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라틴어: Lucius Aurelius Cott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조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아버지) 루틸리아(아내) 아우렐리아 코타(딸)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19년 |
전임 |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
동기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
후임 |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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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씨족인 아우렐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는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버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기원전 144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22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기원전 119년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같은 해에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호민관을 맡아 민회의 투표 절차를 변경하는 법안을 도입했는데, 이 법안이 채택되면 옵티마테스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코타는 이에 반대했고 원로원을 설득하여 법안의 체택을 막게 했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집정관이 물러서지 않으면 투옥하겠다고 위협했다. 코타는 동료인 메텔루스에게 의견을 물었고, 메텔루스는 그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마리우스는 메텔루스를 체포해 감옥에 보냈고, 원로원은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바꿨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얼마 후 석방된 메텔루스가 일리리아인과의 전쟁에 착수했을 때 코타도 따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외의 언급은 하지 않았고, 일부 학자들은 아피아노스가 단순히 메텔루스가 그 해의 집정관이었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언급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이외의 행적은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루틸리아라는 여자와 결혼해 딸 아우렐리아 코타를 낳았다. 그녀는 기원전 91년 아시아 총독을 역임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결혼하여 그 유명한 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