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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류는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 생성기(중국·동남아권으로 드라마 수출)→2000년대 중반 심화기(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2009년~10년 정착기(K-POP 중심으로 시작된 신한류)다. 이 가운데 정착기에 해당되는 ‘K-POP 신한류’는 드라마·영화가 중심이 됐던 과거 한류와 그 양상이 다르다. 디지털 환경을 토대로 안정적인 성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2. 1990년대: 태동기와 한류 탄생
한국 드라마는 1970년대에 수출을 시작했지만 세계 어디서든 지상파 위주에 채널이 몇 개 되지 않았던 방송 환경을 지녔었고[1], 이 당시에는 한국하면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라는 정도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한국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적어 큰 이익을 보기 어려웠고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해외 한인방송사 위주로 수출되는 수준이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제작비가 비싼 특성때문에 제작하는 국가들이 적어 본격적인 TV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된 1980년대 후반부터 괜찮은 수출 실적을 거두웠지만 제작 편수가 많지 않아서 이것도 한계는 있었다.하지만 1990년대 중반 대만 케이블 방송사[2]에서 일본 드라마보다 단가가 싸다는 이유로 한국 드라마를 편성하기 시작했는데,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중국 CCTV에서 사랑이 뭐길래가 수입되어 대히트 치자[3] 2000년대까지 한국 드라마가 중국 주요 방송사를 통해 절찬리에 방송되었다. 또한 1990년대 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권 방송사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수입단가가 싸면서도 생각보다 흥행성 있는 작품이 많다는것을 발견하자 하나둘씩 수입하기 시작했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해당국가에서 한류의 발흥을 이끌어내게 된다.
또한, 클론은 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NRG가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켰으며 대만의 배우, 인기가수 서회옥(徐怀钰, 1978~)이 1998년 데뷔 이후 1990년대 한국에서 유행한 히트곡들을 많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4]
한류라는 단어의 기원을 보면 1997년경부터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국 TV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으며 한류가 발생했는데, 당시 대만에서 '하일한류(夏日韓流, 여름에 한국 바람이 불어옴)', 중국에서 '일진한류(一陣韓流, 한국 문화 마니아들)' 등의 표현이 국지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1999년 가을, 당시 한국 문화관광부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제작, 배포한 음반의 제목에 〈韓流-Song from Korea〉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때 즈음 하여 한류라는 단어가 한국 대중문화를 거론하는 고유명사로 확실하게 각인되게 된다.
비록 한국 드라마의 해외 수출은 1990년대 중반에야 시작되었지만, 이와 반대로 한국 가요는 1990년대 말 이전에도 한국에서만 듣던 내수용 음악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60년대부터 한국 가수들은 일본[5]에 진출하며 인기를 얻기도 했으며, 한중수교 이후인 1993년부터는 가수들의 중화권 진출이 본격화되었다.[6][7]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같은 문화권이지만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북한에서도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가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한다.[8]
덤으로 김시스터즈[9], 코리아나[10], 키메라처럼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여 인기를 얻은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다.[11] 물론 당시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가수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경우는 전무했지만.[12] 그리고 한국 영화는 잘 나가던 시절인 60년대 중반 대만에 수출되기도 했고, 이들 중 빨간 마후라가 큰 인기를 끈 바가 있다. 한류 이전 한국 가수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 대중음악의 해외진출 연대기: 김시스터즈부터 방탄소년단까지(총 8부)를 참조하길 바란다.
이렇듯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해외 인기는 동아시아, 잘 쳐봐야 동남아시아[13]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일본, 홍콩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14] 등과 비교하면, 그리고 한국의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15] 저조한 수준이었다.[16]
따지고 보면 이 당시에도 스크린쿼터제 시행으로 자국 영화산업이 보존되는 등 잠재력 자체는 상당했고, 경제성장으로 방송, 출판, 프로 스포츠, 음반를 비롯한 문화시장도 매년 큰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검열, 표절과 해적판이 난립하는 낙후성 또한 같이 지니고 있던 상태였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도 이러한 낙후성 탓에 한국 대중문화의 잠재성을 저평가하는 기조가 만연하였고 한류가 발흥하던 이후에도 이는 한동안 이어졌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가 시행되었을 당시에는 이미 TV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다수 및 시중에 유통된 만화책 상당수가 일본제였다는 점에다가 상당수 TV프로그램의 포맷이 일본 TV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때문에 이러다가 일본 대중문화에게 지배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섞인 예측이 있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불안감은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한국 영화가 부흥하고 온라인 게임이 잇따라 흥행하였고 무엇보다 한국에 수입된 일본영화와 일본 드라마, 제이팝이 큰 재미를 못보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빼면 수그러들었다.
3. 2000년대 초반: 본격적인 해외 진출과 일본에서의 열풍
2000년 1월,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 주연의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개봉되어 대흥행(매출 15억엔)을 기록하면서 일본의 한류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2000년 2월, H.O.T가 베이징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중국의 한 신문이 "한류가 중국을 강타했다"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면서 공식화되었다.[17]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일본 가요계로 진출하여 오리콘 차트를 제패하면서 대성공을 거둔 보아는 한국의 K-POP이 일본 진출의 길을 열기 시작하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2003년, 일본에서도 겨울연가를 통해서 일본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배용준의 욘사마 신드롬과 함께 한국 드라마 인기가 많아지면서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한류라는 단어가 전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보아는 배용준과 함께 '가수는 보아, 배우는 배용준' 이런 식으로 1차 일본 한류열풍의 주역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인터넷 보급 문제와 취재 인력 미비로 인해 해외의 한류 소식을 듣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국내 팬들은 한류 관련 해외 소식을 2001년 9월 개설된 한류열풍 사랑[18]과 카페와 동년 10월[19]에 개설 된 K-Pops.net[20]을 통해 알음알음 해외 소식을 쉽게 접할 수가 있었다.
