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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제 영화제/황금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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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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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부문 상 황금곰상, 심사위원대상, 심사위원상, 감독상, 주연상, 조연상, 각본상, 예술공헌상
※ 폐지된 상 : 알프레드 바우어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역대 영화제 1980년대 30회, 31회, 32회, 33회, 34회, 35회, 36회, 37회, 38회, 49회
1990년대 40회, 41회, 42회, 43회, 44회, 45회, 46회, 47회, 48회, 49회
2000년대 50회, 51회, 52회, 53회, 54회, 55회, 56회, 57회, 58회, 59회
2010년대 60회, 61회, 62회, 63회, 64회, 65회, 66회, 67회, 68회, 69회
2020년대 70회, 71회, 72회, 73회, 74회, 75회
역대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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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베를린 국제 영화제
황금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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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곰상
黃金곰賞 | Goldener B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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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대 황금곰상
3.1. 2회 이상 수상자
4. 흥행5. 황금곰상 트로피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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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초청작 가운데 최고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 초회차에서는 독일인 심사위원들이 투표를 통해 장르 및 부분별로 최고의 작품을 뽑아 수상하는 방식으로 시상했고, 1952년부터 1955년까지는 관객 투표를 통해 진행되다가 1956년 국제영화기구에 의해 베를린 영화제가 공식적으로 국제영화제로서 인정받은 해부터는 국제 심사위원들을 초청해 시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2. 특징

본래 황금곰상은 해당 작품의 감독에게 수여되었으나, 2021년 제71회차부터 수상 대상이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로 변경되었다.# 단, 트로피는 감독이 가지고 변함없이 황금곰상 수상의 영예는 감독의 성과로 여겨지는 편이다.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탄 작품은 1989년 배리 레빈슨레인 맨 단 한편 뿐이다. 이는 90년대 베를린 영화제가 침체를 막기위해 친 할리우드적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록으로, 21세기 들어서면서 반 할리우드에 가까운 노선으로 선회했고 현재는 코어한 영화들이 수상할 확률이 높아서 앞으로도 황금곰상 수상작이 아카데미상에서 각광받을 확률은 낮다.

황금곰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국가는 미국. 그 다음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스페인, 중국 순이다. 황금종려상, 황금사자상[1]과는 달리 한국 영화가 수상한 적은 아직 없다.

