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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9 20:41:27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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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학문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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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러두기

일단 의학 분야는 판타지 안내서 항목 시리즈 중에서도 제일 엄격하게 현실 세계의 중세와 비슷해야 써먹을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당장 사제들이 신성마법을 쓰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묘사가 있는 작품은 한가득 넘친다. 오히려 신성마법과 분리된 의학에 대해서 잘 묘사된 작품이 드물 정도. 또 그냥 상점에서 파는 포션으로 대충 회복이 가능한 묘사의 작품도 상당수이며, 포션 제조가 묘사되는 작품들은 무언가 신비한 마법 재료를 넣었더니 약효가 나온다 식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고 메커니즘 따위는 묘사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심지어 병의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신의 분노나 저주 등으로 촉발되는 묘사도 흔하다.

게다가 판타지에서 흔해 빠진 이종족들이 인간과 같은 신체구조이거나 해부학적 구조를 가졌을지도 특별한 묘사가 없다. 엘프의 뾰족귀는 물렁뼈일까? 엘프의 면역체계는 어떻게 됐길래 인간보다 몇배나 더 길게 살까? 이런 묘사가 자세히 나오면 SF물에 가깝다

이렇게 묘사가 심하게 생략된 판타지 세계라면 현대 의학의 힘을 발휘하려면 일단 그 세계의 흔한 병이 무엇인지, 무슨 인과로 발병하고 치료되는지부터 처음부터 조사해야한다. 물론 이건 현실에서 이미 의사 수준의 의학 지식을 갖춰야 가능한 레벨이다. 게다가 상기한대로 신성 마법 등으로 뿅 치료된다면 현대 의학을 활용하기보다 사제가 되는게 나을 것이다.

판타지 작품들에서 의학 관련 부분이 심하게 생략되어 있는 이유는, 보통 작가들이 의학 지식을 그 정도로 자세히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학 지식을 갖췄다 쳐도, 판타지 세계에서의 병과 의학에 대해 묘사를 거의 처음부터 쌓아햐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또한 판타지는 게임과 연관이 커서 게임적으로 묘사를 생략해야하는 것도 이유이다. 사제가 마법으로 체력이나 디버프를 뿅 회복시켜주는 것이, 의사 직업을 넣어서 몇시간 몇턴이나 걸려서 회복시켜주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게임 플레이어 입장에서나 제작자 입장에서나.

게다가 현실 전근대사의 쇼킹한 의술 수준을 현대인들은 잘 상상하지 못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전근대 사회의 생존 환경은 거의 모든 면에서 까딱이라도 재수 없으면 바로 골로 가게 만들었는데, 그 수 많은 요소를 다 고려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보온과 난방이 잘 안되는 건축 기술 때문에 겨울이면 기관지병에 걸리거나 얼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1]였으며, 상하수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주거지 위생 때문에 수인성 질병으로 죽는것이 흔했고, 공공 방역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 전염병이 돌면 수 없이 죽었고, 치안이 불안해서 여행 다니다가 산적이나 짐승에게 끔살 당하는건 다반사였고, 병의 원인을 몰라 병의 치료는 운에 의존해야했고, 약의 효과는 경험으로 어렴풋이만 알아서 효과적인 약도 쓰지 못했으며, 대부분의 서민은 만성적으로 영양섭취가 부족해서 면역력이 약했다. 전근대 내내 의사는 별로 믿을만하지 못했고, 죽음은 일상에 가까웠다. 그래서 평균 수명이 30대를 넘지 못한 것이 인류사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판타지에서 저런 비참한 삶이 묘사되는 경우는 별로 못 봤을 것이다(...). 현실 역사에서는 저러한 전근대 요소를 타파하자마자 인구가 엄청나게 급증해서[2], 10억 약간 밑에서 정체되어 있던 세계인구가 현재 80억에 달하게 됐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임 기술이 보급되고 선진국은 갈 수록 출산율이 주는 추세인데도! 오히려 18~20세기 동안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빈곤을 걱정했을 정도다. 21세기 들어서야 선진국들에서 고령화 사회가 문제시 되며 다시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판타지 작품 중에서 그런 의학과 피임과 인구의 관계에 대해서 세세하게 묘사한 작품은 별로 없다. 엘프 수명이 인간 10배인데 왜 엘프 인구가 급증하지 않을까? 엘프만 콘돔이 있나? 생리 주기가 굉장히 짧은 듯하다

하다못해 돌, 회반죽, 나무로 집을 짓는다는 묘사만 있어도 건축에 기여를 할 아이디어를 끌어올 수 있고,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기본적인 전제만 있어도 물리학 법칙을 끌어올 수 있고, 수학은 그냥 이세계가 3차원 공간이기만해도 성립이 된다. 하지만 의학 분야는 많은 작품에서 묘사를 극히 생략하고 있어서, 현실 지구사와 매우 유사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엄격하게 붙어야 한다.

