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グレートブリテン及び北アイランド連合王国 | 일본 日本国 Ja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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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Japan–United Kingdom relations日英関係 (にちえいかんけい)
日本とイギリスの関係
이 문서는 영국과 일본의 관계와 외교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이다.
영국과 일본은 오래 전부터 외교관계를 맺은 이래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영국과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동쪽 끝에 위치한 섬나라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러한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예로부터 주변 나라들의 침입이 적고 독자적인 문화가 발달했다.[1]
또한 이런 이유로 일찍부터 해양에 눈을 돌려 해양세력으로 성장했고, 마주한 대륙과 의도적으로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 대륙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스스로 칭한 명예로운 고립이 그것이다.
영국과 일본 모두 크게 지역이 4개[2]로 나누어져 있고 본토인 브리튼 섬과 혼슈의 면적 또한 비슷하며 과거 제국주의 시절 다수의 식민지를 거느린 공통점이 있는데다가, 영국이 영일동맹을 맺고 일본에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후하게 뿌려 일본이 열강으로 발돋움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3]
현재 두 나라는 G7에 속해 있으며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강대국 및 선진국이다. 또한 두 나라 모두 대표적인 서방 제1세계 국가들이다. 일본은 영국 국방부가 지정한 전략적 동맹국 3개국[4] 중 하나이다.
2. 단순 비교
<colbgcolor=#fff,#444> 항목 | 영국 | 일본 |
면적 | 243,610km² | 377,975km² |
인구 | 66,475,760명 | 125,360,000명 |
수도 | 런던 | 도쿄도 |
언어 | 영어(영국식)[5] | 일본어 |
명목 GDP[6] | 3조 1,589억 (6위) | $4조 4,097억 (3위) |
1인당 GDP[7] | $46,371 | $35,385 |
1인당 PPP[8] | $56,470 | $51,809 |
민주주의 지수 | 8.28 (18위) | 8.33 (16위)[9] |
정치형태 | 입헌군주제 / 의원내각제 | 입헌군주제 / 의원내각제 |
국가원수 | 찰스 3세 국왕 | 나루히토 천황[10] |
정부수반 | 키어 스타머 총리 | 이시바 시게루 내각총리대신 |
3. 접촉 초창기
영국과 일본은 이미 15세기부터 상인 수준에서의 교역을 시작했다. 또한 영국인 윌리엄 애덤스가 에도 막부의 외교고문으로 일한 바도 있다. 그 외에도 영국인 상인들이 일본 나가사키, 히라도에 진출한 역사가 있다.[11]공식적으로 정부 간의 교류가 처음으로 있던 것은 1613년 영국 동인도 회사 측이 에도 막부의 쇼군을 접견한 사건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방해로 인해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고 영국은 에도 막부 말기에 들어 다시금 일본에 접촉했다.[12]
막말에는 서구권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영국과도 접촉이 늘었다. 그러던 중 1863년 존황양이를 목적으로 한 조슈 번 진영에 의해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 4개국 연합국과 맞붙은 시모노세키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 전쟁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군과 교전을 벌인 사건이었다.
1차 전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년 전에 시마즈 가문의 시마즈 히사미츠의 행차 때 이를 지켜보던 영국인 상인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행렬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살해된 나마무기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사쓰에이 전쟁과, 시모노세키 전쟁 2차 전투에서 몇 차례 더 영국과 전투를 했다. 휴전 이후 영국과 일본 양 국가는 정식적인 통상을 시작했다.
4. 영일동맹
1903년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일본과 외교적 동맹을 맺었다. 이 조약은 러시아의 중국과 한국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동아시아에서 이권을 대영제국과 일본 제국이 분할하려는 조약이었다.러일전쟁으로 일본이 러시아를 쓰러뜨린 이후 양국은 1905년에 2차 영일동맹을 맺었는데, 영국은 일본이 대한제국에서 가지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익을 보장하며, 일본은 영국의 인도 지배 및 국경지역에서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 등의 내용이었다. 이 조약으로 영국과 일본은 외교적으로 밀접해졌다.
