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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오스트리아 공화국 Republik Österreich[발음] Republic of Austria |
국기 | 국장 | ||||||
상징 | |||||||
국가 | 산의 나라, 강의 나라 | ||||||
국화 | 에델바이스 | ||||||
국조 | 제비 | ||||||
역사 | |||||||
976년 오스트리아 변경백국 성립 1156년 오스트리아 공국 성립 1453년 1월 6일 오스트리아 대공국 선언 1526년 합스부르크 제국 성립 1804년 8월 11일 오스트리아 제국 성립 1806년 8월 6일 신성 로마 제국 해체 1866년 7월 27일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 연방에서 축출 1867년 5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 1919년 9월 10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성립 1934년 5월 1일 오스트리아 연방국 성립 1938년 3월 12일 오스트리아 병합 1945년 4월 1일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 성립 1955년 7월 27일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 |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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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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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도 | 109명/km²(2023년) | ||||||
출생 인구[2] | 84,952명(2019년) | ||||||
기대 수명[3] | 남녀 79.5 / 84.2세(2019년) | ||||||
출산율[4] | 세계은행 자료 1.40명(2020년)[5] CIA 자료 1.51명(2022년)[6] | ||||||
공용 언어 | 독일어[7] | ||||||
종교 | 그리스도교 67.3%(가톨릭 57.9%, 정교회 6.0%, 개신교 3.4%), 이슬람 8.0%, 무종교 외 기타 24.7% | ||||||
민족 | 오스트리아인 73.6%, 기타 26.4%[8](2022년) | ||||||
군대 | 오스트리아군 | }}}}}}}}} | |||||
하위 행정 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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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장 도시 | 15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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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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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지수 | 8.28점, 완전한 민주주의 (2023년) (167개국 중 18위) | ||||||
대통령 (국가원수) |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 [[무소속(정치)| 무소속 ]][9] | |||||
총리 (정부수반) | 카를 네하머 | [[오스트리아 인민당| 인민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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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재판소장 | 크리스토프 그라벤바르터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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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GDP(PPP) | 57,891 달러(202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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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량 | 1,602억 6,900만 달러(2017년) | ||||||
수입량 | 1,667억 100만 달러(2017년) | ||||||
신용 등급 | 무디스 Aa1 S&P AA+ Fitch A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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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 공화국(奥地利共和國[15], Republik Österreich), 통칭 오스트리아(奥地利[16], Österreich)는 중부유럽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연방 공화국이다.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서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가까이 붙어있다. 국토면적은 83,879㎢로, 국토가 알프스산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숲의 나라이며[17] 덕분에 낙농업과 겨울스포츠[18]가 성하고 있다. 수도는 빈이다.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9,104,772명이다.[19]요제프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를 비롯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고전음악가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음악의 나라이자, 현대 언어철학의 이정표를 세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현대물리학의 격전장이었던 비엔나 써클과 논술에도 출제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아르누보의 주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근대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미술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한 갈래인 정신분석학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드 아들러,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경제학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보디빌딩계 전설이라고 불리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고향이다. 또, 흔히 독일인으로 생각하는 나치의 퓌러였던 아돌프 히틀러의 고국이다.[20][21]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배우자 프란치스카 도너 리도 오스트리아인이다.[22] 2019년 기준 노벨상 수상자는 22명으로 세계 10위를 기록했으며[23] 독일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빈 대학교[24]는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25]
