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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22:19:52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똥이나 처먹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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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똥이나쳐먹어.jpg
파일:이새끼들아.jpg
왼쪽의 통을 들고 오물덩어리를 뿌리는 사람이 김두한이다. 오물을 뒤집어쓴 정일권 총리와 각료들의 모습.
1. 개요2. 배경3. 사건 발생4. 결과5. 대중매체6. 기타

1. 개요

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김두한
1966년 9월 22일 국회의원 김두한국회의사당(現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오물(분뇨)을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경제기획원장관, 김정렴 재무부장관, 민복기 법무부장관[1]을 향해 뿌린 사건이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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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원인에 대한 내용은 사카린 밀수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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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966년 9월 15일 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동년 5월 일본에서 사카린의 원료를 밀수해 들여온 사실이 경향신문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정재계를 넘어 사회 전체가 뒤집혔다. 이에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려 '특정재벌 밀수 사건에 관한 질문' 안건의 상정 및 통과가 진행됐고 관계인들이 모두 소환되어 추궁을 받았다.

이때 야당 민중당 등은 물론이고 여당인 민주공화당까지 힘을 합쳐 정부의 모르쇠와 삼성 비호에 대해 비판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인사들은 삼성 비호에 여념이 없었다.[3] 하지만 여야는 계속 한목소리로 관련자 전원 구속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면서 국회는 들끓어오르고 있었다.

3. 사건 발생

정부와 대기업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센 와중에 국회 질의 마지막 날인 9월 22일 결국 무소속 국회의원이었던 김두한이 일을 저질렀다. 당시 김두한은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이라는 조작 사건에 휘말렸다가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독립당은 완전히 와해되어 무소속인 상태였다. 즉, 울분이 쌓일 만큼 쌓여 있던 상태였다.[4]

게다가 그는 건달출신 답게 성깔 있기로 유명했는데 이미 1954년에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사세청장을 폭행한 것은 물론 잠깐 자유당에 몸담았던 시절에도 같은 당 의원인 장경근에게 손찌검을 한 전과도 있었던 정치계의 유명한 트러블메이커였다.

사실 김두한의 태도는 발언 전부터 매우 험악했다고 전해졌다. 이효상 국회의장을 대신해서 사회를 봤던 이상철 국회부의장이 김두한의 발언 순서를 불리하게 조정하자 김두한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당신 이거 한번 부서지는 거 보려고 그래요?" 라면서 협박했고 "그 따위로 당신 하면 좋지 않아! 노인이니까[5] 그냥 두지, 장 부의장같이 유도깨나 쓰면 날릴 테야!" 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장경순은 실제로 유도를 잘 했고 말년에는 유도협회에서 명예 10단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장경순의 나이는 국회부의장치고는 아주 젊은 나이인 44세에 불과했고 김두한보다 나이가 4살 어려서 서로 몸싸움이 났으면 사건이 더 커질 뻔했다. 실제로 사세청장을 폭행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6] 김두한의 이런 발언들은 매우 심상치 않게 여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이만섭, 신민당 김대중의 질의가 끝나자 김두한의 질의가 시작됐는데 일단 김두한은 “교동공립보통학교 3년 동안에 2년을 낙제하고 1년밖에 못 다녀 기초상식이 부족하여 말을 (잘)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김두한 문서에도 설명되어 있고 당시 국회 본회의 기록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김두한은 실제로 정규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깡패 출신인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굉장한 달변가[7]로 유명할 정도로 말솜씨가 매우 좋았던 편이었다. 결국 이 때부터 그의 장광설이 시작됐다.
○부의장 이상철: 다음은 김두한 의원, 발언하세요.

○김두한 의원: 이게 다른 게 아니고, 국민이 오늘 총포탄을 내려 친다고 하는 중요한 역사적 단계에서 조금 이따가 설명 하겠습니다. 내가 그 전에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했지마는 나는 어떻게 환경이 나빠서 교동공립보통학교 3년 동안 2년을 낙제해 1학년입니다. 이래서 기본적인 기초 상식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사까모도'라는 놈이 밀수를 했다.[8]이병철한국비료가 밀수를 했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그 차원을 달리하려고 생각합니다. 왜냐, 모든 것은 벽돌짝이 하나에서부터 올라가서 '뉴욕'에 제일인 '엠파이어 빌딩'이 되고, 태평양대서양도 산골짜기에서 물이 흘러가 가지고 위대한 바다를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를 이룰 때는 그 범죄의 요소에 대하여는 그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제3공화국에 있는 국회에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현 내각에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 국회라고 하는 곳은 국민의 복리, 민복을 위하는 복지사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원의 사명이고 행정부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부정과 불의(不義)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합법화시키는 곳이 만약에 국회라고 할 때 이 국회는 우리 국민이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아까 김대중 의원이 말씀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께서 장시간을 잘 들었으니 나는 그 이상 더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본 의원은 이번에 국회의원에 대한 보궐선거로 당선되자마자 서대문 형무소로 들어가 12월 눈보라 치는 영하 20도에서 한 달동안 콩밥을 씹다 나왔습니다. 거기는 내가 늘 별장 삼아서 들어가는 곳이니까 뭐 한 사십 몇 번 들어갔으니까 그것은 상관은 없고, '나 또 들어갈 심정이니까…'라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냉정히 여기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어서 이승만 정권독재부정과 부패를 했기 때문에 장면 정권은 전체 국민에게 고도의 자유민주주의를 제창했던 것입니다. 내각책임제의 정책을 하나의 선거공약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좀 그것이 지나치게 정도를… 사회 질서를 문란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국군이 60만이 있고 경찰이 7만 이상이 있고, 이 나라에 적어도 대한민국을 수립하는 수만의 애국청년이 있는데 하룻밤 사이에 대한민국이 공산당으로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수립을 위해서, 내 목 뒤에는 한방의 탄알의 흔적이 있고, 맥아더 사령부에 들어가가지고 사형을 받아 오끼나와[9] 형무소에 가 있을 때 대한민국이 수립되어서 그 영광된 시간에 나는 대사령[10]으로 석방되었던 사람입니다.