1.1. 일단 현실과 비슷하다면

당신이 의사이고 적절한 도구들과 물건들도 가지고 있다면, 의학은 다른 그 어떤 학문들보다도 당신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서구에서 선교사들을 파견할 때도, 의술은 현지 주민들에게 호감을 사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을 정도이다. 어느 지역, 어느 사회, 어느 시대이건간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데 좋은 일이며, 특히 권력자의 목숨을 구했을 경우는 그 누구도 당신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당신이 권력자의 목숨을 구할 기회는 적을 것이다. 중병이라면 사회적으로도 입증된 이에게 치료를 맡기지, 당신처럼 그 세계에서 아무 것도 쌓은 게 없는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서구의 의료 선교들이 그렇듯이, 민중 → 지역 유지 → 권력자 순으로 차근차근 신임을 쌓아야 한다.[3]

다만 이를 위해서 당신은 기존 의료계의 반발, 낯선 의술에 대한 현지인들의 두려움을 모두 극복하여야 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는데, 간단한데다 현대 의학에서 필수로 여기는 손씻기조차 초기에는 제대로 전파되지 못하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4]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특히 수술의 경우는 처음 보는 주민들에게는 충격과 공포를 주는 일이니 만큼, 당신이 주민들에게서 신뢰를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실 세계와 비슷하다면, 다행히(?)도, 사소한 의료사고나 치료해주던 환자가 죽는다고 해서 보복으로 끔살될 것이라는 걱정은 좀 덜어도 된다. 30살도 안 되어서 죽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했던 것이 전근대 사회라서,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전반적으로 매우 낮아서 죽으면 그냥 그 사람 팔자인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즉 현대의 진상 환자 가족들처럼 의사에게 멱살잡고 따지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당장에 조선의 어의도 왕이 죽으면 형식적인 귀양만 가고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 물론 수술한답시고 사람 배 가르고 해집어놓고서 못 살렸다면 좀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다.

또 전근대는 조직적인 의사협회 같은 것도 없고 의사 면허도 없던 시대라서, 돌팔이나 나이롱 약장수가 매우 흔했다. 특히 시골 지역은 의지할 의사라곤 그런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들 뿐이었던데다, 그런걸 단속할 경찰도 없어서 그냥 잘 싸돌아다니면서 약을 팔고 다녔다. "개소리를 하다" 정도의 뜻으로 현대에도 은어로 쓰이는 약팔다, 약팔이 라는 말 자체가 그런 약장수들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웃기게도 현대의 코카콜라나 까스활명수도 그런 나이롱 약장수가 만든 자양강장제에서 유래됐다. 당신이 별 쓸모없는 약도 만병통치약인것 마냥 입을 터는 재주가 있다면 약장수가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약을 파는 것도 생계 유지에는 도움이 될 것. 이런 약들 대부분은 알코올이나 아편 팅크에 다른 걸 섞어서 만들었다.

또한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당장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에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이 아닌데다, 종교적으로 보면 의사는 시신, 병자 등 부정한 것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종교적 계층에서도 낮은 계층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경우 화타급 의술을 펼쳐 권력자들이 아주 아껴주는 어의라도 되지 않는 한 고생 깨나 하게 된다.

당신이 환자가 돼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당시 의사들을 최대한 멀리해야 할 것이다. 당시 의사들은 죽은피(사혈)이 있다고 믿었기에 혈관을 째고 흘러나오게 하거나, 중금속이나 시신이나 노폐물 따위를 약재로 사용했고, 마취도 없이 수술을 하고, 시신을 머리위에 올려놓는 등 심각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당대에 듣보잡도 아니고 왕이나 귀족들 밑에 있거나 이름 날렸다는 탑급 의사들이 이런 치료를 하던 시대였다. 19세기에도 콜레라 처방이랍시고 거머리로 피를 빨거나, 당시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의 원인이 악취를 동반하는 나쁜 공기에 있다고 봤기에 향수를 동원하거나, 마약을 쓰는 등 현대에서는 돌팔이도 안할짓을 했다. 물론 저런 치료(?)를 받고 되려 악화되어 죽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시말해 당신이 귀족이나 왕족으로 환생/전생 했거나 혹은 공을 세워 귀족 왕족이 되었다고 현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의 그럴싸한 의료조차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한다.

2. 적용 예

2.1. 당신의 의사라면

사실 현대적인 약품이나 의료 시설, 그 외 인프라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세계로 가버렸으니 현대 의학 지식을 가졌어도 유효하게 쓸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져 있다. 의사 이전에 화학자가 되어야할 판(...).

2.1.1. 해부학

동맥, 정맥, 근육의 운동, 내장기관의 위치와 그 대략적인 역할 등등은 해부가 일상화되기 전까지는 아예 모르던 내용들이다. 다만 이걸 어떻게 써먹고 활용하느냐가 문제. 해부학이 주로 활용될 여지는 외과적 시술에 관련된게 많은데, 결국 사람 살 헤집어야 좀 증명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취도 없는 곳에서는 수술에 도전하려고 해도, 환자가 겁을 먹고 차라리 죽겠다고 버팅기거나(...)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릴 가능성이 크다.