4. 2000년대 중반~후반: 지속적인 해외 수출과 영향력 증가
2000년대 초반에서는 게임 한류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게임 한류' 시초에 있는 게임은 당시 그라비티에서 개발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으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21]을 필두로 기타 아시아 국가와 해외에도 서비스를 이어가기 시작했다.[22]2004년 4월 3일, 배용준의 일본 최초 공식방문 영상이다. 뉴스 링크[23]
앞서 말한 쉬리가 일본인들에게 "어? 한국 영화도 꽤 재미있는데?"정도였다면, 배용준은 일본 여성들에게 '그동안 잊고 살던 첫사랑'이란 이미지를 심어준 셈이다. 겨울연가 문서에서도 자세히 나와있지만 하네다 공항이나 투숙하던 호텔 주위에 모여서 손을 한번만이라도 흔들어주기를 바라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장면은 흡사 첫사랑을 고대하는 슈퍼스타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본의 한류 열풍의 기반을 다진 한국 연예인은 배용준이 맞다.
그 시절, 일본에서는 아직 한류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나중에 중화권에서 만들어졌지만, 한류 열풍의 원인은 중화권, 동남아와 일본은 방향성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중화권에서는 이전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파워풀한 댄스를 하는 K-POP의 한국 아이돌과 트렌디 드라마를 통해서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다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와 같은 멜로 드라마로 1970년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욘사마 열풍은 일본의 한류 열풍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중장년층이 한국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연령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반한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그 이미지가 점점 희석되기 시작하고 본격으로 "한국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 같은 긍정적인 인상이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일본에서도 동방신기의 인기를 시작으로 '신한류 붐의 시대'로 불리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열풍이 불어 중년층을 넘어서 젊은층으로까지 인기가 확산되었다.
2000년대 후반 시기에 들어서 대장금 이후부터 딱히 아시아권에서 큰 붐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가 많지 않아서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고 생각되기 쉬운데,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의하면 드라마 수출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었다. 당시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는 오늘날로 치면 튀르키예 대중문화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이보다 살짝 높은 위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대박을 기록하는 작품은 줄어들고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저 멀리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도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었을 정도인데, 대장금의 해외 인기에 대해서는 대장금/한류 열풍 문서를 참고하면 좋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아랍권과 북아프리카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말이 있음과 동시에 중국, 일본, 튀르키예 같은 수많은 국가에서도 리메이크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솔약국집 아들들은 일본, 대만, 홍콩과 마카오, 싱가포르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란에서도 한국 드라마는 유명하다. 이란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방송을 하는 국영방송의 지상파 채널 서너 개는 물론이고, 시청하면 불법인 외국 페르시아어 위성 채널에서도 방송을 해준다. 이란 정부가 폐쇄 조치를 먹인 바가 있던 뉴스 코프 계열인 파르시 1이 그 예다.
2003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2등상을 타면서 한국 영화는 국제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전 세계 82개의 시장에 수출되어 2004년 프랑스 최대 지상파 채널인 TF1에서 최대 57%의 시청점유율을 기록했고 2007년 '아랍권 CNN' 으로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에서까지 전파를 탔다.
2009년에는 캐릭터 상품 누적 매출액이 무려 8300억 원을 달성했다! 흔히 한류 열풍하면 한국 드라마나 K-POP, 영화 등을 떠올리지만 온라인 게임같은 미디어도 당당한 문화산업으로 뻗어나가게 되었고 거대한 한류 열풍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게임과 서적이 한국 미디어 산업에서 해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리니지 시리즈와 아이온, 카트라이더, 미르의 전설, 크레이지 아케이드 시리즈가 조(兆) 단위도 넘게 매출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흥행을 거뒀다.
5. 2010년대 초반: 신한류 붐
이 전시기의 한류의 핵심인 드라마가 중장년 이상층에서 영향력을 끼쳤다면 이 시기부터 한류를 향유하는 연령대가 10~20대로 크게 낮아지게 된다. 이는 단순한 연령대의 이동만이 아닌 한류의 확장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는데, 10~20대는 기호가 굳어지기 전의 연령대이자 다양한 기호에 도전할 수 있는 연령대고, 사회 기반층으로 성장했을 땐 동일하게 기호가 굳어지지 않은 자식 세대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대기 때문이다.[24]과거 한국에서 일본문화를 암암리에 수용했던 80년대와[25] 그 영향을 받은 자식 세대가 이 전 세대에 비해서 일본문화에 대한 적대감이 크게 줄었단 점은 젊은층이 장기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이 후 세대에 끼치는 영향력이 지대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며, 한류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보인 기반은 강력한 소프트 파워가 큰 이유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시기에 젊은 층이 향유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 발전한 원인도 컸다고 볼 수 있다.
