도 발 한 번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훗날 유승민 의원은 "남들 다 가는 해외순방에도 난 발도 못 붙였을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당시 초선이었던 강원도 춘천의 친박계 의원인 김진태 의원마저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으니, 서로 간의 사이가 얼마나 나빴는지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고 나서는 코레일 파업 사태, 인사 문제 등 박근혜정부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들에게는 물론이고, 각종 소통과 인사문제 등등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미스터 쓴소리로 불릴 정도였다.

유승민 의원을 주목한다
유승민 의원, KTX 자회사 설립은 완전 잘못

여담으로 당시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윤창중 대변인에 대해 "너무 극우적이다"라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순방에서 성추행 추문이 터져 경질되었고, 훗날 실제로 윤창중은 박근혜의 탄핵 이후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등의 극우적 행보를 보이게 된다.

유승민 '윤창중은 너무 극우... 당장 사퇴해야
청주 태극기집회 참석한 윤창중 전 대변인

유승민 원내대표 출마 전까지 19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장과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상기 활동 내용은 상위 문서의 '국방정책 관련행적' 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2013년 1월 30일, 여성가족부 장관이 인터넷게임 관련 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의 1%을 징수하는 악명높은 손인춘법의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3.1.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84명에게 지지받고 선출된 당 원내대표이다. 비록 우리 당은 아니지만 청와대가 이렇게 유승민 원내대표를 무시하고 찍어누른다는 것은 국회에 대한 도전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이주영 의원을 꺾고 84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방침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고,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파동 등을 대놓고 비판하였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친박계 의원들로부터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그 중 유명한 발언은 2014년 국정감사 도중에 박근혜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질책하면서 나온 청와대 얼라들 발언이다. 이에 야당에서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쓴소리가 여당 내부에서 나온다면, 정부 여당과 청와대를 견제하는 야당은 존재감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과거 유승민의 아버지인 유수호도 같은 주장으로 여당의 양심세력으로 활동한 과거 이력을 생각한다면 부자가 이런 점에서는 비슷한 듯.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23] 발언.해당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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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공무원연금개혁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및 야당 의원들과 논의 중인 유승민
또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253명중 223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24],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게 된다. 당시 성완종 리스트와 세월호, 메르스 사태 등을 겪은 국회는 말 그대로 난장판에 가까운 여야 대립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유승민 운영위원장은 원활한 회의진행과 동시에 여당 야당을 중재하며 합리적으로 국회 운영위원회를 이끌어 나갔다고 평가된다. 또한 하태경 의원에 따르면,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에는 당 자체가 계파를 떠나서 할말 다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유승민 운영위원장, 국회 운영위원회서 웃음 선사

그러던 중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대한 비판과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공식적으로 비판하였다.뉴스링크[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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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상반기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는 그야말로 입법부의 실세로 등극했다. 4월 재보궐 압승으로 160석 거대여당의 원내대표였을 뿐만 아니라, 국회 운영위원장까지 겸임하고 있기에 그에게 가는 관심은 매우 남달랐다.

그러다 2015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가 상위법을 침해하는 시행령 제정을 규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하면서, 이를 야당과의 원내 합의를 이끌어 200표 이상의 통과를 이끌어 낸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주어야 한다."' 라는 발언을 하며 원내대표직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였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 중에 '여당 원내 사령탑이 뭘 도와줬는지 모르겠다'고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이 원조 친박이었지만 안그래도 몇 년간 이런저런 일로 박근혜 대통령과 껄끄러웠던 참에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국회의 편에 선 것으로 보고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국회법 파동은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으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는 것이, 당시 유승민은 원내대표로서 공무원 연금 개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야당과 힘들게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다. 야당의 이런저런 요구조건들을 쳐내던 중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서는 이 정도면 합리적이고 괜찮은 건수라고 생각하여 공무원 연금 개혁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세트로 통과시킨 것이다. 여기서 함정은 공무원 연금 개혁은 유승민이 굉장히 필요성을 느낀 것도 있었지만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국회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도 매우 원하던 것을 해주기 위해 부차적으로 딸려온 것인데 그걸 못 참고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을 골로 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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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유승민 운영위원장
한편 당시 야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보호하는 보기드문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의 유승민 저격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하였고, 선관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판단하기로 하였다.[26] 게다가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비서실 업무보고에서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이병기 비서실장이 유승민이란 이름을 뺀 채 '존경하는 운영위원장님'이라고 하자 "김관진 안보실장은 존경하는 유승민 운영위원장이라 했는데 왜 이병기 비서실장은 이름을 빼고 부르나"라며 지적하는 한편, 강동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운영위원회에 출석했으니 유승민 원내대표, 우리 운영위원장 인정하는 것이냐?"라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오히려 유승민 운영위원장은 "대통령 및 청와대 간부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며 야당의 맹공세를 받는 청와대 간부들과, 자신의 사퇴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박근혜 대통령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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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후 유승민 의원은 청와대친박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고, 일부에서는 '유승민이 정치를 하지 못하게끔 만들겠다'는 말도 내뱉어 논란이 되었다.[27]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의 시각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데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1. 국회에서 정한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어긋날 때 시정요구를 하게 된다 2. 일방적 요구가 아닌, 여야간 합의가 되어야 한다 3. 그것을 강제하고 있지도 않고, 최종 판단은 대법원이 한다. 라는 반박이 있었다. 의견이 분분한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찌됐건 당내에서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원내대표를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아무런 정당성도 없이 내쫓으려고 하는 상황이기에 '대한민국이 왕정국가인가?' 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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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사퇴촉구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당대표실로 향하는 유승민 원내대표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이라며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누르려고 시도한 사건은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사태였다.[28][29]

유승민 의원의 거취를 놓고 친박계비박계의 줄다리기가 한동안 진행됐다. 새누리당의 의원 구성을 보면 친박계 의원들보다 비박계 의원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원내대표를 사퇴시키려면 의원 총회에서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비박계 의원들의 수가 친박계 의원들의 수보다 더 많으니 친박계 입장에서도 억지로 끌어내리고 싶어도 끌어내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친박계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고, 비박계는 숫자는 많아도 친박계처럼 하나로 조직돼 있지 않았고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비박계의 중심이라던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정부와 부딪힐 때마다 고개를 숙여서 비박계의 구심점으로 작용하진 못했다. 이 두 계파의 갈등이 결국 2015년 7월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터지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승민 의원에 대한 대구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던것으로 보인다.
대구 오피니언 리더들이 선정한 국회의원 - 유승민 대구 1위

3.2.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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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는 유승민
그러다가 비박계로 분류되던 김태호 최고위원, 이인제 최고위원 심지어는 김무성 대표까지 친박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결국 2015년 7월 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게 되었다. 김무성 대표의 경우 평소에 '무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청와대에 자주 승복하는 편이었기에 대부분 그러려니 생각하였지만 다른 최고위원들, 특히 김태호 최고위원의 변심에 대해선 당시 국회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였을 정도로 논란이 많았다.[30]

그리고 이때 사퇴 기자회견을 하며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지키기 위해서 원내대표직을 고수했다는 발언을 하였다.[31]

'배신의 정치' 논란과 관련해 안철수 대선 캠프 출신인 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페이스북에 '내가 본 유승민' 이란 글을 기고하면서, "배신이란 말은 승민이 형과 반대되는 단어이며 그는 거친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다" 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은 "내가 아는 유승민 의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공병호 박사 또한 본인의 블로그에서 "배반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 라고 유승민을 응원하였다.

홍종호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수 - 내가 본 유승민

이영세 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이사장 - 내가 아는 유승민 의원

이영세 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이사장 - 내가 아는 유승민 의원

이후 종종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2015년 6월 기준, 아직까지는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간신히 이름을 올리는 정도. 2015년 6월 국회법 개정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마찰을 빚으며 오히려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은 더 오르기도 했는데, 이는 이름이 언론에 자주 노출돼서 생긴 효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편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2015년 7월 8일에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급등해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 김무성 19.1%, 2위 유승민 16.8%). 2015년 7월 10일에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대권 주자 지지도 1위에 올랐다. (1위 유승민 19.2%, 2위 김무성 18.8%)

재미있는 점은 새누리당 지지자 모집단 사이에서는 유승민에 대한 지지의사가 9.8%밖에 안 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 모집단에서는 20% 초반, 정의당 지지자 모집단에서의 지지율은 28%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링크 보수 진영 측 정치인인데 오히려 진보 진영 측 지지자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

한편, 일부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아예 새누리당을 나와 국민의당 등 야권 중도 세력에 합류할 가능성도 제기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이 의견에 대해 자신은 'TK의 적자'라며 탈당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4. 무소속 시절

4.1. 제20대 총선에서의 공천배제

새누리당의 공천 룰에 따르면 상대 후보의 가산점 비율이 높지 않아 공천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가상 투표에서는 친박에게 서포트를 받는 이재만 후보를 무려 2배차로 압도해 유승민 의원 쪽에 가능성이 보였다. 본인도 예비후보로서 지역구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유승민계 의원들은 죄다 공천 배제되고 유승민 의원 본인은 공천 보류 상태이며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관련기사

주도권을 잡고 있는 친박 측에서는 유승민이 먼저 탈당이나 불출마를 선택해라, 유승민 측에서는 그쪽에서 먼저 날 쳐내라는 식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상태. 한 마디로 바둑으로 치면 .[32]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 유승민의 세력은 박근혜의 본진인 대구광역시다. 만약 유승민이 상승세를 탄다면 말 그대로 박근혜의 영향력은 매우 약해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유승민을 새누리당에서 쳐내버리면, 유승민은 희생당한 자가 된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여러 삽질을 계속하고 있어 잘못하면 역풍이 그대로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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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유승민 공천관련으로 논란이 일었던 3월 어느날, 빵봉지를 들고 대구 자택으로 귀가하는 유승민
3월 22일에는 친박 중진인 홍문종 의원으로부터 유승민을 쳐내기로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미 결정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이유가 유승민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이자 애정의 표시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23일 오후 11시를 기해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후보 등록 마감시한 직전에 이루어진 일.

4.2. 새누리당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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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당과 동시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유승민
23일 마지노선까지 공천 여부가 확정되지 못하자, 결국 유승민은 2016년 3월 23일 밤 10시 50분에 기자회견을 열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공식적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아래의 글은 기자회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구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의 고민은 길고 깊었습니다. 저 개인의 생사에 대한 미련은 오래 전에 접었습니다. 그 어떤 원망도 버렸습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고민했던 것은 저의 오래된 질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였습니다. 공천에 대해 지금 이순간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 이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입니다. 정의가 짓밟힌데 대해 저는 분노합니다.


2000년 2월 입당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당은 저의 집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유일한 보수당을 사랑했기에 어느 위치에 있던 당을 위해 제 온몸을 던졌습니다. 그만큼 당을 사랑했기에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에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2011년 전당대회에 출마선언했을 때와 작년 4월 국민 대표 연설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당의 정강 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의 정강 정책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추구하는 저의 노선과 가치가 옳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저와 함께 한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 비박이라는 편가르기만 있었습니다. 국민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 권력을 천명한 헌법 1조 2항입니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오래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 뿐이고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 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길을 용감하게 가겠습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보수의 적자, 대구의 아들답게 정정당당하게 나아가겠습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반드시 승리해서 정치에 대한 저의 소명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 저의 시작이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나아가는 새로운 걸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와 뜻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선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동지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분들은 당을 개혁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제가 이 동지들과 함께 당에 돌아와서 보수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유승민 측은 당 지도부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탈당 발표 직전까지 무소속 출마에 필요한 유권자 300명 서명을 받을 준비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 서명을 받으려면 선관위에서 도장 찍힌 용지를 받아와야 하는데 그것도 안 받아왔다고.

그리고 김무성이 일명 '옥새 투쟁' 끝에 대구광역시 동구 을 지역에 대한 새누리당 무공천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이 지역구에 이승천 후보를 공천하면서 무투표 당선은 물건너갔다. 하지만 장소가 대구광역시인 만큼 당선 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 더해, 후보 본인이 비교적 타 정당 지지자들로부터 표를 얻는 면도 있으며, 현재의 분위기가 정치 당파 싸움에 휘말려 내쫓겼다는 식의 구도에 가까워 비교적 동정적, 우호적인 여론이 많은 면도 있을 듯. 결국 그의 영향력은 대구광역시 내 다른 유승민계 의원들의 당선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4.3. 20대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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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에서 승리해 기쁨을 만끽하는 유승민
그야말로 새누리당크레토스가 되었다.

비록 탈당했다고 해도 경쟁자가 더불어민주당 이승천 후보 밖에 없어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고, 결국엔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20대 총선에서 전반적으로 새누리당이 고전했기 때문에 김무성 책임론이 당 내부에서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유승민 의원이 복당하여 새누리당을 이끌어야 할 분위기로 가고 있다.

유승민계 무소속 후보들이 모두 낙선하고 혼자 살아남은 상황이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게 되었긴 했지만, 새누리당이 받은 타격 자체가 워낙 심대해 김무성 의원은 대권 도전에 빨간불이 켜진 것과 동시에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고 오세훈, 김문수는 아예 낙선이다.

여기에 원내대표직 사퇴를 놓고 자신에게 쓴소리를 했던 김태호도 당직을 그만뒀으며, 원유철 원내대표 또한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새누리당 129 대 전 야권 171의 여소야대의 상황이 이루어진 20대 총선 이후엔 박근혜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로서는 최고의 기회, 어쩌면 새누리당을 이끄는 리더를 넘어 차기 대권 주자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리얼미터가 18~19일에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달성했다! 물론 야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감안해야겠지만 총선 이후 지지율이 폭락한 김무성, 오세훈 등의 여권내 타 대선 주자에 비해서 명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야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있었다는 점은 오히려 중도적 성향으로 표를 끌어올수 있다는 정치적 장점이기도 하다.

