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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 |||||||||
2004년 | ||||||||||
※ 200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안성기 | 장동건 | 설경구 | 최민식 | 한석규 | ||||||
6위 | 공동 7위 | 9위 | 10위 | |||||||
송강호 | 신성일 | 박중훈 | 정우성 | 원빈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전지현 | 미발표 | 엄앵란 | ||||||||
16위 | 17위 | |||||||||
미발표 | 전도연 | |||||||||
2009년 | ||||||||||
※ 200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안성기 | 송강호 | 장동건 | 설경구 | 신성일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정우성 | 황정민 | 김수로 | 정준호 | 김혜수 | ||||||
2014년 | ||||||||||
※ 201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최민식 | 송강호 | 안성기 | 하정우 | 전지현 | ||||||
6위 | 7위 | 8위 | 공동 9위 | |||||||
류승룡 | 장동건 | 설경구 | 원빈 | 정우성 | ||||||
11위 | 12위 | 공동 13위 | 15위 | |||||||
조인성 | 이병헌 | 이정재 | 신성일 | 김혜수 | ||||||
공동 16위 | 18위 | |||||||||
한석규 | 강동원 | 차태현 | ||||||||
2019년 | ||||||||||
※ 201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송강호 | 마동석 | 안성기 | 하정우 | 정우성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병헌 | 황정민 | 유해진 | 장동건 | 신성일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공동 15위 | |||||
김혜수 | 설경구 | 최민식 | 공유 | 차승원 | 전지현 | |||||
17위 | 18위 | 공동 19위 | ||||||||
조인성 | 현빈 | 강동원 | 이정재 | 한석규 | 송중기 | }}} | ||||
2024년 | ||||||||||
※ 202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최민식 | 마동석 | 송강호 | 이병헌 | 정우성 | ||||||
공동 6위 | 공동 8위 | 10위 | ||||||||
이정재 | 황정민 | 김혜수 | 김고은 | 손석구 | ||||||
11위 | 공동 12위 | 14위 | 15위 | |||||||
유해진 | 윤여정 | 공유 | 한석규 | 현빈 | ||||||
16위 | 공동 17위 | 19위 | ||||||||
송중기 | 안성기 | 전지현 | 하정우 |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colbgcolor=#686461><colcolor=#fff> 강동원 姜棟元 ㅣ Gang Dongwon[1] | |
출생 | 1981년 1월 18일[빠른생일] ([age(1981-01-18)]세) |
부산직할시 서구 하단동[3]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진주 강씨 (晉州 姜氏)[4] |
신체 | 186cm[5], 66kg[기준], B형 |
가족 | 외증조부 이종만[7] |
아버지 강철우[8], 어머니 누나 강현주(1978년생)[9] | |
친척 | 오촌 최준영[10] |
학력 | 대원국민학교[11] (전학) 성주국민학교[12] (전학) 남양국민학교[13] (졸업) 경원중학교 (졸업) 거창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공학대학 (기계공학[14] /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영화학 / 석사 과정 수료) |
종교 | 무종교[15] |
취미 | 맛집 기행, 목공, 음악감상, 웹서핑 |
특기 | 축구, 검술 |
별명 | 강참치, 참치 오빠, 강딩언, 강도넌, 강다정[16], 동저씨[17] |
병역 |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18] |
소속사 | AA그룹[19] |
데뷔 | 2003년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
MBTI | INTJ |
팬덤 | 프리티 보이[20] |
링크 | | |
서명 |
[clearfix]
1. 개요
2. 데뷔 전~모델 시절
학창 시절 |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어릴 적의 별명은 건강해보이는 그을린 구릿빛의 피부 덕분에 '오골계'였다고 한다. # 어렸을 적엔 평범한 외모였고,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해 까맣게 그을려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사진을 보면 초등학생~중학생때 까지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이다. 지금의 외모로 자리잡힌 건 고등학교 시절로 보인다. 마지막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운전면허증 취득을 위해 찍은 사진이라고 유튜브에서 밝혔다. #
입학고사에서 200점 만점에 19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거창고등학교에 입학했다.[21] 좋아하던 축구를 부모에 의해 포기하게 된 것에 미련이 남았는지 고등학교 입학 후 축구부에 합류할 기회를 잡자 제대로 하면서 학업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 당시 반항심에 시험지를 거의 백지로 내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200명 중 198등을 한 적도 있다고. 고3 때,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한양대학교 ERICA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에 재능을 보였고, 수와 셈에 능해 당연스럽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과에 온 문과생'.
대학 시절 |
저도 예전에 집안형편이 안 좋을 때,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힘들지는 않았어요. 어떤 일을 해 봤냐고요?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고, 가방 나르고.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해봤죠.” #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던 강동원은 1999년 # 지하철에서 모델 제안을 받아 모델계에 입문하였는데 당시 대부분의 남자 모델이 ‘남성적’의 상징이라면 강동원을 계기로 완벽하게 ‘예쁜/여자보다 마른/중성적인’ 트렌드로 바뀌었다. 한국 모델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섰고 프라다 런웨이에도 초청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때 이미 배우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2002 GQ 대한민국을 뒤흔든 18인' 중 설경구, 거스 히딩크 등과 함께 선정된 유일한 남자 모델이자, 일본 언더커버, 넘버나인같은 당시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그가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지 주겠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버버리의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뮤즈.
하지만 자신은 모델보다는 배우에 뜻을 품어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하게 된다. 훗날 다시 모델에 복귀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모델계에 미련은 조금 있지만, 모델 시절 연예인들의 쇼 출연으로 신인 모델들이 피해를 받는 일이 많아 자신은 절대 캣워킹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이건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3. 배우 활동
본인의 연기 겸 드라마 데뷔작은 2003년 3월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다음으로는 2003년 7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으로 싸가지 없으면서도 잔정 있는 꽃미남 재벌 2세로 출연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22]에서 최희철 역을 맡았다. 친근하고 구수한 목소리와 김하늘과 치고받는 억척스러운 억양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 7월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23]에서 정태성 역을 맡았다.[24] 여기서 제대로 꽃미남 이미지로 꽂혀 강동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우산 들어주는 장면[25]은 한국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으로 남았으며 이후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한다. 강동원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이 광경을 극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못해 아쉽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이 당시, 신인으로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이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얼마나 갈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부담이 되는 동시에 배우로서 자극이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 <늑대의 유혹> |
2004년 8월에는 SBS 드라마 《매직》에서 차강재 역을 맡았다. 이는 마지막 드라마 출연작으로, 강동원은 열악한 드라마 현장이 본인이 드라마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밝혔다.
2005년 9월에 개봉한 사극 영화 《형사 DUELIST》에서 슬픈 눈 역을 맡았다. 본인도 상당히 애착을 가진 작품 중 하나이지만 생각보다 흥행이 많이 되지 않아 상심이 컸던 듯. 흥행은 잘 되지 않았지만 청룡영화상 조명상, 미술상과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10대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강동원이 시상식에서 꽤나 기뻐했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형사의 칼싸움 신이 오마쥬되었다. 2015년 1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다. 본인은 훗날 이 영화를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말한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2007년 2월에 개봉한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 목소리 역을 맡았다.[26][27]
2007년 10월에 개봉한 《M》에서는 한민우 역을 맡았다.
2009년 12월에 개봉한 《전우치》에서는 도사 전우치 역을 맡았다.[28]
2010년 2월에 개봉한 《의형제》에서는 북한 간첩 송지원 역을 맡았다. 송강호와 훌륭한 케미를 형성하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후 강동원은 김윤석, 황정민과 작품 내에서 훌륭한 케미를 이뤄 남남 케미의 끝판왕으로 군림한다.[29]
2010년 11월에 개봉한 《초능력자》에서는 초능력자(초인) 역을 맡았다.
2010년 11월 18일 사회복무요원 이행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다.[30]
2010년 《러브 포 세일》에서 제이 역을 맡았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로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이 연출했다.[31] 이후 도쿄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으나 한국 개봉은 하지 않았다.
2013년 김지운의 단편 영화 《더 엑스》에서 X 역을 맡았다.
2014년 7월에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조윤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악역 연기와 한복 자태, 검술 등이 특히나 호평받았다.
2014년 9월에 개봉한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선천성 조로증을 앓는 아이의 철부지 아빠 한대수 역을 맡았다.