내가 사형받았던 제1심에서 하지 중장에 대하여는, 24군사령부 군사위원회에서 재판받아서 제 2심에 맥아더 사령부로 넘어갔을 때, 중앙청 회의실에서 48일 동안의 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째서 받았느냐, 카이로 선언포츠담 선언에 대하여는 대서양 헌장에는 '코리아'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준다고 그랬다. 그 적당한 시기는 소련연방의[11] 식민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괴뢰집단이 남한 전 지역을 적화시켜 가지고 역사와 전통과 민족자결원칙을 파괴해 가며 소련연방을 주창하는 것이 적당한 시기인가, 왜정 말엽에서부터 8월 15일까지 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거해서 백만이 국내, 국외, 해외에 있어서 순국선열이 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는 고결한 민족자결원칙을… 자주독립국가는 남북을 통일하는 대한민국에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 적당한 시기인가 하는, 이러한 중대한 하나의 우리 국내에는 설전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반탁과 찬탁을 비롯해가지고, 전국이 물 끓었을 때 미소공동위에서 발표했지만, 조선공산당남로당으로 변해가지고 120만에 대한 것을 전 세계에 공포했습니다. 남로당에 대하여는 솔하의 노동조합은 총평(總評)이고, 혁명조직은 민애청(民愛靑)이고, 부녀조직은 부녀동맹이고 인민위원회가 있고, 학생동맹이 있고, 국군준비대의 군사조직은 여운형 계통으로 국군준비대라는 것이 있고, 예술가 동맹과 문학가 동맹이 이것이 하나의 연합체로 해가지고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인민해방전선을 폈던 것입니다.

물론 총과 칼을 주고 대포알을 주고 대서양에 갖다버리는 잉여물자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면 훈장을 달아준다는 그 전쟁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려 할 때, 조지 워싱턴이 분개해 자유 우방은 일치단결해 영국의 세력을 물리치고 아메리카 합중국을 오늘날 같은 위대한 국가로 번영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순국선열에 대하여는 위대한 피와 모든 희생에 대하여는 고결한 그 분들의 정신이 헛되지 않고 미래에 우리가 천년의 위대한 전승의 역사를 세우기 위해서 김두한이는 배우지 못했지마는 2년 8개월 동안이라는 것을 공산당에게 테러, 학살, 방화, 납치, 무자비한 하나의 공산당 이상의 투쟁을 해가면서 최후에는 15호에 의해서 하지 중장 24군의 CIC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서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이 국가와 이 민족을 위해서 싸울 의무가 있고, 권리가 있으며, 다만 미약하나마도 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압록강두만강에서 11년 전쟁에 오스코워 전쟁과 샌드코워, 하바로스코, 청산리 전쟁일본놈이 28,000여 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월남전선에서 지금 3~4년 동안에 막대한 5만 달러를 퍼뜨리고 베트콩을 아직까지도 만 명 이상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대정시절에는 전일본병력은 국제연맹헌장에 의거해서 불과 육군력은 5만밖에 안 되었습니다. 남만사단과 평양사단은 전멸되고 조선군사령부까지 하고 나중에 그것이 모자라서 노서아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서 시베리아에 출병하였던 117연대까지 포화해서 백두산 산맥에서 전멸했습니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아버님을 두었기 때문에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의 아들이라고 하는 일본놈 핍박정치 밑에서 무지한 탄압과 그 무지한 멸시 가운데에서 공부도 못했고 불쌍한 장천교다리에서 나는 불쌍한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위대한 숭고의 피가 흘렀고, 위대한 그분에 대한 사업을 나는 완수해야겠으며, 나의 아버님의 선배와 동지가 되시는 그 분에 대하여는 백만 이상의 순국선열에 대하여는 그 영령에 헛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값없는 생명이나마라도 이 나라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값있게 바쳤던 것입니다. 나는 공산당하고 싸울 때 어떠한 명예를 앞세우든지 어떠한 하나의 부귀와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늘날과 같은 반토막이나마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분들이 번영된 아름다운 세계의 어느 나라든지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스웨덴과 지지 않는 이상적인 복지사회국가를 건설해서 우리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균등사회국가를 실현하는 헌법 전문이 있고 3.1정신을 기하여… 이것은 무슨 소리냐. '혁명정신을 기한다.' '대한임시정부가 3.1독립운동을 계승한다'고 하는 전문에 대한 명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형을 당했다가 나와서 보니, 역사와 국가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독립국가가 되면 과거에 친일파 민족 반역자하는 것은 일당의 하나가 되어 숙청은 공산당같이 잔인하다 하더라도 정치나 경제에 대한 참여권을 주지 말아야 된다. 다만, 시기적으로 15년이나 20년이라는 기간만 두어야 된다 이것이에요.

내가 이승만 전 대통령은… 내가 과거에 이승만 대통령은 무자비하게 처참하게 최후에는 희생을 시켰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나는 일체 그 분에게 대한 함구무언입니다.