2010년대 초반인 2010~2013년 당시의 한국 대중가요계에서는 카라, 2NE1, 원더걸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빅뱅 등의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K-POP 가수들이 아시아권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멕시코, 페루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권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한국 아이돌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다.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핵폭탄급 인기를 누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 외국으로 수출되면서 고무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0년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점유율 탑 10이 전부 한국산 온라인 게임이었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선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게임이 일본에서는 그럭저럭 잘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1위인 프리우스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연평도 포격전 때에는 영국의 경제학자 다이엔 코일이 "내 둘째 아들이 하고 있는 메이플스토리의 업데이트가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길 바란다(Son 2 hopes n Korea doesn't attack s Korea or 'there'll be no more updates to Maple Story'..."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 외에 전 세계에서 팡야 캐릭터인 쿠의 생일 파티를 개최하는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 1위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죽하면 중국서버가 본섭이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엘소드 관련 패러디가 나온다. 참고
하지만, 음악계의 아시아 컨텐츠 시장은 일본과 중국 외의 시장이 조금은 아쉬운 실정이다. 불법 복제가 많은 아시아에서 큰 음반 수익 등을 못 얻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런닝맨, 무한도전 외국편들에 나타난 열광적인 인기로 인해 한국의 예능 방송도 어느 정도 파급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날이 갈수록 상승하는 한류의 흥행 덕분에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의 수출길이 열리는 등,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향상과 친근함으로 한국산 가전제품의 수출과 한국산 상품의 추가 구매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분명한 것은 1차 한류 붐 이후에 2차 한류 붐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곳곳 중남미, 중동에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한류 붐을 이끌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정부 주도로 추진한다고 판단하여 연구하는 중이다.[26]
2011년, 한국의 관세청은 여러 가지 데이터를 근거로 한류와 수출의 연관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관세청은 한류가 확산되고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산 소비재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05년 이후 중남미의 국가들과 페루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중남미 수출 50% 급증… “알고 보니 新한류 덕분”
2012년 3월 17일, 도쿄대 후쿠타케홀에서 열린 '현대한국문화의 아시아적 환류(還流)와 지역 아이덴티티의 가능성'이란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일본의 소노다 시게토(園田茂人)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한류 현상에 색다른 주장을 하였다. 그는 아시아의 한류 현상이 미국 중심의 편중된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아시아의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3월 26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한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오바마 카카오톡-한류 언급 “디지털 시대 소통법” 외대 강연 관심↑
2012년 3월 27일, 프랑스의 카날 플뤼(CANAL plus) 토크쇼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에서 얀 바르테즈 MC는 대선주자 자크 슈미나드와 대화하며 샤이니에 대해 "K-POP 열풍의 주역"이라고 평했다. 그는 무소속 프랑스 대통령 선거 후보인 Jacques Cheminade 자크 슈미나드에게 "LMFAO의 '라이브 마이 라이프'와 샤이니의 '셜록' 중 어느 노래를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자크 슈미나드는 결론적으로 대답을 회피했다.(오리지널 출처)Le Petit Journal 27/03/12 - Spéciale Jacques Cheminade, 관련 내용은 동영상 마지막에 등장함.(스포츠조선 관련기사)샤이니, 프랑스 유명 토크쇼서 소개! '미친 인기' 입증
사실 전반기까지의 한류 확장세는 고만고만했지만, 후반기에 접어들자마자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한류 돌풍이 전 세계에 휘몰아쳤으니, 그것은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강남스타일은 그동안의 정립된 아이돌 위주의 K-POP의 고정관념을 다 부수고 엄청난 흥행을 하고 있으며 그 기세는 역대 K-POP 콘텐츠의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한류의 전반적인 돌풍은 아니고 싸이가 혼자서 일으킨 돌풍이라 지켜봐야 하지만, 시간이 흐른 2020년대인 현재에도 절대로 싸이의 성과를 저평가하지 않는다.
6. 2010년대 중반~후반: 한류의 세계화 진행
지금까지 아시아권 시장에서만 고무적인 흥행을 거두고 유럽권과 북미권에서는 그저 작은 팬덤을 형성한 수준에 그쳤던 한류의 한계점을 벗어나 K-POP 가수들의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전무후무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시작함에 따라 신한류 붐의 지속적인 성장과 새로운 문화부흥의 희망과 가능성을 품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존의 아이돌 주도의 K-POP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과 방식에서의 K-POP 출고 방식을 다시금 재고할 수 있게 되는 지평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방탄소년단이 2010년대 중후반부터 서구권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하더니 북미-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팬덤이 불어나면서 K-POP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싸이가 1회성으로 보여줬던 화제성을 넘어 팬덤이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각국의 주요 언론들에서도 이에 대해 보도를 쏟아냈다. 원 히트 원더였던 싸이와 다르게 장기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방탄소년단 말고도 BLACKPINK, EXO 등 서구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그룹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무대에서 활동하는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의 연예 기획사로 직접 찾아와서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리고 최근 온라인 게임에 이어서 서서히 한국산 모바일 게임의 흥행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 게임에 이어서 또 다른 게임 신한류의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4년에 가장 두각을 드러낸 분야는 단연 드라마였다. 2013년 말부터 SBS에서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과 대만에서 사회 현상이라고 칭할만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 김수현, 전지현이 중국에서 찍은 CF 제품의 장백산 표기 논란으로 웹상이 시끄러워진 적도 있다. 이후 한국산 드라마가 중화권 시장에 갖는 의미가 더욱 각별해져서 괜찮아, 사랑이야가 약 20억 원에 수출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
2015 해외 한류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문화 콘텐츠로 'K-pop'과 '드라마'를 누르고 '한식'이 1위에 올랐다. #
2016년 특기할만한 시작도 역시 드라마였다. 태양의 후예가 아시아에서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유럽의 수많은 국가에 판권을 판매해 유럽에서도 엄청난 경제효과를 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중으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다. 2016년 세계인이 생각하는 한류는 케이팝보다 한식, 패션, 뷰티였다는 통계가 있다.