2.1.2. 방역

흔히 중세 유럽이 흑사병에 심하게 시달렸던 건 고양이를 악마의 동물로 보고 학살하는 바람에 창궐해서 그랬단 말이 상식처럼 퍼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흑사병의 감염 매개체는 벼룩이고, 이 벼룩은 고양이는 물론이고 에도 붙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털짐승이면 다 위험하다. 게다가 중세 유럽은 시골이면 가축과 사람이 한 건물에서 같이 부대끼고 살았고, 도시에서조차 다층 건물의 1층이 축사로 지어져 있는 등, 동물과 사람이 글자 그대로 부대끼면서 사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런 생활 관습을 죄다 뜯어고치라고 시킬 수 있는거 아니면 흑사병 방지는 꽤나 어렵다.

애초에 고양이를 좋아하던 이슬람권도 흑사병엔 속수무책이었고 유럽에서 고양이를 학살했단 것도 중세가 아니라 마녀 사냥이 유행한 근대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히려 중세 수도원이나 성당에선 고양이를 키운 민담도 여럿 전해져 내려온다. 고양이에 대한 유럽의 취급은, 동물학대에 대해 무지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귀여움 받다가도 애꿎은 이유로 죽기도 하는 것.

사실 중세적 의학 수준으론 감염자 격리나 시체 소각 정도를 제외하곤 흑사병에 유의미하게 대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자체가 없다. 이런 건 현대에서 시행하는 대규모 방역 작업이라도 하지 않는 한 벼룩의 전파를 막을 수는 없다. 중세 유럽의 의학이 사실 이상으로 과장되어서 폄훼되는 경향이 심해서 그렇지, 실제론 지금 봐도 최대한 합리적인 대처와 체계적인 분석, 교육 과정이 다 있었다. 14세기에 이미 흑사병이 가래톳 흑사병과 폐렴성 흑사병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증상을 통해서 분석해낸 의사도 있었고, 병원을 세울 때는 도시 곳곳에 고기 덩어리를 걸어놓고 고기가 제일 오랫동안 썩지 않는 장소를 병원 건립 위치로 선정하는 등 당대 이론을 바탕으로 나름 그럴싸한 결론을 내놓았다. 중세 유럽의 기괴한 의술이라고 떠돌아다니는 썰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받지 않은 야전의나 돌팔이들의 불법 의료행위들이었다.

유럽이 근대에 흑사병 피해를 보지 않았던 건 의학 발전 덕이 아니라 감염원인 벼룩들의 수가 준 것에 따른 공짜 성공으로 추측된다(...). 현대 의학에서도 발병을 이미 시작한 환자에겐 손 쓰기 힘든 게 흑사병이다.

그나마 격리와 시체 소각도 그 강도와 방법에 따라서 잘하면 흑사병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도시를 방어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도시가 망하는 걸 넘어서 나라 자체가 쫄딱 망할 수도 있다. 민담에서는 흑사병 환자의 장례를 치르러 간 신부가 다음 날 죽었다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도 있는데, 이건 실제로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러니, 흑사병 환자만이 아니라 가족도 격리하고 환자가 사망하면 장례도 없이 소각하는 철저한 방법을 주장하자. 밀라노 공국에서는 이에 한술 더 떠서 흑사병이 발생한 가정을 통째로 격리해서 굶겨 죽이는(!) 방법을 썼고 이를 통해서 총인구 중 15%만 사망하는 성공(...)을 거뒀다. 흑사병이 극심했던 지역은 사망률이 80% 였으며, 발병률이 낮은 지역도 20~30% 정도의 인구가 죽었다. 15%면 정말 성공적으로 흑사병을 막아낸 것이다.

2.1.3. 세균학

알콜을 이용한 소독법, 아니 하다못해 수술 전에 “손을 씻는 것”만 확실하게 지키도록 해도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19세기까지만 해도 수술패혈증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가 거의 90%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수술 받으러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죽으러 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이 발생했던 이유는 19세기까지는 위생에 대한 관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의사가 수술한 손을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른 환자를 수술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 묻은 수술도구도 안 씻고 그대로 다시 썼다! 때문에 군의관이 절단 수술을 자주 했던 나폴레옹 시절에는 수술 후에 세균 감염에 의한 합병증 없이 살아남는 것은 정말 하느님에게 달린 일이었을 정도다. 처음 소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는, 당시 의사들에게 정신 나간 이야기로 치부당했다. 오죽하면 손을 씻자고 주장한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에게 개갈굼을 당하다 병원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사실 이 시절에는 '나쁜 공기[5]' 미아즈마(Miasma)가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 주력 학설이었기에 위생 자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썩은 냄새 등은 부패한 곳 등 세균이 많은 곳에서 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이론으로 보였다. 하지만 원리가 틀리다보니 결과적으로 대응법이 엉뚱했다는게 문제다. 예를 들어 수인성 전염병인 콜라레가 '하수도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고 원인 진단은 잘 해놓고서 '그러니까 하수도 냄새가 안 나게 하수도 위를 잘 덮자' 라는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 부분은 당시 영국의 의사 존 스노우가 수인성 전염병의 존재를 규명하고서야 해결됐다.