민족과 언어에서 독일과 같고, 중세와 근세 때는 명목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하나의 대제국으로 묶여있었다.[26] 실제로 19세기 초중반에 통일이 담론으로 떠오르면서 프로이센과 경쟁하기도 했고, 프로이센에게 패배하면서 독일과 갈라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완전한 통일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서 나치독일 치하에서 실제로 합치기도 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다시 갈라졌고, 분리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66년 이전까지는 독일과 역사를 공유하며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이탈리아 등 웬만한 유럽국가들의 역사에도 걸치고 있어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27]
서양사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던 19세기 말 ~ 20세기 시작기에는 문명사적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었다.[28]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패배로 인해 제국에서 소국으로 몰락하면서부터[29] 점차 암울해지기 시작하고,[30] 1934년부터는 히틀러 동조 세력에 휘둘리다가 1938년 병합되어 나치 독일의 일원이 되기에 이른다.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패배하여 4개 승전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후 해방되어 베를린과 함께 냉전의 최전방이었다가, 유럽연합이 동구권으로 확대되면서 동유럽과 만나는 중유럽의 관문으로 경제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을 떨게 만들고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제국으로서의 옛 영광을 생각한다면 현대의 오스트리아는 상대적으로 세계의 중심권에서 벗어나 있기에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철강과 기계공업 위주의 탄탄한 산업기반[31]을 바탕으로 한 높은 국민소득과 충분한 복지예산을 갖춘 살기 좋은 최상위 선진국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EU에 가입한 것 외에는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으며[32] 수도 빈의 유엔기구 도시(UNO City)[33]에 국제 원자력 기구 (IAEA), 유엔 마약 범죄 사무소 (UNODC) 유엔 협력 기구인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 (CTBTO) 등이 본부를 두고 있어 국제회의와 분쟁 조정의 무대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34]
2. 상징
2.1. 국호
오스트리아에서는 자국을 독일어로 '동쪽 나라'를 뜻하는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35]라 부른다.[36] 한국에서 사용하는 오스트리아(Austria)는, 과거 명칭인 오스타리히(Ostarrîchi)를 당대 공용어인 라틴어로 옮겼을 때 아우스트리아로 표기되었고 이를 영어로 읽은 것이 넘어온 것이다.한자로는 음차하여 오지리(墺地利)라 하는데, 이런 표현은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37] 북한은 1999년까지 공식적으로 문서나 신문과 방송 모두에서 '오지리'[38]라고 불렀다.[39] 다만 첫 글자 오(墺)자는 지금도 언론기사 제목이나 국제정치학에서 약칭으로 종종 사용된다.
동쪽 나라라는 명칭은 976년 신성 로마 제국 시절에 제국(Kaiserreich)의 최동단 변경백으로서 행정구역이 설치된 것에서 유래했다. 라틴어 원래 명칭을 해석하면 '국가 동부 변경백주'라는 뜻이 된다. 즉 원래는 '동쪽 나라'가 아니라 '나라의 동쪽'이라는 뜻이었다.
명칭이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오세아니아의 영어권 나라고 오스트리아는 유럽 중부의 독일어권 나라다. 이 두 나라는 발음과 마찬가지로 로마자 표기 자체도 서로 유사해 영어권에서도 흔히 혼동된다. 두 나라 이름 모두 라틴어 기원인데, 사실 원래라면 각각 동쪽과 남쪽을 뜻하는 접두어가 붙어 혼동될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외스터라이히를 라틴어로 동쪽을 뜻하는 오리엔스(oriens)라고 하지 않고 아우스트리아라고 표기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는 고대 독일어의 동쪽을 나타내는 오스트(ost)와 라틴어의 남쪽을 나타내는 아우스테르(auster)[40]가 같은 인도유럽어 어원을 공유하고 있는지라 게르만에서 오래 전부터 이 둘이 혼동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크 왕국이 분할 상속되었을 때 동쪽의 땅을 아우스트라시아라고 부른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외스터라이히를 번역할 때 '동쪽'을 염두에 두고 오스트리아로 번역했지만, 결과적으론 '남쪽의 땅'을 의미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이름이 유사해졌다. 하필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명칭이 '미지의 남방대륙'이란 개념으로 라틴어로 남쪽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두 나라를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아서 '오스트리아에 캥거루 없음(No kangaroos in Austria)'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이 문구를 새긴 티셔츠나 머그컵 등의 기념품이 제작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헝가리 제국 등의 인터넷 밈도 존재한다.
발음과 철자가 비슷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이승만의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 리는 호주댁이라 불렸으며, 6.25 전쟁 당시 호주군을 포함한 연합군 전투기들을 보고 사람들은 "사위의 나라를 구해주러 전투기 보내줬나 보다."라고 했다. 정작 진짜 장인 나라인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미영불소 4개국에 점령돼 제 코가 석 자였기 때문에 군대를 파병하거나 하지는 않았다.[41] 또 서울시는 G20 때 호주 총리의 캐리커처 인형에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히는 오류를 터트려 호주 당국의 항의를 받았으며, 이는 곧 입국 당시에 착용한 정장을 입은 상태로 수정되었다. 헷갈리는 건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의 주한 대사관이 모두 한 건물에 있다. 종로구 교보빌딩[42]에 있는데 주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이 19층,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21층에 있다. 층수도 고작 두 층 차이다 보니 헷갈릴 수 있다.
