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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20:18:54

스윙댄스

1. Swing Era와 스윙댄스2. Neo Swing Era와 스윙댄스3. 대한민국의 스윙댄스
3.1. 국내 스윙 클럽(스윙빠)
4. 기본매너5. 용어6. 국내외 주요 행사

1. Swing Era와 스윙댄스

1930~1940년 말까지 미국에서 유행하던 스윙재즈를 기반으로 하던 댄스 이다. 전반적인 스윙댄스를 일컫는 광범위한 은어로 지터벅이라는 말도 쓰이나, 한국에서는 스윙댄스 중 4박자 스텝으로 이루어진 초급(입문) 과정을 지터벅의 의미로 한정하여 주로 사용한다.

스윙은 여러가지 댄스들이 혼합된 것이지만 제일 큰 영향을 준 것은 찰스턴 이라는 댄스. 스윙은 주로 두 가지로 East Coast Swing 은 주로 빠른 음악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West Coast Swing 은 블루스와 같은 느린 곡 위주. East Coast Swing 은 한국에서 지터벅이라 하는 춤과 매우 흡사하다. 린디합 Lindy Hop 은 이 East Coast 스윙의 최대 진보로 생각하면 된다. Lindy Hop 은 기본동작이 East Coast Swing 보다 조금 더 복잡하며, 더 빠르고 화려한 동작이 많다. 영화 Swing Kids 나 Malcolm X 에 나오는 춤은 주로 East Coast Swing 과 린디 합을 많이 보여준다.

린디합은 여러 논쟁이 있지만, 1920년대에 미국 뉴욕 할렘가에 있던 두개의 Club(사보이 볼룸,The Savoy Ballroom 과 코튼 클럽, Cotton Club)에서 흑인들의 춤으로 시작되었다.처음에는 Jazz음악의 비트를 맞추어 추는 기본적인 댄스였으나, 춤을 추던 사람들이 서로 경쟁을 하여 더욱 멋있고 재미있는 동작들을 추구 하다가 1930년경 프랭키 매닝(Frankie Manning)(1914~2009) 이라는 스윙의 전설적인 인물이 첫 에어리얼(Aerial 하늘을 나는 동작)을 구사.

Lindy Hop 의 명칭은 Savoy Ballroom 에서 춤을 추던 George "Shorty" Snowden 이라는 댄서가 한 신문기자의 질문에 그 당시 혼자서 대서양을횡단한 Charles Lindbergh 의 애칭[1]을 따서 린디 합, 즉 Lindy Hop 이라고 얘기를 하여 그 이후부터 Lindy Hop 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스윙음악에 체계적으로 춤을 춘 것은 화이티스 린디하퍼스라는 흑인 댄스 팀이었고, 그때 댄서이며 안무가가 바로 프랭키 매닝이기 때문에, 린디홉을 만든 사람이 프랭키 매닝이고 결국 프랭키 매닝이 스윙댄스의 아버지라고 한다.(정확히 얘기하자면 프랭키 매닝이 만든 것은 아니다)

오리지널 린디호퍼들이 추는 린디 홉은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레벨이라서, 현재 미국 린디홉 챔피언도 그 스텝들을 완벽히 해낼 수가 없다고 한다.

1930년대 중반에는 스윙댄스가 흑인만이 아닌 백인 그리고 Hispanic 인구에게도 확산되면서 Lindy Hop 에서 좀더 쉽고 접하기 쉬운 East Coast Swing (Jitterbug) 으로 변형이 되었다. 이때 생긴 East Coast Swing 의 영향으로 지금 많이 추는 One Step Swing, Two Step Swing 그리고 Three Step Swing 이 생겼다.

80년대 미국서는 지러벅이 자이브, 린디홉, 찰스턴 등의 스텝을 포함시키면서 동해안 스윙 (East Coast Swing) 으로 발전했고 다른 지역에서는 서해안 스윙 (West Coast Swing) 이 독립적으로 발전했는데 동해안 스윙처럼 인기는 끌지 못했다. 찰스턴은 폭스트롯과 결합해서 퀵스텝 (원래이름은 찰스턴 리듬의 폭스트롯 퀵스텝이었다고 함) 이라는 춤을 낳았고 역시 거의 사라졌다.

