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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당 GDP | $39,942(2023) |
| 정치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2px -12px" | <colbgcolor=#006000> 시장 | 카를루스 모에다스[1] | |
| 시의회 | 13석 | | |
| 7석 | | ||
| 2석 | ''' 단일민주연합 '''[2] | ||
| 1석 | |
| <nopad> |
| 4월 25일 대교와 구시가지 전경 |
| <nopad> |
| 구시가지의 중심지 호시우 광장 일대 |
포르투갈에서 리스본의 위치
1. 개요
포르투갈 수도이자 최대 도시 및 항구도시로써 이다. 광역 도시권의 인구는 2,900,000명이라 인천광역시보다 조금 적다. 리스본(Lisbon)은 영어식 표기고 포르투갈어로는 리즈보아(Lisboa)[3], 약자로는 Lx[4]라고 한다. 포르투갈 서부의 테주강의 삼각 하구에 위치한다. 지명 역시 "안전한 항구"에서 유래한다. 9-12세기 헤콩키스타의 여러 전투를 거쳐 15-17세기 대항해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을 겪었지만 재건되어 포르투갈의 경제, 문화, 물류의 중심지로 이어진다.
2. 역사
| | |
| 로마 시대 극장 유적 | 로마 시대 성벽의 잔존부 |
유럽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처음 보면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드넓은 테주 강을 낀 천혜의 항구였기에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했다. 고대에는 지중해와 북해를 잇는 중개 무역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기원전 205년에 올리시포 (Olisipo)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지배 하에 들어 갔다. 올리시포라는 이름은 좋은 항구를 의미하는 페니키아어 알리스 이보 (Alis ibbo)에서 전래되었다.
2.1. 이슬람 (무어인) 시기
무어인 지배 (알 안달루스) 시기에 세워진 상 조르즈 성채
5세기 들어 수에비 왕국 및 서고트 왕국의 약탈로 인해 마을 수준으로 쇠퇴했던 도시는 714년 압둘아지즈 빈 무사에 의해 우마이야 왕조 령이 되었고, 아랍어로 알-우쉬부나 (الأشبونة) 혹은 리사보나로 불리게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의 안정적인 통치 하에 리스본은 안달루스의 원자재를 북아프리카 및 동지중해로 수출하고 그곳의 제품을 수입하는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또한 아랍-베르베르 무슬림 (무어인)들은 기존 로마 방식보다 더 효율적인 관개 농업 방식을 도입해 토지의 생산성을 증대시켰다. 타호 강과 그 지류들을 이용한 하계 관계 농업은 다량의 곡물, 채소, 오렌지를 생산했다. 8-9세기 동안 리스본에는 대사원이 세워졌고, 시가지 주요부인 메디나에는 높은 성벽 (무랄하스)이 둘러졌다. 도시 뒤편의 언덕에는 성채 (미래의 카스텔로 상조르즈)가 세워졌고, 총독 관저인 알카세르도 건설되었다.
시가지는 곧 무랄하스 성벽을 넘어 확장되었고, 알 파마 구역이 개발되었다. 여기에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타호 강 건너편에도 알 마단 성채가 세워져 오늘날의 알마다 시로 성장했다. 리스본의 상인들은 안달루스의 소금, 생선, 말 등을 수출하고 레반트 (샴)에서 약초, 건과일, 꿀, 모피 등을 수입했다. 한편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현지인들이 늘며 같은 무슬림인데도 무함마드 후손들, 순혈 아랍인, 베르베르인, 아랍화된 무슬림, 라틴계 무슬림 순서로 구성된 사회 계층으로 인해 계급 유동성이 부족한 현실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늘어났다. 따라서 아랍화된 무슬림 알리 이븐 아슈라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후손을 자처하며 안달루스의 몇 안되는 시아파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796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내분을 틈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가 남하해 리스본을 함락해 약탈했다.