심지어 오직 새누리당 지지자와 무당층들을 대상으로 한 당대표에 적합한 인물 순위에서도 1위를 했다. 이 조사에서 유승민은 20.3%의 지지를 얻었고 이정현 의원은 15.8%, 원유철 전 원내대표는 11.5%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 다음날 김무성 대표 사퇴를 시작으로 새누리당 기존 지도부가 총 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원유철[33] 의원 등의 임시 지도부가 친여 무소속 당선자들 모두의 복당을 허용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누리당 복귀가 확정적으로 보였으나 원유철 비대위원장이 유승민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이한구 전 공관위원장도 유승민을 저격하는 발언을 하여 아직 복당이 불투명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긴 다급한 상황이고, 한 사람의 무소속 의원도 아쉬운 마당인지라 결국 복당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안상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복당을 신청한 상태다.

그리고 2016년 4월 19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복당계를 제출했다. 그러나 1주일 후인 4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 유 의원에 대해 "비애를 느낀다며" 여전히 못마땅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복당을 반대했다.

박 대통령이 "복당 여부는 당이 결정할 일"이라는 원칙론적 발언을 곁들이긴 했지만, 20대 총선 공천을 거치면서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계가 다수파가 됐음을 고려하면, 유승민의 복당에 큰 장애가 생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6월 1일, 그동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강연을 하는 중에 5.16에 '군사 쿠데타'라는 수식어를 붙여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군사 쿠데타를 군사 쿠데타라 그러는 게 특이한 일이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보수 진영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전권을 잡은 이후의 새누리당5.16을 '군사 혁명'이라고 부르지, '군사 정변'이나 '군사 쿠데타'라고 부르지 않는다. 박정희라는 인물이 이 사건을 통해서 집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인사청문회를 할 때 야당으로부터 받는 단골 질문이 '5.16을 쿠데타라고 생각하느냐, 혁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거였다.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정치인이, 그것도 대구광역시에서 뿌리를 내린 정치인이 5.16을 쿠데타라고 부른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하여 정치권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실수로 그랬을 리는 만무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드러낸 것 아니냐는 예상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버티고 있는 한 새누리당 복당은 요원하니 앞으로 막 나가겠다는 생각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한 것 같기도 하다.

5. 새누리당 후반기 시절

5.1. 새누리당 복당

그런데 6월 16일 새누리당 비대위 결정에 의해서 복당이 허용되었다.

당시 세간의 예상은 전당대회 이후에나 복당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그 전망을 뒤엎고 빠르게 결정된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TV 보고 복당 사실을 알았다고 기사가 나왔다. #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복당 문제를 오늘 회의에서 처리하자는 비대위원들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를 묵살하는 건 중대한 범죄행위로 비칠 수 있다"는 발언에 비대위 결정 직후 당무를 거부 하는 등 친박계는 거세게 반발하였고 이번 결정을 주도한 권성동 사무총장과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수위 높은 발언들을 쏟아냈지만 친박내에서도 조원진, 김태흠 의원 등은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는 반면에 한선교, 서청원, 원유철 의원 등은 당헌 당규에 따라 비대위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눠져서 친박내에서도 의견 통일이 안되는 모습을 보였다. #

결국 일련의 복당 파동은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과를 수용하면서 당무에 복귀하고 비박계 권성동 사무총장과 친박계 김태흠 제1사무부총장이 나란히 사퇴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5.2. 복당 이후

7월 8일 배신의 정치 파동으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사퇴한지 딱 1년만에 청와대 오찬에 참석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35초 동안 얘기를 나눴다고.

이 35초 대화 내용중에 K2 공군기지 이전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청와대 오찬 3일 후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공항과 K2 이전을 추진하면서 대통령과 화해 분위기로 가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

8월부터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대권 도전을 시사하고 있다. #중앙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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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교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강연하는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와 더불어 공천파동을 극복(?)하여 주목받자 대학 등에서 강연이 빗발쳐 서울대,서강대,성균관대(유시민 아닙니다가 이 강연에서 나왔다) 등의 수도권 뿐만 아니라 KAIST와 전남대, 경북대 등 비수도권 명문대에서도 강연 요청이 들어와 '강연'을 통한 대권행보의 시작이라는 정계 인사들의 추측이 있었다.

9월 7일 한림대학교 강연에서 사법부의 셀프 개혁으론 안 된다면서 당내에서 반대하는 공수처 도입을 주장하고 자사고의 폐지와 함께 특목고도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 존재 이유가 특별하게 인정되는 걸 제외하고 외고는 폐지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박원순 서울시장이재명 성남시장이 실시하겠다고 밝힌 청년수당에 대해선 “서울시성남시는 재정자립도가 85%, 63~64%지만 전남이나 강원도는 자립도가 낮아 돈을 주고 싶어도 못 준다”면서 “좁은 대한민국 내에서 똑같은 혜택을 받아야 상식적으로 정의로운 정책”이라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즉,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맡기면서 이러한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 최근에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 도지사가 주장한 모병제에 대해서는 "모병제는 예산의 문제 이전에 정의의 문제가 있다"면서 "저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나라는 부잣집 아이들은 군대 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집 자식만 군에 가게 된다"라고 말했고 또 "자식이 전방에 가서 목함 지뢰를 밟거나 북한군과 충돌하거나 내무생활이 괴로워 자살하는 불행을 바라는 부모가 누가 있겠느냐"면서 "모병제 주장은 우리나라 안보 현실에선 정말 말이 안 되는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서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 도지사모병제에 대해서 공개토론을 제안하였다. #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전경련은 해체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또한 김종인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해 “성급한 법 시행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당장 (법을) 실현시키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자 “부패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경우는 없다”며 “김영란법이 성장률이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근거없이 함부로 하면 안된다"면서 맞섰다.#[34]
10월 6일 부산대학교 강연에서 “저는 불법폭력시위는 단호히 반대하고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공권력이 과잉 대응하는 것도 허용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백남기 사망사건에 대해서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국감기간중 각종 강연과 더불어 '배신자의 귀환' 으로 일컬어지는 복당 후 친박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고자 노력하였다. 심지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마찰로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이 진행되자, "당 지도부 결단으로 국감은 계속해야 한다" 며 주장하기도. 기재위 국감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에게 "박근혜 정권 경제정책은 그리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또한 유승민은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으로 재직하며 관련 법안을 상정하였는데, 이와 관련해 "저보고 일부 보수세력이 사회주의자라고 합니다. 사회적 경제가 사회주의입니까?" 라고 물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그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라는 답변까지 이끌어냈다. 게다가 박근혜정부 임기 말인 2017년 말~2018년 초에 "경제위기와 안보위기가 동시에 닥친다. 대비하고 있나?" 라고 질의하는 등 쓴소리를 대대적으로 날렸다.
파일:유승민 기재위.jpg
이에 다음과 같이 한겨례신문의 정치섹션인 정치 BAR에서 '막내기자가 본 국감 평가' 에서 이름값 하는 의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기재위 국감 이혜훈,유승민,김종인 '이름값'
10월 18일 TBS특집 릴레이 토크 콘서트- 난세에 길을 묻다에 출연해서 송민순 회고록 논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문제등등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서 심도있는 인터뷰를 하였다.#유튜브영상 1부 #2부 #3부 #4부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10차 개헌을 꺼내자 유승민 개헌 에둘러 비판 "나라 꼬라지가 이상하다"새누리당 잠룡중에서는 유일하게 정면으로 반대했었는데 공교롭게도 당일 저녁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44개 연설문을 연설 이전에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으로 입수, 수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5.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파국

JTBC가 최순실 태블릿 보도를 당일 오후 터트리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 강연에서 유승민, 崔의혹에 "증거 다 나왔다…이건 나라도 아니다"라면서 개탄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서 대국민 사과를 하자 유승민 "대통령 사과 정도로 끝날 문제 아니다"...국정조사·특검 요구라는 반응을 보였다.

11월 2일 새누리당 최고중진회의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특검이든 검찰이든 모든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자청하는 모습을 국민들이 원한다"면서 "이 문제는 대통령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모든 진실을 국민 앞에 그대로 밝히고 사죄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다음에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느냐, 대통령이 어떻게 되느냐는 국민 뜻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 대통령을 거의 초기부터 모시고 도왔던 사람으로서 정말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라는 말을 하였다.#

회의 후에는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국민안전처 장관 교체를 단행한 것을 두고 "사전에 야당에 동의를 구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쓴소리를 했다. 또한 최순실을 알았냐는 질문에는 "최태민 딸이고, 정윤회 부인이고, 그건 다 알려진 사실 아니냐. 최순실씨가 과거든 최근이든 국정 농단을 하는지는 몰랐다"며 "그걸 알고도 가만있으면 정상이 아니다. 난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11월 3일 전남대학교 강연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원인을 짚으면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느끼는) 분노의 근저에는 내가 뽑은 대통령인데 어떻게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나에 있다"며 "대통령에게 5년간 한시적 권력을 위임해 국가 일을 돌보라 했는데 그 권력이 아주머니한테 넘어가 장차관 인사하고 재벌 돈모으고, 딸 부정입학시키고 이런데 분노가 일어난 것"이라면서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죄 중에 제일 큰 것은 우리 헌법 질서, 대한민국 헌법 가치·질서를 파괴한 죄"라고 지적했다.#

최순실 특검에 대해서는 야당이 원하는대로 해주고 여당이 동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해명을 했는데 "최태민의 딸이고 정윤회의 전 부인이다. 이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며 "대통령 의상을 챙기는 모양이더라, 이 정도로 알던 사람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도 저렇게 한 줄은 진짜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몰랐다고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한 것의 책임감이 분명히 있다"며 "나중에 적절한 기회가 있으면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제가 분명히 해명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1월 10일 KAIST 강연에서는 정치권의 과학기술 정책의 조급함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책 기조가 바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4년 중임제로, 잘하면 8년 정도의 정치체제가 좋다고 생각한다"며 "중국도 최소 10년 정도로 안정적인 리더십을 통해 안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위기에서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와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면서 "조선·해운 부실에서 부동산과 가계 부채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까지 겹치며 대외의존도가 90%가 넘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타격이 걱정된다"며 "트럼프가 당선인 시절 한미 FTA를 문제 삼은 적이 있어서 재협상 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과 창조적 파괴, 기업가 정신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며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국민 세금만 축내는 좀비 기업들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면서 "과거 우리 정부가 은행의 손목을 비틀어 재벌을 키웠듯이 지금은 신생 벤처나 스타트업에 대해 투자를 하든 융자를 하든 정부가 노골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11월 13일 비박계의 비상시국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서 김무성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나선 데 대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대통령께서 권한을 완전히 내려 놓는 것을 포함해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나라와 국민을 생각해 결단을 해야 한다"며 "일단은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입장"이라면서 "새누리당 식구로서 탄핵이다, 하야다 이런 말을 지금 입에 담기 보다는 대통령께서 국가를 생각해 어떤 결단이든 하실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고 대통령 탈당 주장에 대해서도 "그건 당이 좀 비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대통령과 당과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가 문제"라고 밝혔다.#유승민, "박 대통령 탄핵 동의 못해…탈당도 반대" 즉, 김무성새누리당박근혜의 관계에 선을 긋고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반대하고 대통령의 하야 같은 결단을 촉구한다는 이야기다.

11월 15일 비박계의 임시 지도부인 비상시국위원회 12인 공동대표중에 한명으로 선출되었다. 비상시국위원회 출범으로 분노한 이정현 대표가 지지율 합쳐서 10%도 안되는 대선주자들이 당을 먹칠한다면서 대선주자에서 사퇴하라고 남경필, 원희룡, 김문수. 오세훈한테 막말을 하였으나 정작 비상시국위를 주도한 김무성친박이 정치생명을 날려버리려고 했던 유승민을 향해서는 대선주자 자격이 있다면서 칭찬하였다. 특히 유승민에 대해서는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일부러 방에 가본 적이 있는데 책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여있더라. , 새누리당에 필요한 발상의 전환,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유 전 원내대표의 발상의 전환, 역발상을 매우 존중한다"”며 “유승민 의원은 저 사퇴하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11월 16일 오전 대구시당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대구경북시도민이 느꼈을 실망과 자괴감을 생각하면 참담한 심정”이라며 “박근혜 정부 탄생에 책임이 있는 사람,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히면서 “광장의 민심은 시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바로세우라는 명령”이라며 “이런 불행한 사태가 터지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발생한 이상 국민이 나서 더 나은 민주공화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저도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야당이 최순실 사태에 유 의원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그는 “야당 일각에서 저와 최순실과 엮으려고 여러 거친 말을 하는데 야당이 드디어 유승민 죽이기를 시작했다고 느꼈다”며 “최순실을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민심의)쓰나미로 인해 새누리당과 나라가 사라질 위기인데 당지도부가 청와대만 바라보고 맹종하고 지시만 기다리는 상황이면 보수를 결코 지킬 수 없다"면서 다시 한번 새누리당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했으며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 문제에 대해서는 “탄핵을 반대한다는 표현을 쓴 적이 없지만 지금은 탄핵의 시기가 아니다”며 “법절차에 따라 탄핵의 사유가 발견되면 착수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은 어떻게 시국을 풀어나가느냐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사임 문제는 대통령 본인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충분히 고뇌해서 결단하되 “사임하면 60일 이내 선거하면 되고 사임하지 않으면 법대로 절차를 밟으면 된다. 대통령 선거가 앞당겨지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불법을 심판하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기 때문에 헌정 중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겪고도 아무런 변화도 없이 똑같은 세상이 오면 국민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라며 “모든 진실을 밝혀내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고 이후 정치권이 국민의 듯을 받들어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 18일 서초포럼에 강연자로 나서 "이 정부 탄생하는데 책임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새누리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최근 사태에 대해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저희는 요즘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인데 새누리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름답지 못해 더더욱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검찰청에 나가든 (청와대에서) 대면조사를 받든 검찰이 정한 시간 안에 조사를 받아주길 원했는데, 결국 최순실의 공소장을 보고 나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정했나 보다"면서 "이왕 검찰의 조사를 받을 것이라면 국민과 약속한 대로 좀 성실하게 임해달라"고 촉구했다.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즉각적인 퇴진을 거부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야당이 거국중립내각을 이끌 국무총리 후보자를 추천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총리부터 선출한 다음에 총리는 장관들을 조각 수준으로 개편해야 한다"며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 결과, 또 국정조사 결과,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드러나면 국회는 즉각 탄핵에 착수하면 된다"고 적었다.#

박근혜가 현재 하야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탄핵을 하더라도 국회 주도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국정공백이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11월 20일 대한민국 검찰청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가담한 공범이자 피의자라고 발표하자 유승민 "일반시민이라면 당연히 구속기소…탄핵절차 서둘러야"라고 입장을 밝혔다.