5. 전간기
1차 대전 이후 일제가 세력을 팽창하자 영국은 서서히 일본에 대해 경계 어린 시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워싱턴 군축조약을 통해 일본 해군의 성장을 막는 등 일본에 대한 견제를 지속한 결과, 1923년에 영일 동맹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이후로도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영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등 2차 대전 직전까지 양국은 지속적으로 외교적 마찰을 빚었다.6.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일본 제국이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추축동맹을 맺으면서 일본 제국과 영국의 관계는 최악의 길을 걸었다. 당시 일제는 미국과 영국을 한 통속으로 보고 귀축영미라고 부르고 선전물에서 이들을 괴물로 묘사하는 등 영국과 미국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선전하며 일본인들에게 영국,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지속적으로 심었고, 영국 또한 마찬가지로 일제를 비난하는 내용의 선전물을 지속적으로 제작하여 자국민들에게 반일 감정을 심었다.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은 1941년 남방작전으로 영국의 동남아시아 식민지이던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버마, 브루나이 등을 점령하면서 마침내 영국군과 직접적으로 맞붙었다. 당연히 영국은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으며, 동양함대를 파견해 태평양 전선에서 대일 전쟁을 개시하면서 일본과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영국군은 싱가포르 전투, 실론 해전, 말레이 해전 등 전쟁 초기 주요 전투에서 연달아 일본 군대에 패하는 굴욕[13] 특히 말레이해전에선 영국의 함대 하나가 궤멸해버리는 피해를 겪으며 동남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완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산다칸 죽음의 행진과 같이 일본군이 영국군 포로들에게 벌인 잔혹 행위들이 알려지자 영국인들은 일본에 큰 반감을 품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 1944년부터 영국은 다시 동남아시아에 군대를 파견해 버마를 탈환하고 페낭 해전, 모가웅 전투, 코히마 전투, 시탕 굽이 전투 등에서 연이어 승리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지퍼 작전, 조석 작전처럼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를 1945년 9월에 탈환하는 계획을 세우고 유럽에 배치되었던 중폭격기들을 오키나와로 재배치하여 타이거 부대로 이름붙인 후 미국처럼 일본 본토 폭격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8월 미국이 일본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은 추축국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영국군을 비롯한 4만 명의 영연방군은 전후 일본에 주둔해 주고쿠 지방 등을 임시 통치하다가 1952년 철수했다.[14]
7. 현재
현재 일본은 GDP 세계 4위에 G7 3위이다. 영국은 GDP 세계 6위에 G7 4위이다. 두 국가 모두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국가이다. 또한 영국과 일본 양국 모두 문화적으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문화 강국이다.일본에서도 비틀즈와 해리포터, 제임스 본드 등 영국 문화소비가 높으며, 영국에서도 아니메[15], 포켓몬스터, 닌텐도, 스시, 라멘 등 일본 요리가 인기가 많으며, 특히 가라오케의 인기가 많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당시 영국의 사회 제도나 군사 제도를 많이 참고했기에 이러한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자동차, 철도의 좌측통행,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양원제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의 군대 편성 제도 등이 그 예시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두 나라가 서로 직접적으로 충돌한 적이 없으며 시간이 많이 흐른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제1 주적 역시 나치 독일이었기 때문에 악감정은 거의 없고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다만 양국간의 충돌이 없던 것은 아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 아르헨 간 영유권 분쟁이 향후 일본의 영유권 분쟁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의해 스즈키 젠코 총리가 영국의 대 아르헨티나 금수 조치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약간의 갈등을 겪었다. 또한 영국 역시 일본과 서독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미국, 프랑스와 손잡고 일독 양국에 플라자 합의를 강제한 바 있다.