2.2. 국기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국기 문서 참고하십시오.2.3. 국장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국장 문서 참고하십시오.2.4. 국가
국가는 1946년에 지정된 산의 나라, 강의 나라(Land der Berge, Land am Strome)다.[43]3. 언어
공용어는 독일어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되는 오스트리아식 표준 독일어는 독일식 표준 독일어와 문어체에서는 기본적으로 문법이나 어휘 그리고 표현에서 몇몇 두드러진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어체에서는 앞서 언급한 문법이나 어휘 차이에 더해 억양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그래도 독일 지역 표준 독일어와 오스트리아 지역 표준 독일어는 상호 간에 방언이라고 여길 정도의 차이만 존재하는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다만 오스트리아식 표준 독일어는 공적인 영역에서 쓰이는 공용어이고, 독일어권 스위스 지역에서 사적으로는 토착 언어인 알레만어가 널리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적으로 쓰이는 언어는 독일어와는 다른, 오스트리아 지역 토착어가 쓰인다. 오스트리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와 함께 오스트로바이에른어가 모어로 쓰이는데,[44] 오스트로바이에른어 내에서도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어는 바이에른어와 의사소통은 원활히 가능하지만 차이나는 부분들도 제법 있다. 오스트리아 표준 독일어의 경우 독일 표준 독일어를 모어로 쓰는 화자 입장에서 튀는 사투리 정도이지만, 그냥 오스트리아 방언은 독일어 화자 입장에서 네덜란드어나 스위스 알레만어와 같은 친척뻘되는 외국어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어의 경우 각 지역마다 의사소통 자체는 가능하지만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심할 경우 같은 지역 내에서도 산이나 하천을 하나 끼고 말이 달라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오스트리아 방언은 어디까지나 지역 주민들의 토착어로 쓰이는 것이지, 공용어로 쓰이지는 않기 때문에, 표준화된 오스트리아어가 존재하지 않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다만 오스트리아인들은 거의 100% 오스트리아 표준 독일어를 모어 수준으로 구사하기 때문에 독일어를 할줄 아는 외국인들이 오스트리아에서 언어 차이로 곤욕을 겪는 경우는 드물다. 오스트리아 현지인들이 현지방언으로 대화할 경우 본인의 표준독일어 수준이 높아도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힘든 경우는 종종 있을 수 있다.
그밖에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45], 헝가리어는 지역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고, 주요 외국어는 영어가 널리 쓰인다. 이탈리아어는 쥐트티롤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서 쓰이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구 오스트리아령 지역 출신이다. 폴란드계 오스트리아인들은 폴란드어를 쓰기도 하며, 이들은 조상이 오스트리아 제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에 크라쿠프 대공국이나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에서 오스트리아 본토로 이주해온 경우가 많다. EF 영어 능력 지수에 따르면 높은 교육 수준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와 함께 비영어권 국가 가운데, 영어를 가장 잘하는(매우 높음) 것으로 나타났다.[46] 프랑스어를 배우는 비율도 10%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오스트리아도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튀르키예어, 아랍어, 중국어(표준 중국어), 페르시아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 구사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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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부침(浮沈)이 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전성기에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인정받으며 번영하였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47] 현재는 영세중립국이자 강소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5. 인구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인구 문서 참고하십시오.6. 행정 구역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행정구역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부르겐란트 (아이젠슈타트) | 케른텐 (클라겐푸르트) | 니더외스터라이히 (장크트푈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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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치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8. 경제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경제 문서 참고하십시오.9. 사회
전반적으로 길거리나 카페, 대중교통 등에서 보이는 사람들 표정이나 인상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부 독일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표현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문화도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아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지만, 반대로 이민 같이 민족이나 사회 내부결속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68혁명의 사회적 변화가 비껴갔고, 제국 해체 후 알프스 산자락에서 오랜 시간을 영구중립국으로 지내면서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었던 만큼 옆동네처럼 폐쇄적인 마인드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48]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까지는 동유럽 문화의 영향도 많이 있었고 동유럽 요리는 지금도 오스트리아에 널리 퍼져 있다.종교는 가톨릭을 믿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다만 무신론자가 50% 정도 나온다는 자료도 있다. 이민자들의 증가로 이슬람 및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는 여러 면모를 보았을 때, 오스트리아는 다른 서유럽 국가, 심지어는 같은 언어에 비슷한 역사,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서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말도 있다.[49] 빈과 같은 주요 도시가 수려한 미관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는 강력한 공권력 덕분이라는 주장이 있다. 건물벽에 전단지, 광고물을 부착하거나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너는 것마저 지자체에서 벌금을 물리며 통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인 관광객들이나 유학생들에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단은 친절하게 잘 대해준다.
