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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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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64[1] /
ニンテンドウ 64
[2]
Nintendo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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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44da3><colcolor=white> 개발 닌텐도
유통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현대전자
발매일 파일:일본 국기.svg 1996년 6월 23일
파일:미국 캐나다 국기.svg 1996년 9월 29일
파일:유럽 연합 깃발.svg 파일:호주 국기.svg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1997년 3월 1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년 7월 19일
파일:브라질 국기.svg 1997년 12월 10일
단종일 2002년 4월 30일
가격 파일:일본 국기.svg ¥25,000 → ¥16,800 → ¥14,000[3]
파일:미국 캐나다 국기.svg $199.99 → $149.99 → $129.99 → $99.99[4]
판매량 파일:세계 지도.svg 3,293만 대
파일:일본 국기.svg 554만 대
파일:미국 캐나다 국기.svg 2,063만 대
홈페이지 미국 일본 중국

1. 개요2. 상세3. 사양
3.1. CPU3.2. 메모리와 게임 매체3.3. 리얼리티 코프로세서3.4. 그 외
4. 독특한 컨트롤러5. 주변 기기6. 기타
6.1. 성공했나, 실패했나?6.2. 롬 팩의 문제
7. 게임 목록(가나다순)8. 에뮬레이션 현황
8.1. 에뮬레이터를 이용하려면
9. 기타

[clearfix]

1. 개요

닌텐도에서 슈퍼 패미컴의 후속기로 출시한 거치형 게임기다. 경쟁 기종은 세가 새턴, 플레이스테이션. 약칭은 N64, ロクヨン(로쿠욘).[5]

한국에는 현대전자에서 1997년 7월 19일에 '현대 컴보이 64'라는 이름으로 정식 판매했으나 판매 실적이 저조했을 뿐만 아니라 얼마 못 가서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회사 내부의 상황까지 좋지 않아 1999년에 사업을 중단했다. 빠르게 사업을 접었기 때문에 홈페이지와 광고 방송도 없다. 슈퍼 패미컴 때처럼 게임 내용은 북미판, 게임 카트리지 형태는 일본판과 같다.

2002년 4월 30일 생산이 종료되었다. 최종 판매량은 3,293만대이며,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1,191만 장(36%)의 슈퍼 마리오 64다.

2. 상세

개발 코드명은 '프로젝트 리얼리티'로서 실리콘 그래픽스에서 제안한 것이다. 본래는 세가와 함께 개발하기로 했지만 일본 세가 측이 이를 걷어차 버렸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 토머스 칼린스키는 이를 대신 이어받을 사람이 있다며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소개해 주었고, 이것이 닌텐도 64로 이어졌다고 회고록에 남겼다. 이 주장에 대해 닌텐도는 부정했다. 실리콘 그래픽스가 세가 대신 닌텐도를 선택한 것은 칩의 기술에 대해 세가가 독점권을 요구한 반면, 닌텐도는 비독점적이었기 때문에 실리콘 그래픽스에게 닌텐도가 좀 더 매력적인 사업 파트너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닌텐도의 지원 하에 울트라 64의 데모 격으로 레어미드웨이와 협력해 닌텐도 64 기반 아케이드 기판을 만들어(당시에는 울트라 64 명의), 그 기판에 킬러 인스팅트를 제작해 닌텐도 64로의 완전 이식을 전제로 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게임을 구동하면 닌텐도와 울트라 64의 로고가 번쩍번쩍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아케이드 기판은 남코의 시스템-플레이스테이션 처럼 호환 관계가 아닌 그저 MIPS R4600 CPU를 사용하며 닌텐도 64의 파일 포맷과 데이터 구조를 사용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판이하게 다른 기판이었다. 그래서 그 게임은 SNES로도 이식되기도 했다. 비슷한 경위로 제작된 크루징 USA 게임 역시 울트라 64 기판을 사용한다고 알려졌지만 미드웨이 V 유닛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실제로는 최강하부쇼기를 제작한 당시 닌텐도의 실질 세컨드파티였던 SETA의 Aleck 64라는 아케이드 기판이 닌텐도 64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게임은 약 10여종 대부분 퍼즐류만 나왔다.

아무튼 제임스 클라크 실리콘 그래픽스 사장이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사장을 만나 개발 계약을 맺어 1993년 초부터 닌텐도 64 개발을 시작했다. 1993년 8월 23일,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개발을 위해 닌텐도와 실리콘 그래픽스가 64비트 MIPS CPU를 넣어 250달러 미만의 게임기를 개발하기로 상호 계약을 맺었다고 언론에 보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닌텐도 64가 CD가 아닌 롬 카트리지 기반 시스템으로 개발하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게임 언론을 중심으로 수많은 유저들끼리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에 대해 하워드 링컨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사장은 롬 카트리지는 CD보다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속도가 빨라 쾌적하기 때문에 탑재한 것이라 해명하기도 했다.

실리콘 그래픽스는 닌텐도 64를 위한 CPU인 MIPS R4300i 와 미디어 프로세서인 RCP를 개발한다. CPU는 1992년에 MIPS를 인수했기 때문에 금방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지만 RCP를 개발하는 프로젝트 리얼리티 팀은 소프트웨어와 칩 디자인을 처음부터 해야 했으며 팀원을 모으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1993년 당시 실리콘 그래픽스의 10만 달러도 넘던 최고급 워크스테이션이었던 Onyx의 그래픽과 음악 생성 장치를 250달러짜리 게임기용 칩에 담는다는 프로젝트에 실리콘 그래픽스 내부에서조차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반응했다. 초기에 만든 칩은 너무 커서 크기를 줄이는데 고심했지만 먼저 개발을 완료하고 합류한 CPU 팀의 도움을 받아 1995년 4월에 1.0 완성, 1995년 8월에 2.0 버전을 완성하고 이후 발매 직전까지도 대량 생산을 위해 계속 설계를 가다듬었다고 한다.

1994년 6월 23일, 닌텐도는 이 게임기의 가명을 <울트라 64>로 명명했다. 그리고 닌텐도는 실리콘 그래픽스, 레어, 타임워너, 어클레임 등등의 엘리트 게임 회사들과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를 두고 닌텐도는 <드림팀>이라 불렀다. 그리고 게임기의 목업과 롬 카트리지 디자인 등을 그 즈음에 공개했다. 1994년 10월 15일, 초심회 전시회에서는 데모 영상도 공개했다.
실리콘 그래픽스가 공개한 닌텐도 '울트라' 64 테크 데모 영상