양국의 외교적 협력은 날이 갈수록 증가한다. 2차대전 이후 영국은 이미 미국과 혈맹 관계였고 일본은 GHQ 다음 집권한 일본 정치인들은 빠르게 반미보다 친미를 외치며 돌아섰기에 두 나라는 친미 성향의 국가라는 것이 서로 맞아 떨어져 많은 협조가 있었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로 EU에서 탈퇴한 영국은 서유럽 대신 다른 대륙의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부각되었다. 따라서 테레사 메이 총리가 2017년에 아베 신조 총리와의 회담에서 서로 많은 경제적 협력을 약속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급격한 부상과 국수주의 행태, 외교적 분쟁, 패권 경쟁 등으로 인해 마찰이 생겼다보니 중국을 견제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일단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나 EU 외 역내 파트너가 필요한데 여기서 일본, 한국, 싱가포르, 대만이다. 그 중 경제적 규모가 큰 일본과의 교류가 많아졌다. 특히 일본 해상자위대가 해군이 강한 형태고, 한국 육군이 육군이 강한 형태다보니 영국 해군과 해상자위대 간 교류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도 영국과의 좋은 관계는 중요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을 몰아내고 패권을 쥐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영국은 미국의 제1 동맹국이고 영연방의 수장이며 상임이사국이자 영어권 국가로서 경제력 이상의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일본에 있어 영국은 중요한 파트너이다.
특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서유럽의 타 강대국들과 달리 영국은 타 대륙에 대한 패권지향형 국가이자 해양 국가이며 동시에 주적인 중국의 전통적인 앙숙이기 때문에 양국의 이해관계가 매우 잘 맞으며 현재도 대중 견제에 힘을 쏟는다.
따라서 일본은 제1의 우방국인 미국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강대국이자 선진국인 영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제재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한영관계와 비슷하게 영국을 통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한다.
2018년 초 테레사 메이 총리는 중국의 일대일로 경제 전략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써 브렉시트로 경제 돌파구가 필요한 영국과 중국을 제재하기 위한 일본 사이에서의 관계는 앞으로도 긴밀해질 가능성이 높다.
테레사 메이 전 총리는 일본을 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파트너, 글로벌 동맹으로 선언했고, 영국에 일본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다음으로 중요한 국가라고 칭했다. 영국은 같은 서유럽의 강대국인 독일, 프랑스보다 더 긴밀하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제2의 영일동맹이라는 표현도 썼다.#
영국과 일본은 2019년 4월 8일에 도쿄에서 양국의 외교장관,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 회의를 계최할 계획이라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브렉시트가 발생하자 일본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혼다 측은 영국 내 제조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EU에서 2019년 12월부터 후쿠시마산 제품에 대해 수입 규제를 완화하기로 하면서 영국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58회 영국 총선 직후, 아베 신조 총리가 영국에게 브렉시트 후 TPP 가입을 제안하였다. 브렉시트가 이뤄진 날에 일본이 영국에게 새로운 경제 협력을 제안했다. 그리고 영국이 EU에서 탈퇴하자 일본은 영국과의 경제협상을 빨리 협상하기로 밝혔다.# # #
고노 다로 방위상과 영국의 벤 월러스 국방장관은 군사활동을 증대하는 중국군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하면서 연대 중요성을 확인했다.#
EU를 탈퇴한 영국은 미국과 함께 일본과 FTA 협상을 시작했다. 2020년 6월 9일부터 본격적인 FTA 협상이 시작됐다.[16]# #
2020년 6월 3일에 영국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5세대 이동통신망 장비를 화웨이 대신 일본 NEC에서 공급받을것 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백신을 개발중인 영국 - 스웨덴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공급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8월 5일에 영국을 방문해 새로운 경제 협정과 관련 의견을 영국 측과 논의한다고 밝혔다.#
혼다 자동차가 영국 내 자동차 생산의 일부를 일본으로 옮긴다고 밝혔다.#
일본과 영국은 양국 간 사실상 경제동반자협정(EPA)을 타결했다. 이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맺은 첫 주요 협정이다. #
영일 경제동반자협정 이후 영국 정부 기관, 영국 공기업에서는 독일 기업보다 일본 기업에 납품 받는 상황이 크게 늘었다. 이제 일본 입장에선 영국이 미국 다음으로 가까운 국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국 해군이 이르면 2021년초에 일본 인근 해역에 최신예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이 포함된 항모전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그리고 사세보와 요코스카에 잠시 정박할 예정이다.#
영국에 위치한 이공계 대학원을 들어갈 때 군사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ATAS certificate을 허가받아야만 비자가 발행되는데 일본은 동아시아 내에서 대한민국,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ATAS certificate이 필요하지 않은 국가들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영국과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하지만 양국 국민의 방문 관광객 숫자는 영국인이 많다. 이는 양국민의 성향 차이 때문인데 해외여행을 즐기는 영국인과 달리 일본인들은 영국인에 비하면 덜 즐기기 때문이다.
