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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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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261D><colcolor=#D8DA88> 재즈
Jazz
기원 장르 유럽 클래식 음악, 동유럽 집시 음악, 블루스, 가스펠, 서아프리카 민속 음악, 노동요, 스피리추얼, 행진곡, 래그타임
지역
[[미국|]][[틀:국기|]][[틀:국기|]]
등장 시기 19세기 말, 미국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시대 19세기 말 - 현재
전성기 1920년대 – 1980년대 초반[1]
사용 악기 더블 베이스, 그랜드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색소폰, 보컬, 트럼펫, 코넷, 트럼본, 비브라폰, 튜바, 탭 슈즈, 윈드차임, 하몬드 오르간, 하모니카
하위 장르 딕실랜드, 스윙 재즈, 보컬 재즈, 비밥, 퓨전 재즈, 부기우기, 하드밥, 빅 밴드 재즈, 소울 재즈, 모달 재즈, 아방가르드 재즈, 쿨 재즈, 애시드 재즈, 스무스 재즈, 보사노바, 재즈 록, 재즈 펑크, 누 재즈, 아프로쿠반 재즈, 라틴 재즈 등
대표 음악가 킹 올리버, 버디 볼든, 카운트 베이시, 루이 암스트롱, 빌리 홀리데이, 아트 테이텀, 조지 거슈윈, 베니 굿맨, 글렌 밀러, 듀크 엘링턴, 콜맨 호킨스, 엘라 피츠제럴드,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냇 킹 콜, 사라 본, 페기 리, 아트 블래키, 버디 리치, 칙 코리아, 빌 에반스, 델로니어스 몽크, 장고 라인하르트, 헬렌 메릴, 엘빈 존스, 캡 캘러웨이, 프랭크 시나트라, 토니 베넷

1. 개요2. 역사
2.1. 탄생 배경2.2. 재즈의 태동, 초창기 재즈(딕실랜드)2.3. 스윙 시대2.4. 정열의 비밥2.5. 차가운 쿨 재즈와 뜨거운 하드밥2.6. 기존의 틀 너머로, 아방가르드 재즈와 프리 재즈2.7. 다른 장르와의 융합, 퓨전 재즈의 탄생2.8. 다시 처음으로, 신고전주의2.9. 오늘날의 재즈
3. 주요 필름4. 관련 소설/만화 및 애니5. 한국 재즈6. 한국에서 재즈를 공부하는 방법7. 하위 장르8. 레이블9. 유명 아티스트(ABC 순서)
9.1. 한국 재즈 아티스트
10. 한국의 재즈클럽, 주요 행사,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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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만일 당신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재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루이 암스트롱, 인터뷰에서 기자가 '재즈란 무엇인가'라 묻자 한 대답
재즈는 자유를 뜻합니다. 재즈는 자유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나가서 즉흥 연주를 해 보고, 위험을 감수해 보고, 그리고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마세요. 그런 건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맡겨두세요.
데이브 브루벡
재즈(Jazz)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에서 탄생해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한 음악 장르이다.

유럽의 악기와 음악 틀을 기반으로 아프리카의 리듬과 화성,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특유의 감성, 새로운 음악적 시도 등이 혼합된 장르인데, 연주를 할 때는 기존 클래식의 엄격함과 정형성에서 탈피하여, 즉흥적인 면과 변화 및 다양성을 강조한다. 1980년대 후반, 제100회 미국 의회 회의에서 재즈를 ‘희귀하고 귀중한 미국의 국보’로 지정했다.

초창기에는 흑인백인을 아우르는 미국인을 위한 음악이었다. 다만 재즈가 유행함에 따라 세계적으로 퍼지고 전 세계 민속 음악과 결합되어 갈래가 늘어나면서,[2] 현재로선 미국이 재즈의 시작지일지언정 재즈가 미국의 민속 음악이라고만 보기엔 경계가 상당히 애매해졌다. 이는 상술했듯 음악적 즉흥성이 강하다보니, 클래식 음악과 같은 엄격한 악보나 매우 규격화된 형식 등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기 때문. 또 그만큼 작곡하는 측이나, 연주하는 측이나 제대로 하기엔 난이도가 높은 장르로도 유명하다.[3]