후우마이야 조의 원군이 오기 전에 당일 철수한 알폰소 2세는 주군인 샤를마뉴에게 무어인 포로, 총독의 막사, 당나귀 등을 전리품으로 보냈다. 버려진 도시는 10여년 후에야 재건되었다. 844년에는 노르만족이 13일의 공성전 끝에 리스본을 함락했지만 총독 와흐브 알라 이븐 하즘 휘하 주민들의 저항이 계속되자 결국 철수했다. 851년에도 오르도뇨 1세가 이끄는 아스투리아스 왕국군이 리스본을 습격했다. 이후 도시는 한세기 이상 평화를 누렸고, 900년 무렵 인구가 1만을 넘겨 코르도바 및 세비야와 함께 서유럽 최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대부분 기독교도였던 기존 주민들은 아랍어는 (라틴어와 혼합된 피진어 형태로) 수용했지만 아리우스파와 칼케돈파가 혼재한 기독교 신앙은 유지하며 모사라베가 되었고, 자체적인 주교들 두었다. 유대계 주민들은 상인으로써 많은 부를 쌓았다.
966년에는 바이킹 함대가 재차 리스본을 공격했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던 후우마이야 왕조에 의해 격퇴되었다. 하지만 후우마이야 왕조는 10세기 말엽 들어 쇠퇴했다. 한편 10세기 들어 안달루스에는 사칼리바 (슬라브인) 노예들이 유입되었고, 일부는 후대의 맘루크처럼 고위직에 올랐다. 그중 알 하캄 2세의 측근이 된 사부르 앗 사클라비는 1차 타이파 시대인 1009년에 바다호스 토후국을 세웠고, 리스본도 그에 속했다. 같은해 시칠리아로 향하던 바이킹 함대가 재차 도시를 공격했으나 격퇴되었다. 한편 1022년에 사부르가 사망한 후 아랍화된 베르베르인 재상 압둘라 이븐 알 아프타스 (알 만수르)가 바다호스를 장악하자, 사부르의 아들들인 압둘아지즈와 압둘말리크가 리스본에서 자립해 리스본 토후국 (طائفة الأشبونة)을 세웠다. 다만 1034년 압둘라 이븐 알 아프타스는 리스본을 정복한다.
2.2. 헤콩키스타 vs 무라비트 왕조
바다호스 혹은 세비야 토후국에 복속하며 사실상의 자치를 누리던 리스본 (알-우쉬부나)는 1064년 레온 왕국의 코임브라 정복 후 기독교 세력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1093년 바다호스의 아미르 알 무타와킬은 레온 왕국의 알폰소 6세와 안달루스 남부를 장악해가던 마그레브 세력인 무라비트 왕조에 대한 동맹을 체결하며 리스본, 산타렝 (샨타린), 신트라 (쉰트라) 등 테주 강 유역을 할양했다. 알폰소 6세는 일대를 고명딸 우라카와 결혼한 부르고뉴 백국 출신 사위 갈리시아 백작 레몽 (라이문도)에게 주었다. 1094년 무라비트 왕조의 아미르 유수프 이븐 타슈핀은 조카인 세비야 총독 시르 이븐 아비 바크르를 파견했고, 바다호스를 정복한 후 알 무타와킬을 처형한 그는 리스본으로 향했다. 이에 레몽은 군대와 함께 반격에 나섰지만 기습에 당해 패했고, 레몽은 도주했다.무라비트 군대는 리스본을 포위해 맹렬히 공격했고, 카스티야의 수비대를 죽이거나 포로로 잡으며 1094년 11월 리스본을 점령했다. 뒤이어 신트라도 무라비트 령이 되었으나 산타렘은 카스티야 령으로 남았다. 그러던 1109년, 십자군 전쟁의 일환으로 레반트로 향하던 노르웨이 왕국의 군주 시구르 1세가 이끄는 60척의 함대가 리스본을 포위했다. 격렬한 공성전 끝에 십자군의 투석기가 성벽을 무너뜨리자 시구르 1세가 돌격하여 도시를 점령, 약탈했다. 사로잡힌 무라비트 조의 수비대 중 일부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다. 시구르 1세는 리스본 주변의 신트라, 알카세르 두 솔도 점령하여 레몽의 사촌인 포르투갈 백국의 앙리 (엔히크 드 보르고냐)에게 주었다.[5] 하지만 1111년 봄, 시르 이븐 아비 바크르가 이끄는 무라비트 군대가 에보라에 이어 리스본과 신트라를 재점령한다.
