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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 }}}}}}}}} | |||
대동아공영권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 ||
| 1940년대 일본 제국의 최대 판도[1] ■ 본토(내지) | ■ 괴뢰국 및 점령지(외지) | ■ 동맹국 | ||
| 일화만협조 천하태평(日華滿協助 天下太平) 일본(日), 중화(華), 만주(滿)가 서로 도우면 모두 평안해진다[2] | ||
1. 개요
대동아공영권은 대동아(시아)[3] 사람들이 공동으로 번영하는 권역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의 영토 확장정책 선전구호이자 일본 제국이 창설하려 했던 범아시아 연합계획.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요스케(松岡 洋右) 외상의 담화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서양의 식민 지배를 몰아내자는 명분으로 일본 제국의 점령 전쟁을 정당화했다.2. 목적
일본 제국은 많은 식민지를 만들어 자원을 확보하고 블록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싶었지만, 기존 열강은 후발주자인 일본 제국을 경제 제재, 전략 자원 수출 금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등으로 견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불만이 쌓인 일본 제국은 비슷한 처지였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과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그러나 대독일주의에 의거해 팽창 명분을 만든 나치 독일, 불만족스러운 전후 처리에 대한 앙심과 로마 제국의 영광 회복을 기치로 내세운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비해 일본이 가지고 있던 제국주의 이권 수호 등의 명분으로는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만주국의 오족협화 이념이며 중일전쟁 중의 '동아신질서론'이고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된 것이 대동아공영권이다. 표면적인 내용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일본을 중심으로 서구 열강을 몰아내고 번영과 평화를 누리자."라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본 제국의 팽창주의와 생존권 관념을 보여준다.
일본 극우적인 인사들은 종종 기존 열강들에 맞서 아시아·태평양을 해방하기 위해 일본이 직접 영향력 행사를 했다고 미화한다. 일본이 정의로운 전쟁을 했으니 반성할 이유도 없고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식의 논리로도 이어진다. 이들이 위안부 문제나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것도, 전쟁범죄를 인정하면 '정의로운 전쟁론'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원이 적은 일본은 본인들의 경제 블록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으며, 동시에 일본 본토의 인구가 매년 급속하게 증가하는 상황속에서 인구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를 확장해서 이주민을 보내려고 했다. 그래서 기존 열강의 수탈에 지친 아시아·태평양의 국가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목하에 다른 국가의 식민지를 강탈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문제는 실제로 기존 열강에 수탈당하던 오세아니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에는 이런 명분이 겉보기에 모순이 없어 보일 수 있었으나, 일본이 강제 합병한 대한제국은 둘째 치고, 중국에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소리였다. 물론 중국도 열강에 몇몇 땅과 이권을 떼어주기는 했으나, 중국 전체로 보면 정말 일부분이었고 당시 태평천국 운동과 국공내전으로 분열된 상태였기에 서구나 일본을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고 해안가 도시들을 대거 점령하여 대규모로 중국을 침략했고, 이는 중국이 일시적으로 내전을 멈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일본은 중국 동부 지역의 상당부를 쉽게 점령했으나,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많은 병력을 중국에 묶어둔 채로 패전을 맞이했고, 중화민국은 그 공로로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근대 시기 한중일에서 아시아주의라는 사상이 유행했다. 사실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주의가 변화된 것에 가깝다. 물론 아시아주의라는 건 명확한 체계가 있던 사상은 아니었지만, 아시아가 힘을 합쳐 번영해야 한다는 기조는 일맥상통했다. 안중근, 신해혁명의 쑨원, 후쿠자와 유키치[4], 김옥균[5] 등이 아시아주의자였다.
다만 이들을 같은 "아시아주의자"로 나란히 묶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아시아주의는 명확한 체계를 갖춘 단일 사상이 아니라 "아시아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표면 구호만 공유했을 뿐, 그 협력의 주체와 방식을 두고는 서로 정반대 지향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거론된 인물들도 실제로는 결을 달리한다.
안중근은 한·청·일 삼국이 각자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대등하게 협력하자는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 자체가, 일본이 이 대등한 질서를 깨고 패권을 추구한 데 대한 저항이었다. 즉 그의 아시아주의는 일본 주도형 아시아주의에 대한 정면 비판에 가깝다.
쑨원 역시 대일본·반서구의 단순 연대가 아니라, 약소민족의 해방과 왕도(王道)에 입각한 대아시아주의를 내세웠다. 일본을 향해 "서구식 패도(覇道)의 앞잡이가 될 것인가, 동양 왕도의 간성이 될 것인가"를 물었다는 점에서, 패권적 흐름과는 선을 그었다.