개발 초기 출시 목표일은 1995년 연말이었다. 그러나 1995년 5월 5일, 닌텐도에서 울트라 64의 발매를 1996년 4월로 연기했다.[6] 당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 하워드 링컨은 이에 대해 게임 개발자들이 새로운 기계를 배우고 적절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연기가 필요하다고 해명하면서 1995년 연말까지 충분한 게임을 준비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실제로 레어의 직원조차 실리콘 그래픽스에 파견되어 사용법을 배웠어야 할 정도로 닌텐도 64의 개발 난이도는 높았으며, 닌텐도 64 발매 후 3개월 동안 그 어떤 게임도 발매하지 않았고 1996년 한 해 동안 고작 10개의 게임만 발매했다.[7] 대신 1995년 9월 교토의 초심회 전시회와 1996년 1월 라스베이거스의 가전 박람회(CES)에서 플레이 가능한 데모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1995년 8월 10일, 닌텐도는 언론을 통해 공식 명칭을 'NINTENDO64'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가나 표기는 'ニンテンドウろくじゅうよん'. 약칭은 64 ロクヨン으로 닌텐도 육십사(육사)라는 간단한 뜻. 닌텐도 64라는 이름은 훗날 MOTHER 시리즈의 개발자이면서 카피라이터이기도 했던 이토이 시게사토의 제안을 채택한 것임이 알려졌다.[8] 그리고 1995년 9월 14일 초심회 전시회에서 최초로 플레이 가능한 슈퍼 마리오 64와 커비볼 64[9]를 전시했고, 게임 컨트롤러와 2만 5천엔의 가격 및 1996년 4월 23일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닌텐도 64의 주변 기기, 64DD도 개발하고 있음을 이날 최초로 공개했다.

그러나 1996년 3월 7일, 닌텐도는 다시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은 1996년 6월 23일, 북미는 9월 30일로 발매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하워드 링컨은 연기 이유에 대해 닌텐도 64의 잠재 수요에 비해 충분한 양의 생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10] 대신 기다림에 지친 유저들을 위해 광고를 했는데, 북미에서는 "Is it worth the wait? Only if you want the best!(기다릴 가치가 있냐고요? 최고를 원한다면 있죠!)"라는 구호로 광고를 펼쳤다.

결국 1996년 6월 23일 일본을 시작으로 지역별로 단계적으로 발매했다. 일본에서는 '게임이 바뀐다. 64가 바꾼다.'[11]는 광고 구호로 발매했다.

미국에서는 본래 1996년 9월 30일, 250달러의 가격으로 발매하려고 계획 했었다. 그러나 새턴, 플레이스테이션과의 경쟁을 위해 발매도 하기 전에 가격을 199달러로 낮췄고, 발매일 역시 9월 30일은 월요일이라 애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모들의 항의로 인해 9월 29일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발매일이 채 되기 며칠 전인 9월 26일부터 일부 양판점이 무단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자 너도 나도 판매를 개시했고 닌텐도 64는 미친듯이 팔려나가 새턴이 300일, 플레이스테이션이 90일 걸렸던 50만 대 판매를 하루 만에 달성했다. 본체에 패드 하나, 번들로 끼워주는 게임조차 없었음에도 달성한 기록이었다.

<슈퍼 캐슬배니아 4>, <슈퍼 메트로이드>[12] 등과 같이 슈퍼 패미컴용 게임마다 형용사 '슈퍼'를 붙인 것처럼, 닌텐도 64용 게임 이름 뒤에 '64'를 붙이는 것이 암묵의 룰이었다. 닌텐도 게임은 물론이고 <스타크래프트 64>, <메가맨 64>같이 게임 내용과 무관하게 여기저기 게임 이름마다 뒤에 '64'가 붙었다.[13] 이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이 버릇은 GBA(어드밴스), 닌텐도 DS(DS), Wii, 닌텐도 3DS(3D), Wii U(U)에서도 이어졌다.

2016년에 20주년을 맞았다.

3. 사양

모델명 NUS-001
CPU NEC VR4300 64비트 93.75 MHz CPU[14][공정]
보조 프로세서 실리콘 그래픽스 리얼리티 코프로세서 64비트 62.5 MHz[공정]
리얼리티 시그널 프로세서와 리얼리티 디스플레이 프로세서로 구성
메모리 4.5 MB 250 MHz(실효 클럭 500 MHz) Rambus DRAM
미디어 롬팩 카트리지 8 MB~64 MB

파일:FXt3ZvvJElGEkgQF.jpg
닌텐도 64의 내부. 칩셋 위에 방열판이, 그 위에 회로 보호 장치가 있으며, 또 그 위에 크로스바 방열판이 있다. 10개의 나사로 고정되어 있다.

3.1. CPU

닌텐도 64의 CPU VR4300은 실리콘 그래픽스의 Onyx 워크스테이션에 1~4개가 들어간 MIPS R4400을 저렴하게 만든 R4200을 다시 저렴하게 만든 R4300i을 NEC가 라이선스 받아 제조한 제품명이다. 닌텐도 64에 사용된 것은 거기서 클럭을 93.75 MHz로 조정한 커스텀 버전이다. 122MIPS로 수치상으로는 플레이스테이션의 4배에 달하는 속도이다.

R4300i는 MIPS III 아키텍처로 플레이스테이션MIPS I 아키텍처 CPU에 비해 2세대 더 앞서있긴 한데 닌텐도 64 SDK의 컴파일러는 MIPS I 수준의 명령어만 생성했다고 한다. 가정용 게임기 최초의 부동 소수점 연산을 할 수 있었던 64비트 CPU였다. R4300i는 R4200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외부 버스를 32비트로 줄였고 CPU가 리얼리티 코프로세서에 의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실제 코드는 대부분 32비트 기반으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그것 자체로는 큰 문제는 없었다.

R4200 시리즈의 부동 소수점 연산은 R4400의 부동 소수점 장치(Floating Point Unit, FPU)의 가수부 연산을 정수 연산 데이터 패스에 통합하는 통합 데이터패스를 도입했다. FPU는 ALU에 물리적으로 통합되어 논리 코프로세서(cp1)로만 있기 때문에 지수부 연산은 별도의 데이터패스로 실행되더라도 가수부 연산은 정수 연산과 동일한 하드웨어로 실행하기 때문에 결국 양쪽 연산이 서로 stall을 발생시킨다. 때문에 부동소수점 연산 성능은 떨어졌지만 당시 MIPS는 이를 통해 트랜지스터 수를 줄여 저가, 소형화, 저전력임에도 고성능을 실현했다고 주장했다.

3.2. 메모리와 게임 매체

게임 매체로 기존의 마스크롬을 사용했으며, 최대 512 Mbit(64 MB)까지 지원하나 여기까지 사용한 게임은 바이오하자드 2와 포켓몬 스타디움 정도이며 보통은 아무리 많아도 256 Mbit이다. 카트리지 용량 제한 문제 때문에 초반에는 게임 데이터를 압축된 형태로 보관했다가 메모리에 올려 압축을 해제한 다음 사용했으나, 이후 스트리밍 압축 기술을 도입해 게임 데이터를 마스크롬에서 직접 불러들이는 등 주 메모리를 좀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다.

