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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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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16대 황제
숭정제 | 崇禎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ng_Chongzhen.jpg
출생 1611년 2월 6일
순천부 자금성
(現 베이징시 둥청구 징산첸제4호)
사망 1644년 4월 25일 (향년 33세)
순천부 자금성 만세산
(現 베이징시 서성구 경산공원)
능묘 사릉(思陵)
재위기간 명 신왕
1622년 10월 26일 ~ 1627년 10월 2일
제16대 황제
1627년 10월 2일 ~ 1644년 4월 25일
서명
파일:숭정제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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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성씨 주(朱)
유검(由檢)
부모 부황 광종 정황제
모후 효순황후(孝純皇后)
황후 장렬민황후(莊烈愍皇后)[1]
묘호 남명
사종(思宗) → 의종(毅宗) → 위종(威宗)[2]
청조
회종(懷宗)
시호 남명
소천역도강명각검규문분무돈인무효열황제
(紹天繹道剛明恪儉揆文奮武敦仁懋孝烈皇帝)
청조
장렬민황제
(莊烈愍皇帝)
연호 숭정(崇禎, 1628년 ~ 1644년) }}}}}}}}}
1. 개요2. 생애
2.1. 생모 유씨에 관한 이야기2.2. 인간상2.3. 최후
3. 평가4. 가족관계5. 미디어에서
5.1. 드라마
5.1.1. <강산풍우정>5.1.2. <천하>5.1.3. 기타
5.2. 영화5.3. 소설
5.3.1. 《벽혈검5.3.2. 《마지막 황제, 칼끝에 서다》5.3.3.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
5.4. 만화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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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1655902969712.jpg

명나라의 제16대 황제이자 사실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3]

휘는 유검(由檢)이었으며, 제14대 광종 태창제 주상락의 5남으로 제15대 희종 천계제의 이복동생이었다.

묘호가 여러 개인데, 1644년의 명나라 멸망 이후 청나라회종이라는 묘호를,[4] 남명 정권은 사종이라는 묘호를 올렸다가 이후 의종, 위종이라는 묘호를 올려 총 4개의 묘호를 받았다. 이 중 남명 정권에서는 의종이라는 묘호를 최종적으로 승인했고, 오늘날에도 청나라에서 추숭한 회종보다도 의종이라는 묘호가 널리 쓰인다.

다만 중국에서는 명사종이라고 부르고, 베트남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의종이라는 표기는 주로 일본에서 쓰였으며, 한국에서도 그대로 부른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숭정제'라고 통일해 부르는 경향이 있다.

숭정제는 망국의 황제임에도 비교적 평가가 좋은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5] 제13대 신종 만력제의 막장 행각과 제15대 희종 천계제의 무능함으로 인해 말 그대로 막장이 된 명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애썼으며 간신 위충현을 위시한 부패한 환관들과 관료들을 대거 숙청하고, 동북의 만주족(여진족)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여러 실책을 저지르면서 결국 명나라는 청나라의 침략과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하고, 숭정제는 자금성에서 자진[6]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를 살리기 위한 고군분투만큼은 후대에 널리 인정받아서 망국의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호평받기도 한다.

2. 생애

만력 38년(1610년)[7]에 신종 만력제의 장남 주상락의 5남으로 태어났으며, 생모는 숙녀[8] 유씨였다. 부친인 주상락은 모친 유씨를 총애하지 않았고, 아들인 주유검 역시 소실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사랑하지 않았다. 게다가 만력 42년(1614년) 주유검이 5세 때 생모 유씨가 갑자기 사망했다. 《명사》에서는 유씨가 태자 주상락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쫓겨나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복형인 주유교가 황제로 등극한 후 천계 2년(1622년) 13세의 나이로 신왕에 책봉되었으며, 천계 7년(1627년) 8월 희종이 붕어한 후 제위를 계승했다. 이복형과는 달리 강학에 열중하고 경전을 즐겨 읽었으며, 역대 성군과 현신들의 어진 정치 및 가르침을 진정으로 배우고자 했다. 문화전과 무영전 등 궁궐 곳곳에 그들의 초상화와 잠언을 걸어놓고 귀감으로 삼았다. 또 치국의 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도 강했다. 그러나 정작 숭정제에게는 의심이 많고 독단적이라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2.1. 생모 유씨에 관한 이야기