반면 김옥균은 한·청·일 삼국의 화합을 내건 삼화주의(三和主義)를 주장했으나, 그 연대 구상이 일본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에서 안중근·쑨원의 대등한 연대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더 미묘하다. 초기에는 조선 개화파를 후원하며 흥아론(興亜論)적 입장을 보였으나, 1885년 탈아론(脱亞論)에서는 조선과 청을 "나쁜 이웃"으로 규정하고 일본만이 서구 문명국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히려 아시아주의와 상반되는 노선으로 돌아섰다. 그가 아시아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은 초기 흥아론 시기에 한정된 평가다.
요컨대 이 명단은 같은 시대· 같은 표어 아래 묶인 것일 뿐, 안중근·쑨원의 "대등한 연대"와 후쿠자와 유키치·(상당 부분) 김옥균의 "일본 의존·패권적" 흐름은 그 지향이 정반대였다는 점을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다.
3.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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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오리엔탈리즘/일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대동아공영권"이라는 말은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내세우면서 처음 나왔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에는 이 전쟁을 "대동아 전쟁"으로 부르기로 결정했고, 같은 달 12일에는 전쟁 목적이 '대동아 신질서 건설'에 있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식민 통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대표적으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시기에 현지의 지배 계층 및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영국에 유학 시켜주면서 정신적으로 회유하던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대동아공영권은 실제 여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 정책과 그 정의가 조금 다르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통치 정책이 더욱 원활한 식민 통치에 목적을 둔다면, 대동아공영권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식민지들의 독립이 점차 늘어나자 일본이 식민지의 통치권을 지키려고 주장한 개념이다.
실제로 이런 식민 정책은 유화적인 식민 통치 정책의 일환으로서, 식민지의 탄압을 줄여나가면서 하는 통치권의 유지가 매우 핵심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이 당시 겉으로는 유화 정책을 펴면서 뒤로는 물자 수탈 및 독립운동가 탄압이라는 통치 기조를 유지했다.
이 개념이 등장하기 바로 직전에 일본은 비슷하게 식민지인과 일본인의 단합을 호소하기 위한 비슷한 개념 또는 표어를 주창했는데, 1930년대 설립된 협화회를 비롯한 관제 단체들에서 주창한 오족협화(五族協和)라는 통치 이념도 비슷하다. 이 표어는 중화민국에서 주창한 오족공화(五族共和)의 일제 버전으로 일본인과 만주인, 몽골인, 중국인, 조선인 다섯 민족이 힘을 모아 왕도낙토라는 지상락원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 말을 실제로 철석같이 믿은 사람이 바로 이시와라 간지다. 이 양반은 오족협화를 이룩하기 위해 만주에 "오족협화의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온 나라가 바로 만주국이다.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이든 오족협화든 이러한 식민 지배 이념들은 큰 파급효과가 없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겪던 조선과 난징 대학살 등 일제의 전쟁범죄를 겪던 중국으로 대표되는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구호들이 사기와 기만일 뿐이었다.
4.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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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11월 5, 6일 일본에서 열린 대동아회의에 참여한 각국 정상들[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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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마국 바모 | 만주국 장징후이 | 왕징웨이 정권 왕징웨이 | 일본 제국 도조 히데키 | 태국 완 와이타야콘 | 필리핀 제2공화국 호세 P. 라우렐 | 자유 인도 임시정부 찬드라 보스 |
| 대동아공영권 참가국[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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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위시한 서구세력에게 굴복한 일본에게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한 ‘동양론(東洋論)’은 단순한 이론 이상의 것이었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내용과 구조는 근대로 넘어오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거의 유사하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고, 이어 만주와 중국으로 점차 침략을 확대해 가는 과정과 거의 비슷한 것이다. 일본은 ‘서양(西洋)’을 자기화하면서 ‘동양(東洋)’에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을 부과하였다. 스테판 다나카는 일본의 동양사학자들이 서양에 의해 규정된 ‘동양적(Oriental)’과 구분되는 ‘동양(とうよう)’을 창안하고 그 안에 중국을 ‘지나(支那)’로 재배치했다. 새롭게 창안된 이데올로기적 공간인 ‘동양’을 통해 일본은 동양의 타자인 서구와 차별화되고, ‘동양’ 내부의 여타 아시아 국가와 민족에 대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역사적 내러티브를 창출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타자로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동양의 중심대상은 ‘지나’(支那)였다. 서구 근대문명 기준에 의한 새로운 자기-타자 규정이 형성된 것이다. 즉 서구 보편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동양’이라는 또 다른 가상의 동일성을 설정하고 이 속에서 자기 동일적 주체의 정체성을 구획해낸 것이 일본의 동양론(東洋論)이다. 그러니까 ‘동아(東亞)’는 1945년까지 제국 일본의 역사과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던 개념이다. ‘동아’만이 아니라 ‘아세아’도 ‘동양’도 마찬가지이다. ‘동아’란 다른 ‘동양’등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 윤명철.[8] (2010). 오리엔탈리즘의 정의 및 역사적 전개 -한국상황과 관련하여-. 민족학연구, 9(0), 225p.