롬팩 게임기임에도 562.5 MB/s 대역폭의(이는 130여 MB의 플레이스테이션 대역폭의 4배에 달한다) 4.5 MB의 램버스 대용량 메모리를 장착했고, '하이레조 팩'으로 불리는 메모리 확장팩을 장착하면 9 MB까지 늘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17] 플레이스테이션의 메인 메모리가 2 MB(기기 자체의 메모리 총 용량은 3.5 MB), 세가 새턴의 확장 메모리가(확장 메모리를 제외한 기기 자체의 메모리 총 용량은 4.5 MB) 4 MB임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러나 UMA(통합 메모리 아키텍처)를 선택했는데, 현대와 같이 AMD HSA 기술 같은 다른 프로세서끼리 메모리 주소를 공유시켜 줄 수 있는 기능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CPU와 GPU의 할당 영역을 정해서 사용했고, 그랬기 때문에 대용량의 장점은 반감되었다. 거기에 램버스 DRAM은 직렬 구조라 램 용량이 클수록 레이턴시가 줄어들었는데 당연히 4MB는 택도 없는 저장용량이라 레이턴시가 끔찍하게 높았고(새턴의 SDRAM은 34ns, 닌텐도 64의 램버스 DRAM은 640ns), CPU가 메모리에 직접 접근이 불가능해 리얼리티 코프로세서는 요청을 처리하느라 3D 그래픽 처리 파이프라인이 정지하기(stall) 일쑤였다.

메모리가 램버스 DRAM이기 때문에 확장 슬롯을 열어보면 터미네이터(종단 장치) 역할을 하는 점퍼팩이 장착되어 있다.

3.3. 리얼리티 코프로세서

닌텐도 64는 CPU 이외의 모든 필요한 기능을 리얼리티 코프로세서(RCP)에 담았다. RCP는 칩 하나에 리얼리티 시그널 프로세서(RSP)와 리얼리티 디스플레이 프로세서(RDP)로 구성되어 있다. 리얼리티 시그널 프로세서는 MIPS R4000 기반 128비트 정수 벡터 행렬 연산 장치(SIMD)이며, 16비트 8행렬로 구성된 정수 벡터 행렬을 연산할 수 있었다. 그래픽으로서는 정점, 광원, Z버퍼 같은 지오메트리 연산과 사운드 처리를 위한 DSP 역할을 했다. 사운드는 ADPCM의 경우 최대 24채널 4비트(PCM 16비트를 1/4로 손실 압축) 48kHz, PCM은 100 채널까지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MP3는 물론이고 100채널 이상의 PCM 사운드를 동시에 처리할 수도 있지만 모든 프로세서 파워를 몰아줘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보다 롬 팩의 용량 때문에 실현하기 어렵다. 그나마 잘 된 예로서는 샘플링 주파수 11KHz 16비트 모노로 15분 가량의 음악을 담은 스타워즈 섀도우 오브 엠파이어 같은 게임이 있다.

RSP는 MIPS 기반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현대의 셰이더 프로세서와 비슷하다. 당시 기준으로 게임기나 PC 등에서 그래픽 처리를 담당하는 칩은 미리 설계된 고정적인 연산만 처리할 수 있는 게 보통이었으나 RSP는 셰이더 프로세서와 비슷하게 프로그래머가 어떻게 연산을 할지 정해주어야 했다. 따라서 프로그래머는 카트리지 롬에 RSP가 실행할 컴파일된 프로그램을 넣어 이를 RSP가 읽어서 처리하도록 했다. 닌텐도는 이를 마이크로코드라고 불렀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3D 그래픽이나 2D 그래픽에 특화하거나 시뮬레이션이나 레이싱 게임에 알맞게 연산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언어는 개발하기에 끔찍하게 복잡하고(horrendously complex)[18] 언어가 난해해 버그글리치가 잘 발생하는데 이것에 대해 디버그 도구도 없었고 문서도 부실했다. 실리콘 그래픽스에서 제공한 표준 마이크로코드 "Fast3D"가 있는데, 개발자들은 이 마이크로코드는 속도 대신 렌더링 정확도에 최적화한 것이기 때문에 성능 저하를 유발해 게임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닌텐도의 '터보3D'라는 코드는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대신 5~60만개의 폴리곤을 낸다고는 알려졌으나 닌텐도는 이를 사용한 게임을 만드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팩터 5, 레어 같이 몇몇 능력 있는 제작사에서는 맞춤형 마이크로코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인디아나 존스 인퍼널 머신에서는 640×480의 고해상도와 실시간 광원을 사용하는 등 역량을 발휘했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었다. 또한 이런 개발 난이도 때문에 코나미와 남코에서는 아무리 해도 슈퍼 마리오 64 같은 것을 만들 수가 없다는 등의 말도 나왔고, 이 때문에 닌텐도가 개발툴이나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등의 루머까지 돌기도 했다.

실제로 개발사들은 상술했듯 개발 문서와 도구의 부실함으로 인해 자신의 게임에 맞춰 RSP 프로그램까지 새로 개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닌텐도 64 게임은 기본으로 제공되는 Fast3D 계열의 마이크로코드를 그대로 사용했으며 현실적으로 닌텐도 64에서 RSP는 사실상 고정 파이프라인 칩이나 다름 없었다.

RDP는 RSP가 계산한 그림을 실제 영상으로 그려내는 렌더링 프로세서 역할을 하고, CPU의 메인 메모리 접근을 지원한다. 최대 640×480의 해상도를 지원했다. 그리고 동시에 텍스처 4개를 처리할 수 있다. 리얼리티 디스플레이 프로세서는 안티 에일리어싱, 트라이리니어 필터링, 원근 보정(Perspective Correction), 세밀도(Level of Detail), Z버퍼, 안개 효과, 환경 매핑 같은 당시의 플레이스테이션은 물론이고 PC에서도 몇 년 뒤의 부두 칩에서나 나오는 고수준의 3D 기능을 제공했다. 원근 보정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처럼 시점을 변환해도 텍스처가 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고급 기능, 특히 Z버퍼 같은 것은 필레이트 성능을 크게 떨어뜨렸다.

또한 텍스처 문제로 개발자들을 괴롭혔다. CPU가 메모리에 접근하려면 RCP를 거쳐야하는 메모리 구조와 램버스 DRAM의 매우 높은 레이턴시 때문에 텍스처는 리얼리티 코프로세서에 내장된 TMEM이라는 4KB 용량의 텍스처 캐시 메모리를 통해 사용해야 했다. 이때문에 텍스처의 용량은 4KB 이내로 맞춰 만들어야 했으며 심지어 닌텐도 64의 기능인 밉맵을 사용하면 그 크기는 2KB로 더 줄어들었다. 이런 문제로 인해 VRAM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플레이스테이션보다도 더 저해상도의 텍스처를 사용해야 했으며[19] 여기에 반강제로 걸리는 안티 에일리어싱컬러 밴딩 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디더링 필터로 인해 더욱 흐릿하게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텍스처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슈퍼 마리오 64는 동화 분위기라는 점을 이용해 캐릭터 그래픽 구성을 텍스처가 아닌 단색으로 구성한 후 고러드 쉐이딩을 이용했다. 이후 개발자들은 노하우를 쌓아 텍스처를 회색조로 만들어 단색을 넣는 방식으로 텍스처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늘리기도 했고, 사전 계산된 멀티 레이어 텍스처링이나, 작은 텍스처를 이어 붙여 큰 텍스처를 표현하기도 했다. 튜록2 같은 게임은 TMEM보다는 느려도 메모리보다는 빠른 카트리지에서 압축되지 않은 64×64 크기의 텍스처를 직접 불러오기도 했고, 말기에 가서는 팩터5 같은 개발사가 고도의 프로그래밍으로 지속적으로 스트리밍하는 기법까지 만들어졌다.

