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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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정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독일어권은 물론 독일에 영향을 받은 많은 나라들의 군대에서 사용하는 야전모의 유형.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서 처음 사용하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국방군과 무장친위대가 사용한 M43 전투모(Einheitsmütze)로 널리 알려져있다.2. 상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야전모 | ||
M1878 야전모 # | 산악병의 M1906 아전모 | M1915 야전모 # |
1차 대전 중 호프만 군단의 야전모 # | 챙을 접어올린 야전모 # | 장성급 장교의 야전모 # |
산악모의 기원은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야전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바로 1868년부터 병사들에게 지급된 Feldkappe에 기인한다.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야전모는 19세기의 여타 케피들과 마찬가지로 원통형에 각져있는 외관을 가졌지만, 추운 날씨에 착용자의 귀를 덮을 수 있도록 설계된 귀덮개가 부착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챙을 접어올린 뒤 귀덮개로 덮어주면 개리슨모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1915년부터 독일의 군복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기존 모자와는 색상이 다르다.
▲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원수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장성급 장교의 야전모를 쓰고 있으며, 독일 제국군과 같은 색상의 모자와 군복을 착용했다.
간지와 실용성을 동시에 챙긴 경우로 다른 면에선 열강들의 모범으로 남긴 영 힘든 1차대전기 오헝군이었지만 이 모자 하나만은 오헝제국이 사라진 다음에도 세계 각국의 군대에서 사용되었다.
3. 생김새
특히 헝가리군에서 활용되는 오스트리아식 야전모를 보치커이(Bockskai) 모자라고 호칭하기도 하는데,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이었던 보치커이 이슈트반이 합스부르크 제국에 저항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오스트리아라는 표현을 피하기 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2차세계대전기 헝가리군에서는 아예 챙을 박음질 해버려 개리슨모처럼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하계 피복에선 귀덮개가 불필요하다보니 모자 챙과 함께 박음질 처리되기도 했으며, 산악사단의 경우 박음질 된 모자 챙과는 별도의 모자 챙이 추가로 달린 야전모를 사용했다.
4. 타국가
4.1. 독일군
2차 세계대전 중후반기 독일국방군 및 무장친위대에서도 전투모로 사용했다. Einheitsfeldmütze라고 부르는데, 이걸 그대로 해석하면 전투모가 된다. 국내에서는 규격모라는 단어도 흔히 쓰이지만 규격이라는 뜻의 단어는 "Einheits-" 가[1] 되므로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나치의 돌격대에서도 제모로 사용했는데 케피모처럼 각이 잡혀있는게 특징이다.
2차 대전기의 독일군은 원래 개리슨 모 형태의 M40 전투모를 사용했으나 동부 전선의 추위에 대비해서 오스트리아식 야전모를 참고해 귀덮개를 단 M42 전투모를 채용했고, 이내 오헝제국 시절처럼 챙을 단 M43을 전군에 보급했다.
색상은 기본적인 회록색, 공군용의 청회색, 전차 승무원용의 검은색 등이 있었고, 일부 사제품 및 부대 단위 자체 생산품인 위장 무늬 전투모도 있었다.
모자에 대한 평은 실제로 착용해보거나 지켜본 이들에 따라 갈리는데, 실용적이고 편하다며 좋아한 이들도 있었고, (특히 전차 내부처럼 좁은 곳에서)챙이 걸리적거린다거나[2] 산림 감시원 모자같이 멋이 없다며 싫어한 이들도 있었다.
아프리카 군단의 M41 사막용 전투모는 면직물로 되어 있고 귀덮개도 없으며, 안감이 붉은색으로 되어 있다. 안감의 붉은색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뒤집어 흔들어 공중 정찰 등을 통해 발견되기 쉽게 하여 구조를 용이케 하기 위한 것이다.
4.2. 국민혁명군
중일전쟁 당시 국민혁명군 또한 사용하였다.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의 영향을 받아 채택된 것으로, 초창기에는 SA처럼 각이 잡힌 형태였으나 이후 사진과 같은 형태로 변했다.
다만 국민혁명군은 대체로 모직이 아닌 면으로 만든 군복을 입었기 때문[3][4]에 방한효과는 크지 않았을 듯하다. 그 때문에 1944년엔 귀덮개가 사라진 개량형 전투모가 보급되기도 하였다.
보통 군대들은 정모와 전투모를 따로 구분하지만 특이하게도 국민혁명군은 야전모가 정모와 전투모를 겸했다. 국민혁명군이 중화민국군으로 개편된 후 국공내전에서도 계속 사용되다가 국부천대 후 미국식 전투모로 대채되었다.
4.3. 핀란드군
핀란드군에서는 사냥꾼 모자(jaeger cap)이라고 불렀다. 원래 핀란드 내전 당시 잠깐 사용했던 것을 1934년에 재도입, 2년 후 M36 야전모라는 이름으로 정식 채택된다. 핀란드 국기 색의 코케이드가 부착되어 있었다.4.4. 한국광복군
▲ 오스트리아식 야전모를 착용한 한국광복군. 왼쪽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은 창군 이래로 오스트리아식 야전모를 제식 전투모로 착용했다.
국민혁명군의 지원을 받았던 한국광복군은 코케이드를 태극무늬로 바꾼 야전모를 사용하였다.
[1] 이게 뭔소리인가 하면 "하이픈" 하나 때문에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2] 1차세계대전 이전의 빳빳하고 짧은 가죽챙을 활용한 모델이나 현대에 이르러서 귀덮개를 박음질해버린 모델은 챙을 수납할 수 없게 되어있어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다만 헝가리군이나 산악부대용 모자는 모자 챙도 울로 만들어 접기 용이하게 되어있다.[3] 장제스의 중앙군 일부나 장교, 겨울용 하늘색 피복을 지급받은 사단들은 예외. 구체적으로 여름 피복인 연녹색과 춘추 피복인 카키는 면으로 제작되었고, 겨울 피복인 연하늘색은 공용 전투모와 장교에게 지급되는 외투가 모직이다. 단, 지방군의 동계 피복은 모직이 아닌 면제 누비솜옷이였다.[4] 모직물 자체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직물이 아니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했다. 메이지 유신 시절부터 남면북양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직물 확보에 신경 쓴 일본 제국도 전쟁 내내 모직 부족에 시달렸다. 중국군은 일본군에 의해 항구들이 죄다 봉쇄당해버려서 국내에서 생산한 면직물로 군복을 지어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