▲ 윤명철.[8] (2010). 오리엔탈리즘의 정의 및 역사적 전개 -한국상황과 관련하여-. 민족학연구, 9(0), 225p.
대동아공영권의 경제적 본질은 '전시국가독점자본의 폭력적인 블록 경제체제'였다.
▲ 권오신權五信 「태평양전쟁기 일본의 필리핀 점령과 지배: ‘대동아공영권’의 그림자」, 『아시아연구 Vol.9』, 제2호, 2006, pp.67-102, p.86.
일본은 "대동아회의"라는 이름으로 '대동아공영권'의 국가들의 정상을 모아서 회의를 했다. 여기에서는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아시아를 귀축영미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정상들은 대부분 전부 일본 점령 하에서 설치된 괴뢰정부의 수괴들이었으며, 독립국인 태국은 저들과 국가 상황이 다르다며 총리가 아닌 외무장관을 보냈다.▲ 권오신權五信 「태평양전쟁기 일본의 필리핀 점령과 지배: ‘대동아공영권’의 그림자」, 『아시아연구 Vol.9』, 제2호, 2006, pp.67-102, p.86.
대동아공영권의 명목상 개념부터 진심과는 거리가 멀었고, 말과 행동이 정반대였으니 대동아공영권의 지배 아래 있는 나라의 국민 가운데 일본군을 진심으로 해방군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쟁 초기에는 동남아시아 식민지의 민중들도 일본군을 환영했지만, 얼마 못 가서 일본이 마구잡이로 약탈을 일으키자 도리어 연합국에 협력해 일본과 싸웠는데, 대표적으로 필리핀이 그러했다.
일부 아시아 독립운동가들은 대동아공영권을 이용해 주권을 얻고자 했다. 인도의 찬드라 보스는 일본군에 협력해 인도 국민군을 결성했고, 일본군과 함께 영국으로부터 조국 인도를 해방하고자 했다. 다만 찬드라도 정말로 일본군이 해방군임을 믿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도 네덜란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일본에 협력해 지하 자원을 공여하거나, 청년들을 징병했다. 역시 얼마 못 가 해방군은커녕 네덜란드와 자리만 바꿔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려고 했던 일본의 야욕이 드러났기에 인도네시아에서도 반감이 심했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이 거국적으로 들고 일어나기도 전에 일본이 패망했다.
만일 일본이 정말 일본 극우들의 주장처럼 조선인들을 형제처럼 대우했거나, 진정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키고 친구가 될 생각으로 움직였다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지도 않았고 중일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침략의 의도가 뻔한 상황에서 표면적인 명분으로 내세운 기만 구호에 불과했다.
5.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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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전쟁 목표[9] 회색이 일본이 실제로 통제했던 최대 영역이고, 검은 선은 일본이 전망한 최대 세력 범위이다. |
해당 문서가 작성되던 시기의 일본은 영국이나 프랑스와 맞먹는 규모로 제국을 확장했고, 동맹국인 독일이 프랑스 본토를 점령하고 영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전황이 유리했던 만큼 일본 입장에서는 이 기세대로 끝까지 간다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역시 이길 수는 없어도 출혈을 강요해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진주만 공습을 강행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과는 일본의 예상과 달리 버티지도 못하고 참패로 이어졌다.[10][11]
5.1. 강제 병합,합병지
- 조선총독부: 한반도와 조선8도지역, 강제적으로 조선8도에 신사들을 건설[12], 조선인들에게 의무적으로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하고 신사참배를 시켰다. 이쪽은 강제적인 병합이었다.
