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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AULT 25
1. 개요
르노가 1983년 말부터 1992년까지 생산한 전륜구동 플래그십 노치백 루프라인의 준대형 리프트백. 1985년 유럽에서 올해의 차 후보로 2위에 선정된 차종이다. 1983년 출시부터 1992년 단종 전까지 780,976대가 생산되었다.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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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
세로배치 전륜구동 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르노 차량들 중에서 가장 큰 차급에 가장 비싼 모델이었는데, 25는 처음부터 연비 개선의 핵심 요소인 항력 계수(Cd) 0.31을 기록했다. 이 당시에 공기 역학 효율성을 위해 설계된 최초의 자동차 중 하나로, TS 모델은 0.28로 기록되어 '세계에서 가장 공기역학적인 양산차'라는 비공식 타이틀을 잠깐 보유했었으며[1] 출시 당시 연비 측면에서 단연 동급 최고였다고 한다. 전륜 구동 4기통(2L, 2.2L 가솔린 인젝션, 2.1L 디젤) 및 6기통(2.8L 및 2.5L 터보 인젝션) 엔진이 르노 21처럼 전방 차축 앞쪽에 세로 방향으로 장착되었고 25의 성능은 V6 터보 사양 기준으로 동급 평균 이상이었고 J8S 터보 디젤 엔진도 적용 가능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했던 우주선이 연상되는 미래지향적인 계기판이 특징이며[2] 실내는 넓고 비교적 조용했고 조명이 밝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간의 언더 스티어와 V6 터보 모델의 토크 스티어링 이슈에도 불구하고 승차감과 활기찬 핸들링을 전해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새로 설계된 수동 변속기는 정밀함과 부드러움으로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으나 5단 기어의 걸쇠 스프링으로 인해 3단 기어로 잘못 선택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 차의 문제점으로 내구성이 가장 약한 부분은 자동 변속기였는데, 실제로 25의 대부분은 5단 수동이고 자동 변속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용된 변속기 종류는 3종(3단 MJ3, 4141 및 새로운 4단 AR4[3])이었는데, ATF 쿨러의 품질과 설계 방식이 나빴고 특히 4단 AR4에서는 신뢰성이 더욱 떨어졌다. 특히 4단 변속기는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고장 시 충분히 신속한 처리를 하지 않으면 ATF 쿨러에서 누출이 발생하게 되며 차량 하부의 얼룩을 제외하고는 물리적 경고가 거의 없이 변속기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25 생산 초기에 제작된 첫 변속기가 갈수록 고장나기 시작한 이 후, 르노는 차령과 주행 거리에 상관없이 원래 품질이 떨어지는 쿨러를 교체하는 패키지를 준비했으나 오른쪽 휠 앞의 쿨러 위치는 변경할 수 없었다. 때문에 현존하는 르노 25 중에서 AR4 자동 변속기 차량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
후기형 |
1988년 6월에 새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공개되었다. 전면부는 미등, 내장재, 전면 서스펜션 등이 변경되었고 부드러운 스타일을 위해 기존 차량의 모든 패널이 변경되었다. 기존 2.2i 엔진은 삭제되고 140마력(104kW)의 2.0i 12v 버전으로 교체되었다.
모델 교체 이후 기존 엔진의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2.2i 엔진을 장착한 페이스리프트 차량이 소수 있었는데, 출력은 123마력(92kW)이었다. 1992년 2월 생산이 종료되었고 사프란이 후속 모델로 이어졌다.
3. 파생형
3.1. 이글 프리미어/닷지 모나코
과거 르노의 자회사였던 AMC와 개발한 북미공략형 신차인 이글 프리미어에도 르노 25의 세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이 적용됐으며, AMC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으로 인수되자 이 노하우를 토대로 크라이슬러 LH 플랫폼을 개발했고 1990년부터 1992년까지는 닷지 모나코로 판매했다.3.2. 25 브레이크
3.3. 25 리무진
25의 휠베이스 확장 버전으로, 기존 차량보다 22.7cm(8.9인치) 더 길었고 두 가지 차종으로 변형이 가능했다. 일반 25 리무진에는 기존 휠베이스 모델과 동일한 뒷좌석이 있는 반면, 이그제큐티브 버전에는 위치 조정이 가능한 2개의 개별 시트가 있었다. 우핸들 시장은 1985년 르노 영국 지사에서 2.7L V6 엔진만 판매되었고 2년 후 단종되었다.이 모델을 바탕으로 부나커 등의 코치빌더에서는 2.5L V6 터보 엔진을 장착한 방탄 차량을 제작했다. 이에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한동안 르노 25 방탄 리무진 모델을 사용했다.
4. 한국 시장 출시
1988년 쌍용그룹 계열사인 (주)쌍용[4]이 수입해 국내에 출시했다. 당시 르노와 쌍용은 강남에 '르노의 집'(maison de RENAULT)이라는 전시장도 오픈했으며 르노의 협력사인 쌍용자동차에서 선발한 정비사들을 프랑스 본사로 연수를 보내 교육을 진행하는 등 의욕적으로 출발했다.V6 인젝션 모델을 출시했는데 차량 가격은 무려 5,200만원으로 엄청난 고가였다.[5] 1989년에는 4기통 모델을 추가로 출시했고, 가격은 3,700만원부터 책정했지만 88년에 7대, 89년에 6대만 팔리며 처참하게 실패했고 결국 출시 1년만에 판매 부진으로 철수했다.[6]
25와 1990년 21의 판매 중단 이후 10년이 지나 다시 르노가 르노삼성을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후 13년이 지나서, 1990년으로부터 23년이 지난 2013년에 르노의 차량[7]을 다시 수입해 판매하였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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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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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
포드 스콜피오 | 오펠 오메가/복스홀 칼튼 | 푸조 405 | 피아트 티포 | 시트로엥 XM | |
역대 경합 후보 | |||||
1981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
피아트 판다 | 오펠 아스코나 | 포드 시에라 | 푸조 205 | 르노 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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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경합 후보 |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
아우디 80 | 시트로엥 AX | 오펠 벡트라 | 메르세데스-벤츠 SL | ||
메르세데스-벤츠 200-300E | BMW 7시리즈 | 혼다 프렐류드 | 폭스바겐 파사트 | 포드 피에스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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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의 오펠 칼리브라가 0.26Cd를 기록하며 타이틀을 갱신했다.[2] 이는 25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출시된 21 등의 몇몇 차들에서도 나타난다.[3] 나중에 후속 모델 사프란에서 AD4/AD8로 사용됨.[4] 현재의 GS글로벌.[5] 참고로 그 당시 각그랜저 가격은 25의 절반 이하 가격인 1986년 기준으로 1,690만원~2,550만원이었고, 1988년식 쏘나타는 25보다 4~5배 더 낮은 906만원~1,206만원이었다.[6] 이건 한국인들이 해치백을 혐오(...)하는 성향에서 비릇된 걸수도 있다.[7] 르노 캡처의 대한민국 시장 판매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