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라틴어: Gnaeus Servilius Caepi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아버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형)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동생)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아들) 세르빌리아(손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41년 |
전임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 |
동기 | 퀸투스 폼페이우스 |
후임 |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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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인 세르빌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는 기원전 169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형은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문에 입양되어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로 개명했고, 기원전 142년에 집정관을 역임했다. 남동생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는 기원전 140년 집정관을 역임했다.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44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기원전 141년 퀸투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제비뽑기에 따라 이탈리아에 남아 내정을 다스렸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전하는 일설에 따르면, 마케도니아에서 스코디키 족과 맞붙었으나 패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뮌처는 스코디키 족이 이 시기에 로마와 맞붙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다른 기록이 없다며 신빙성이 낮다고 본다.
기원전 138년, 친형제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이복 형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와 함께 동료 집정관이었던 퀸투스 폼페이우스의 뇌물 수수 혐의를 고발하고 법정에서 고발측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고발자들의 권위가 자신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죄를 선고했다.
기원전 125년,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다. 두 사람은 알반 산맥의 물을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공급하는 아쿠아 테폴라 수로 건설을 완료했다. 또한 기원전 137년 집정관을 역임했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의 집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며 호된 질책을 가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는 기원전 104년 재무관을 역임했으나 해상사고로 사망했다. 손녀 세르빌리아는 기원전 54년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