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6:56:30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역대 세계 최고층 마천루
미국
크라이슬러 빌딩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미국
제1세계무역센터
1930년~1931년 1931년~1970년 1970년~1973년
318.9 m / 77F 381 m / 102F 417 m / 110F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파일: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위치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5번가
착공 1930년
완공 1931년
개장 1931년
층수 지상 102층[1]/지하 2층
높이 381 m(안테나 포함 443.2 m)
소유주 엠파이어 스테이트 부동산 신탁
링크 트위터

1. 개요2. 연혁
2.1. 최고층 마천루의 경쟁2.2. 공실률2.3. 1945년의 비행기 충돌 사고
3. 특징
3.1. 건설 과정
4. 매체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wallpoper.com/empire-state-building-3_00439888.jpg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전경. 사진은 록펠러 센터 컴캐스트 빌딩 최상층 전망대에서 찍은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미국 뉴욕 맨해튼 34번가에 자리잡은 마천루이다. 아르데코 양식이 특징이며, 약칭은 ESB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란 뉴욕주의 별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 최초로 100층을 넘긴 마천루로서 뉴욕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자리를 장장 39년간 유지했던 마천루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로,[2] 세계무역센터가 지어지면서 2위로 밀려났다. 2001년에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진 이후로는 다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고 미국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되었으나, 이후 세계무역센터가 2014년에 부활하면서 다시 뉴욕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 순위가 2등으로 밀렸다. 이후 뉴욕내에 새로 지어지는 초고층 마천루들이 많아지면서 2021년 현재 건물 높이면에 있어서는 뉴욕 7위라는 옛 명성에 비해 다소 빛바랜 순위로까지 밀려났다.

하지만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마천루로서의 지위만큼은 여전히 제1세계무역센터를 압도할 정도로 가장 높다.[3] 높이와는 상관없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위상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인데, 세계 건축사에서 '마천루'라는 고층 빌딩의 패러다임을 정립하기 시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2. 연혁

원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건물이 있었는데, 그 자리도 원래 당대 최고의 명문가인 애스터 가문의 저택이 있었으나 분열된 뒤에는 호텔들이 들어서고 병합으로 하나의 호텔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20년대 후반 당시 호텔이 오래되고 상류층 문화가 뉴욕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소유주가 호텔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 뒤, 건물은 팔아버렸다고 한다.[4] 그래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짓기 위해 이 호텔 건물을 매입하여 헐어내는 데만 80일이 걸렸었다. 이후 뉴욕 주의 재원으로 1930년 3월 17일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1년 45일 뒤인 1931년 5월 1일에 개장하였다. 1929년은 세계 대공황이 불어닥쳤던 해인데, 오히려 노동자들이 받을 임금과 철골값이 반값으로 떨어져 매우 저렴하게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손에 꼽힐 만한 마천루를 지을 때는 경기 침체가 징크스처럼 따라다니는데, 이는 마천루의 저주를 참고.

2.1. 최고층 마천루의 경쟁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전체 102층에 높이 381m[5]로 그때 당시 최고층이었던 크라이슬러 빌딩[6]을 누르고 약 41년 동안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가 제1세계무역센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참고로 제1세계무역센터의 경우 2년 만에 시카고의 윌리스 타워(시어스 타워)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 건물을 지을 무렵 미국에서는 초고층 건물 건축경쟁이 붙어, 1930년에서 1931년 사이에 세계 최고층 빌딩의 순위가 3번이나 바뀌었다. 제일 처음 1930년 초 세계 최고층 빌딩인 트럼프 빌딩(40 월 스트리트)[7]이 맨해튼에 세워졌으나 그 직후 크라이슬러 빌딩[8]이 완공되며 2위로 밀리고, 다시 그 다음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지며 크라이슬러 빌딩이 2위로 밀린다.

그래서 1931년, 대공황의 첫머리에 뉴욕에는 세계 최고층 빌딩 1, 2, 3위가 나란히 위용을 뽐내는 광경이 벌어졌다. 이 세 건물의 착공시기가 모두 1928년에서 1929년이다. 미국의 경제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

2.2. 공실률

이렇게 지어진 마천루들은 완공과 함께 대공황 세례를 받고 상당기간 입주하는 회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공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1930년대에는 Empty State Building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거의 모든 층에서 임대가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러 빈 층에 불을 켜놓아서 임대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려는 꼼수까지 썼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가 되어서야 이들 마천루들은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2.3. 1945년의 비행기 충돌 사고

파일:external/i1.wp.com/gty_esb_bomber_crash_1945_ss_jp_120308_vblog.jpg

1945년 7월 28일 오전 9시 40분, 매사추세츠 주의 렉싱턴 육군 비행장을 이륙해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미합중국 육군 소속 B-25 폭격기 한 대가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항로를 변경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해당 폭격기에는 조종사 윌리엄 F. 스미스(William F. Smith) 육군 중령과 크리스토퍼 도미트로비치(Christopher Domitrovich) 육군 중사, 앨버트 페르나(Albert Perna) 해군 항공 기관 부사관 3명이 타고 있었다.