파일:292px-孝純恭懿淑穆莊靜毘天毓聖皇太后.jpg
의종 숭정제의 모후인 효순황태후 유씨의 초상화.

당시 정귀비의 끊임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린 태자 주상락은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았다. 가끔 발작 증세가 나타나면 평소에 미워하던 유씨에게 미치광이처럼 달려들어 횡포를 부렸다. 유씨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주상락에게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곧 주상락의 발작 증세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신종 만력제와 정귀비가 유씨의 사망 원인을 알았다면 태자 주상락은 당장 폐위를 당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신종과 정귀비가 틈만 나면 신종의 3남이자 정귀비의 소생인 복왕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하려 했기 때문이다.(쟁국본) 그래서 주상락은 신변의 내시와 궁녀들을 뇌물로 매수하여 유씨가 병사했다고 꾸민 뒤,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켰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유씨의 시신은 궁녀의 신분으로 서산에 매장되었다. 서산은 환관이나 궁녀가 죽으면 매장되는 곳이었다. 생모를 잃은 주유검은 부친 주상락의 후궁들인 서리(서쪽의 선시 이씨)와 동리(동쪽의 선시 이씨)의 손에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주유검은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는 생모 유씨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생모의 죽음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무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주유검이 욱근궁에 거주할 때 시종과 나눈 이야기는 이랬다.
"서산에 신의왕의 무덤이 있는가?"
"있사옵니다."
"그 옆에 유귀비의 무덤도 있는가?"
"있사옵니다."
신의왕은 명나라 제8대 황제인 헌종 성화제의 14남 주우해를 말한다. 누구도 감히 공개적으로 주유검에게 생모 유씨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자나 깨나 생모를 그리워하는 그를 가엽게 생각한 어떤 이가 신의왕 주우해의 무덤 옆에 생모 유씨의 무덤이 있다고 몰래 알려주었을 것이다. 주유검은 시종에게 은자를 내어주면서 무덤을 새롭게 단장시킨 후,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달려가 제사를 성대히 지내고 어머니 유씨의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무슨 오해를 살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였기 때문에 나설 수 없었다.

훗날 황제로 즉위한 후 숭정제는 생모 유씨를 '효순황태후'로 추증하고 시신을 광종 태창제의 경릉에 합장했다. 원한을 품고 죽은 유씨가 아들이 황제가 된 덕분에 사후에라도 태후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숭정제는 외조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로 모시고 와서 '영국태부인'의 작위를 하사했다. 그동안 핍박을 당한 외척들을 우대하여 생모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숭정제는 생모 유씨가 너무 그리웠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이별한 까닭에 생모의 얼굴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생모와 함께 지낸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9] 초상화가 장엄한 의식 속에서 정양문을 통해 황궁으로 들어올 때 숭정제는 오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로 초상화를 맞이했다.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신하들도 따라서 울었다.

2.2. 인간상

숭정제는 통찰력이 있고, 주도면밀하며 부지런했다는 장점을 가진 군주였다. 숭정제 자신의 업무 능력과 근면함은 명나라 역사상 비슷한 황제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을 정도였고, 그만큼 부지런한 황제는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몇 명 없었다. 오죽했으면 황제의 옷소매가 해질 지경이었다.