11월 24일 새누리당 대구시당 강연에서 유승민 "대통령 주변서 호가호위한 홍위병 몰아내야"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것은 최근에 친박에서 유승민 비대위원장설을 흘리고 친박지도부에서 유승민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등 유승민과 손을 잡을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에 대해 유승민 "朴대통령 담화 진정성 없어…탄핵 불가피할 듯"라는 반응을 보였다.

12월 1일 새누리당박근혜 대통령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한 이 후로 비박김무성 “대통령 퇴진 약속 땐 탄핵 불참” 유승민 “여야 협상 결렬되면 탄핵 동참”이라는 입장으로 갈려있는 상황이다. 김무성 의원은 대통령이 4월 퇴진 약속을 한다면 여야 협상과 관계없이 탄핵을 할 필요가 없으니 불참한다는 입장이고 반면에 유승민 의원은 대통령이 4월 퇴진 약속을 하더라도 여야 협상이 결렬된다면 탄핵에 동참한다는 입장이다.

12월 4일 격론 끝에 與 비주류 "여야 합의 불발시 9일 탄핵표결 참여로 정해졌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그동안 비박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했던 비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분이 적었던 유승민 의원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원하는 민심의 영향도 있겠지만 세력 구도 재편으로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주말동안 ‘반전’ 주도한 유승민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주말동안 “총회에 꼭 참석해 탄핵에 참여하도록 의원들을 설득해 달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일일이 부탁하면서 설득한 것이었다.

12월 8일 페이스북과 보도자료를 통해서 유승민 "오로지 정의가 살아있는 공화국만 생각하며 탄핵 표결"한다면서 공식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234표로 가결된 후 유승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소식에 "가장 고통스러운 표결"이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12월 11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통과된 이 후로 잠잠하던 친박에서 친박 50명 심야 회동, 모임 결성…김무성 유승민과 결별선언을 하였다. 이 모임의 이름은 혁신과통합연합이며 이인제 전 의원, 김관용 경상북도도지사. 정갑윤 국회의원이 공동대표로 결정됐으며 친박계 국회의원 51명이 참여한다. 현재 상황에서 친박이 이런 모임을 결성했다는 것은 나 탄핵 반대했어요!라고 인증하는 것이며 알아서 순장조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유승민은 당 안에서 보수 개혁 노력…희망 0.1%도 없을 때 탈당한다고 말했었는데 이번 친박계의 모임으로 인해 진짜 0.1%의 가능성도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누리당 분당이 가시화된 것이다.

12월 16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승민이 밀어줬던# 나경원이 패하고 정우택이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탈당하지 않고 당분간 당에서 노력할 것이다라고 해서 네티즌한테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만 이미 12월 14날 비대위원장 선출까지 지켜본다고 인터뷰 했었다.#

12월 18일 유승민 “전권 행사 비대위원장 아니면 어떤 제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에서 받아주기 힘든 제안을 한 것인데 탈당을 위한 명분이라고 생각된다.

6. 개혁보수신당 시절

12월 21일 김무성 유승민 등 비주류 의원 35명 탈당 결의, 12월 27일 분당을 선언했다.

12월 27일 유승민을 포함한 비박계 의원 29명 집단탈당…'개혁보수신당' 창당 선언을 하였다.

2017년 1월 2일 JTBC 뉴스룸 토론에 나와서 검증의 시간을 가졌다. 전원책의 '박근혜 게이트에 관련하여 최순실을 알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통령을 쥐락펴락 하는 수준인지는 몰랐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하며 그 당시 무능하였다고 자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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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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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어젠다 2050 활동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구)의 주도로 정당, 이념, 지역을 초월한 어젠다 2050(Agenda 2050)입법모임을 구성하였다. 상대적으로 온건, 중도적, 개혁적 보수, 진보, 중도 성향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해서 화제를 모았다.

어젠다 2050은 고용형태 다변화에 맞춘 복지개발, 교육과 고용의 유연성과 사회보장성 강화, 조세 수입구조의 다변화, 복지 전달 체계 전면 재설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 등을 미래 입법 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를 두고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만남, 초당적인 입법모임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향후 정계개편의 단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하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7. 바른정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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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정당 창당식에 앞서 국정농단 사태를 반성하는 바른정당 의원들
1월 15일 일명 육아휴직 3년 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자녀 한 명당 육아휴직 기간이 1년인 민간기업 근로자도 공무원처럼 최장 3년까지 쓸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육아휴직을 만 18세 이하 또는 고교 3학년 자녀를 둔 근로자까지 세 차례 나눠 쓰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담겨있다.#

1월 1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큰일 난다고 본다. 확실한 개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그분의 삶 자체가 개혁과는 무관한데 갑자기 대통령을 하려고 하시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이어 “반 전 총장은 빈곤층 문제나 재벌 개혁, 경제성장의 해법 등에 대한 고민을 평생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라며 “다음 대통령은 서민 주거, 비정규직 차별, 보육 등 사회 전 분야를 개혁해 국민들이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KBS 특별기획 대선 주자에게 듣는다에 출연하였다.#

1월 23일 '체불임금에 대해 국가가 선지급하고 후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발표하였다. 또한 대체휴일제를 해도 일부의 근로자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간다며 전 영역으로 확대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1월 25일 대선 출마 선언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하루 미뤄진 26일 출마 선언할 예정이다. 남경필 도지사와 출마 날짜가 겹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7.1.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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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선
2 자유한국당 홍준표
3 국민의당 안철수
4 바른정당 유승민
5 정의당 심상정
6 새누리당 조원진
7 경제애국당 오영국
8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9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10 민중연합당 김선동
11 통일한국당 남재준 사퇴*
12 한국국민당 이경희
13 한반도미래연합 김정선 사퇴
14 홍익당 윤홍식
15 무소속 김민찬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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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승민 후보 대선포스터.jpg
▲ 유승민의 제19대 대선 포스터
보수의 새 희망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대선 당시 유승민이 내건 슬로건과 뒷받침 구호
1월 26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유승민 대선출마 선언…"정의로운 민주공화국 이뤄낼 것" .출마선언문 전문 이미 전날 당내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였고 오세훈, 원희룡 등의 후보군이 불출마를 선언하게 되면서 바른정당 후보 경선은 유승민과 남경필의 1:1 구도로서 치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출마 선언장에 유승민 지지를 위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입당한 홍철호 의원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등장해서 공개 지지선언을 하였다.

1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승리할 보수 후보로 단일화 노력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겠다'면서 '단일 보수후보론'을 제기했다.아울러 "야당에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권교체' 이야기를 많이 하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정치교체'를 말하고, 또 어떤 분은 '시대교체'를 말하는데, 나는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물론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유승민 '단일 보수후보론' 제기…"文 이길 후보로 단일화"

설날 연휴기간에 김종필 전 총리를 예방하고 1월 31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부인 손명순 여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보수 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유승민, 상도동으로 MB 사무실로… 보수 결집 잰걸음"

2월 1일 1호 공약인 육아휴직 3년 법에 이어서 대선 2호 공약으로 일명 칼퇴근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퇴근 후 SNS 등을 통해 지시하는 '돌발노동' 제한, 퇴근 후 11시간 최소휴식시간 보장, 1년 단위 최대근로시간 규정, 기업에 근로시간 기록‧보장 의무화, 근로시간 공시제 등이다.유승민, 근로시간 공시제 도입 등 '칼퇴근 시대' 공약 발표

2월 3일 중소기업의 육아휴직제도 정착을 위해 고용보험을 대신할 "정부 차원의 부모보험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유승민 "고용보험없는 열악한 中企위해 '부모보험' 추진

2월 5일 대선 3호 공약으로 창업하고 싶은 나라’ 정책을 발표하며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학원을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바꾸어 내자”고 밝혔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에서 혁신적인 창업을 통한 ‘혁신성장’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혁신안전망’ 구축,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 중소·벤처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창업교육 지원 예산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유승민 “고시촌을 실리콘밸리로”···‘창업하고 싶은 나라’ 정책 발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승민/19대 대선 공약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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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선주자를 검증한다 특집 프로그램에서, 2월 6일자로 유승민 후보가 출연하였는데 개성공단 재개 및 금강산 관광은 "당장 재개하지는 않을 것"이며, 북한 인권과 관련된 국제 제제에 "당연히 동참"한다고 밝혔다. 미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북 선제타격론' 에 대하여 미국의 요청이 있다고 한다면? 이라는 질문에 "핵공격의 징후가 임박할 때만 동의" 라고 밝혔다. 선제타격론에 대해 조건부 동의를 나타낸 이는 유승민 의원 뿐이며, 유 의원의 안보관과 대북관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선 주자들 가운데서 가장 보수적이다. 또한 위안부 협상과 관련하여 '이 협상은 잘못되었고, 재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폐기할 것이다" "역사와 주권은 양보가 없으며,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평생 안고 가야 할 것" 이라고 밝히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2월 13일 대선 4호 공약으로 재벌총수 개인기업 설립금지·사면복권 불허등등 재벌 개혁 정책을 발표하였다. "지금 중소기업, 자영업, 창업벤처에 종사하는 수많은 국민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재벌 대기업이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와 경쟁을 하는 것"이라며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재벌총수 일가가 계열사 일감을 몰아받기 위해 개인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재벌총수 일가와 경영진에 대한 사면·복권은 원천적으로 금지, 야권의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주장을 수용하고 공정거래 관련 법률 전반에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등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장치를 신설·강화하고 공정위를 전면 개혁해 독립성과 공정성, 전문성을 높이고 소비자 보호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등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유승민 "재벌총수 개인기업 설립금지·사면복권 불허"(종합)

2월 16일 SBS 특별기획 '대선주자 국민면접' 마지막편에 출연했다. 다른 대선주자에 비해서 면접관들의 질문이 날카로워서 진땀을 뺐으나 잘 대처했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대체적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1부#2부#3부#4부

이와중에 '대선주자 국민면접'에서 나온 발언중에서 "여성가족부가 독립된 부처의 위상이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들이 여가부의 존재를 꼭 좋아하시는지도 잘 모르겠다"[35]면서 "근로현장에서의 성차별문제는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분들은 뭐라고 그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폐지하면 좋겠다"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대체적으로 남성의 비중이 높은 사이트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었고, 여성의 비중이 높은 사이트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36] 그리고 유승민 여가부 폐지발언 논란…"양성평등은 모든 부처의 업무"라는 기사의 네이버 댓글이 5800개가 넘게 달리며 화제가 되었다.

2월 19일 대선 5호 공약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등 어르신 복지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48.8%로 가장 높다"며 "가난한 어르신들의 빈곤대책을 마련하고 건강도 챙겨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후보가 그동안 주장한 중(中)부담, 중(中)복지에 기초를 둔 이 공약은 노인의 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 탓에 기초생활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100만명에 달한다며 '가혹한 빈곤의 연대의무'를 없애기 위해 부양가족 조항을 폐지하고 65세 이상 노인의 병원비와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낮추고 치매와 장기요양 환자에 대한 지원 강화를 위해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본인부담금 단계적 폐지 ▲국가지원 대상자 확대를 위한 치매등급 기준 완화 ▲치매 3대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예방등을 공약하였다.유승민 "기초생보제 부양자 기준폐지"…복지 1호 공약 발표

2월 23일 대선 6호 공약으로 Δ안정 고용 Δ안심 임금 Δ안전 현장 등 이른바 '3安(안)노동, 일하면서 제대로 대접받는 나라'를 골자로 한 노동공약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총량제, 최저임금 2020년까지 10,000원 이상, 동시작업 금지, 고용보험 강화등을 담고 있다.유승민 '일하면서 제대로 대접받는 나라' 노동공약 발표

2월 26일 대선 7호 공약으로 Δ양육수당 대폭확대 Δ공공보육시설 확대 Δ아동수당 도입 Δ초등학교 4시 하교 등을 골자로 한 보육공약을 발표했다.유승민, 양육수당 40만원·아동수당 10만원·초등학교 4시 하교

3월 2일 대선 8호 공약으로 Δ국민연금 최저연금액 80만원까지 상향 Δ건강보험 본인부담율 인하 및 본인부담상한제 혜택 대폭 확대 Δ국민기초생활보장 혜택 차상위계층까지 확대 Δ소득하위 50% 어르신들의 기초연금을 차등적 인상등을 담은 복지 공약을 발표하였다.유승민 "최저국민연금 80만원까지↑"…'빈곤층' 복지공약 발표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에 대해 "탄핵은 헌정사의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 역사가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지난 4개월간 대한민국은 극도의 분열과 대립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며 "이제 분열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득실과 진영의 덫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자"며 "더 이상 분열과 대립으로 대한민국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께 호소한다"며 "남들이 뭐라고 해도 대통령을 생각하면 저는 깊은 회한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다"는 소회를 전했다. 유 의원은 이어 "같은 국민들끼리 서로를 향했던 적대감을 녹일 수 있도록, (박 전) 대통령께서 국민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거듭 호소했다.유승민 "朴에 회한과 안타까움…진심으로 승복해달라"

3월 13일 유승민 의원은 전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판결 불복선언을 한 것에 대해 “헌재는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가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고 결정했다”며 “이런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것은 법치국가를 뒤흔드는 것이고 국민에 대한 배신, 헌법에 대한 배신”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유승민 “박근혜 헌재 결정 사실상 불복, 국민·헌법에 대한 배신”

3월 15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지상욱 의원이 바른정당에 입당하면서 유승민 공개 지지선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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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선 토론회를 앞두고 손 잡은 유승민 후보와 남경필 후보
3월 19일엔 바른정당의 첫 경선 토론회가 열렸다. 상대는 현직 경기도지사인 남경필이었으며 이 토론회에서 양 후보는 자유한국당과의 단일화, 안보 공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설전을 벌였다. 이 토론회에서 유승민은 국민정책평가단 응답자 290명 가운데 183명의 선택을 받으면서 남경필 후보가 받은 107명의 국민정책평가단수를 제치고 승리하였다. 이후 2차, 3차 토론회가 연이어 열렸으나 이후로도 유승민은 토론회 평가에서 연전연승하며 승기를 잡아갔다.
파일:유승민 대선추보 선출.jpg
▲ 바른정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후보
3월 27일, 결국 62.9%라는 압도적 득표수로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꺾고 19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이자 바른정당 대선 후보로서 선출되었다.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확정(상보)

4월 13일 SBS에서 실시한 대선토론회에서 호평받았다. 대선토론회 이후 실행한 '누가 가장 잘했나?' 여론조사에서 3위에 위치했다. 대개 지지율 대결로 가는 이런 조사에서 지지율보다 높은 득표율이 나왔다. 방송 이후 실검 1위도 찍고 방송에 나온 후보 5인 중 가장 오랫동안 실검 20위권을 지켰다.