스미스 중령의 마지막 교신은 "이상하다, 이 근방 어디쯤 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여야 할 텐데...?"였으며, 이 충돌의 여파로 78층과 80층 사이의 외벽이 파손됨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사고 현장에 있던 천주교 산하기관 직원 11명과 폭격기에 탑승한 군인 3명 전원, 총 14명이 사망하였다. 의외로 사망자가 적은 것은 위에서 언급된 당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가공할 공실률 덕분이었다. 또한 당시 B-25는 단순한 훈련 비행 중이었기 때문에 폭탄 등을 탑재하지 않아서 추가 유폭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구조작업 중에도 사고가 터졌다. 폭발의 충격이 승강기 운전 계통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시 사람들은 미처 하지 못했는지 소방 당국은 부상자를 승강기로 실어나르려 하였다. 결국 승강기는 80층에서 갓 구조된 화상 환자(20세·女)를 태우고 내려가다가, 75층에서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지하층까지 300m 높이를 그대로 자유낙하하고 만다. 안에 있던 사람은 놀랍게도 살아남았는데, 떨어지던 중 승강기에 부드러운 공기 층이 생겨 살아남은 것이다. 목숨을 건진 대신 목뼈 · 허리뼈 · 골반뼈가 부러져 전치 12주 석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 사건은 역대 승강기 추락사고 중 최대 낙폭에서의 생존 사례로 기네스북에 올라갔다. #, # 이들 소방대는 구조작업 중 사고가 난 80층보다 위쪽에 고립된 어느 여인이 절망에 빠져서 패닉 상태가 되었을 때 창 밖으로 던져버린 결혼반지까지 찾아내서 돌려주었다고 한다.

큰 피해와 여러 부상자,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뒤인 월요일 아침에 여러 층이 영업을 재개했으며, 외벽이 손상된 78층은 잔해가 치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나이티드 디스틸러스[9]의 본사로 쓰였다.

이 사고는 이후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회자되기도 했다. 고층 빌딩에 항공기가 충돌한 사고라는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벽에 손상을 입었지만 건물 자체는 멀쩡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공법과 결국에는 무너져버린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공법을 대비시키며 이후 고층건물들이 메가칼럼을 중심에 지니는 형태로 대거 바뀌게 되었다.

물론 9.11 테러와는 달리 이 일은 엄연히 '사고'였고, 사고의 진행 과정 및 배경도 차이가 났다. 당장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보잉 767은 기체 중량 80t, 최대 이륙 중량은 150t에 달하고[10] 충돌 당시 속도도 800~950㎞/h에 달했다. 폭탄이나 다량의 연료 등을 싣고 있지도 않았고 크기도 작고 느린 프로펠러기인 B-25 폭격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2013년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3. 특징

초고층 빌딩의 상징 같은 건물이라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빌딩 꼭대기로 올라가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두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며, 뉴욕 야경을 배경으로 빌딩 외벽에 하트가 그려지는 씬이 유명하다.

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부터 브로드웨이까지를 뉴욕 맨해튼 5번가(5th Avenue)라고 하며, 이 맨해튼 5번가는 조지 소로스를 필두로 한 미국 금융 거부들이 사는 곳이라 세계 최고의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제곱미터당 땅값이 30만 달러[11]를 넘나드는 동네이다.

86층의 콘크리트 건물 위의 16층짜리 안테나는 동시기에 지은 크라이슬러 빌딩보다 높으려고 올렸다. 원래는 비행선 계류라는 야심찬 계획을 시도했지만, 결국 강풍으로 인해 위험이 커서 사용되지 않았다. 이후로는 전망대와 방송용 안테나로 사용되고 있다. 요즘은 라이벌 건물들이 다 사라져서 전망대로써 신나게 돈을 버는 중. 기본 요금을 내면 86층까지 올라갈 수 있고, 돈을 더 내면 안테나 밑까지 올라갈 수 있다. 사실 86층이나 더 위층이나 경관은 비슷하다고 한다. 가격은 86층만 가는 티켓은 44달러, 102층까지 갈 수 있는 티켓은 79달러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뉴욕은 외국계 자본이 많다 보니 2016년 8월 24일에 카타르가 지분 9.9%를 매입하였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동전을 떨어트리면 사람이 맞아 죽는다는 루머가 있으나 이는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Mythbusters에 따르면 공기저항으로 인해 동전의 최고속도는 시속 103.69㎞가 되어 맞으면 더럽게 아프긴 하겠지만 사람의 살갗을 뚫을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Mythbusters/유명한 호기심 해결 목록 참고. 존 버터워스(Jon Butterworth) 교수에 따르면 파운드 스털링 2펜스 동전의 경우에는 최고 속도가 시속 19㎞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버터워스 교수는 빌딩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생기는 과장된 인식 때문에 루머가 퍼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주위에는 코리아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여행 중 한식이 땡기면 여기로 가면 된다.