2015년 11월에 개봉한 《검은 사제들》에서 최준호 역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소재의 오컬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544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2016년 2월에 개봉한 《검사외전》에서 한치원 역을 맡았다. 약 97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크게 흥행하여 황정민과 함께 서로의 티켓 파워를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32]
2016년 11월에 개봉한 《가려진 시간》에서 실종되었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소년 여성민 역을 맡았다. 흥행엔 실패했지만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함과 동시에 흔치 않은 소재로 인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2016년 12월에 개봉한 《마스터》에서 김재명 역을 맡았다.
2017년 12월에 개봉한 《1987》에 잘생긴 남학생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팜플렛이나 CM 등에 등장 관련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에 상영관마다 강동원이 등장하는 씬에서 웅성이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강동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전,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감수하고 1987 제작진에게 제일 먼저 달려왔다고 이한열 기념사업회에서 밝혔다. 저예산 영화로 제작될 뻔 한 1987은 제일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강동원 덕분에 투자자가 모여 지금의 규모로 제작되었고, 강동원이 맡은 이한열의 기념사업회에서는 강동원에게 감사를 표했다.[33]# 무대인사 진행 도중에도 우는 관객을 보며 자신도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2018년 2월에 개봉한 《골든슬럼버》에서 평범한 택배기사 김건우 역을 맡았다.[34]
《쓰나미 LA》에서 보 역을 맡았다. 강동원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으로[35],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서퍼로 출연할 예정이다. 배급사 측은 영화 속에서 서핑하는 모습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정의로운 시민 역할로 스펙터클한 액션과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며 전부 영어 대사로 연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이먼 웨스트가 연출을 맡았으나, 스콧 만으로 바뀐 뒤 다시 닉 카사베츠[36] 감독으로 교체된 듯 하다.[37] 미국 LA 역사상 가장 강력한 쓰나미가 도시를 강타한다는 소재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이다. 영국과 멕시코에서 번갈아가며 촬영하며 유럽 로케는 루마니아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2018년 4월에 크랭크인하고 2019년 북미 개봉 예정이었지만 일정 문제로 제작이 지연되었다. 결국 2022년 7월 13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쓰나미 LA》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2020년 7월에 개봉한 《반도》에서 초토화된 땅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되는 군인 출신 한정석 역을 맡았다. 영화 부산행의 속편으로, 부산행의 시점으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국가 기능이 멈추고 재난으로 폐허가 된 반도에서 탈출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사투를 그렸다. 부산행, 서울역으로 세계관을 이어온 연상호가 연출을 맡았다. 2019년 6월 24일 크랭크인 & 2019년 10월 31일 크랭크업. 코로나로 인해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흥행에는 성공했다.
2022년 6월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에서 베이비박스 운영 단체의 비정규직 직원 동수 역을 맡았다. 2021년 4월 14일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 크랭크인했으며, 6월 22일 크랭크업했다. 2022년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 최초 공개했는데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요섭의 영화 《엑시던트》에 영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동명의 홍콩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22년 2월 15일 크랭크업했다. 2024년 5월 개봉.
김성식[38]의 연출 데뷔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서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귀신같은 통찰력을 가진 가짜 퇴마사 천 박사 역을 맡았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22년 9월 14일 크랭크인하여 2023년 1월 경 크랭크업했다. 2023년 9월 개봉.
4. 평가
전형적인 배우의 루트를 거치지 않았고 데뷔 초기에 보여준 다소 어색한 연기로 인해 배우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으나 배우로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 묵묵히 노력하고 있고,[39] 특히 꾸준한 작품 활동이 큰 인정을 받는다. 일부 인기 배우들이 신비주의로 인해 대박 영화 한 두 편 찍고 나면 몇 년씩 쉬면서 광고만 찍는 반면[40], 강동원의 경우 매년 한두 편 꾸준히 영화를 찍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에 그런 부분에서 평가가 높다. 추가로, 그는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많이 찍기 위해 광고 촬영은 줄이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광고로 인한 수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기할 때.[41]필모그래피를 보면 출연작 속 캐릭터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42] 본인은 배역이 겹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맡은 배역들에 대해서 다른 배우가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캐릭터를 본인의 스타일대로 개성있게 살려내며 표정 연기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액션 연기 분야에서 칭찬받은 적이 많다.[43] 본인도 액션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드러낸다.[44] 다만 그의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이 연기보다는 외모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 연기를 잘 하지만 외모 때문에 연기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은 대표적인 배우이다. 본인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다.[45]
영화계에서의 입지와 타율이 괜찮은 필모그래피 및 스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 경력은 빈약한 편이다.[46] 데뷔 초에 신인상과 인기상을 여러 개 받은 이후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의형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상 받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 또한, 아직 1,000만 관객을 모은 적이 없지만 강동원은 오롯이 혼자서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배우로 평가받는다. 2016년 CGV리서치센터가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관객들이 믿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배우 2위(28.2%)를 차지했다. 하지만 본인은 천만 배우 타이틀에 대해서도 아쉬운 것이 없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티켓 파워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는데 다른 남자 배우와 투톱으로 출연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는 반면, 강동원이 원톱을 맡은 영화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매우 상반되는 결과를 낳는다. 원톱으로 성공한 영화는 전우치 정도 뿐이고 가려진 시간, 골든 슬럼버, 인랑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실패를 맛봤다. # 반면 남자 선배 배우와 투톱을 맡은 의형제,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 이외의 흥행작들도 마스터는 쓰리톱, 1987은 특별출연으로 비중이 많지 않다.
연기력도 연기로 인정받는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배우 경력에 비해 부족하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캐릭터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은 캐릭터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난다. 거기에 사투리 억양을 아직도 못 고치는 것 또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요소다. 결국 원톱으로서 흥행시키지 못하는 것 또한 이런 연기력 문제와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위에 문단에서 연기력이 외모에 가려진다고 주장하는데 강동원 본인도 외모보다 자신의 연기력 부족을 탓한다. #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연기 욕심이 많은 것과 연기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이 자신의 연기 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고 YG로 이적한 이유가 '열악한 영화 환경에 대한 싫증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겨냥'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5. 필모그래피