예술 분야에서는 사회 분위기와 반대로 과격할 정도의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거침없고 노골적인 행보로 찬반 양론이 심한 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부터 시작해 미카엘 하네케, 하네케 밑에서 영화를 시작한 예시카 하우즈너와 미카엘 슐레진저, 울리히 자히들, 베로니카 프란츠 부부 모두 냉정한 톤으로 숨겨진 폭력성과 선정성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없다는 평을 받는다. 무조성과 음렬주의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현대음악 사조의 창시자 아놀드 쇤베르크 및 안톤 베베른, 알반 베르크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는 목도리나 스카프로 얼굴을 다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럽의 테러 위험 때문에 최근에 통과된 법으로, 신원확인을 위해 얼굴을 반 이상 가리지 않도록 했는데, 특히 무슬림에게 히잡은 허용했지만, 니캅, 부르카 착용은 금지했다. 그래도 사실 법이 통과된 뒤에도 무슬림, 비무슬림 상관없이 얼굴 가리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이 다가오는 10월달에 통과된데다, 법 자체에 논란이 많은 게 이유였다.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은 법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진짜 춥거나 운동해서같은 이유가 대부분이고, 시민들은 법에 대해 조롱하면서도 최대한 얼굴을 보이게 목도리를 맨다. 법이 시행됐지만 시 중심에서도 간간히 부르카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담당부처에 '오늘 날씨가 추운데 머플러로 얼굴을 가려도 되나요?' 라고 전화로 물어보기도 한다.[50]
또 1960~1970년대에 넘어온 터키 출신 노동자 후손들과 보스니아 내전 때 넘어온 무슬림 후손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이 현지인 아이들에게 폭력를 행사하거나 이슬람 국가에 가입하는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인구의 8%인 무슬림들이 오스트리아 신생아의 10%~1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018년 새해 첫 아기의 부모님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적인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도배된 사건까지 터졌다. # 거기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난민들이 중급 독일어 시험, 상급 영어 시험에 합격해야 최저생계소득을 얻을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 그리고 오스트리아 우파 정부와 여당은 라마단 금식까지 비판하면서 이슬람 단체들은 반발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정부는 2019년 11월 1일부터 식당과 술집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법을 발효시켰다. #
9.1. 치안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51] 치안이 꽤 좋은 편이다. 부유한 나라이면서도 고전음악과 합스부르크 왕조의 유산 외에는 딱히 관광으로 밀만한 랜드마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면도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나라 자체의 인지도나 관광객 수가 적고, 그만큼 또 그들을 노리는 범죄자들도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런 점이 오히려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서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안전하며, 밤 늦게 관광객 혼자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는 편이다.하지만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소매치기의 위험은 어디에나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물론 소매치기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정도라는 뜻이지,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애초에 해외여행에서 안정적인 치안을 기대하면 안되지만, 이 정도면 유럽 국가 중에서는 치안이 대단히 좋은 편이며, 오스트리아인들도 이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9.2. 범죄
1998년부터 44세 남성 볼프강 프리클로필에게 유괴되어 8년간 감금되어 있었던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세 자매가 생모로부터 감금당한 사건, 1984년부터 아버지가 딸을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아이를 7명이나 낳게 한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등의 감금 범죄가 많았다.9.3. 테러
이웃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러에 대해 청정지역으로 분류되었었는데 2020년에 테러가 일어나 유럽사회에 충격을 주었다.2020년 11월 2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격 테러가 일어났다. 4명이 살해당했고 22명이 부상당했으며 1명의 20대 중무장 테러리스트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1 #2 본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프랑스의 니스 테러와의 자세한 연관성은 조사중에 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밝혀졌다.