음악적인 특성으로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 토속적인 집시 음악, 블루스에서 영향을 받은 블루스 스케일, 다양하게 발전시킨 코드 문법들, 블루노트 진행, 즉흥성(Improvisation), 당김음(Syncopation), 스윙(Swing)리듬 등의 새로운 시도, 20세기 초반에 새로이 등장한 예술 장르인 뮤지컬영화와의 폭넓은 교류와 수용[4] 등 여러 음악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재즈 또한 블루스와 함께 이후에 등장하는 다양한 대중음악 장르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는데, 20세기 중반부터 주류가 된 장르인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 , 펑크, 소울 등을 보면, 재즈에서 정교하게 발전시킨 독특한 음악적 구조나 문법, 다양한 음악적 코드 및 화성학 이론들이 확연히 녹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5]

주요 사용 악기에는 드럼, 콘트라베이스, 베이스 기타,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클라리넷 등이 있다.

2. 역사

2.1. 탄생 배경

프랑스미국에게 루이지애나 주를 판매하면서 내건 조건이 크레올평등 대우에 대한 조건이었고, 이 덕분에 루이지애나 주에 있는 크레올들은 백인들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크레올들은 서양 음악과 악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특히 미시시피강 유람선에서 여흥을 제공하는 역할을 크레올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 유럽 음악의 틀 안에서 흑인 음악과의 결합이 이뤄졌다고 한다.

크레올이 아닌 일반적인 노예 흑인들의 경우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영가(靈歌, Negro Spiritual 혹은 Gospel song)를 배울 수 있었다. 이 영가들은 흑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서부 아프리카 음악의 특성[6]과 결합되어 래그타임[7] 등의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하지만 서아프리카 음악이 유럽 음악과 결합되어 재즈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실제로는 재즈와 서아프리카는 관계가 거의 없다는 주장 역시 있다.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는 실제로 서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아프리카와 재즈가 관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즈는 아프리카보다는 동유럽의 집시 음악과 더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와 유사성을 띠는 것은 자메이카 등 카리브나 중미의 나라들의 음악이다. 때문에 아프리카와 별개로 남부 흑인 노예들이 아메리카로 끌려온 뒤 독자적으로 발생한 장르라고 봐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이다.

대신 오늘날의 재즈가 아프리카 음악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는데, 1960년대 이래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흑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는 자각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배우면서 재즈에 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넷 콜먼을 비롯한 프리 재즈 아티스트들은 아프리카 음악 특유의 복잡한 폴리리듬과 혼합박자, 음계를 도입해 그 동안의 재즈 조류를 거스른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현지 출신의 재즈 아티스트들도 방향성은 좀 달랐지만 비슷하게 아프리카 음악을 토대로 한 그들만의 재즈를 만들었다.

남북 전쟁 이후 흑인 노예 해방이 이루어 지면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만 했던 흑인들이 도시로 모여들어 빈민계층을 형성한다. 이후 1910년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흑인들은 입대를 하여 군 복무를 마친다. 뉴올리언스는 당시 해군기지가 있었는데, 항구를 따라서 해군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윤락가와 술집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그 지역은 당시 해군기지 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스토리빌이라 불렸다. 전쟁 후 전역한 군악대 출신 흑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고된 노동만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토리빌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은 윤락업소 내의 밴드뿐이었다. 그들이 연주하던 음악이 초창기 재즈를 이루었다.

또다른 설로는 미국과 쿠바의 전쟁, 남북 전쟁이 끝나면서 군인들이 두고 간 군악대 악기들이 뉴올리언스에는 엄청나게 쌓여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남겨진 악기들을 마구 갖고놀게 되면서 재즈 즉흥연주(Improvision)이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초창기 재즈는 길거리 행진곡 풍인 마칭밴드 형태도 많았다. 그리고 사용되는 악기들 대다수가 군악대에서 쓰이는 목관, 금관악기와 타악기인 것도...[8]