이때 개발자들에게 받은 불만에 대한 피드백으로 게임큐브에서 텍스처 캐시 메모리를 1MB로 늘렸으며, 빠른 대역폭과 레이턴시를 가진 메모리 시스템인 MoSys의 1T-SRAM 기술을 라이선스 받기도 했다.

3.4. 그 외

칩셋이 CPU, RCP, 메모리가 전부였고 2층 기판이라는 간결한 구조 덕분인지 이런 높은 사양에도 25,000엔, 미국에서는 200달러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1996~1997년을 전후로 플레이스테이션도 가격을 비슷한 수준까지 내렸고, 동시 발매 게임인 슈퍼 마리오 64, 파일럿 윙즈 64, 최강하부쇼기가 9,800엔이었던 반면 타사의 CD 게임은 보통 6000엔대 안팎이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닌텐도 역시 게임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도소매상의 이익을 줄였으며, 1997년 정도에 나오는 게임들은 대부분 6,800엔을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디자인은 미국 시장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검은색 본체를 전세계 공통 디자인으로, 게임 패드만 다양한 색상으로 동시에 출시했다. 그러나 애플에서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케이스 디자인의 iMac이 1998년에 발매되고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케이스가 대유행하면서 닌텐도도 다수의 반투명색 본체 모델을 발매했다.

4개의 컨트롤러 포트를 기본으로 채용한 덕분에 파티용 게임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패드만 들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마리오 카트 64, 007 골든 아이,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를 플레이한 것을 추억으로 가진 사람들도 많다.

개발 장비는 초기에 실리콘 그래픽스의 Onyx를 써야 했는데, 그 당시 최소 옵션만 10만 달러가 넘는 초고가 워크스테이션이고 미국에서도 상위급 CG 스튜디오들만 쓸 정도였다. 이 때문에 대기업 이하의 게임 회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되었으며, 이것 역시 서드파티 이탈의 원인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흘러 5천 달러 정도였던 실리콘 그래픽스의 Indigo2 워크스테이션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는 Partner N64라는 장비와 Windows 95 컴퓨터로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나카가와 아츠토모[20]의 말에 따르면 '타사의 게임기가 개발 입문기라면 닌텐도 64는 잘 만들지 않으면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고, 이에 이와타 사토루도 동의했다.[21] 때문에 개발자들에게는 굉장히 불친절한 게임기였다.

결국 닌텐도의 하드웨어 관련 수장인 다케다 겐요(竹田玄洋, 1949~)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닌텐도 64를 만들었을 때, 진보한 게임을 만들려면 기술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판단은 틀렸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최고 속도가 아닌 꾸준한 속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우리는 깨달았다."라며 '반성'한다고 말했다.[22] 이 실패 경험은 이후의 게임큐브와 후속기들의 스펙과 개발 환경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닌텐도 64는 서드 파티의 지원 사격을 받지 못해 북미에 발매한 게임 수는 300여 개 뿐이다. 앞 세대기인 슈퍼 패미컴용이 1,400여 개, 경쟁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용이 3,000여 개의 게임들을 발매한 것을 보면...

4. 독특한 컨트롤러

파일:N64-Controller-Gray.jpg

닌텐도 64의 기본 게임 컨트롤러는 삼지창 모양의 아날로그 스틱을 채용했는데, 이것을 '산디(3D) 스틱'이라 불렀다. 이 특이한 모양새의 컨트롤러는 북미에서는 20세기 말 전자오락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다방면에서 쓰였다. 본격적인 아날로그 스틱의 채용과, 더 향상된 조작감을 제공하는 Z 트리거 버튼, 게임의 조작을 간단하게 만드는 A, B 버튼 두 개 만으로의 한정과 카메라를 다양하게 조작하는 C 버튼 유닛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채용한 것이었고, 소니와 세가는 얼마 후 '아날로그 컨트롤러'[23], '세가 멀티 컨트롤러'[24]라고 명명한 아날로그 스틱 컨트롤러를 출시한다. 경쟁자들은 그것들을 일단 내놓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이것을 가지고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으나, 닌텐도는 슈퍼 마리오 64를 하드웨어와 동시에 개발하면서 이 아날로그 스틱을 십분 활용해 3D 게임 조작 표준의 기틀을 만들었다. 나이츠 인투 드림즈 역시 아날로그 활용과는 거리가 멀었고 플레이스테이션에서도 아날로그 스틱을 제대로 사용하는 게임은 나오지 않았다.

개발 초창기에는 슈퍼패미컴의 패드에 아날로그 스틱과 Z 트리거를 붙인 프로토타입을 사용했다고 한다.

3D 게임 조작 표준의 기틀을 만든 컨트롤러였음에도 아날로그 스틱을 하나만 장착했다는 태생적 한계와[25] 닌텐도 스스로의 소극적 활용, 무엇보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시장 지배자와 엑스박스의 선전 등의 요인으로 이후 업계를 대표하는 컨트롤러로는 남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닌텐도 64 컨트롤러의 복각 또한 발매로부터 25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최신 기종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게임 패드의 아날로그 스틱은 가변 저항 방식이지만, 닌텐도 64의 3D 스틱은 마우스처럼 레이저를 사용하는 광학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축이 가늘어져서 축이 파손되는 경우가 잦다.

여담이지만 Wii의 눈차크가 이 컨트롤러의 가운데 부분만 뚝 떼어놓은 디자인이다.

5. 주변 기기

홈페이지

6. 기타

6.1. 성공했나, 실패했나?

3D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 중에서 닌텐도 64 시절의 마리오젤다로부터 아무 것도 빌려온 것이 없다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 가장 극악 무도하면서도 미국적인 것, 질문과 답변: Grand Theft Auto V를 만든 락스타 게임즈의 댄 하우저[33], 2012년 11월 10일 뉴욕 타임스 개제 #[34]

적어도 북미에서는 수많은 명작과 파티용 게임을 보유한 덕분에 2000년대까지도 많은 사람이 즐겼고, 마치 메가 드라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롤플레잉 같은 것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던 미국인들에게 크게 사랑받으며 플레이스테이션 못지 않게 쿨한 게임기로 남았다.