4월 15일 오후 1시 30분 직접 대선 후보 등록을 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는 바른정당 내의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미약한 지지율로 인한 선거자금 회수 불투명이라는 압박으로 후보직 사퇴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는 기사에 대해선 후보 사퇴는 없을 거라 딱 잘라 말했다.

결국 5월 1일, 바른정당 13명의 의원들이 친북좌파세력 집권저지를 명분으로 탈당하여 홍준표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바른정당은 정의당과 같이 원내교섭단체에서 벗어나게 되진 않았고 5월 3일 황영철 의원의 탈당 번복, 정운천 의원의 보류로 그래도 간신히 교섭단체는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대규모 탈당이 있었던 건 맞으니 당연히 바른정당과 유승민의 지지자들은 분노하였고 진보층 지지자들의 비웃음 덤이다. 여기에 자유한국당내 친박들은 우리가 복당을 받아줘야 할 이유가 있냐며 반발중이다.
굳세어라 유승민! -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시도가 결정됐던 바른정당 의원총회 직후 진행된 jtbc 토론회
그러나 유승민 본인은 대선완주의지를 꺾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이 모습에 비보수계 지지자들도 신념 있는 모습이 좋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진보계에서도 진보정당의 대부 권영길, 더민주 소속 정청래, 심지어 열렬한 문재인 지지자인 조국 교수, 진보 정당인 정의당 등이 유승민을 응원했다. 심상정은 마지막 토론회에서 아예 '나가신 분들 그렇게 살지 마시라, 정계 은퇴하시라, 유승민 후보 힘내시라'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친박청산과 보수재건을 목표로 나간 인물들이 현실에 타협한다는 핑계로 자유한국당에 꼬리를 내린 모습에 바른정당 당원수와 유승민 후보의 후원금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바른정당 지지율 상승의 모멘텀이 결국 바른정당의 자폭에서 나왔다.

5월 2일 마지막 대선 토론에서 의도적으로 2분 정도의 시간을 남겨 마지막 발언 때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힘들고 외롭지만 자신은 실망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 개혁보수의 길을 걷고싶은 이유까지 진정성있는 말을 했으며 이순신의 명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까지 인용하며 대선 완주 의사를 밝혔다.#영상 이 발언이 굉장히 진정성이 있었는 데다가 이 날 홍준표에게 수준 이하의 인격 모독까지 당했기에 넷 상에서는 동정표+멋있다는 반응이 폭발했다.

5월 3일 그 여파인지 여론조사 공표 마지막 날, 지지율 조사에서 마의 5% 넘은 통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박의 반대와 생각 보다 큰 반박여론으로 탈당을 번복하는 의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유승민 후보가 말한대로 5월 9일 끝까지 완주했다. 그리고 6.8%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4위로 낙선했다.

대선 기간 내내 지지율이 계속해서 낮았던 데다가 급기야는 집단 탈당 사태까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신을 지키고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으로 진영을 막론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출구조사에서 20대 30대 3위를 기록하는 등 젊은 유권자들이 많이 지지해 주었고 이는 그간 한국의 보수정당이 한 차례도 타게팅하지 않았던 '젊은 보수층'을 공략하여 발굴해 내었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군소 후보의 숙명과 같은 사표방지 심리가 작용하여 접전 가운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정작 유승민이 공략해야 할 보수 유권자들 가운데에는 배신자 프레임이 씌워져 지지는커녕 성토를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에도 대구에서 10%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후보 입장에서는 가능성을 보여 준 선거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끝내 10%를 돌파하지 못하여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며,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후보의 소속정당의 지지율로 여기는 통념을 안고 가야 한다는 점 등등 당차원에서는 위기론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바른정당 지도부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매우 침통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15분이 지나지 않아 삼삼오오 자리를 떴다.

2월 2일자 썰전에 출연했다. 등장 초반부터 전원책 변호사의 '좌파냐 우파냐' 사상검증에 절대 좌파가 아닌 우파 라고 답하고 유시민 작가에게도 확인받아 우파임을 입증하였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의 역할에 대해 '서민들이 어려울때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는 손을 뻗지 못했고 그 결과는 재벌 기득권 옹호의 이미지로 나타났는데 이걸 바꾸겠다는 것' 이라 답했다.

본인이 금수저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판사를 하실때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 정도 되는 집이었지만 후에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하셨다. 이런 상황을 두고 금수저라 하는 거에 큰 불만은 없다."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인정했다. 아버지 유수호 의원의 '사법파동'[37]을 시작으로 과거를 언급하기 시작하자 유시민 작가와의 비화도 나왔다. 유승민 의원은 유시민 작가의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배이자 중학교 선배인데 유시민 작가는 그 사실을 모른 체 토론 프로나 국회 등 만나면 막 대했다고 한다. 동문회에서 처음 유승민 의원이 선배임을 알았다고 하며 (원래 학연 같은거 신경을 안쓴다) 그래서 싸가지 없단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원조 친박 관계였던 2005년의 비서실장과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의 역할 등을 쿨하게 인정하였고, 2007년 경선 이후부터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해 원내대표 시절 그 절정을 찍었다고 고백하였다. 이에 유시민 작가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 관련하여, 유시민 작가가 '당시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으로서 적합하지 않았냐는 생각은 해봤나'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땐 그런 생각을 안해봤다. 그분이 정책이라던가 그런건 좀 부족하지만, 기본이나 원칙은 잘되어있고, 깨끗한 분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2007년 경선을 지나면서 "이분은 한 나라의 지도자는 안될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본인의)12년 전의 10개월 비서실장으로 정계 은퇴를 하라는 대선 후보가 있다. 그렇게 따지면 그쪽에도 정계 은퇴를 할 사람이 많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고, 유시민 작가는 그냥 공격하려고 하는 멘트라며 감싸주었다.

현재의 낮은 지지율에 대해서는, 이번 대선을 쇼트트랙에 비교하면서 "마지막 골인 선에서 발을 잘 뻗는 사람이 이기는 것 아니냐" 라며 앞으로 대선판도가 바뀔 기회가 반드시 오고, 대선 일정이 잡히고 진행하면 얼마든지 지지율 순위는 요동친다며 자신감을 비추었다.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내가 미래지향적인 국가운영 비전을 선언한다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후보를 찾는 과정에서 내가 눈에 띄일 자신이 있다" 라고 해석해주었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 의원은 "이런거 얘기하면 안돼요. 제 딸이랑 자꾸 비교해요." 라고 하였고, 유승민 후보는 딸이 관심을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게 있고, 현재 법대에 다니지만 그 쪽 보다는 취직을 하고 싶어하는 취준생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의원과는 애증이 있는 관계라고 밝히며 당의 외연확장에 도움이 되실 거라고 믿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표를 아바타라고 비판하며, 3철(양정철 전해철 이호철)이 문 후보의 비선실세가 아니겠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본인이 문 후보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 색깔론, 종북론이라고 지칭하는 비판에 대해 공격에는 나름의 근거의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군복무 1년으로 단축, 대통령되면 북한부터 가겠다, 사드(에 대한 입장)도 애매하고, 인권 결의안 북한 결재도 기억이 안난다고 하시던데 머리와 가슴속에 뭐가 들었으면 투표 연령 얘기하면서 굳이 북한에서 17세부터 투표한다는 말까지 꺼내나" 라고 하였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리인의 대리를 또 봐야 하냐며 출마한다면 지금 당장 내려와야 된다고 하였고, 유시민 작가는 야권에서는 황총리가 대선 나온다면 대환영이라면서 에둘러 비판하였다. 보수층 표가 분열되기 때문이다. 정책 검증에서, 첫번째로는 안보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우리가 사드배치를 두고 여야 싸움 할동안 중국은 우리를 이간질해 재미를 보고 있다" 라며 중국에게 확실하게 사드는 양보나 타협이 없다고 하여 분명히 입장을 전달하고, 중국이 북을 압박하여 핵문제가 소강되면 사드는 철수하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유시민 작가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라고 반문하자 유승민 후보는 "둘중에 하나 고르라면 경제보단 안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 질문은 전원책 변호사의 임기 5년안에 북핵을 제거할 자신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 저는 자신있습니다" 라고 거침없이 대답하였고, 트럼프 정부와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면 결과가 나올거라고 대답하였다.

출산율 정책에 대해, 평균 출산율 1.2를 올려보고자 지난 10년간 수십조원이 들어갔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교사나 공무원의 경우 평균 출산율이 1.4정도였다. 즉 육아휴직을 잘 쓸 수 있는 집단일수록 출산율이 높으므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3번 분할해서 휴직을 사용하면 저출산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제도화한 법적인 장치뿐만 아니라 기업문화 변화도 중요하다 라고 하였다. 이에 본인은 '칼퇴근법'이라는 정책을 실시하여 직장문화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전원책 변호사가 이에 '중소기업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제도부터 우선 시행하자는 의미이라고 말하며, 유급 휴직은 고용보험을 통해 실시하면 된다고 하였다. 인력대체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하였고 이에 전변호사는 너무 꿈같은 이야기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유승민 후보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라고 반발한 뒤 "프랑스나 스웨덴의 경우 출산율 반등은 시간과 경제적 부담을 국가에서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문제에 돈쓰는 건 아깝지 않습니다."라고 반박하였다.

유시민 작가가 유승민 후보의 중부담 중복지에 대해 물어보자, 법인세를 MB정부 이전으로 돌리고,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도 높인다고 하였다. 이는 야권의 후보들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지만, 유승민 후보는 국민 개세(皆稅)주의, 즉 모든 사람이 소득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는 제도를 주장하였다. 대한민국의 소득세는 하위 48%가 세금을 내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꼭 건드려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른바 표심 잡기와 여론의 반발 때문에 번번히 개혁시도가 좌절된 정책이지만 유승민 후보는 방송에서 떳떳하게 밝혔다. 만약 증세를 한다면 건드릴만한 재원이 소득세, 재산세, 종부세, 법인세 정도가 있고, 만약 거기서 부족하다면 부가세를 사회적 대통합을 통해 인상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경제분야 정책에 대해, 재벌들도 법 앞에서 흙수저와 평등하다며 "대통령이 되면 5년간 재벌 사면복권은 절대 없다. 재벌들 사면복권도 매우 어렵게 하겠다" 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또한 일자리 정책에 대해, "자신이 일자리를 몇만개 확충하겠다고 말하는 후보는 신뢰하기 힘들다"면서 현재 공무원 숫자가 지방 정부 중앙 정부 합쳐서 약 100만명인데 5년간 81만개를 늘린다는 것은 세금도 들 뿐더러 비현실적이라면서 문재인 후보의 공공일자리 81만개 공약을 디스하였고, 중소기업과 창업으로 국가의 화끈한 지원을 통한 확충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38] 비정규직 해소 문제에 관해서도, 법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강제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의 정책과 문화를 고용주들은 다 교묘하게 피해나가서 별 의미가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 이같은 정책은 효과가 있을 것이고, 하청업체와 같은 먹이사슬 최하층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관해서는 그들이 대부분 종사하는 직종이 대부분 위험한 일들이라며 비정규직의 안전강화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전원책 변호사가 저성장을 언급하며 잠재성장을 이끌 방안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창업에 길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젊은이들의 창업과 중소기업의 약진에 희망이 있다고 하며 IMF이후 대기업의 자체 구조조정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고, 그에 따른 부실기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서도,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바로 살렸을 것" 이라고 밝히면서, 해당 기업의 잠재력을 따져야 하며, 부실화에 따른 책임은 경영진과 이사회가 혹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아래는 마무리 멘트
다음 대통령은 총리나 장관도 없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안보위기에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른다. 진정성을 보여드리기 위해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하며, 진정한 개혁을 하고싶다. 저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출연 이후 댓글창을 보면 시청자들로부터 꽤 괜찮은 반응이 나왔다. 다만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오르지는 않았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정작 한동안 실검을 장악한 이슈는 유승민과 유시민의 딸들이었던 바람에 상대적으로 그의 소신이나 정책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고민이 묻힌 경향이 있다. 게다가 바로 다음 주에 거물급 대선 후보가, 그 다음 주에는 나름 이슈메이커인 후보가 출연해버리는 바람에 더더욱 묻힐 각. 유승민이 아직은 군소 후보인만큼 썰전 대선 후보특집 첫 주자로 나오는 것은 관심도나 시청률을 따져보아도 시기상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39]

2월 8일 강적들에 출연하였다. 게스트로는 함익병,강민구,이준석,김성경,이봉규,김갑수가 출연하였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에 대해, 유승민은 그들에게 본인이 상당히 엄하게 다루었다고 하며, 비서실장 시절 만약 최순실이란 존재가 박 대통령을 좌지우지 했었다면 가만히 안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근혜어' 를 둘러싼 패널들의 대화가 이어지자, 유승민 의원은 "박 대통령이 고전을 많이 읽었다고 하던데, 다양한 독서는 하지 않은 것 같다" 라고 디스했고, 함익병은 한술 더떠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의 어법은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을 두번 디스했다.