재즈의 기본 음계 중 블루스 음계가 많을 정도로 두 장르는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다. 블루스의 핵심 형식 중 하나인 '부르고 응답하기(Call and Response)' 구조는 원래 흑인들의 노동요민요 형식에서 기원했는데, 이는 재즈에서도 차용되었다. 이후 블루스가 음악적으로 정교해지면서 재즈에서 발전시킨 음악적 이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런 음악적 기본 구조뿐만 아니라, 코드 진행의 다양성, 창법, 악기 편성, 악기 연주 기법, 음악적 변주 등등에서 두 장르는 매우 깊숙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듯 재즈와 블루스의 관계는 그 어떤 장르의 연관성보다도 매우 직접적인데, 미국에서 거의 동시대에 대중화되고, 발전하면서 음악적 문법과 구성, 형식에 있어서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악 연구자에 따라서 아예 블루스를 재즈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고, 혹은 반대로 블루스를 바탕으로 재즈가 탄생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사실상 아예 블루스와 재즈를 아예 '형제 장르' 정도로 보는 시각도 꽤나 보편적이다.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초기 재즈를 초창기 재즈 (Early Jazz)라고 부르는데 앞서 설명한 대로 흑인들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백인들까지 이 음악에 매료되어 재즈음악을 따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딕실랜드(Dixieland) 재즈라고 한다. 재즈밴드가 백인과 흑인 혼성으로 되어 있거나 아예 백인들로만 구성된 재즈밴드들이 나오게 된다.

재즈의 명칭에 대해서는 그 유래가 분분한데, '재스(Jass)', 발레의 한 동작인 '채즈(Chaz)'부터 어느 유명한 재즈 연주자의 이름이 변형되었다는 설까지 그야말로 무수하다. 피아니스트인 젤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은 자신이 재즈를 '발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재즈라는 단어가 초창기에 성적인 단어였음을 암시하는 당시의 신문기사들이 발견되기는 했으나[9]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하다.

2.2. 재즈의 태동, 초창기 재즈(딕실랜드)

오리지널 딕실랜드 재즈 밴드(Original Dixieland Jazz Band) - Jazz me Blues (1921) 루이 암스트롱 앤드 히스 핫 바이브 (Louis Armstrong and his Hot Five) - Fireworks (1928)
뉴올리언스(초창기 재즈)에서 191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재즈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는데, 이 때 재즈의 형식과 스타일[10]을 잡은 인물이 바로 루이 암스트롱, 킹 올리버, 버디 볼든등이 있다. 또한 자유분방하고 끝없이 긴 연주를 했(다고 전해지)던 음악가들이 이때부터 녹음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레코드의 길이에 맞추기 위해 짧아지고, 솔로 연주도 음반에 고정되어 담게 되면서 재즈의 체계화와 보급이 슬슬 시작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트럼펫을 가진 꼬마들이 명연주자의 음반을 집에서 듣고 따라하게 되면서 재즈의 즉흥성이 시작되었다.

1920년대 재즈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서 캔자스 시티, 시카고 등으로 번져나갔다. 이 중 특히 시카고 스타일은 초창기 재즈의 주요한 스타일 중 하나였다. 래그타임, 딕실랜드 재즈, 찰스턴 리듬의 재즈 등이 혼재되었으며 스윙재즈 스타일로 조금씩 진화되기 시작했다.

2.3. 스윙 시대

듀크 엘링턴 - It Don't Mean a Thing (If It Ain't Got That Swing) (1931) 베니 굿맨, 플레쳐 헨더슨 - Sugar Foot Stomp (1937)
1930년대에는 재즈의 중심이 뉴욕으로 이동되었으며, 빅밴드가 연주하여 흥겹게 춤(스윙댄스, 찰스턴 댄스 등)출 수 있는 스타일의 빅 밴드 스윙재즈가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이 때 이 스윙재즈의 확립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베니 굿맨글렌 밀러이다. 이 스윙재즈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되어 재즈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뮤지션들이 활동했던 사보이 볼룸, 코튼 클럽, 민톤스 플레이 하우스, 버드랜드, 블루 노트, 아폴로 극장 등 수 많은 홀들이 뉴욕에 있었으며 일부는 현재까지도 영업 중이다. 기타 사항으로 랩소디 인 블루라는 곡 또한 이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조지 거슈인이 1924년 작곡한 재즈풍의 클래식 곡으로 클래식 진영에서 재즈풍의 곡 제작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1945년에 재연한 랩소디 인 블루의 초연모습

2박과 4박에 오는 강세와 함께, 강력한 당김음을 통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그네(swing)를 타는 듯한 탄성력 있는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탄생한 스윙 음악의 리듬은 이후 그 자체로 '스윙 리듬'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재즈 음악의 기본적인 문법이자 정신이 되었다. 이후 이어지는 비밥, 쿨재즈, 하드밥 등의 '모던 재즈'의 시대에서도 비록 여러가지 다양한 장르적 분화는 겪었을 지언정, 재즈의 기본적인 정신인 '스윙' 만큼은 외면당하지 않았다. 지금도 연주자들의 실력을 평가할 때 '스윙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라는 표현을 쓸만큼, '스윙'은 재즈라는 음악의 그야말로 기초이자 기반이 된다.