10. 문화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문화 문서 참고하십시오.11. 교육
오스트리아의 교육 제도 (2018년 5월 외교부 외교간행물)오스트리아 의무교육 및 대학진학률 (2010, 주오스트리아대사관)
Education in Austria (위키백과 영어문서)
12. 외교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외교 문서 참고하십시오.13. 군사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군 문서 참고하십시오.14. 인물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인 문서 참고하십시오.15. 관련 문서
[발음] ʁepuˈbliːk ˈøːstəʁaɪ̯ç[2] 오스트리아/인구[3] 오스트리아/인구[4] 오스트리아/인구[5] 출처[6] 출처[7] 오스트리아 표준 독일어는 독일의 표준 독일어나 스위스의 스위스 표준 독일어와 억양 차이가 두드러지고, 어휘와 표현 그리고 문법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표준 독일어나 스위스 독일어로만 독일어를 접한 독일어 화자들은 오스트리아 독일어를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 독일어와 표준 독일어는 방언 수준의 차이만 있기에 같은 언어로 분류된다. 공식적으로 표준어로 지정된 오스트리아 독일어 외에도,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모어로 사용하는 언어로는 독일의 바이에른주와 공유하는 독일어 방언인 오스트로바이에른어가 있다. 그 밖에 일부 지역에서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헝가리어도 사용된다.[8] 이민자, 그들의 후손, 외국인[9] 대통령 취임에 따라 무소속 신분이 되었지만,
출신이다.[10] 연방 의회 의장[11] 국민 의회 의장[12] 음력 5월 25일. 조오수호통상조약. 대한민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은 이 날을 수교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13] 대한민국 정부는 단순히 외교 관계 회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외교부 홈페이지의 연도별 수교현황 상세에서는 1963년을 수교 기점으로 기재하고 있다.[14] 주한오스트리아대사관 측은 외교 관계 회복일을 1963년 10월 18일로 기재하고 있다.#[15] 오지리공화국[16] 오지리[17]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18]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타야 하는 10가지 이유 (오스트리아 관광청)[19] 오스트리아/인구 (나무위키 문서)[20] 독일 바이에른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은마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나, 린츠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빈에서 살았고, 이후 외국으로 이주(프랑스-독일)를 했다. 단, 독일과의 국경도시(남북한으로 치면 경기도 연천군급 위치)에서 살았기에 어릴 때 바이에른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부터는 독일에서 살았다. 독일인, 특히 순수 바이에른인과 순수 오스트리아인은 실질적으로 같은 민족에 가까워 생물학적으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으며 문화유사성도 높다. 오스트리아 독일어와 바이에른 독일어는 한국의 경남사투리와 경북사투리 같은 관계라서 대화가 쉽게 통한다.[21] 독일 민족의 순수성 운운했던 나치 독일 시절에도 오스트리아인은 동등한 독일인으로 대우받았다. 생물학적으로도 남북한처럼 구별이 안 되는 같은 종족이기 때문.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에야 갈라졌다.[22] 정작 당사자는 ‘호주댁’이라 불리고, 호주 공군기가 뜨면 ‘사위 나라 구해주러 왔나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수모를 겪고 미영프소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고 있어서 군인을 보낼 여건이 아니었다.[23] 노벨사이언스 (2020.10.05) : 노벨상 특집 / 노벨상 수상자 국가별 교육통계와 여건[24] ( University Of Vienna - Image Video 2014 (Corporate Video, English)) [25] 빈 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26] 물론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의 직할령을 제외한 나머지 영토에서는 해당 영방국가 군주들에게 통치권이 있었고, 그나마 최소한 가지고 있던 통제권도 30년 전쟁 이후로 상실해서 명목상으로만 한 나라였고,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로 살았다.[27] 이를테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 포스터가 자그마치 15개의 언어로 만들어졌다.[28] 빈 모더니즘(Wiener Moderne)이 꽃을 피워 수많은 천재가 등장하던 시기이다.[29]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4년에는 면적 681,727㎢로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토가 크고, 인구 52,800,000명으로 유럽에서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후인 1919년에는 현재와 같은 면적 83,879㎢에 인구 6,800,000명이 되어 거의 1/8 수준으로 축소되었다.[30] 제국 해체 당시 축소된 인구의 자그마치 1/3인 200만 명 가량이 수도 빈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문명사적 활기로 인해 다수의 시민이 비생산인구였다. 제국 시절에는 넓은 국토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제국이 해체되면서 생겨난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산지가 많은데다 주변국들이 자국 내의 혼란이나 반 오스트리아 감정 등을 이유로 식량 수출을 거부하면서 한때 대제국의 수도였던 곳에서 식량난이 발생, 많은 시민들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또한 산업화가 잘 되어있고, 중세 이래 상공업이 발달해 있던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의 상실 역시 오스트리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31] 2021년 오스트리아 산업 개관 (빈 무역관, 2021-09-01)[32] 1955년 4월 15일 모스크바에서 오스트리아는 향후 영세 중립 정책을 지향한다는 전제를 포함한 '모스크바 각서'를 발표하였고,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영세 중립 정책을 소련과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22년 초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영세 중립국' 오스트리아 "나토 가입 계획 없다"[33] Vienna International Centre (위키백과 영어문서)[34] 덕분에 주 오스트리아 대사는 요직으로 꼽힌다고 알려져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했었다.