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9년 당시 대한제국 내부 위생과 위생작업실. 백신 제작을 위한 송아지가 보인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소장 「Resident General of Chosen, The Second Annual Report on Reforms and Progress in Korea(1908-1909)」 | 1915년,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 예하 세균검사실(細菌檢査室)로 사용되던 당시의 번사창. 천연두 백신 생산을 위한 송아지들을 선별하고 있다.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소장 『ANNUAL REPORT』 |
1. 개요
種痘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백신을 인체의 피부에 접종하는 방법.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개안한 우두(牛痘:소의 두창) 고름을 이용하는 우두법이 대표적이다.
2. 역사
천연두는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이었지만, 한 번 걸렸다가 생존하면 천연두에 대한 항체가 생겼고, 이를 역이용해 인두법(variolation)이라는 예방법을 고안하였다.인두법은 중국에선 약 16세기에 고안되었고 인도에서는 18세기 중엽에 고안되었으며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딱지를 말리는 등의 방법으로 약독화한 후에 사람에게 접종하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다. 특히 건국 초기에 천연두에 데인 청나라 당국에서 대대적으로 권장하였고, 조선에는 약 17세기에 전파되고 도입되었으며, 유럽도 18세기에 오스만 제국을 통해 전파되어 우두법이 대중화될때까지 널리 쓰여지게 된다. 1880년대 조선 후기 외국인 의사로 활동했던 알렌의 기록에 조선에서 시술되던 인두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1]
그러나 인두법은 약독화시킨다 해도 천연두 바이러스를 채내에 주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컸다. 잘못 할 경우 오히려 멀쩡한 사람이 천연두에 걸릴수 있었으며 치사율도 대략 1~2% 정도 되는 위험한 방법이었다.[2] 때문에 미국은 보스턴 등에서 제한적으로 인두법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치사율 문제로 인두법 시술을 금지했다.
그러던 중 1773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고향 마을에서 개업의로 일하게 된다. 이때 우유 짜는 부인들이 소의 천연두인 우두(牛痘, Cowpox)에 감염되는 일이 있는데 이 병을 가볍게 앓고 나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두 바이러스의 표면 막에 천연두 바이러스의 것과 동일한 부분이 있었기에 우두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항체가 천연두 바이러스에도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한 인체 실험이 필요했는데 존 필립이라는 당시 62세의 노인이 9세 때 우두를 앓았다고 실험에 자청하였다. 제너는 천연두의 병균을 노인에게 접종하게 된다. 결과는 접종 부위에 약간의 발진이 발생했지만 5일 후 회복되었다. 한 번 우두에 걸리고 나면 50년이 지나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 후 1796년 우두농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James Phipps, 1788년 ~1853년)의 팔에 접종하고 6주 후 천연두농을 그 소년에게 접종하였으나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여러 번의 확인을 거친 후 1798년 제너는 우두를 사용한 종두법(우두법)을 발표했다. 물론 소의 바이러스를 접종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이 꽤 많아서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3] 그러나 종두법은 곧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천연두 퇴치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제너가 종두법의 특허를 포기하고 무료로 배포했던 것도 한몫 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이 대서양을 건너는 방법이었는데, 미국은 쌈박하게 스페인에서 고아 24명을 모집해다가 배안에서 서로 감염시켜 바이러스를 산채로 옮겨왔다.
한국에는 다산 정약용이 박제가와 함께 연구 후 자신의 저서『마과회통』(1798) 에 최초로 종두법을 소개했으나, 이는 사람의 천연두균을 이용하는 인(人)두법이었다. 우(牛)두법은 구한말 지석영에 의해 일본에서 도입되었으며, 그는 일본에서 우두를 들여와 당시 2살이었던 처남에게 접종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두법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1895년 을미개혁 당시엔 정부 주도로 종두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에는 1848년 헌종시기에 사가 번 번주 나베시마 나오마사가 최초로 도입했다.