후에 파스퇴르에 의해서 세균의 존재까지 입증된 후에도 의사들이 소독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위생학이 시작된 19세기 말이고, 학회 차원에서 지침이 내려온 것은 20세기가 지나서였다.[6]

근데 정말로 희한한 건 19세기보다 훨씬 더 이전인 고대 로마 시절의 의사들은 소독과 위생을 철저히 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일종의 로스트 테크놀로지.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소독의 개념이나 최소한의 진통제 제조법이나 약초학과 같은 지식은 알고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 우선 농도 70%의 에탄올을 이용해 소독하는 것을 보급하자. 농도 70~75%의 에탄올이 살균력이 제일 좋고, 그 이상의 농도에서는 오히려 살균력이 떨어진다. 에탄올은 끓는점이 약78°C이므로, 술을 중탕가열해서 나오는 증기를 모으면 구할수 있을것이다. 현대에는 알코올이 피부에서 흡수되는데다가 피부건조를 유발하므로 잘 쓰이지 않지만, 전근대 환경에서는 그나마 만만하게 만들 수 있는 소독제가 알코올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아이오딘이나 과산화수소를 합성하거나 추출할 재주가 있다면 해보자. 물론 전근대의 한정된 식량 생산량 내에서, 알콜을 오직 술을 증류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알콜을 실컷 사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2.1.4. 종두법

의 우두에서 짠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함으로서 천연두를 막을 수 있다. 천연두가 근대 이전에는 엄청난 질병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신은 구세주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천연두에서 나온 고름을 묵혀 병소를 약화시킨 뒤 사용하는 방법(인두법)도 있지만, 이 방법은 천연두에 제대로 걸려서 골로 가버릴 확률이 치솟아오르므로 위험하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태어난 현대인에게는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으므로 더욱 위험하다.

다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녀로 몰려 불에 태워질 각오는 하고 가자. 판타지 안내서 문서들에서 마녀사냥 드립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데애초에 마법이 있는 판타지 세계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이라니 그럼 흑마법사나 악마숭배자로 몰려 죽었다고 치던지, 이 종두법은 실제로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종두법을 발명한 에드워드 제너가 처음 종두법을 시행했을 때도 다름 아닌 동료 의사와 과학자들을 포함한 당대의 좀 양식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우두법의 경우 우두를 접종하면 소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며, 한국에서도 또한 소처럼 둔해진다고 거부감이 있었다. 당장 현대에도 감정에 의한 호소에 휘말려 예방 접종이 아이에게 해롭다고 믿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거에 있었던 거부 반응이 어땠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2.1.5. 살리실산

버드나무는 서양의 히포크라테스는 물론이고 동양에서도 진통제로 사용했다. 2~3월의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즙을 짜내 정제하면 살리실알데히드가 나오는데, 이 살리실알데히드가 산화하면 살리실산이 된다. 이 살리실산은 Ph 2.5의 강산성이라 그대로 쓸 수 없으니 미량의 산[7]을 촉매로 하여 아세트산과 섞어 중탕으로 가열하여 합성해야만 한다. 이것이 아세트살리신산인데 바로 아스피린이다. 또한 살리실산을 빙초산 대신 메탄올와 섞으면 살리실산메틸이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근육통에 사용하는 파스가 된다. 문제는 불순물의 처리와 수분과의 접촉으로 인해 가수분해가 잘 일어나니 조심해야한다.

만드는 데 성공하면 현대의 바이엘 사처럼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되니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 물론 사용자에게 아스피린의 부작용을 반드시 숙지시켜야 한다. 만일 높으신 분이 아프다고 출혈 중에 아스피린 먹으면 당신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2.1.6. 아세트아닐리드

이나 산쪽풀을 물에 넣어 가수분해되면 인독실이 나오고, 이것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서 염료로도 쓰이는 인디고가 생성된다. 이것을 건류하면 아닐린으로 변하고, 이것을 무수아세트산과 반응시키면 해열진통제로 쓸 수 있는 아세트아닐리드가 합성된다.

하지만 아닐린독약이고 아세트아닐리드도 부작용으로 패혈증과 청색증을 유발할 수 있는 극약이므로 정제과정은 물론 복용시에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아스피린과 달리 혈액응고를 방해하진 않으니 출혈 시 사용할 해열진통제가 필요할 땐 이거라도 써야 한다. 근데 아닐린차아염소산을 가하면 아미노페놀이 생성되고 이것을 무수아세트산과 섞어 중탕가열한 후 냉각하면 아세트아미노펜이 되는 게 함정.

2.1.7. 마약

대한민국 법 상 제조법은 쓸 수 없다 쓱싹쓱싹 뚝딱뚝딱 만드는 거다[8]

당연히 나쁜 짓이지만 저 당시 사람들은 이게 나쁜지도 몰랐다(...). 애초에 옛날의 부족한 의학 수준에선 부작용이나 약리작용도 잘 몰라서 걍 약으로 쓴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편모르핀은 20세기까지만 해도 약으로 쓰였고 지금도 강한 마취가 필요할 때 제한적으로 쓰인다. 지금은 최악의 마약으로 취급받는 코카인은 20세기까지 주스로 만들어서 마셨다. 그냥 약장수나 노릇하는 범위에서 만들어 파는 범위에서면 뭐라할 사람 아무도 없다.

