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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9:26:32

신장 재교육 캠프

위구르 수용소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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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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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에 벌어진 사건만 기술.
⚖️: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된 사건.
사건 목록 <colcolor=#000,#ddd> 세부 사항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
,1904 ~ 1908,
발생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Reichskolonialflagge.svg.png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후기 오스만 인종 청소 아시리아인 대학살
,1914 ~ 1924,
발생 위치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1915 ~ 1917,
발생 위치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관련 인물
이스마일 엔베르
그리스인 대학살
,1914 ~ 1922,
발생 위치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관동대학살
,1923,
발생 위치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전역
홀로도모르 [!]
,1932 ~ 1933,
발생 위치
파일: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svg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관련 인물
이오시프 스탈린
난징대학살
,1937,
발생 위치
파일:중화민국 국민정부 국기.svg 일본군 점령하 중화민국 난징시
롬인 말살 정책
,1935 ~ 1945,
발생 위치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점령하 유럽
파슬리 학살
,1937,
발생 위치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관련 인물
라파엘 트루히요
제2차 세계 대전 슬라브인 말살 정책
,1939 ~ 1945,
발생 위치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점령하 유럽
홀로코스트 ⚖️
,1941 ~ 1945,
발생 위치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점령하 유럽
재판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관련 인물
아돌프 히틀러 | 헤르만 괴링 | 하인리히 힘러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아돌프 아이히만 | 하인리히 뮐러 | 루돌프 회스 | 프란츠 슈탕글 | 크리스티안 비르트 | 아몬 괴트
관련 단체
나치당 | 친위대 | 국방군 | 게슈타포 | 무장친위대 | 아인자츠그루펜 | 질서경찰
수용소
틀:나치의 주요 절멸수용소 | 다하우 강제 수용소
크로아티아 홀로코스트 및 세르비아인 학살
,1941 ~ 1945,
발생 위치
파일:크로아티아 독립국 국기.svg 크로아티아 독립국
관련 인물
안테 파벨리치 | 딘코 사키치 | 미로슬라프 필리포비치 | 알로이지예 빅토르 스테피나츠
관련 단체
우스타샤 | 우스타샤 민병대
수용소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
보슈냐크인 및 크로아티아인 학살
,1941 ~ 1945,
발생 위치
추축국 점령하 유고슬라비아
관련 인물
드라자 미하일로비치
관련 단체
체트니크
크림 타타르족 추방
,1944 ~ 1948,
발생 위치
파일: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svg 크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관련 인물
이오시프 스탈린
체첸인 및 인구시인 추방
,1944 ~ 1948,
발생 위치
파일: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svg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관련 인물
이오시프 스탈린
과테말라 마야인 제노사이드
,1960 ~ 1996,
발생 위치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과테말라
문화대혁명
,1966 ~ 1976,
발생 위치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전역 | 영국령 홍콩
난쟁이 수용소
,1970 ~ ,
발생 위치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전역
방글라데시 제노사이드
,1971,
발생 위치
파일:방글라데시 국기(1971-1972).svg 동파키스탄
이키자
,1972,
발생 위치
파일:부룬디 국기.svg 부룬디
아촐리족과 랑고족 학살
,1972 ~ 1978,
발생 위치
파일:우간다 국기.svg 우간다
관련 인물
이디 아민
동티모르 제노사이드
,1975 ~ 1999,
발생 위치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령 동티모르
킬링필드 ⚖️
,1975 ~ 1979,
발생 위치
파일:민주 캄푸치아 국기.svg 민주 캄푸치아
재판
ECCC
관련 인물
폴 포트 | 키우 삼판 | 깡 겍 이우 | 누온 체아 | 이엥 사리 | 이엥 티릿
관련 단체
크메르 루주
수용소
뚜올쓸라엥
구쿠라훈디 학살
,1983 ~ 1987,
발생 위치
파일:짐바브웨 국기.svg 짐바브웨
관련 인물
로버트 무가베
안팔 학살
,1986 ~ 1989,
발생 위치
파일:이라크 국기(1963-1991).svg 이라크 쿠르디스탄
재판
안팔 학살/재판
관련 인물
사담 후세인
이사크 학살
,1987 ~ 1989,
발생 위치
파일:소말리아 국기.svg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관련 인물
시아드 바레
보스니아 전쟁 보스니아 제노사이드 ⚖️
,1992 ~ 1995,
발생 위치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 국기.svg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 | 파일:스릅스카 공화국 국기.svg 스릅스카 공화국
재판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관련 인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 라도반 카라지치 | 라트코 믈라디치 |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 니콜라 요르기치 | 프라뇨 투지만 | 슬로보단 프랄략 |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관련 단체
스릅스카 공화국 | 헤르체그 보스니아 | 스릅스카군
세부 사건
스레브레니차 학살 | 프리예도르 인종 청소 | 포차 학살
르완다 제노사이드 ⚖️
,1994,
발생 위치
파일:르완다 국기(1962-2001).svg 르완다
재판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관련 인물
르완다 제노사이드 가해자 목록 |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인물들 목록
관련 단체
후투족 민병대 (Interahamwe | Impuzamugambi)
제1차 콩고 전쟁 중 후투족 학살
,1996 ~ 1997,
발생 위치
파일:자이르 국기.svg 자이르 키부
파룬궁 학살
,1999 ~ ,
발생 위치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전역
밤부티 피그미족 학살
,2002 ~ 2003,
발생 위치
파일:콩고민주공화국 국기(1997-2003).svg 콩고민주공화국 이투리주
다르푸르 학살
,2003,
발생 위치
파일:수단 공화국 국기.svg 수단 공화국 다르푸르
관련 인물
오마르 알바시르
야지디 학살
,2014 ~ 2019,
발생 위치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니나와주 Sinjar
관련 단체
ISIL
중국의 위구르인 탄압
,2014 ~ ,
발생 위치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위구르 자치구
미얀마의 로힝야 탄압
,2016 ~ ,
발생 위치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라카인주
[!] 논란의 여지가 있음. }}}}}}}}}


1. 개요2. 배경3. 국제적인 비판4. 세부적인 실상
4.1. 위구르족 말살 정책4.2. 불법 감금4.3. 강제노동4.4. 성고문, 강간 등의 성범죄, 강제 불임4.5. 강제 혼인
5. 중국의 언론 통제6. 증언
6.1. What has happened to me6.2. 수용소 내 중국어 강사의 폭로
7. 내부 문건 폭로8. 전세계의 규탄
8.1. 미국
9. 이슬람권의 반응10. 관련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 Vox Media - 중국의 비밀 수용소들(한국어 자막 있음)
파일:신장수용소.jpg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한 수용소 모습
<colbgcolor=#eee,#222>언어별 명칭
표준중국어 新疆再教育营
위구르어 قايتا تەربىيەلەش لاگېرلىرى / Qayta Terbiyelesh Lagërliri / Қайта Тәрбийәләш Лагерлири
영어 Xinjiang internment camps, Xinjiang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Centers

중국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 개설한 위구르인카자흐인, 키르기스인 강제 수용소.[1] 일제강점기서대문 형무소, 소련굴라그, 나치 독일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 북한정치범수용소[2]와 같은 인권 탄압과 학살 수용소이다.