주유검이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11세였던 해에 이복형인 천계제가 16세의 나이에 갑자기 황제가 되었는데, 천계제는 정사를 등지고 목공예에 몰두한 것과는 별개로 동생 주유검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아 동생의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러한 형의 뒷받침 덕에 숭정제는 많은 학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형은 임종에서도
"너는 나보다 뛰어나니 성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

부패한 국가를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고 발버둥치는 과정 속에서 비록 여러 실정과 오판 역시 남겼지만 끝내 명나라가 망국의 단계에 다다르자 황제로서 모든 책임을 떠안고, 과오를 자신에게 돌리며 자결한 점만 봐도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 큰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위 초에는 위충현 일파를 제거하기도 했고, 황제 자신이 상업적인 수완을 발휘해 수만 냥을 국고에 보태기도 했으며, <죄기조>에 따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내 백성들에게 잠시 1년만 폐를 끼치겠다.'며 세금을 올리겠다고 호소하면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평 불만없이 묵묵히 받아들였을 정도로 백성들은 숭정제를 믿고 따랐다고 한다. 또, 후금의 침략에 맞서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데 힘을 쏟아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양식 화기 공장을 설치하기도 했으며, 황제 자신이 직접 아담 샬과 함께 명나라의 과학 기술을 이끌던 서광계에게 서양학 수업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간 명나라가 사용해온 역법이 오래되어 실제 천문과 맞지 않음을 알고는 예수회 성직자들을 동원하여 서양식 천문지식을 도입한 《숭정력》을 만들었으나 결국 명나라가 1644년에 멸망하여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역법은 청나라 시기에 《시헌력》으로 완성되었으므로 아주 헛수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숭정제는 성질이 급하고 의심이 많으며, 독단적이었다는 단점이 큰 문제였는데 이로 인해 결국에는 여러 큰 실책들을 저질러 명나라의 멸망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잘못한 부분이 있거나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가 있으면 바로 목을 베는 등 신하들에게 결코 기회를 주지 않아 숭정제 시절의 신하들은 실패하면 바로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찮다. 숭정제 입장에서는 무능한 황제들이 여럿 거쳐가면서 썩어빠져버린 관리들의 기강을 단시간에 바로잡으려면 저런 방법밖에 없었다는 것이 반론의 논지다. 이 세상 어느 나라든 가정제, 만력제나 천계제 같은 무능한 황제들이 연속으로 지나간 이 시대와 비슷한 상황을 거쳤다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이 정도로 개판이면 이미 수습은 포기하고 현실 부정과 폭력으로 연명하려 했을 법도 한데 숭정제는 나름대로 현실 감각있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숭정 10년(1637년)에 발표한 <죄기조>에서 그는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명나라의 부패한 현실을 남김없이 솔직하게 지적했다. 이는 숭정제가 당대 명나라의 문제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벼슬하는 자들은 오로지 제 몸을 가지고 일을 꾀하는데, 관직을 장사처럼 생각하여 한껏 차지하고도 더 욕심을 부린다. 심지어는 파면을 당하고도 명령을 어기고 마구 긁어모으며 기회만 생기면 배를 채운다. 또 공신이나 척족들도 만족을 모르고 수도와 지역 땅을 탐욕스럽게 사 모은다. 지방관들은 지역 방어의 본분을 잊고 마을을 침탈하는데, 무뢰배들을 수족으로 삼고 간악한 자들을 받아들인다. 못난 관리들은 세력가들이 두려워 꼬리를 치며 아부한다. 악이 쌓여 관아를 좀먹으니 빌미만 생기면 낚아챈다. 오호라! 연약한 백성들이 어찌 편히 발을 뻗고 쉬겠는가!"

