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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3:04

성고문

1. 개요2. 사례3. 종류4. 매체에서의 성고문5. 관련 문서

1. 개요

성적인 폭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큰 수치심을 주는 고문. 정신적·신체적 후유증이 몹시 큰데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할 가능성이 있고 심하면 불임 등의 영구장애가 생길 수 있다.

2. 사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군경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했던 것이 성고문이었다. 광복 후에도 일제 경찰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서 성고문 기법을 전수해나갔기에 제5공화국 시기까지 저질러졌던 극악한 고문 방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이다. 당시 시대상 군경-경찰에 재직하는 인물들이 대다수 남성이었기에 고문하는 사람도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북한 등 공산권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성고문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하며,[1] 007 어나더데이에서 장면이 나온다. 남미 등 일부 국가에서는 경찰견을 훈련시켜서 강제로 수간시키는 사례를 포함해 1970년대 남미의 독재 정권에서 행해졌다. 상대는 당연히도 여성 민주화 운동가, 남성 민주화 운동가의 어머니 혹은 아내나 딸 등 여성 가족. 충격적이게도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나 딸을 수간시킨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그 남편이나 아들까지 수간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상대방과 강제 성행위 후 관람은 직접적인 성고문은 아니지만 난징 대학살 때도 벌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비민주국가에서 흔하게 벌어진다.

2004년 미국 CBS <60 Minutes>를 통해 처음 공개된 아부 그라이브 포로 수용소 고문사건에서 성고문이 확인되었다. 범인들 중 미합중국 육군 여군 헌병도 포함되어 있어, 성고문은 남자만이 행한다는 편견을 깨는 주요 사례로 쓰이고 있다. 이라크 군 포로가 대상이었으므로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었지만, 여성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2] 목적은 대부분 고문자의 재미였다고 한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 등지에서 포로에 대한 학대 사건이 같은 시기 300여 건이 일어났는데, 이 중 심문 목적으로 행해진 것은 1/3 뿐이었다. 이는 해당 사건 이후 만들어진 슐레진저 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이다. 이 사건으로 17명의 육군 헌병들이 파면되었고, 그중 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죄질에 비해선 솜방망이라는 비판이 많다.

중국 신장 재교육 캠프라오가이위구르인, 티베트인 강제 수용 시설에서 상습적으로 성고문과 성폭행이 시행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수용소에서 수감되면서 성고문 당하는 경우 외에도 위구르인 가정 중 가장이 수용소에 끌려간 가정들에 중국 정부에서 파견한 인원들이 상주하면서 일부 인원이 무슬림 여성들을 성노예로 상습 강간하는 것으로 보이는 증언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2024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건을 저지른 IS 조직원들은 현장을 이탈했다가 추적끝에 붙잡혔는데, 러시아 보안부대가 조직원 샴시딘 파리두니의 바지를 벗기고 고환에 군용 배터리 전기선으로 속칭 '딸딸이' 고문과 흡사한 전기고문을 가하는 사진이 SNS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3. 종류