미야모토 시게루의 말에 따르면, 일본유럽 시장에선 에둘러서 망했다고 표현했으나 미국 시장에서 올린 실적 덕분에 비즈니스로서 성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슈퍼 마리오 64, 마리오 카트 64,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 007 골든 아이, 반조-카주이 시리즈, 스타폭스 64,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동키콩 64, 디디콩 레이싱 등 신규 히트작이 북미 시장에서 대박나면서 닌텐도의 명성이 굳건함을 과시했고, 밀리언셀러 또한 40여개를 배출했다.

일본에서도 흥행 자체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세가새턴에 밀렸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완전히 망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일본에서도 닌텐도 64를 기억하는 현지 팬들은 그렇게 적은편이 아니다. 게임보이와 포켓몬스터 IP의 전성기 효과로 닌텐도의 인지도가 오른 것도 있었지만 그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는 관심을 가질만한 타이틀이 있었기에 꽤나 인기가 많았고 CM도 공들여서 꽤나 챙겨주었기 때문에 닌텐도 IP 자체의 위상으로도 그리 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물론 서드 파티의 부진, 슈퍼 패미컴에 비하면 흥행성이 상당히 부실한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흥미를 돋구는 기기였던건 사실.
소니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닌텐도는 그 경쟁에서 뒤쳐졌다. 아키하바라에 가보면 닌텐도 64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 닌텐도 사내연설에서 야마우치 히로시, 1997년 6월 아사히 신문 개제.
그러나 북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에 입지를 빼앗기고 심지어 일본에서는 세가 새턴보다도 적게 팔리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기기는 전 세계에 3,293만대를 보급하고 타이틀은 200여개[35]에 그쳤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은 1억대를 팔아치웠고 3,000여개의 타이틀을 발매했다는 점을 비교해보면 패미컴슈퍼 패미컴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위치에 있던 닌텐도가 그 지위를 상실하고 언더독으로 전락한 것만으로도 심각한 실패로 받아들일 만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선 3D 과도기에 고급 기술을 너무 이르게 도입한데다가, 닌텐도의 엔지니어도 마찬가지지만 게임기에 대한 경험이 적었던 실리콘 그래픽스 역시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골든 아이를 만든 레어조차도 개발 단계에서 반 년 정도 실리콘 그래픽스에 인력을 파견해 노하우를 습득해야 했을 정도인데, 이러한 하드웨어 개발 지연 상황에서 제대로된 개발 도구나 라이브러리 같은 것이 갖춰질리 만무했다. 이는 제작자의 개발기간과 개발비 증가로 이어졌으며, 많은 서드파티들이 학을 떼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새턴으로 가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더욱이 닌텐도는 조제남조, 소수정예, "어린이들에게 좋은 게임을 돌려줘야만 한다"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서드파티를 짓눌렀으며 정작 그렇게 나온 게임들은 유독 쇼기나 마작, 혹은 스포츠 게임들이 많았고 이에 질린 서드 파티들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 이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마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몽땅 짐을 싸서 떠나버리고 만다. 일본 시장에서 인기가 좋았던 RPG가 거의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패권을 내준 것만큼이나 닌텐도에게 아픈것은 패미컴슈퍼 패미컴 시절 동안 여러 횡포를 저지른 것 때문에[36] 수많은 서드파티를 소니와 세가에게 빼앗겼다는 점이다. 특히나 소니에서 개발사 친화적인 저렴한 라이선스비와 개발 환경 지원을 통한 서드파티 포섭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발사에게 구애를 했기 때문에 다들 솔깃했다.

그리하여 그간 쌓인 원한과 소니의 유혹때문에 먼저 등을 돌린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서 철권 시리즈, 에이스 컴뱃 시리즈, 릿지 레이서 시리즈 같은 초 히트작을 개발해내며 플레이스테이션 성공에 기여했고, 패미컴 시절부터 양대 국민 RPG였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닉스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스퀘어마저 닌텐도에 등을 돌린 것은 큰 문제였다. 그나마 소수나마 N64에 출시한 서드파티 회사들 중에서도 코나미메탈기어 솔리드, 사일런트 힐, 캡콤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디노 크라이시스 시리즈 같은 초 히트작들을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출시하는 등 닌텐도 진영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스퀘어의 이적이 결정되며 그때까지 눈치만 보고있던 수많은 중소 개발사도 너나 할 것 없이 배를 버렸고, 닌텐도 64로는 게임이 정말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의 포켓몬스터의 흥행 등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매출은 오히려 상승했으니 닌텐도 입장에서는 버릇이 잘못 들만도 하다.

결국 이 시기를 기점으로 '닌텐도 게임기는 닌텐도 게임 전용'라는 이미지가 생겨버렸으며, 이러한 인식은 닌텐도 64 이후 30년이 다 되어가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신 기기인 Nintendo Switch조차도 최다 판매 게임 20개 중 19개가 거의 닌텐도 제작 게임이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업보가 불러온 서드파티들의 외면, 어렵고 불친절한 개발 환경, 너무 늦은 출시와 같은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플레이스테이션에게 패권을 내준 비운의 기체지만, 여러 개의 명작들을 배출해 후대의 게임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성공과 실패가 혼재되어 있는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아직 보따리 내수품과 현대 정발판이 혼재하던 시절이었으며, 위의 열거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플스의 인기가 이미 대세였기에 1997년 가을을 기점으로 본체 가격이 16만원까지 폭락했다. 대략 32~35만원이면 게임 소프트 세개와 추가 컨트롤러를 구입할 수 있었다. 코나미에서도 실황 축구를 정발하는 등 제법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1999년을 끝으로 시장에서 인기가 사실상 전멸했으며, 소수의 동호인들을 중심으로만 인기를 얻었다.

6.2. 롬 팩의 문제

스퀘어가 지향하고 있는 대용량의 화상이나 음성을 처리해서 축적하기 위해서는 CD-ROM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가격적인 면에서도 종래의 마스크 롬(카트리지)으로는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실현 불가능하다.
- 사카구치 히로노부 독점 인터뷰, 주간 패미통 No.376, 1996년 3월 1일호, p110~111 개제

요약하자면 억측과는 달리 닌텐도의 선택에는 합리적인 근거와 그를 통해 구현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나 그러한 선택은 시대의 요구 방향, 장점의 극대화, 제약 사항을 극복하는 통찰력 등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닌텐도의 게임기는 진작부터 롬 카트리지의 용량 한계로 인한 개발에의 압박이 생겨났고, 닌텐도 역시도 진작부터 CD-ROM 프로젝트를 개시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를 전후해 이미 멀티미디어 붐이 일며 CD의 대용량을 활용해 고품질 음성과 동영상을 채용하는 흐름이 생겨나 차세대 게임기에서도 CD-ROM을 당연히 채용하리라는 기대가 만연했다. 그러나 닌텐도는 그런 시장의 요구를 애써 부인하며 또다시 카트리지를 선택했고, 이는 많은 서드파티들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적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닌텐도 64로도 동영상이나 음성을 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나 간혹가다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이 발매하는 소수의 멀티플랫폼 게임들의 동영상이나 음성은 여지없이 열화되거나 삭제되었다. 바이오하자드 2가 닌텐도 64로 이식되었지만 동영상 해상도는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의 1/4로 떨어졌고, 음성도 둔탁해졌다.

