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라틴어: Marcus Perperna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29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에트루리아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페르가몬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마르쿠스 페르페르나(아버지) 마르쿠스 페르페르나(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30년 |
전임 |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
동기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1] |
후임 |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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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집정관. 제1차 노예 전쟁과 아리스토니코스의 반란을 진압했다.2. 생애
페르페르나 씨족은 에트루리아 출신의 평민 씨족이다.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페르페르나가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 후, 그가 가문 최초로 로마 정계에 진출했다. 기원전 133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고, 기원전 132년 시칠리아 총독으로 부임해 제1차 노예 전쟁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집정관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로부터 반란의 진원지인 엔나를 공략하는 임무를 맡아 1년 가까이 공세를 벌인 끝에 함락시키고 적장 클레온을 사살했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노예군은 동굴 속에 숨었다가 로마군이 다가오기 전에 자기들끼리 창으로 찔러 죽이는 방식으로 자살했다.기원전 13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와 공동으로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당시 페르가몬에서는 자신을 페르가몬 국왕 에우메네스 3세로 자처하는 아리스토니코스가 페르가몬 왕국을 병합한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임 집정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가 아리스토니코스에게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원로원은 페르페르나에게 진압을 명령했다. 페르페르나는 스트라토니케 시 인근에서 반란군을 크게 격파한 뒤 도시를 포위 공격한 끝에 아리스토니코스를 체포했다. 이후 로마로 돌아가서 개선식을 거행하려 했으나, 기원전 129년 초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중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사망했다.
사후 그의 아버지 마르쿠스 페르페르나가 불법적으로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사실이 밝혀져 고향으로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고, 아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는 기원전 92년 집정관에 선임되고 기원전 86년 감찰관을 역임했다.
[1] 렌툴루스가 집정관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사망해서 보결 집정관에 선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