영국과 일본이 무역 및 안보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닛산은 영국에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고 밝혔다.#
영국, 이탈리아와 일본은 양국의 차세대 전투기 템페스트와 F-X를 위한 실증 엔진 공동 제조에 합의했다. 영국과 일본, 이탈리아가 6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을 하기로 했다.# #
기시다 총리와 존슨 총리는 전화 통화에서 양국 간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G7국가들이 대러제재를 유지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도 군사협력을 확대했다.#
6월 28일에 영국은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를 철폐하기로 했다.#
2023년 1월 6일, 영일 양국은 군사협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7.1. 정치 비교
정치적으로 일본과 영국은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군주와 권력을 가진 총리가 공존하는 입헌군주제이다. 두 나라 모두 군주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며 총리가 정치의 총책임자 역할을 한다.물론 일본의 천황은 일본국 헌법에 의해 정치에서 형식적 승인권이 거의 없고 자위대의 통수권자가 아니지만 영국의 국왕은 법률 승인권 등의 정치에 대한 형식적 권력이 있고, 명목상으로 영국군의 통수권자라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의 현 천황은 나루히토이며, 정치를 담당하는 총리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이다. 그리고 영국의 현 국왕은 찰스 3세이며, 정치를 담당하는 총리는 키어 스타머 총리이다.
8. 상호 협력
영국은 같은 영어권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과 가까운 동맹이지만, 브렉시트 이후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파트너가 대한민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이다.그런 상황에서 일본 역시 미국과 같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의 협력을 중시한다. 그래서 영국의 정치권은 ARM Holdings를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인수하도록 허가하는 대신 일본의 혼다, 닛산 등 유럽 판매 거점을 영국에 둔다.[17]
안보외교 측면에서도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을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 미군기지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미 해군 기지에 잠정 배치하기로 했고, BAE 템페스트 공동 개발을 시행하기로 했다. 2022년 2월 15일, 영국 국방부는 일본과 전투기용 센서 기술을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국민 감정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직접적으로 싸우기도 한 적대관계인거 치고는 상당히 우호적인데 2021년 영국인들은 가장 좋아하는 나라 2위로 일본을 뽑았다.[18] 현대 영국인들은 친일 성향이 강하다. 반일 성향을 가진 예외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을 직접 겪었던 세대와 그 가족 및 사학계 정도인데 미국이 워낙 태평양 전쟁에서 비중을 많이 차지해서 그렇지, 영국군도 엄연히 태평양 전쟁의 당사국 중 하나였던데다 영국군 포로에 대한 처우가 잔혹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에 그를 겪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아하기 어려운 것.
9. 여담
영국은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고 경제력과 위상은 비록 예전보다는 못하다지만 엄연한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이자 영연방의 수장이며, 상임이사국인데다 문화대국인 만큼 파급력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영국에 나름 우호적이며, 일본 정부도 타 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영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반면 영국에서 일본을 보는 관점은 조금 복잡미묘한데, 민간 차원으로 보면 영국은 프랑스와 더불어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일본 문화에 매우 우호적인 국가이다. 아시아에서는 음식 문화가 단순하다고 하는 일본이 적어도 자기들보다는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영국인들이 있다.