5.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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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믿지 마세요| 그녀를 믿지 마세요 ]]주연 2004.2.20배형준 연출 / 최희철 역 | [[늑대의 유혹(영화)| 늑대의 유혹 ]]주연 2004.7.22김태균 연출 / 정태성 역 | [[형사 DUELIST| 형사 DUELIST ]]주연 2005.9.8이명세 연출 / 슬픈 눈 역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주연 2006.9.14송해성 연출 / 정윤수 역 | |
[[그놈 목소리(영화)| 그놈 목소리 ]]조연 2007.2.1박진표 연출 / 유괴범 역 | [[M(2007년 영화)| M ]]주연 2007.10.25이명세 연출 / 한민우 역 | [[전우치(영화)| 전우치 ]]주연 2009.12.23최동훈 연출 / 전우치 역 | [[의형제(영화)| 의형제 ]]주연 2010.2.4장훈 연출 / 송지원 역 | |
[[초능력자(한국 영화)| 초능력자 ]]주연 2010.11.10김민석 연출 / 초인 역 | [[군도: 민란의 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주연 2014.7.23윤종빈 연출 / 조윤 역 | [[두근두근 내 인생(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주연 2014.9.3이재용 연출 / 한대수 역 | [[검은 사제들| 검은 사제들 ]]주연 2015.11.5장재현 연출 / 최준호 역 | |
[[검사외전| 검사외전 ]]주연 2016.2.3이일형 연출 / 한치원 역 | [[가려진 시간| 가려진 시간 ]]주연 2016.11.16엄태화 연출 / 여성민 역 | [[마스터(한국 영화)| 마스터 ]]주연 2016.12.21조의석 연출 / 김재명 역 | [[골든 슬럼버(2018년 영화)| 골든 슬럼버 ]]주연 2018.2.14노동석 연출 / 김건우 역 | |
[[인랑(영화)| 인랑 ]]주연 2018.7.15김지운 연출 / 임중경 역 | [[반도(영화)| 반도 ]]주연 2020.7.15연상호 연출 / 한정석 역 | [[브로커(영화)| 브로커 ]]주연 2022.6.8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 김동수 역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주연 2023.9.27김성식 연출 / 천박사 역 | |
[[설계자| 설계자 ]]주연 2024.5.29이요섭 연출 / 영일 역 |
개봉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흥행 |
2004년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최희철 | 주연 | 120만 |
늑대의 유혹 | 정태성 | 129만 | ||
2005년 | 형사 DUELIST | 슬픈 눈 | 120만 | |
2006년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정윤수 | 247만 | |
2007년 | 그놈 목소리 | 유괴범 | 조연[47] | 297만 |
엠(M) | 한민우 | 주연 | 44만 | |
2009년 | 전우치 | 전우치 | 606만 | |
2010년 | 의형제 | 송지원 | 550만 | |
초능력자 | 초인 | 213만 | ||
2012년 | 러브 포 세일 | 제이 | 주연[48] | - |
2013년 | 더 엑스(X) | X | - | |
2014년 | 군도: 민란의 시대 | 조윤 | 주연 | 477만 |
두근두근 내 인생 | 한대수 | 162만 | ||
2015년 | 검은 사제들 | 최준호 | 544만 | |
2016년 | 검사외전 | 한치원 | 970만 | |
가려진 시간 | 여성민 | 51만 | ||
마스터 | 김재명 | 714만 | ||
2017년 | 1987 | 잘생긴 남학생[49] | 특별출연 | 723만 |
2018년 | 골든 슬럼버 | 김건우 | 주연 | 138만 |
인랑 | 임중경 | 89만 | ||
2020년 | 반도 | 한정석 | 381만 | |
2022년 | 브로커 | 김동수 | 126만 | |
2023년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 천 박사 | 191만 | |
2024년 | 설계자 | 영일 | 52만 | |
전,란[50] | 천영 |
5.2. 드라마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비고 |
2003년 | 위풍당당 그녀 | 민지훈 | 데뷔작 | |
1%의 어떤 것 | 이재인 | 주연 | ||
2004년 | 매직 | 차강재 | ||
2025년[51] | 북극성 | 산호 |
6. 기타 활동
6.1. 뮤직 비디오
발표 연도 | 아티스트 | 곡명 | 링크 |
2001년 | J.ae | 빛 | |
LINK | 비가와 | ||
조성모 | 다짐 | ||
2010년 | 주형진 | 헤어지자고 | [52] |
2012년 | 강동원 in a day | [53] | |
2016년 | 비밀을 말하다 | ||
2019년 | 쉼 | [54] | |
2022년 | 들을게 | [55] |
6.2. 방송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역할 | 비고 |
2004년 | ||||
2월 9일 | 전파견문록 | 게스트 | with 김하늘, 주영훈 | |
2월 12일 | 해피투게더 시즌 1 | with 김하늘, 박혜경 | ||
2월 15일 | 브레인 서바이버 | |||
7월 10일 | 공감토크쇼 놀러와 | with 조한선, 이청아, 김정화 | ||
7월 12일 | 야심만만 | with 조한선, 이청아, 이성미, 박미선 # | ||
7월 15일 | 해피투게더 시즌 1 | with 조한선, 자두 | ||
7월 18일 | 여걸 파이브 아름다운 만남 | |||
2005년 | ||||
9월 19일 | 한미일 마술대격돌 | 게스트 | with 최현우 | |
2015년 | ||||
11월 4일 | JTBC 뉴스룸 | 인터뷰이 | 인터뷰 일기예보 | |
2020년 | ||||
7월 9일 | 문명특급 | 게스트 | with 이정현, 이레 | |
2022년 | ||||
6월 9일 | 문명특급 | 게스트 | with 송강호, 아이유, 이주영 | |
2023년 | ||||
9월 13일 | 유 퀴즈 온 더 블럭 | 게스트 | 211회 | |
2024년 | ||||
6월 14일 | 자이언트 펭TV | 게스트 |
6.3. 라디오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역할 | 비고 |
2014년 | ||||
8월 25일 | 두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 게스트 | ||
2018년 | ||||
2월 9일 | 배철수의 음악캠프 | 게스트 | # | |
2022년 | ||||
9월 28일 |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 게스트 | ||
2024년 | ||||
5월 14일 |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 게스트 |
6.4. 개인 방송
연도 | 채널 | 비고 | 링크 |
2019년 | 브이로그 강동원&친구들[56] | ||
2020년 | 강동원 X 모노튜브 Live | ||
2021년 | 강동원 OOO 만들기 LIVE | ||
2022년 | 동원 목공소 | ||
브로커 무대인사 비하인드 | |||
2023년 | 천박사 강동원 깜짝 LIVE |
6.5. 웹예능
연도 | 채널 | 역할 | 링크 |
2020년 | 영국남자 | 게스트 | [57] |
2022년 | 아이유의 팔레트 | [58] | |
2023년 | 피식쇼 | [59] | |
2024년 | 핑계고 | [60] |
6.6. 음반
발매일 | 앨범 | 표지 | 제목 | 비고 |
2004.02.24 | 그녀를 믿지 마세요 OST | 거짓말 2/3 | ||
Aubrey (희철 버전) | ||||
2005.09.14 | 형사 DUELIST OST | 그림자 and Love Song | with 하지원 | |
2007.10.25 | M O.S.T | 우리가 흥얼거렸던 그 노래 | ||
2015.10.30 | 검은 사제들 OST | Victimae Paschali Laudes (Deacon Choi & Priest Kim Ver.) | # 메이킹 | |
2018.01.15 | 1987 OST | 가리워진 길 - 이한열 | # | |
가리워진 길 - 연희 | # | |||
2018.02.13 | 골든 슬럼버 OST | 힘을 내 (친구들 with 신해철 Ver.) | # |
6.7. 광고
방영 연도 | 기업 | 브랜드 | 비고 |
2000년 | 한국네슬레 | 네스카페 | # |
2002년 | CJ39쇼핑 | CJ몰 | # |
CJ제일제당 | 가쓰오우동 | # | |
2003년 | 햄스빌 포코포코 | ||
OB맥주 | 카스 | ||
예신퍼슨스 | 스멕스 | ||
2003년~2005년 | KTF | 굿타임찬스, 매직엔, K-ways | # # # |
2004년 | 매일유업 | 카페라떼 | # |
썬업 뷰티 콜라겐 | |||
2005년 | 더베이직하우스 | 베이직하우스 | # |
팬택앤큐리텔 | 팬택 | # | |
2006년~2007년 | 제일모직 | 엠비오 | |
LG전자 | 싸이언 | # # | |
샤프전자 | 리얼딕 | # | |
2008년~2009년 | 세정과 미래 | 크리스크리스티 | |
2009년 | 대선주조 | 봄봄(소주) | # |
2009년~2011년 | 남양유업 | 프렌치카페 | # |
2010년~2011년 | 코원시스템 | 코원 | # |
2011년 | 남양유업 | 프렌치카페 카페믹스[61] | # |
2012년~2014년 | 프렌치카페 루카 | # | |
2013년 | 아디다스 |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 # |
2014년 | 한국유니클로 | 유니클로 슬림피트 스트레이트 셀비지 진, 유니클로 후리스풀짚재킷 | # # |
2015년~2019년 | 남양유업 | 프렌치카페 루카스나인, 프렌치카페 루카스나인 라떼 | # # # |
2016년~2017년 | 코오롱 | 코오롱스포츠 안타티카 | # |
2017년 | 한국유니클로 | 유니클로 슬림피트 데미지 진 | # |
2019년 | (주)플래시드웨이브코리아 | PLAC | # # |
2022년 | LVMH | 루이 비통 | 앰버서더 |
7. 수상 경력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2003년 | MBC 연기대상 | 남자 신인상 | 1%의 어떤 것 |
2004년 |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신인남우상 | 늑대의 유혹 |
제25회 청룡영화상 | 인기스타상 | ||
제9회 여성관객영화상 |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남성 캐릭터상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
제2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신인남우상 | ||
제40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인기상 | ||
제7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신인연기자상 | ||
씨네21 영화상 | 올해의 남자신인배우 | ||
늑대의 유혹 | |||
2005년 | 제28회 황금촬영상 | 신인남우상 | |
제3회 CGV 관객이 뽑은 올해의 영화상 | 올해의 신인남자배우상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
늑대의 유혹 | |||
제41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매직 | |
제26회 청룡영화상 | 인기스타상 | 형사 DUELIST | |
2010년 |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의형제 |
2016년 | InStyle 스타 아이콘 | 스크린 남자 배우 부문 | |
2017년 | 뉴욕아시아영화제 | 아시아스타상 | 가려진 시간 |
2020년 | 제29회 부일영화상 | 남자 인기스타상 | 반도 |
2024년 | 2024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 | 남자배우(영화) |
8. 기타
- 좌우명은 공자의 명언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으로, 데뷔 이후 변함없는 좌우명이라고 한다.