스윙댄스는 스윙재즈를 기반으로 주로 춤을 추었는데 초창기에는 칙웹 (Chick Webb),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 등 흑인 뮤지션외에도, 백인 스윙뮤지션들도 등장해서 글렌 밀러, 아티 쇼, 토미도시, 지미도시 형제, 베니 굿맨 등이 백인 풍 스윙 재즈를 만들었고, 이 스윙재즈유행했던 시대가 Swing Era 혹은 Swing Renaissance로 불리울 정도로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정점에 달했다.

당시 스윙댄스는 전 세계로 전파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스윙재즈음악과 함께 유럽 등지로 일부 흘러들어간 것 같다. 미국외에 스윙댄스 관련 일화로는, 유럽은 당시 독일과 전쟁 중이었는데 나찌독일하에 춤(?)을 추며 나찌즘에 대항하던 스윙댄서들의 이야기인 '스윙 청소년'의 일화, '독일 춤과 오락 악단'일화만 일부 남아 흑역사로 존재 하는듯 하다. 관련 영화로 스윙키즈(1993)가 있다. 확실한건 Swing Era의 스윙댄스는 미국 본토 안에서 거의 소비된 문화상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스윙은 1940년대 비밥혁명을 일으킨 찰리 파커의 음악들이 선풍적인 음악을 끌었고 1950년대 로큰롤도 급부상 상승하면서 서서히 없어져, 1960년대에는 거의 사라졌다.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당시 스윙댄서들은 찰리 파커를 천하의 나쁜놈으로 기억하며 치를 떨곤 했다. 스윙댄스의 몰락은 음악의 변화외에도 2차 세계대전에 따른 전쟁분위기와 금주법, 나이트클럽 운영을 제한하는 정책 등도 영향이 컸다. 당시 각종 경영난을 겪던 사보이 볼룸도 50년대에 폐업했는데, 당시 스윙댄서 였던 프랭키 매닝과 노르마 밀러 등도 우리들이 춤출 곳이 사라져 생계를 위해 댄서외 다른 길을 알아봐야 했다고 회상했다.

초기 지터벅(Jitterbug)은 이게 나중에 자이브로 변해갔으며, 미국의 지터벅이 일본에 상륙해 트롯트와 엔카와 결합된 변종 춤 '지루박'으로 변해 다시 한국에 수입되었고 주로 다소 고령층들이 주로 즐기며 성인 사교댄스 장에서 시연되고 있다. 여기서 부턴 스윙댄스와는 거리가 다소 멀다.

한편, 린디홉의 인기가 사라진 후 린디호퍼들은 거의 춤을 떠났고 프랭키 매닝도 거의 30년 이상을 춤을 추지 않았다.

2. Neo Swing Era와 스윙댄스

20세기 말에 와서야, 린디합, 찰스턴이 다시 살아났다. 어느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현재 린디홉 챔피언 커플이 예전에 영화를 보다가 (Hellzapoppoin') 거기서 프랭키 매닝이 안무한 화이티의 린디호퍼들의 오리지널 린디홉을 봤다. 가공할 춤실력에 놀란 이들이 뉴욕 전화번호부를 뒤져보니 딱 한 명의 프랭키 매닝이 있었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서 "혹시 춤추는 분이세요?" 하니까 80대 할아버지가 "오래 전에 춤을 추기는 했었는데..." 이렇게 해서 프랭키 매닝이 다시 발견되었고. 이 커플[2]의 요청으로 오리지널 린디 홉을 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복귀한 노령의 프랭키 매닝은 전 세계를 돌며 강습을 했는데, 사실상 스윙댄스가 전 세계로 전파된건 이때 부터이다.

1990년 초반에 미국 California 와 Sweden,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이 시대를 주로 Neoswing Era (새로운 스윙의 시대)[3] 라고들 한다. 대표적인 댄서로 스웨덴 댄서팀인 리듬 핫샷이 있으며 이후 할렘 핫샷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전 세계적인 댄서팀으로 급부상헤 된다. 이 댄서팀은 프랭키 매닝과 화이티스 린디하퍼스의 옛날 안무 동작을 거의 재현해 다시피 했으며, Bugle Call Rag라는 스탠다드 스윙음악에 맞춰 춘 안무 영상이 스윙댄서계를 흔들어놓았다. 이후 할렘 핫샷과 미국, 유럽 지역의 스윙댄서들은 스웨덴 허랭 지방에 허랭댄스캠프 라는 세계적인 스윙행사도 만들어냈다.