2017년 1월 기준으로 전 세계 한류 팬이 무려 6000만 명으로 조사됐다. 2016년 세계의 한류 팬의 수가 한국 인구수(5169만 6216명·2016년 12월 기준)를 뛰어넘은 셈이라고 한다. 또한 차세대 신한류의 대표주자로 유투버들의 K뷰티와 웹툰이 떠오르고 있다.
2015년 이후부터 온라인 게임 분야로는 검은 사막이 상당한 호평과 동시에 북미권와 유럽권, 러시아권과 아시아권을 상대로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각종 MMOPRG 온라인게임 차트를 갈아치웠었다. 그리고 외산게임에 밀려서 2017년까지 상대적으로 온라인 게임으로 히트작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국 시장에서 PLAYERUNKNOWN'S BATTLEGROUNDS라는 FPS/TPS가 등장을 하게 되고 전 세계 동시접속수 320만명을 찍고 여태껏 한국 게임이 근처도 가지 못했던 스팀 동시 접속자 수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 게임이란 인식이 명확한 검은 사막과 달리 배틀그라운드를 한류와 결부시켜서 단정짓기에는 해외 게이머들의 인식에 있어서 플레이어언노운, 즉 브렌던 그린의 비중이 거대하기 때문에 좀 부적절한 면이 있다. 애초에 게임은 공산품과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때문에 소프트파워를 이끌어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처럼 해당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가 곧 2차적인 파급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당장에 배틀 그라운드나 기타 외국에서 흥행한 한국산 게임을 하면서 한국 문화를 가깝게 느끼고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 여행을 가서 굿즈를 사고 싶어 하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거나 하는 식의 연속적인 심리와 파생효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18년에는 한류 관련 콘텐츠 수출액이 5조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중국의 비중이 20%대로 줄고 서구권의 비중이 20%대로 증가했다.기사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물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이룩하는 매우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도 상을 수상하고 여러 국가의 아시아 영화, 비영어 영화 흥행 성적을 모조리 갱신했다.
그리고 넷플릭스 작품인 킹덤이 상당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의 전통의상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이루마가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6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8월 21일 '팬덤 연구소 블립'이 오늘의 K-POP 현황, 팬덤 데이터 관측기 ‘케이팝 레이더(K-Pop Radar)’의 사이트 오픈을 기념하여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한 ‘2019년 K-POP 세계 지도’를 브리프 섹션에 공개했다.기사
7. 2020년 ~ 현재: 한류의 기성 대중문화화
特に作品名は無いのですが、韓国映画、韓国ドラマ、韓国アーティストが世界を席巻した一年だったと思う。私自身は特に韓国映画はずっとファンだったのですが、ここまでの影響力のあるカルチャーになるとは思いませんでした。実際、制作される作品も丁寧でクオリティーも高い。そして何よりその感性として若さを強く感じます。ひとつの作品がグローバルメディアとして成長するためのインフラが整った今、最も大事なのはやはり品質であり、それをやり切れれば国や文化を超えたヒットが起きるという事実を思い知りました。
(딱 집어 말 할 작품명은 없지만,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 한국 아티스트가 세계를 석권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은 특히 계속 한국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고, 이렇게나 영향력 있는 문화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제작되는 작품도 정중하고, 매우 퀄리티가 높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감성으로 젊음을 강하게 느낍니다. 하나의 작품이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하기 위한 인프라가 갖추어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퀄리티이며 이것이 뛰어나면 나라와 문화를 초월한 히트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용과 같이 총감독 나고시 토시히로 #[27]
(딱 집어 말 할 작품명은 없지만,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 한국 아티스트가 세계를 석권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은 특히 계속 한국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고, 이렇게나 영향력 있는 문화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제작되는 작품도 정중하고, 매우 퀄리티가 높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감성으로 젊음을 강하게 느낍니다. 하나의 작품이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하기 위한 인프라가 갖추어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퀄리티이며 이것이 뛰어나면 나라와 문화를 초월한 히트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용과 같이 총감독 나고시 토시히로 #[27]
우리에게는 언제나 늘 좋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있었다. 세계가 우리를 갑자기 주목하는 것일 뿐이다.
윤여정,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영국의 더 가디언지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예술이 갑자기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다.
윤여정,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영국의 더 가디언지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예술이 갑자기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다.