- 20~30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절대로 돌아가지 않죠.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란 답을 남겼다. 모델 시절과 배우 초반에 고생했던 경험 때문으로 보이고, 20~30대 때만 해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하고 화를 낼 때가 많았는데 40대를 넘으니 성격이 유해졌다고 한다.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안 되는 거지 뭐~' 하고 넘긴다고.
- 이정진이 사무실에서 사투리 연기를 하는 모델을 보고 생김새가 맘에 들어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사투리가 안 고쳐져서 그랬던 건데 연기하는 걸로 착각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연기 외에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사투리 억양이 묻어 나온다. 여담으로 여욱환이 《강심장》에서 한 얘기로는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이탈리아에서 생쇼를 한 적이 있다고. 동영상
- 가수 주형진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강동원은 주형진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주형진은 강동원의 발성 연습을 돕는 등 현재까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때문인지 친분은 배우들보다는 감독과 더 많은 듯. 2012년 11월 강동원의 대체 복무 소집 해제 당일 공백 기간을 기다린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형진의 노래에 강동원의 하루를 담은 강동원 in a day를 영상과 무료 음원으로 공개했다. 10년이 넘는 서울 생활 내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남산타워와 63빌딩, 노량진 수산시장 등에 나타난 강동원을 만날 수 있다. 2016년, 화보를 찍는 도중 주형진의 신곡 '비밀을 말하다' 발표 소식을 듣고 본인이 먼저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안해 노개런티로 다시금 출연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 활동 초기에는 《해피투게더》, 《공감토크쇼 놀러와》 등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이후에는 작품 활동 때문에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한 꼭지에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면 노출이 정말 없다. 공식 팬미팅도 없다. 무대인사 등을 제외하면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재벌설 반박을 위한 기사를 제외하고는 사생활 노출도 정말 꺼리는 편이었다. 때문에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등 SNS에 근황이 뜨면 팬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운 편이다. 2023년이 되어서야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홍보차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았다. 이 한 편에 나온 내용이 그 전까지 출연했던 예능을 다 합한 것보다 많았을 정도.
- 전술한 대로 데뷔 초를 제외하면 드라마 출연이 전혀 없으나, 2020년대 들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가 대세가 되어 영화 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에 따라 영화 위주로 활동하던 배우들이 OTT에 편성된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고[62] OTT에 편성되지 않더라도 과거에 비해 제작 환경이 많이 달라진 만큼 강동원의 드라마 출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리고 2023년, 전지현과 함께 정서경이 각본을 담당한 《북극성》에 캐스팅되며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 김은숙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강동원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딱히 작가가 원한다는 인터뷰나 배우가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이 아님에도, 둘이 만나게 되면 흥행 배우와 흥행 작가의 만남이다 보니 주위에선 같이 작업하길 기대하는 상황이다.
- 길거리 캐스팅됐으나 가수를 시키려 했다. 가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온갖 잡일 시키면서 밥도 안 사줘 소속사 가수의 CD를 돌리다 맨날 빵에 컵라면 먹으며 살았다고. 말 그대로 '노예 계약'을 해서 결국 부모가 물어줄 거 물어주고 잘 해결했다고 한다. #
- 과거에는 팬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생일파티 겸 팬미팅을 했다. 수많은 팬들이 소액씩 모아 장소 대관과 생일선물 준비 등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한 팬들에게 나눠줄 여러 굿즈를 제작했다. 그 후 강동원의 설득으로 생일선물은 받지 않기로 하고 기부 등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당시 생일파티에 다녀온 팬들의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선물을 받지 않는 이유를 열거하며 자신한테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솔직히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물 대신 영화를 봐달라고 했다고. 그 후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강동원의 요청으로 생일파티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열린 생일파티 겸 팬미팅은 무료로 진행했다. 현재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팬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단관 행사를 진행한다. 2015년 검은 사제들 단관 행사에 다녀온 팬들이 강동원의 말을 옮긴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몇 년간 생일파티를 그만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도 생일이 방학이라 생일파티를 거의 안 해봐서 아직도 민망하고, 사실 생일파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처음 생일파티를 시작할 때도 강동원이 거절했지만 카페 운영진들이 팬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혼냈다고 한다. 그 후 중간에 한 번 더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또 운영진들이 혼내서 계속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렇다고 생일파티가 싫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팬들을 만나서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생일파티는 하지 않지만 단관 행사는 언제든지 참여할 것이고 오히려 영화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고 할 말도 더 많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 강동원의 팬 서비스는 《검사외전》 쇼케이스 현장에서 잘 나타나는데, 영상 13분 45초에 팬과 눈빛 교환을 하는 장면에서 행사장이 환호로 난리가 난다.
- "강동원 효과"로 유명한 것이 있다. 이는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실제 장면과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를 말한다. "강동원 3대 환각", 혹은 "착각"이나 "최면"이라고 하기도 한다.
- 2007년 소속사 더맨 모델 매니지먼트와 결별한 후 2013년 uaa에 들어가기 전까지 개인 매니저와 활동했다. 2016년 YG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며 혼자 활동하는 것이 힘들어 큰 기획사로 들어갔음을 밝혔다. 해외 프로젝트 추진 등을 홀로 감당하는 건 더 이상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uaa는 소속 연예인이 5인 이하인 소규모 기획사이다.)
- 태연, 한승연, 수지, 효린, 서현 등 많은 여성 연예인의 이상형이다. 특히 태연은 《친한친구》 마지막 방송에 육성 녹음으로 출연했는데, 막방 슬픔의 눈물을 순식간에 마르게 할 정도. 한승연의 경우 첫 번째 카라 콘서트 당시 직접 마이크에 대고 "어? 저기 강동원 씨 오셨네요? 반가워요~"라고 멘트 장난을 해 순간 관객들이 웅성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성우 히로하시 료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다. 성우 여행사 한국 편에서 히로하시는 강동원 사진만 계속 사댔다. 그리고 대만 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강동원이라구요!"라고 따지는 신이 있는 것을 봐서는 확실한 팬. 한국에 개인적으로 방문할 때도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 DVD를 사들고 갈 정도. 만화 《해파리 공주》의 작가 히가시무라 아키코도 8권 후기에서 강동원 팬임을 인증. 뿐만 아니라 일본 패션지 SPUR 2013년 7월호의 강동원 특집 코너에서 강동원과 직접 만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이 만화 내용에 따르면 《배가본드》와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히가시무라 만화도 읽어본 적이 있다고. 더불어 여타의 인터뷰들을 보면 덕력이 상당한 것 같다. 덧붙여 건프라 덕후이다.
- 인기가 상승하던 중에 여자 친구[63]가 있음을 밝혔다. 6~7년 정도 사귀고 결별한 듯. 이후 공개 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설이 보도된 날 두 사람과 함께 덩달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었다. 여성들의 공공재 강동원빈 중 원빈이 열애를 인정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강동원뿐이라며 강동원은 평생 공공재 솔로로 남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실제로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가 알려졌을 때 강동원 공공재가 함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랭크됐다.
- 연애는 그렇게 많이 해보진 못한 듯하다. 본인 말로도 지인들의 말로도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듯. 한 인터뷰에서는 ‘연애에 자신이 없다.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연애도 이런데 결혼은 정말 먼 세상 이야기로 생각하는 모양.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엄청난 책임과 부담을 느낀다고.
- 태권도 유단자이다. #
- 부산 출신답게 돼지국밥, 밀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음식들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데, 한정식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던 곳만 갔지만 이제는 맛집을 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접해보는 게 좋다고. 미식가 기질이 있는 듯하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맛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공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팬이다. 과거에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NC 경기를 직관하는 사진과[64] 2016년 7월 NC 고척 원정경기 때 키움 팬의 목격담[65]이 있었기 때문에 NC 팬으로 추정만 되었는데[66] 2020년 6월 한 유튜브 라이브에서 KBO 리그에서 어떤 구단을 응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NC를 응원하고 있으며, 최근 성적이 좋아 기분이 아주 좋다."라고 답했다. 또 누나 가족들도 응원한다고 답해 오피셜. # 2023년 9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무대인사에서 NC 시구 좀 와달라는 팬의 말에 "지금 지고 있던데?"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2015년 첫 목격담부터 최근까지 최소 9년 이상 팬인 것으로 보인다.