2.4. 정열의 비밥

디지 길레스피 (feat. 찰리 파커) - A Night In Tunisia (1945) 찰리 파커 - Yardbird Suite (1946)
1940년대에는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재즈를 댄스홀 음악이 아닌[11] 음악 그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실험이 시작된다. 그 결과 연주자들은 소규모 밴드(주로 3~5명)를 형성하여 음악가들을 위한 음악을 연주한다. 여기서 이러한 배경음악에 불과하던 재즈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우리가 오늘날 듣고있는 감상중심의 재즈로 만든 불세출의 천재 찰리 파커가 등장해 비밥을 발명했다. 이 때부터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진 기라성같은 뮤지션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데, 그야말로 천재 재즈 뮤지션들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밥 재즈(Bop Jazz)라고도 하는데, 이 시기에 스윙 시대(Swing Era)가 끝나고, 이른바 모던 재즈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평가받는다.[12], 그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의 유행가 정도의 위상이었던 재즈는 20세기 음악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음악 장르, 예술 장르로 격상된다. 재즈 애호가들도 그의 음악적 스타일에는 호불호가 갈릴지 모르나, 적어도 영향력과 파급력 측면에서는 파커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듣고있는 재즈도 없었을 것이라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 이 시기의 재즈를 Bebop[13]이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 많은 대형 뮤지션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흔히 재즈 하면 떠오르는 음악들은 주로 여기에 속한다.

아래 'NHK 재즈다큐멘터리 모던재즈의 탄생' 영상에서 1920년대~30년대 스윙재즈에서 비밥 탄생 시기까지의 연대기를 한글 자막으로 볼 수 있다. 사보이 볼룸, 민톤스 플레이 하우스 등 당시 명소들과 인물들에 대해 볼 수 있다.

2.5. 차가운 쿨 재즈와 뜨거운 하드밥

캐논볼 애들리 - Love For Sale (1958) 빌 에반스 - My Foolish Heart (1960)

1950년대 미국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패션, 문학, 라이프 스타일 등에서 전반적으로 쿨 스타일(Cool style)이 유행을 타면서, 재즈도 이 쿨 스타일을 따라 변화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쿨이라는 단어는 '멋지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냉소적'이라는 의미이다.

당시 재즈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은 비밥 재즈가 너무나 현학적이고 어려워서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고, 마침 등장한 로큰롤 등에 밀려 주류 음악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맞춰 비밥보다는 더 대중 친화적이고 서정적인 연주를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한 재즈 뮤지션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쿨 재즈였다. 이 쿨 재즈라는 용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걸작인 <Birth of Cool>에서 사용된 후 보편화되었다. 쿨 재즈는 서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시도되었다고 하여 웨스트코스트 재즈(Westcoast Jazz)라고 부르기도 한다.

쿨 재즈는 비밥 음악처럼 틀에서 심하게 벗어난 즉흥연주는 최대한 지양하는 분위기의 재즈였다. 쿨 재즈는 비밥처럼 격정적이기 보다는 보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추구했는데, 이 때문인지 음악적 문법이나 곡의 진행, 분위기 등에 있어 클래식 음악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했다. 또한 대중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즉흥 연주적인 재즈 음악의 본질도 버리지 않았으며 재즈 장르 이외의 음악이나 미국 이외의 다양한 나라의 리듬이나 문화를 수용하는 등 다양한 새로운 시도에도 열려있었다.[14] 이러한 쿨 재즈의 흐름은 이후 브라질의 음악과 결합하여 보사노바 장르가 탄생하게 되는 장르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쿨 재즈가 큰 인기를 끌자 지역적 반대편인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군의 뮤지션들은 비밥의 난해함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쿨 재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좀 더 격정적이지만 비밥 보다는 차분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그러면서도 즉흥 연주적인 특성은 크게 잃지 않은 장르를 새로이 만들어 내는데, 이 재즈 장르를 이스트코스트 재즈(Eastcoast Jazz)혹은 하드밥(Hard Bop) 이라고 부른다. 하드밥은 과거 비밥의 야수성이나 난해함은 대폭 줄여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때문에 감상하기도 좋으며 그리고 과거 한때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스윙 리듬도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과거의 비밥 장르에 비해 훨씬 대중 친화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또한 연주자들 끼리의 정교한 캄보 플레이를 한층 더 발전시켰고 블루스적인 음악 문법들도 전폭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렇듯 동시대에 탄생한 쿨 재즈와 하드밥의 장르적 경쟁은 재즈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기여했다.