나에게는 투지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남에게 굴복해 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는 이 순간에는 가장 중대한 시간입니다.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6.25 사변이 나기 전에는 미국의 원조를 정식적으로 못 받았습니다. 6.25 사변이 일어나가지고 휴전협정서에 협정조인을 하려고 덜레스 국무장관이… 대통령고문이 왔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거절을 했습니다. 너희가 당신이 한국전선에 38선하고 일본에 가서 미국에 채 도착도 하기 전에 한국은 맥아더 국방라인 선에서 제거했다고 하는 한마디로 말미암아 완전히 전쟁준비를 하고 있던 공산당이 침해해서 우리나라는 독립하자마자 초토화가 되었고 이 모양으로 초토화를 해 놓고 너희 마음대로 수백만의 인민과 재산과 젊은 학도들을 청년 학생들을 죽여 놓고 너희 마음대로 휴전을 해! 나는 못해! 그리고 비행기 타고 달려 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하고 단둘이 왔습니다. "복구를 다 해줄 것이냐." "얼마냐." "3억 8천 만 달러를 주어야 되겠다." 그 다음에 "매년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 "오케이." 하고 3억 8,000만 달러를 얻었다 이것입니다. 아 휴전협정서국장을 찍어줘! 내가 당신더러 언제 휴전협정서에 조건이 있어서! 국장을 찍어 준다고 돈을 주었나. 파괴된 것을 당신이 건설 해 놓는다고 이것은 당신이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 그것은 나는 승낙 못해! 휴전 협정서는 당신의 자유지만 나로서는 대통령과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못 해! 이래서 휴전협정서에는 외무부장관[12]에게 물어 보았지만 이승만 박사의 서명이 없고 그대로 오늘날까지 온 것입니다.[13]

그러면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38선이 막혀 놓으면 지정학적과 전략적 위치를 보았을 때, 우리가 월남보다도 좋은 위치에 처해 있는가. 어떻게 처해 있는가. 월남은 적화가 되면 캄보디아라오스같은 중립지대를 지나서 자유 타일랜드로 도망갈수가 있지만, 여기는 적화되면 동해바다와 서해바다 현해탄으로 나가고… 그 후에 과연 지정학적 전략적 위치로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분 우리는 오늘 현실에 대하여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후배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여러분들은 자녀교육을 하고 있지만, 과거 우리 선열들이 총 한번 못 쏘고 일본놈한테 이 나라의 강토를 침해해 가지고 반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가지고 이름 성명을 못 부르고 눈물겨운…

오늘날 반토막이라도 독립국가가 되어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다가 국무총리를 하고 대통령을 하고 국회의원을 하는 이 영광된 반토막이 되었지만, 오늘날 이 조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싸우고 피를 흘리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3대 민의원[14] 적에도 그랬지만, 순국 선열들의 족자를 여기에다가 걸어놓고 이 분들은 실지로 할복자살한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준 열사, 민충정공, 강우규 선생에 대하여는[15] 그분의… 나는 여러분에게 국정의 각본이 되어 주십사… 무어냐 그대들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하기 전에 국민에게 충성해야 된다. 그대들은 이승만 하나를 맹목적으로 좇으며 나는 하나의 당에 맹목적으로 좇는다. 이승만에 대한 하나의 그것은 4년이나 8년이 지나가면 그만이고, 정당은 해체하면 그만이지만, 위대한 국가의 역사와 번영과 발전이라는 것은 영구불멸할 것이다. 당신네들이 33억 달러를 지금 들여와 대한민국 전 지역에 있는 적산을 전부 미화로 따지면 100억 달러가 돼! 이놈을 합쳐놓은 천문학적 숫자를 불과 몇 놈한테 특혜조치를 해가지고 전기는 25만 키로밖에 안돼. 사탕 공장, 제당 공장, 나일론 공장 같은 것을 해서 이 따위 식으로 만약에 해 먹다가는 우리는 공산당과 도저히 이길 도리가 없다.

서독이 폐허를 딛고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서독 민족은 파괴된 건물을 그대로 두고… 전 구라파 일대의 시장을 획득하며…

○이상철 부의장: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요?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마나 걸리겠어요?

○김두한 의원(계속): 좀 더… 15분…

-(본 회의 시간 연장에 관한 건)- (오후 1시)

○이상철 부의장: 김두한 의원 발언이 끝날 때까지 한 15분 걸린다니까 발언이 끝날 때까지… 오늘 시간을 연장 하겠읍니다. 이의 없으시지요?("예" 하는 이 있음) 여러분이 양해해 주세요.

- 1966년 9월 22일, 제6대 국회 제58회 제14차 국회 본회의 회의록(pp.24~28)에서 발췌.

김두한은 이 사건의 부정, 불의에 대해 열변, 콩밥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별장 같은 감옥에 이미 40여 회 들락날락했는데 또 다시 들어갈 심정'이라는 이야기, 그의 과거 반공투쟁에 대한 자화자찬, 이승만과 자유당에 대한 이야기, 존 하지 때문에 오키나와 형무소로 갔다는 이야기, 그의 정치적 신념[16],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 해외 각국의 사례, 통일 이후 무산대중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허리띠를 졸라 매고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된다는 이야기, 친일파 민족반역자 모리배 집단에 대한 규탄, 이승만과 싸운 이야기, 박정희 정권이 과거 이승만 정권과 뭐가 다르냐는 항변 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긴 연설에 이상철 부의장이 얼마나 남았냐며 눈치를 주자 김두한은 "좀 더… 15분…"이라고 발언했다. 이상철은 다른 의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김두한이 계속 발언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 때까지만 해도 막무가내인 김두한의 행동을 보면서 다른 국회의원들은 상당히 재밌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어쨌든 부의장이 허락해 연설은 계속되었는데…
-(특정 재벌 밀수사건에 관한 질문)- (오후 1시 2분)