2020년에는 일본 한류의 세도 드라마를 중심으로 다시금 커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일본 넷플릭스 전체 1,3,5위를 한국 작품이 석권한 바 있으며 특히 TVN '사랑의 불시착'이 돌풍에 가까운 인기를 끌고 있다. 김수현이 주연을 맡은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서 선보여지고 있는데, 홍콩,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7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는 2∼3위를, 브라질과 페루 등 남미 전역에서도 10위권에 올랐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종합 순위에선 6위까지 올랐다. 특히 '킹덤' 시즌2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인도의 '오늘의 Top 10'에 안착했고,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다른 한국 드라마도 4월부터 9월 이후까지 쭉 일본 넷플릭스 상위권을 차지하며 모테기 일본 외무상도 시청했다고 언급하는등 "일본 내 4차 한류"라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28]#
2020년대에 들어 한국 드라마들이 넷플릭스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이 아시아권 넷플릭스 최상위권을 점령하고 있으며 사이코지만 괜찮아, 더 킹 : 영원의 군주 같은 경우는 비아시아권 성적도 좋아서 월드 넷플릭스 스트리밍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또한 영화계에서도 2019년에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2020년에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고, 2월 9일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4개 부문을 석권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역사를 새로 쓰는 대업적을 이루게 된다. 거기다 아카데미 수상에 힘입어 미국 역대 비영어 영화 흥행 순위 4위, 영국 역대 비영어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달성했다. 또한 2020년 12월 15일 구글이 발표한 '2020 올해의 검색어' <2020년 전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영화> 1위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조일형 감독의 작품 "#살아있다"가 넷플릭스 공개 하루만에 글로벌 무비 차트 2위에 올라선 데 이어서, 이틀 째(9월 10일 기준) 미국,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러시아 등 유럽 주요국, 호주를 포함해 전세계 35개국 무비차트 1위를 석권하며,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넷플릭스 전세계 영화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 또한 승리호도 대박을 쳤다. 넷플릭스 공개 당일날 월드와이드 1위에 랭크되고 공개 후 28일 동안 무려 전세계 2600만이 넘는 유료 구독 가구가 시청하는 대흥행을 하였다. #살아있다와 승리호는 흥행도 흥행이지만 전통적인 극장개봉이 아니라 OTT를 통한 흥행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한국 영화계에 커다란 영향력과 파장을 남겼다.
한편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양적으로 늘어난 애니메이션 시장에 비해 애니화할 일본 컨텐츠들이 부족해지면서[29][30]한국의 웹툰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한미일이 합작해서 여러 웹툰들을 애니메이션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에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가 차례로 애니화되었다.[31] 이 작품들이 예상보다 서양권에서 뛰어난 흥행에 성공하며 새로운 문화 컨텐츠 활로가 생겼다.
2020년 2월 25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공개한 '2020 해외한류실태조사' 보고서 결과 기사
2020년 3월 13일에 공개된 2019 한류백서. 2020년 6월 29일 공개한 2020 글로벌 한류 트렌드.
특히 방탄소년단은 2020년 중반에 낸 신곡 Dynamite를 통해 21세기 최초로 빌보드 차트 HOT 100에서 1위를 한 아시아 아티스트이자, 비영어권 가수 최초 & 전세계 5번째로 Hot 100, Artist 100, Billboard 200차트 모두 1위를 석권한 아티스트가 되는등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10월 중순에는 빌보드 차트 핫100 1위, 2위를 동시 석권[32]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을 세운 것은 역대 빌보드에 입성한 가수들 중에서도 비틀즈, 비 지스, 아웃캐스트, 블랙 아이드 피스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걸그룹 BLACKPINK도 셀레나 고메즈, 카디비 등 미국의 인기 팝스타와 콜라보가 성사되는 등, 아시아 바깥에서 입지를 점차 넓히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1년부터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HYBE는 블랙 아이드 피스와 저스틴 비버의 소속사 SB Projects를 한국 기업의 산하 그룹으로 인수하게 된다.
이 외에도 서브컬쳐계에선 게임을 통해 한국 게임이 주목을 받았다. 과거 온라인 활동이 중점이 되는 오타쿠는 넷우익과 궤를 같이하며 혐한과도 발을 걸치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게임은 탄압의 대상이었지만 이걸 비웃듯이 2000~2010년대에 향유했던 게임[33]과 2020년대의 게임[34]을 통해 한국 문화가 유입되면서 오타쿠 문화에도 한류가 자리잡게 된다. 이 중에서 블루 아카이브는 2차 창작계에서 돌풍의 중심으로, 코믹 마켓 103부턴 단독 코드가 주어졌음에도 서관 1층을 반 이상 차지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35] 이 외에도 일본과 서양의 전유물이라 할만한 패키지 게임에서 준수한 평가를 받은 게임들[36] 이 등장하면서 일명 게임 한류는 오타쿠만의 영역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있다.[37]
2020년 8월, 한국 웹툰을 중심으로 한 픽코마가 일본에서 비게임 앱중에서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픽코마는 2020년 8월 11일 현재 인기 작품 랭크 1위부터 10위 까지가 대부분 한국에서 만들어진 웹툰 플랫폼 앱이다.
2021년 1월 28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공개한 '2021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 보고서 결과 기사1 기사2
2021년 7월 9일 기준으로 빌보드 200에 K-POP 그룹이 무려 4개나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에는 한국 배우와 가수들이 주연이 되는 국제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민진 리가 쓴 소설 '파친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파친코의 애플 TV+ 제작이 확정되었고, 이민호, 정은채, 윤여정 등이 주연으로 출연한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영화인 브로커도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을 주연으로 한국에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2021년 8월 3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공개한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이다.
2020년대 들어 넷플릭스가 성장하며 한국 드라마, 영화 컨텐츠들이 해외 시청층에게 널리 보급되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컨텐츠들이 매우 선전하고 있다. 특히 2021년에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최초로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부문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넘어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전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석권하는데 성공하는 등, 전세계의 시청률 순위를 모두 제패하고 대흥행을 기록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한국 문화는 세계적으로 그 위상이 올라가며 강력한 소프트 파워와 문화 파급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인도까지 뚫었다…'오징어 게임' 83개국서 1위 등극
나아가 오징어 게임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같은 해 11월에는 지옥이 전세계 넷플릭스 시청 1위를 기록하며 2위로 내려간 오징어 게임과 함께 최상위와 차상위를 한국 컨텐츠가 잇따라 독점하게 되었다.