카트리지 팩은 로딩 시간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닌텐도 64의 카트리지 최대 용량은 64MB뿐이었다. 여기에 닌텐도의 카트리지는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점들이 많았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드파티를 불러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닌텐도/비판 참고.

때문에 당시에는 닌텐도가 롬 팩을 고집했던 이유를 두고 '저장 매체를 CD로 바꾸면 롬 팩 공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생산비를 선결제로 받아 유통까지 해 먹는 사업 구조가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이라 분석하는 억측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심지어 '선결제로 받은 막대한 비용으로 이자 수익을 얻는다' 같은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애시당초 닌텐도의 위탁 생산은 상품을 완성하는 데에 있지, 롬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체를 바꾼다고 한들 위탁 생산 체제가 무너질 수는 없다. 만약 닌텐도가 위탁 생산 비용과 로열티 수입을 중시했다면 오히려 서드파티의 참가를 독려하며 게임 발매를 늘렸어야 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이때의 닌텐도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조잡한 게임 백 개보다 고급 게임 하나를 제공하겠다며 있는 서드파티마저 쫓아낼 정도였다. 또한 닌텐도 역시 롬 카트리지 이외에도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닌텐도 파워 등으로 카트리지 생산 이외의 게임 배포 방법을 시도해왔으며 64DD 역시 일찌감치 발표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롬 공장을 포기할 수 없어서' 라는 추측은 여러 관점에서 볼 때 근거가 떨어진다. 실제 당시 닌텐도 수익에서 로열티 수익은 25%(이것도 크다고 할 수 있지만)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CD라는 매체 자체에 거부감이 강했고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달랐기 때문에 그대로 롬팩을 고수하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이런 대용량 게임들에 대한 거부감은 게임큐브로도 이어지게 된다. 또한 포켓몬스터의 대성공도 닌텐도의 이런 확신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 야마우치는 '대용량 게임 같은 걸 만들면 개발사는 개발비를 감당 못하고 죽게 된다'라거나 '멀티미디어가 어디있나? 그런건 어디에도 없다' 같은 어록을 남길 정도였고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시절 겪었던 느린 로딩 역시 CD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덕분에 게임큐브 이전의 닌텐도 자사 게임에는 FMV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하드웨어 개발 당시에도 레어나 닌텐도의 정보개발부에서는 롬 카트리지의 채용을 원했다고 하며,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1995년도의 인터뷰에서 CD의 단점들을 하나하나씩 지적하면서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꼭 고용량 매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고 본인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으며, 그로부터 1년 후의 인터뷰에서도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당시에 플로피 디스크를 채택함으로써 겪었던 문제점들을 언급하며 "다른 닌텐도 64 게임들도 마찬가지지만 마리오 카트 64에서 총 16개의 코스를 수록하고 4인 대전 시 최대 카트 8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만약 CD-ROM을 사용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카트리지를 채택한 것인데 좀처럼 이해받지 못 한다" 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미야모토가 앞서 언급했듯이,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하드웨어 구조라면 슈퍼 마리오 64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같은 게임의 구현은 어렵게 된다.

또한 소니의 사에키 마사시(佐伯雅司)는 플레이스테이션CD를 매체로 선택한 이유조차도 용량보다는 유통 상의 문제 쪽이 압도적이었다고 언급했었다. 물론 여기에는 CD를 다루는 기술의 발전으로 로딩 문제에 대한 개발사들의 걱정을 덜 수 있었던 것과 함께 자사 CD 프레스 공장에서의 생산, 유통망 활용으로 게임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싸게 내놓았을뿐더러 추후 하드웨어의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설계 구조로 게임기도 싸게 내놓을 수 있었던 등 대단한 통찰력이 있었기에 닌텐도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높은 생산단가는 닌텐도도 극복이 힘들었는데. 닌텐도는 닌텐도 64가 출시된 해인 1996년에 나온 게임들은 모두 9,800엔의 비싼 가격으로 내놨으나, 소니가 5,800엔으로 게임의 가격을 확 낮추는 바람에 이듬해부터는 대체로 6,800엔 수준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게임 가격을 낮추어 내놓았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세가새턴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붙으면서 베스트 판같은 재발매 게임들은 2,800엔 그리고 SIMPLE 시리즈같은 싸구려 게임들은 1,500엔의 헐값에 공세를 펼쳤고. 생산단가가 높아 이 가격에 판매할 수 없는 닌텐도 64는 그냥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닌텐도도 부족한 용량과 원가를 의식해서 게임큐브를 기점으로 거치형 기기에서는 광학 매체로 갈아탔지만 휴대용 게임기에는 여전히 롬 팩을 사용한다.[37] 현대의 롬은 과거의 마스크 롬과는 달라 낮은 가격으로도 고용량을 실현할 수 있으며 전력 소모가 획기적으로 모터를 돌리는 광학 매체에 비해 낫기 때문에 가성비와 유저 사용 경험을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레이 디스크의 생산 단가가 2달러에 불과하지만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 카드 생산 단가는 여전히 높아서 동일한 게임이 멀티 플랫폼으로 나오면 스위치 버전의 가격이 비싼 경우가 흔한 편이었다. 2020년대 들어서 게임 제조사들이 게임 가격을 올림에 따라 이제는 별 차이가 없게 되었지만.

7. 게임 목록(가나다순)

간판급 타이틀은 볼드체로 표기한다. 비공식 한글패치가 있는 것은 '★'로 표시한다.

8. 에뮬레이션 현황

게임기 발매한 지 2년 반이 지난 1999년 1월 28일에 슈퍼 마리오 64를 비롯한 소수의 게임을 구동하는 UltraHLE가 등장했다. 이 에뮬레이터의 특징은 당시에 이미 나온 패미컴, 슈퍼 패미컴 에뮬레이터들과 달리 연산칩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를 저레벨로 재현하는 것(Low-Level Emulation)이 아닌, 연산칩의 기능을 고레벨로 모방하는 것(High-Level Emulation)을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300 MHz의 매우 낮은 요구사양과, 그만큼 낮은 호환성이다. 그리고 업데이트가 없다.