안종범 수석의 뇌물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유승민 의원은 본인의 32년전 위스콘신대 유학시절 만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시 무골호인같은 사람이었고, 이회창의 대선 준비에서 같이 활동한 전력이 있다고 밝혔다. 대선 패배후 자연스럽게 이회창계가 결집하자 다시 안 전 수석과 유승민은 뭉치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안종범 전 수석이 TV에 출연할 때마다 안타깝다고 하였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최순실의 농단, 즉 미얀마 대사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외교안보수석이나 외교부 장관이 모를리가 없었을 거라고 하였다. 물론 그들도 어느 정도 항변했겠지만, 그러한 주장을 단번에 무시하는 어떠한 힘이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박 대통령과의 친밀도에 대해서 본인이 원내대표시절 단 한번도 독대를 하지 않았다며 의사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였으며, 원내대표 사퇴당시 박 대통령을 찾아가려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통해서만 연락이 가능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원내대표 되고도 연락할 때 이들 중 한사람을 통해서" 했다고 밝혔다. 앞서서 유승민 의원이 정호성씨가 그 세명 중 가장 착하고 순박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박종진 앵커는 "정호성씨 통해서 했겠죠?" 라고 유승민 의원을 떠 보았고, 유승민 의원은 당황하며 웃어 넘겼다.

세월호 참사에 관해서도 유족들이 원한건 돈같은 문제가 아니라, 가슴속에 응어리진 그들의 한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다면서, 국회 연설하러 왔을 때 유가족들이 버티고 서 있으면 손잡고 이야기라고 해주었으면 좋았을 거라며 그런게 너무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갑수는 "유승민 의원이 바른정당의 바른말 하는 사람이 맞는다며" 이례적으로 보수진영 인사에게 극찬 하였다. 이어 본인이 대통령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거냐는 질문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구조하라 지시했을 거라고 말하면서, 본인은 세월호 인양에 제일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그걸 되게 싫어했다고 고백했다.[40]

대선 관련하여 황교안 총리의 대망론에 '대리인의 대리인'이냐며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이봉규는 황교안에게 친박 보수세력의 지지도가 가있는 건 유 의원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을 하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원조 친박이었던 전여옥을 예로 들며 "박 대통령은 지도자가 되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박근혜라는 당대표 지근거리에 있는 이상 갑자기 발을 빼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해 경선까지만 참여하려고 마음먹었다고 고백하였다.

존영 논란에 관해, 해당 사진은 자당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면 의례적으로 지역구에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은 복당후 개혁하려는 의지가 충만했으므로 존영 논란은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걸 떼어라 붙여라 하는 건 유치한 행동 아닌가 생각해 그냥 냅두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바른정당 창당시 그 사진을 고이 싸서 모셔두었는데 지금은 반납하라는 말을 안한다며 패널들을 폭소하게 했다.

최순실 연대 책임론에 대해, 본인이 박근혜 인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정계은퇴를 주장하는 야당 인사들의 공격이 있다며, 그렇게 따지면 문재인, 안희정 후보는 나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고, 본인은 그런공격 안한다며 해당 책임론을 부정하였다. 게다가 보수진영은 확 바뀌어야 한다며, "매를 맞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외면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제는 잘하겠습니다" 라는 발언을 하였는데, 또 김갑수는 '유승민 의원은 면죄부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라고 두둔하였다.

여김없이 딸 유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패널들은 이준석이 어떠냐고 질문하였고, 유승민은 "사위 공천권은 제가 행사하도록 되어있다"라고 말하며, '저야 준석씨 좋아하죠~'라는 애매한 답변을 하였다. 그러자 이준석은 '되게 어릴때부터 봐서 제 동생같다'라며 에둘러 말했다.

어르신들, 이른바 '박사모 단톡'에 도는 유승민의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5조 지원에 대하여는, 해당 법은 2006년 박근혜 당시 당대표 시절 여야의원 202명 찬성에 의해 통과된 법이며, 자신이 원내대표 당시 통과시켰던 사항은 한시적 운영비 지원 뿐이었다고 밝혔다. '유승민 아문법 5조지원'이 알려지자 대구 의원이 광주에 왜그리 퍼주냐며 욕을 먹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마무리로 '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이후 40년간 경제 공부를 해왔고, 국회 국방위원회에 8년간 있으면서 안보정책 역시 자신있다고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한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재벌 위주의 특혜 기반 성장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답했다.

유승민 의원은 여러차례 야구광임을 밝힌 적이 있다. 심지어 고교시절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는 야구를 보러가기 위해서 1박2일로 가출한 적도 있다고 밝히고, KDI 연구원 시절 야구동아리 가입과 감독도 했으며, 타 국책기관과의 야구 시합에서는 정식규격 야구장에서 홈런까지 쳐 봤다고 말한 바 있다.

숏터뷰는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유승민의 트레이드마크인 '청와대 얼라들' 사건을 패러디하여 진행하였다.

양세형의 숏터뷰 - 유승민 1편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3BHSDW-Ak4

양세형의 숏터뷰 - 유승민 2편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dDixadiuO3Q

7.2. 대선 낙선

저에게는 힘들고 때로는 외로운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지켜주신 국민들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 5월 9일 승복선언. -
대선 선거일인 5월 9일 밤 유승민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전하면서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목소리도 겸허하게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어 주시길 당부했다"면서 대선 패배를 사실상 승복했다. 유승민 "문재인 후보에 축하드렸다…좋은 정치로 보답할 것 대통령 후보들의 승복 연설 중 가장 명확한 당선인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깨끗하게 승복하는 인상을 남겼다.[41]

5월 11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는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변호사마저 유승민 후보에게 훈훈한 멘트를 날렸다. 유시민 작가는 홍준표, 안철수 후보의 승복메시지와 비교하여 유승민 후보가 가장 정상적인 승복메시지를 발표하였고, 패배를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유승민 후보 캠프 해산식을 보며 패배에 젖은 분위기가 아닌 따뜻하고 훈훈한 캠프의 모습을 보여주어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취임의 자리는 어제의 경쟁자가 찾아 더 품격 있었다
2017년 5월 10일 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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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당선자의 당선을 축하하는 유승민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에 경쟁 대선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참석하고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 여론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 이 또한 현실적인 이익의 추구라는 해석도 있다. 선거 결과를 승복하고 경쟁자를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대범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해 호감도와 지지율을 확보한다는 계산 아래 참석했다는 이야기. 여하튼 명분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좋은 한 수였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통합적인 인재 등용을 내세우는 만큼 유승민에게 새 정부의 경제부총리로 입각을 제안을 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한 인터뷰에서 '심상정, 유승민 의원도 내각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기에 해당 보도에 힘이 실렸다. 바른정당에서는 대변인 명의로 공식적인 제안이 없었으며 제의가 와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유승민 본인이 '제안 받은 적도 없는데 왜 기사가 나는지 모르겠다, 할 생각도 없다' 라고 말했고 바른정당에서도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후 선의를 갖고 축하를 해준 유승민 前후보에게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정치도의는 물론 상식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다. 더구나 경제정책에 대한 생각과 해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TV토론 등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라는 논평을 냈다.

결국 청와대에서도 유승민 의원에게 입각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발표하여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바른정당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백의종군"하겠다는 말을 했다. 일각에선 향후 바른정당의 진로를 이끄는데 당의 얼굴이자 대선후보를 지낸 유승민이 앞장서야 한다는 유승민 책임론이 대두되었고 측근인 이혜훈 의원, 유승민의 당선을 기원하며 선거 기간동안 국토대장정을 했던 이학재 의원 등은 대놓고 유승민이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다만 유승민 본인이 백의종군 의사를 거듭 밝히는 것으로 보아 당 대표 등 중책에 나서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강연 정치 등의 형식으로 외연 확장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

한편 5월 17일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맞아 하루 먼저 광주를 찾았는데 유승민 의원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새 정부에서 방침을 밝힌 대로, 유가족이 원하는 대로 제창하면 된다","5‧18은 우리 모든 국민의 아픔이고, 광주‧호남의 아픔"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루 전에 광주에 참배하러 온 이유는 번거롭지 않게 혼자 추모하고 싶어서라고

5월 20일 '유앤미' 서울 팬미팅이 있었는데 여기서 유승민 "文 대통령 진짜 잘해주기 기대…소통하는 모습 좋아"라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대선을 마친 소회에 대해 "국민들께 제 진심 알리려 노력했고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지금부터 더 낮은 자세로 정말 제 모든것을 던져서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 후인 27일에는 대구에서 동명의 팬미팅을 가졌다.

7.3. 낙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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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에서 김동연 후보자의 칼럼을 읽고 준비중인 유승민[42]

6월 13일 중앙대학교에서 청년과 정치라는 주제로 특강을 통해 강연정치를 재개하였다. #기사 #영상

그리고 같은 날 KBS2의 예능 프로그램 냄비받침에 이경규의 아이디어인 대선 주자들과의 인터뷰중 첫번째로 출연했다. 6월 20일, 27일에도 방송분이 전파를 탔다.

6월 18일 MBN은 안종범 수첩에 대해 보도했는데 여기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단독] 드러난 감정의 골…"K2 이전, 유승민 공 X"

6월 21일 서울대학교에서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였다. #기사 #영상 홍보 포스터의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문구 바로 아래에 어떤 사람이 종강이란 낙서를 하였고 이게 SNS에서 짤방으로 유행했었다. 그리고 이걸 유승민 본인이 특강의 PPT에 올려놨다. 그리고 '특강 주제에 대해 참 고민을 했었는데 누군가 이런 결론을 내렸더라. 이런 희망은 오히려 학생보다 교수님들이 더 원하지 않나?'라는 농담을 하였다. 위의 영상의 9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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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에서 강연하는 유승민
서울대에서의 강의에서 유승민은 여러분의 선배들이 3등,4등,5등을했는데 3등이 아니라 4등을 불러줘서 고맙다는 셀프디스를 날렸다. 사람이 많아 옆의 실내체육관에서 대형스크린으로 강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기도 하였다.

7월에는 별다른 개인 일정 없이 바른정당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8월 4일 행정부의 재량으로 단축할 수 있는 군 복무기간을 최대 6개월에서 3개월로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병역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기사

8월 17일, 대선 패배후 당대표에 취임해 열심히 여당과 문재인정부에 비판을 가했던 홍준표와 안철수대표와는 달리 조용히 있던 유승민은, 문재인정부 취임 100일동안은 말을 아낄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정확히 100일이 된 이날 장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남겼다.

https://www.facebook.com/sminyoo/posts/491737744524788

9월 15일, 비대위 무산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근황을 언급했다. 기사

그와 더불어, 소소한 미담 하나가 언급되었는데, 유승민의원 본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뒤에서 택시가 박았다고 한다. 그 택시기사는 당연히 대선후보였던 현직 4선의원인 유승민이 운전석에서 내리니 당연히 당황했겠지만, 유승민의원은 괜찮으니 그냥 가시라 했다 며 페이스북에 관련 일화와 오늘 누군가에게는 운 좋은 날이었으면 좋겠다며 포스팅을 마쳤다. '젠틀맨 유승민'이라는 별명이 돋보였던 일화중 하나. [정치부회의] 택시와 부딪힌 유승민, 차에서 내려 기사에게 건넨 말.

9월 말에는 몰려드는 강연 일정을 소화했다. 20일 부경대학교(사회적경제연구원 주최), 롯데호텔(국제신문 주최), 22일 서울 중랑구 주민회관(바른정당 중랑구 주최), 23일 평택 청소년문화센터(바른정당 유의동 의원실 주최), 25일 카이스트(카이스트 컨버전스 AMP 주최), 26일 경희대학교(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주최), 27일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대 영어대학) 등. 9월 19일 동국대학교 토크버스킹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학내 진보단체의 도발 예고로 전날 밤 취소됐다. 이 과정에서 다수 재학생들이 취소에 대한 불만을 토했고 유승민은 총학으로부터 취소를 종용, 통보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총학은 자신들의 서툰 중재와 대응에 따른 실책을 의원실로 넘기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다 사과문을 올리고 이 사건이 방송까지 타는 등 불미스럽게 마무리되기도 했다.[43]

9월 29일, 이혜훈 전 대표의 불미스런 퇴진으로 인한 조기전당대회 출마를 공식선언했다.출마 선언문 대선 이후 그간 후배 의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싶다는 의미로 2선 물러나있던 유승민이었지만 당내 통합파 의원들이 과감해지고 일부 평의원 뿐만 아니라 김영우 최고위원까지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과의 주도로 보수우파 통합추진위를 발족할 예정이라는 단계까지 본격화되자 당을 살리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10월 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1심 판결 이후에도 2심, 최종심까지 가는 게 당연한 법적 절차이지만 국민 통합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결심을 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고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 해야 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유승민 의원은 대선후보 당시"법치는 누구보다 엄격해야 하지만, 사법적 판단이 다 끌날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 "그때가서 국민들의 요구, 시대적 상황을 다 봐서 결정하겠다."고 사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한바 있다. *

10월 중순부터 국정감사 일정에 들어가자, 유승민 의원은 전당대회 준비와 탈당파들의 준비로 인해 이리저리 정신없는 와중에도 성실하게 국정감사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재부 국감에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열띤 토론과 함께 경제부총리의 의견도 귀담아 듣는 등 특유의 점잖음 을 보여주는 토론의 정석을 보여줬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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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재부 국감에서 KDI 선후배 듀오가 나란히 탑을 차지했다.