2021년 11월 11일 다큐인사이트 2021년 11월 12일 시사직격
2021년 11월, 미국판 뽀뽀뽀에 해당하는 세서미 스트리트에 한국 캐릭터가 추가되었다.[38][39] 이는 2020년 이후의 한류가 이전까지의 한류와 달리, 한국인의 삶의 유형 자체가 세계화되는 과정임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2022년 1월 29일에 넷플릭스에서 좀비 아포칼립스물인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되었고, 공개 당일 1위를 기록하는 동시에, 오징어 게임의 초기 시청량 증가 속도를 뛰어넘었다.#
2022년 2월 14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공개한 2022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이다.
2022년 3월 3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개한 2021 지구촌 한류 현황이다.
2022년 4월 4일, 유안타증권에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및 팬덤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미디어/엔터:2022 엔터 르네상스의 시작 애널리스트 인터뷰
2022년 5월 28일,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박찬욱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최초로 한국 영화가 경쟁 부문에서 2개 수상했고, 모든 경쟁 부문 상을 다 받은 것이다. 그만큼 이번 칸 영화제는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가 매우 뜨거웠다.
2022년 6월 14일 시사기획 창
2022년 9월 8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공개한 2022 글로벌 한류 트렌드이다.
2022년 10월 특집다큐 1편 특집다큐 2편
2023년 3월 10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개한 2022 지구촌 한류 현황이다.
같은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공개한 2023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이다.
2023년 3월 14일 시사기획 창 2023년 6월 1일 다큐인사이트
종합하자면, 한류는 오늘날 OTT를 통한 TV 시리즈, K-POP 등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했다. 아시아권에서만 흥행하는 것이 아니라 팝컬쳐에 한정해서 보면 그야말로 세계구급으로 종합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중이다. 괜히 미국에서도 한류의 도래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과거에는 아시아권의 몇몇 국가들에 한정되어있었고 한 시대에 한 작품 정도만이 돌아가면서 히트치는 형태와 다르게 2020년대에 들어서는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인 붐이 일어나고 있다. 생각보다 영향이 커서 이제 서구권에서도 한국 이미지가 이쪽으로 정립되는 듯하다. 컨트리볼 같은 곳에서도 점점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 문화 분야의 이야기가 늘고 있다.
과거에 잠깐 이례적인 베스트셀러로 해외 인기를 논했던 것과 달리 동남아시아, 대만, 일본 등에서는 OTT를 통해서 그냥 스테디셀러로 한국 콘텐츠가 골고루 소비되고 있는 모양새에, 가끔씩 정말 큰 히트를 치면 서양권의 인기도 더해져 세계구급 히트를 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일부 아시아 지역은 아예 한국 콘텐츠 앞마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넷플릭스 상위 10위 이내로 다섯 개 이상씩은 고정적으로 들어가고 있다.
양상을 보자면, 지리적으로 인접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가 제일 큰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남미, 중동, 인도가 그 뒤를 잇고, 서양권은 다른 지역들보단 인기가 덜하다. 비서양권 국가들에서 팝 컬쳐로 한정하면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가파른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일부 국가들의 주요 인사가 "한국의 콘텐츠만 좋아하지 말고, 자국의 콘텐츠도 많이 좋아하고 봐달라" 하고 호소까지 하는 등, 옛날같았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웃지 못할 일까지 일어나는 중이다.#
2020년대부터 사실상 해외에서 부는 한국 문화 유행은 '한류'라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 되었다. 현재 한류는 사실상 기성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것을 넘어 주류 선진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는 지극히 당연한 사례 중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40]
[1] 이 당시에 선진국들도 TV채널이 몇개 내외 수준이었다. 서독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도 자체 TV채널은 3개 내외 수준인 수준이었고, 다채널화가 이루어졌다던 일본도 7개 내외였다. 미국 역시 지상파 채널은 전국 단위로 4개 내외였던 시절로 케이블 방송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나 보급이 시작되었다.[2] 대만은 국토 특성때문에 난시청 지역이 많아 케이블 방송이 한국보다 빠르게 발달되었다.[3] 지금이야 "외국에서 한국인이 출연하는 것이 뭐가 대단한 일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방송되는 프로가 외국에서 방송된다는 자체 하나로도 화젯거리로 충분한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80년대 개그 소재로 어느 나이트클럽이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호객 문구가 "지금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막 귀국한 가수 OOO씨의 공연이 있겠습니다." 였겠는가? 