3. 역대 황금곰상

역대 시상식 수상작 감독 국가
독일 심사위원 투표
(1951)
1951년
제1회[2]
포 인어 지프 (드라마 황금곰상) 레오폴드 린트베르크
[[스위스|]][[틀:국기|]][[틀:국기|]]
위드아웃 리빙 언 어드레스 (코미디 황금곰상) 장폴 르 샤누아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인 비버 밸리 (다큐멘터리 황금곰상) 제임스 알가
[[미국|]][[틀:국기|]][[틀:국기|]]
재판은 끝나다[3] (스릴러 및 모험 황금곰상) 앙드레 카야트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프랑스
신데렐라 (음악 영화 황금곰상) 윌프레드 잭슨
[[미국|]][[틀:국기|]][[틀:국기|]]
관객 투표
(1952 ~ 1959)
1952년
제2회
원 섬머 오브 해피니스 아르네 매트슨
[[스웨덴|]][[틀:국기|]][[틀:국기|]]
1953년
제3회
공포의 보수[4] 앙리 조르주 클루조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프랑스
1954년
제4회
홉슨의 사위 고르기 데이비드 린
[[영국|]][[틀:국기|]][[틀:국기|]]
1955년
제5회
더 랫츠 로버트 시오드맥
[[독일|]][[틀:국기|]][[틀:국기|]]
1956년
제6회
인버테이션 투 더 댄스 진 켈리
[[미국|]][[틀:국기|]][[틀:국기|]]
1957년
제7회
12인의 성난 사람들 시드니 루멧
[[미국|]][[틀:국기|]][[틀:국기|]]
1958년
제8회
산딸기 잉마르 베리만
[[스웨덴|]][[틀:국기|]][[틀:국기|]]
1959년
제9회
사촌들 클로드 샤브롤
[[프랑스|]][[틀:국기|]][[틀:국기|]]
국제심사위원
(1960 ~ 현재)
1960년
제10회
엘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 세사르 페르난데스 아르다빈
[[스페인|]][[틀:국기|]][[틀:국기|]]
1961년
제11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1962년
제12회
사랑의 유형 존 슐레진저
[[영국|]][[틀:국기|]][[틀:국기|]]
1963년
제13회
부시도 이마이 다다시
[[일본|]][[틀:국기|]][[틀:국기|]]
디아볼로 잔 루이지 폴리도로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1964년
제14회
메마른 여름 메틴 에륵산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
1965년
제15회
알파빌 장뤽 고다르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966년
제16회
막다른 골목 로만 폴란스키
[[영국|]][[틀:국기|]][[틀:국기|]]
1967년
제17회
출발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벨기에|]][[틀:국기|]][[틀:국기|]]
1968년
제18회
누가 그의 죽음을 보았는가 얀 트로엘
[[스웨덴|]][[틀:국기|]][[틀:국기|]]
1969년
제19회
얼리 웍스 젤리미르 질닉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틀:국기|]][[틀:국기|]]
1970년
제20회
수상작 없음[5][6]
1971년
제21회
핀치 콘티니의 정원 비토리오 데 시카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독일|]][[틀:국기|]][[틀:국기|]] 서독
1972년
제22회
캔터베리 이야기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1973년
제23회
대지의 눈물 사티야지트 레이
[[인도|]][[틀:국기|]][[틀:국기|]]
1974년
제24회
더디 크레이비츠의 수습 기간 테드 코체프
[[캐나다|]][[틀:국기|]][[틀:국기|]]
1975년
제25회
입양 마르타 메자로스
[[헝가리|]][[틀:국기|]][[틀:국기|]]
1976년
제26회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로버트 올트먼
[[미국|]][[틀:국기|]][[틀:국기|]]
1977년
제27회
고양 라리사 셰피티코
[[소련|]][[틀:국기|]][[틀:국기|]]
1978년
제28회
아쎈소르 토마스 무노즈
[[스페인|]][[틀:국기|]][[틀:국기|]]
트라웃 호세 루이스 가르시아 산체스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왓 맥스 세드 에밀리오 마르티네즈 라자로
[[스페인|]][[틀:국기|]][[틀:국기|]]
1979년
제29회
데이비드 피터 릴리엔탈
[[독일|]][[틀:국기|]][[틀:국기|]] 서독
1980년
제30회
팔레르모 또는 볼프스부르크 베르너 슈뢰터
[[독일|]][[틀:국기|]][[틀:국기|]] 서독
하트랜드 리차드 피어스
[[미국|]][[틀:국기|]][[틀:국기|]]
1981년
제31회
질주 카를로스 사우라
[[스페인|]][[틀:국기|]][[틀:국기|]]
1982년
제32회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독일|]][[틀:국기|]][[틀:국기|]] 서독
1983년
제33회
어센던시 에드워드 베넷
[[영국|]][[틀:국기|]][[틀:국기|]]
벌집 마리오 카뮈
[[스페인|]][[틀:국기|]][[틀:국기|]]
1984년
제34회
사랑의 행로 존 카사베츠
[[미국|]][[틀:국기|]][[틀:국기|]]
1985년
제35회
우먼 앤드 더 스트레인저 라이너 사이먼
[[독일|]][[틀:국기|]][[틀:국기|]] 동독
웨더비 데이비드 헤어
[[영국|]][[틀:국기|]][[틀:국기|]]
1986년
제36회
슈탐하임 - 더 바더-마인호프 갱 온 트라이얼 라인하르트 하우프
[[독일|]][[틀:국기|]][[틀:국기|]] 서독
1987년
제37회
테마 글렙 판필로프
[[소련|]][[틀:국기|]][[틀:국기|]]
1988년
제38회
붉은 수수밭 장이머우
[[중국|]][[틀:국기|]][[틀:국기|]]
1989년
제39회
레인 맨 배리 레빈슨
[[미국|]][[틀:국기|]][[틀:국기|]]
1990년
제40회
뮤직 박스 코스타 가브라스
[[미국|]][[틀:국기|]][[틀:국기|]]
줄 위의 종달새 이리 멘젤
[[체코|]][[틀:국기|]][[틀:국기|]] 체코슬로바키아
1991년
제41회
미소의 집 마르코 페레리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1992년
제42회
그랜드 캐년 로런스 캐스던
[[미국|]][[틀:국기|]][[틀:국기|]]
1993년
제43회
결혼 피로연 이안
[[대만|]][[틀:국기|]][[틀:국기|]],
[[미국|]][[틀:국기|]][[틀:국기|]]