일본인이 자신들보다 더 오래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흥미를 끌고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을 비롯한 일본 문화도 영국에 많이 알려졌다. 그리고 스시, 사시미, 우동, 라멘 등 일본 요리의 인기가 많다.
최근 영국과 같은 영어권인 미국, 캐나다 등이 아무리 자유주의 이민 국가라지만 지나치게 다인종, 다양성 사회로 간다고 생각해서 동질감이 약해졌다고 생각한 영국인 중 일부는 대안으로 같은 섬나라에 단일 인종적 동질감이 강한 일본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정부 차원으로 보면 양국은 종종 갈등을 빚는다. 영국은 아시아 - 태평양 경제 협정인 CPTPP 가입 이후 영미권 국가를 제외하면 오히려 같은 서유럽 국가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일본과 더 가까운 관계로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막상 주일영국대사관의 트위터를 보면 생각보다 두 국가의 궁합이 썩 좋지는 않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영미권 특유의 인권 중시와 도덕주의, 패권주의를 지향하고 반대로 일본은 보신주의적이며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 양상이 있다. 현재 쟁점화되는 사안으로는 대 러시아 문제나 LGBT, 사형제 등이 있다.
우선 대러 외교 문제를 보면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고 천연자원 수입 및 시장 진출을 하고 싶은 일본은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제재하려는 영국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전쟁 전부터 영국은 강한 제재를 주장했지만 일본은 초기에 신중론적인 태도를 보였다.[19]
사실 쿠릴 열도 분쟁과 수시로 발생하는 러시아 공군의 영공 침범 문제로 러시아와 숱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은 싱가포르와 같이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은 소극적 외교 정책을 하면서 적극적인 패권을 행사하는 영국과 다르다.
그래도 전쟁 이후 일본 정부가 난민 수용이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미국, 영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그리고 한국, 싱가포르, 대만,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이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한다.
LGBT 문제의 경우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 영국과 달리 일본은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영국은 정치 환경 특성 상 노동당은 물론 보수당도 동성결혼에 관용적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민당과 공명당은 물론이고 좌파 계열인 입헌민주당조차도 이러한 PC 사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보수적이다.
물론 보수당과 노동당이 자주 총선을 통해 정권 교체를 하지만 일본은 55년 체제 이래 내내 자민당의 독주였다는 정치지형의 차이도 존재한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성 소수자 관련 법안을 입안하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하나 일본 정부는 이러한 사안에 미온적인 반응으로 일관한다.
양국은 사형제와 관련해서도 적잖은 마찰을 빚는다. 일본은 미국[20], 대만을 포함해 전체적인 국가 가운데 사형을 집행한다. 영국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일본의 사법 체계를 지적하고 일본은 사형제는 내정이라고 반박한다.
자민당, 입민당 등 주요 정당은 사형제에 찬성하고 공산당, 레이와 신센구미 등 여당과는 거리가 먼 몇몇 약소정당들만 반대한다. 일반 국민 여론도 사형제에 찬성하며 국회에서 다루지 않는다. 또한 많은 일본인들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사형제 관련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여기며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 대러 외교의 경우 서유럽 국가 가운데에서도 영국이 유난히 강경한 입장인 편인데 이는 프랑스는 어느 정도 독자 노선을 추구하고 독일은 2차 대전의 과오 때문에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자제한다.