네오스윙 음악쪽에서는 1980년 초에 Rockabilly 라는 Rock and Roll 음악이 Stray Cats 과 같은 음악 그룹들 이 생기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 neoSwing 음악은 30-40년대 빅밴드 음악 과 50년 대의 Rock and Roll, 80-90 년대 의 rockabilly 와 90년대의 SKA 음악을 혼합한 형태가 많으며 콘트라베이스와 금관악기 족에 전자기타 키보드에 록큰롤 과 비슷한 강력한 보컬이 들어간 음악이 많다. 관련 네오스윙 뮤지션/밴드에는 Big Bad Voodoo Daddy, The Brian Setzer Orchest Squirrel Nut Zippers, The Brian Setzer Orchestra 등이 있다.

3. 대한민국의 스윙댄스

앞서 설명한대로, 미국 지터벅(Jitterbug), 블루스(Blues), 발보아(Balboa)등이 일본 트로트, 엔카와 결합한 변종 춤 '지루박', '부르쓰' ,'잔발 '등으로 한국 성인 사교댄스장에 흘러들어 현재까지도 성인들에게 유행하고 있으나 사실상 오리지널 스윙댄스와는 거리가 있으며 보급 시점 또한 논란이 많다. 그러나 스윙재즈음악은 전 세계에 수출되어 미8군 멀게는 일제강점기부터 각종 코메디 방송, CF등에서 인용될 정도로 한국인에게도 어느정도 친숙한 음악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서울)에 굉장히 많은 댄스홀과 스윙재즈 밴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추었던 춤이 정확한 스윙댄스인지는[4] 정확히 나와 있는 자료가 남아있는게 별로 없으며, 친일계열의 부유층들과 일본인둘이 중국 상해와 만주 등지에서 스윙재즈 악보와 악기 등을 들고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의 스윙밴드와 춤에 대한 내용은 재즈 자료 참조)

스윙 댄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Neo Swing Era가 시작된 이후인 1999년 12월 나혜석이 보라매공원 체육관에서 스윙무료공개강습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다. 당시 댄스스포츠살사 등 댄스 동호인들의 인구는 어느정도 형성되어 있었던 시기였으나 스윙댄스의 인구는 극히 미미한 상태였다.

보라매 공원의 강습 이후 2000년 5월 보라매 공원에서 나혜석의 강습을 듣던 몇몇을 주축으로 스윙키즈라는 첫 스윙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후 스위티스윙 동호회가 생김으로서 더 많은 스윙동호인들이 생겨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01년 1월 스윙키즈에서 개설한 스윙스쿨의 무료스윙 공개강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스윙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 스윙댄서들은 한국에서 관련 정보를 접하기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외국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구해 늘어지도록 보면서 스텝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과 유튜브의 등장으로 공부할 자료가 늘어나면서 심지어 스윙댄스의 하위 장르인 발보아, 블루스 강사들과 댄서들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음주가무의 민족인 한국 답게 한국은 엄청나게 많은 스윙빠, 동호회가 생겨나 주 7일 내내 출빠가 가능하고 전 세계적으로 스윙씬으로썬 거의 최고로 손꼽힌다고 한다. 말이 그럴 것이 외국에서는 1주일에 한번 아주 멀리 차를 타고 가야 동호회를 접할 수 있는등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다.

결국 장족의 발전인데 아예, 국내에 해외 유명 댄서를 강사로 초빙하거나, 허랭댄스캠프, 린디포커스, 사보이 컵, 캠프 헐리우드등 국제 행사에 국내 댄서들이 참가하는 등 국제교류도 활발하다.

3.1. 국내 스윙 클럽(스윙빠)

현재 국내에서 스윙을 즐기는 인구는 대략 50,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스윙댄스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스윙빠라고 하며 스윙바 대관 중심으로 동호회가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스윙댄스를 출 수 있는 곳 다수가 대한민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규모 동호회가 운영하는 곳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다) 생겨났다.
스윙댄스 동호회와 스윙댄스 강습 등 많은 스윙 관련모임/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동호회에서 더 나아가 스윙댄스 전문 법인단체로 <스윙잇>과 <딴따라댄스홀>이 설립되었으며, 개인사업자 댄스학원으로는 <트리플 크라운 스윙아카데미>이 개업하였다. 그러나 다른 춤과는 달리 '협회'와 표준화된 '교본'이 없으며 학원 중심 체계가 아닌 동호회 중심의 체계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스윙댄스는 상당히 자유로운 춤이다.