향혼녀 사비
[[중국|]][[틀:국기|]][[틀:국기|]]
1994년
제44회
아버지의 이름으로 짐 쉐리단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영국|]][[틀:국기|]][[틀:국기|]]
1995년
제45회
라빠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996년
제46회
센스 앤 센서빌리티 이안
[[영국|]][[틀:국기|]][[틀:국기|]],
[[미국|]][[틀:국기|]][[틀:국기|]]
1997년
제47회
래리 플린트 밀로스 포먼
[[미국|]][[틀:국기|]][[틀:국기|]]
1998년
제48회
중앙역 바우테르 살리스
[[브라질|]][[틀:국기|]][[틀:국기|]],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999년
제49회
씬 레드 라인 테런스 맬릭
[[미국|]][[틀:국기|]][[틀:국기|]]
2000년
제50회
매그놀리아 폴 토머스 앤더슨
[[미국|]][[틀:국기|]][[틀:국기|]]
2001년
제51회
정사 파트리스 셰로
[[영국|]][[틀:국기|]][[틀:국기|]],
[[프랑스|]][[틀:국기|]][[틀:국기|]]
2002년
제52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틀:국기|]][[틀:국기|]]
블러디 선데이 폴 그린그래스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영국|]][[틀:국기|]][[틀:국기|]]
2003년
제53회
인 디스 월드 마이클 윈터바텀
[[영국|]][[틀:국기|]][[틀:국기|]]
2004년
제54회
미치고 싶을 때 파티흐 아킨
[[독일|]][[틀:국기|]][[틀:국기|]],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
2005년
제55회
카르멘 마크 돈포드 메이
[[남아프리카 공화국|]][[틀:국기|]][[틀:국기|]]
2006년
제56회
그르바비차 야스밀라 즈바니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틀:국기|]][[틀:국기|]],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2007년
제57회
투야의 결혼 왕 취엔 안
[[중국|]][[틀:국기|]][[틀:국기|]]
2008년
제58회
엘리트 스쿼드 호세 파딜라
[[브라질|]][[틀:국기|]][[틀:국기|]]
2009년
제59회
밀크 오브 소로우 - 슬픈 모유 클라우디아 요사
[[페루|]][[틀:국기|]][[틀:국기|]],
[[스페인|]][[틀:국기|]][[틀:국기|]]
2010년
제60회
허니 세미 카플라노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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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제61회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아스가르 파르하디
[[이란|]][[틀:국기|]][[틀:국기|]]
2012년
제62회
시저는 죽어야 한다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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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63회
아들의 자리 칼린 페터 네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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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64회
백일염화 댜오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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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65회
택시 자파르 파나히
[[이란|]][[틀:국기|]][[틀:국기|]]
2016년
제66회
화염의 바다 잔프랑코 로시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2017년
제67회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일디코 엔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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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68회
터치 미 낫 애디너 핀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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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69회
시너님스 나다브 라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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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70회
사탄은 없다 모함마드 라술로프
[[이란|]][[틀:국기|]][[틀:국기|]],
[[독일|]][[틀:국기|]][[틀:국기|]]
2021년
제71회
배드 럭 뱅잉 라두 주데
[[루마니아|]][[틀:국기|]][[틀:국기|]]
2022년
제72회
알카라스의 여름 카를라 시몬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2023년
제73회
파리 아다망에서 만난 사람들 니콜라 필리베르
[[프랑스|]][[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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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제74회
다호메이 마티 디오프
[[세네갈|]][[틀:국기|]][[틀:국기|]],
[[프랑스|]][[틀:국기|]][[틀:국기|]]
2025년
제75회
드림스 (섹스 러브) 다그 요한 하우거루드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3.1. 2회 이상 수상자