이후 그는 산타렝까지 점령하며 테주 강 유역을 이슬람 지배 하에 회복시켰고, 코임브라까지 공격하며 기세를 떨쳤다. 이로써 멸망 위기에 놓였던 포르투갈 백국은 1117년 코임브라 공방전과 1121년 카스티야 왕국의 토벌 시도를 견뎌낸 후 1139년 아폰수 1세가 오우리케 전투에서 무라비트 군을 격파하고 왕을 칭하며 포르투갈 왕국으로 거듭난다. 1142년 아폰수 1세는 레반트로 향하던 잉글랜드-노르망디 십자군을 초청해 리스본을 포위했으나 숫자가 적어 교외 지역을 약탈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던 1147년 봄,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2차 십자군을 선포하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수백년 이상 이어진 무어인에 대한 전쟁' 역시 십자군으로 인정했다.[6] 그는 피사, 제노바, 마르세유 등 해상 도시들에게 레콩키스타 합류를 권유했고 알폰소 7세에게 다른 십자군 부대들과 협력할 것을 지시했다.
2.2.1. 1147년 리스본 (알-우쉬부나) 함락
1917년에 그려진 상상도
1147년 5월, 2차 십자군의 일환으로 다트머스를 떠난 164척의 독일-플랑드르-프리슬란트-노르망디-잉글랜드-스코틀랜드 십자군 함대는 항해 도중 6월에 폭풍을 만나 포르투에 정박했다. 헤콩키스타 역시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라는 포르투 주교 페드루 2세의 설득으로 십자군 지휘관 그랑빌의 헤르비는 이미 3월에 산타렝을 정복한 아폰수 1세와 리스본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7] 아폰수에게서 '가능한 만큼의' 약탈 및 포로들의 배상금 청구 권리, 정착 시의 영지 분배 및 상업세 면제 권리를 얻어낸 십자군은 서약의 증표로 인질을 교환한 후, 6월 말엽 테주 강 하구에 당도했다. 7월 1일부터 십자군-포르투갈 연합군은 신트라 등지를 점령하고 도시를 포위했다. 아폰수가 북쪽, 잉글랜드-노르만 십자군이 서쪽, 플랑드르-독일 십자군이 동쪽 성벽을 공격했다. 포위는 3달 이상 이어지며 장기화되었다.
10월 16일, 십자군이 동쪽 성벽 밑에 굴을 파고 나무를 채워 넣은 후 불 붙이자 60m에 달하는 성벽이 붕괴했다. 그럼에도 수비대가 버티자 십자군은 10월 20일에 서남쪽 성벽에 공성탑을 배치, 성문 옆 성탑을 공격하다가 어느 순간 원을 그리며 성문으로 향했다. 이에 수비대가 성밖으로 나와 공성탑을 파괴하려 했지만 로타링기아 (라인란트) 기사들이 버텨내고 지원군 당도하자 수비대는 철수했다. 산타렝, 신트라, 알마다, 팔멜라 등지에서 몰려든 피난민들로 인해 식량이 바닥나고 역병이 돌았음에도 망자를 묻을 땅도 부족해지자 더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여긴 도시 지도부는 다음날 아폰수와 협상하여 주민들의 생명 및 재산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약탈을 원했던 플랑드르 십자군이 반발했고, 아폰수가 재산권 보장은 상류층 시민들에 한정된 것이라 해명했음에도 리스본측 인질들을 납치했다.