보도에 따르면 위구르인 성인 인구 12% 가량이 수감되었으며, BBC에서 새로 공개한 자료에서는 수감자 최소 2884명의 신원이 사진으로 확인됐다. 수감자 중에는 70대 노인부터 15세 소녀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수감 사유는 석연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BBC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무슬림 인구가 많은 국가를 방문했다는 이유 또는 이슬람 신앙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감금됐다. 아들이 술, 담배를 멀리하다가 테러 혐의로 10년형을 받으면서 어머니가 덩달아 구금된 경우도 있었다. 연합뉴스 기사.

2. 배경

위구르족은 누구인가?
이들은 인종적으로 투르크족에 속하며 대부분 무슬림이다. 중국 서부에 약 천백만 명이 살고 있다. 위구르족은 스스로를 문화적, 민족적으로 중앙아시아 국가에 가깝다고 본다. 언어는 터키어와 비슷하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한족이 신장으로 대량 이주해오면서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생계를 위협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신장 지구는 어디에 있나?
중국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도 가장 큰 지역으로 꼽힌다. 인도, 아프가니스탄, 몽골 등의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신장 지구는 자치 지역으로 원칙적으로는 중국 베이징 중앙정부와 별도의 자치권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지역 모두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위구르 이슬람교도 수는 이 지역 인구인 약 2천 6백만 명 절반 이하 수준이다. 수 세기 동안 신장 지역 경제는 농업과 무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다. 이 지역 마을들은 실크로드에 길목에 있어 번창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 위구르인들은 한 때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1949년 중국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통제 하에 놓이게 된다.
BBC의 위구르족,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및 역사 간략 소개 #
1950년대중화인민공화국이 신장 지역을 차지하고 중국 내륙과 신장성을 잇는 철도를 개설한 이후 한족들은 신장으로 대이주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실시된 이후에도 위구르인들은 신장에서는 지하 자원 개발로 인한 이익이 주로 한족들에게 돌아가면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많은 위구르인들이 중국 동부에서 농민공(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저임금 노동자)이 되었는데, 많은 한족들은 이들을 일부 미국 백인히스패닉계 이민자를 보는 식으로 멸시하게 됐다.
한족은 우루무치를 비롯한 신장 북부와 동북부의 도시들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고소득 전문 직종과 정부 공무원으로 일한다. 신장의 위구르인들은 외국 방문객들에게 자신들이 대규모 프로젝트, 특히 에너지 분야의 프로젝트가 만들어 낸 새로운 직업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위구르인들은 또한 공통적으로 자신들은 신장 남부의 도시들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건설 현장에서 일할 기회가 없다고 불평했다. 이드 카 모스크 주변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과 구 카슈가르의 위구르 구역에서 도로를 포장하는 사람들, 호탄의 구 바자르를 철거하고 중심 번화가의 주요 개보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두 한족이었으며, 이들은 멀리 떨어진 타슈쿠르간에도 있었다. 더욱이 내가 대화를 나누어 본 노동자들은 신장 동쪽에 있는 성들에서 왔다고 말했다. 신장 당 제1서기이자 정치국의 일원이었던 왕러취안은 외국 언론인들에게 "신장의 많은 소수 민족들이 '더럽고 힘들며 고된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해명을 했다. 쓰촨 출신의 한 노동자가 서방의 기자에게 한 논평은 좀 더 미묘한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모릅니다."라고 쓰촨 성 출신의 건설 노동자 장비종이 말했다. "우리 쓰촨 사람들은 쌀밥과 돼지고기 그리고 강한 향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요. 현지의 소수 민족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쌀밥도 먹지 않아요."

정작 대다수의 위구르인들은 쌀밥을 좋아하고, 이들이 먹는 쌀밥인 플롭에는 여러 가지 향신료가 들어간다. 인터뷰를 한 노동자 장비종씨가 위구르인들이 쌀밥을 즐겨 먹는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면, 아마도 그를 고용한 노조 간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여러 곳에서 진행되는 개발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유라시아의 교차로 신장의 역사 / 제임스 A. 밀워드
경제 개발 소외를 비롯한 차별 문제는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에 불을 붙였다. 위구르인들은 동아시아 문명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이슬람 문명에 속하기 때문에, 많은 위구르인들은 범튀르크주의 혹은 이슬람주의와 연대해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3]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슬람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이 위구르족 독립 운동의 주축 중 하나로 등장했다.

2008년에 위구르인들의 문화적 수도라 볼 수 있는 카슈가르에 복무하던 중국 공안 16명이 위구르 독립운동자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같은 해에 중국 남부에서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이 일으킨 버스 폭탄 테러로 민간인 2명이 숨졌다. 바로 다음 해인 2009년에 중국 남부에서 위구르인이 한족을 강간한다는 헛소문이 유포되어 위구르인 노동자 2명이 살해됐다. 이 소식이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에 퍼지자 위구르인들은 시위를 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 우루무치 유혈사태로 번졌다. 애초 해당 시위에 참여했던 위구르인들은 오성홍기를 들며 시위를 하였다. 곧 시위 당시 이들이 요구한 것은 위구르 독립보다는 당장 한족과 위구르인 차별을 반대하던 것인데도, 중국 공안들을 이를 미국의 사주라고 내세운 것이다. 이렇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하여 해외에서 티베트인, 위구르인 인권 탄압 관련한 비판이 증가하자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감시와 탄압이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시작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였고,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은 시리아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에 힘을 합쳤다. 심지어 IS에 가담한 위구르인도 100명 이상에 달해, 사우디튀니지에 이어 전세계에서 IS 가담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 # 라마단 금식을 금지하는 등 중국 당국의 탄압은 더욱 심해지며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도 빈번해졌다. 2010년대 초반, 신장 내에서 잇따른 유혈사태가 있었다. 2013년에는 위구르 극단주의자가 북경의 중심부 천안문 광장에서 차량으로 보행자를 덮쳐 2명이 사망하고 38명이 상해를 입었다. 2014년에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중국 남부 기차역에서 시민 33명을 살해한 쿤밍역 칼부림 테러가 터졌고, 바로 이듬해에 중국 관광객들이 흔히 방문하는 방콕 사찰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건은 중국 정부를 매우 긴장시켰다.