이후에 1964, Mupen64, Project64와 같은 숱한 에뮬레이터들이 호환성을 높이며 분투해 왔고, 그 가운데 현재는 실제 플레이용[42]으로는 Mupen64를 이어받은 Mupen64Plus와 Project64가 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Android용 에뮬레이터로는 MegaN64, Mpen64Plus, N64oid 같은 쟁쟁한 에뮬레이터 등이 있으며, 성능과 속도도 PC용 에뮬레이터만큼 잘 뽑아 주는 편. OTG 케이블 또는 블루투스 등을 이용한 외부 컨트롤러 연결로 스마트폰 특유의 터치식 조작감을 해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호환성이 완벽하지 않다. 같은 세대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터들은 2000년대 중반에 호환성 99%를 훌쩍 넘겨 체감상 아무 게임이나 완벽하게 작동하는 수준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터들의 정확도에 대해 논하며 "ePSXe는 쓰레기네", "PCSX-R도 엉망이네" 하는 말들을 인터넷에서 꽤 쉽게 볼 수 있지만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들보다는 훨씬 낫다. ePSXe도 1995년에 발매한 게임들의 에뮬레이션이 유난히 엉망이라서 그렇지 실제로는 대부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들의 에뮬레이션이 완벽하다. 게다가 2016년을 지나가면서 후속 기종인 게임큐브의 에뮬레이터인 Dolphin이 게임큐브 게임들을 모두 지원하면서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보다 호환성이 훨씬 좋다는 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가 새턴의 에뮬레이터 Yabause나 SSF마저도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보다 호환성이 더 좋다.

이 현상의 주 원인은 닌텐도 64의 하드웨어 구조가 너무 복잡한건 둘째 치고 제일 큰 원인은 중요 처리 장치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 그래픽스는 워크스테이션과 완전 커스텀 칩 설계가 위주인 회사라서 웬만한 개발자들도 실리콘 그래픽스의 처리 장치 기술 자료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닌텐도 64는 당시 일반 소비자 제품 수준에서 최신 기술이던 선형 텍스처 필터 기능도 지원하는 그래픽 칩셋을 사용했다.(Voodoo 1 발매 몇 달 전에 닌텐도 64를 출시했다.) CPU는 그나마 상용 CPU인 MIPS R4200을 커스터마이즈한 것이지만, 문제는 그래픽 칩셋의 역할인 리얼리티 코프로세서(RCP)가 오직 닌텐도 64만을 위해 실리콘 그래픽스와 같이 만든 전용 칩인 것이다. 즉 이 부분은 닌텐도만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고, 사운드와 그래픽을 동시에 처리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구조라고 한다.[43] 이는 20년 이상 연구를 거듭했지만 큰 진전을 보이지 않는 에뮬레이터들에 비해 스위치로 나온 슈퍼 마리오 3D 컬렉션에서는 1년이라는 짧은 개발 기간 내에 슈퍼 마리오 64를 스위치로 완벽히 이식했다. 하지만 이런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는 에뮬레이터 개발자들은 닌텐도 64의 그래픽 처리를 거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의존해 OpenGL, DirectX, 내지는 글라이드와 같은 PC용 3D API로 변환하는 방법을 찾았고, 대부분의 게임이 매우 그럴 듯한 결과물을 내줬다. 그 덕분에 텍스처를 선명하게 할 수도 있고, 나아가 해상도를 원하는 만큼 높일 수도 있다. 이는 다른 기종의 에뮬레이터들도 대부분 있는 기능이다. OpenGL과 DirectX 같은 범용 API를 통해 화면을 출력하는 과정에 화질을 향상시키는 필터를 삽입하거나 해상도의 향상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구 사양도 낮다. 하지만 이는 정확성을 희생한 대가이다.

다음은 두 가지 방식의 에뮬레이션 화면. 게임은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을 사용했다.
파일:external/images.wikia.com/Majora%27s_mask_accurate.png 파일:external/images.wikia.com/Project64_2013-07-26_14-20-17-55.png
LLE의 흐린 화면 HLE의 선명한 화면

위의 사진은 고레벨 에뮬레이션의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면으로, HLE 방식의 한계는 아직도 극복하지 못해 악명 높은 페이퍼 마리오의 깜빡임 현상을 비롯해, 10년이 넘도록 많은 게임들의 올바른 실행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 나온 에뮬레이터들이 오히려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에뮬레이터보다 훨씬 불안정하다.

이 문제점을 뿌리부터 고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에뮬레이터가 바로 CEN64이다. CEN64는 저레벨 에뮬레이션을 구현해 현재의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들이 10년이 넘은 세월에 못 해결한 오류들을 근본적으로 없애겠다는 취지이다. CEN64는 현재도 활발히 개발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여전히 낮고, 저레벨 에뮬레이션의 문제인 극심하게 높은 요구 사양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에뮬레이션은 세가 새턴과 같이 아주 험난할 것 같다.

2020년도 부터는 에뮬레이선 대신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포함한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실제게임과 동일한 결과물을 뽑아내는 소스코드를 만든뒤 그것을 기반으로 게임을 다른 장치에 포팅해버리는 사례도 늘고있다.

8.1. 에뮬레이터를 이용하려면


게임큐브용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마스터 퀘스트가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를 이용하며(이로써 내부의 롬을 덤프해 일반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로 구동할 수 있다.), 레어의 컴필레이션 타이틀인 레어 리플레이 역시 일부 게임을 닌텐도 64 에뮬레이터로 구동한다는 정황이 있다.