연합군 내의 무력 충돌이 벌어질 위기에 처하자 아폰수는 추가 협상하여 휴전 기간에 140명의 잉글랜드-노르만 십자군과 160명의 플랑드르-라인란트 십자군이 성채에 배치되고, 시민들이 재산을 그곳에 가져오게 해서 분배하며 그후 병사들이 남은 약탈물 찾아 도시를 확인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하지만 10월 24일 성문이 열리자 약속과 달리 흥분한 플랑드르 및 쾰른 출신 십자군의 주도로 약탈과 강간 및 학살이 자행되었고, 아폰수의 저지로 중단되긴 했지만 도시는 큰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연로한 모사라베 기독교 주교가 피살되기도 했다.[8] 그리고 다음날, 살아남은 무슬림 주민들은 아폰수의 보호 하에 세 성문을 통해 도시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잉글랜드 십자군 중 상당수는 토지를 받아 리스본에 정착했고, 헤이스탕스의 길버트가 리스본 주교로 선출된다.[9]
2.3.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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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7년 ~ 13세기 전반에 세워진 리스본 대성당 | 황금기인 1514-19년에 세워진 벨렝 탑 |
1501년 ~ 1601년에 세워져 포르투갈 왕실의 영묘가 된 제로니모스 수도원
리스본 정복은 헤콩키스타의 중대한 전환점이었고, 포르투갈 귀족 마르팀 모니즈가 자신을 희생해 열린 성문을 지탱했다는 전설이 생길 정도로 포르투갈 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리스본 함락 후 팔멜라의 수비대가 도주했고, 이로써 아폰수는 리스본을 거점으로 하여 더욱 남진했다. 3번의 시도 끝에 1158년 알카세르 두 솔이 함락되고 1165년 에보라가 정복되며 리스본은 더 이상 변경 도시가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포르투갈 왕국은 1179년 교황청의 인정을 받으며 카스티야 왕국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한다.
1255년 아폰수 3세가 코임브라에서 천도하여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가 되어 현재까지 이르렀고 15세기∼16세기 대항해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세바스티앙 1세가 크사르 엘케비르 전투에서 전사하며 아비스 왕조가 단절되고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국왕으로까지 즉위하여 이베리아 연합이 성사되어 카스티야 귀족들을 중심으로 리스본으로 천도하자는 의견도 대두되었으나 마드리드를 스페인의 수도로 삼았던 국왕이 펠리페 2세였으니 어림없는 소리였고 결국 동군연합 포르투갈의 수도로 남았다. 1640년 포르투갈 왕정 복고로 주앙 4세가 즉위하여 다시 독립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었다.
리스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피해와 그로 인한 화재·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지진 이전에는 다른 유럽의 오랜 중세 도시들처럼 크고 작은 골목들이 엉켜 있었지만 지진으로 인해 바이샤 지구 등이 파괴되었고 폼발 후작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에 의해 오늘날의 격자 형태의 가로망을 갖춘 도시로 재건되었다.
리스본을 낀 테주 강 하구에 1966년에는 4월 25일 다리가 생겨 남쪽에 위치한 알마다(Almada), 1998년에는 바스쿠 다 가마 대교가 놓여 동쪽에 위치한 알코셰트(Alcochete)와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또한 1999년에는 4월 25일 다리 도로층 하부에 철도가 추가되면서[10] 그간 열차를 이용하려면 리스본 중심지 테헤이루두파수(Terreiro do Paço)에서 배를 타고 강건너 바헤이루(Barreiro)에서 갈아타서 가야만 했던 알렌테주 남부, 알가르브 등 포르투갈 남부 지역으로 철도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3.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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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대성당 일대
제로니모스 수도원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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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한국어 |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 | |
| 영어 | [11] | ||
| 프랑스어 | [12] |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 등재연도 | 1983년 | ||
| 등재기준 | (iii)[13], (iv)[14] | ||
| 지정번호 | 263 | ||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벨렝 탑
도시를 동네별로 뜯어 보면 관광객이 북적이는 구 시가지와 20세기 초중반에 건설된 외곽 신시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구 시가지의 중심은 단연 바이샤 지구 양끝에 위치한 호시우 광장과, 왕궁 앞 정원(Terreiro do Paço)라고도 불리는 강가의 코메르시우 광장. 호시우라는 이름의 유래는 서민을 뜻하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중세 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리스본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 코메르시우 광장은 왕궁 앞 정원이라는 다른 이름처럼 1755년 대지진이 일어날 당시까지만 해도 포르투갈 왕실의 법궁이었던 히베이라 왕궁이 있었던 곳이다.[15] 오늘날에도 몇몇 정부 기관이 코메르시우 광장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리스본 구시가지를 7개의 언덕이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크고 작은 언덕이 도시 곳곳에 위치해 있다. 바이샤 지구를 중심으로 동쪽의 알파마와 그라사가 위치해 있고 서쪽으로는 바이후알투와 시아두가 위치해 있다.
