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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9 15:58:07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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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연합국 군정청 설치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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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1945~1949)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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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파일: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지도.svg
1945년 ~ 1955년
성립 이전 해체 이후
나치 독일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
위치 오스트리아
수도
인구 6,900,000명(1955년)
정치 체제 공화제, 군정
국가 원수 장관[1]
공용어 독일어
민족 오스트리아인
종교 가톨릭
역사 1945년 성립
1955년 해체
통화 크로네, 실링
1. 개요2. 역사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연합군 군정기를 뜻한다. 오스트리아는 10년 동안 군정 치하에 놓여 있었다.

2. 역사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합병되어 있었다. 독일에 강제로 합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인들은 나치 독일에 적극 협조했다. 1943년 열린 모스크바 회담에서는 미국-영국-소련 3국이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이 무효고 전쟁 이후에 오스트리아를 독립시켜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비록 독일에 의해 끌려가긴 했지만 추축국 편에 참전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3월 29일, 소련군이 오스트리아 동부에 진입했으며 4월 13일 오스트리아의 최대 도시인 을 점령하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정치인 카를 레너와 접촉했다. 본래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국으로 망명한 오스트리아인 공산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내각을 오스트리아에 수립할 생각이었지만 표도르 톨부힌이 그보다는 현지의 명망있는 정치인인 카를 레너와 접촉하는 편이 더 낫다고 제안하여 스탈린도 한 발 물러섰다. 그 결과 소련은 4월 20일에 레너에게 임시 정부를 수립하라 지시, 레너 내각을 수립했다. 그러나 레너 내각은 오스트리아를 자국의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소련의 의중이 반영된지라 내각의 3분의 1 이상이 공산주의자였으며 내무인민위원부의 감시 하에 있었기에 서방 연합국의 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한편 미군, 프랑스군, 영국군도 4월 말에서 5월 초에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서부를 점령한다. 그 해 7월 9일, 연합국은 점령 구역의 경계를 결정했고 빈은 베를린처럼 분할 점령되었다.

9월 12일, 4개국 군정 장관으로 이루어진 연합군 통제 위원회가 수립되었으며 총선거를 실시했다. 소련의 기대와는 다르게 오스트리아 좌익 운동의 지분의 대부분을 사회민주당에게 진작부터 뺏기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공산당나치즘의 영향과 독소전쟁으로 인한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악감정이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로 진주한 소련군의 만행까지 벌어지면서 소련군을 등에 업고도 인기가 아주 개박살이 나버려 5%의 득표율을 얻은 반면 오스트리아 인민당-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연합은 90%의 득표율로 내각을 장악했다. 오스트리아 공산당 역시 약한 혁명역량을 인식하여 점령 서방 연합군에 대한 투쟁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고 소련도 오스트리아의 공산화를 포기한다.

1946년에는 연합국들이 2차 통제 협정을 통해 오스트리아에 대한 지배를 약화시켰다. 1947년 8월 4일자 연합국 최고 사령부 지령(SCAPIN) 1757호에서는 오스트리아를 연합국, 중립국, 적성국 어느 한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특별 상대국으로 지정하였다.[2]

1950년에는 서방 연합국들이 군정 장관을 민간인 외교관으로 교체했으며 소련도 스탈린 사망 이후 교체하였다. 점령군의 규모도 1950년대에 와서 크게 줄였다.

1955년 7월 27일,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국가 조약을 통해 완전히 독립했다. 조약의 내용은 오스트리아는 서독, 동독과 통일할 수 없고 생화학무기를 생산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약 발효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 군대는 오스트리아에서 철수했고 같은 해 10월 26일 오스트리아는 영세 중립국임을 표명했다.[3]


[1]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2] 이외의 특별 상대국에 포함되는 국가에는 나치 독일에 점령됐으나 나치에 협조적이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한때 추축국이였으나 1943년 항복하고 연합국 측에 참전한 이탈리아, 일본 제국의 강요로 추축국의 공동교전국이 된 태국,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축국의 공동교전국이 된 핀란드, 일본 제국의 식민지던 조선이 있었다.[3] 냉전 종식 후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