[35] 독일어와 가까운 영어로 직역하면 '이스트 렐름(East Realm)' 정도다.[36] 실제로 오스트리아는 게르만족 국가들 중 가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게르만족 문서와 게르만어파 문서 참조.[37]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에서 운영 중인 독일 원서 도서관 명칭이 오지리 도서관(독일어로는 Österreich Bibliothek)이다. 또한 독일식 대륙법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기에 이런 표현이 옛 법학서적 등에 종종 남아 있다. 현대 중국어 표기는 奥地利.[38]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 납치되어 살았을 때 녹음했다가, 탈출에 성공하고 남한에 돌아와서 공개한 김정일 육성녹음본에는, 김정일이 신상옥에게 전화로 "앞으로는 신 선생이 이제 구라파 중에서 자본주의면서도 중립국가인 오지리 같은 데로 가서 촬영을 하기도 하셔야겠다."고 말한 부분이 남아있다. 남한은 1980년대에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방송과 신문 모두에서 유럽과 구라파를 혼용하던 걸 바꾸고 유럽이라고만 부르게 되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구라파라고 불렀다. 다만 남한에서도 1970년대 국회 속기록에 구라파라는 어휘가 자주 나온다.[39] 오스트리아 외에 독일, 터키, 네덜란드, 이집트도 당시에는 북한에서 한자 음차어인 독일, 토이기, 화란, 애급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도이췰란드, 뛰르끼예, 네데를란드, 에짚트로 바꾸었다. 반면 음차가 아니라 본래 한자로 표기되는 중국 인명에 대해서는 중국 원음대로 읽지 않고 한국 한자음대로 읽는다. 즉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북한에서 각각 강택민, 호금도, 습근평이다. 한편 한국은 신해혁명 이후 인물에 대해서는 중국 원음에 가깝게 표기한다는 중국어 표기법이 확립되면서 '강택민'을 '장쩌민'으로 바꾼 이후에는 줄곧 중국 원음에 가깝게 표기한다.[40]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남쪽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41]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세계 대전 이후에 영세중립국을 천명하여 냉전 시절 스위스, 스웨덴과 더불어 제1세계, 제2세계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42]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있는 건물이다.[43] 우스갯소리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에델바이스를 국가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영미권에서도 상당히 많이 착각되는 부분이다. #[44]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라, 20세기 중반까지 바이에른 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어디 사람인지 말하기 전에는 겉모습이나 말투로는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던 히틀러(오스트리아에서는 서부와 동부를 오갔다)는 프랑스로 가서 몇해 살다가 독일로 이민가기로 했을때, 바이에른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군대도 가고 정치도 하며 자기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게다가 고향인 브라우나우암인이 오스트리아에서도 바이에른 접경 지역이어서, 그가 바이에른 정계에 입문할 때도 언어적인 곤란이 없었고,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것처럼 해서 오스트리아 출신임을 쉽게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바이에른 뿐만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정치인이 되어 베를린에서 활동하게 되자, 오스트리아-바이에른 사투리 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45] 부르겐란트 크로아티아어라고 불리며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쓰이는 크로아티아어와는 다르게 일부 표현이 변형되어 있다.[46]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을 때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헤맸다는 증언도 더러 존재한다. EF 영어 능력 지수 통계도 개인 간의 편차 등을 모두 반영한 정확한 통계라 볼 수 없다. 만약 비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영어만으로도 100% 의사소통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와 북유럽 쪽이 영어만으로도 여행을 비롯한 단기 체류에 문제가 없는 지역들이다. 다만 이들 지역들에서도 불편함과 불이익이 없는 장기 체류를 희망한다면 현지어를 배워서 구사해야만 한다.[47] 참고로 사람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것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시작이 모두 오스트리아와 관련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일으킨 나치 독일과 같은 나라였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인물이다.[48] 할리우드와 같은 대규모 문화매체나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에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 해외의 문화 매체에 대한 관심도도 높지 않다.[49] 그래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대한지라 수위높은 성적 표현이나 온 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까지 그러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마초는 이곳에서 엄연히 불법이며, 암스테르담이나 코펜하겐처럼 길에서 대놓고 피우다간 잡혀간다.[50] 이것만으로도 말이 많았다. 춥고 더운 건 주관적인 건데 그걸 담당자가 머플러를 둘러도 됩니다, 안됩니다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올 만한 일이다.[51] 전 지구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좋은 인프라와 경제력을 지닌 유럽 대륙이라지만 각 국가들의 치안은 그리 좋지 읺다. 치안은 독재나 공산주의를 거친 동양 국가들, 혹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섬나라들이 오히려 좋은 편이다.