동쪽 언덕 꼭대기에 있는 상조르즈 성은 본래 중세 리스본의 심장으로 포르투갈 왕국이 리스본을 재정복한 이후 처음으로 왕궁이 위치했던 요새기도 하다. 리스본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올라가면 어느 정도 시내 외곽까지 보일 정도. 이 곳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상당히 심한 데다 버스, 트램을 사용해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가 긴데, Elevador da Baixa를 아용하면 주요 오르막길 코스를 모두 스킵하고 평지로 갈 수 있어 유용하다. 리스본은 구글 지도로 보는 것과 달리 언덕과 오르막길이 매우 많으니, 캐리어를 끌고 다니지 않는 편이 좋다.
상 조르즈 성 주변은 아랍인들이 지배하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온 오랜 동네인데 이 곳을 리스본의 상징 중 하나인 노란 트램이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은 이 동네만의 매력이다.[16] 또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동네다 보니 골목 사이로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 공연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바가 산재해 있다. 서쪽 언덕의 시아두는 좀 더 젊은 느낌의 거리인데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가게를 두고 있고 사이사이 골목에 또 오래된 전통있는 가게들이 숨겨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기네스북 인증을 받기도 한 베르트랑/버트란드(bertrand) 서점,[17] 젤라토 가게인 산티니라가 있다. 한편 시아두 골목을 쭉 올라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이후 알투가 나오는데 이베리아 반도 중심지는 다 그렇듯이 이곳은 클럽이라든지 바가 산재한 밤 문화의 중심지다. 낮에는 조용하다가 보통 새벽 1시쯤부터 시끌벅적해지는 동네다.
리스본의 주요 관광지를 보다 보면 바퀴가 3개 달린 2~3인승 자동차가 보일 텐데, 바로 툭툭이다. 개인 택시와 비슷한 느낌으로, 주요 관광지를 뚝뚝을 타고 돌면서 운전기사가 마치 가이드처럼 설명해준다. 요금은 비싸고 외국인 대상으로는 60분에 90유로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바가지까지 씌우지만 시간이 늘어날 수록 싸지며, 흥정할 수 있다. 특히나 뚝뚝은 리스본에 있는 시간이 짧다면 추천하는데, 버스나 트램은 가지 않고 택시가 들어가기엔 좁은 골목을 나다니면서 주요 관광지를 최단 거리로 가기 때문에 뚝뚝을 이용할 경우 하루에서 이틀 안에 시내 관광지를 바가지 씌운 가격조차 아깝지 않다 생각이 들 정도로 알차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이동 수단과 비교해 소소한 장점은 오픈형 뚝뚝이 대부분이기에 시원하고, 이동 중에 사진 찍기 편하다.
리스본 역시 다른 대도시들이 흔히 그러하듯 주변 지역으로 확장되면서 넓어져 갔는데 이런 시내 외곽 지역 중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동네는 역시 벨렝(Belém)[18]이다. 이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로니무스 수도원[19]과 과거 리스본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감시하던 벨렝탑, 항해왕자 엔히크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해 지은 발견 기념탑[20]이 서 있다. 관광 볼거리가 많은 바이샤에서는 좀 거리가 있어서 호시우 광장 옆 피게이라 광장이나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트램을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15번 트램 타고 가다가 어디선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싶으면 바로 여기.
