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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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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영향과 작품4. 클리셰분류5. 포스트 아포칼립스와의 차이점6. 관련 문서

1. 개요

역(逆)유토피아라고도 부른다.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나타내고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
두산백과
디스토피아(Dystopia), 카코토피아(Kakotopia), 안티유토피아(Antiutopia)는 이상향유토피아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모습의 가공의 세계를 가리킨다.

2. 어원

처음 디스토피아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영국 정부의 아일랜드 억압 정책을 비판하면서부터라서 어원상 억압적인 사회, 강제적인 정책 등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1] 다시 말해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세계이지만 개개인이 사회에 억눌려 인간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세상을 말한다. 디스토피아는 그 어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방점이 유토피아처럼 보이는에 있으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개개인이 단순히 살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디스토피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과거 어느 순간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이룩하려고 했으나 그 시도가 실패한 끝에 도달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유토피아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해서 그 반대말인 디스토피아를 세상 어디에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 버리면 곤란하다. 디스토피아 역시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나라다. 실제로 취약국가지수를 보면 아무리 잘 사는 국가도 0점이 아니고, 파탄국가들도 120점 만점이 아니다. 즉,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모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2]

디스토피아를 현실에 만들려면 정부가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나 중국 같은 나라가 아무리 특정한 걸 감시하고 탄압해도 몰래 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런 사람들까지 완벽하게 없애고 완전히 통제되어 버려야만 진정한 의미의 디스토피아이며 흔히 '현실화된 디스토피아'라고 언급하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나라도 아직 이 경지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3. 영향과 작품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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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자먀틴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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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양한 미디어물에서 다루고 있으며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이 끼친 영향력은 매우 거대하다.

SF를 포함한 사변문학에서도 자주 다루는 주제인데 1984[3], 멋진 신세계[4], 우리들[5]이 이 장르의 3대 명작으로 불린다. 어떻게 보면 동물농장작은 사회의 부정적 면모를 그리기 때문에 디스토피아를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초기 디스토피아 장르의 기틀을 놓은 이 작품들을 보면, 디스토피아의 원래 의미가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대한 반어적인 풍자임을 알 수 있다. 전체주의와 세계대전, 기술문명의 발전 속에서 인류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비관주의로 바뀌어가면서 생겨난 문화적 사조의 한 갈래가 바로 디스토피아 장르인 셈이다.

오늘날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과 함께 SF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SF 영화들이 이들 세계관에 바탕한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데, 주요한 영화로는 메트로폴리스,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가타카, 브이 포 벤데타 등등이 있다.

신세계의 신, 세계질서 개편이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장르로서의 디스토피아는 장르 특성상 작가의 정치성향 및 사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특징이 있다. 자기가 어떤 사회가 암울하다고 생각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4. 클리셰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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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스트 아포칼립스와의 차이점

포스트 아포칼립스와의 차이점이라면 디스토피아는 '통제당하는 전체주의 시대'[6]의 암울한 세계이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전쟁 또는 기타 이유로 인해 '문명이 붕괴한 이후'를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즉, 디스토피아는 정부가 지나치게 강력한 통제력을 지니거나 부패한 사회를 다루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정 반대로 사회의 통제력이 완전히 붕괴된 무정부 상태를 다룬다. 즉, 쉽게 말해 범죄자가 아니라도 족쇄를 차면 디스토피아, 범죄자도 족쇄를 차지 않으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단순화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다른 표현으로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딱 중간에 가까운, 범죄자는 족쇄를 차고 범죄자가 아니라면 족쇄를 차지 않는 형태가 국가 시스템이 정상화 되어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그 어원상 암울한 미래를 풍자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세계가 멸망하거나 문명이 쇠퇴한 이후를 다룬 작품이라도 카페 알파,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하늘의 소리 같은 치유계나 성장물에 가까운 작품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는 볼 수 있을지라도 당연히 디스토피아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정통적인 디스토피아 장르는 그 주제가 사회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미래상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작품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 배경적인 요소만 쓰이는 작품은 대단히 많다. 이런 경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디스토피아 장르로는 보지 않는 편이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스타워즈, 헤일로 시리즈, 건담 시리즈, 배틀테크, 워해머 40,000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그 밖에도 수 많은 SF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편이라 애매한 편. 다만 이 분류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사람에 따라서 기준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완전히 틀리다고는 하기 어렵다. 통상 이런 작품은 분위기 연출을 위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설정한 것일 뿐이라 본편에서는 그냥 배경연출을 위한 장치 정도로만 다루어지며, 스핀오프나 2차 창작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세계관 설정을 파고들거나 구체화하여 본격 디스토피아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 장르에서 다루는 통제적인 전체주의 정부가 나타나기 가장 좋은 환경은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듯) 경제적 공황과 그로 인한 커다란 전쟁의 위협이었으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장르의 결합은 쉽게 일어나곤 한다. 멸망이 일어나기 전의 세계가 디스토피아였거나[7] 멸망 이후 재건된 세계가 디스토피아인 것 같은, 록맨 제로 시리즈처럼 '과거 포스트 아포칼립스 → 문명 재건 후 디스토피아 → 포스트 아포칼립스 엔딩'이나 '과거 디스토피아 → 포스트 아포칼립스 → 재건된 디스토피아 엔딩' 같은 작품도 있다. 물론 문명이 재건된 시점에서 해당 작품을 '포스트-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헝거 게임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디스토피아와 같은 모습도 보여진다.[8]