이름 국적 수상 연도
이안
[[대만|]][[틀:국기|]][[틀:국기|]]
1993년, 1996년

4. 흥행

역대 황금곰상 수상 영화 글로벌 흥행 TOP 10
순위 영화 개봉년도 국가 최종수익(달러)
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일본 $384,121,374
2위 레인 맨 1988 미국 $354,825,435
3위 센스 앤 센서빌리티 1988 영국, 미국 $134,582,776
4위 씬 레드 라인 1988 미국 $98,126,565
5위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 미국 $65,796,862
6위 매그놀리아 1999 미국 $48,453,541
7위 래리 플린트 1996 미국 $43,000,000
8위 그랜드 캐년 1991 미국 $40,991,329
9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2011 이란 $24,426,169
10위 중앙역 1998 브라질, 프랑스 $22,462,500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작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흥행을 보장하기 어려운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여서 흥행은 신통치 않은 편이다. 가장 큰 시장인 북미 관객이 자막 읽는 것을 매우 꺼리기 때문이다. 흥행 상위작 대부분이 영미권 영화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 그 중에서도 가장 코어한 노선을 걷는 베를린 영화제답게 3대 영화제 대상 수상작 중에서는 가장 흥행 성적이 어두운 편으로, 그나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도 1990년대 친 할리우드 영화 정책 당시 대거 수상했던 할리우드 수상작들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정도가 그나마 반 할리우드 노선 변경 후 화제를 불러일으킨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영화다.
역대 황금곰상 수상 영화 한국 흥행 TOP 10
순위 영화 개봉년도 국가 최종 관객수
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일본 전국 2,007,818명. 서울 937,459명
2위 레인 맨 1988 미국 서울 333,571명
3위 붉은 수수밭 1988 중국 서울 185,795명
4위 씬 레드 라인 1998 미국 서울 149,344명
5위 센스 앤 센서빌리티 1995 영국, 미국 서울 91,499명
6위 매그놀리아 1999 미국 서울 80,016명
7위 블러디 선데이 2002 아일랜드, 영국 전국 53,838명. 서울 7,996명
8위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 미국 서울 50,114명
9위 래리 플린트 1996 미국 서울 49,501명
10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2011 이란 전국 12,329명. 서울 10,192명

국내 흥행 성적 역시 칸이나 베니스에 비하면 썩 신통치 못한 편이다. 최고 흥행을 거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만 관객을 넘겼다. 국내도 글로벌 흥행과 마찬가지로 흥행 상위에 있는 작품들은 90년대 친 할리우드 노선을 걸었을 때 수상했던 미국 영화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황금곰상 수상작들은 수입이 잘 안 되는 편에 속한다.

5. 황금곰상 트로피

파일:베를린 주장.svg
베를린 주장
파일:Goldener Bär.jpg
황금곰상 트로피

1932년 독일의 조각가 르네 신테니스가 디자인한, 두 뒷다리로 서있는 베를린의 마스코트 곰 디자인[7]에서 그대로 디자인을 따왔으며, 초기 디자인은 해당 디자인을 그대로 본따왔기에 지금과 달리 곰의 크기가 더 작고 오른쪽 앞발을 들어올리고 있었으나, 1960년에 사이즈를 더 키우고 지금처럼 왼쪽 앞발을 들어올리는 모양으로 수정되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디자인의 수정을 거치면서 2010년 기준으로 형태가 굳혀졌으며, 20cm(7.9인치) 높이에 수상작의 이름이 새겨지는 받침대가 추가되었다. 무게는 약 4KG(8.8 lb)이라고 하며 청동으로 주조한 뒤 위에 금을 도금하는 식으로 제조된다. 단, 명예 황금곰상은 100% 순금으로 제조한다.

6. 관련 문서


[1] 수상은 각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했다.[2] 제1회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장르 및 부분별로 총 5개의 영화들이 황금곰상을 받았다.[3] 드물게 황금사자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당시엔 영화제 프리미어 경쟁이 없었고 베를린 영화제도 유명하지 않아서 다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동시 출품 가능했다.[4] 드물게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당시엔 영화제 프리미어 경쟁이 없었고 베를린 영화제도 유명하지 않아서 다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동시 출품 가능했다.[5] 당시 경쟁 부문 초청작 중 베트남 전쟁 중 미군의 전쟁범죄였던 '192 고지사건'[8]을 소재로 한 미하엘 페어회벤 감독의 영화 <O.K.>를 둘러싼 심사위원단과 영화제 위원측의 갈등 때문에 영화제 자체가 중단되었다.[6] 당시 심사위원장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자이기도 했던 영화감독 조지 스티븐스는 영화가 반미적이라고 주장하며 이 영화를 경쟁 부문에서 배제시킬 것을 촉구했고, 심사위원중 한명이었던 두산 마카베예프 감독과 영화제 집행위원장 알프레트 바우어가 반발하면서 사건이 커졌다. 이를 지켜보던 경쟁 부문 초청 감독들이 항의의 뜻으로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철수하면서 결국 영화제는 중단되고 말았다.[7] 베를린의 주기와 주장에 있는 바로 그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