○김두한 의원(계속): 이것은 서독 사람이 먹지 않고 기업주와 노동자가 합작을 해 가지고 구라파 시장을 획득하는 피와 노력의 대가에 있어서 미국 다음가는 달러 보유 국가가 되었습니다. 패망한 일본이 서독과 같이 부흥해서 아시아의 반공의 거점을 설정하는 대국가로 등장했고, 우리는 38선을 지정학적과 전략적 위치에 놓고 북한 공산당보다 남한은 이상된 복지사회국가를 건설해야 머지 않은 장래에 유엔 총회에서 어떠한 방식이든지간에 통일할 때 우리가 마음 놓고 대다수의 80%의 무산대중대한민국의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는 역사적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데, 전부 관료했던 놈, 친일파 하던 놈, 모리배하던 놈 갖다가 놓고, 이 나라의 국가조직을 하면 이 나라는 강도집단이오,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집단인 이상 이것은 애국정당이라고 보고, 애국정권이라고 볼 수 없는 만큼,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의 도당의 두목으로 규정하여 나는 역사적 국민에게 고발하는 동시에, 이 나라의 헌정을 파괴하고 민족요인을 파괴하는 이승만 정권을 파괴해서 나는 최후에 내 생명이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것을 3대 민의원 적에 그 때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4.19 후에 무서운 철퇴를 내려가지고 그 역사에 번복이 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서 새벽 3시에 들어와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강탈하고, 국민의 참정권을 갖다가 박탈하는 그 정권까지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다고 선의로 해석하나, 과거의 자유당 이상으로 부정하고, 부패하고, 독점시켜서 전체 민족의 대다수를 빈곤에 몰아넣고 몇 놈에게 특혜조치를 한다고 하는 과거에 있었던 부정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 했을 때 이것은 건국을… 이승만 대통령의 때와 무엇이 역사가 다르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나는 대통령이 여기에 나왔으면 호되게 한 번 따지고 싶지만, 국무총리가 여기 대통령을 대리하고 여기 장관이 나와 있으니까, 나는 이 사람을 내각으로 보지 않고 오늘날 3년 몇 개월 동안 부정과 불의를 하는 것을 합리화시켜버린 하나의 피고[17]로서 오늘 이 시간부터 다루겠습니다. (장내 웃음소리)

이것이 도적질해 먹는 국민의 모든 재산을 도적질해서 합리화하고… 합리화시키는 이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18] 국민의 '사카린'이올시다. 그러니까 이 내각은 고루 고루 맛을 보여야 알지…[19]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20]

(장내 소란)

("산회 선포해요" 하는 이 있음)

○이상철 부의장: 오늘은 이로써 산회를 선포합니다. (오후 1시 6분 산회)

○출석의원 수 157인
○국무총리 및 출석 국무위원
○국무총리 정일권
○경제기획원장관 장기영
○법무부장관 민복기
○재무부장관 김정렴

- 1966년 9월 22일, 제6대 국회 제58회 제14차 국회 본회의 회의록(p.28)에서 발췌.

훗날 스포츠 서울과 MBC 히스토리 후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똥물은 김두한이 당시 수행비서였던 채원기를 시켜 탑골공원 변소에서 퍼 왔다고 한다. 같은 수행비서였던 모세원은 다른 비서인 이세원이 탑골공원에서 퍼온 것이라 증언했다. 김두한 본인이 말하기를 사건 직후 순국 선열의 혼을 기리기 위해 일부러 탑골공원 변소의 똥을 퍼왔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1966년 첫 번째 공판 과정 중에는 비서 2명에게 지시해 자택 변소에서 퍼 왔다고 증언했다.

속기록에는 간단히 '장내 소란'[21]이라고만 나와 있지만 서술과는 달리 당시 국회는 순식간에 기습적으로 인분을 뒤집어 쓴 국무위원들의 비명과 경악에, 진동하는 고약한 냄새에,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혼비백산한 의원들까지 한순간에 차마 필설로 다 하지 못하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렇게 한순간에 완전히 뒤집혀진 국회 내부 분위기로 인해 회의는 결국 즉각 중단되고 말았다. 그 날 김두한의 정면에 앉아 있던 국무총리 정일권은 인분 세례에 직격으로 맞은 탓에 양복은 물론 시계까지 모두 구리고 묵은 똥냄새가 배어 결국 모두 버렸다고 한다. 또 국회 속기사들도 날벼락을 맞았다고 전해졌다.
당시 국회에 참석해 발언했던 이만섭국회의장의 회고. 3분 41초부터 국회 오물 투척 사건에 관한 부분이다.

4. 결과

이 사건으로 인해 정일권 총리를 비롯한 내각총사퇴를 선언했고 다른 곳도 아니고 국회에서 똥물을 뿌렸으니 당연히 여당에서 구속동의안을 냈다.[22] 구속 직전에 김두한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뒤[23] 서대문형무소에 구속 수감됐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사건에서 나온 김두한 특유의 직설적인 언행이 문제가 됐다. 바로 '대통령이 여기에 나왔으면 호되게 한 번 따지고 싶지만'이라는 발언으로, 당시 사회 정서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대통령을 디스한 것으로 취급됐다. 당연히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사건을 보고받은 박정희는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고. 노골적으로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적인 발언을 한 데다가 호되게 따지는 방식마저 충격적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저 정도 발언은 민주화 이후 누구나 대통령까지 욕할 수 있는 시대엔 당연시되는 수준이지만, 저 시절은 유신독재가 노골적으로 시행되기 전이었으나 사회 전반적으로 군사정권권위주의가 크게 짙어있었던 시기라서 대통령민주주의 국가의 국가원수보다는 군주의 권위에 가깝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있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파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셈.

당시 박정희 정권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여론이 몹시 나빴기 때문에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김두한에게 화살을 돌려 여론을 바꾸려고 노력했으나 대부분의 여론은 "김두한이 깡패는 깡패지만 이번 일만큼은 정말 잘했다!"라는 반응이었으므로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론이 정부에 대해 여전히 분노하고 김두한을 칭찬하는 쪽으로 기울자 신민당은 쾌재를 부르면서 김두한을 옹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으며, 아예 김두한을 직접 영입도 시켰다. 덕분에 아주 잠깐 자유당에 있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늘 군소정당이나 무소속을 떠돌아 다녔던 김두한은 정치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정당에서 당적을 지닐 수 있게 됐다.

이후 김두한은 1년 정도 수감됐는데, 이무렵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몸을 망쳤으며[24] 그가 얼마 안 가 50대의 나이에 급사하는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수감 중에 할복을 시도하는 소동을 벌였다가 곧 얼마 안 되어서 고혈압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선거 연설 도중 북한 찬양으로 반공법 위반[25], 선관위원장 폭행 등으로 재수감됐으며 다시 병보석으로 석방되는 것을 반복했다. 어쨌든 그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이병희 후보에 약간의 표 차이로 밀려 낙선했다.
또 이 사건은 삼성의 후계구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26] 김두한의 오물 투척이 삼성 후계구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기사.