- 대만총독부: 원래의 대만총독부 + 홍콩, 마카오, 하이난성, 필리핀
대만은 조선과 다르게 천황이 직접 위문에 나서다 병사하였다. 대만의 일본신사는 지금도 보존되어 있고, 조선과 다르게 자발적으로 일본을 거들어 대만은 무난한 합병이었다.
5.2. 괴뢰국
- 만주국: 만주
- 몽강연합자치정부: 몽골
- 중화민국 유신정부(왕징웨이 정권): 중국 대륙
- 동인도 왕국: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동티모르,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크리스마스 섬
- 버마국: 미얀마, 벵골, 아삼
- 말라야 왕국: 말레이 반도
- 캄보디아 왕국: 캄보디아, 베트남 남부(코친차이나)
- 안남 왕국: 베트남 북부 (안남, 통킹), 라오스
5.3. 식민지
- 남양청: 위임통치령인 남양 군도 + 괌
- 남태평양 총독부: 뉴기니, 솔로몬 제도, 누벨칼레도니, 피지 등의 남태평양 제도
- 동태평양 총독부: 하와이, 사모아, 통가 등의 태평양 제도.[13]
- 오스트레일리아 총독부: 호주
- 뉴질랜드 총독부: 뉴질랜드[14]
- 실론 총독부: 스리랑카 + 인도 남부[15]
- 알래스카 총독부: 알래스카부터 캐나다 서부를 거쳐 미국 워싱턴주까지
- 중앙아메리카 총독부: 과테말라에서 베네수엘라까지 + 카리브해[16]
괴뢰국들은 대동아회의에 편입할 구상이었다.
아메리카 지역 총독부 구상에서는 일본이 나치 독일과 함께 북아메리카 침공을 하여 성공할 경우, 태평양 해안의 주들을 괴뢰국으로 편입하는 방안도 검토되었다.[17]
6. 전후 미화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서면서 일본 우익들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은 정당했다"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다만 2015년부터 일본이 대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동아공영권 관련 발언이 줄어들었다.2014년 일본 정부에서 카미카제 특공대원 유서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해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 정부에서는 절박함이 담긴 유서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어 등재를 신청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내의 극우 미화 움직임과 맞물려 주변국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자살 특공대원들의 유서는 심사에서 탈락했고,#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일본군 포로를 다룬 '마이즈루로의 귀환'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일본인들이 겪은 고난에만 주목했을 뿐, 그 원인인 전쟁 책임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4년 자위대 공식 트위터에서 대동아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2025년 일본의 우경화로 1930년대 과거사 문제들을 좀 다루기 시작했다. 사어(死語)지나(支那)부터 시작해서 진실은 일본과 미국 두 국가만 제대로 알고 있다. 역사의 산 증인이자 2차세계대전 당사자들이니까.
7. 대중 매체에서
- 1940년에는 새로 획득한 영토를 각인시키기 위해 일본 제국에서 대동아라는 이름의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네아 소 코프로스(신대동아공영권)이라 하여 동북아시아가 속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역사와 달리 한국에서 시작되어 수도는 네오 서울(새서울)이라고 하며 군대의 규모가 200만 명 정도. 지도자 명칭은 '주체'라고 하고 전 세계가 천재지변 방사능 오염과 해수면 상승 등 문제를 겪고 있지만 연방의 경우 괜찮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디스토피아 세계인 초거대 기업국가로 나온다.
-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미 서부에 수립된 '태평양 합중국(Pacific States)'이란 국가가 등장하는데, 겉으로는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통치권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식민지이다. 아마존 지역까지 진출해서 밀림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18]
- 유로파4의 일본 계열의 국가의 미션이 대동아공영권과 비슷하다.
- Hearts of Iron IV에선 일제, 만주국, 몽강으로 구성되며 파시스트 일본이 동일한 이름으로 국가중점을 타면, 자체 세력을 만들어 추축국과는 별개의 세력이 형성된다. 추축과 구분된 이유는 유럽 전선과 아시아 전선의 종전을 별개로 끝내기 위한 조치인데 게임 시스템상 세력 소속 국가는 자신이 항복해도 동일 세력 내의 강대국이 하나라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종전 판정도 나지 않고 항복국도 전쟁에 직/간접적 관여를 할 수 있는데 일본은 다른 추축국 멤버들과 달리 동아시아 국가이기에 이런 식으로 구현된 것이며, 같은 이유로 연합국도 서부전선/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독소전쟁을 분리하기 위해 연합국/국공합작/코민테른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추축국과 전쟁을 벌이면 독일과 이탈리아만, 대동아공영권은 일본만 잡으면 전쟁이 끝난다. 어쩌다가 독일 등의 추축국 국가들이 세계대전 이전에 네덜란드를 정복하거나 네덜란드가 추축에 붙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추축령이 되면 일본은 남방을 위해 그곳을 공격하기 때문에 추축vs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상천외한 매치가 성사되기도 한다.[19] 만약 독일이 독소전 중이었다면 독소전이 종료될 때까지 남방을 미루다가 독소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일본이 남방을 개시한다. 그 외에도 역사적 인공지능을 끄고 플레이할 때 본인이 추축 소속으로 유럽의 타 파시 국가를 침공할 경우, 그 국가가 대동아를 가버리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멀티 게임시 세력을 고정하는 규칙이 없다면 땅 욕심 부리는 중공이나 군벌이 대동아공영권에 가입해 중화민국을 통수치기도 한다.