당시에는 이렇게 허구라고 해도 해외에 한국 연예인이 나가 공연, 아니 연기라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화제였다.[4] NRG가 국내에서는 1.5군 정도였지만, 중화권에서는 H.O.T.나 젝스키스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NRG는 한류 1세대 가수라는 수식어가 당당하게 붙는다.[5] 특히 조용필, 김연자, 패티김, 계은숙, 이박사가 엔카를 통해 일본에서 인기를 얻은 바가 있으며, 이들은 이박사를 제외하면 모두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특히 조용필은 이미 1984년 타니무라 신지, 알란 탐과 함께 일본에서 공연을 했고 1988년 8월 6일(심지어 이때는 한중수교는커녕 19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전이었다) 중국 베이징 장성(長城)호텔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정도로 한국이 개발도상국 + 독재국가이던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동아시아 가수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었다. 한중수교도 안 됏을 시절에 중국 수도에 와서 콘서트까지 열었을 정도면 중국 내에서 비조선족들 사이에서도 조용필 노래에 대한 수요가 암암리에 있었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나훈아와 서태지와 아이들도 일본 활동을 한 바가 있다.[6] 1993년에 나온 하수빈의 'I'm Falling in Love' 뮤직비디오가 홍콩 M티브이 전파를 탄 적이 있다고 하며, 1995년에는 김건모의 핑계 영어 버전이 홍콩 M티브이에서 13위에 오른 바가 있다. 김완선도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접은 후 1993년부터 홍콩에서 활동하기도 했다.[7] 다만 국제적으로 문화적 영향력이 부족한 나라의 대중가요가 이웃 국가나 같은 문화권에서 인기를 끄는 경우는 그렇게까지 드문 일은 아니다. 동남아 최빈국인 캄보디아도 킬링필드 이전 나름대로 잘 나가던 시절에는 동남아 지역에서 대표적인 대중가요 강국으로 꼽혔고, 말레이시아의 록 음악도 전성기인 1980~1990년대에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멕시코의 대중음악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과 스페인어권 국가들에서(특히 라틴아메리카 지역) 인기가 상당하다.[8] 당시 북한에서는 한국의 가요를 '연변에서 불리는 노래'라며 '연변가요'라고 불렀다. 북한이 한국 사정에 매우 어두웠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9] 빌보드 차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미국의 최고 TV쇼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즈보다도 많은 22번 출연했다.[10] 손에 손 잡고를 부른 그룹이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유럽에서 ABBA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그룹이었다.[11] 다만 이 사례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태국인 가수인 리사, 민니와 더 유사하다.[12] 1991년 양수경이 소련의 가요행사인 《백야 록 축제》에 한국 대표로 초청된 바가 있으며, 1992년 기준 신승훈을 위시한 국내의 몇몇 가수들의 가요들이 이탈리아를 위시한 유럽권 가수들이 번안해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1 #2 특히 신승훈은 미국, 벨기에에서도 번안곡이 나왔을 정도.[13] 한명숙의 1961년 노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베트남과 태국에서도 인기를 얻긴 했으나, 그것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과의 순회 공연을 한 거였고(물론 그 뒤에는 미군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있었다) 인기도 단기성에 그쳤다. 물론 21세기 이전에 거둔 성과라고 생각하면 이 역시 대단한 거지만. 덤으로 패티김도 1962년 동남아 순회공연을 간 적이 있고 ABU 송 페스티벌에 구창모, 민해경 등이 한국 대표로 출현하여 대상을 수여받은 적이 있으며, 양수경(#)과 조용필(#), 김건모(#) 역시 동남아에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한다.[14] 본격적인 한류의 시작 이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왕걸, 등려군(다만 등려군은 생전에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었다) 같은 가수들이 동아시아 밖에 있는 동남아 국가들(중화권인 싱가포르 포함)이나 서양권에서도 알려질 정도로 국제적 히트를 친 바가 있긴 하다.[15] 한국은 이미 1987년경부터 GDP 규모 20위권 안에 들었고 1991년부터 항상 GDP 규모 15위권 안에 들고 있긴 하나,(GDP 12위에 처음 들어간 것도 1993년, 11위에 처음 들어간 것도 1995년이다)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한국 문화의 대외적 영향력은 미스터리한 수준으로 미미한 편이었다. 당대 GDP 규모 20위권 안에 든 국가 중 한국보다 문화적 영향력이 미약한 나라는 당시 최빈국이던 중국 정도밖에 없던 판이었으니... 실제로 당시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적 입지는 과장 안 보태고 당시 후진국이던 태국(카라바오 문서 참조)보다는 다소 나은 수준이었다.[16] 다만 이야기가 180도 달라지는 분야도 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는 일본을 제외하면 대중음악 분야에서의 한류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한류가 존재했다. 실제로 정경화&정명훈&정명화 남매, 강동석, 백건우, 장영주, 조수미 등 매우 많은 사람들이 대중음악 분야에서의 한류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많이 얻었다. 한류 시작 전부터 한국은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아시아 최고 클래식 강국이었던 셈이다.[17]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76[18] 이 카페는 2022년 현재도 운영중이다.[19] 실제 개설은 2001년 2월이었으나 야후!