한국 근대 초기 인구증가에 큰 기여를 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종두법의 보급은 1880년대 후반부터 급속하게 진행돼 1900년을 전후해 일반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안정적인 증감을 반복하던 0-4세 미만의 인구비중이 1880-90년대를 기점으로 크게 증가한다. 이는 이 연령대의 생존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역시 종두법으로 인해 유신 이후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3. 방법
초기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소의 우두 고름을 채취하여 사람에 접종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곧 소나 말 등의 동물에 인위적으로 발병시킨 후 위생적으로 채취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열소독된 분지침을 백신 용액에 담근 후 팔의 어깨 부위나 발 등의 피부를 수차례 찔러 접종한다. 그러면 접종 부위가 3일 - 4일 내로 붉은 발진이 일어나게 되며 1주차에 고름이 찬 농포를 형성한다. 2주차는 농포가 말라 딱지가 형성되며 3주차가 되면 딱지가 떨어지며 흉터가 남게 된다.사용되는 균주는 처음에는 우두 바이러스(cowpox virus)가 사용되었지만 나중에 바키니아 바이러스(vaccinia virus)가 사용된다.[4]
현재는 천연두는 없어진 전염병이므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접종을 하지않고 있다.[5]
4. 효과
지금까지의 역사적 통계를 통해 95%의 천연두 예방 효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원숭이 두창(Monkeypox), 우두를 비롯해 다른 오르토두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질병에 대한 예방력도 갖는다. 물론 다른 백신과 마찬가지로 접종 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떨어지는데 유럽에서 행해진 연구에서는 접종 10년 내에는 치사율 1.3%, 접종 10년 ~ 20년 치사율 7%, 20년 이후는 치사율 11%로 증가한다.[6]5. 기타
대체역사물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간단한 시술만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기에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다만 '우두'는 유럽 지역의 풍토병이라 그 외 지역에서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과거 기록을 보면 유럽 이외에도 '우두'와 같은 질병이 여럿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 다른 지역에 '우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우두라는 병이 타 지역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며, 우두를 섣불리 넣었다간 고증오류가 될 것을 우려해 우두와 유사한 마두를 이용하거나 아예 인두법을 원역사보다 일찍 도입하는 대역들도 많다.
5.1. 우두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와 근육조선에서는 서양과의 통교로 가축을 들여오고 나서야 인두법 이외의 종두법을 개발한다.5.2. 마두
말과의 인수공통전염병인 '마두'를 활용하는 작품도 생겼다. 종두법에 사용되는 바키니아 바이러스가 말이 근원지라는 가설이 있으므로 그렇게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단종은 한명회가 필요해요에서는 36화부터 마두에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데, 울라산성에 있던 이만주 휘하의 여진족 소굴에서 잡아 온 말들에 의해서 조선 반도에 마두가 전파되었는데, '몽고나 달단 쪽에서는 (마두 증상을 보이는 말을) 흔히 볼 수 있다'고 언급된다.
내 조선에 세종은 없다에서는 234화부터 마두에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데, 태녕위와 복여위 등에서 수입한 몽골 말들에 의해서 마두가 조선 반도에 전파되었다.
6. 관련 문서
[1] 알렌의 기록에 따르면 1880년대 당시 인두법을 시술받는 사람은 100명 중 60명 ~ 70명꼴이었다고 한다.[2] Smallpox, A Great and Terrible Scourge,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09 December 2011링크[3] 어느 정도냐면 당시엔 우두를 접종받으면 소처럼 변한다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천연두 환자 집에서 굿하는 거로 짭잘하게 벌어먹던 무당들이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여겨 우두를 맞아도 마마(천연두)에 걸리고 오히려 마마 귀신이 진노해 마마가 더 심하게 퍼진다는 유언비어까지 뿌려가며 종두법 도입을 방해했다.[4] 이 바이러스는 우두 바이러스나 천연두 바이러스와 유사한 종이지만 어떻게 접종에 사용되게 되었는지는 기록의 부족으로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 말에게서 유래된 바이러스라고 추정하고 있다.[5] 그 이유는 알레르기 반응 등 가벼운 부작용이 소수 보고된 바 있고, 백만 명 중 두 명 정도(0.00198%)가 뇌염 및 접종 부위의 괴사로 인해 사망한 과거의 기록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위험성과 접종에 드는 비용을 이미 공식적으로 박멸된 질병을 위해 굳이 감당할 필요가 없다.[6] Mack TM (1972년). “Smallpox in Europe, 1950년 – 1971년”. 《J. Infect. Dis.》 125 (2): 161–169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