애초에 숭정제는 무능한 사람을 봐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주요 원인들 중 하나가 대규모 농민 반란이었는데, 이 농민 반란의 초기 형태는 신종 만력제 치세의 후반부터 이미 터져나오고 있었다. 관중 지방(현 섬서성)은 중국 역사 내내 경제적, 군사적으로 요충지였으나 송대와 원대를 지나면서 생산력이 급감했다. 명나라 중기 이후로 관중 지방에 주둔한 군대의 식량을 보급해주는 행정체계가 붕괴되고, 군대뿐만 아니라 농민들도 굶어 죽을 판이 되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였던 탈영병들과 농민들이 유민이 되어 무장을 갖춘 뒤 명나라 조정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특히 농민 반란도 명나라 관군이 적극적으로 진압하여 1637년에는 거의 사그라들었지만, 하필이면 그때 청나라가 대규모 병력으로 북변을 공격하자 북경의 명 조정은 농민 반란군을 완전하게 진압하기 직전에 정부 진압군을 동북방의 방어선으로 돌려야 했다. 그리고 계속된 전쟁으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재정이 파탄났고, 1639년부터 자연재해가 겹쳐 기근이 일어나자 사정이 더욱 악화되어 농민 반란이 다시 대폭발했다. 실로 절묘한 시점에서 역사적인 요소들이 결합하여 명나라는 1644년에 멸망했다.

결론적으로 숭정제는 분명 나쁘지 않은 자질을 가진 군주였지만 그가 등극한 시점에서 명나라는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라고도 볼 수 있다.

2.3. 최후

결국 이자성의 난으로 수도 북경대순군에게 포위되면서 무너질대로 무너진 명나라의 운명을 실감하게 된 숭정제는 마지막 조회를 열었다. 그땐 이미 북경성이 이자성의 군대에게 함락된 후로 숭정제와 함께 하고 싶었던 대신들은 길이 막혀 들어오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최후를 각오한 숭정제는 수행하던 환관 왕승은(王承恩) 한 명만을 뒤따르게 하고[10] 자신의 도포에
짐이 등극한 지 17년, 역적(이자성)이 경성을 핍박하니 짐의 보잘것없음과 박덕함을 하늘조차 꾸짖는구나. 선조들이 이룩한 나라를 내가 부덕하여 이런 지경으로 이끌었으니 죽어 지하에서 조상을 뵐 면목이 없으니 짐의 의관을 벗겨 얼굴을 가려라. 명나라의 백성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명나라에 대한 그대들의 분노는 나의 시체에만 풀어주길 바란다.
라는 글을 남긴 채 회화나무에 목을 매 자진했다.[11] 이때 황제를 따르던 환관 왕승은도 그 뒤의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주군의 뒤를 따랐다.[12] 황후 주씨도 자결했는데 북경에 입성한 이자성은 숭정제와 주씨의 합장묘를 만들고 순사한 왕승은의 무덤도 만들어 주었다.[13]

숭정제는 자결하기 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황태자 주자랑을 포함한 세 아들을 여장시키고 외갓집인 전씨에게 가서 숨어 있도록 탈출시켰다.[14] 숭정제의 태자 주자랑은 동생들과 함께 이자성에게 붙잡혀 있다가 전란 중에 태자 주자랑은 살해되고, 동생들도 함께 주살되었다. 주자랑은 나중에 남명 정권에서 홍광제에 의해 '순종 도황제'로 추존되었고, 그의 부인이었던 태자비 영씨는 살아남아 청나라의 예친왕 도르곤에게 바쳐졌으나 수절하고 오래지 않아 병사했다. 사후 도르곤이 청군과 함께 북경에 입성하면서 자결한 숭정제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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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역대 황제 16명 중 가장 평가가 극명히 갈리는 황제로, 망국으로 가는 현실에 치여 행적이 악조건에서 최선을 다한 황제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나마 명나라의 수명을 늘린 황제 등의 호평도 많지만 그와 반대로 이미 망해가던 명나라의 수명을 더 단축시킨 황제 혹평도 많은 편이다.

4. 가족관계

숭정제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회은왕 주자훤, 도회왕 주자찬, 도령왕 주자환, 도량왕은 요절했고, 정왕 주자형과 영왕 주자소는 명나라가 멸망한 뒤 행방불명되었다. 황태자 주자랑은 전란 속에 죽었다.