를 이용한 개인 홈페이지였다. 본격적인 커뮤니티의 기능을 갖춘 종합 정보 사이트로서 정식 오픈은 2001년 10월이었다.[20] 뉴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생소했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국내외 한국 대중문화 관련 논문, 일본어 서비스도 제공했다.[21] 어느 정도냐면 한때 일본 남성 동인층 사이에서 초메이저 장르를 차지한적도 있다. 1999년의 key-leaf 순애계 에로게 붐 다음 타자가 라그나로크였던것. 그뿐만이 아니라 MMORPG특성상, 남자 캐릭터들도 다양하게 짤수 있어서 여성에게도 많이 어필했었다.(단, 이는 일본서버 한정으로, 한국에서는 2016년까지 주민등록번호의 성별로만 캐릭터 생성을 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민번을 통해 넷카마 및 넷나베 할사람들은 해왔다. 다만 일본서버가 넷카마 허들이 한국에 비교해 낮았을뿐.) 2000년대 중반 라그나로크 붐이 끝난뒤, 동인 메이저 장르의 자리는 동방 프로젝트가 이어받는다.[22] 단, 그라비티는 일본계 기업인 겅호로 매각된 탓에 2005년 이후 시점에서야 게임한류라는 말은 다소 어폐가 되었다.[23] 당시 일본 중, 노년대 여성들 사이에서 배용준의 인기나 위치는 2020년대를 기준으로 현재의 방탄소년단에게 해외 여성팬들이 갖는 인기도와 같았다. 더욱이 손자, 손녀를 두었을 법한 50, 60대 할머니들마저 공항으로 집결해 배용준이 입국하는 순간 열렬하게 손을 흔들고 반가워하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일본 기준으로 본다면 '집안에서 조용히 자녀 양육에 살림이나 하고 있어야 할' 일본 여성들이 '고작 한국에서 온 듣보잡 남자 배우' 한 명한테 저렇게까지 열광적인 환영을 보낸다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처사였기에, 일본에서는 한류팬들을 비웃으며 괴짜 내지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기도 했다.[24] 자식은 부모의 취미를 보고 성장하면서 같은 취미를 가지거나 최소한의 기반지식을 가지고 성장하기 때문이다.[25] 공식적인 문호개방은 김대중 정권의 국민의 정부 시기지만, 당시 일본의 입지가 강력했던데다 문화적으론 몇 다리 건너서 수용해오고 있었다.[26] 그러나 일본의 생각과 다르게 대중문화 부흥은 당연히 오직 정부 주도로만 성공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세계의 G7같은 강대국들이 정부 주도의 정책과 막대한 자금력을 쏟아부어서 전세계의 모든 대중문화를 통제하고 지배했을 것이다.[27] 나고시는 용과 같이의 주요 배경인 카무로쵸의 모티브인 가부키쵸의 근처가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인 만큼 상당히 빠르게 한류를 게임에 반영한 제작자다. 용과 같이 2에선 단순히 야쿠자로서의 연관성만을 생각했다면 3에선 겨울연가가 유행하던 시기와 맞물려 이를 연상할 이벤트와 인물이 등장했고, 점차 한류가 도시에 들어오던 시기를 감안해 버블시기였던 0나 아직까지 한류가 유행하지 못했던 1, 2를 제외하면 카무로쵸에도 한국 음식점 등이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주역 중 하나인 사에지마 타이가는 한국 음식점인 한래의 단골이란 설정이 붙기도 했다.[28] 특히 일본의 한류는 주류 문화로 올라서고 있는 정도를 넘어 한국의 영향력도 강하게 퍼뜨리고 있다. 단순한 대중문화를 넘어 식문화, 그리고 소통 수단으로써 그 역할도 고정화될 수준으로 진화하는 중이다.[29] 최근 몇년간 이름을 날린 명작들이 종료되었거나 자취를 감췄으며 신진 작가들을 발굴함에 있어 소극적인 점까지 추가하여 답보 상태중이다. 여기에 고전적인 인쇄물 제책방식을 고집하고 IT와 같은 새로운 개척로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여 고전을 겪는 중.[30] 그나마 주술회전이 선전하고 있으나 이를 이을 여타 작품은 현재까지 전무하다.[31] 나 혼자만 레벨업의 경우, 일본에서 웹소설과 애니메로서도 괜찮은 흥행을 얻었다.[32] 1위는 BTS가 피처링한 Savage love, 2위는 다이너마이트.[33] 라그나로크 온라인, 마비노기, 테일즈위버, 붉은 보석[34] 블루 아카이브, 승리의 여신: 니케, 라스트오리진, 로보토미 코퍼레이션[35] 기존엔 단일 장르로서의 참가자를 확보하지 못해 종합 장르에 속했지만, 종합 특유의 약한 심사와 유행에 맞물려 코믹마켓 101에선 다른 장르와 장르 사이를 양분할 수준의 규모가 생겼고, 102에선 장르만 따지면 굳건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동방 프로젝트나 아이돌 마스터, 타입문은 물론이고 출시 이후의 강세로 절대 강자라고 여겨졌던 우마무스메보다 많은 부스를 가지게 됐다. 블루 아카이브보다 많은 장르는 버츄얼 유튜버밖에 없었지만 이마저도 103에선 제칠정도로 커졌다.[36] 배틀그라운드, 데이브 더 다이버, P의 거짓, 산나비[37]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기준 한국의 세계 게임 시장 점유율은 7.8%로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전통적 게임 강국에는 많이 미치지 못하나 어느정도 안정적인 사정을 점유하는데 성공했다.[38] 캐릭터 이름은 '지영{Ji-Young}', 퍼펫티어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다. 게다가 실존 특정 국적 출신으로도 사상 최초이다.[39] 세서미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상상의 창작물이거나 그저 인간형 캐릭터가 전부였다. 당연히 미국에서 제작되고 영어로 말들을 할지언정 실존하는 국가를 배경으로 둔 캐릭터는 없었다. 한때 경제력으로 미국을 위협한 일본이 전성기를 누릴 때도 일본 출신 캐릭터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도 특정 국적을 배경으로 둔 캐릭터로 지영이 등장한건 그야말로 파격적이다.[40] 그 사례가 바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다.(캐나다와 호주는 미국과 영국에 곁다리로 끼는 수준이다) 그 대열에 선진국에 진입한 지 20년 정도밖에 안 된 한국이 끼게 된 것. 마침 한류가 본격적으로 서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10년대 중~후반은 한국이 '지역강국의 최대'에 이른 시점이고, 한류가 완전히 국제화된 2020년대에는 순 국력으로만 따지면 브라질까지 이기고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강대국의 최소 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