마일즈 데이비스 뿐만 아니라 빌 에반스, 데이브 브루백, 폴 데스몬드, 짐 홀, 제리 멀리건 등 많은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쿨 재즈 장르의 아티스트로 분류된다. 또한 논란은 있으나 젊은 시절의 쳇 베이커 역시 쿨 재즈씬에서 놀았다고 본다. 물론 쳇 베이커와 여러모로 비슷한 아트 페퍼도 마찬가지. 하드밥 뮤지션으로는 소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 아트 블래키, 허비 행콕 등을 꼽는다. 다만 늘 그렇듯이, 쿨 재즈 뮤지션들과 하드밥 뮤지션들이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쿨 재즈의 대가들은 하드밥 장르의 연주나 음반 작업을 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고 전설적인 하드 밥 뮤지션들도 쿨 재즈 스타일의 탁월한 음반을 여럿 발표했다. 심지어 쿨 재즈와 하드밥 뮤지션들은 협연이나 음반 작업도 함께 엄청나게 많이 했다. 일례로 당장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비밥, 쿨 재즈, 하드밥 등 모든 모던 재즈 장르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인물이었다. 두 장르가 함깨 경쟁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였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2.6. 기존의 틀 너머로, 아방가르드 재즈와 프리 재즈

오넷 콜먼 - Lonely Woman (1959) 존 콜트레인 - A Love Supreme (풀 앨범[15]) (1965)
1960년대 세계적으로 전위 예술(Avant-garde)이 큰 유행을 타면서 재즈도 이 전위 예술의 영향을 받는다. 이 시기에 발생한 재즈가 전위 재즈 혹은 프리 재즈 라고 불리는 재즈이다. 대표적인 뮤지션인 오넷 콜먼은 음악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이 독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였으며[16] 존 콜트레인이나 에릭 돌피와 교감하며 프리재즈의 대표적 작품들을 내놓았다. 프리재즈는 기존 재즈의 틀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음악이 많아져서 심지어 스윙이 존재하지 않는 음악도 나왔고, 그런 음악을 재즈로 볼 것이냐 아니냐는 정체성 논란에 이어, 재즈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던져주었다. 또한 콜트레인이 소속했던 임펄스! 레코드는 재즈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 재즈 무브먼트를 이끌기도 했다. 

2.7. 다른 장르와의 융합, 퓨전 재즈의 탄생

마일스 데이비스 - Shhh (1969)
한편 60년대를 기하여 프리 재즈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것은 퓨전 재즈였다. 이는 록 음악펑크(Funk) 등의 영향을 짙게 받으며 생겨난 새로운 장르로,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의 특징을 융합하며 본래 재즈에서 잘 사용되지 않던 신디사이저일렉트릭 기타 등을 편성하며 '재즈 록'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칙 코리아허비 행콕 등이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웨더 리포트 같은 밴드들이 퓨전의 전성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1970~80년대 재즈계에 정점을 찍게 되며 이후 일본, 한국 등의 재즈신에도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흑인 민권 운동을 통해 범아프리카주의가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주며 아프리카의 조상의 문화와 다른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에서 유래한 음악들 또한 재즈에 수입되었고, 아프리카, 카리브 해, 남미의 음악이 많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프로큐반 음악이 다양한 음악가들에게서 큰 관심을 받았고, 특히나 보사노바삼바가 큰 인기를 얻어 스탄 게츠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등의 뮤지션들도 관심을 받았다.

2.8. 다시 처음으로, 신고전주의

윈턴 마살리스 - Cherokee (1987) 발레리 포로마네프 - I Concentrate On You (1991)
1980년대에는 너무 전위적이었던 프리재즈에 대한 반동으로 초기 모던재즈로의 회귀를 표방한 신고전주의 재즈가 나타났다. 트럼페터인 윈턴 마살리스는 그 첨병이었다.