5. 미디어에서

숭정제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나 문학들은 상당히 많은데 대체로 긍정적이고 영민한 인물로 묘사된다는 특징이 있다.

숭정제가 등장하는 중국 드라마에서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좌절해서 망가지는 모습이 대체로 많다. 다만 본인의 큰 단점인 의심이 많고 독단적이며, 작은 잘못도 용서하지 않는 포용력없는 성격이 큰 문제라 이로 인해 화를 자초한 것도 있다.

5.1. 드라마

5.1.1. <강산풍우정>

파일:/pds/200904/11/06/b0031106_49e03b5e6a0e9.jpg
드라마 <강산풍우정>의 주요 인물들. 맨 앞 가운데 백발을 휘날리는 사람이 의종 숭정제이다.

중국 드라마 <강산풍우정>의 주인공으로 명나라의 재건을 위해 분투하나 결국 좌절하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중국 배우 이강이 열연했다. 마지막에 백발을 휘날리며 자살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깊다.

파일:external/img.timetw.com/12222_2014212134730451.jpg
자살하려는 숭정제. 야사에 따르면 망국의 때가 다가오자 그 번민으로 하룻밤새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고 하는데 그걸 차용한듯 하다.

5.1.2. <천하>

중국 드라마 <천하>에 등장하는 숭정제는 아주 매력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젊은 황족이다.

제위에 등극하기 이전, 환관 위충현 및 동창에 맞서 명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계략도 상당히 잘 짜고 정치판에도 익숙한 것을 보면, 신하들을 의심하고 청나라의 속임수에 넘어가 엄한 장수나 죽일 것 같지는 않다.

<천하>에서는 주유검이 황위에 등극하는 것으로 끝난다. 제위에 등극할 때 손수 동창 건물을 폭파시키며 군왕의 포스를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숭정제와 같이 의심많고 너무 주도면밀해서 주변인들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마침내는 그간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전가의마저 암살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참 입체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5.1.3. 기타

2016년 작 드라마 <도깨비>의 고려 왕 왕여의 모티브가 숭정제라는 설이 있다. 숭정제가 명장 원숭환을 처형한 사건과 유사하게 극의 전개가 돌아간다.

5.2. 영화

주성치 주연의 <구품지마관>에서 포용성의 어머니가 그놈의 상방보검을 누구한테 받았는지 말하는데, 명나라의 숭정제가 하사한 보검이라고 말한다.

2013년 영화 <대명겁>에서는 잇다른 농민 반란군에 멘탈이 완전히 붕괴된 황제로 잠시 나온다. 여소군이 맡았다.

5.3. 소설

5.3.1.벽혈검

김용의 무협소설 《벽혈검》에서 주인공 원승지의 최대 원수로 나온다. 이유는 숭정제가 원승지의 아버지인 원숭환을 죽여서인데[15] 원승지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숭정제를 죽여 복수할 생각이지만 후술할 여자문제로 복수하지 못한다.

숭정제는 원승지를 사랑하는 장평공주 아구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숭정제는 딸 장평공주가 어렸을 때 행한 점괘에서 궁궐 내에 계속 키우면 화를 입는다고 하자 속가에서 자라도록 했다. 장평공주는 그 때문에 무공을 익히고, 원승지를 만나게 된다.

이후 명나라가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할 때(1644년), 숭정제는 자신이 죽고 나라가 망하면 공주가 욕을 당할 것[16]을 걱정하여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려고 장평공주에 칼빵을 먹였다. 그때 숭정제에게 복수하려고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원승지가 깜짝 놀라 장평공주를 구한다. 장평공주는 아빠한테 칼빵을 맞아 한쪽 팔이 잘리게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본 원승지는 숭정제가 나라를 걱정했던 황제라고 생각해 복수를 중단한다. 하지만 이후 숭정제는 역사대로 자살하고, 장평공주는 철검문 목상도인의 제자가 된다. 여담으로 장평공주는 《벽혈검 》의 다음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 《녹정기》에서 불교에 귀의해 구난사태가 되고, 철검문의 장문인이자 원승지에 버금가는 최고수신조협려2로 나온다. 또 《녹정기》의 주인공인 위소보를 제자 비스무리하게 받아, 신행백변의 경공을 가르치기도 한다.

