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라틴어: Marcus Porcius Cato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18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아프리카 속주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대 카토(조부)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리키니아누스(아버지) 아이밀리아 테르타(어머니)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형제)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18년 |
전임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
동기 |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
후임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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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씨족인 포르키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는 기원전 195년 집정관, 기원전 184년 감찰관을 역임하면서 로마 정계에서 맹활약했던 대 카토이고, 아버지는 기원전 152년 법무관에 당선되었지만 취임 직전에 사망한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리키니아누스이다. 어머니 아이밀리아 테르타는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의 딸이다. 형제로 기원전 114년 집정관을 역임한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가 있었다.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21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18년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와 함께 집정관에 당선된 뒤 제비 뽑기 결과에 따라 아프리카 속주를 임지로 삼았다. 그는 당시 누미디아의 국왕 미킵사가 사망하면서 두 아들 아드헤르발과 히엠프살 1세, 그리고 조카 유구르타에게 영토를 삼분할한다고 유언한 것을 실현시키는 임무를 수행했지만, 이를 완료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아울루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그는 조부의 웅변 스타일을 모방해 상당한 웅변 실력을 발휘했으며, 많은 연설문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연설문은 전부 현존하지 않는다.
아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는 모종의 시기에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속주의 법무관과 총독으로서 통치를 행사했지만 일찍 죽었기 때문에 집정관에 도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