- 이탈리아 세리에 A 축구팀 AC 밀란의 골수 팬으로도 유명하다. 축구 경기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밀란의 레플을 입는다거나, 생일 케이크 커팅 때 밀란 유니폼을 입고 자른 짤이 널리 퍼진 적이 있다.
- FC 서울 U-18 유소년 팀 오산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였던 수비수 최준영이 5촌 조카다. 부주장을 맡았고, 2018년 제30회 차범근 축구상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 수상자다. # 2022년엔 K리그 유스 챔피언십 U-18 부문에서 우승했다. 2024년 1월 5일 오산고에서 FC 서울로 콜업되었다.#
- 2015년 11월 4일 JTBC 뉴스룸 2부에 출연해 손석희와 대담을 나누었다. # 11년 만의 방송 출연인 데다, 생방송이라 그런지 매우 긴장해서 땀까지 뻘뻘 흘렸다. 그래도 벌벌 떨면서도 할 말은 조곤조곤 하는 등 평소 팬들 외에는 노출되기 힘든 면모를 많이 보여줬다. 그리고 대담이 끝나고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일일 기상캐스터가 되어 날씨 예보를 하고 돌아갔다.
- 정려원과의 열애설이 찌라시를 통해 돌았다. 박효신의 소개를 통해 교제 중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강동원은 정려원은 사적으로 모르는 사이라며 누가 될까 죄송하다며 부인했고 정려원 측도 부인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강동원은 지금껏 이런 식의 찌라시에 별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꽤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고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최초 유포자를 잡아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한다.
- 탈모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작은 얼굴에 비해 넓은 이마를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소주를 마시다 몇 번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어 술은 맥주와 위스키를 마신다고 한다. #
- 한양대학교 축제 때 각 학과별로 주점을 열었는데, 기계과에서 강동원[67]을 내세워 장사를 하는 바람에 여자 손님들이 죄다 기계과로만 몰려가 다른 학과 주점들이 전부 망해버렸다고 한다.
- 군 복무 시절 대학 MT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서 20살때도 잘생겼다고 하였는데 사실 강동원은 빠른년생이다. 그래서 학번도 99학번이다. MT 갔을 당시 나이는 19살(만 18세)였다.#
- 모델 시절 해외 에이전시에서 마음에 드니 머물라고 하였다고 한다. #
- 모델 시절 프라다 런웨이에 아시아 최초로 초청받았으나 배우 준비 중으로 거절하였다. 당시 제사 때문에 거절했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제사 때문에 서지 못할 뻔한 건 프라다 런웨이가 아니라 파리 런웨이다. 파리에 가기로 약속되었으나 아버지가 안 오면 가문에서 파겠다고 하였다고. #
- 2021년 12월, 모노튜브에 강동원이 직접 목공을 하는 영상이 올라와 알고리즘을 타고 여성 팬들의 호응을 크게 얻었다. 강동원의 목공 라이브는 두 번에 걸쳐 진행했는데 한 편은 유튜브에 풀버전을 공개했으며, 다른 한 편은 12월 24일부터 31일까지 NFT로 판매했다. 판매 수익금은 기부 예정이라고. 본 영상에 댓글로 달린 "이런 거 있으면 재난 문자 보내줘야 할 거 아냐" 드립이 유명하다.
- 요즘은 드문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아저씨들이 툭툭 치고 지나가는 등 이상하게 시비가 붙어서 숨어다녔다고 한다.#
- 고등학생 당시 술 마시고 기숙사로 들어오다 걸려 두번 정학을 당했다. #
- 막노동 일을 한 적이 있다. #
- 모델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
- 강동원은 현재 100평 부지의 단독주택에서 거주 중이며, 렌트한 것이라고 한다. #
8.1. 금수저 오해
금수저 배우로 알려져 데뷔전 부유한 삶을 누렸다는 말이 널리 퍼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릴 적 집안 환경은 넉넉지 않았으며 부모는 맞벌이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반 사원에서 시작해 강동원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사장까지 올라갔다고 알려져 있어 태어나자마자 유복하게 살아온 금수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69]2008년, 선박왕을 소재로 한 드라마 <내 여자> 측에서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내 여자>의 주요 촬영지인 SPP조선의 부사장이 강동원의 아버지라는 것을 기사화하며 강동원이 금수저라는 보도가 처음 나오게 되었다. 강동원 측에서 여러번 사실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17년 외증조부 친일파 논란으로 인해 금수저라는 오해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강동원의 인터뷰와 부친 강철우의 프로필에 따르면 강동원의 부친은 중견기업 대선조선, 대기업 기아중공업의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IMF 외환위기 당시 실직하여 중소기업 부산산업기계로 이직하였다. 이후 중견기업 SPP조선과 합병하고 8년 뒤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고 한다. 이는 강동원이 배우로 데뷔하고 5년 후의 일이다. SPP조선은 2017년에 폐업했다.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강동원은 어린 시절부터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데뷔 초에 밝힌 일화 (2004, 스타고백)
어린시절 일화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오셨고, 나는 수십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은 끝에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낫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 공짜로 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내 유치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줄 사정이 안됐다. 누나만 유치원에 정식으로 다녔다. 머리가 커 누나와 ‘맞먹기’ 전만 해도 난 누나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동생이었다. 누나가 유치원에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유치원에 쫓아갔다. 그런 나를 보고 당리유치원의 정옥주 선생님이 유치원에 무료로 다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난 유치원 졸업장도 갖게 됐다.
중학생 때 일화
그날의 내 옷차림은 이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던 추리닝(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는데 나만 뒤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날 반 대표로 장기자랑대회의 사회를 봤다.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서 있으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추리닝 패션이 10년 후인 현재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으면 ‘패션의 선구자’인 척 자랑을 할 걸 그랬다(^ ^). 당시 난 옷이라곤 추리닝 두벌밖에 없었다. 그것을 갈아입으며 살았고,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 날 옷 때문에 빚어진 아픈 기억으로 ‘(옷)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풍 갔다온 뒤 철딱서니 없이 엄마한테 옷을 갖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앞둔 어느날 내 방안에 곱게 포장된 옷 한벌이 놓여있었다. 비싼 니트 상의였다. 돈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왜 그랬는지. 가슴이 찡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난 그 옷이 닳도록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다.
대학생 때 일화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이모부 집에 기거하며 골프연습장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린시절 일화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오셨고, 나는 수십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은 끝에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낫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 공짜로 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내 유치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줄 사정이 안됐다. 누나만 유치원에 정식으로 다녔다. 머리가 커 누나와 ‘맞먹기’ 전만 해도 난 누나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동생이었다. 누나가 유치원에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유치원에 쫓아갔다. 그런 나를 보고 당리유치원의 정옥주 선생님이 유치원에 무료로 다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난 유치원 졸업장도 갖게 됐다.
중학생 때 일화
그날의 내 옷차림은 이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던 추리닝(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는데 나만 뒤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날 반 대표로 장기자랑대회의 사회를 봤다.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서 있으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추리닝 패션이 10년 후인 현재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으면 ‘패션의 선구자’인 척 자랑을 할 걸 그랬다(^ ^). 당시 난 옷이라곤 추리닝 두벌밖에 없었다. 그것을 갈아입으며 살았고,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 날 옷 때문에 빚어진 아픈 기억으로 ‘(옷)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풍 갔다온 뒤 철딱서니 없이 엄마한테 옷을 갖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앞둔 어느날 내 방안에 곱게 포장된 옷 한벌이 놓여있었다. 비싼 니트 상의였다. 돈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왜 그랬는지. 가슴이 찡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난 그 옷이 닳도록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다.
대학생 때 일화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이모부 집에 기거하며 골프연습장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 재벌설 보도 당시 강동원 측의 반박 기사
강동원의 한 지인은 1일 "강동원의 아버지가 SPP중공업의 부사장이라는 게 알려지고 난 뒤, 마치 강동원이 재벌 2세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면서 "강동원의 아버지는 30여년간 중공업 분야에 종사했고, 말단 사원에서 출발해 올해 초 부사장에 이른 분"이라고 말했다. (2008, 중앙일보)
강동원의 한 지인은 1일 "강동원의 아버지가 SPP중공업의 부사장이라는 게 알려지고 난 뒤, 마치 강동원이 재벌 2세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면서 "강동원의 아버지는 30여년간 중공업 분야에 종사했고, 말단 사원에서 출발해 올해 초 부사장에 이른 분"이라고 말했다. (2008, 중앙일보)
■ 그 이후의 재벌설 반박
1.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지원’은 돈 때문에 ‘한규’(송강호 분)와 손을 잡는다. 현실 속 강동원도 극중 지원처럼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을까.