- 추축이 2차대전에서 승리한 대체역사 모드인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는 당연히 구현되었고, 독일 주도 세력인 아인하이츠팍트와 미국 주도 세력 자유국가기구(OFN)과의 냉전을 벌이고 있다. 의도적으로 잘게 분할시킨 중국계 국가들[20], 태국과 벵골 인근의 찬드라 보스 휘하 자유인도, 기타 동남아[21] 괴뢰국 및 식민지를 회원국으로 거느리고 있다. 다만 계획에 비해선 상당히 축소되었는데 인도의 서부 지역이나 호주, 뉴질랜드는 모두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잘 돌아가고 있다. 게임 설정상 초반 승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산업력 격차 때문에 밀리다가 어부지리로 이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 일본과 한국의 위치가 뒤바뀐 대체역사모드 THE LAST EMPIRE서는 대한제국의 세력명으로 나온다.[22] 자세한 내용은 THE LAST EMPIRE/국가 문서를 참조
- 영웅(뮤지컬) 및 영웅(2022)에서 '이토 히로부미' 역의 넘버, '출정식'에서 '대동아공영'(大東亜共栄)이 언급된다. 그러나 대동아공영은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던 시절에 등장하지도 않은 용어이다.[23]
8. 여담
- 도쿄에 위치한 5개의 사립대학을 두문자로 줄여서 대동아제국이라고 부르는데, 대동아공영권과는 관계없다.
8.1.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서(書)
일문, 영문 편지 전문이오지마 전투의 일본 제국 해군 측 최선임자인 이치마루 리노스케 제독은 미군이 지휘소 근처까지 쳐들어오자 죽음을 직감하고,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쓴다. 하와이 출신 해군 하사관인 미카미 히로부미(三上弘文) 병조에게 영어로 번역하게 하여 일본어, 영어 각각 1장으로 된 문서를 무라카미 해군 대위에게 건넸다. 무라카미 대위는 최후의 돌격에서 전사했는데, 이 서한은 검사관인 미군에게 발견되어 7월 11일 미국의 신문에 게재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 프로파간다를 열렬히 설파하면서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것인데, 전체 내용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문, 영문 편지 전문
일본 해군, 이치마루 해군 소장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지금 우리의 전쟁을 끝맺음에 즈음하여, 당신에게 한마디 전하고자 한다.
일본이 페리 제독의 시모다 입항을 계기로 세계와 널리 국교를 맺은 지 약 100년 동안, 이 기간 일본은 국가의 길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 놓였으며, 자발적으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지나사변을 거쳐 결국 불행하게도 당신의 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을 바라보며 어떤 이는 호전적인 민족이라 하고, 어떤 이는 황화론으로 비방하며, 또 어떤 이는 군부의 전횡이라고 한다. 이는 생각이 매우 짧은 극단적인 오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진주만 기습을 대일전쟁의 유일한 선전 자료로 삼고 있지만, 일본이 자멸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을 만큼 몰린 절박한 정세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가 말하건대 일본 천황은 황조황실의 건국 대칙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정의·지혜·자비’를 세 가지 원칙으로 하고, ‘팔굉일우(八紘一宇, 온 세계를 하나의 집 아래로)’라는 이념으로 표현되는 통치 구상에 따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각자의 분수를 지키며 각자의 땅에서 본래의 삶을 영위할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영구적인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유일한 염원으로 삼고 있다.