또한 이 사건과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인해 당시 호남정유가 원래 미쓰이와 제휴하려던 계획을 파기하고 미국 쉐브론 계열사 칼텍스와 제휴하기에 이른다.[27]

5. 대중매체

근대 역사를 다룬 드라마들인 제3공화국 23화, 야인시대 1화 및 최종화인 124화, 영웅시대 56화[28]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으며 당시 상황 재현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29] 이 중에서는 특히 야인시대의 장면이 유명하다.

KBS 사극에 이 사건을 레퍼런스한 듯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무인시대에서는 최충헌의 인척 노인우가 연회장에 똥물을 뿌리면서 현실을 비판하는 장면이 나왔으며 대조영에서는 대조영 일행이 힘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귀부산 수용소의 현실을 타파하고 서로 돕게 하고자 일부러 흑수돌이 앞서 밥이 담긴 구유에 똥물을 뿌리는 장면이 나왔다. 정도전에서는 정도전이인임의 집에 각각 선비와 백성의 똥물을 뿌리고 도망가는 장면이 2번이나 나온다.

5.1.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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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작중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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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124화 中[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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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의원 여러분, 그리고 여기에 나오신 국무위원 여러분. 재벌사카린을 밀수했습니다, 여러분! 나라와 국민을 배신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실은 언론이 앞서서 보도를 하고 있는데, 국회는 시간만 허비하고 있습니다! 여야 총무단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정부는 뭘 하고 있어요? 재벌 회장을 즉각 구속하지 않고 송사리잡았느냐, 이 말이에요![31]
의원들: 옳소!

(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여당 의원들이 반발한다.[32] 한편, 김두한이 의사당에 도착해 들어간다.)

경찰 1: 잠깐만요! 의원님, 이게 뭡니까?
김두한: 사카린이야.
경찰 1: 예?
김두한: 지금 국회에 이거 증거물로 가져가는 거야, 사카린 말이야.
경찰 1: 하지만… 회의장 안에는 아무것도 반입할 수가 없습니다.
김두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넨 이 나라 대한민국 사람 아니야?
경찰 1: 아, 저, 하지만…
김두한: 비켜. 이 정부 사람들 혼 좀 내주려 그래.

(김두한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간다.)

경찰 1: 아, 저… 의원님, 의원님!
이상철: 에… 다음은 김대중 의원, 발언하세요.
김대중: 존경하는 여, 야 으원 여러분. 본 으원이 생각하건대, 지금처럼 모든 국민의 눈초리와 관심이 본 으사당에 집중된 적도 읎다고 생각헙니다. 이것은 비통과 분노의 관심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재벌들 어떻습니까?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혜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박순천: 김 의원, 이게 뭡니꺼?
김두한: 사카린입니다. 증거물이에요.
박순천: 아이고, 이걸 우예 가왔십니꺼?[33]
김두한: 김대중 의원의 연설이로군요. 다음은 내 차롄데…
김대중: 한국비료 하나 세우면서 우리 국민은 6,000만의 빚을 졌어요! 이것은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일본에 대해서 1,000원씩 빚을 졌다는 얘깁니다![34] 누구보다도 특혜를 받는 재벌들이, 한 술 더 떠서, 밀수까지 해서 배를 불립니까?
김두한: 옳소!

(다시 야당 의원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여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진다.)

이상철: 조용히 하세요! 아, 거 좀 조용히들 하세요! (잠시 후) 김 의원, 계속 발언하세요.

(그 순간 회의장이 다시 잠잠해진다.)

김대중: 이번 사카린 문제에 대해서, 총리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일권이 김대중의 시선을 피한다.) 법무부 장관은 물론이고, 내각은 총사퇴할 으사가 없으십니까?
박순천: 아이고, 도대체 이게 무신 냄시고? 이게 무신 냄시요? 이거 사카린 맞아요? 아, 김 의원!
김두한: 하… 아, 그렇다니까요.
박순천: 아, 무신 사카린 냄시가 이리 고약하노? 아이고, 냄시야…[35]
경찰 2: 이봐, 박 경위.[36]
경찰 1: 예.
경찰 2: 김두한 의원 말이야, 그 통에 뭔갈 들고 들어왔던데, 그게 뭔가?
경찰 1: 사카린이라고 하던데요.
경찰 2: 이 사람아, 회의장 안엔 어떤 물건도 못 들고 들어간다는 걸 모르나?
경찰 1: 예, 그게 저… 증거물이라고 해서요.
경찰 2: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헌데 무슨 증거물 통이 그리 크단 말인가? 아무튼….
이상철: 다음은 김두한 의원, 발언하세요.

(김두한이 호명되자 경찰들이 놀라서 뒤돌아보고, 김두한이 오물이 들어있는 통을 들고 단상에 오른다.)
김두한: 여러분, 나 김두한입니다. 에… 오늘 본 의원이 생각하건대, 이 사카린 문제는 국민이 우리에게 총포탄을 내려치는 중요한 질책입니다.[37] 나 김두한은 환경이 나빠가지고 교동보통공립학교 1학년이 전부올시다. 본래 아는 게 없어서 말을 잘 할 줄 모르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할 줄 모르는 행동을![38] 나는 할 수가 있어요! 지금 밀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는 겁니다. 본 의원은 이번에 국회에 당선되자마자 서대문형무소로 직행해서 1달 반 동안 콩밥을 먹다 나왔습니다! 거기는 내가 늘 별장 삼아서 들어가는 곳이죠. 오늘 난 다시 그 곳으로 갈 준비를 해가지고 이 곳에 왔습니다. (오물통을 두 번 두드리고) 이 선물을 가지고요.

