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라틴어: Lucius Aurelius Oreste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조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아버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아들)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26년 |
전임 |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
동기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후임 |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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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인 아우렐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루키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57년 집정관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가 그의 아버지라고 추정한다.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해 기원전 129년 이전에 법무관을 맡았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26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후 제비뽑기를 통해 사르데냐 속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민들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젊은 귀족이었던 가이우스 그라쿠스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가 재무관으로서 그의 부대에 복무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오레스테스의 군대는 겨울에 따뜻한 옷이 부족하여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그라쿠스가 사르데냐 각지를 돌아나니며 주민들을 설득해 겨울옷을 받아냈다. 또한 누미디아의 왕 미킵사는 그라쿠스를 존경해 오레스테스의 군대에 빵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원로원이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우려해 그라쿠스를 소환하기로 했다. 오레스테스는 그라쿠스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그라쿠스는 결국 로마로 돌아갔고 오레스테스는 총독으로서 수년간 사르데냐에 머물렀다고 한다.
기원전 122년 로마로 귀환하여 개선식을 거행했으며,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그가 연설가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연설문이 자신의 시대까지 전해졌다고 밝혔다.
아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는 기원전 103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