2010년대 초반 중국 당국은 위구르족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까지 한 장춘셴(张春贤) 당서기를 중심으로 유화 정책과 강경 대응을 혼용하는 전략을 펼쳤다. 그러나 장 서기의 정책은 시진핑 주석이 신장을 방문하는 날에 일어난 쿤밍 테러로 실패로 판명되었고, 2016년에 소수민족 정책 관련 골수 강경파로 알려진[4] 천취안궈(陈全国)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유화 정책이라 하는 것 역시 일제강점기의 이른바 문화통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레닌주의는 소수민족이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바탕으로 민족어와 민족 문화를 보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교리가 있고, 장춘셴이 시행했다는 유화 정책 역시 공산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최소한도 이하의 민족 자치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가 신장 수용소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직전인 2017년에 나온 다음 AP통신 기사를 보면, 중국 당국의 입장과 위구르족 반군의 입장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다. #
2013년 이래 중국 서부의 튀르크계 무슬림 소수민족인 위구르인 수천 명이 시리아로 이주해 반군조직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의 훈련을 받고 알 카에다와 함께 전쟁에 참여하며 여러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6년의 내전이 끝무렵에 이르는 상황에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의 군대는 현재 위구르인 반군과 대치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의 종식은 중국의 악몽의 시작일 수도 있다.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이 보복을 피할 수 있도록 이름만을 밝힌 '알리'는 말한다. "우리는 전쟁이 어떻게 되든지, 아사드가 누군지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무기를 어떻게 쓰면 되는지 배운 다음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수십년에 걸친 반란 동안, 위구르인 반군은 중국 내부에서 수백명 내지 수천명을 죽였다. 초기에는 공안 등 중국 공권력의 대표자만을 겨냥했으나, 근래 몇 년부터 민간인 역시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2014년에 극단주의자들이 칼부림을 일으켜 기차역에서 33명을 살해했다. 국외에서 또한 작년 [2016년] 9월 주 카자흐스탄 중국 대사관을 폭격했으며, 2014년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빈번히 방문하는 태국 사찰을 공격해 25명을 살해했다.
[...]
하지만 시리아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을 떠난 위구르인 아홉명과 AP통신이 진행한 장시간 단독 인터뷰를 통해 위구르인 반군은 지하드의 부름에 응한 외국인 반군의 일반적 프로파일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한 공안 훈련관은 수천 킬로미터를 마다하지 않고 가족을 이끌고 전시 상태인 시리아로 떠났다. 한 농부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악함에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와 함께 전장으로 돌진했다. 한 가게 주인은 매일 다섯 번 기도를 드리면서도 밤마다 폐허가 된 시리아 시가지에서 다른 사람들과 모여 시오니즘의 역사를 공부했다. [계속 기사를 읽어보면 핍박 받은 유대 민족이 결국은 독립을 이룩한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초등학교 교육만 받은 왜소하고 조용한 성격의 '알리'도 더 이상의 생활이 불가능해진 중국을 떠날 때까지 고향 35에이커 농장 밖의 세상에 대하여 무지했었다.
최근 어느 저녁에 복싱 체육관을 내려다보는 이스탄불의 빈 아파트 바닥에 앉은 체로, '알리'는 중국 공안이 자기가 참여하지도 않은 폭동에 가담했다는 핑계로 자기를 구타했던 그 밤에 결심했던 다짐을 회상했다.
"난 복수할 것이다."
'알리'의 부모가 지방관료에게 1만위안[약 170만원]의 뇌물을 바치고서야 아들이 구치소에서 석방되었다. 이 농부 가족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2015년 이후 ISIS가 주동이 된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악화되자, 인도미얀마 같은 비서구권 국가들은 인권 문제 비판을 피하면서 무슬림 소수자들을 동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무슬림들에게 더 억압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다르지 않았다.
질문 :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과 시리아의 이슬람 국가(IS) 테러조직과의 연계설은 어떻게 된 것인가.

답변 : 2013년부터 본격화된, 시리아에 들어간 위구르 무장세력도 마찬가지다. 중국 측 주장에 따르면, 약 2만명의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 지지 위구르 무장세력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 국경을 넘어 몰래 시리아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중국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이나 다른 나라를 통과해 시리아까지 몰래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질문 : 그럼 그들은 어떻게 해서 시리아까지 들어가 IS에 가담하게 된 것인가.

답변 : 그것은 내가 대학 논문 주제로 다룬 것이기도 하다. 나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이들을 통과시키면서 시리아로 몰아넣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위구르 무장세력은 위구르 독립운동에 관심이 있을 뿐, 알카에다나 IS에는 관심이 없다.
살리 후다야르 /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East Turkistan Government-in-Exile) 대표 출처

3. 국제적인 비판

중국 공산당 정부는 이러한 시설은 직업 교육을 위한 센터이며,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전파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중국 내 이슬람주의 테러가 2017년 이후 보도된 바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구르 독립운동은 이민자들이 비무슬림 국가를 테러와 폭력을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변환시키려는 이슬람주의 운동이라기보다는 민족 자치 혹은 민족 독립을 위한 운동이기 때문에 이런 변명 역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민족주의와 적대하는 관계라는 사실은 이슬람 극단주의 대책 관련한 기본 상식이기 때문이다.[5]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 국가는 신장 재교육 캠프는[6] 제노사이드 및 인종 청소를 목적으로 한 강제수용소라고 주장한다. # 신장 위구르 캠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인권 탄압에 비판적이지만, 제노사이드나 인종 청소 비유는 지나치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 역시 이슬람공포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이 캠프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진 않다.