그는 “돈 때문에 마음 고생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자장면, 바나나 같은 음식도 잘 못 먹었어요. >외식도 자주 못했고요. 대학교 등록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2010, 맥스무비)
2.
"잘못 알려진 거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기아자동차에 다니셨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고 프라이드 소형차를 10년 넘게 탔다. 사원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집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IMF가 오면서 집안이 심하게 휘청거렸고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조그마한 중소기업으로 옮기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완벽주의자로 꼼꼼한 성격 덕에 일을 너무 잘하셔서 회사를 옮기시면서 정말 빠르게 승진하셨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중역이었던 것처럼 알려졌는데 내가 연예계 데뷔한 뒤에야 대기업으로 옮기신 거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하기 이틀 전에 아버지가 '나 부사장 됐다' 하면서 명함 주시더라. 솔직히 좀 황당했다" (2008년에 부친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녀를 믿지마세요>는 2004년 작품이므로 강동원이 착각했거나, 기사에 잘못된 내용이 실린 것이라 추측된다.)
이어 강동원은 "연예계 데뷔도 용돈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다. 대학교 때 1주일에 용돈이 5만원이라 몇 달 진짜 아껴서 옷 한 벌 사는 처지였다. 친구들이 프로필 사진 찍어서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보자고 하긴 했는데 연기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대학 생활 재미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에 남녀공학을 다녔더니 대학에 와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기계과에 입학해서 기계를 만질 줄 알았는데 온갖 수학과 역학만 하다 보니 심심풀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지만 가수를 시키려고 했다. 가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온갖 잡일 시키면서 밥도 안 사 주는 거다. 소속사 가수 CD 돌리다가 맨날 빵에 컵라면 먹으며 살았다. 좀 기분 나쁜 티라도 내면 집에 안 보내주는 거다. 안산까지 차 끊기면 끼어 잘 데도 없는데. 말 그대로 '노예 계약'을 해서 결국 부모님이 물어줄 거 물어주고 잘 해결했다. 없는 살림에 정말 죄송했다"며 옛날 이야기 하니 재미있다고 소리 내어 웃었다. (2010, 마이데일리)
3.
'엄친아'설에 대해
"우리집 사정을 아는 저의 고향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배꼽을 잡고 웃어요. 아주 평범한 아이였어요. 또한 집안 형편도 기사에 난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어요. 그냥 중산층 가정이에요. 모델로 데뷔한 뒤에도 집안 형편이 나빠져 제가 돈을 보내드려야 할 때도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공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데 자꾸 기사가 나와 속상해요. 얼마 전에도 누나 가게 사진이 뜻하지 않게 나와 정말 황당했어요." (2009, 스포츠칸)
4.
“재벌 2세설이 계속되고 있어요. 아버지가 재벌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요. 아버지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부사장이세요. 그런데 마치 재벌인 것처럼 알려졌죠. 재벌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세요. 때문에 당연히 저도 재벌 2세가 아니에요. 아버지 재벌설이 2~3년 전부터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부사장 되신 지도 2~3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사실 가족 얘기를 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미 아버지는 공개돼서.” (2010, 뉴스엔)
5.
어렸을 때 집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는데, 누나는 자기 입고 싶은 옷 사는 대신 내 옷 사주라고 양보했다. 누나한테 두드려 맞기도 했는데 사이가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옛날에 누나가 이단옆차기 해서 내가 유리창에 처박혔을 때도 그때만 그랬지 사이가 좋았다. (2010, 인터뷰365)
6.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웃음) 초등학생 때 아파트 15층에 살았었다.[70]어렸을 때부터 창밖을 내다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국어선생님이 내 별명을 ‘꿈꾸는 소년’이라고 지어준 적도 있다. “우리 동원이는 꿈꾸는 소년이야, 만날 창밖만 보고 있어….”
(좌중 폭소) 언젠가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방충망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15층에서 떨어져서 네 조각이 났더라. 방충망을 잇는 기역자 모양의 플라스틱 이음새가 박살이 났더라고. 난 죽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오시면 창밖을 내다봤다고 혼날 텐데….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아 방충망 사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고. 그래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아무도 몰래 수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플라스틱 대신 끼워넣을 것을 찾다가 아파트 분리수거함을 뒤져 알루미늄 캔을 기역자 모양으로 다 잘라서 방충망에 연결했다. 한달 뒤에 아버지가 문득 베란다 창문을 보시다가 “어? 이게 뭐지?” 하시는 거다. 그거 제가 예전에 떨어뜨려서 고쳐놓은 거라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게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칭찬이었다. (좌중 폭소) 그러다보니 이해하기가 상당히 쉬웠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란걸. (2014, 한겨레)
7.
-엄친아라는 사실로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스타다. 아버지에게는 어떤 아들인가.
"재벌도 아닌데 계속 그러신다. 아버지는 지금 월급 부사장이다. 어릴 때에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연기 때려치고 공부하라고 하실 때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다. 내 일에 가족들이 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보통 가족들이랑 똑같다. 만나면 잠깐은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명절에 잘 안내려간다.(웃음)" (2016, enews24)
8.
"어느순간 사람들이 나를 부잣집 아들이라고 알더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 논두렁길로 학교 다니고 기숙사 생활하고 데뷔해서도 한동안 회사에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순간 부잣집 아들이라고 기사가 나오고 방송에도 나오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사를 써주지도 않더라"고 덧붙였다. 강동원은 "아버지가 대기업 부사장이라고 하는데 원래 중소기업 다니시다가 그 회사가 합병을 해서 부사장이 됐다. 그런데 대기업 부사장이란 기사가 그러고 두 달 뒤에 나왔다"면서 "그 회사도 대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 (2018, 스타뉴스)
9.
"저는 진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어렸을 때 논두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연탄을 때면서 살았죠. 대학 시절에는 서울로 상경해서 기숙사와 하숙집을 전전했고, 연기자로 데뷔하고 나서도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그 뒤 조금씩 삶이 바뀌었을 뿐이죠." 그러나 그는 귀공자 같은 외모 때문에 종종 여러 오해를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 '부잣집 아들'이라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억울해했다. (2018, 연합뉴스)
1.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지원’은 돈 때문에 ‘한규’(송강호 분)와 손을 잡는다. 현실 속 강동원도 극중 지원처럼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을까.
그는 “돈 때문에 마음 고생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자장면, 바나나 같은 음식도 잘 못 먹었어요. >외식도 자주 못했고요. 대학교 등록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을 정도로 어려웠어요.” (2010, 맥스무비)
2.
"잘못 알려진 거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기아자동차에 다니셨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고 프라이드 소형차를 10년 넘게 탔다. 사원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집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IMF가 오면서 집안이 심하게 휘청거렸고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조그마한 중소기업으로 옮기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완벽주의자로 꼼꼼한 성격 덕에 일을 너무 잘하셔서 회사를 옮기시면서 정말 빠르게 승진하셨다. 아버지가 원래부터 중역이었던 것처럼 알려졌는데 내가 연예계 데뷔한 뒤에야 대기업으로 옮기신 거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하기 이틀 전에 아버지가 '나 부사장 됐다' 하면서 명함 주시더라. 솔직히 좀 황당했다" (2008년에 부친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녀를 믿지마세요>는 2004년 작품이므로 강동원이 착각했거나, 기사에 잘못된 내용이 실린 것이라 추측된다.)
이어 강동원은 "연예계 데뷔도 용돈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다. 대학교 때 1주일에 용돈이 5만원이라 몇 달 진짜 아껴서 옷 한 벌 사는 처지였다. 친구들이 프로필 사진 찍어서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보자고 하긴 했는데 연기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대학 생활 재미도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에 남녀공학을 다녔더니 대학에 와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 >기계과에 입학해서 기계를 만질 줄 알았는데 온갖 수학과 역학만 하다 보니 심심풀이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지만 가수를 시키려고 했다. 가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온갖 잡일 시키면서 밥도 안 사 주는 거다. 소속사 가수 CD 돌리다가 맨날 빵에 컵라면 먹으며 살았다. 좀 기분 나쁜 티라도 내면 집에 안 보내주는 거다. 안산까지 차 끊기면 끼어 잘 데도 없는데. 말 그대로 '노예 계약'을 해서 결국 부모님이 물어줄 거 물어주고 잘 해결했다. 없는 살림에 정말 죄송했다"며 옛날 이야기 하니 재미있다고 소리 내어 웃었다. (2010, 마이데일리)
3.