출신이다.[10] 연방 의회 의장[11] 국민 의회 의장[12] 음력 5월 25일. 조오수호통상조약. 대한민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은 이 날을 수교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13] 대한민국 정부는 단순히 외교 관계 회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외교부 홈페이지의 연도별 수교현황 상세에서는 1963년을 수교 기점으로 기재하고 있다.[14] 주한오스트리아대사관 측은 외교 관계 회복일을 1963년 10월 18일로 기재하고 있다.#[15] 오지리공화국[16] 오지리[17]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18]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타야 하는 10가지 이유 (오스트리아 관광청)[19] 오스트리아/인구 (나무위키 문서)[20] 독일 바이에른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은마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나, 린츠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빈에서 살았고, 이후 외국으로 이주(프랑스-독일)를 했다. 단, 독일과의 국경도시(남북한으로 치면 경기도 연천군급 위치)에서 살았기에 어릴 때 바이에른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부터는 독일에서 살았다. 독일인, 특히 순수 바이에른인과 순수 오스트리아인은 실질적으로 같은 민족에 가까워 생물학적으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으며 문화유사성도 높다. 오스트리아 독일어와 바이에른 독일어는 한국의 경남사투리와 경북사투리 같은 관계라서 대화가 쉽게 통한다.[21] 독일 민족의 순수성 운운했던 나치 독일 시절에도 오스트리아인은 동등한 독일인으로 대우받았다. 생물학적으로도 남북한처럼 구별이 안 되는 같은 종족이기 때문.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역사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에야 갈라졌다.[22] 정작 당사자는 ‘호주댁’이라 불리고, 호주 공군기가 뜨면 ‘사위 나라 구해주러 왔나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수모를 겪고 미영프소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고 있어서 군인을 보낼 여건이 아니었다.[23] 노벨사이언스 (2020.10.05) : 노벨상 특집 / 노벨상 수상자 국가별 교육통계와 여건[24] ( University Of Vienna - Image Video 2014 (Corporate Video, English)) [25] 빈 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26] 물론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의 직할령을 제외한 나머지 영토에서는 해당 영방국가 군주들에게 통치권이 있었고, 그나마 최소한 가지고 있던 통제권도 30년 전쟁 이후로 상실해서 명목상으로만 한 나라였고,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로 살았다.[27] 이를테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 포스터가 자그마치 15개의 언어로 만들어졌다.[28] 빈 모더니즘(Wiener Moderne)이 꽃을 피워 수많은 천재가 등장하던 시기이다.[29]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4년에는 면적 681,727㎢로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영토가 크고, 인구 52,800,000명으로 유럽에서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후인 1919년에는 현재와 같은 면적 83,879㎢에 인구 6,800,000명이 되어 거의 1/8 수준으로 축소되었다.[30] 제국 해체 당시 축소된 인구의 자그마치 1/3인 200만 명 가량이 수도 빈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문명사적 활기로 인해 다수의 시민이 비생산인구였다. 제국 시절에는 넓은 국토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제국이 해체되면서 생겨난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산지가 많은데다 주변국들이 자국 내의 혼란이나 반 오스트리아 감정 등을 이유로 식량 수출을 거부하면서 한때 대제국의 수도였던 곳에서 식량난이 발생, 많은 시민들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또한 산업화가 잘 되어있고, 중세 이래 상공업이 발달해 있던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의 상실 역시 오스트리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31] 2021년 오스트리아 산업 개관 (빈 무역관, 2021-09-01)[32] 1955년 4월 15일 모스크바에서 오스트리아는 향후 영세 중립 정책을 지향한다는 전제를 포함한 '모스크바 각서'를 발표하였고,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영세 중립 정책을 소련과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22년 초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영세 중립국' 오스트리아 "나토 가입 계획 없다"[33] Vienna International Centre (위키백과 영어문서)[34] 덕분에 주 오스트리아 대사는 요직으로 꼽힌다고 알려져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했었다.[35] 독일어와 가까운 영어로 직역하면 '이스트 렐름(East Realm)' 정도다.[36] 실제로 오스트리아는 게르만족 국가들 중 가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게르만족 문서와 게르만어파 문서 참조.[37]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에서 운영 중인 독일 원서 도서관 명칭이 오지리 도서관(독일어로는 Österreich Bibliothek)이다. 또한 독일식 대륙법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기에 이런 표현이 옛 법학서적 등에 종종 남아 있다. 