여기서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적 규모의 고문과 세뇌가 발생하고 있다. 당장 아래를 보면 알겠지만 경악할 규모의 대량 감금과 강제 노동은 예사에다가 고문과 정신적, 육체적 학대는 덤이다.[7] 그간 중국의 강력한 언론 통제로 내막이 숨겨져 있었지만, 워낙 대규모라서 위성 사진으로 확인까지 되다 보니 시설을 감출 수가 없고, 엄청난 수의 피해자 증언이 넘쳐나고 있어 중국으로서도 감추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2021년 10월 기준 탄압이 상당히 완화되었고, 많은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석방되어 캠프가 문을 닫거나 학교, 아파트 등 민간 시설로 전환되었다는 AP통신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강압적인 조치를 일정 수준 해제했을 뿐 이동의 자유에 대한 제약 등 통제는 여전하다. #

21세기 들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특정 민족 탄압 정책으로 비판 받고 있다. 제노사이드에 해당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수감자 규모는 확실하지 않으나 흔히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민족 탄압의 목적을 부정하고 직업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연 평균 130만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시인했다. #

이 재교육 캠프는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민족 단위로 수용되는 강제수용소로서, 국제앰네스티는 아예 중국이 이를 전시 강제수용소처럼 운영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사.

중국공산당 정부는 신장 지역에 있는 900만 위구르인 가정에 100만 명의 공산당원을 파견하여 함께 거주하며 감시하고 있다. 숙식은 위구르인이 제공해야 한다. 해당 정책은 피점령 지역 국민을 대상으로 정복자의 부양을 강요하는 정책인데,[8] 전근대에나 벌어지던 일이 21세기 현대에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9] 남편이 수용소에 수용된 여성에게 고의적으로 한족 남성이 배치되고, 심지어 이들 남성 일부는 위구르 여성과 잠자리를 함께 하기도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사. 21세기 이후에서는 어떤 나라도 피점령 지역 국민에 대해서도 민사 작전을 이딴 식으로 하는 국가는 없다. 심지어 위구르인은 중국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단 한 번도 동투르키스탄인이었던 적이 없는, 역사적으로도 대대로 중국인이다. 기사.

심지어 중국은 초기에는 꾸준한 증언들과 폭로에도 불구하고 해명, 최소한 변명은커녕 수용소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철저히 부정했다. 2018년 8월 13일, 중국 정부는 신장 재교육 캠프에 위구르족 100만 명을 수감한 것과 관련해 구금 의혹을 부인한 적이 있었다. # 중국 정부는 논란이 거세지고 나서야 마지못해 수용소의 존재를 시인하며 지역 분리주의 폭력에 따른 테러 대비를 위한 조치였다고 변명한다. 중국 혹은 친중 언론 측에서는 이를 중국을 견제하려는 서구 열강의 진영 논리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이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고 국제앰네스티에게 지탄 받았던 사실에서 보다시피 진영 논리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문화란 끊임없이 변형되며, 융합하거나 동화되는 존재이다. 중앙아시아와 우리나라가 각각 러시아 문화,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그 예시이다. 그럼에도 위구르족이 한족 문화에 전혀 동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한족이 강압적으로 탄압만 하지 어떠한 떡고물도 갖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위구르 지역의 천연 자원을 개발하면서 생긴 이득을 위구르 주민들한테 할당해주고 위구르 지역에 일자리를 충분히 마련해준다면 한족 공무원 파견 같은 비상식적인 정책을 시행하지 않아도 문화 동화로 문제될 일은 없다.

4. 세부적인 실상

4.1. 위구르족 말살 정책

기숙사나 보호 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배우며, 위구르어 사용은 금지된다. #

전통적인 위구르의 무덤들을 대량으로 파괴하였다. 중국 정부 대변인도 CNN에 "신장 지역 정부는 모든 소수민족을 존중하며 이들에게 묘지와 장례식 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면서도 "묘지 훼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하며 무덤 훼손을 시인했다. #

2019년 BBC 탐사 결과 신장 지역 어린이들은 이슬람 사회로부터 격리될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가족과 분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무려 49만 7000명에 달하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수천 개의 기숙 학교에 사실상 수용되며 위구르어 사용을 금지당하고 중국어 사용을 강요받고 있으며, 부모와는 2주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

4.2. 불법 감금

신장 위구르 지역 내 강제 수용소들에는 사람들이 테러, 종교적 극단주의, 중국 내 정치범에 적용되는 혐의로 부당하게 감금돼 있는데 전부 위구르인들이다.

유엔인권위원회에 집단 수용소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천여 곳에 대략 10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감금되어 있으며 부실한 식사를 제공 받으며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중국어와 유교 경전, 반이슬람적 사고 주입, 중국 사회주의를 가르치며 시진핑을 찬양하고 충성을 강요한다. # 2021년 휴먼라이츠워치 집계 기준 130만 명이 수감되었다고 한다.[10][11] #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에서 지원하는 호주 전략 정책 연구소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구금 시설로 의심되는 곳만 무려 380곳을 넘는다고 한다. #

당연히 수감 과정에서 사망자도 수두룩하게 나오고 있다. 2019년 10월 29일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악쑤지구 쿠차르현[12]의 4개 수용소[13] 중 하나[14]에서 2018년 6월~12월 반년 동안 150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2017년 수용소가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대량 사망이 확인된 사례이다. # 사망률로 따지면 수용소 전체에서 1년 동안 만 단위로 죽어나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15]

4.3. 강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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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위구르 강제 수용소 주장은 거짓말이다." (2017년)

중국 : "위구르 수용소는 테러리즘 예방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2018년)

(수용인원 100만여 명이 다 테러리스트냐는 질문에)
중국 : "위구르 수용소는 직업 재교육 장소이다." (2019년)

세계 : "박사학위 소유자들이 왜 수용소에서 직업 교육을 받고 있나요?"(2020년)
중국 :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다!" (2021년)
위구르인 남성은 직업 교육을 빌미로 강제노동을 강요 당하고 있다. 이 노동력을 중국 내 기업들끼리 인신매매함으로서 사실상의 노예로 취급 받고 있다. 적대적인 교도관들의 태도, 비위생적인 환경, 가혹한 노동 강요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직업 교육이라는 그 명분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 하면, 중국 광둥성 포산시에서 하루에 170만 원 정도의 모델료를 받으며 아파트도 가지고 있던 위구르인의 사례가 있다. 위구르인에 대한 대규모 수용 시설이 점차 확충되면서, 이 사람에게도 수용소 직업 교육을 받게 한다며 신장으로 강제 송환한 후 수용한 사례도 있다. 이 위구르인은 이걸 BBC 등 외부 언론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행대로 해당 위구르인은 이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기사.