과거 메이지 천황의 어제(御製)인
“사방의 바다 모두가 형제라 생각하는 세상에 어찌 파도와 바람이 일어나 요동치겠는가”
라는 시는, 당신의 숙부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감탄한 바 있으며,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일본인들은 각기 계층이 있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결국 그 직업을 통해 이 천황의 통치 이념, 즉 천황의 뜻을 받들고자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군인들 또한 무력을 통해 그 천황의 뜻을 받드는 일을 맡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물량에 의존하는 당신의 공군 폭격과 함포 사격 아래, 겉으로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충만해지고 마음은 더욱 명랑해져 오히려 기쁨을 금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것은 천황의 뜻을 받든다는 신념에 불타는 일본 국민에게 공통된 심리이지만, 당신과 처칠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것이다. 이제 당신들의 정신적 빈곤을 안타깝게 여기며 잠시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당신들이 하는 일을 보면, 백인, 특히 앵글로색슨이 세계의 이익을 독점하고 유색인종을 그 야망 앞에 노예로 만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교묘한 술책으로 유색인종을 속이고, 이른바 ‘악의에 찬 선정(善政)’을 통해 그들의 의지를 빼앗고 정신적으로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일본이 당신들의 야망에 저항하여 유색인종, 특히 동양 민족을 해방시키려 하자, 당신들은 일본의 진의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지 위험한 존재로만 간주하며, 과거의 우방을 적대적 야만인으로 여기고 공개적으로 일본 민족의 절멸까지 외치게 되었다. 이것이 어찌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겠는가.
대동아전쟁을 통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 성립된다면, 그 안의 각 지역 민족은 일본의 선정을 찬양하게 될 것이며, 당신들이 이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에 걸친 영구 평화의 도래도 결코 먼 일이 아닐 것이다.
당신들은 이미 충분한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수백 년 동안의 착취에서 벗어나려는 불쌍한 인류의 희망의 싹을 어찌하여 어린 잎 단계에서 꺾으려 하는가.
그저 동양의 것을 동양에 돌려주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찌하여 그토록 탐욕스럽고 편협한가.
대동아공영권의 존재는 결코 당신들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평화의 한 축으로서 인류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며, 일본 천황의 진의 역시 그 외의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아량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한편 유럽의 사정을 보더라도, 상호 무지에서 비롯된 인류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히틀러 총통의 행위의 옳고 그름은 여기서 논하지 않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시 패전국 독일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그 정당한 존재를 극도로 억압한 연합국의 처분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설령 당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해 히틀러를 쓰러뜨린다 해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세계를 강자의 독점으로 만든다면, 전쟁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며 결국 인류에게 평화와 안녕의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세계 제패의 야망이 거의 실현 단계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성취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선배 윌슨 대통령도 그 절정에서 몰락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디 이 글의 숨은 뜻을 헤아려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이치마루 해군 소장
나는 지금 우리의 전쟁을 끝맺음에 즈음하여, 당신에게 한마디 전하고자 한다.
일본이 페리 제독의 시모다 입항을 계기로 세계와 널리 국교를 맺은 지 약 100년 동안, 이 기간 일본은 국가의 길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 놓였으며, 자발적으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지나사변을 거쳐 결국 불행하게도 당신의 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을 바라보며 어떤 이는 호전적인 민족이라 하고, 어떤 이는 황화론으로 비방하며, 또 어떤 이는 군부의 전횡이라고 한다. 이는 생각이 매우 짧은 극단적인 오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진주만 기습을 대일전쟁의 유일한 선전 자료로 삼고 있지만, 일본이 자멸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을 만큼 몰린 절박한 정세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가 말하건대 일본 천황은 황조황실의 건국 대칙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정의·지혜·자비’를 세 가지 원칙으로 하고, ‘팔굉일우(八紘一宇, 온 세계를 하나의 집 아래로)’라는 이념으로 표현되는 통치 구상에 따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각자의 분수를 지키며 각자의 땅에서 본래의 삶을 영위할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영구적인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유일한 염원으로 삼고 있다.