리스본 근교에는 예쁜 성들이 있는 옆도시 신트라(Sintra),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인 호카 곶(Cabo da Roca), 대서양과 접한 휴양 도시 카스카이스(Cascais) 등이 대표적인 관광지다.[21] 보통 리스본 Rossio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신트라로 간 후 신트라 관광 후 신트라에서 버스를 타고 호카곶을 구경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 하지만 리스본에서 카스카이스까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기차를 타고 가서 호카곶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경우 지옥의 입을 거쳐 대서양을 따라 잘 이어진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가면 멀리 호카곶이 보인다. 아니면 리스본 공항에서 렌터카를 받아서 신트라 궁과 페나 왕궁, 호카곶에 직접 가도 된다. 언덕 아래에 있는 신트라 궁과 달리 페나 국립 왕궁[22]은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이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3인용 뚝뚝이도 자주 보인다. 뚝뚝이는 매우 비싸므로 가급적이면 버스나 렌터카를 타고 올라가기 바란다. 호카곶에 가는 데에도 렌터카를 가지고 가는 게 여로모로 편하다. 호카곶에 가면 높은 확률로 한국 사람들, 특히 단체 관광객을 볼 수 있다.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신트라 궁, 페나 왕궁, 호카곶, 카르카이스, 발견 기념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순서로 하루 잡고 돌아 다니는 것이 동선이 가장 매끄럽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계 부근에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복구 작업을 담당했던 주제 1세의 재상상 폼발 후작을 기념하는 로터리가 나오는데 이 뒤로 언덕을 따라 에드워드 7세 공원이 나온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포르투갈 왕국 방문을 기념해 지은 공원인데, 리스본 시내에서도 가장 큰 공원이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시내와 테주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외에 해외 축구 팬이라면, 리스본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인 벤피카의 홈 경기장 이스타디우 다 루스(Estádio da Luz)도 관광지가 될 수 있고, 그 라이벌 클럽인 스포르팅 리스본의 홈 경기장 이스타디우 주제 알발라드(Estádio José Alvalade)도 있다. 두 경기장 모두 지하철 역이 인근에 있어(각각 Luz역, Campo Grande역) 편하게 갈 수 있다.
1998년 인도 항로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 리스본 엑스포가 열렸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낡은 부둣가였던 곳을 재개발한 오리엔트 지구도 있다. 보통 외국 가수들이 투어 오면 주로 공연하는 대형 공연장도 있고 지은지 얼마 안된 새 동네다 보니 보통 돈 많은 외국인이나 오피스 지구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강가 공원이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러 가는 사람도 많은 동네다.
2023년에서는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4.1. 전시장
- 리스본 국제 박람회장 - 리스본 게임 위크가 여기서 시행된다.
5. 교통
교통비는 메트로 기준 1회 1.85유로이나 viva 카드를 구매해 1일 단위로 교통권을 구매할 수 있다. 이 경우 7유로로(카드값 0.5유로는 별도) 트램, 메트로, 버스를 하루종일 탈 수 있다.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하면 교통비는 비싸지 않은 편이다.- 도시철도: 리스본 지하철. 중심가와 외곽 지역에 걸쳐 부설되어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교외에서 시내로 접근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총 4개 노선이 운행 중이다. 그 밖에도 carris 전철, 트램 등 이름난 교통수단이 많다. 사람들이 많아 자리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철도: 리스본 Rossio 역에서 세계문화유산인 페냐 성과 왕궁 등 문화 도시 신트라로 가는 열차가 1시간에 1대씩 출발하며, Cais Do Sodre 역에서 휴양도시 카스카이스로 가는 열차가 30분에 1대씩 출발한다. 신트라-Cabo de Roca- 카스카이스로 이어지는 리스본 관광의 핵심 철도 라인이다. 메트로 블루라인 종점에 위치한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는 노르트선 열차를 통해 포르투로 갈 수 있다.[23]
- 공항: 리스본 공항이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파리, 바르샤바, 프랑크푸르트, 뮌헨, 이스탄불,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런던 등에서 유럽 주요 공항을 거쳐 환승해서 갈 수 있다. 한국과의 정규 직항 비행편은 2019년 동절기 한정 아시아나항공이 인천국제공항간 전세기를 주 2회 운항하였고 비행시간은 13시간 30분이었다. 2024년 9월 11일부터 대한항공이 리스본 직항 정기편을 취항에 들어갔다.