5.3.2. 《마지막 황제, 칼끝에 서다》

한국의 대체역사소설《마지막 황제, 칼끝에 서다》에서의 주인공이 바로 주유검, 즉 숭정제이다.

정확히는 21세기 한국의 대학생이 주유검의 몸에 빙의되어 회귀한 주유검의 영혼과 함께 명나라의 멸망을 막고, 오히려 명나라의 전성기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여기선 원역사와 다르게 장렬민황후와 혼인하지 않는다.

5.3.3.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

또 다른 대체역사소설《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에서는 조선시대의 선비로 빙의한 주인공이 경산공원 의 회나무에 미리 가 있다가 목을 매달려는 숭정제를 꾸짖고 청나라군 전령의 복장과 표찰을 주어 환관 왕승은과 함께 남경으로 피난시킨다. 원래 역사와는 다르게 요동총관 오삼계산해관을 비우고, 명나라 최후의 정예병력을 이끌며 북경으로 왔기에 무사히 남경으로 탈출하여 남명을 세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정지룡정성공 부자, 남경 조정의 병부상서였던 사가법, 북경에서 함께 남하한 오삼계 등과 함께 남명을 수습해 안정시킨다.

5.4. 만화

파일:칼부림_숭정제.jpg
고일권 작가의 네이버 웹툰 《칼부림》에서도 등장한다. 후금군에게 중원이 유린당하는 상황에서 백성들을 생각하며 친히 갑주를 입고 전의를 다지는 군주다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원숭환을 의심하며 훗날의 몰락을 암시한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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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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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331·332권 「서역전(西域傳)」
합밀위 · 유성 · 화주 · 토로번 · 안정위 · 아단위 · 곡선위 · 적근몽고위 · 사주위 · 한동위 · 한동좌위 · 합매리 · 서번제위 · 오사장 · 아난공덕국 · 니팔랄국 · 타감오사장행도지휘사사 · 장하서어통영원산위사 · 동복한호선위사 · 살마아한 · 사록아해 · 달실간 · 새람 · 양이 · 갈석 · 질리미 · 복화아 · 별실리팔 · 합열 · 엄도회 · 팔답흑상 · 우전 · 실자사 · 엄적간 · 합실합아 · 역사불한 · 화랄차 · 걸력마아 · 백송호아 · 답아밀 · 납실자한 · 매진 · 일락 · 미석아 · 흑루 · 토래사 · 아속 · 사합로 · 천방 · 묵덕나 · 곤성 · 합삼등29부 · 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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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은 효절열황후 주씨(孝節烈皇后 周氏)라고도 한다.[2] 사종, 의종, 위종 3개는 남명에서 추숭했다. 21세기 현재 청나라가 추숭한 회종보다 의종이 주로 쓰인다.[3] 이후 사촌형인 주유숭이 추대되어 남명 정권이 들어서고, 대만의 정씨 동녕국과 연합하여 명나라 부흥운동을 이어갔지만, 조직력이 분열되어 중구난방으로 서로 황제를 칭한 데다가 남명의 수뇌부가 하나같이 무능하여 옛 남송처럼 오랫동안 독자적인 제국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남명 정권은 후대에도 정통 왕조로 인정받지 못해서 숭정제가 사실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통한다.[4] 보통 마지막 황제는 태묘에 배향될 일이 없으므로 다음 왕조에서 묘호를 올리지 않고 시호 정도만 내리는데, 숭정제는 이례적으로 청나라에서 묘호를 올렸다.[5] 명나라는 명 4대 암군 때문에 이미 오늘내일하던 상태였기 때문이다.[6] 자금성 뒤쪽에 위치한 '경산'(景山)이라는 곳에서 목을 매었다는 기록도 있다.[7] 만력 38년 음력 12월 24일에 태어났는데, 양력으로 환산하면 1611년 2월 6일이다.[8] 황태자의 소실들 가운데 품계가 가장 낮은 호칭이었다.[9] 이 때문에 현재 남은 유씨의 초상화도 생전이 아닌 사후에 그린 것이다.