'엄친아'설에 대해
"우리집 사정을 아는 저의 고향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배꼽을 잡고 웃어요. 아주 평범한 아이였어요. 또한 집안 형편도 기사에 난 것처럼 부유하지 않았어요. 그냥 중산층 가정이에요. 모델로 데뷔한 뒤에도 집안 형편이 나빠져 제가 돈을 보내드려야 할 때도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공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데 자꾸 기사가 나와 속상해요. 얼마 전에도 누나 가게 사진이 뜻하지 않게 나와 정말 황당했어요." (2009, 스포츠칸)
4.
“재벌 2세설이 계속되고 있어요. 아버지가 재벌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사람들이 안 믿어요. 아버지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부사장이세요. 그런데 마치 재벌인 것처럼 알려졌죠. 재벌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세요. 때문에 당연히 저도 재벌 2세가 아니에요. 아버지 재벌설이 2~3년 전부터 나왔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부사장 되신 지도 2~3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사실 가족 얘기를 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미 아버지는 공개돼서.” (2010, 뉴스엔)
5.
어렸을 때 집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는데, 누나는 자기 입고 싶은 옷 사는 대신 내 옷 사주라고 양보했다. 누나한테 두드려 맞기도 했는데 사이가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옛날에 누나가 이단옆차기 해서 내가 유리창에 처박혔을 때도 그때만 그랬지 사이가 좋았다. (2010, 인터뷰365)
6.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웃음) 초등학생 때 아파트 15층에 살았었다.[70]어렸을 때부터 창밖을 내다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국어선생님이 내 별명을 ‘꿈꾸는 소년’이라고 지어준 적도 있다. “우리 동원이는 꿈꾸는 소년이야, 만날 창밖만 보고 있어….”
(좌중 폭소) 언젠가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방충망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15층에서 떨어져서 네 조각이 났더라. 방충망을 잇는 기역자 모양의 플라스틱 이음새가 박살이 났더라고. 난 죽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오시면 창밖을 내다봤다고 혼날 텐데….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아 방충망 사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고. 그래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아무도 몰래 수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플라스틱 대신 끼워넣을 것을 찾다가 아파트 분리수거함을 뒤져 알루미늄 캔을 기역자 모양으로 다 잘라서 방충망에 연결했다. 한달 뒤에 아버지가 문득 베란다 창문을 보시다가 “어? 이게 뭐지?” 하시는 거다. 그거 제가 예전에 떨어뜨려서 고쳐놓은 거라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게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칭찬이었다. (좌중 폭소) 그러다보니 이해하기가 상당히 쉬웠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이란걸. (2014, 한겨레)
7.
-엄친아라는 사실로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스타다. 아버지에게는 어떤 아들인가.
"재벌도 아닌데 계속 그러신다. 아버지는 지금 월급 부사장이다. 어릴 때에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연기 때려치고 공부하라고 하실 때 신경쓰지 말라고 했었다. 내 일에 가족들이 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보통 가족들이랑 똑같다. 만나면 잠깐은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받는다. 그래서 명절에 잘 안내려간다.(웃음)" (2016, enews24)
8.
"어느순간 사람들이 나를 부잣집 아들이라고 알더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에 논두렁길로 학교 다니고 기숙사 생활하고 데뷔해서도 한동안 회사에서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순간 부잣집 아들이라고 기사가 나오고 방송에도 나오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사를 써주지도 않더라"고 덧붙였다. 강동원은 "아버지가 대기업 부사장이라고 하는데 원래 중소기업 다니시다가 그 회사가 합병을 해서 부사장이 됐다. 그런데 대기업 부사장이란 기사가 그러고 두 달 뒤에 나왔다"면서 "그 회사도 대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 (2018, 스타뉴스)
9.
"저는 진짜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거든요. 어렸을 때 논두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연탄을 때면서 살았죠. 대학 시절에는 서울로 상경해서 기숙사와 하숙집을 전전했고, 연기자로 데뷔하고 나서도 사무실에서 지내다가 그 뒤 조금씩 삶이 바뀌었을 뿐이죠." 그러나 그는 귀공자 같은 외모 때문에 종종 여러 오해를 받는다. 그는 "무엇보다 '부잣집 아들'이라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억울해했다. (2018, 연합뉴스)
9. 논란 및 사건 사고
9.1.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 적발
2003년 11월 1일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적발되어 11월 3일에 불구속 입건됐다. 《늑대의 유혹》에서 오토바이를 타야 하는 태성 역을 맡게 되었는데 촬영 전에 면허를 따는 것은 불가능하여 사무실 직원의 오토바이를 빌려 연습하였다고 하며, 이유가 어떠하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9.2. 인터뷰 논란
2017년 2월 18일 모 여초 커뮤니티에 강동원의 10년 전(2007년) 인터뷰가 올라왔다.2007년, 강동원은 인터뷰를 하면서 모 연예인과 사돈지간(친가)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외가 쪽 이야기로 넘어오며 외할머니와 외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언급하였다. 문제는 친일파인 외증조부를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것. 이로 인해 논란이 확산되었다. 즉, 2007년에 강동원이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친일인명사전이 완성되기 전이었고, 이 인터뷰도 크게 화제되지 않았지만 10년 뒤인 2017년에 다시 화제가 되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 된 것.[71]
논란이 시작되고 8~9일 뒤인 2017년 2월 27일 영화 전문 잡지 맥스무비는 삼일절 특집으로 연예인 중에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군의 후손을 비교하는 기사(카드뉴스)를 작성했다. 그 카드뉴스에는 강동원의 외증조부 이종만은 1급 친일파로, 위안부 창설을 지원했으며, 친일 행위를 대가로 광산 채굴권을 획득했다고 기재했다. (이후에 1급 친일파, 위안부 창설을 지원했다는 내용 등은 왜곡된 내용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어떤 개인이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맥스무비 카드뉴스 URL을 링크한 글을 강동원 측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신고 요청하였고 관련된 메일을 네이버 측으로부터 받은 블로그 주인이 글이 신고당했다는 글을 작성하면서 '강동원 측이 외증조부가 친일파라는 게시글을 지우고 있다'며 논란이 더욱 확산되었다.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블로그 글을 신고하여 게시 중단'을 한 것이지, 법적 대응을 한 것이 아니다.) 당시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밝힌 입장에 따르면 '카드뉴스에 사실과 다른 내용(1급 친일파, 위안부 창설)이 있어서 삭제 요청을 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게시글 신고로 논란이 된 시점에는 해당 카드뉴스에 외증조부와 관련하여 왜곡된 내용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다음 날인 3월 1일, 이와 같은 논란이 기사화 되었고 3월 3일에는 유명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강동원과 관련된 논란을 기사화하였다. [Q&D] "할아버지는 예술이었다?"…강동원, 친일 후손의 실체 17 디스패치는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편찬실장 이용창을 인터뷰하였는데, 맥스무비 카드뉴스에 실린 이종만의 친일 행적에 대해 상당한 부분이 왜곡되었음이 드러났다. 사실은 다음과 같다. 관련 기사
1. '1급 친일파'가 아니다.
강동원의 외증조부 이종만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었으나 이종만을 '1급 친일파'라고 지칭한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등재 시 '급수'를 구분하지 않는다.
2. 위안부가 아니라 위문대에 기부한 것이다.
이종만이 위문대에 기부했는데, 위안부와 위문대는 명백히 다르다. 위문대의 대는 주머니 대(袋)로 병사들에게 전하는 주머니(보급품)라는 뜻이다. 위안대, 정신대 등의 부대 대(隊) 자와 다르다. 따라서 위안부가 위문대에 포함된다고 보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이종만 씨는 1937년에는 위문품대에 금 1,000원을 기탁했고, 1939년에는 1000원을 헌금해 그 돈으로 통조림 3,600개를 구입했다고 기록돼있다. 물론 위문물품을 담을 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부녀자들이 동원되었지만 위안부와는 다르다."(이용창) 이는 조선일보[72]와 매일신보[73]에도 보도되었다.