- 트램: 1873년 도입된 리스본의 가장 전통적인 교통수단이자 리스본을 대표하는 교통수단이다. 전성기 27개 트램 노선이 존재했지만 버스의 확장에 밀려 현재 5개 노선이 운행 중이다. 여담으로 밤만 되면 트램에 매달려 무임승차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 28번 트램: 존재감이 모두를 압도한다. 대부분의 관광지를 모두 찌르고 다니기도 하고 트램이라는 교통수단이 주는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이 28번 트램을 이용하여 리스본을 즐긴다. 다만 운행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메트로에 비해 일찍 운행이 종료되는 편이다(막차가 11시쯤 종점에 도착한다). 퇴근 시간 언저리에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바이샤-시아두(Baixa-Chiado) 역' 근방까지 28E 버스로 운행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노란 트램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버스만 다닐 뿐이다. 경로 보기 게다가 소매치기가 많고 자리도 부족하다.
- 12번 트램: 관광객들에게는 12번 트램도 매우 꿀 같은 존재다. 28번 트램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노선이나 객차 상태는 12번 트램이 훨씬 좋다. 28번 트램은 여러 정거장을 뱀처럼 돌아서 가지만 12번 트램은 주요 관광지만 찍어서 움직인다. 리스본 시에서도 12번 트램을 관광용 트램으로 홍보 중인데 아직은 덜 알려졌다.
6. 여담
- 이 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명문 프로 축구 클럽은 SL 벤피카와 스포르팅 CP가 있으며, 서로 지역 라이벌로 인식한다. 또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파울루 벤투의 출신지이다. 리스본 토박이들은 절대적으로 SL 벤피카를 응원한다. 예를 들어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나 식당 주인에게 스포르팅 CP를 칭찬하면 인상이 순간 험악하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공포의 쿵쿵따에서 자주 언급된 도시였는데, 유래는 서울특별시에 소재한 동명의 유흥업소라고 한다. 어쨌거나 이것 덕분에 해당 도시의 국내 인지도가 올라갔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리스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대항해시대 시리즈, 부루마불 아니면 쿵쿵따니. 그나마 해외 축구 문화가 융성하면서 앞서 말한 SL 벤피카와 스포르팅 CP 팀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게임 어쌔신 크리드: 로그를 통해 리스본 대지진도 많이 알려졌다.
- 1912년 포르투갈령 앙골라에 '새로운 리스본'이라는 뜻인 노바 리스보아(Nova Lisboa)라는 도시가 세워졌다.[24] 고도 1,721m에 세워져 온화한 아열대 고산기후 도시이다. 1975년 앙골라가 독립하면서 우암부(Huambo)로 개명되었다.
- 리스본은 중국어로 '葡京'(푸징, 광둥어로 포우깅pou4 ging1)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포르투갈의 수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과거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에서 특히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 이름을 따서 리스보아 호텔(葡京酒店),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新葡京酒店)이 있다. 중국 본토에서는 영어 이름 리스본을 음차한 '里斯本'이 주로 사용된다.