2.9. 오늘날의 재즈

조슈아 레드맨, 브래드 멜다우,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브라이언 블레이드 - St.Thomas (1994 뮌헨 공연)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멘트 - Afro Blue (2012)
Naked City - Batman (1990) 유제프 카말 - Black Focus (2016)
90년대 초 하드밥의 직계후예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밥이 재즈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유행에 가려진 포스트밥은 그동안 근근이 명맥을 이어왔는데 조슈아 레드맨, 브래드 멜다우, 크리스 포터,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커트 로젠윙클, 피터 번스타인 등등 당시 유망한 재즈 뮤지션들이 뉴욕 신에 등장하면서 보다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포스트밥은 재즈의 메인스트림을 차지하게 되며 그동안 유행했던 모든 퓨전들을 흡수하고 발전하는 모습까지 보이게 된다.

90년대말 ~ 2000년대에는 다른 장르들과 결합을 함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기도 했다. 팝, 댄스, 일렉트로니카 장르와 결합한 애시드 재즈 분야가 탄생해 자미로콰이, 힙합과 결합해 재즈 힙합 분야에서 A Tribe Called Quest, 누자베스 등의 재즈 아티스트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2010년대에는 로버트 글래스퍼가 재즈와 힙합, 알앤비를 결합시키며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며 사운드가 어렵고 난해해져 청자들을 늘리지 못하고 있던 재즈신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는다. 카마시 워싱턴, 에스페란자 스팔딩 등의 뮤지션들 또한 젊은 재즈 뮤지션들로 재즈의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손꼽히고는 한다. 한편 2010년대부터 현재 2020년대까지 재즈와 힙합의 만남이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는데, 스나키 퍼피(Snarky Puppy) 등의 밴드들이 강렬한 힙합 비트에 영향을 받은 퓨전을 선보였으며, 힙합 아티스트 켄드릭 라마 같은 경우도 정통 재즈 곡을 바탕으로 랩을 시도하거나[17], 재즈, 알앤비, 힙합 베이시스트인 Thundercat과 콜라보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또한 기존의 있던 곡의 화음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ization)' 또한 현재 재즈신에서 크게 인기있는 테마인데, 제이콥 콜리어나 Dirty Loops 등의 뮤지션들이 그러한 트렌드의 첨병으로 손꼽힌다.

한편더 전위적인 쪽으로 나아가서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색소포니스트 존 존 등을 중심으로 아예 재즈를 펑크 락, 그 중에서도 그라인드코어와 결합한 음악이 등장했다. 존 존 혹은 이 그룹에 속해있던 이들의 음악은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분류되기까지 한다.

3. 주요 필름

4. 관련 소설/만화 및 애니


5. 한국 재즈

한국의 재즈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6년 백명곤 선생을 필두로한 Korean Jazz Band와 김해송, 손목인 의 음악들을 한국재즈의 시초로 보며 사실상 스윙재즈와 한국의 민요를 섞은 밴드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짜스', '만요(漫謠)' 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시기의 재즈 음악을 들을 때 서양문물과 일본문화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라 '폭스트롯(Fox Trot)', '클래식(Classic)', '왈츠(Waltz)', '스윙재즈(Swing Jazz)', '일본 엔카' 등이 무분별하게 잡탕처럼 섞여 그냥 재즈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재즈 음악 리스너들은 이 시절의 재즈송이라 불린 한국 음악에서 재즈의 3요소 '스윙', '임프로바이제이션(즉흥성)', '싱코페이션(당김음)'이 있는지 구분하여 들어야 한다. 특히 트로트 와 재즈(만요)는 자세히 듣지 않으면 구분하기 매우 어려워 주의가 필요하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던 50~70년에는 소울, 펑크, 라틴, 퓨전 재즈 풍의 모던재즈가 작곡되기 시작되었고 만요족은 사라졌다. 대한민국 재즈 1세대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였다. 아래 링크에서 한국의 초창기 재즈와 한양의 재즈댄스홀의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관련 민간 단체로 (사)한국재즈협회 링크가 있으며 연례 행사로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있다. 대표적인 재즈평론가에는 남무성씨가 있다.