물론 약재를 강하게 정제해서 쾌락용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과거의 국가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정체불명의 약물이 돌아다녀 온 신민들이 그 약에 취해 헤롱헤롱거리고 지역경제가 아작나고 있다는걸 알아채면, 적당한 죄목을 붙여서 당신을 체포하고 끔살해버릴 것이다.그러니까 적당히 해먹고 빨리 튀자

현실 지구의 식물이라면 양귀비꽃에서 추출하는 아편이 제일 만만하지만, 이세계의 식물 품종이 지구와 영 딴판이라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또 약용 식물 중 상당수는 품종에 따라 약효 성분량이 크게 다르다. 한국의 삼베는 대마에 속하지만 대마초의 약용성분이 적어서 피워도 아무 효과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아편의 경우, 복잡한 마취제를 만들 환경이 안되는 상황에서는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강력한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다.

당신이 학부 수준의 유기화학 지식이 있고, 벤젠 등의 화합물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갖췄다면 메스암페타민 또한 유용할 수 있다. 이걸 쾌락 말고 쓸일이 있겠냐 싶겠지만 군의 지휘통제권을 가진 사람에게 카페인, 메스암페타민, 단순당 등을 섞어 만든 일종의 "스팀팩"으로서 팔 수만 있다면 장기적인 수익은 거의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9] 물론 악마의 물약이니 하는 비판을 피하려면 적당히 해야겠지만.

2.2. 의사가 아니어도 써먹을만한 지식

딱히 고급스런 지식이 아니어도 사소한 의학 지식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 당장 16세기로 가면 총상을 치료할 때 쐐기를 쑤셔박아 상처를 잔뜩 벌리고 끓는 기름을 상처에 가득 차오를 때까지 부었다! 으아악! 나름대로 소독을 한다고 한 짓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당연히 오히려 화상과 2차 감염으로 환자가 끔살당했다. 현대에도 중화상을 입은 환자가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감염 때문에 생기는 패혈증 때문인데, 중세, 심지어는 근대까지 불결한 의료환경으로 인해서 패혈증으로 죽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미국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죽었던 것도 이 패혈증 때문이었다.

심지어 약품도 기괴하기 그지없었는데, 예를 들어서 고약을 만들 때 강아지 2마리와 지렁이 450g, 기름, 소량의 알콜을 섞어서 만들기까지 하였다. 마녀도 이런건 약으로 쓰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걸 썼다간 상처가 썩어 들어가는 걸 촉진시킬 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독사에게 물렸을 땐, 상처를 꽁꽁 묶은 다음 독기를 몰아낸답시고 위스키 5병을 강제로 밀어넣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전근대 의학에 당신이 태클을 걸었을 때 사람들이 받아들이느냐는 다른 문제.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데?' 라고 되물었을 때 유효하고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지 못하면, 의사도 아닌 당신이 그런 말을 꺼내도 개무시 당할 확률이 높다. 전장의 진창에서 구더기가 들끓는데 값비싼 증류주를 부어서 소독하라고 하면 곧이곧대로 말을 들을까? 당신이 유효한 의학 지식을 가졌다고 증명을 이미 해내지 않았다면, 코웃음만 들을 확률이 높다.

물론 전근대에도 위생 상태가 병의 유발과 유의미하게 있다는 정도는 양식 있는 지식인들은 전부 짐작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학 지식이 애매한 당신이 그나마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은 위생에 대한 개선이 될 것이다. 아래에 있는 내용은 거의 다 위생과 관련된 내용인 것도 그런 이유다.

2.2.1. 하임리히법

하는 법은 항목을 참조하자.

너무나도 간단한 조치지만,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상당히 최신 기법이다. 사실 음식이 기도에 걸렸을 때 흔히 하는 민간 요법들, 등을 두드리는 등은 실제론 전혀 유효하지가 않았다. 너무나 어이없게 골로 갈 사람 하나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으니 알아두자. 이건 심지어 현대에도 유효하다.

2.2.2. 목욕

전근대 사람들의 위생수준 때문에 수명이 매우 짧았던걸 생각하면, 목욕 문화를 퍼트리면 유의미한 의학적 기여를 할 수 있다. 핀란드, 터키, 일본의 경우 전근대에 목욕 문화가 성행해서 영아사망률이 낮고 평균수명도 높은 편이었다.

다만 목욕탕의 위생관리를 잘해야한다. 고대 로마는 대중목욕탕이 성행했다고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로마인치곤 흔치 않게 목욕을 혐오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록을 보면, 로마의 목욕탕은 위생상태가 매우 개판이었다. 물을 자주 갈아줬다는 증거는 전혀 없고, 오히려 반대인 정황 증거가 훨씬 많다. 게다가 탕에 들어가기 전 몸을 행구긴 커녕 탕 안에서 때를 밀곤 했으며, 욕탕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이 몸에 바른 올리브 기름과 올리브 찌꺼기가 둥둥 떠 있었으며, 심지어 욕조 안에 변을 보는 사람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소변도 아니고 대변. 현대인들의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구역질이 나는 진흙탕이었다. 그걸 더럽다고 바로 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흔치 않은 현대적 위생 관념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위생을 증진시키고 수명을 늘이긴 커녕 병균의 온상이었으며 로마인들의 유골로 분석한 평균 수명 역시 별로 높지 못했다. 중세에는 저런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서 매춘까지 성행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지옥 같은 곳으로 여겨졌고, 결국 점점 목욕탕은 감소하게 된다.