[10] 다른 기록에는 마지막으로 혈전을 벌이고자 궁궐 내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따르라고 했지만 죄다 달아나고, 왕승은 홀로 남아있자 주저앉으며 "이대로는 싸울 수도 없구나."라며 탄식하고는 자결했다는 내용도 있다.[11] 북경을 함락한 농민 봉기의 수령 이자성도 이 애통한 유서를 읽고서 감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자성의 농민군은 숭정제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보좌했던 관리들이 부패했다고 여겨서 그들을 고문하고 약탈했지 죽은 숭정제는 무덤을 만들어주며 예우했다. 이후 숭정제가 자살한 그 나무는 청나라도 건드리지 않고 되려 작게나마 제사를 지내, 숭정제의 넋을 위로하게 하여 명나라의 잔존세력을 회유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직접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먼저 멸망시키고 순나라를 세워 황제를 참칭한 이자성을 처단해 명나라의 원수를 갚고, 명나라를 국가승계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기 때문에 굳이 숭정제를 지울 이유는 없었다. 이 나무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게 베어졌고, 현재 있는 나무#는 1983년에 다시 심은 것이다.[12] 그래서 오늘날 중국 베이징에는 규료왕승은(叫了王承恩)이란 속담이 있다. 직역하면 '왕승은을 불러라'라는 뜻인데,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요즘 말로 노답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13] 다소 의외의 사실이지만 이자성과 그를 따른 반란군은 자신들한테 아부하고자 숭정제를 폭군이라고 비난한 명나라 대신들을 비열한 탐관오리라고 처벌했을 만큼 숭정제를 꽤 호의적으로 대우했다.[14] 당시 태자가 16세였고, 그의 동생들도 모두 10대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자성의 군대에 의해 잡혔다. 딸은 2명이 있었는데 장평공주와 소인공주 모두 "너는 황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외치면서 자살 직전에 숭정제가 직접 죽이려 했지만, 큰딸 장평공주는 팔 한 쪽만 잃고, 운 좋게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소설가 김용은 《녹정기》에 장평공주 주씨를 '구난사태'라는 여승으로 등장시켰다.) 장평공주는 탈출해서 숨어 살다가 청나라 순치 2년(1645년) 세조 순치제에게 글을 올려 용서를 빌며, 비구니로 살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순치제는 큰 위협이 될 것 없다고 판단하여 관대하게 대했으나 비구니로 살게 해달라는 요청은 거부하고, 대신 생전의 숭정제가 장평공주의 약혼자로 정한 주현(周顯)과 혼인하도록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1년밖에 되지 않은 1646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향년 (한국식 나이로) 16세 또는 17세에 불과했다. 황족으로 태어나 평민이 되었다가 결혼한 지 1년만에 요절한,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청나라 조정이 내린 시호가 장평(長平)이라 '장평공주'로 알려졌지만, 명 숭정제에게 공주로서 받은 봉호는 '곤흥'(坤興)이었다.[15] 김용은 스스로 인정했듯 당시만 해도 중화사상주의자였고, 청나라의 발호를 막을 수 있는 인물로 원숭환을 《사조영웅전》의 악비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숭정제를 욕하진 않지만 원숭환 처형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깐다.[16] 장평공주는 작중 최고의 미인이다. 멍청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여리여리한 성격의 소유자로, 아빠가 걱정하기 딱 좋은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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