과거 메이지 천황의 어제(御製)인
“사방의 바다 모두가 형제라 생각하는 세상에 어찌 파도와 바람이 일어나 요동치겠는가”
라는 시는, 당신의 숙부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감탄한 바 있으며,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일본인들은 각기 계층이 있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결국 그 직업을 통해 이 천황의 통치 이념, 즉 천황의 뜻을 받들고자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군인들 또한 무력을 통해 그 천황의 뜻을 받드는 일을 맡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물량에 의존하는 당신의 공군 폭격과 함포 사격 아래, 겉으로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충만해지고 마음은 더욱 명랑해져 오히려 기쁨을 금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것은 천황의 뜻을 받든다는 신념에 불타는 일본 국민에게 공통된 심리이지만, 당신과 처칠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것이다. 이제 당신들의 정신적 빈곤을 안타깝게 여기며 잠시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당신들이 하는 일을 보면, 백인, 특히 앵글로색슨이 세계의 이익을 독점하고 유색인종을 그 야망 앞에 노예로 만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교묘한 술책으로 유색인종을 속이고, 이른바 ‘악의에 찬 선정(善政)’을 통해 그들의 의지를 빼앗고 정신적으로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일본이 당신들의 야망에 저항하여 유색인종, 특히 동양 민족을 해방시키려 하자, 당신들은 일본의 진의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단지 위험한 존재로만 간주하며, 과거의 우방을 적대적 야만인으로 여기고 공개적으로 일본 민족의 절멸까지 외치게 되었다. 이것이 어찌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겠는가.
대동아전쟁을 통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이 성립된다면, 그 안의 각 지역 민족은 일본의 선정을 찬양하게 될 것이며, 당신들이 이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에 걸친 영구 평화의 도래도 결코 먼 일이 아닐 것이다.
당신들은 이미 충분한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수백 년 동안의 착취에서 벗어나려는 불쌍한 인류의 희망의 싹을 어찌하여 어린 잎 단계에서 꺾으려 하는가.
그저 동양의 것을 동양에 돌려주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찌하여 그토록 탐욕스럽고 편협한가.
대동아공영권의 존재는 결코 당신들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평화의 한 축으로서 인류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며, 일본 천황의 진의 역시 그 외의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아량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한편 유럽의 사정을 보더라도, 상호 무지에서 비롯된 인류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히틀러 총통의 행위의 옳고 그름은 여기서 논하지 않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시 패전국 독일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그 정당한 존재를 극도로 억압한 연합국의 처분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설령 당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해 히틀러를 쓰러뜨린다 해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세계를 강자의 독점으로 만든다면, 전쟁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며 결국 인류에게 평화와 안녕의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세계 제패의 야망이 거의 실현 단계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성취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선배 윌슨 대통령도 그 절정에서 몰락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디 이 글의 숨은 뜻을 헤아려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이치마루 해군 소장
내용을 읽어 보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보인다. 이는 일본 군부가 선전한 '대동아공영권'등의 선전을 일선 군부대에서도 열성적으로 따랐으며, 그만큼 일본 국민들이 군부와 천황을 철저하게 따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단 수병이나 위관급 장교도 아닌, 엘리트인 제독조차 진지하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장군처럼 이치마루 제독도 시신이 수습되지 않았으며 최후의 돌격 과정에서 함께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9. 관련 문서