혹시 이세계에서 대중목욕탕을 영업한다면 물을 자주 갈아줘서 저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잘 관리하자. 이 경우 물의 공급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에도 시대 일본의 경우 물을 펑펑 공급하긴 어렵다보니 욕탕을 커다란 체로 휘저어서(...) 때나 찌꺼기를 제거했다.[10] 그리고 물을 뜨뜻하게 유지하는 연료나, 보일러 시설도 난관이 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 구조는 한국의 온돌이랑 거의 비슷하다. 이것을 응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핀란드의 사우나나 터키의 목욕탕처럼 물을 딱히 안 쓰는 시설을 영업하는 것도 방법.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성은 물론이고 동성에게 조차 완전한 알몸을 보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목욕 문화를 봐도 일본이랑 한국이 꽤 특이한 편. 게다가 매춘으로 용도가 변질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남녀 분리를 기본으로 하고 목욕가운 같은 옷도 사용해서 영업하는게 낫다.

2.2.3. 비타민

당신이 대항해시대로 날아갔다면 선박에 과일을 무조건 적재하거나, 최소한 라임주스, 장아찌, 콩나물 등을 먹으라고 주장하라. 일이 성공한다면 당신은 공포의 괴혈병을 말소한 공로로 귀족 작위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역사로 보면 이 사실은 발견 되고서도 인정 받고 실현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괴혈병이 신선한 과일을 먹지 못해 걸리는 병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영양부족설을 채택하더라도 뭐가 부족한지 몰랐다. 예를 들면 감귤류가 효능을 보이자 신맛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식초황산으로 실험해보기도 했다.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이는 각기병에도 적용되어서 러일전쟁 당시 구 일본 육군(세균설 채택)이 일본 해군(영양부족설 채택)과 달리 떼죽음당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이런 영양결핍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도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과일을 먹이는 것보다 선원을 새로 고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는 이유로 당시 선주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선한 과일을 선상에서 오래 보존하는 것은 난감한 문제였다. 당시에 쓰였던 라임주스를 이용한 방법도 영국 선원들이 집단 궐기를 통해 얻어낸 방법이었으며, 영국에 그 방법이 정착된 다음에는 다른 나라의 선원들이 영국 선원들을 라임주스를 입에 달고 산다고 해서 '라이미'(Limey)라고 놀렸다. 그리고 지금이야 웰빙열풍과 비타민의 발견으로 채소에 대해 호의적이었지, 당시 사람들에게 야채를 줬다가 '일도 힘들게 하는데 풀때기나 쳐먹으라는거냐' 라는 항의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군대나 선원들이 심한 고기 위주의 식단을 가진 것은 그들에게 얼마 안되는 위로거리가 맛있는 음식이었기 때문. 이런 이유로 라임 주스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제임스 린드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주장이 영국 해군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가 죽고서 바로 다음 해에야 영국 해군이 라임 주스를 식단으로 정식 채택한다.

또한 콩나물의 경우 재배하는데 사용되는 물의 위생상태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정화의 원정함대는 배 안에 밭이 있는 초대형선이라 괴혈병은 피했지만, 수인성 전염병에 당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식수로 쓸 물도 모자라서 콩나물 재배가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냥 장아찌로 가는 편이 좋다. 김치? 김치를 현대식으로 만든다면 보관기간이 짧아서 힘들다. 왜냐하면 김치 뿐 아니라 피클이나 장아찌 등의 보존식들은 현대에는 장기보관의 필요성이 적어지며 염도를 많이 낮춰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그나마도 날이 지날수록 저염식을 강조하며 점점 낮아지고 있다). 장기보관을 하려면 염도를 장아찌 정도로 높여야 한다.

만약 쌀 위주의 문화권에 떨어졌다면 도정기술이 발달하게 하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서민들은 일단 배부터 채우려고 반찬은 적게 먹고 밥을 많이 먹게 되는데, 백미가 일상이 되면 각기병이 생기기 쉽기 때문. 일본의 경우, 서구화로 인해 백미가 일상이 되면서 각기병이 엄청나게 퍼졌다.

2.2.4. 방독면

얼핏 생각해보면 사치같지만 만들기만 하면 여러 환경에서 일하는 인부들, 그리고 화학전이 벌어졌을 때 군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물건으로 과거 역병 의사가 쓰던 마스크보다 성능이 더 좋을 것이다. 일단 솜으로 막은 통에 활성탄[11]을 넣어서 정화통을 만들고, 호흡기와 눈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정화통을 연결하면 완성이다. 참고로 중요한 건 만들 때 조금이라도 공기가 새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방독면은 정화통이 공기에 노출되면 정화력이 떨어지니 사용하지 않을 거라면 밀봉해서 보관하라고 말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2.2.5. 콜레라

탈수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설탕소금을 적정량 섞은 물, 혹은 희석한 바닷물을 공급해주는 치료가 유효하다. 대충 깨끗한 물 1 L당 소금 2.5 g(반 티스푼)과 설탕 30 g(6 티스푼)을 넣고 잘 섞으면 된다. 혹시 사탕수수가 보급되지 않거나 귀한 동네라면 꿀을 사용하자. 그것조차 귀하다면 조청이나 물엿. 좀 더 자세한 것은 경구수액 만드는 법을 참조하자.