중국 당국은 세계의 각종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 수요를 이곳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하는 면 총량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 외에도 온갖 3D 업종은 중국 한족이 아닌 이들이 강제로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들의 강제 노역을 거치는 회사로 확인된 바만 80개가 넘는데,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 고급 의류 브랜드나 아마존, 애플, 나이키, 유니클로 등 대규모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회사도 다수 포진해 있다. 외국 기업들 다수는 기업들이 이들의 강제노동을 원하거나 부추긴 게 아니라 중국 당국이 기업들의 의지와 상 관없이 위구르인들을 집어넣고 해당 기업 소속의 중국인들을 통해 강제 노역을 시켰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결과적으로 위구르인의 강제 노역이 들어가지 않은 기업의 제품만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울 정도로[16] 중국의 위구르인 혹사가 극에 달한 상태이다. #
위구르인의 강제 노역이 동원된 회사 및 브랜드 목록
나이키 아베크롬비 & 피치 ZARA H&M 캘빈 클라인
빅토리아 시크릿 휠라 잭 앤 존스 노스페이스 퓨마
랄프 로렌 코퍼레이션 유니클로 타미 힐피거 재팬 디스플레이 GAP
애플 도시바 ACER 화웨이 휴렛 팩커드
삼성 노키아 닌텐도 LG전자
구글 Microsoft 알스톰 아마존닷컴 ASUS
베이징자동차그룹 BMW 재규어 상하이자동차 상하이-GM 우링
랜드로버 메르세데스-벤츠 제너럴 모터스 제너럴 일렉트릭 지리자동차
미쓰비시 그룹 폭스바겐 창안자동차 소니 파나소닉
봄바디어 보쉬 비야디 자동차 캔디 카터스
세루티 Cisco 중국중차 일렉트로룩스 파운더 그룹
광저우자동차그룹 하이얼 하트 샤프너 막스 하이센스 히타치 제작소
HTC 아이플라이텍 L.L.Bean Lenovo 리닝
메이어 메이주 MG Mitsumi Oculus
오포 샤프 지멘스 스케쳐스 TDK
칭화유니그룹 칭화통팡 비보 샤오미 에르메네질도 제냐
ZTE

4.4. 성고문, 강간 등의 성범죄, 강제 불임

이 수용소에서는 교도행정에 의해 조직적인 강간 및 성고문을 자행하고 있으며, 수용자들에게 영구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도록 약물과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 조직적인 강간과 단종[17] 수술은 설마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은 소식이지만, 이에 대한 증언자가 속출해 전세계적 패닉을 일으키고 있다. 기사 1, 기사 2. 그야말로 21세기 중국판 일본군 위안부인셈.
BBC방송 보도에 따르면 이곳 수용시설에 9개월간 감금됐다 미국으로 망명한 위구르족 여성은 "매일 밤 많은 여성이 끌려나가 정장 차림에 마스크를 쓴 남성들에게 강간당했다"며 "나도 세 차례 2, 3명에게 집단 강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또 "중국인 남성들이 전기충격기를 내 자궁에 넣고 고문을 했으며 다른 방으로 끌려간 젊은 여성은 계속 비명을 질렀다"며 "방에 돌아온 뒤 완전히 정신이 나가 다른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민간 인권단체 '위구르 인권프로젝트(Uyghur Human Rights Project)'도 별도의 증언 녹취에서 "위구르 수용시설에선 전기 의자, 전기 장갑, 전기 헬멧, 전기봉의 항문 삽입 등으로 고문이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또 그곳에 있다 탈출한 카자흐족 여성은 "18개월간 수용시설에서 내가 한 일은 위구르 여성들의 옷을 벗기고 손을 묶어 중국 공안이나 수용시설 외부에서 들어온 중국 남성에게 넘기는 것"이라며 "중국인 남성들은 젊고 예쁜 여성이 걸리면, 내게 일이 끝나고 돈을 주곤 했다"고 말했다. 이 여성도 조직적인 강간이 자행됐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여성도 BBC에 수용소 간수들이 여성을 공개적으로 집단 강간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서 종교적 극단주의에 맞서기 위해 '직업 훈련소'를 운영한다며 의혹을 부인해왔다.

"탈출시도 무조건 죽여라"…中 위구르족 탄압 새증거, 서방국 '종족말살' 비판
이번 보도에 참가한 14개 언론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BBC News(영국)▽ ICIJ(국제 탐사 언론인 연합)▽ USA TODAY(미국)▽ Finnish Broadcasting Company YLE(핀란드)▽ DER SPIEGEL(독일)▽ Le Monde(프랑스)▽ EL PAIS(스페인)▽ Politiken(덴마크)▽ Bayerischer Rundfunk/ARD(독일)▽ Dagens Nyheter(스웨덴)▽ Aftenposten(노르웨이)▽ L'Espresso(이탈리아)▽ NHK WORLD-JAPAN(일본) ▽ 마이니치 신문(일본)

이번 유출 문서를 검증한 전 세계 14개 언론사는 공동으로 중국 외교부에 코멘트를 요청했고, 오늘 오전까지 아직 답변이 없는 상태라고 마이니치 신문은 전했습니다. 다만 주미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기자들 문의에 대해 "신장 문제는 인권과 종교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복잡한 테러 대책 상황에 직면한 신장에 대해 단호한 강한 조치를 취한 결과, 신장에서는 몇 년 연속 폭력적인 테러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현재 사회의 안정과 조화, 경제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MBC 뉴스

4.5. 강제 혼인

위구르인 여성에 대한 처우도 심각하다. 위구르족의 민족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젊은 위구르인 여성들을 한족 남성들과 강제 결혼을 시켜 강제로 혼혈을 만들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수용소에 넣겠다고 위협하고 실제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기사영문 기사. 외국을 다녀온 여성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18] 최소 3년에서 5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으며, 중복적인 징역으로 무기징역에 처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5. 중국의 언론 통제

(채널A) 화장법 소개하는 척..."中, 위구르 탄압" 비판한 美 소녀: 중국측에서 일방적으로 검열하여 영상을 삭제해버렸다. 이에 틱톡은 일시 차단이라고 변명했다. 이후 해당 소녀는 틱톡에서 차단되었다. 이에 대해 거센 비판이 일자 틱톡에서 다시 접속을 허용했다.

집단강간 폭로 위구르 여성에, 中 "가족 여기 있다" 협박전화

6. 증언

6.1. What has happened to me

중국의 위구르인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고역을 치르다 미국으로 망명한 위구르인 여성 미흐리굴 투르순(Mihrigul Tursun)이 미국에서 출판한 책 'What has happened to me'가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에 정치권에 크나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미-중간 새로운 외교적인 마찰을 가져오고 있다.