9. 기타



[1] 일본의 공식 명칭은 닌텐도는 대문자로, 64를 띄어쓰지 않는다.[2] Nintendo 64는 'ニンテンドー'가 아닌 'ニンテンドウ'를 공식적인 가나 표기로 사용했다.[3] 96.6.23 → 97.3.14 → 98.7.1[4] 96.9 → 97.3 → 98.8 → 99.8[5] 일본어로 '육사(64)'를 뜻한다. 1998년 이후의 일본 내 TVCM에서 징글로 사용되었다.[6] 뉴욕타임스 1996년 5월 6일 기사[7] 게다가 1995년 초 칸사이 지방에 극심한 타격을 입힌 효고현 남부 지진의 영향도 있었다. 이 당시에 준비한 게임들 중 상당수(별의 커비, 메트로이드, 파이어 엠블렘, 마더 3)가 이 때문에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다.[8] THE 64DREAM 1996년 11월호, 9쪽[9] 개발 중지한 게임.[10] Next Generation 1996년 5월호, 6~8쪽[11] 「ゲームが変わる。64が変える。」[12] 작중에서 리들리에 의해 개조되어 거대화한 베이비 메트로이드를 일컫는 제목이기도 하다.[13] 스타크래프트 64는 PC로 발매된 오리지널과는 만듦새가 다르기 때문에 오리지널과는 별개의 게임인 닌텐도 64 독점작으로 여겨지지만, 록맨 대쉬는 다른 콘솔용으로도 발매되었는데 북미판 닌텐도 64 버전에만 메가맨 64라는 이름이 붙었다. 타 기종으로 나온 록맨 대쉬의 북미판 이름은 <메가맨 레전드>이다.[14] MIPS R4300i 기반 커스텀 프로세서.[공정] NEC 350 nm 공정으로 생산했다.[공정] [17] CPU가 접근할 수 있는 최대 메모리는 4 MB이다. 9bit 데이터 버스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9번째 비트가 리얼리티 디스플레이 프로세서의 프레임 버퍼로 사용되기 때문에 오직 GPU만 접근이 가능하다. GPU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요소는 최대 4MB의 램에만 접근이 가능.[18] "닌텐도가 깨어나다.", 더 이코노미스트 1996년 8월 3일자 기사.[19] 닌텐도 64의 바이오 하자드 2를 플레이스테이션쪽과 텍스처를 비교하면 닌텐도쪽 크기가 더 작다.[20] 트레저레이디언트 실버건, 이카루가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다.[21] 사장님이 묻는다 죄와 벌 우주의 후계자 인터뷰에서.[22] 뉴스위크 2000년 9월 3일 기사[23] 듀얼쇼크의 초기형. 1996년 11월 1일, 플레이스테이션 엑스포 96-97에 처음으로 공개됐으며, 닌텐도 64 출시 이듬해인 1997년 4월 25일에 출시했다.[24] 나이츠 인투 드림즈...와 동시 발매했다.[25] 그래서 이 컨트롤러를 잡을 때 보통의 컨트롤러와는 다르게 아날로그 스틱이 있는 가운데 손잡이를 왼손으로, 버튼이 있는 오른쪽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는 특이한 파지법을 사용하기도 했다.[26] 특히 게임을 저장할 때 쓰이는 컨트롤러 팩도 이 진동팩을 쓰면 저장할 수 없기에 게임에선 진동팩을 쓰고 싶다면 지금 넣어서 쓰던가, 아니면 데이터 유실에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자주 뜬다. 물론 남는 컨트롤러에다가 컨트롤러 팩을 꽃으면 저장과 진동기능을 동시에 쓸수있다. 다만 이렇게 되면 4인 플레이시 4P만 진동없이 플레이해야하는 문제가 있다. 핫스와핑이라고 해서 팩 교체 기능이 있긴했다.[27] Eccentric Rotating Mass Vibration Motor. 여기서 Eccentric Rotating Mass란 '중심이 치우친 회전하는 추'라는 뜻으로, 모터를 이용해 무게 중심이 어긋난 추를 돌려서 생기는 원심력으로 진동을 일으키는 방식이다.[28] 일본의 경우 초기에는 ハイレゾパック(고해상도 팩)이라는 어린이가 알기 어려운 이름으로 팔다가 도중부터 メモリー拡張パック(메모리 확장팩)으로 변경했다.[29] 세금 별도. 게임 동봉판은 2천엔 추가된 금액만 받아서 이쪽이 이득이었다.[30] 북미/유럽판은 메모리 확장팩이 없어도 구동이 가능하나, 싱글 캠페인 플레이가 불가능하고, 멀티플레이도 2인까지만 플레이할 수 있는 등, 게임 컨텐츠에 크게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사실상 메모리 확장팩이 반 필수다. 일본판은 한술 더 떠서 메모리 확장팩이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다.[NTSC-M] 유선 95, 96CH. 로터리식 TV는 V-Low 6CH에서 미세조정 다이얼을 끝까지 돌려야 한다.[32] PAL-N/M은 NTSC-M과 같다.[33] 락스타 게임즈 창업자 중 한 명.[34]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찬사를 했던 댄 하우저가 설립한 락스타 게임즈는 2001년 GTA 3를 그것도 플레이스테이션 2로 선행 독점 출시를 하고, 이후 게임계에 엄청 큰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PS2를 6세대 거치형 콘솔 게임기 경쟁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데 크게 공헌을 하게 되었다. 또한 똑같이 PS2로 선행 독점 출시한 후속작들인 GTA 바이스 시티GTA 산 안드레아스도 비평과 상업적인 성과 모두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로 인해 닌텐도게임큐브 시절에도 소니에게 다시 한 번 더 패배를 하게 되고, 심지어 가정용 게임기계의 신참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에게도 밀려 6세대 가정용 게임기 판매량 3위라는 닌텐도 입장에서는 매우 굴욕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만다. 그나마 휴대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는 닌텐도가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여전히 선전하긴 했다.[35] 북미에서는 300여 개[36] 잘 팔리는 게임에 망한 게임을 강제로 끼워 팔기, 소프트웨어 개발 제한, 게임이 팔리든 안 팔리든 닌텐도만 배불리던 비싼 라이선스 비용 선 납부, 하부 조직을 이용한 담합, 닌텐도가 지정한 공장에서 닌텐도가 지정한 개수만 롬 팩 생산 가능, 소매점과 도매점에서 카트리지 할인을 못하게 막기도 했고, 카트리지 생산해줄때 꼼꼼하게 검수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안들면 리테이크나 생산대수를 줄이기도 했다. 이쯤되면 이게 야쿠자인지 게임사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37] 휴대용 기기에 광 드라이브를 넣으려면 거치형 기기와 다르게 충격 보호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매우 비싸진다. 플레이스테이션 비타에서도 광 드라이브가 아닌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했다.[B] 여기에 적혀 있는 봄버맨 64는 일본에서만 발매한 게임으로서 북미에는 폭 봄버맨을 <봄버맨 64>라는 제목으로 발매해 혼동을 주고 있다. 사실 일본에도 폭 봄버맨이 <봄버맨 64>라는 제목으로 발매할 뻔했는데, 어째선지 제목이 바뀌었다.[39] 일본에선 마리오 스토리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B] [41] 원래는 닌텐도 64로 발매할 예정이었고, 개발도 거의 끝난 상태였으나 돌연 취소했다.[42] TAS 제작용으로는 사실상 Mupen64의 개조판인 Mupen64-RR-Repack-Lua가 고정으로 쓰이며, 아주 가끔 Bizhawk을 쓰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43] 오히려 게임기 세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에뮬레이터 개발 난이도가 낮아지는 이유인데 5세대 게임기 이후 게임기에서는 기기 가격과 서드파티의 게임 개발 환경 때문에(상술했지만 개발 환경이 생소하면 개발 기간은 늘어지고 질도 나빠진다) 전용 칩보다는 상용 칩 기반 커스텀을 할 수밖에 없었고 독점 공급이라서 공개된 기술 자료가 없다시피한 닌텐도 64와 달리 이후 세대들은 칩을 공급하는 제조사에서 공개한 기술 자료에 접근이 가능해서 게임 개발과 에뮬레이터 개발 환경이 상당히 나아졌다.[44] 예를 들어 리볼트를 기준으로 한다면 n64: 텍스처 개판, rice: 완벽하지만 뭔가 부족함, glide64: 프레임률 빼곤 완벽함.[45]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판매한" 버추얼 콘솔만. 롬 인젝션의 호환성은 전멸 수준이다.[46] 이렇게 빵빵한 버추얼 콘솔 호환성 덕분에 개조된 Wii U는 3DS를 제외한 닌텐도의 역대 모든 게임기를 구동할 수 있는 레트로 머신으로 호평받았다. 심지어 닌텐도 DS 게임을 고해상도로 구동할 수도 있었으니 비공식 에뮬레이터에 비해 부가기능이 뒤진다고 말할 수도 없다.[47] 이 게임은 2002년에 발매된 유일무이한 닌텐도 64용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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