4. 기본매너

1) 에티켓은 모든 사람이 춤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니 주의를 기울여라.

2) 모든 사람에게 춤을 청하라. 저녁 내내 오직 한 파트너만 독점하지 마라.

3) 오늘의 초보가 내일의 훌륭한 댄서가 된다. 그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그들과 춤을 춰라.

4) 누군가 당신에게 춤을 청했을 때,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거절하지 마라. 춤을 거절했다면, 당신은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다른 사람과도 춤을 춰서는 안된다.

5) 플로어에서는 다른 커플들에게 신경써라. 부딪치거나 발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라.

6) 당신의 파트너가 하지 못하는 동작들은 피하라: 당신 파트너의 레벨에 맞춰 춤을 춰라.

7) 당신의 파트너가 스텝이 틀렸다고 해서 절대로 비난하지 마라.

8) 플로어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가르치려 드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9) 항상 웃음을 잃지 말고, 온화하게, 품위있게, 그리고 친절하게 행동하라.

5. 용어

6. 국내외 주요 행사

단일 페이지로 관리하는 곳도 있지만, 해가 넘어갈 때 마다 새로 페이지를 만들어 참가 등록을 받는 곳도 있다. 옛날 페이지로 연결될 경우 구글링이 필요하다.

글로벌 - ILHC (International Lindy Hop Championship) http://www.ilhc.com/
스웨덴 - 허랭댄스캠프 https://www.herrang.com/
스웨덴 - 스노우볼 http://www.thesnowball.se/
미국 - Frankie 100 http://frankie100.com/ (Frankie 105, 110, 115는 미계획, 공지참조)
미국 - 린디포커스 http://www.lindyfocus.com/
미국 - 캠프 할리우드 http://www.camphollywood.net/
미국 - 캠프 지터벅 https://www.campjitterbug.com/
영국, 프랑스 - 사보이컵 http://www.savoycup.com/
중국 - 그레이트월 스윙 아웃 http://www.greatwallswingout.com/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 - Sea Jam https://www.facebook.com/seajam.sg/
홍콩 - 홍콩 스윙 페스티벌 https://hkswingfestival.wordpress.com/
일본 - 오사카 스윙 익스체인지 http://ole2017.mechakuchaswing.com/
한국 - Camp Swing It, KLHC http://www.campswingit.com/
한국 - 제주스윙캠프 https://www.jejuswingcamp.com/
한국 - Soul at Seoul https://soulatseoul.com/
한국 - 서울린디페스트 https://www.facebook.com/seoullindyfest/
한국 - 코리아발보아위크앤드 http://www.koreabalboa.com
한국 - 어센틱재즈위켄드 https://www.authenticjazzweekend.com/

[1] Lucky Lindy 라 불리었다.[2] 스티븐 미첼과 에린 스티븐스. 후에 스티븐 미첼은 10대 성추행으로 춤판에서 매장당했다.[3] Swing Revival (스윙댄스의 부활기) 라고도 한다.[4] 1930년대에 정통 린디합, 찰스턴 등이 한반도에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Swing Era때 의 스윙댄스는 미국 본토와 멀게는 기껏해야 스윙 청소년이 등장한 유럽 일부 지역까지만 전파되었을 것이다. 만주, 일본 등에 스윙댄스가 보급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스윙재즈음악에 맞춰 왈츠, 폭스트롯 혹은 러시아 춤곡을 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5]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업 종료[6] 2023년 방배의 시대를 끝내고 남부터미널 인근으로 빅애플바가 이전한다.[7] 코로나19 시국에 신림 부기우기 스윙바가 영업을 종료하면서 스윙패밀리 동호회가 빅애플바로 이동했다. 빅애플바에 있던 기존 '애플스윙'동호회는 영업을 종료했다.[8] 코로나19 영향으로 영업 종료[9] 코로나19 시국의 영향으로 인해 홍대입구의 시대를 보내고, 2023년 가을 신촌 인근으로 활동기반을 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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