투르순은 미국 의회에 출석하여 40평방미터[19]의 수용실에서 68명[20]이 손목과 발목의 사슬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임의로 자리를 바꿀 수도 없었고, 누울 공간이 없어 2시간마다 교대로 누워 잠을 잤다고 한다. 서서 졸 수도 없이 낮에는 중국 주석에 대한 찬양, 공산당에 대한 감사를 외워서 외쳐야 했고, 이를 외우지 못하거나 말할 기력을 잃은 사람도 무자비한 구타에 시달려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끔찍한 고문 행위와 의료적 도움이 없는 방치, 기아[21], 추위로 모두가 점차 쇠약해져갔다고 말했다.

이 끔찍한 감방에서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더 끔찍한 '심문실'로 끌려가는 것 뿐이다. 투르순은 중국 당국이 종종 자신에게 헬멧과 전선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호랑이 의자'라는 도구를 사용해 전기로 전신을 고문하였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친척까지 고문했다고 알려주어 정신적 고문을 가했는데, 그 결과 투르순은 그들에게 죽음을 애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괴로웠던 고문들 중 투르순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한 정신적 고문은 오히려 고문실 밖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수용소에는 68번, 즉 68명이 존재했는데 투르순이 수감된 고작 3개월 사이 상기한 고문과 방치, 기아, 추위 등으로 9명이 사망한 그 사실 자체가 정신적 고문이었다고 한다. 투르순은 어두운 밤에 자신과 함께 하던 그녀들의 시신이 실려나갈 때마다 곧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투르순의 자녀는 이집트 시민권자였기에 이집트의 요청으로 자녀 송환을 위해 투르순 본인만이 석방되었다. 이에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찾았지만 부모, 형제, 하다못해 친척까지도 그 누구의 행방도 찾을 수 없었기에 자신을 고문했던 자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투르순은 미국 망명 이후에도 고문 후유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밝은 빛, 어두운 방 모두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자녀들 역시 초인종만 울려도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도 전했다.

미국에서의 생활 중 투르순의 전화로 걸려온 형제의 전화 메시지를 받았는데, "도대체 어떤 누나가 가족들에게 이런 짓을 하는가? 어떻게 누나가 부모와 형제들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당장 수용소에 대한 증언을 철회하고 중국 대사관으로 가서 중국에 충성한다는 말을 해야만 한다"고 전했다고 한다. 투르순은 이 발언에 있는 암묵적인 함의를 알아차리고 절망에 빠져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중국 당국은 이러한 연락을 통해 투르순이 하는 증언이 그녀의 형제, 자매, 부모, 친척을 대가로 하는 것임을 분명히 전달했고, 그것이 투르순 자신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용소 내에 본인이 갇혀있던 감방 201에서 단지 이슬람 전통 결혼식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400명 하객 전원과 함께 구속된 후, 심문실에 끌려갔다 온 후 한 달이나 에서 피를 흘리다 사망한 23세 여성 파템한(Patemhan),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구타를 당해 죽은 62세 할머니 굴니사(Gulnisa) 등 내부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고, 왜 죽었는지 알려야만 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증언했다. 영상.

위구르 수용소 생존자 ‘미흐리굴 투르순’“中 간수, ‘위구르인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6.2. 수용소 내 중국어 강사의 폭로

BBC에서 위구르인 대상 집단 강간 폭로가 나온 후, 2주 후에도 같은 내용을 증언하는 인터뷰 기사 내용이 쏟아졌다. 해당 증언은 수용소 내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던 우즈베크인 교사로부터 나왔다.
켈비누르의 또 다른 한족 동료는 켈비누르 역시 위구르족 혼혈이라는 걸 잊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위구르인들은 파리 같아. 우리가 원한다면 그들을 때려눕힐 수 있잖아." 켈비누르가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는 어느 날 밤 자신의 형이 무장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었을 때 이웃에 살던 한족 무리가 아파트 바깥의 광장에 모여 박수를 치기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주 잘한다!', '다 잡아가라!' 하고 소리쳤다고 해요." 그 학생은 켈비누르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모든 민족이 단결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언제나 말씀하셨잖아요. 위구르인이 잡혀가는데 왜 박수를 칠까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곳에 카메라가 한 대 있었기 때문에, 켈비누르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냐, 넌 그들이 말하는 걸 제대로 못 들었던 게 분명해.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걸. 아마 네 형은 교육받으러 어딘가로 갔을 거야." 열 살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더랬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머리에 검은색 가방을 이고 어떻게 학교로 가겠어요? 경찰이 형을 학생으로 봤다면 뭐하러 그렇게 데려갔을까요? 전 어리지만 바보가 아니에요."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 대런 바일러 저, 홍명교 역

7. 내부 문건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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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언론에서는 신장 재교육 캠프의 강간 등이 개개인의 증언에만 의지했다며 '근거 없는' 프로파간다로 일축하였으나 2022년 5월 세계 각지 언론에서 발표한 내용은 이와 달랐다.
새로운 증거가 BBC 등 각국 언론을 통해 무더기로 공개됐다. '중국공안파일'로 불리는 자료에는 2만명 이상의 수용자 명단과 사진, 수용소 내부 사진, '수감자가 도망치려 하면 사살하라'고 전한 중국 공산당 간부의 발언이 포함됐다.

영국 BBC방송·일본 마이니치신문 등 14개 매체는 중국 공안당국이 지난 2018년 1~7월 작성한 자료를 입수했다 수용자 명단과 사진, 수용소 관리지침 등을 24일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자료는 중국 소수민족 전문가인 재미 독일인 아드리안 젠츠 박사가 입수해 언론사들에게 전달했으며 각 언론사들은 독자적 검증을 거쳐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BBC는 "올해 초 자료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협의한 결과 진본으로 분석됐으며 수감자 288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신장 남부 카슈가르 지구 슈푸현과 신장 남부 일리 카자흐 자치주 테케스현의 공안당국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문서로 제3자가 해킹으로 빼돌려 젠츠 박사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수감자 중에는 70대 노인부터 15세 소녀까지 있었다. 일부 무장 경찰이 곤봉을 들고 함께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무장경찰이 곤봉을 들과 수감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수용자 명단에는 수감번호와 수용 사유, 시설명 등이 기재되어 있다. 주로 위구르족 등 카슈가르 슈푸현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었다. 젠츠 박사는 수천명의 명단이 적힌 452장의 리스트를 분석해 2017~2018년 슈푸현 소수민족 성인 중 12.1%(2만2376명) 이상이 '재교육시설', 형무소, 구치소 등으로 불리는 각종 시설에 수용되어 있다고 추산했다.