다만, 이 방법은 탈수 증상을 완화하는 데만 도움을 주지, 병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병의 확산을 막는 데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응급처방임을 강조하자. 재수 없으면 희석한 소금물을 먹였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죽었다고 덤비는 유가족에게 밟혀버리기 딱 좋다.

2.2.6. 모기장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하다. 모기는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한다. 모기가 없는 세계라고 해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은 분명 있을 것이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실로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면 끝! 문제는 모기해충이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망을 짜야한다는 것인데, 이건 본인이 직접 연습하든가, 재주 있는 사람에게 만들도록 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망을 짜는 계피처럼 해충이 싫어하는 천연 방충제로 처리하면 더더욱 좋다. 귀족들에게 숙면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면 제법 돈을 만질 것이다.

이런 단순한 걸 설마 발명 못했을까 느껴질 텐데, 사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이집트 파트에서 언급이 될 정도로 모기장 자체는 오래된 물건이다. 하지만 조선 말 개항기 때 산업화를 미처 다 하지 못한 일제가 조선에 팔아서 돈을 짭짤하게 번 물건 중 하나가 모기장이다. 이미 있는 상품이라고 해도 산업적으로 대량생산을 한다면 경제성이 충분히 있는 상품이다.

마법사가 제충 결계를 치는 세계라면 높으신 분들에게 팔아먹기는 글렀으니 싼값에 찍어내 농민들에게 뿌리도록 하자.

2.2.7. 비누

비누는 이 항목에 있는 것 중 가장 만들기 쉽고 안전한 것이다. 몸만 청결히 해도 전염병의 70%는 예방할 수 있다. 영아 사망률을 낮추고 평균 수명을 높이는 데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다.

비누의 제조법은 간단하다. 식물을 태워 만든 재에 물을 내려 만든 잿물을 동물성 기름이나 식물성 기름과 혼합해 계속 저으면 끓이면, 비누(지방산염)와 글리세롤이 나온다. 이것을 틀로 만들어 굳히면 완성이다. 원리는 재가 포함하고 있는 탄산칼륨을 수산화칼륨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잿물 추출은 너무 비효율적이기에 더 확실하게 수산화칼륨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재를 물 대신 석회유(수산화칼슘 과포화 용액)와 반응시키면 더욱 확실하게 수산화칼륨을 만들 수 있다.

석회유는 어떻게 만드냐고? 탄산칼슘(석회석이나 조개껍질)을 900℃ 이상 가열하여 생성된 산화칼슘(생석회)에 물을 가하면 수산화칼슘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석회수라고 한다. 여기에 그대로 재를 넣어 수산화칼륨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이러면 생성물이 적기에 거름종이나 천 등으로 여과하여 물을 제거해 수산화칼슘을 추출한 뒤, 물이 뿌옇게 될 때까지 녹이면 석회유가 만들어진다.

중세 당시의 비누 제조법 기록을 보면, 그냥 잿물을 만든 후 하루 재워 둔 다음, 거기에 뜨거운 물에 푼 생석회(이게 석회유)를 넣어서 다시 섞고 하루를 재워 둔 뒤 그것을 끓이며 녹은 유지와 섞으면 된다고 했다. 원리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비누는 빨래용으로나 쓸 정도로 품질이 좋지 않은 데다가 (잿물 추출로 생산하는 것 한정으로) 생산성이 나쁘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중세의 비누 레시피이니만큼 중세인들 기준으로는 쓸만할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비누 역할을 하는 천연 재료를 주로 사용했었다. 그 예시로, 이나 , 녹두를 짓이겨 세수목욕에 쓰거나, 잿물, 오줌(...)을 빨래에 사용하거나, 창포로 머리를 감고, 비누 풀이라고 불리는 사포나리아 계열 식물을 사용하는 것 등이 있었다.

사실 동아시아에서야 비누 생산이 적어서 대용품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유럽은 게르만 부족들이 비누로 씻는 것을 매우 좋아한 덕에(...) 중세 혼란기 무렵부터 공장이 이곳저곳에 세워져서 비누 문화가 일반화 되었다.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 혼란기에 발전한 드문 케이스. 근세 무렵에는 애덤 스미스국부론에서도 양초와 함께 생활 필수품으로 언급된다. 유럽을 모티프로 한 세계라면 비누가 이미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때문에 유럽풍 판타지 세계로 간 현대인이 비누를 전파하는 클리셰는 다소 고증을 무시한 편의주의적 장면이다.

세안이나 목욕으로 쓰기에 좋은 비누는 역시 소금물을 전기분해해서 나온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고, 꽃잎의 즙을 짜내어 향을 첨가하는 것이다. 사실 현대적인 의미의 비누는 수산화나트륨이 없으면 제조할 수 없다. 수산화 나트륨가성소다퉁퉁마디라는 해초 또는 다시마, 켈프 같은 갈조류 를 태워 얻은 잿물에서도 추출이 가능하다. 물론 전기를 구할 수만 있다면 전기가 더 쉽다.