그 동안 나 김두한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맥아더 정부에서 사형도 받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이신 김좌진 장군이십니다. 난 그분의 피를 받아서 그 분의 사업을 완수해야겠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요. 5.16 군사혁명이 뭡니까? 새벽 3시에 군인들이 총칼을 들고 와서 민주주의를 파괴를 했어요! 과거의 자유당 이상으로 부패했어요! 국민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몇몇 사람들에게 특혜조치를…
이상철: 김 의원! 본 의제만 말씀하세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김두한: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본론을 말씀을 드리지요. 나 김두한은 오늘 이 자리에 대통령이 나왔다면은, 국민의 이름으로 한번 호되게 따지려고 했어요.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대통령 대리로 나와 있으니까 이 사람들을 추궁을 하겠습니다!

(김두한이 옆에 있는 오물통의 보따리를 풀면서 발언을 이어간다.)

여러분, 이게 뭔 줄 아십니까? 이거 아주 소~중한 선물이올시다. 국민의 채찍이올시다! 나 김두한 본 의원은! 이 시각부터 이 대통령을 대리해서 나온 이 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을 모두 피고로 다루겠습니다. 피고 말이에요! 죄를 지은 피고!![39]
내가 이것을 들고 온 것은, 이 나라 재산을 도둑질 해먹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벌이에요! 국민의 사카린이올시다! 그러니까 이 내각은 지금부터 내가 전하는 이 선물을 고루고루 맛을 봐야 합니다. 일제 치하 기미년 3.1 운동 때, 피를 흘리며 나라를 위해 싸우던 애국선열들이 지금 여기 나와있는 이 한심한 정부에게 주는 거예요!

(경찰들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집합하며, 김두한은 말이 끝나자마자 오물통의 뚜껑을 확 열어던진다.)

국민의 선물을 받으시오. 그리고 반성들 하세요!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요! 국민들은 날 보고 정부에게 이렇게 말을 하라고 했어!

파일:김두한 똥물.gif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전설의 영웅 BGM이 흘러나오고, 경찰들이 뛰어온다, 그리고 이상철 부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모두 놀라 일어선다.)

(앉아 있던 최동열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김두한은 오물을 내각 사람들에게 계속 뿌려대고, 경찰들은 오물을 맞은 총리와 국무위원들을 서둘러 대피시킨다.)

박순천: 아이고, 다 냄새가 난다 캤다. 어유, 이를 우짜면 좋노? 잉? 이를 우야면 좋노?[40]

(국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기자들은 오물 범벅이 된 채 황급히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국무위원들의 사진을 정신없이 찍고 있다.)

김두한: (오물통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 아수라장이 된 회의장을 바라보면서 호탕하게 웃으며 삿대질한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똥물을 뿌린 사건이 실린 중앙일보 신문이 나오고, 그 직후 신문이 발간되는 장면 속에서 신문 뭉치를 들고 급히 출동하는 어린이들과 역시 똥물을 뿌린 사건이 실린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들이 교대로 잇달아 나온다.)
야인시대프롤로그 부분인 1화 초반에 한 번 나오고, 피날레인 124화에서 다시 한 번 나온다. 수미상관의 구조로, 초반에 김두한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일대기를 시작으로 마지막에 여기까지 도달했음을 알리는 장치다.}}}

야인시대에서 재연한 대사는 실제 사건 당시 김두한의 장황한 발언과 비교하면 비교적 간략화된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만큼은 원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인용해 굉장한 임팩트를 자랑한다. 또 국회 속기록에는 없는 투척 직전의 대사[41]는 국민을 대변해 위정자들에게 일갈하는 모습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당시 유일한 여성의원이었던 박순천 의원(배우 김지영 분)[42]경상도 사투리[43] 백미였으며 이만섭, 김대중 의원의 연설 순서를 지키면서 나름대로 고증에도 충실했다.[44] 촬영도 실제 사건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던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에서 이루어졌다.

1화 초반부/124화 중반부에 오물통을 만드는 과정이 나오는데, 김두한의 비서 정대발이 김두한의 명령을 받고 부하들과 함께 폭우가 내리는 밤중에 작업을 벌인다. 파고다공원 변소의 깊은 하수도 밑바닥에서 퍼올린 인분을 철통에 담고 그 위에 흰 무명을 덮는다. 다시 무명천 위에 밀가루를 1차로 덮고 그 위에 소량의 사카린을 깐 다음, 깨끗한 포장지로 예쁘게 잘 싸면 완성했다.[45] 다만 직접 만들러 갔던 정대발과 수행원들은 막상 김두한이 진짜로 오물을 뿌리자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데, 정말로 국무위원들의 면전에 뿌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46]

2020년에 배우 김영철이 밝히기를, 촬영에 쓰인 똥물은 당연히 진짜가 아니고 황토물감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

우연의 일치이지만,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에서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가 신하들을 "똥 막대기"라고 질타하는 장면이 있다. 같은 작가가 쓴 것이긴 하지만 이 때문에 야인시대 합성물에서 이 둘을 연관짓기도 한다. 사용예시 스캇충 이미지는 덤이었다. 하스피탈스톤에서는 '카레왕 김두한'으로 나온다. 또한 파티를 연 이승만에서는 이승만이 직접 재배한 루왁커피똥꼬쇼로 눈갱을 일으킨 임화수눈물의 곡절에게 먹이는 장면으로 나온다. 똥물의 색을 청록색으로 바꿔서 민트초코를 강권하는 민초전사(장면은 4분 43초부터)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똥을 뿌리고 나서 김두한이 삿대질하며 웃는 장면은, 김두한이 인성질을 하는 장면에 사용된다.