수용시설은 중범죄좌 감옥과 같은 구조였다. BBC 보도에 따르면 수용소 내 공안은 수감자를 다른 시설이나 병원으로 옮길 때 의무적으로 눈을 가리고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수용소 내 전 지역에 무장한 경찰이 배치된 데다가 감시탑에 기관총과 저격용 소총이 설치됐다. 수감자들이 수갑을 차거나 복면을 쓴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 심문을 받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총을 가진 공안요원들이 수용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 훈련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도 공개됐다. 수감자들이 주사기를 받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탈출을 시도하는 수감자는 사살한다는 원칙까지 있었다. 천취안궈 신장위구르자치구당위원회 서기는 2017년 5월 28일 화상연설에서 무슬림의 신앙심이 높아지는 라마단 기간 해외 입국자들을 유의해야 한다며 "몇걸음이라도 도망치려 하면 사살하라"고 말했다.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탄압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해 온 중국 정부의 주장을 전면 뒤집는 내용들이다. BBC는 "2017년 이후 신장 전역에 건설된 수용소들이 '학교'에 불과하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은 공안당국의 내부 지침과 완전히 모순된다"며 "이번 문간들은 위구르족 정체성, 문화, 이슬람 신앙을 거의 모조리 (말살) 표적으로 삼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증거 가운데 일부"라고 보도했다.

신장의 강제수용소의 존재는 수용소를 탈출한 위구르인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 정부는 신장 위구르족 말살 주장은 "세기의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019년 "신장에 있는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서 해방되도록 돕는 학교"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신장을 방문한 기간에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예상된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바첼레트 대표의 방문이 기자단 수행없이 '폐쇄적'으로 진행되고 중국 정부가 방문 목적을 '조사'가 아닌 '우호'로 제약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중국 정부의 선전에 이용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중국이 신장의 인권상황에 대해 완전하고 통제되지 않은 평가를 하는 데 필요한 접근을 허용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출문서를 검증한 14개 언론은 내용에 대해 공동으로 중국 외무성에 의견을 요구했다. 주미중국대사관은 "신장 문제는 본질적으로 반테러, 탈과격화, 반분열주의에 관한 것으로, 인권이나 종교 문제는 아니다"라며 "신장은 사회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답했으며 개별적 질문에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경향신문 : "중, 신장서 소수민족 강제수용소 운영" 새 증거 무더기 공개

8. 전세계의 규탄

8.1. 미국

9. 이슬람권의 반응

중국 언론 등에서는 "이슬람권 국가들조차 신장 재교육 캠프 관련해서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는데 오히려 미국 같은 서방 국가에서 중국을 비판한다"면서 신장 재교육 캠프가 날조라는 주장을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외교에서 국민 감정은 실질적으로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이슬람권 국가들의 공식적인 외교 발언과는 별개로 이슬람교 자체에 대한 강대국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공격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많은 무슬림들이 이를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특히 튀르키예의 경우 튀르크족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

튀르키예 현지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감정이 크게 나빠져 중국인에 대한 접객 거부는 물론, 중국인과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 일본인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경우 # 식당에 들어가도 접객을 하지 않으며 대뜸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주변 손님들에게 눈총을 받는다. 극구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현지에서 생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23] 심지어 관광객이 중국인으로 오인 받아 공격받는 사건도 있었다. # 그러나 중국과 친하게 지내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여당은 수위 조절을 하는 편이다.

아랍권 국가와 이란의 경우 튀르키예와는 미묘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원론적으로는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정책이지만, 이들이 종교 원리원칙이나 인도주의를 지키는 대신 중국 정부와 협력하면 오히려 당장 더 이익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이나 EU는 민주주의 및 인권 존중이 잘 지켜지지 않는 국가 정부들에게 대출해주는 것에 신중한 것과 다르게 중국은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정권에 돈을 빌려주고 이권을 얻는 것에 적극적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북아프리카의 각국 정권들은 국민 감정이야 어떻듯 중국에 돈을 빌리고 싶어하는 상황이다.

아랍권 민간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야기하는 이슈이다. 알자지라 등 아랍권 언론에서도 신장 재교육 캠프 관련 뉴스를 디테일하게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지순례를 온 위구르인들을 납치해서 마치 중국에서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는 방식으로 중국 수용소로 압송시킨 사건은 이슬람권 성지순례 역사에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수준으로 중국과 이슬람권의 전면 대결 양상으로는 번지지 않는데,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가 중국과 이슬람권 국가 사이의 국민 감정을 악화시킬 수는 있지만 대외 정책을 무조건 국민 감정에 기반해서 짤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2010년도 이후 아랍의 봄 실패 및 가자지구시리아에 계속되는 전쟁, ISIS 문제 등으로 이슬람권 내에서는 자국 정부가 이스라엘과 우호 관계를 맺고 위구르 인권 문제를 무시하건 말건 우리는 모르겠다 식의 체념이 만연해있다.

알자지라 등 아랍권 언론에서 위구르 인권 탄압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우디를 위시한 아랍 국가 수반들은 신장 재교육 캠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22년 10월에 유엔의 신장 인권 문제에 대한 의장 성명에서도 이슬람 국가로는 유일하게 튀르키예만 참가했고 사우디, 이집트, 이라크, 인도네시아 같은 주요 이슬람 국가들은 빠졌다. ##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 역시 중국을 강력 규탄하는 대신 위구르인들을 중국인들과 동등한 국민으로 대우해달라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다. #

오히려 이란 혁명호메이니 사후 친중 외교 정책을 유지하는 이란의 경우, 일전 로힝야 제노사이드 관련해서 목소리를 높이던 입장에서 사우디의 경우처럼 노골적으로 신장 재교육 캠프를 옹호하면 국제적으로 조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골적인 친중 발언은 자제하는 편이다. 이란 정부는 공개적인 외교 발언 상으로는 "중국은 무슬림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우디발 극단주의를 탄압한다."면서 옹호하는 입장이지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알리 모하타리 같은 이란 내 유력 정치인들은 위구르인 지지 관련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이 외에도 파키스탄임란 칸 정권의 경우 중국에 돈 빌린 게 많다 보니 당연히 중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상황이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도 위구르 문제 관련해서 중국 입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 인도네시아 내 종교 지도자들을 신장으로 초청했더니, 오히려 인도네시아 최대의 종교 단체가 미국과 서방의 주장이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 물론 아무리 중국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인도네시아인 이맘들 앞에서 위구르인들을 대놓고 전기고문하거나 각목으로 때리지는 못할 테고,[24] 중국과 인도네시아 양측의 이해 관계가 얽힌 형식적인 시찰이라 볼 수 있다.