그 와중에 기존 새누리당의 경제통들이 대다수 바른정당으로 빠져나간 덕분에 한국당에서 경제문제를 다루는 기재위에서의 목소리가 눈에띄가 적어졌다는 기사까지 나오기에 이른다. 기존의 유승민, 이혜훈, 이종구의원까지 대표 경제통 3인방이 빠진데다가, 심지어 기존의 경제학 박사출신 경제통들이었던 류성걸, 이종훈 전 의원까지 친유계라며 숙청당했기에 환노위에서는 바른정당인 하태경의원이 민주당 강병원 의원에게 "국감 내용이 너무좋다" 는 칭찬까지 받으며 독감 투혼중이다. 그 이외에도 친유 지상욱 의원도 과거 유승민이 활약했던 정무위원회에서 카젬 GM대우 사장까지 국감 증인으로 불러세워 집요하고 날카로운 활동을 보여주어 국감 스코어보드에서 1위를 차기하기도 했다.

경제·노동정책에 손 놓고 있는 한국당
[국감인물]하태경 의원으로 '하태핫태'진 환노위 국감
[국감 인물]“한국GM 철수할 거냐” 몰아세운 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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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찍힌 유승민 의원의 국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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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행 위기인 부산세관본부 국감에서 홀로 씁쓸하게 앉아있는 유승민[44]

7.4. 바른정당 당 대표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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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정당 당기를 흔드는 신임 대표 유승민
11월 13일 치러진 바른정당 전당대회에서 56.6%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비교섭단체로 전락해버린 당 상황에 맞게 엄청난 각오와 비장함이 담긴 당 대표 수락연설이 상당히 당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회장 안에서 직접 연설을 듣던 일부 당원은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을 정도라고.당 대표 수락연설 전문 연설 영상 YTN에서 알짜배기만 편집한 1분짜리 영상

이후 13일 오후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예방했고[45] 14일 오후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예방했다. 중도보수 통합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만큼 안 대표와의 예방이 특히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축하난을 들고 전병헌 정무수석이 방문하였고, 문 대통령은 직접 축하전화를 걸어 국정협조를 당부하였다. 이에 유승민 대표는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을 것이라 화답하였다.

16일에는 전날 일어난 포항 지진으로 인해 아침 일찍부터 현장을 방문했다. 권오을 전 국회사무총장과 박인숙 의원과 함께 방문한 유승민은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다가가 하나하나 사연을 들어주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포항 모 아파트 현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대표는 5분도 안되어 현장을 떠났지만,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20분간 피해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피해상황을 꼼꼼히 챙겼다고 한다.

생색내기 방문에 위로·자원봉사 내세워 사전선거운동‘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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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이재민앞에 무릎꿇은 유승민, 양반다리 안철수, 홍준표는?

이런 미담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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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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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21일까지는 미국 중부에 있는 미시건대 한국학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의 미래에 관한 컨퍼런스' 참석차 3박5일 일정으로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한 ‧ 미 ‧ 중 인사들이 참석하는 이번 회의에서 유승민 대표는 한국의 안보, 경제, 정치 전반에 관한 기조연설과 컨퍼런스 연사로 참여하였고, 이 컨퍼런스에는 강일원 헌법재판관,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장관, 정구현 전 삼성경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하였다. 특이한 점은 강일원, 이석채, 정구현 등의 인물은 미시건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거나 교수를 역임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지만, "유승민 의원은 관련이 전혀 없음에도" 초청받았다는 점이다

한 블로거의 유승민의원 강연 짤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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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손호철교수의 수업에 보수정당 연사로 특강을 하게 되었다. "홍준표 대표대신 보수의 대표로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라고 말한뒤 시작한 강연에서, 진보정치의 대부인 손호철교수 앞에서 '듣기 거북하실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진보라는 사람들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디스하였다. 또한 "보수가 이렇게 '폭망' 한적이 없었다"며 보수정치의 반성과 나아갈 길에 대해 강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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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1월 30일 목요일 썰전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저번 대선기간 사뭇 진지했던 썰전 출연과는 달리 빼어난 입담을 과시했는데, 특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예방 거절을 "대통령도 못만나는 분인데.(홍준표 대표의 청와대 회담거부를 빗대며)"라고 하자 유시민 작가가 빵 터지고 말았는데, '유승민 대표님 조크가 많이 느셨다'라고 하자 "저도 살려고 발버둥치는중" 라고 답했다.

그 외에도 바른정당 의원들을 빼가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엄청나게 공작을 하신다"고 하는 반면, 문재인정부의 정책에 대해 생쌀수준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46] 국민의당과 통합 관련해서는 "(안 대표와의)서로의 성격같은건 극복해야" 라고 하며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썰전 패널인 박형준 교수는 '''제가 국회사무총장시절 유승민 원내대표를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는데 별로 고마워하질 않더라고 하자 유승민 대표가 당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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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기국회에서 논의된 국회의원 보좌관 신설에 반대하고, 국회의원 세비 2.6% 인상에도 당론으로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건은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가결되어 결국 보좌관이 신설되고, 세비 인상이 확정되었는데, 이에 유승민 당대표는 "2018년분 세비 인상분을 포항 성금에 기부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포항시청에 직접 세비 인상분을 전달하였다. 이번이 지진 이후 3번째 포항 방문이었다.

12월초 한창 비트코인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너나할 것 없이 비트코인(가상화폐) 대박을 노리는 분위기가 대두되자,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규제 방침을 내놓는다. 그와 동시에 비트코인 가격이 약 40% 폭락하였는데, 이에 유승민 대표는 "아직 전문가들도 비트코인의 성격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럴때 섣부른 규제를 한다면 우왕좌왕할 것" 이라며 비트코인(가상화폐)규제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놓았다. 유승민 "비트코인, 섣부른 정부 규제 조심해야"

정치인 중 드물게 비트코인시장 긍정론을 펼친 유승민에 대해, 디씨인사이드 비트코인 갤러리 등 각종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는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며칠 후 정부는 규제 대신, 투자자 보호를 천명한 가상화폐 거래허용 방침을 내놓았다. 그에 발맞추어 바른정당은 12월 15일 비트코인과 블록체인기술 전문가들과 함께 비트코인 정책간담회를 열었고, 곧 하태경 의원 등은 관련 입법을 준비하고 발의할 것이라 밝혔다.
바른, 비트코인 정책간담회…劉 "대책, 누구도 확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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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시아 정책 연구국[47] 관계자들과 북핵관련 현안토론에 참가한 유승민 대표
12월 14일에는 부산의 바른국민포럼에 참석하여 안철수 대표와 시간을 보냈으며, 그 이후에는 경남대학교에서 특강을 실시하였다.

8. 바른미래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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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미래당 창당의 두 주역인 유승민과 안철수
말도 많고 소문도 많던 국민의당과의 합당 절차를 마무리 함으로서 유승민은 바른정당에서 국민의당과의 새로운 통합신당인 바른미래당으로 당적이 바뀌게 되었다. 유승민은 국민의당의 대표적인 호남계 인사인 박주선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 바른미래당의 운영을 총괄하게 되었다.

KAIST 컨버전스 AMP 초청 특강 중 질의응답 과정에서 자신의 정견을 밝힌 바 개헌에 대해서 대통령 연임제냐 중임제냐가 큰 문제라고 보지는 않지만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자는 자유한국당의 의견에는 반대하며 내치와 외치를 딱 둘로 나누는 게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덧붙여 필요하다면 대통령을 견제·감시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자유한국당과의 바른미래당간의 명분없는 합당은 하지않는다고 확언하였다. 단, 선거에 한해 보수 진영내(한국당-미래당) 후보단일화는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연 영상(1시간 23분부터)
운동권의 뇌에 무언가 잘못 들어있다고 강력 비판한 유승민
자유한국당과 보수 적통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색채가 점점 우편향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용하는 워딩의 수위도 점점 더 올라 제법 독한 편이다. 아무래도 이도저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보 ~ 중도보수층 광범위하게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고, 이를 반대하는 강경보수~보수는 자유한국당으로 집결했기 때문에 마치 자유한국당과 같은 노선으로 보이는 듯한 모습은 자신과 정당의 커리어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도 싫고 자유한국당 싫다는 무당층을 공략하고자 하나 양당제와 사표론이 강한 한국 정치 풍토상 한국당과 같은 노선이라면 한국당을 지지하지 바른미래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점차 상황이 진행되면서 자유한국당과는 다른 자신만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유한국당이 남북 정상회담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폄훼에만 총력을 다 할 때 유승민은 "회담에서의 일부 성과나 문서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북한의 시행 의지이고 비핵화까진 갈 길이 멀기에 좀더 냉정한 머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 라는 식.

이렇듯 바른미래당은 점점 자유한국당과 다른 노선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하였고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살아남아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기초의원등을 잘 보존해낸다면 독자적인 생존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다.

8.1.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직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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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조사를 확인하고 침통한 분위기에 빠진 바른미래당 지도부. 순서대로 유승민, 손학규, 박주선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모두 0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으며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애매한 이념, 유승민계와 안철수계, 호남계간의 지속적인 갈등, 문재인 정부의 매우 높은 지지도 등이 패배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함께 바른미래당을 창당한 주역이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김문수에게도 밀린 3등을 하며 큰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 유승민 본인도 당대표이자 패장으로서 큰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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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대표직에서 사퇴하는 유승민
결국, 유승민은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에 이어 또다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이번 선거로 국민의당의 안철수계와 힘을 함친 것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이후 정치 행보에 대해 유승민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자유한국당으로의 탈당을 통한 보수대통합도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가 당대표에서 사퇴하면서 지적했듯이 친박에 대한 청산조차 제대로 진행도 못된 상태이기에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8.2. 사퇴 이후

이후 1달 동안 칩거를 이어가던 유승민은 약 1개월이 지난 6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하자 빈소에 지상욱 의원과 조문을 위해 방문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유승민의 아버지인 유수호 의원과 13,14대 국회 시절 및 자유민주연합 시절 등 꽤 많은 인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19대 대선 당시 김종필 전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주장 정말 잘했다"는 등 김종필 전 총리가 유승민 의원에게 꽤 호의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유승민 전 대표는 "고인께서는 큰 목표를 중시하시는 분이었기에 페허가 된 보수를 위해 힘을 합치라 하셨을 것"이라 발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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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의원 빈소에서 생각에 잠긴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
7월 노회찬 전 의원의 사망으로 꽤 상심한 듯 보인다. 심상정 의원처럼 같은 상임위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심상정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서로 굉장히 친한 사이였고, 또한 노회찬 의원 역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혀나간 유승민 의원에 대해 "이런 정치인이 있어야 나라가 발전한다"며 매우 호의적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대선 당시 경남 모 시장 유세중에 유승민 후보와 노회찬 의원이 서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굳세어라 유승민! 힘내십시오" 라고 응원한적도 있기 때문에 또한 유승민의 최측근인 이혜훈의원은 대놓고 방송에서 '절친' 인증까지 하였다.

유승민 의원은 지상욱 의원과 조문하였으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슴아프다"라고 하였고, 후에 온 이혜훈 의원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과, 노원병 당협위원장인 이준석 등 소위 '유승민계' 의원들의 조문이 두드러졌다. 더욱이 당시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의 보좌관은 SNS에 잔치국수 먹는 사진을 올려 빈축을 샀기 때문에 "보수의 마지막 품격을 지켰다"고 논평한 신문기사가 있었을 정도.

별다른 외부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으며, 정기국회 회의참석이나 기재위 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2018 국정감사에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에 지금까지 나긋나긋했던 국감과는 달리 사뭇 다른 태도로 "이제 책임질때가 됐다"며 사퇴할 타이밍이라고 강하게 압박하였다. 또한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이건 운동권들의 정신승리 수준이다"며 매우 강도높게 비판했다.[48]

또한 당시 모 방송사에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국은행에 금리인하를 주문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언급하며 '서별관회의에서 무슨 내용이 오고갔냐'며 이주열 총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승민의원은 "여당 의원님들께서 지난정부 금리정책에 문제의식이 많으신것 같은데, 그럼 왜 문재인 대통령이 이주열 총재를 연임할 때 반대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하자 당시 여당의 공격이 전부 무력화되었다고. 모 신문 기사에서는 직설적으로 "뼈를 때렸다"고 표현했다. 더욱 재미있는 건, 여당 의원들이 언급했던 '서별관회의'가 12월 경제팀 2기 출범시 부활했다는 것이다.

(기사내용중) 더불어민주당, 유승민 한마디에 과거정부 통화정책 공격이 모두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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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의원과 콜롬비아 프로제리아 환우 미겔, 그리고 홍원기군
10월 31일 아시아 프로제리아재단 후원의밤 행사에 지상욱 의원과 참석하였다. 설립자는 국내 유일의 프로제리아(소아조로증)환자인 홍원기 군의 아버지 홍성원 목사인데, 약 1년전부터 유승민 의원과 인연을 맺었으며 유 의원이 재단 설립에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고 한다. 작년에 홍원기 군의 사연이 언론에 잠깐 소개된 적이 있는데, 몇몇 유명인들이 접촉해왔지만 그때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유의원은 필리핀 프로제리아 남매 초청행사를 위해 주 필리핀 한국대사관에 필리핀 환우 입국초청장까지 직접 써주었고, 국회로 직접 홍원기군 가족들을 초청까지 했다고 한다.[49] 홍원기 군은 아버지 홍성원 목사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유튜브 채널 욘니와 치애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주 콘텐츠는 먹방, 여행 브이로그이며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들어가보는 것이 좋겠다.