6. 기타


[1]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훗날 인터뷰에서 민복기 법무부장관 대신 이호 내무부장관을 언급했는데 이는 이 의장의 기억 혼선에서 비롯된 오류다. 오물 사건 당시의 내무부장관은 이호가 아니라 엄민영이었기 때문. 이호가 내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1967년이었다. 그리고 이호는 1960년 허정 과도내각에서도 이미 내무부장관 겸 국무원 사무처장을 지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도 내무부장관을 지냈고 오물 사건과 근접한 시기에도 내무부장관을 지냈던 이호로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2]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만섭 의원부터가 민주공화당 소속이었다.[3] 이는 본인들이 사실상 뒤를 봐주다가 이 사단이 난 것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행보이기도 했다. 허나 이후 이맹희가 폭로한 전후 관계를 보면 정치자금을 기업에게서 삥 뜯기 위해 그렇게 밀수라는 더러운 짓거리까지 눈감아 주거나 조장하던 당시 정부가 결국엔 여론에 밀리자 모든 잘못이 삼성에 있다는 식으로 뒤통수를 쳐 그 일을 담당한 자신과 삼성만 덤터기를 쓰게 됐다고 한다.[4] 실제로 김두한은 발언 중에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서대문형무소에서 영하 20도의 날씨에 콩밥을 먹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5] 이상철 부의장은 1893년생으로 이때 이미 73세의 노인이었다. 73세는 21세기에도 적지 않은 나이에 속하는데 당시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나이였다. 당장 김두한이 세상을 떠났던 나이도 54세(세는나이로 55세)였다.[6] 이때 김두한에게 폭행을 당한 김만기 당시 사세청장은 사세청장 지위를 이용해 축적한 재산으로 나중에 대성학원을 설립했다.[7] "노변야화 - 김두한편"의 진행자 권오기라든지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김두한에 대해 "글을 못 읽기는 해도 의외로 똑똑하며 말재주가 좋았다" 같은 증언을 남긴 바 있다. 다만 연설 전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달변가의 발언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문장에 비문이 없고 내용이 깔끔함은 물론, 이치에 맞으며 듣는 데도 불편함이 없는 정석적인 연설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라면서, 특히 깡패짓을 하면서 입을 많이 털어서 그런지 학력에 비해 언변이 좋았다. 해당 연설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내용을 조리있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논객 타입의 달변가라기보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옆으로 새나가고 사설이 길고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많지만 그래도 듣기에는 재미있고 듣다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는 '입담이 좋은 재담가' 타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8] 1966년 8월에 터졌던 사카모토방적(阪本紡織)의 테트론 (폴리에스테르 옷감) 밀수 사건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기사들 사카모토방적은 이후 방림으로 사명을 바꾸고 현재까지 이어져 있다.[9] 오키나와가 올바른 표현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최대한 그대로 받아적는 구술의 특성 상 오끼나와로 표기한다.[10] 큰 규모의 사면.[11] 소련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혹은 연맹)'의 준말이므로 겹말이 되기 때문에 어법상 맞지 않는 말이다.[12] 여기서 말하는 외무부장관이 누구인지는 미상이지만 정전협정 당시 외무부장관은 변영태,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는 이동원이었다. 이동원 장관의 전임자가 바로 정일권이었는데, 정일권은 당시 이미 총리와 외무부장관을 겸임하였다.[13] 사실 이건 김두한이 잘 모르고 한 소리다. 군 대 군 협정이라 애초에 국장을 찍을 일이 없었다. 명목상 북한의 국가원수였던 김두봉도 김일성이 서명하는 것을 처다보기만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14] 헌법상 민참 양원제가 규정된 것은 3대 국회의원 때부터라, 민의원이라는 이름은 3대부터 썼다. 그런데 이승만이 참의원 구성을 불허하여 참의원은 헌법상으로만 규정되었을 뿐, 실제로는 민의원 하나로만 돌아가는 단원제였다. 참의원이 제대로 수립된 건 이승만이 4.19로 불명예 하야하고 허정 과도내각2공제5대 국회를 수립시킨 후부터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박정희5.16을 일으켜 민참 양원은 해산되었으며, 박정희 정부는 단원제로 회귀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양원 국회는 5대 국회가 유일하게 되었다.[15] 정작 이들 중 할복한 사람은 민영환 열사 혼자다. 이준 열사에게도 할복자살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오류로 밝혀졌다. 다른 방식의 자살이라는 설과 기존 기록인 병사(病死)설로 나뉜다. 나머지는 다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정부에 의해 사형당했다. 윤봉길 의사도 훙커우 의거 직후 자살 시도를 했으나 할복은 아니고 도시락 폭탄으로 자살하려고 했다가 금방 잡혀서 못 했다. 연단에 던졌다고 흔히 알려진 도시락 폭탄은 자살용이었고 실제로 던진 건 물통 폭탄이었다.[16] 의외라면 의외로, 김두한은 "북유럽 못지않은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공산당이 못하는 걸 남한은 할 수 있다는 맥락이다.[17] 피고는 민사소송에서 쓰는 개념이고, 범죄의 혐의를 받는 사람의 유무죄, 혹은 형량을 정하는 형사소송에서는 피고'인'이라고 한다. 원래 여기서는 맥락상 피고인이 맞지만 김두한이 피고와 피고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서 쓸 정도의 지식인은 아니라서 혼동한 것이다. 사실 법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일상에서도 혼동하기 쉬운 말이다.[18] 이때쯤 보따리를 꺼내 단상에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19] 이 시점에 보따리를 풀어 헤친 것으로 추정이 된다.[20] "개새끼들아!"를 잘못 기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국회 속기록에는 '이 새끼들아'로 나온다.[21] 이 '장내 소란'이라는 말은 속기사가 자의적으로 쓴 게 아니라 공식적으로 규정된 어휘다. 속기를 하다가 회의장이 난장판이 되면 이 단어를 쓰도록 규정된 것. 유명 걸그룹 Apink의 리더 박초롱이 2023년 국회TV에서 찍은 인턴 체험 영상 중 속기사편을 보면 알 수 있다.[22] 아마 정말로 사카린 가루로 소동을 냈으면 국회도 그렇게 뒤집힐 일도 없었을 것이고, 좋게 보면 쇼맨십 수준인지라 그저 징계 수준에서 그쳤을 것이다.