매년 'Empire State Building Run-Up'이라는 계단 오르기 경주가 개최된다. 1층부터 86층까지 총 1,576 계단을 뛰어오르는 경주로 매번 약 350명의 참가자가 달린다. 빌딩 등반 경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유명하다.

3.1. 건설 과정

90년이 넘은 매우 오래된 건축물인데도 불구하고, 착공 및 완공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12] 참고로 이보다 조금 낮은 63빌딩은 짓는 데 5년이 걸리고 층이 똑같고 현대에 지어진 타이베이 101이 짓는 데 4년이 걸린 걸 보면 엄청 빠른 속도다.[13] 이렇게 빨리 지었는데도 90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엄청 튼튼한 건축물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49px-Old_timer_structural_worker.jpg

건축 당시를 촬영한 이 1,000여 장의 흑백 사진이 꽤 유명하다. 이 사진들은 당시 주지사가 루이스 하인이라는 사진작가에게 모든 과정을 기록해달라 부탁한 덕분에 매우 많은 자료가 남아있다. 해당 사진과 같이 당시의 건축 현장의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안전장치 없이 철골 위를 오다녔다.

특히 철강 노동자 중에는 캐나다 출신의 모호크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고소공포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근무환경 때문에 당시 가장 중요했던 안전수칙은 바로 철골 위에 기름이 흘러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건설기간 동안 총 6명이 사망했다. 5명은 인부였으며, 1명은 지상에서 걸어가던 보행자였다. 3,500명 가량의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건물을 짓는 데 10만 개의 리벳이 사용되었다.[14] 그런데 신기한 것은 1920~1930년대에 안전장치가 전무했는데도 6명밖에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반대로 생각하면 6명이 죽어도 안전장치를 안 해준 게 놀랍다

H빔에 앉아 쪽점심을 먹는 사진인 <마천루 위에서의 점심식사>는 국내 블로거들 사이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촬영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록펠러 센터 건설 당시 홍보용으로 찍은 사진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4. 매체에서의 등장

뉴욕을 상징하는 수많은 랜드마크들 중에서도 자유의 여신상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얼굴마담이자 마천루라는 이미지로도 상징성이 큰 만큼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뉴욕이 무대인 작품에선 배경으로 자주 나오며 로맨틱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가끔은 극중의 핵심적인 장면을 장식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물론 재난 영화나 괴수물에 나오면 얄짤없이 박살난다.


[1] 86층 마천루에 16층짜리 방송용 지붕이 추가되어 있다.[2] 1931년부터 1970년까지 무려 39년 동안 세계 최고층 건축물의 영광을 누렸다. 이 사례를 제외하면 20년이 넘는 세계 최고층 건축물의 영광을 누린 건축물은 윌리스 타워(25년) 정도밖에 없다.[3] 한국으로 치면 롯데월드타워가 지어졌음에도 더 사랑받는 63빌딩이나 남산서울타워의 포지션과 비슷하다.[4] 현재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301 파크 애비뉴에 있다.[5] 안테나를 제외한 빌딩 자체의 높이. 안테나를 포함한 높이는 443.2m이다.[6] 전체 높이 318.9m이다.[7] 282.6 m, 71층. 도널드 트럼프가 사장인 그 회사 맞다.[8] 318.9 m, 77층[9] 주류사업을 하는 스코틀랜드 회사로, 현재는 기네스에 의해 합병되었다.[10] 펜타곤에 충돌한 757 같은 경우는 기체 중량은 약 60t, 최대 이륙 중량은 100~120t 가량이었다.[11] 3.3제곱미터 당 한화 12억 원 이상.[12]하루에 2미터씩, 한 달에 30미터씩 올린 것. 특이 케이스는 아니고, 30년대 미국 고층빌딩들은 대부분 2년 안에 다 완공되었다.[13] 물론 타이베이 101은 높이가 더 높고 지진이 잦은 타이베이다 보니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지진 때문에 균형을 잃고 건물이 엎어지는 대참사가 나지 않게 초대형 추까지 설치되어서 이런 속도는 당연하나, 그렇다고 하기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너무 빨리 지어졌다.[14]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결합부의 둥그런 부분들이 다 리벳을 박은 자리이다.[15] 자신의 열락 '문명의 가속'을 위함이었다. 공들여 세운 건축물을 파괴하고 다시 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술발전 등을 위한 것...은 개뿔. 그냥 때려부수기다.[16] 번개에 맞아 유전자가 변형된 주인공들이 추격전을 벌이며 쏘는 빛으로 눈뽕을 당한다던지, 옐로우가 뀐 방귀에 의해 일어난 쓰나미로 통째로 물에 잠긴다던지, 브라운이 수년 동안 굴려온 거대한 똥에 부딪쳐 넘어진다던지 등등 제각각이다.(...)[17] 제임스 롤프가 사막 버스를 리뷰할 때 이 영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18] 사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건설된 지반은 매우 불안정해 정기적인 배수를 하지 않으면 건물이 통째로 쓰러져 붕괴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생존자들의 기록을 보면 NBC 방호복을 입은 독일군이 뉴욕을 바로 점령했고 벙커까지 건설했으니 배수 문제는 해결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