7. 사건사고
- 1755년 11월 1일 1755년 리스본 대지진
- 1908년 2월 1일 카를루스 1세 암살 사건
- 2025년 4월 28일 대규모 정전 사태
- 2025년 9월 3일 리스본 전차 탈선 사고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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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rlos Moedas[2] 포르투갈 공산당과 녹색당으로 이루어진 정당연합.[3]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표기로 실제로는 [liʒˈβoɐ\](리주보아)에 가깝다. 외래어 표기법에 포르투갈어 세칙이 추가되기 이전에 국립국어원 용례에는 리스보아로 나와 있었다.[4] 도시의 옛 표기인 리슈봉아(Lixbõa)에서 유래.[5] 이후 시구르 1세는 마요르카 섬을 공격한 후 1110년 봄에 아크레에 당도, 예루살렘 왕국의 시돈 함락을 돕는다.[6] 이미 1100년 무렵 교황 파스칼 2세도 이베리아 반도 기독교 국가들에게 성지로 가지 말고 본토에서 성전을 계속하라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7] 그외에 라인란트 부대는 아르쇼트 백작 아르노 4세, 플랑드르 부대는 크리스티앙 드 기스텔, 잉글랜드-노르망디 부대는 도버의 시몬 및 런더의 앤드루 및 사헤르 드 아첼이 지휘했다. 한편 윌리엄 비엘이 지휘하는 일부 잉글랜드 부대는 1142년의 실패를 언급하며 그대로 성지로 직행했다[8] 그나마 잉글랜드-노르만 십자군은 서약을 지켜 약탈하지 않았다.[9] 이는 영국-포르투갈 동맹의 배경 중 하나가 된다. 한편 일부 십자군은 바르셀로나 백작을 도와 토르토사 정복을 돕는다.[10] 샌프란시스코 베이 브릿지를 본따 처음부터 2층 다리로 설계했으나 예산 문제로 도로만 우선 개통하였다.[11] Monastery of the Hieronymites and Tower of Belém in Lisbon[12] Monastère des Hiéronymites et tour de Belém à Lisbonne[1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1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5] 이후 포르투갈의 왕궁은 히베이라 궁전이 복원되지 않고 주제 1세가 아주다 언덕 위에 올라가 살았던 자리에 아주다 왕궁을 지으며 옮겨갔다.[16] 이중에서 관광지를 대부분 지나가는 28번 트램이 특히 유명하다.[17] 1732년 설립했으며, 1755년 대지진 이후에도 복구, 영업해 2010년 기네스북 인증을 받았다.[18] 실제 발음은 /bɨˈlɐ̃ȷ̃/으로 '블라잉'에 더 가깝다.[19] 리스본의 명물인 에그타르트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원래 수녀들은 수녀복에 풀을 먹일 때 달걀 흰자를 사용했는데 남는 노른자를 모아서 타르트를 해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1832년 재정난 때문에 옆에 있는 빵집이었던 파스테이스 드 벨렘에 비법을 전수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빵집에서 에그타르트를 맛보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2022년 가을 기준으로 이미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완제품만 상자에 넣어서 바로바로 내주기 때문에 줄은 금방 빠지는 편이니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들를 때 잠깐 거쳐가면 편하다.[20]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오면 바닷가에 있다. 벨렝탑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동쪽방향이다. 탑 앞의 바닥에는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고 각 지역별로 발견된 해를 표시해 놓았다. 예를 들어 마카오 1514년, 일본 1541년.[21] 남부 파루 혹은 알부페이라, 라구스, 베나질 등 휴양 도시에 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22] 페나 왕궁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끊고 줄을 서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왕궁에 입장하는 데에 보통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데 궁전 내부는 그다지 볼 게 없다. 줄을 서지 않고 궁전 외부의 테라스만 둘러봐도 된다. 신트라 궁은 17세기 아폰소 6세를 감금했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되어서 중세풍이 남아있는 대신 화려하지는 않다.[23] 소설 리스본행 급행열차의 주인공이 리스본 오리엔트역을 거쳐 이 역에 내린다.[24] 지금까지 내려오는 시기(市旗)와 시장(市章)도 원조 리스본과 굉장히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