위구르인 독립 운동 단체들도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서 세계 위구르 회의 같은 단체들은 아예 이슬람권 국가들의 지원 호소를 포기하고 서구에 어필하기 쉬운 형태의 온건 세속주의 성향의 민족 운동으로 방향을 잡은 상황이다.

의외일 수 있지만, 심지어 중국 내의 무슬림들조차도[25] 신장 재교육 캠프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신장 지역의 일부 후이족들이 재교육 캠프에 수감된 것은 사실이지만, 후이족들의 경우 이슬람의 정체성과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보통 미국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인권 탄압을 비판할 때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중국이 이슬람을 탄압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중국은 이슬람 친화적인 국가라고 주장한다.

10. 관련문서


[1] 티베트 자치구에는 티베트 노동수용소가 세워졌다.[2] 다만 뒤의 둘은 애초에 학살 자체가 목적이기에 신장 재교육 캠프와도 비교를 달리한다. 차라리 아우슈비츠보다는 다하우 강제수용소 같은 강제수용소와 더 비슷하다.[3] 그래서 관타나모 만에도 위구르인 여러 명이 수용된 적이 있다.[4] 티베트 정책을 담당한 경력이 있다.[5]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의 최종 목표는 전 세계의 이슬람화이며, 그에 따라 그 사람의 종교가 무엇이냐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지 그 사람의 혈통이나 민족이 무엇이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반면 위구르인들의 독립 운동은 위구르인들만의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므로, 위구르 민족이라는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군다나 위구르 독립 운동은 세속적인 국가를 추구한다.[6] 백 번 양보해서 이 곳이 노동수용소라고 해도, 하나의 민족을 대상으로 한 노동수용소 수감자 숫자가 최소 100만 명 이상이라는 건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야만적인 행동일 뿐이다.[7] 일각은 아우슈비츠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아우슈비츠 같은 절멸수용소와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으며 차라리 다하우 같은 강제수용소나 민주화 이전 대한민국형제복지원삼청교육대와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신장 재교육 캠프의 존재 목적 자체는 학살보다는 세뇌 및 체제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기 위한 인권 탄압과 강제 노동/감금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박해 중국의 위구르인 대상 강제 불임 수술 및 집단 강간을 은폐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의견이 있으나, 강제 불임 수술 등 출산권 침해는 한 아이 정책의 일환으로 한족에게도 가행된 전례가 있기에 나치의 인종주의적 몰살 정책과 비교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영미권 제도권 언론도 홀로코스트와의 비교는 꺼리고 있다.[8] 원나라 시대에 한족 10가구당 1인, 청나라 시대 역시 한족 10가구당 1인을 부양하도록 한 제도가 있었다. 여기에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부 인간 말종들이 가산 및 토지 약탈 등의 행패를 부렸고, 한족의 많은 문학 작품에서 몽골인, 만주인이 죽도록 까이는 이유가 된 정책이다. 어처구니 없는 제도가 한족에 의해 21세기에 부활한 셈이다.[9] 17세기 프랑스에서 위그노 말살을 위해 왕당파 병사들이 위그노 가정에 머물며 숙식을 해결하게 한 바 있다. 그 결과 위그노들은 프랑스를 떠났고, 그들의 상ㆍ공업 역량을 상실한 프랑스의 경제는 어려워져 대혁명의 요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10] 이는 2020년 신장 위구르 지역 인구(약 2585만 명)의 무려 5%, 중국 전체 인구의 0.1%에 육박하는 수준이다.[11] 비공식적으로는 무려 300만 명이 수감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12] 2013년 기준 인구가 47만 명이다.[13] 모두 만 명에서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수용소이며, 그 중 3곳은 현청 소재지인 옌기셔 지구에 있다.[14] 옌기셔 지구에 있는 제1 수용소. 쿠차르 도심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다.[15] 1979년 이래 저런 일이 매년 벌어지는 것은 전란, 자연재해(전염병 포함), 기근이 없는 평시의 국가에서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정도에서만 벌어진 일이었다. 저게 중국에서 그대로 재현된 셈. 여기서 1979년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인 폴 포트, 이디 아민,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축출된 해다.[16] 특히 스마트폰 같은 분야는 이게 아예 불가능하다. 주요 메이커인 애플, 삼성, 화웨이, 샤오미가 싸그리 저 리스트에 들어가 있기 때문.[17] 중국 정부의 주장은 소수민족 2자녀 정책에 따라 3자녀 이상을 임신한 여성에게만 단종 수술을 실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만삭의 임산부에게서 사실상 영아에 가까운 태아를 꺼내 살해하거나, 임신 및 출산 경험이 없는 만 20세 여성에게도 실시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사실 중국의 주장대로 3자녀라 할지라도 불임이라는 신체적인 장애를 강제로 일으키는 단종 수술 자체부터가 끔직한 인권침해 행위인데, 이걸 스스로 변명이라고 하는 수준을 보면 이들의 인권 의식 정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18] 신장에서의 위구르족 민족 말살을 꾀하기 위한 정책이라 인구 유출을 유도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결혼 이민으로 나가는 건 허가하지만, 돌아오면 외국에 다녀온 것 하나로 지하드 세력과 접촉했다고 몰아붙이고 잔인한 수용소 박해가 기다린다.[19] 12평 방으로 1인당 0.17평. 1평이 1인이 잠을 잘 때 쓰이는 단위로 쓰인 걸 생각해보면 1평에 6명, 출근 시간 지하철 수준이다. 여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단 하나의 화장지도 없는 변기까지 있었다.[20] 투르순은 이 사람들을 수용 기간 동안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이미 아는 사이였던 이웃, 투르순의 학교 선생님이었던 분의 어린 딸들, 자신처럼 영국 유학을 마친 후 동네에 병원을 열었던 여의사 등도 있었다고 한다.[21] 하루에 만터우 하나만을 주었는데 수용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그 찐빵이 점차 작아졌고, 나중엔 주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고 한다.[22] 물론 중국도 미국의 인권기록이라고 하여 미국 내 인권침해 행태를 지적한 보고서를 내고 있기는 한데 다른 나라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 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미국은 자국 내 문제를 인정하고 시정하려고 법적, 사회적 안전장치를 꾸준히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23] 한국 네티즌 일각에서는 자신이 한국인이라 알리면 위기를 모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질 경우 중국인들 중에서 해외에서 반중 감정으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이라고 사칭하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24] 막심 고리키굴라크를 방문했을 당시 굴라크 간수들과 죄수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연출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5] 중국 내의 무슬림은 신장 외에도 여러 지역이나 소수민족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