관련 커뮤니티로 디시인사이드 재즈 갤러리가 있다.

이 외에 1991년 신해철솔로 2집에 실린 재즈 카페가 큰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 가요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6. 한국에서 재즈를 공부하는 방법

한국 대학의 재즈 교육은 클래식을 위주로 하는 음대와는 달리 실용음악에 분류하는 편이다. 2000년대 후반에 실용음악 붐이 일면서 재즈를 공부할 수 있는 학교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보통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 등 재즈 전문 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유학파 교수들이 수업을 개설하여 사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필드에는 버클리 음악대학(Berklee College of Music[18]), 퀸즈 칼리지(Queens College[19])를 비롯한 미국 동부 유학파들이 국내에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경희대학교(Postmodern음악학과),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학교의 국내 출신의 재즈 뮤지션도 많이 활동한다.

한국의 재즈 교육이 과거에 비해 많이 활성화되었고, 재즈 기타, 재즈 드럼, 재즈 피아노, 재즈 색소폰은 관련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금관악기(트럼펫, 트럼본 등)는 여전히 재즈 전문 강사나 커리큘럼이 부족하다. 중고등학교의 브라스밴드가 활성화되어 악기의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일본에 비교해보면 한국은 브라스 연주자가 적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 대학에서 재즈를 공부하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재즈를 공부하려는 학생의 수도 드물 뿐더러 수업 또한 팝이나 퓨전, 가요 위주기 때문에 실용음악과에서 순수 재즈를 배운다는 건 포기해야 된다. 입시에서는 재즈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반면 정작 대학 수업에서는 재즈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러니이다. 덕분에 모든 실용음악 입시생들은 입시를 위한 재즈를 배우지만 대학 입학 이후에도 재즈를 공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용음악학원은 보통 입시 위주의 교육이 주를 이룬다. 여타 학원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학문 교육보다는 어떻게 합격시킬지에 대한 전략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입시생이 아니라면 크게 상관은 없다. 어느 학원을 가더라도 가르치는 사람이 재즈를 주로 하는 사람인지, 재즈 이외 실용음악을 주로 가르치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후자라면 재즈를 깊이 배우는 것은 기대하지 말자. 필드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을 찾아가서 개인 레슨을 받는 것이 비교적 본질적인 교육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즉흥연주에도 일반적인 규칙이나 언어가 있다. 스탠더드 곡의 리듬과 화성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듯 연주한다. 학교에서는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수백 곡씩 묶은 '리얼북'이라는 책은 실용음악과 학생들 혹은 재즈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족보처럼 활용되곤 한다. 최근에는 pdf파일을 태블릿PC에 담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코드 진행을 담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iRealPro가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다. 물론 뉴욕의 프로 재즈 뮤지션들은 직관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리얼북을 가급적 보지말고 귀로 듣고 원곡이나 즉흥연주를 익히라고 권한다. 또한 초견하는 곡이나 고도의 편곡이 들어가는 빅밴드를 제외하면 재즈 클럽 에서 스탠다드를 연주한다면 무대에서 악보를 보는 것은 대체로 지양하는 편이다.

재즈 스탠더드는 1910년대 래그타임과 행진곡, 1920~40년대 스윙재즈,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유럽 클래식, 군중가요 등 다양한 요소를 재즈화해서 악보를 구성되어 있다. 가장 많이 녹음된 재즈 스탠더드는 1930년대부터 20년 이상 동안 W. C. 핸디의 "St. Louis Blues"였고, 이후 호기 카마이클의 "Stardust"가 그것을 대체했다.

7. 하위 장르

8. 레이블

9. 유명 아티스트(ABC 순서)