자유한국당의 전원책 비대위원을 필두로 보수통합 떡밥이 상당히 강하게 일었다. 이에 기자들의 시선은 온통 유승민으로 쏠리게 되었는데, 실제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정치를 시작한다고 말한 황교안 총리와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전체 지지층) 1위, 2위를 다투고 있는 게 유승민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유승민 의원은 딱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해도 "미안합니다 요즘 인터뷰 안하고 있습니다"라고 거절하기 일쑤였는데, 드디어 김무성 의원과의 공식적 만남이 잡혔다. 정병국 의원이 주최한 모 토론회였는데, 유승민 의원은 스케줄 변경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엄청난 기대를 걸고 기다리던 기자들은 맥이빠졌다고.
김무성, 유승민 보고싶었는데 안와서 섭섭

11월 중순 유승민 의원은 한-아일랜드 의원친선협회장 자격으로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인구 480만의 유럽 변두리 낙농업 국가였던 아일랜드가 유럽 최저수준의 법인세로 글로벌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느낀게 꽤 많은 모양. 아일랜드의 외국인 직접투자금액(FDI)는 2016년 기준 1005억 달러로, 대한민국의 도착액 기준 FDI의 10배(약 100억달러)로 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네이버 모 블로거의 '더블린 식당에서 유승민의원을 만나다'

이 와중에, 유승민 의원과 20대 총선에서 맞붙을수도 있었던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자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대구시장 경선에서 불법 ARS 여론조사와 대포폰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 구속되었고, 이에 연루된 구의원, 시의원 총 6명과 관계자들 약 60명이 입건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사실상 자유한국당 대구시당과 동구 을 지역위원회가 초토화된 상황. 20대 총선당시 진박감별사를 자처하던 행동대장이었기에 사필귀정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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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강연중인 유승민 의원
11월 말과 12월 초 연거푸 이화여대, 연세대, 서울대 세 곳의 대학강의를 맡았다. 이와 관련해 '강연정치로 정치활동 복귀하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재 정치인인데 정치를 관둔적은 없다. 다만 저번에 했던 강연 약속을 지킬 뿐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보수를 어떻게 재건하는가 언젠간 국민들에게 말씀드릴 기회 있을 것"이라고 발언하여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일었다.

12월 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홍남기 후보자에게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다. 결국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최저임금과 52시간같은 정책이 너무 빨랐다" 라고 인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공무원 증원 관련하여 홍남기 후보자가 별 문제 없으니 계속 이어나갈것이고, 자연증가분이 포함되어있다고 말하자, 유승민 의원은 "그거 자연증가분은 포함 안됐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말하자 반박도 못한채 끄덕거리기만 하기도.

(기사내용중) '원인이 뭡니까' 질문에 홍남기 후보자의 멍해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최근 들어서 이학재 의원의 탈당과 최측근으로 꼽히는 류성걸 전 의원의 자유한국당 행으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늘어나고 있다. 류 전 의원의 복당은 유승민 의원의 지배력 상실이라는 의견도 있고 김무성 의원이 김성태 의원을 위시한 친무계 의원들을 먼저 복당시키고 자신은 대선 이후에 복당 했던 케이스와 유사하게 보는 의견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가 더 옳아보이는데 개혁보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유 의원이 전당대회 전에 바로 복당한다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편이라 최측근으로 꼽히는 사람들을 먼저 복당시켜 차기 공천에 유리한 당협위원장 확보와 같은 당 내 기반을 먼저 확보하고[50] 비박계 대표가 당선되어 진박청산과 같은 명분을 쌓고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면 측근들은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 유리하나 본인은 굳이 복당하지 않아도 한국당 후보를 이길 수 있다고 보아 복당하지 않고 총선 이후로 복당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가장 최신인 12월 19일 월간중앙 보도에 따르면 황교안 전 총리를 꽤 높은 차이로 따돌리면서 보수 차기대선 지지율 1위를 하였다. 주로 20대에서 40대까지 지지율에서 유승민 의원이 앞서고, 50대는 큰 차이가 없으며 60대 이상에서 황교안 전 총리가 월등한 수준.

보수 차기대권 지지율 유승민 20.5% 황교안 14.4% 등

2018년 대구에서는 유일하게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4년연속 수상중이다.
유승민 미래당 의원 백봉신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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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는 2018년 12월 말 제5포병여단 K-9 자주곡사포 폭발 사건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었던 이찬호 병장의 에세이 출간을 홍보하였다. 사고 이후 유승민 의원이 제일 먼저 조용히 병문안을 왔다 갔다고 한다. 해당 크라우드 펀딩도 유승민 의원이 경북고등학교 동문 카톡방에 소개해 후원을 독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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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유승민
▲ 유승민 의원의 서울대학교 경제 강연 영상
2019년에는 각종 대학강연에서 IMF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흐름과 대응방안, 저출산 문제, 복지의 방향성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주제로 충남대,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고려대, 경북대 등 다양한 대학을 돌며 강연을 하였다.

8.3. 손학규와의 갈등

한편 바른미래당의 당내 상황은 손학규계와 다른 의원들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 체제 아래 4월 보궐선거에 참패했음에도 손학규 대표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5월에는 당헌을 위반하고 최고위원 임명에 손학규계 인물을 2명 꽂아넣는 막장 행보를 손학규 대표가 보였다. 이후 6월 바른미래당의 혁신위원회가 설립되고, 혁신위원회에서 손학규 대표의 퇴진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손학규계 혁신위원장이 사퇴함으로서 혁신위를 무력화시켜버리는 등 손학규 체제의 독재가 이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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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혁신위원이었던 유승민계 권성주 대변인은 혁신위원회의 정상화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이때도 손학규 측 측근들이 모욕을 주고 권성주 혁신위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손학규계의 막장행적이 이어지고 결국 권성주 최고위원은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며 외상에 의한 백내장 진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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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손학규 대표가 추석까지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는 본인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윤리위원회를 이용하여 하태경, 이준석, 오신환 등 친유계 최고위원들과 원내대표 등을 제거하려는 짓을 이어나가갔다. 이런 손학규 대표의 패악질로 인해 바른미래당의 내홍은 더욱 심각해졌고 결국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탈당 움직임이 생긴다.

9월 30일부터는 손학규 대표, 김관영 전 원내대표 등 바른미래당 당권파들과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게 된 상황. 유승민 의원은 유승민계 의원들, 그리고 일부 안철수계 의원들과 함께 변화와 혁신이라는 당원 기구를 별도로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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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0월 발표된 유승민 의원이 대구 동 을 여론조사 결과 김규환, 김재수 등 한국당 후보에 모두 지지율에서 크게 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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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유승민은 12월, 본인이 본격적인 정치인생을 시작하다시피 하고 4선을 해왔던 지역구 대구 동구 을을 험지라고 규정지으며 대구 동구 을로 출마하여 5선 도전 의사를 밝혔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당 지지율 4%를 전전하던 새로운보수당에게는 험지가 아닌 곳은 없었다. (...)

9. 새로운보수당 시절

1월 3일, 공식적으로 새로운보수당 창당을 위해 오신환, 이혜훈 등 舊 바른정당계 의원 7명과 함께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1월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겪는 고초와 사면에 대해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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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총선 보수 야당 최고의 인재영입으로 꼽히는 김웅 전 검사를 직접 삼고초려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드라마로도 방영중인 책 '검사내전'의 저자로서 주로 형사부에서 사기사건을 맡아 왔는데, 이번 총선에서 "사기꾼 때려잡는 게 제가 제일 잘 하는 일이다"라는 강력한 워딩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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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작년과 같은 영남일보 여론조사에서는 대구 동구을 유승민 후보가 후보적합도에서 1위를 하여 상당한 기류변화가 감지되었다고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자 반 유승민 마케팅을 실행중인 몇몇 후보들에 대한 반감과 동구을과 대구광역시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K2비행장 이전이 사실상 확정되자 여론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9.1. 자유한국당과의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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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의 신설합당을 밝히면서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 중 "어떤 당직이나 공천권도 요구하지 않겠다 다만 딱 하나 새 보수신당 지도부께 지금까지 무급으로 고생한 당직자들 고용승계를 간절히 부탁드린다"라는 멘트를 날렸는데, 당시 '안철수 신당'으로 새 당을 창당하던 안철수 전 대표는 반대로 기존 국민의당 당직자들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던 참이라 당시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역시 유승민 전 대표는 다르다"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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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의원의 불출마로 보수 통합당의 중요한 모멘텀이 마련되었다는 평가가 절대적인 가운데, 조선일보에서는 사설로 "보수 분열 이후 이런 희생정신은 처음이라 감격스럽다"고 할정도 정치 평론 유투버 유재일은 "대선주자급이면 이정도 베팅은 해야 한다" 고 말했으며, 당 내 갈등은 이렇게 봉합하는 게 바로 '정치'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유승민 전 대표는 불출마 기자회견 이후 바로 대구 동구의 지역사무실을 찾아가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51]

천안함 10주기 추모식에 참여하며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10. 미래통합당 시절

10.1. 제21대 총선

3월 27일 잠행을 깨고 진수희 후보 캠프에서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계파를 가리지 않으며 지원요청이 있는 어떤 후보든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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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원유세를 한 후보들의 과반수가 친유계열이 아닌 다른 계파이며, 말 그대로 계파를 가리지 않고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는 언행일치를 보였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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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과 악수하는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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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지원유세를 하는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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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과 포옹하는 유승민
특히 광화문 지원유세에서는 종로구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지원유세를 하며 민주당에 경제를 맡기면 안된다며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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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통합당 지지를 호소하는 유승민의 글
선거 마지막 날에는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다시금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내의 악재들과 정부여당의 호재에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기록에 남을 대참패를 거두면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친유의 좌장이던 이혜훈, 청년 친유의 대표주자 이준석, 그 외에도 바당-새보수당계의 진수희, 오신환, 지상욱 등 친유계 인사들이 험지에서 줄줄이 갈려나가야 했다.[53]

그래도, 유승민이 직접 영입한 김웅 전 검사가 송파갑에서 생존했고 수도권 대참패 속에서도 유의동 의원이 아슬아슬하게 생존했으며 원조 친유에 속했던 조해진, 류성걸, 김희국, 강대식[54] 등이 원내에 입성했다. 지원 유세도 계파를 가리지 않고 다닌 덕분에 유승민에게 가장 먼저 지원을 부탁한 후보들도 적지 않고 그들 중 용산의 권영세, 강남병의 유경준, 분당갑의 김은혜 등이 수도권 의석을 사수하면서, 오히려 유승민 개인에게는 당 내에서 입지를 넓히고 힘이 실릴 수도 있게 되었다. 유승민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하던 대구에서 친유계 의원들이 여유 있게 압승한 것도 유승민 입장에서는 호재다. 공석이 된 지도부를 유승민 계열이 쟁탈할 수도 있어보인다. 이렇게 되면 별로 힘도 없는 극우 세력이 떨어져 나가겠지만 중도층의 표심은 잡을수 있어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어보인다.

10.2. 총선 참패 이후

유승민 본인은 아직까지는 통합당의 평당원으로서 백의종군 하겠다는 입장이라 향후 당권에 도전할 지는 미지수 이다. 그러나 막말 이미지와 아스팔트 보수 이미지로 인해 미래통합당이 총선에 대패한 상황에서, 이와는 많은 거리가 있는 유승민이 점차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친황 친홍과 달리[55] 친유계만은 당에서 약진한 상황이며 유승민의 지원 유세로 인해 친유계에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이 많아진 것도 호재. 따라서 당권 장악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현재로서는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미래통합당 입장에서도 당이 분열되어서 탈당파들이 나오면 안 되는 상황인지라[56] 현재 최대 계파인 유승민계로 대세가 기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친유는 친박을 제외한 계파간의 갈등이 거의 없는 점도 장점. 그나마 문제인 강성 친박들의 표는 매우 미미한 비율이고, 오히려 선거에 마이너스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 입증된 이상 향후 미래통합당은 유승민계를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이 되었다.

총선 이후, 의원 생활을 정리하며 "이제 동구을 국회의원은 졸업하지만, 어디에 있든 사림'(士林)의 피를 이어받아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는 개혁의 길을 걷겠다" 라는 문자를 동구을 주민들에게 보냈다. 이후 주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 유승민이 출현한 100분 토론 영상
4월 23일 MBC 100분 토론에서 강원택 교수와 같이 출현하면서 21대 총선 부정선거음모론에 관해 "당 대표자들이 증거도 없는 주장에 흔들린다."고 언급했고, "보수가 살고자 한다면 그러면 안 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황교안에 대해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면 안 된다."고 언급하면서 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57] 그러면서 젊은 정치인을 기를 방법,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에 대해 비판하며 계단식으로 지급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해선 비대위나 전당대회와 같은 지도부 선출 방식을 논하는 것보단 당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콘클라베와 같은 당내 무제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9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부친상을 당했을 때, 빈소에 찾아갔다. 일각에서는 바른정당 시기를 떠올린다고 언급하였다.

5월 14일에는 뉴스1과 통화에서 총선 이후 근황에 대해 "내가 앞으로 (일을) 부탁할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면서도 "다만 아직 사무실을 열거나 이런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5월 17일 유의동 국회의원과 김웅과 같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로 갔다. 당연히 국립 5.18 민주묘지에 방문했다. 이번에는 당 지도부와 관계없이 개인적인 자격으로 참배하러 갔다. 참배하면서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58]에 대해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정말 아쉽다고 생각한다."며 사죄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광주민주화운동을 포함해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못해서 평생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시간이 지나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도록 하는 노력을 미래통합당도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괜찮았던 편이다. 그러면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도 꼭 밝히도록 해야된다면서 언급했다.