과거 일제강점기에 서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이 즐겨 쓰던 것이 시초가 되어 한국에도 정착했다. 요도에 온갖 이물질을 삽입하거나, 고환에 바늘을 찌르는 방법을 썼는데 통증도 심하지만 고문하는 부위가 남성이 보호하고자 하는 부위인 만큼 그 효과는 대단했다. 소련이나 그 동맹국들 등 서양에서는 호두 까는 기구도 이용했다고 한다. 호두를 까는 방식은 단순히 호두알을 바이스에 올려놓고 압력을 이용해서 눌러 부수는 형식인데, 그것을 그 알바꿔보자.
한국에서 이 고문 방법은 일제강점기 때 유래했다. 일본은 강골 조선인의 대를 끊어야 한다며 독립운동가에게 성기 고문을 했는데, 씨를 말려야 한다는 욕이 여기서 나왔다 한다.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요도 속에 기름종이를 쑤셔넣다가 불을 붙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 시절에도 그대로 남은 일제경찰에게 각 경찰서들이 이를 전수받아서 악랄하게 고문을 했고 5.16 군사정변 이후 출범한 박정희 정권 당시에 악명 높던 한국의 정보기관에도 전수되어 요도에 A4 용지를 말아 만든 종이심 박기, 볼펜심 박기, 볼펜 박기, 달군 철심 박기 등의 방법으로 발전되었다. 안기부 고문 증언으로 온몸을 발가벗기고 두 팔을 뒤로 묶은 상태에서 성기만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몽둥이로 쳤다고 한다. 한 번만으로도 기절하게 되며 깨어나면 다시 쳤다. 고문의 공포를 극대화하고자 욕설과 함께 순간적으로 앉고 있는 의자를 들어 모서리로 내려찍었다 한다. 통증도 그렇지만 거세된다는 공포로 정신착란이 일어나게 된다.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성기에 전기고문을 했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이 박정희 시절 성기에 전기고문을 당해 성불구가 되었다. 한번 이 고문을 당하면 소변을 볼 때도 피오줌을 싸며 엄청난 고통을 겪고, 소변을 보고 난 뒤에도 몇시간 동안은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에 시달린다. 군사독재 시절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이 고문을 몹시도 애용하고 집착했다. 악명 높던 군사독재 시절 정보기관의 심문자들마다 셔츠 앞주머니에 크기가 각기 다른 볼펜이 몇 개씩 꽂고 있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007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가 르쉬프에게 이 고문을 당한다. 매듭을 묶은 굵은 밧줄로 휘둘러 치는... 이하생략. 그리고 이게 더 발전하면, 과거의 궁형이 된다. 최근 태국에서 레드셔츠를 대상으로 항문에 전기봉을 꽂고 성기에 코일을 감아 전기 고문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리고 여성들 또한 성기 고문을 많이 당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남성들보다도 더 심하게 당했다. 대표적으로 미꾸라지 고문이 있다. 여성을 발가벗긴 후 미꾸라지가 가득 든 큰 통에 담가버린다. 미꾸라지는 습하고 따뜻한 구멍을 찾는 습성[3]이 있는데 하반신에서 습하고 따뜻한 구멍이라곤 여성의 음문항문밖에 없다. 그 결과, 미꾸라지들이 여성의 음부를 파고들어간다. 원래 미꾸라지 고문은 고문법이 아니라 옛날 중국에서 개발된 사형법이라 죽이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그래서 웬만하면 쓰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이러한 고문법이 적잖게 쓰였는데, 사실 일제 입장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죽여도 그만인 존재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 다만 이런 고문이 행해졌다는 말은 있으나, 딱 꼬집어 유관순 열사가 이런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구전되는 와중에 당시에 존재한 성고문의 일화와 합쳐져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성고문은 한국의 경우 전두환 정권 때 폐지.

이외에도 기다란 봉을 자궁 속에 억지로 쑤셔넣는다던가, 봉 형태의 전기 충격기를 음문이나 항문에 삽입한 채로 전기 충격을 가한다던가, 음부를 채찍으로 친다든가 하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고문들이 있었다. 특히 신경이 밀집되어 있는 여성들의 음핵을 집중적으로 고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일제시대와 군부독재 시기에 이런 경향이 심했다. 일단 여성, 특히 20대~30대 초반 정도의 젊은 여성을 전기고문 할 때는 자신들에게 고문 당할 여성을 무조건 발가벗긴 뒤, 전기선의 집게를 그 여성의 젖꼭지와 음부에 집었다고 하는데 고문하는 사람에게 거의 성노예 취급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BDSM 쪽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후유증이 없을 정도로 순화시켜서 하지만.

4. 매체에서의 성고문

괴작 고요키바에 많이 등장한다. 보통 고문기술자들이 직접 하는 것만 생각하지만 단순한 추행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아주 심한 경우는 같이 고문을 당하는 상대방과 강제 성행위나 NTR을 통한 성고문도 있다.

여명의 눈동자 원작, 마루타, 조선 여자 정신대일제강점기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종종 나오는데 이런 일은 소설 속의 일 뿐 아니라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 후진 독재국가들에서는 꽤 일반화되었다.

포르노AV에서 특히 액션 계열인 여수사관물 장르 등에선 작중 BDSM 플레이 설정을 정보기관이나 범죄조직이 행하는 성고문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많다.

5. 관련 문서


[1] 보통 반항하지 못하도록 묶은 후 공격하여 굴욕감을 주거나 여성 피해자들의 사례와 같게 벗기고 강간하여 수치심을 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또는 가족이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보게 하여 정신적 충격을 준다.[2]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하고 자살한 사례가 있다.[3] 미꾸라지를 잡을 때 개울 구멍을 파는 이유도 미꾸라지가 이런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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