현대 중국어 표기는 奥地利.[38]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 납치되어 살았을 때 녹음했다가, 탈출에 성공하고 남한에 돌아와서 공개한 김정일 육성녹음본에는, 김정일이 신상옥에게 전화로 "앞으로는 신 선생이 이제 구라파 중에서 자본주의면서도 중립국가인 오지리 같은 데로 가서 촬영을 하기도 하셔야겠다."고 말한 부분이 남아있다. 남한은 1980년대에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방송과 신문 모두에서 유럽과 구라파를 혼용하던 걸 바꾸고 유럽이라고만 부르게 되었지만 북한은 여전히 구라파라고 불렀다. 다만 남한에서도 1970년대 국회 속기록에 구라파라는 어휘가 자주 나온다.[39] 오스트리아 외에 독일, 터키, 네덜란드, 이집트도 당시에는 북한에서 한자 음차어인 독일, 토이기, 화란, 애급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도이췰란드, 뛰르끼예, 네데를란드, 에짚트로 바꾸었다. 반면 음차가 아니라 본래 한자로 표기되는 중국 인명에 대해서는 중국 원음대로 읽지 않고 한국 한자음대로 읽는다. 즉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북한에서 각각 강택민, 호금도, 습근평이다. 한편 한국은 신해혁명 이후 인물에 대해서는 중국 원음에 가깝게 표기한다는 중국어 표기법이 확립되면서 '강택민'을 '장쩌민'으로 바꾼 이후에는 줄곧 중국 원음에 가깝게 표기한다.[40]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남쪽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41] 게다가 오스트리아는 세계 대전 이후에 영세중립국을 천명하여 냉전 시절 스위스, 스웨덴과 더불어 제1세계, 제2세계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42]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있는 건물이다.[43] 우스갯소리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에델바이스를 국가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영미권에서도 상당히 많이 착각되는 부분이다. #[44]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라, 20세기 중반까지 바이에른 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어디 사람인지 말하기 전에는 겉모습이나 말투로는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던 히틀러(오스트리아에서는 서부와 동부를 오갔다)는 프랑스로 가서 몇해 살다가 독일로 이민가기로 했을때, 바이에른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군대도 가고 정치도 하며 자기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게다가 고향인 브라우나우암인이 오스트리아에서도 바이에른 접경 지역이어서, 그가 바이에른 정계에 입문할 때도 언어적인 곤란이 없었고,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것처럼 해서 오스트리아 출신임을 쉽게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바이에른 뿐만이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정치인이 되어 베를린에서 활동하게 되자, 오스트리아-바이에른 사투리 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45] 부르겐란트 크로아티아어라고 불리며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쓰이는 크로아티아어와는 다르게 일부 표현이 변형되어 있다.[46]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을 때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헤맸다는 증언도 더러 존재한다. EF 영어 능력 지수 통계도 개인 간의 편차 등을 모두 반영한 정확한 통계라 볼 수 없다. 만약 비영어권 국가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영어만으로도 100% 의사소통이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와 북유럽 쪽이 영어만으로도 여행을 비롯한 단기 체류에 문제가 없는 지역들이다. 다만 이들 지역들에서도 불편함과 불이익이 없는 장기 체류를 희망한다면 현지어를 배워서 구사해야만 한다.[47] 참고로 사람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것이,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시작이 모두 오스트리아와 관련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일으킨 나치 독일과 같은 나라였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인물이다.[48] 할리우드와 같은 대규모 문화매체나 축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에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 해외의 문화 매체에 대한 관심도도 높지 않다.[49] 그래도,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대한지라 수위높은 성적 표현이나 온 몸을 문신으로 뒤덮고 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까지 그러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마초는 이곳에서 엄연히 불법이며, 암스테르담이나 코펜하겐처럼 길에서 대놓고 피우다간 잡혀간다.[50] 이것만으로도 말이 많았다. 춥고 더운 건 주관적인 건데 그걸 담당자가 머플러를 둘러도 됩니다, 안됩니다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올 만한 일이다.[51] 전 지구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좋은 인프라와 경제력을 지닌 유럽 대륙이라지만 각 국가들의 치안은 그리 좋지 읺다. 치안은 독재나 공산주의를 거친 동양 국가들, 혹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섬나라들이 오히려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