[1] 조선과 대만, 남사할린은 외지(外地: 식민지)로서 괴뢰국이나 점령지와 달리 일본의 영토에 속했기 때문에 본토와 같은 색으로 되어 있다. 또한 태국은 일본에 부역한 것이기 때문에 점령지라 볼 수 없었다. 위 지도에 나타난 것보다 양쯔강과 산시성 쪽의 중국 내륙으로 더 진출했다. 지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전쟁 전부터 남양군도를 영유하고 있었고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의 일부 섬들도 점령했었다.[2] 왼쪽부터 만주인, 일본인, 중국인을 나타낸 선전 포스터이다. 조선과 대만은 합병되어 내선일체를 진행 중이어서 등장하지 않는다. 오른쪽 중국인이 청천백일만지홍기 대신 북양정부 시절의 오색기를 들고 있는데, 이는 왕징웨이 정권 이전까지 일본 점령하의 중국 지역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의 사용이 사실상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왕징웨이가 괴뢰 정부를 맡은 이후에 그들의 국기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1943년까지는 깃발 위에 '和平反共建國(화평 반공 건국)'이라고 쓰인 노란색 삼각형 모양 배너를 같이 게양해야 했다.[3] 여기서 대(大)는 '위대한' 이라는 뜻이 아니라 '광역의' 또는 범(Pan-)의 뜻으로 쓰였다. 대동아공영권의 영어 번역명인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Greater이 쓰인 다른 예시로, Greater London은 런던 광역권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대동아는 동아시아의 넓은 권역이라는 뜻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다.[4] 다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국과 중국의 처참한 근대화 실태를 보고서는, '아시아의 악우(惡友)들과는 연을 끊어야 그들의 나쁜 평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며 탈아론(脫亞論: 탈아입구(入歐)는 후대에 왜곡된 것이다.)으로 전향했다.[5] 후쿠자와 유키치가 김옥균을 위시한 개화파를 지원했다.[6] 위 사진에 한국 사람도 보인다.[7] 주권국은 볼드체로 표시.[8] 동국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9] Victor Rothwell. 2019. War Aims in the Second World War-The War Aims of the Key Belligerents 1939-1945.[10] 일본이 이 정도로 막 나갈 수 있던 것은 과대망상도 있지만 추축국의 리더이던 나치 독일의 압도적인 기세 덕분이었다. 그러나 독일이 소련에서 발이 묶여서 더 이상 일본이 뒤치기로 연합국들을 공격할 수 없게 된 데 이어 최악의 수인 미국과의 전쟁을 걸면서 완전히 박살 났다.[11] 애초에 진주만 공습은 시작부터 일본의 전략적인 패배였는데, 해봤자 달랑 군함과 전투기들만 많이 파괴하고 본래 목표였던 항공모함들은 당시 순찰 중이라 아예 공격을 받지도 않았을뿐더러, 무기공장, 연료탱크, 무기고와 같은 2차 시설 파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비유하자면 기껏 기습공격에 성공하고도 갑옷을 입은 상대의 급소는 하나도 찌르지도 베지도 못한 것도 모자라서 상대의 갑옷의 가장 두꺼운 부분만 일방적으로 때리다가 상대가 기절하니 죽였다고 판단하고 바로 자리를 뜬 수준인 셈이다.[12] 해방 이후 역사적건축물들은 전부 방화, 소실되었다.[13] 옛 하와이 왕국을 만주국을 모델로 해 재건하는 것도 검토되었다. (가라후토청을 모델로 한) 하와이의 순조로운 편입은 1920년 기준 하와이 인구의 약 43%(약 16만 명)를 차지하는 지역 일본인 공동체의 영향력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와이는 식량 공급을 자급자족할 것이었고, 설탕과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하와이의 5대 사탕수수 기업은 해체될 예정이었다. 하와이가 일본에 합병될지, 꼭두각시 왕정이 설립될지,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가 될지 논의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14] 호주와 뉴질랜드는 일본 이주민을 2백만 명까지 수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호주를 일본에 합병하는 것이 아닌 미얀마, 필리핀과 같은 위성국으로 두어 상호 평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15] 고아 주와 벵골 만을 잇는 선 이남[16] 멕시코의 1942년 5월 22일, 페루의 1944년 2월 12일, 칠레의 (나치 독일이 거의 전쟁에서 져 갈 무렵의)1945년 5월 11일의 대일 선전포고는 서반구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세 환태평양 국가들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두 일본과 적대 관계에 놓이도록 했다. 일본의 손에 들어갈 영국과 프랑스 소유지들의 미래는 승리한 추축국 나치 독일과의 협상에 놓일 예정이었다.[17] 이 구상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가정 하의 내용을 다룬 창작물로 높은 성의 사나이가 있다.[18] 드라마판에서 아마존 지역은 반추축국 성향 사람들이 사는 중립 지역이다.[19] 게임 시스템상 역사적 사건은 국가중점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데 ai 일본은 국가중점 시스템에 의한 한계로, 플레이어 일본은 역사적 세력구도 신경 쓴 이유가 없으니 공격한다. 다만 네덜란드의 대체역사 루트 중에는 일본에 동인도 자원 채굴권을 넘기는 대신 전쟁을 피하는 루트도 있고, 네덜과 일본 모두 플레이어라면 외교나 거래를 통해 전쟁이 안 터지는 경우가 더 많다.[20] 왕징웨이 정권이 정통 중화민국 취급을 받고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왕징웨이 정권이 옛 중국 영토에 대해 뭐라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몽강과 만주국이 여전히 남아있고, 광동성은 기업국가 광동국으로 개편하여 자이바츠들을 앞세워 실험실로 만들었고, 진수행정공서(산서성, 섬서성)/운남성/귀주성/광서성/서북방면군(감숙성 등)으로 나눠 지배 중이고, 신강성/서강성/청해성은 국부군 잔당이 남아있다.[21] 단 랑선이 호치민 휘하 베트민 통제 지역이고, 필리핀의 경우 북부는 공산 반군, 남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자유 필리핀 공화국이 필리핀 제2공화국과 대치 중이다.[22] 주로 앞의 대동아를 빼고 "공영권"이라 줄여부른다.[23] 오히려 이때는 탈아입구 시기로 대동아공영은커녕 그 비슷한 개념도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