9.1. 한국 재즈 아티스트

10. 한국의 재즈클럽, 주요 행사, 교육기관



[1] 스윙이나 비밥 등의 정통 재즈 계통은 1970년대를 끝으로 대중적으로 쇠락했으며, 퓨전 재즈 계통도 1980년대까지는 대중적 영향력이 남아 있었으나 1990년대에 접어들어 록 음악힙합, 일렉트로닉 뮤직 등에 밀려났다.[2] 보사노바, 레게, 맘보, 차차차 등이 모두 재즈의 영향을 받아 토속 음악과 결합해 탄생한 장르이다.[3] 일례로 영화 위플래쉬를 보면 주인공의 방 벽에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인 버디 리치의 어록인 "능력이 부족한 연주자는 록 밴드에서나 연주하게 된다"는 말이 적혀있다. 제대로 된 재즈 연주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4] 일례로 역사상 최초의 유성영화가 바로 1927년에 개봉한 '재즈 싱어'였다. 또한 20세기 초중반에 뮤지컬과 영화의 삽입곡으로써 히트한 노래들 또한 대거 재즈의 스탠다드 넘버로 편입되었다.[5] 간단한 예로 록 음악이나 팝 음악 등 일반적인 대중 음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기타 솔로, 피아노 솔로 등의 다양한 변주 장치들도 모두 '재즈'의 즉흥연주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특히 록 음악의 핵심적 형식이 되는 기타 리프 또한 재즈의 문법인 리프에서 살짝 변형된 것이다. 심지어 음악 콘서트에서 밴드 연주자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간단한 솔로 연주를 하는 것도 전형적인 재즈적 장치이다.[6] 5음계와 싱코페이션(당김음)[7] 초기 재즈의 원류로 생각되는 음악으로 1890~1910년까지가 전성기였다. 밴드 음악으로 많이 연주되었으며 초기 재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고... 초기 재즈가 뉴올리언스 레그타임으로 불렸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8] 일렉기타와 베이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국 남부 흑인음악에서 딱 통기타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밴조와 콘트라베이스로 반주했다.[9] 로큰롤(Rock`n`roll)도 성적 의미로 시작했다는 추측이 있다[10] 블루 노트, 싱커페이션, 스윙, 부르고 답하기, 복합 리듬과 즉흥 연주[11] 이때까지만 해도 재즈는 술집에서 춤추며 듣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12] 비밥이 재즈의 역사에서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재즈가 어려운 예술장르가 아닌, 그야말로 대중음악이자 춤곡이었던 시절은 'Swing Era' 때가 유일하다.[13]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카우보이 비밥의 그 비밥이 맞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 OST에서부터 재즈를 깊숙이 차용했다.[14] 마일즈 데이비스가 스페인에 다녀온 후 스페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Sketches of Spain'이라는 불후의 명반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 때이다.[15] 앨범 전체가 4부제로 나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 한 곡으로 이어져 있다.[16] 사실 이 시기의 흑인들의 상황은 처참 그 자체라, 음악 교육은 커녕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재즈싱어의 여왕이라 불리는 빌리 홀리데이는 11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13살부터 사창가에서 $5 에 남자 손님을 받았으며, 위에서 언급한 파커 역시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으며 어릴 때부터 마약에 빠져 살았다. 파커는 심지어 악보를 읽고 쓸 줄도 몰라 음악적 영감이 떠오르면 낮밤 안 가리고 바로 디지 길레스피의 집에 쳐들어가 색소폰을 불어댔고 디지는 자다깨서 악보에 받아적었다고 한다.[17] 그렇게 시도한 엘범 TPAB는 언론과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18] 맨해튼의 Berkeley College가 아니며 보스턴에 위치함[19] 뉴욕 퀸스에 위치함[20] 이른 바 월드 재즈, 집시 재즈 등 제3세계 혹은 민속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은 재즈.[21] 퓨쳐 재즈, 일렉트로닉 재즈라고도 하며 일렉트로닉 뮤직, 힙합 음악 등과 결합된 파생장르다. 일렉트로 스윙이 대표적 장르 중 하나다.[22] 재즈 음악 위에 시를 덧붙인 장르.[23] 재즈 트럼페터. 러시아 출신이며, 먼데이 미치루의 배우자이기도 하다.[24] 스탠 게츠 등과의 많은 활동으로 브라질리언, 웨스트코스트 재즈에 큰 영향을 주고 받았다.[25] 재즈라는 장르와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통합시킨 인물이다. 당시 작곡가들에게 큰 충격을 줬던 방법으로 후세에도 클래식ㆍ재즈 작곡가로 유명하다.[26]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 등 다수의 영화음악에 참여. 만화가 키쿠치 히데유키가 그의 형.[27]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 OST를 작곡한 아티스트.[28] 사일런트 아이라는 메탈밴드에서도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100% 재즈만을 고수하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연주 스펙트럼의 폭이 넓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29] 김진표 등 여러 가수의 피처링으로 참여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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