그는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정리하며 낙선자와 당선자들도 만나고 있다"며 "또 새로운보수당 출신 사무처 직원들의 일자리를 알아봐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된 것은 새로운보수당 당직자들의 고용승계 부탁이 철저히 무시되고, 결국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고용승계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이 일의 궁극적인 책임은 황교안친황, 친박에게 있지만, 그들은 전혀 책임져주지 않았다.

10.3. 대선 출마 선언

▲ 유승민 전 의원이 유심초에 올린 대선 출마 선언 영상
“내년 대선후보 경선과, 1년 10개월 후 있을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저에게 마지막 남은 정치 도전입니다. 반드시 보수 단일 후보가 돼 본선에 진출해 민주당 후보를 이기겠습니다.”
팬클럽 유심초에 올린 영상 中#
2020년 5월 26일 자신의 팬카페 유심초를 통해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미래통합당 당내 경선에서 이기겠다면서 기존의 보좌진들과 같이 일하겠다고 하였다.

이미 예전부터 유승민은 여러번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가 있지만 이렇게 동영상을 통해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승민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하는 산이 많다. 보수층의 비토층을 뚫어내야 하고, 낮아진 지지율 역시 돌파할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유승민이 이를 극복하고 본인의 의지대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지는 유승민에게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대선 출마 선언 이후론 별다른 공개 행보 없이 칩거를 이어가고 있다. 나오는 소식으론 차기 대선 도전을 위해서 술을 줄이고 무려 담배를 끊었으며[59] 자신의 정책을 구체적이게 설명하는 정책설명서, 저서를 집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정치 행보와 달리 실제론 국회의원들과 원외인사들을 두루두루 만나며 세력 다지기에 들어간 상황이다.[60]

11. 국민의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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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이름의 한자가 원래의 대신 으로 나와 있는데, 旼와 旻은 이체자 관계라 통용된다. 오류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나 이체자는 문장에서나 통용되어 읽히는 것일 뿐 원래 유승민의 민은 이 맞다.[2] "빅딜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빅딜이 정말 돈이 된다고 판단하면 가만둬도 기업 스스로 할 것이다.", "외국에선 정부주도의 빅딜을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이때문에 투자자의 신뢰감도 떨어지고 통상마찰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부실기업이 제 때에 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치경제의 부활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은후 손을 딱 뗄 수 있겠는가. 관료의 속성상 그렇게 못할 것이다. 시장이 완전히 죽을 우려가 있다."#[3] 빅딜은 IMF의 요구사항은 아니었다. IMF의 구조조정 요구에 대한 정부의 자구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시절 IMF의 요구에대해 국익을 위해 재협상이나 추가협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지만 IMF측에서는 대선후보들에게 당선시 IMF의 요구사항을 이행하겠다는 이행각서까지 받아갔기 때문에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할 수밖에 없었다. #[4] 중앙경제포럼 대담 #[5]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시절 IMF측의 요구사항에 대해 "우리나라에 지나친 부담이 되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세부사항에 대한 추가협상을 통해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며 재협상 혹은 추가협상을 주장한적이 있다. 하지만 IMF측에서는 대선후보들에게 당선시 IMF의 요구사항을 이행하겠다는 이행각서까지 받아갔기 때문에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할 수밖에 없었다. #[6] 현재는 격상되어 여의도연구원이다. '원'과 '소'의 급은 다르다. 경찰서로 보자면, 경찰서파출소라고 보면 된다.[7] 조직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후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자신이 속한 당을 살리는 것을 우선으로 했던 유승민의 정치적 행보와도 연관이 있다.[8] 다만 이후에는 당시보다 크게 좌경화되어, 2015년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양극화라는 시대정신을 가장 먼저 제시했다며 높이 평했다.[9] '어 유승민 의원이?' 공정위 저지 선봉에 '깜짝' [10] 아버지가 무려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를 왜 따랐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후 친이계로 전향하긴 했지만.[11] 전임자 박창달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상실[12] 대선은 패배했지만, 당시 보수 진영과 대구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의 영향력이 상당했을 때였다[13] 후에 자서전에서 회고하길, 이 때 이미 승기는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후보에 넘어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기에 박근혜 캠프에서 공격수를 맡으려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정책메시지단장이었던 자신이 총대를 매게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정두언은 박근혜 진영에서 엄청나게 공격을 퍼부었고 선봉장이 유승민이었다고 회상했다.[14] 당시 오세훈 시장을 계백, 무상급식 중단 여부 투표를 황산벌 전투로 비유하며 지원의 필요성을 피력했다.[15]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유승민 의원을 중간중간에 말리기까지 했다.[16] 대구 중구남구[17] 대구 동구 갑[18] 대구 서구[19] 대구 북구 갑[20] 경기 성남분당 갑[21]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22] 이때 처음 공천을 받았던 인사들은 친유의 토대가 된다.[23] 잘 알겠지만 '얼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아이'라는 말이다. 표준어로 풀이하자면 "청와대 애들"이라고 한 것이다.[24] 여당의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 역을 맡는 것이 관행이다.[25] 오마이뉴스TV에서 대표 연설을 핵심만 요약한 영상이 있는데, 자아비판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인정했다.영상링크 연설 전문[26] 삼권 분립의 원칙상 행정부 수반은 다른 헌법기관 중 하나인 국회에 관여해선 안되기 때문이었다.[27] 원내대표는 소속 교섭단체 의원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당의 상황에 따라 의견을 취합하여 추대를 하거나 선거를 하여 선출하는데, 유승민 또한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내부에서 반향이 일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바로 원내대표다.[28] 이회창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을 때가 바로 이때였다고 회고했다.[29] 특히 그가 집권당의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에 대해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공개적으로 매도하고 결국 그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소신을 지키고자 한 그가 왜 배신자인가? p 47쪽(이회창 회고록, 2 정치의 길)[30] 이러한 김태호의 변심은 약 4년이 지난 2020년 10월에 들어서야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되는데, 김태호 최고위원의 변심은 유승민을 찍어내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31] 썰전 이철희 소장은 이를 단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유승민 의원 지역구가 대구인데, 현 대통령 지지 세력도 대구라 여차하면 지지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단순 권력 다툼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유승민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다르게 밝혔다.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의 권력다툼, 유승민 본인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계산이라는 해석이 언론에 난무했지만 전부 아니며 본인이 사퇴하는 순간까지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였다고 한다. 기자회견 때 헌법을 인용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32] 묘하게 조경태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전 대치 국면에 있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조경태의 경우 공천 심사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공관위에서 공천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거의 분명했고, 조경태 자신도 (이리저리 재면서 징계를 유보하느니) 당이 자신을 확실하게 쳐내 주길 바라는 입장이었다.[33] 공교롭게도 1년 전 유승민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떠밀리다시피 물러난 후, 후임 원내대표가 되었던 인물이다.[34] 그런데 김종인 전 대표는 원래 새누리당에 있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노선이 달라지면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간 케이스라 성향 자체는 서로 비슷하긴 하다.[35] 대체로 실제 여성입장으로써도 이들이 하는일에대해 실효성적인 면에서 체감할 수 있다고 볼만한부분이 다소 미흡하다. 예를들면 생리대 가격이나 보건휴가(생리휴가)전업종 의무적용이나 부인과 검사비용 비보험문제 등[36] 다만 여초 사이트나 트위터 한정이다. 여성이지만 여성부의 존재가 그리 반갑지 않다며 동의하는 반응도 많았다.[37] 유신 직후 재임용 제도가 도입되어 정부에 찍힌 판사들이 재임용에서 대거 탈락했는데 유수호도 그중 한 명이었다.[38] 여기서 말하는 창업은 유승민의 강연이나 관련 기사에서도 볼 수 있지만 스타트업을 말한다.[39] 썰전은 꾸준히 6~7%대를 유지하는 프로그램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진지는 시간이 꽤 지났다. 아무래도 관심도나 분노가 조금씩 식어가고 해당 사건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가며 시청률이 조금씩 하향평준화되고 썰전의 영향력도 조금씩 약화되어 가는 추세였다. 때문에 대선 특집 첫 주자인 유승민이 출연할 때는 아직 이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큰 반응이 나오진 않은 편인데 문재인 편이 방송된 회차의 썰전은 간만에 시청률 8%를 넘겼다. 실검에도 꽤 오래 남아있었다.[40] 실제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은, "세월호 사건은 유족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인양과 보상 등의 후속 조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이 잘 이루어져야 하지만, 법안 발의는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후일 세월호 구조에 참가한 잠수사들의 지원법인 일명 김관홍법의 본회의 통과에 있어선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인재근 의원과 함께 기권표를 낸 사람 중 한명이기도 했다. 잠수사는 이미 다른 법률에 의해 지원을 열어 주었고, 산업 재해로 두되 산업 재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41] 특히 이 행보는 안철수와 대단히 갈리는 모습이었는데, 당시 안철수는 대선이 끝나고 1주도 안지나서 다음 대선에 나가겠단 의사를 밝혀 사실상 대선 패배에 불복하는 이미지를 남겼다.#[42] 이 두 인물은 훗날 2022년 지방선거에서 주요 양당의 경기도지사 경선후보로 나서게 된다. 다만 유승민은 본선 진출에 실패.[43] 각 대학에는 많은 진보/운동/민주/좌파/사회주의 단체나 동아리가 있는데, 80~90년대 전후부터 긴 역사를 가진 동아리인 경우도 많다. 특이점은 30대나 고학번이 많다는 점. 학업보다 사회활동이나 운동에 전념하다 졸업을 못 한 사람도 있고, 나이먹고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깨어있는(?) 민주 운동을 하겠답시고 학교에 들락거리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운동권의 활동 방식 중 하나가, 나이를 먹고도 계속 학교에 들락거리며 젊은이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위에서 젊은 학생들이 저 진보 동아리에 불만을 표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 2010년대 후반을 달려가는 현재에도 아직도 자신들끼리 80년대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행동하고 독재정권에 맞서겠느니 소란피우는 단체는 각 대학마다 꼭 있다고 봐도 무방.[44] 이날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45]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예방은 홍 대표 측에서 수차례의 요청을 거절해 무산되었다. 이후 홍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유승민 신임 당대표 선출에 대해 심지어 의례적으로 내놓는 공식 논평조차 생략하는 등 바른정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철저한 무시의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유승민 대표는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예방조차 거부하는 데에 대해 실망했다며 "졸렬하다"라는 유승민치고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으로 대응했다.[46] 민주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이 발언을 두고 바른정당이 휘청 거릴때마다 유승민 대표의 프로페셔널 정치 행보잘보고 있다고 조소를 날린다. 반면 바른미래당 지지자들(구 국민의당 친안계 지지자들 포함)은 핵사이다였다는 반응과 함께 민주당 지지층과 자한당 지지층 둘 다에 대해 공작만 하려 한다고 조소하는 편이다.[47]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48] 그런데 재밌게도 국감 이후 실제로 김동연 부총리가 사퇴하게 되었다.[49] 그리고 몇 년이 흐른 2020년 11월 28일, 비대면 화상통화로 다시 유승민과 만나게 되었다.[50] 실제로 류 전 의원의 지역구인 동구 갑의 정종섭 의원이 당협위원장 배제에 불출마 선언을 한데다가 고교동창에 동구 갑의 다른 전직 의원이었던 주성영 전 의원은 북구 을 지역구를 노리고 있다. 또 류 전 의원의 복당 선언으로 유력한 다른 경쟁자들이 당협위원장 공모를 꺼리고 앞의 두 사람보단 약한데다가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에 대항하여 경제 문제에 중점을 두고 경제전문가 영입을 원하는데 류 전 의원은 경제학 교수, 기재부에서 예산실장, 제2차관을 역임한 커리어로 보았을 때 복당 승인만 된다면 당협위원장을 얻기에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있게 된다.[51] 그러나 유승민이 부탁했던 이 새로운보수당 당직자들의 고용승계 문제는, 자유한국당 출신 당직자들의 자리 보전을 위해 철저히 무시당해버리고 새로운보수당 당직자들에 대한 철저한 차별과 강제 사직 권고가 이루어졌다.이로 인해 자유한국당 측이 진정한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52] 양산갑의 윤영석 후보는 20대 총선 이후에 유승민 복당 반대시위까지 벌였던 후보이다. 그런 후보까지 찾아가서 지원유세를 했으며, 윤영석 후보도 유승민에게 가장 먼저 지원 유세를 부탁했다고 한다.[53] 강북은 말할 것도 없고, 오신환의 지역구인 관악구는 아예 서울의 호남이라고도 불릴 정도다. 애초에, 관악을에서 5선을 내리 한 사람이 바로 이해찬이다.[54] 전 동구청장으로 유승민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을 수성했다. 게다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대표 친박 윤창중에 크게 승리한 건 덤이다.[55] 친황은 구심점이었던 황교안의 대패, 친홍은 홍준표 본인과 배현진을 제외한 계파가 전멸[56] 의원 수가 적은지라 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던 무소속 당선자 4명이 복당을 신청한 가운데, 한 때 복당을 불허 하겠다고 선을 그었던 미래통합당은 이들의 복당을 허락할 방침이다.[57] 황교안은 우파 유튜버들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주려고 했다.[58] 새로운보수당 시기 유입된 김웅을 포함해도 유승민, 유의동 모두 당시에는 바른미래당 소속이라 이 사건에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죄한 것이다. 오히려 그 사건에 책임이 있는 친박계친황계 정치인은 그 사건을 정당화하고 있다. 다음 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 사건에 대해 사죄하러 갔다.[59]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091455657[60] https://www.sedaily.com/NewsView/1Z6OWLA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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