요약하자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문명이 멸망한 이후 법체계가 무의미해진 무법의 세상을 주로 다루는 것[9]이고, 디스토피아는 문명은 존재하되, 문명이 극도로 인류를 통제하는, 악법이 판을 치는 막장 세상을 주로 다루는 것[10]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상술한 설명은 어디까지나 창작물 장르 분류일 뿐이며 현실에서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동시에 발현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사에서는 여말선초, 서양사에서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기를 들 수 있다. 국가의 행정력이 애매하게 붕괴되고 중앙 정부의 정치 견제 시스템이 마비되며, 외부에서는 외적이 지속적으로 침입하는 상황이 그 기반이다.

가령 여말선초에는 군벌화된 권문세족들이 고려 중앙정부를 거머쥐고 백성들을 수탈했으며 산과 강을 그 경계로 삼을 정도로 광대한 농장을 경영하며 디스토피아를 형성했지만, 정작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왜구, 홍건적 등을 막을 힘은 벅차 도성이 쑥대밭이 되고 각지에서 도적떼가 횡행하며 법이 유명무실해지고 치안과 농업근간이 붕괴하는[11]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동반되었다.

6. 관련 문서


[1] 존 스튜어트 밀이 1868년 영국 의회에서 영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현상유지를 전제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 현상유지는 커녕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질되는 현실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디스토피아 국가를 흉내낼 수는 있어도 완전한 구현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3] 개인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 독재[4] 말초적이고 타락한 계급사회[5] 기술독재 기업국가[6] 그것이 설령 선한 이상주의를 목표로 하는 통제라 하더라도 개인을 억압한다면 디스토피아에 해당된다. 가령 영화 이퀄리브리엄제3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포함해 인간에 의한 모든 분쟁을 제거할 목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약물을 보급하지만 이는 개인의 감정과 그에 따른 표현의 자유들을 억압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 존이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라고 말하자 멋진 신세계의 지도자 무스타파 몬드는 "그렇다면 나이를 먹어 추해질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원한다는 말인가?"라고 묻는다. 긴 침묵 끝에 존은 대답한다. "네, 저는 그 모든 권리를 요구합니다."[7] 폴아웃 시리즈가 이에 해당한다.[8] 판엠은 캐피톨과 1, 2구역을 제외하면 다른 구역들이 거의 무문명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9] 멸망의 시작부터 멸망의 과정도 포함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통은 주로 다루는 시점은 문명이 붕괴한 이후의 무법의 세상이다. 오직 멸망의 과정만을 다루고 그 이후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멸망 도중의 말법스러운 풍경을 다룬다고 해도 엄밀히 말해서 포스트(後)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그냥 아포칼립스물이다.[10] 한 차례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문명이 싹 쓸려나간 이후에 새로운 문명이 들어선 이후에도 디스토피아는 성립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성립하지 않는다.[11] 쌀농사는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잡다한 마을 일을 맡아 해주지 않으면 짓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