LGBT 문제 역시 서양적인 산물인지라 동양권에서는 다소 무심한 문제이며 사형의 경우 자국 정치의 문제인지라 외국이 지나치게 간섭하기 어렵다. 타 서유럽 국가들은 사형 집행 시 한번의 비난 성명 정도만 발표하고 그 이상으로 사형제 문제를 언급하지는 않는 반면, 영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외무부 차원에서 타국의 사형제를 모니터링하며 특히 미국[21],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친서방 선진국의 사형 제도에 대해 비판적이다.[22]
일본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 CPTPP를 가입하여 어느 정도 이해 관계를 맞추는 것을 중시하며, 영국 입장에서도 일본을 높게 평가하지만, 사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같은 영어권이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과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상술한 대로 외교 노선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해 관계에 맞는 사안 외에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다.
10. 관련 문서
- 영국/외교
- 일본/외교
- G7
- 영국/역사
- 일본/역사
- 영국/경제
- 일본/경제
- 영국/문화
- 일본/문화
- 영국인 / 일본인 / 일본계 영국인
- 영어 / 일본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BAE 템페스트 / GCAP
[1]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진 및 화산 활동이 매우 빈번한 데 반해, 영국은 지진대가 지나지 않는 노령화된 지각이기에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영국의 도버 해협에 비해 일본의 대한해협 폭이 훨씬 더 넓기에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 바이킹, 프랑스 등 외적의 침입을 받았던 영국과 달리 일본은 13세기 몽골의 침입 정도 제외하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2]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일본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3] 러일전쟁 때 일본을 경제 파산 위험에서 구해주고 영국에서도 아직 취역하지 않은 최신예 전함을 일본에 판매해 영국 의회에서도 논란이 일 정도로 일본을 크게 지원했다.[4] 미국, 프랑스, 일본[5] 영국에도 스코트어, 웨일스어 등의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지만 공용어는 영어이다.[6] 2023년 4월 IMF 기준.#[7] 2023년 4월 IMF 기준.#[8] 2022년 10월 IMF 추정치 기준.[9] 아시아 2위.[10] 현행 일본국 헌법에는 천황의 국가원수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만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원수로 간주되며 의전서열에서 볼 수 있듯 일본국 정부도 천황을 국가원수로 대우한다.[11] 나가사키시의 글로버 가든, 자코모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있다.[12] 일본의 몇몇 재야 사학자들은 동인도 회사의 후원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급성장했다고 주장한다.[13] 단 싱가포르 전투의 경우, 눈 앞의 적인 나치 독일을 막는 데 급하여 베테랑 병력을 유럽으로 빼고 그 자리를 인도인으로 채우거나 정글에서는 쓸모가 없을 거라며 전차를 배치하지 않는 등 오판을 한 요인이 컸다. 인도인 부대는 영국을 위해 싸운다는 사실 때문에 사기도 낮았고 경험도 부족했다. 추가로 장비와 무기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낮아 보인다'는 이유로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아예 일부 인도군 보병사단은 북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싸울 걸 요청받기도 했다.[14] 히로시마현 구레에 본부가 있었고 6.25 전쟁 당시 사세보와 같이 영국군,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의 거점으로 이용되었다.[15] 일본 애니를 살펴보면 서양인 캐릭터로 영국인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독일, 프랑스도 마찬가지.[16] 참고로 한국과는 이미 브렉시트 전에 한영 FTA 협상을 진행했고 최종 타결되었다.[17] 한국의 자동차 생산 업체들은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유럽이나 튀르키예에 현지 생산분의 일부를 할당한다. 그리고 영국과 통행방향이 다른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18] 참고로 1위는 호주, 3위는 캐나다였으며 영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러시아가 뽑혔다.[19] 이는 대한민국도 비슷한데 대표적으로 한국도 한영관계와 한러관계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20] 이쪽 국가에는 주(State)마다 사형집행여부가 달라서 완전히 모두다 사형에 집행한다고 볼수는 없다.[21] 앞서 언급할듯이 이쪽 국가에는 주(State)마다 사형집행여부가 달라서 완전히 모두다 사형에 집행한다고 볼수는 없다.[22] 대한민국 역시 1998년 이후 사형 집행을 사실상 중단하기 전까지는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사형 제도에 대해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