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라틴어: Lucius Valerius Flacc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조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아버지)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형제)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아들)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31년 |
전임 | 푸블리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루필리우스 |
동기 |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 |
후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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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는 기원전 195년 집정관, 기원전 184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아버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는 기원전 152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형제로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가 있었으나 이름만 전해지며, 조카인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와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는 각각 기원전 93년과 기원전 86년에 집정관을 역임했다.그는 일찍이 마르스의 플라멘으로 발탁되었다. 기원전 131년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 시기 옛 페르가몬 왕국의 영토에서 아리스토니코스가 로마를 상대로 반기를 들었다. 두 집정관은 자신들에게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임페리움을 갈망했다. 무키아누스는 폰티펙스 막시무스로서의 권위를 이용해 동료 집정관이 플라멘이라는 이유로 로마를 떠나는 것을 금지했다. 민회는 플라쿠스를 지지했지만, 감히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거역한 플라멘이라는 오명을 사고 싶지 않았던 플라쿠스는 그에게 임페리움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키아누스는 동방으로 출진했지만, 기원전 130년 아리스토니코스에게 참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는 기원전 100년 짐정관, 기원전 97년 감찰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