[23] 김두한에 대한 징계 논의가 진행되던 중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퇴 의사를 밝힐 때에도 특유의 장광설이 발동했는데, 이번에는 '민주주의의 개념과 현실정치'라는 주제였다. 주제 자체만 놓고 보면 상황과 그렇게까지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이야기 중간부터 군주제와 공화제의 비교를 시작하더니 결국 일본 천황제와 막부의 역사적 관계, 일본의 개항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굉장히 기묘한 결론을 내며 이야기를 끝냈다. 이에 참다 못한 누군가가 "신상발언만 하라고!"라면서 소리를 지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24]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앞니가 다 뽑혔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직 국회의원을 중앙정보부 따위가 끌고 가 고문한다는 것 자체가 쇼킹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게다가 당시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과 구술 기록에 따르면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오물 투척은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박정희 입장에선 견제 대상인) 김종필의 지령’이라고 보고해 박정희가 ‘김두한이를 데려다 어떻게든 자백을 받으라’는 지시를 했고, 때문에 김두한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25] 물론 해방 직후 정치깡패 노릇을 하면서 백색테러로 무자비하게 공산당을 때려잡았던 반공주의자 김두한의 발자취로 보아 실제로 북한을 옹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위의 국회의사록에 기록된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에 거슬리는 인사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구속하던게 저 시절이었다. 농담 같지만 실제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가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라며 잡혀간 사례가 정말 많았다. "하다못해 북한도 이러지는 않는데" 정도의 발언을 했다가, 혹은 무허가 판잣집을 강제로 철거하는 공무원들에게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고 소리치며 울부짖다가 반란수괴 찬양 혐의로 잡혀가는 일도 있었을 정도. 막걸리 보안법 문서 참조.[26] 정확히 말하면 이 사건의 배경인 사카린 밀수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27] 그래서 호남정유가 LG칼텍스정유로 사명이 바뀌기 전의 로고에 칼텍스 로고가 끼어있다든지 현재 사명이 GS칼텍스로 되어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28] 야인시대와 영웅시대 둘 다 이환경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영웅시대의 장면은 야인시대 장면의 요약판 수준으로 대사가 똑같다.[29] 오물 투척 장면에서 부의장의 모습이 차이가 났는데 야인시대에서는 당황하는 장면만 나오지만 영웅시대에서는 실제 그대로 곧바로 산회를 선포했다.[30] 1회의 장면이 그대로 쓰였지만 BGM이 1회 대비 많이 삽입됐으며 오물 투척 장면에서는 전설의 영웅 BGM이 나온다.[31] 상기한 신문 기사 내용을 인용했다.[32] 사실 이 장면은 고증오류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여당 야당이 서로 합심해서 정부를 크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만섭은 당시 여당 의원이었다.[33] =어떻게 가져왔습니까?[34] 1966년 9월 당시 20리터(대략 19.2kg)의 가격이 870원이었다. 출처 2019년 9월 쌀 시세가 20kg당 54,780원이었으니, 당시 1,000원을 현대 시세로 환산하면 대략 60,446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35] 실제로는 아주 단단히 밀봉해 둔 까닭에, 이만섭 당시 의원이 "가까이에서 오물 통을 보고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아서, 정말 사카린인 줄 알았다"고 한다. 즉, 박순천이 악취를 맡는 부분은 극중 재미를 위해 각색된 장면이다. 실제로 냄새가 났더라면 국회에 반입하지 못했을 것이다.[36] 아까 김두한을 접견했던 경위에게 반말을 하는 걸로 보아, 상관 또는 선임으로 추정된다.[37] 여기서 최치환 의원, 육인수 의원, 장경순 국회부의장이 앞에 잠시 보인다.[38] 여기서 들숨을 잠깐 쉬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탁 친다.[39] 실제 형사재판상에서는 피고가 아니라 피고인이라고 부른다. 피고는 민사상에서 일컫는 명칭이다. 일반인들도 두 단어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쓰지는 않으며, 김두한 연설의 실제 속기록에도 그가 '피고인'이 아니라 '피고'라고 말했음이 드러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실수가 아니라, 작가가 최대한 역사상의 연설을 가져와서 고증에 충실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40] 영웅시대 56화에서는 차지철이 김두한 옆에 앉아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김두한이 오물을 투척할 때 차지철한테도 튀었다. 이 때 차지철의 대사가 개그 그 자체였다. 차지철 : 무슨 사카린 냄새가… (똥맛 보고 깜짝 놀라며) 어이구 냄새(x3) 어이구 저저 김두한 이놈. 미쳤어? 미쳤어 저놈?![41] "일제 치하~정부에게 이렇게 말을 하라고 했어!" 실제 사건에서는 국회 속기록처럼 "고루고루 맛을 보아야 한다"는 말 이후에 바로 뿌렸으나, 야인시대에서는 뒤에 추가로 꾸짖는 말을 보탰다.[42]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의 발기인으로 참가한 전적이 있으나, 박정희 정권 초기에는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이후 유신정권 치하에서 국토통일원 고문, 육영수 여사 추모기념사업회 이사장, 대통령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3년 1월 9일 작고.[43] 박순천 의원은 경상남도 기장군(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출신이며 생전에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한 화자로 알려져 있다.[44] 그 외에도 최치환 의원과 당시 부의장이었던 장경순 등이 나온다.[45] 그래서 김두한이 똥물을 뿌리기 위해 그 똥물이 든 통의 뚜껑을 확 열어던지는 순간, 흰 가루가 흩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의원들도 이를 보고 '당연히 사카린 가루겠거니'라고 생각하고, 봉변이래봤자 사카린 가루나 뿌려댈거라고 예상한 것인지, 특별히 동요하지도 않았다.[46] 그 와중에 같은 장소에 앉아있던 최동열은 김두한이 그 오물을 국무위원들에게 뿌리는 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