여담으로 제조시 소금을 넣고 더 끓이면 글리세롤과 비누가 분리되는데, 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의 원료니 잘 모아두자.

그리고 식생활에서는 분뇨를 이용한 퇴비로 키운 농작물을 소금물을 이용해 씻어준다면 식중독이나 기생충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음식 항목에서 보다시피 전근대 시대 기준으론 소금은 꽤나 귀하다는게 문제. 소금이 어렵다면 식초물에 야채를 담가두었다가 먹는 것만 보급되어도, 기생충 질환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2.2.8. 치약

인류는 예로부터 충치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치약을 만들면 어느 정도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 현대적인 불소 치약은 개인이 만들 수도 없고, 위험하기도 하니 대신 천연 치약을 만들자. 재료는 탄산수소나트륨, 소금, 규조토 가루(없다면 석영이나 규석을 부숴서 만들자.), 녹차가루, 박하 즙이 필요하다.

탄산수소나트륨은 세정제, 소금은 염증과 구취제거, 규조토는 연마제, 녹차 가루는 미백과 구취 제거, 박하는 구취제거용이다. 탄산수소나트륨 30g, 소금 20g, 규조토 3g, 녹차가루 2g에 미량의 물을 넣고 밀가루 반죽하듯이 잘섞는다. 그 다음에 박하 즙 4방울을 섞은 뒤,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끝. 유효기간은 약 1년 정도다.

치약을 만들었으니 칫솔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실 치약이 허접해도 칫솔을 만들 수 있다면 충치는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사실 충치 예방에 있어선 양치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지, 치약은 미백 연마제에 더 가깝다. 과거에는 소금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 안을 손끝으로 이리저리 닦아주었는데, 이걸로도 효과가 있었다. 때문에 만일 칫솔이 등장하면 혁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초기의 강모 칫솔은 멧돼지의 뻣뻣한 털이나 말의 털을 이용했다고 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2.3. 세균 병기

방법 자체는 더럽게 간단하면서도 효과는 죽여준다. 비유가 아닌 진짜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에서 혈액을 추출한 뒤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아님 전염병으로 죽은 환자의 시신을 투석기 등으로 투척하거나. 실제로 블라드 가시공은 병에 걸린 병사를 오스만군 진지로 보내 돌림병을 유도하기도 했다.

다만 반드시 자신 및 아군에게는 예방접종이나 방역 등의 조치를 미리 취해놓아야 한다. 또한 만약 당신이 적에게 잡혔다면, 화형 혹은 그 이상 끔찍한 처형을 당할 확률은 99%라고 보면 된다.+ 지옥행은 덤이고. 아니, 사실 이것도 양반인데... 잘못해서 돌연변이 등으로 인해 통제가 안되고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퍼져나가 죽어나간다?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2.3.1. 박테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수인성 전염병은 아군의 방역 체계가 갖춰졌을 시 역효과를 최소화하면서도 이용하기 쉽고 효과도 좋다. 대부분 환자의 몸에서 바로 추출한 피나 대변, 구토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적의 수원지나 식품을 오염시키는 방법이 좋으나, 탄저균 같은 경우는 건조시킨 포자를 이용하여 분말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2.3.2. 바이러스

환자의 혈액 등을 채취하여 거름종이를 이용하여 하부액으로 걸러낸 뒤, 달걀에 작은 구멍을 내어 하부액을 집어 넣은 후 밀봉하여 배양한다. 특히 천연두는 자신의 진영에 종두법을 완전히 보급했다면 시신에서 고름을 짜내어 얻은 천연두 바이러스를 배양해서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만든 뒤 살포하는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3. 관련 문서



[1] 대철학자 데카르트만 해도 겨울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패턴에 적응 못해 폐렴으로 죽었다. 심지어 추운 겨울에는 똥싸다가 뇌혈관이 터져 죽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2] 프리츠 하버의 질소 비료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3] 알다시피 대한민국에도 이게 있다. 바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4] 산욕열 문서에 나오는 사람 맞다.[5] 장기(瘴氣), 독기.[6] 참고로 이 시기는 구한말 무렵 제중원을 통해 한반도에 근대 의학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불과 몇 년 앞선다. 제중원을 세운 의사 호러스 뉴턴 알렌은 의대 차원에서 근대 위생학의 기초개념을 배우기 시작한 거의 첫 세대에 속하는 셈이다.[7] 염산도 좋고 황산도 좋고 인산도 좋고[8] 후술하겠다시피 약학대학, 화학과, 화학공학과 이런 쪽이라면 알 수는 있겠다만...[9] 2차 세계 대전 당시만 해도 공공연히 저걸 썼다. 미군, 영국군은 벤제드린(Benzedrine), 독일 국방군은 페르비틴(Pervitin), 일본 제국군은 히로뽕(ヒロポン).[10] 슬픈 사실은 지금도 일본에서는 목욕 물을 한 번 받아서 일가족이 그렇게 '커다란 체로 휘저어서' 순번대로 재사용한다.[11] 활성탄은 당시 기준으로 레몬즙에 숯가루를 섞고 물기를 빼면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