3. 친일 행위를 해서 채굴권을 얻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종만이 친일 행위를 해서 채굴권을 따냈다는 자료나 기록이 없어 둘 사이 정확한 연관 관계를 밝혀낼 수 없다. 물론 당시 채굴권을 따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친일 행위를 해서 채굴권을 따냈다는건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이용창은 ''이종만 씨가 채굴 사업권을 몸으로 부딪쳐 얻었는지, 돈을 주고 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증거가 있는 사실만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이종만의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종만(1886~1977): 강원도에서 지하자원 개발과 광산업에 종사하며 강원도 평강 개간사업, 함경남도 영흥 범포 개척 등을 추진했다. 1928년 함경남도 함흥과 신흥 등지에서 폐광 위기에 있던 금광을 개발하여 성공한 뒤, 평안북도 자성의 금은광구를 소유하여 '광산왕'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조선 제일의 철광 자성광산도 소유했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1937년 6월 대동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사장에 취임했고, 대동광산중앙조합 이사장과 대동농촌사 이사장을 겸했다. 대동출판사도 설립했다.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
디스패치 기사가 난 이후에도 이용창이 이종만의 죄를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은 이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이용창의 답변.
같은 날, 소속사 YG에서는 외증조부 게시물 삭제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강동원 개인이 삭제 조치한 것이 아니라 소속사 차원에서 요청했으나 포털의 특성상 배우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삭제를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YG "강동원 게시물 삭제 요청, 사실과 다른부분 때문"(공식입장전문)
맥스무비 또한 입장을 발표하였다. 맥스무비 측 “강동원 인적사항, 공식 게시물 아니다”(전문) "해당 카드뉴스는 개인 회원이 제작, 게재한 개인 콘텐츠이며 맥스무비와 무관하다.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정비할 것이다. 또, 사실과 다른 내용이 확산돼 개인의 명예훼손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바 2차 확산을 막기 위해 맥스무비가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글 캐시에 남아있는 자료에 의하면 이는 개인이 제작한 것이 아닌 맥스무비의 공식 기사인 것이 확인되어 거짓 사과문에 대한 2차 논란이 불붙게 되었다. 또, 맥스무비가 주장한 '개인 회원이 제작한 것'이라는 해명은 맥스무비가 영화 커뮤니티 익스트림무비에 마치 책임전가를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맥스무비와 관련된 커뮤니티 사이트는 익스트림무비가 유일하기 때문. 익일에 그에 대한 해명문이 익스트림 무비에 올라왔다. 강동원 이슈 관련, 맥스무비에서 보내왔습니다
3월 5일 강동원 본인의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강동원 사과…“역사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하겠다” (전문)
강동원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십니까. 강동원입니다. 먼저 외증조부와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외증조부의 미담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외할머니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외증조부에 대한 미담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고, 2007년 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그 분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이 혼란스러웠고, 충격도 컸습니다. 더욱이 가족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했고, 또 관련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미숙한 대응과 관련해 관련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빠르게 제 입장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도 모두 사과드립니다.
저 또한 배우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고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점, 미숙한 대응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 빠른 시간 내 제 입장을 말씀드리지 못한 점, 모두 저의 잘못이라 통감합니다. 저는 제 외증조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해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미약하게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일로 심려 끼쳐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강동원입니다. 먼저 외증조부와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외증조부의 미담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외할머니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외증조부에 대한 미담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고, 2007년 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그 분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이 혼란스러웠고, 충격도 컸습니다. 더욱이 가족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했고, 또 관련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미숙한 대응과 관련해 관련자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빠르게 제 입장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도 모두 사과드립니다.
저 또한 배우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고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점, 미숙한 대응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 빠른 시간 내 제 입장을 말씀드리지 못한 점, 모두 저의 잘못이라 통감합니다. 저는 제 외증조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알게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또 반성해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미약하게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일로 심려 끼쳐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요약하자면 친일파 외증조부의 집에 독립운동 가문의 외할머니가 며느리로 들어갔고, 어린 시절부터 외증조부의 미담을 전해준 외할머니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 의심없이 그 미담만을 믿었던 것.이라고 한다. (강동원의 외할아버지 이영조는 강동원이 태어나기 전인 1975년에 사망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기사를 통해 알려진 이종만의 행적을 본다면 외할머니가 전해준 미담은 기부, 교육사업, 사회사업과 관련된 미담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식 입장을 통해 밝혀진 사실로는 외할머니가 구포 만세운동 노원필의 장손녀라고 한다. 즉, 독립운동가 노원필의 손녀가 친일파 이종만의 며느리라는 것. 관련 기사 이 보도로 인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친일파 집안에 시집가는 게 말이 되냐'는 일부 잡음이 가라앉았다.[74]
3월 6일 맥스무비는 해당 게시물에서 친일파인명사전 등재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표현들은 왜곡되었으며 지속적으로 해당 게시물의 2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두번째 공식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 후 맥스무비는 왜곡된 카드뉴스가 올라온 곳에 게시글 삭제를 신고 요청하였고, 1급 친일파와 위안부 창설 등 왜곡된 내용을 수정한 경우에는 포털사이트 측에서 게시글을 다시 허용해주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
이후 강동원이 영화 1987에 출연했을 때도 친일파 논란이 있었으나 사건 전부터 시놉시스를 흔쾌히 성사한 것이 알려지고 진정성 있는 노력이 알려지면서 친일파 논란은 어느 정도 희석된 편이다. 자세한 것은 1987(영화)/논란 문서 참고.
[1] 영어 이름이 다소 독특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Gang보다 Kang을 주로 쓴다.[빠른생일] [3] 現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4] 박사공파(博士公派).[5] 본인이 직접 밝혔다. #[기준] 2023년 9월 29일, 네이버 프로필.(본인참여 2022.05.27.)[7]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정치가. 일본 황실이 준 창씨명은 月城鍾萬(츠키시로 쇼마)로, 창씨개명 자체는 의외로 조선 인구의 대부분이 했고 '츠키시로'는 경주 이씨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일본식 성씨 중 하나이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북지(황군)위문품대' 자금 지원했다.[8] 前 SPP중공업 부사장. #[9] 3살 차이가 나는 누나가 있다고 밝혔다. 기혼자로 2011년생 자녀가 있다.[10] 강동원의 5촌 조카로, 오산고등학교 축구부 출신 축구선수이다. 2024년 FC 서울 1군에 콜업되었다.[11] 現 대원초등학교[12] 現 성주초등학교[13] 現 남양초등학교[14] 99학번[15] 2015년 11월 4일 JTBC 뉴스룸에서 밝혔고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16] 다정한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생긴 별명이다.[17] 동원 아저씨의 줄임말.[18] 어깨 탈구 때문에 공익 판정을 받고,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였다. 복무기간은 2010년 11월 18일 ~ 2012년 11월 17일이다.[19] 1인 기획사를 설립하였다. #[20] 주로 '프보'라고 불린다.[21] 강동원이 입학할 당시엔 자율학교가 없었다. 그땐 그냥 지역 명문고였다.[22] 강동원의 영화 데뷔작[23] 인터넷 소설 작가 귀여니 원작.[24] 캐스팅 비화. 당시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촬영 중이던 강동원은 촬영 스케줄 조정을 요청하였는데, 강동원은 신인 배우에 불과했기에 감독은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려 하였다. 그러나 제작사 여직원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스팅이 성사되었다.#[25] 정확히 말하면 단속이 떠서 급하게 이청아 옆에 숨어 우산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시 우산을 슬쩍 드는 장면이다.[26] 참고로 강동원의 목소리(정확하게는 '그 놈' 연기할 때의 목소리)와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된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의 가해자 목소리가 89.6% 일치한다는 것이 《출발! 비디오여행》을 통해 밝혀졌다. 전문가 曰 90%를 넘으면 거의 동일인 수준이다. 성대 떨림과 말하는 패턴이 비슷하다. 완벽한 성대모사 수준이다.[27] 그러나 영화상 설정과 다르게 실제 이형호 유괴 사건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범행 패턴과 사건 정황상 목소리의 인물은 사건의 주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범죄 전문가들의 정설이고, 실제 유괴와 돈을 가져오는 등의 행동을 한 주동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그에게 전화 통화를 담당하게 시켰다고 추정된다. 공범이긴 하나 그야말로 전화 통화 외에 실제 직접적 행동은 거의 하지 않은 걸로 추정된다.[28] 여담으로 전우치 복장을 입고 연기할 때 '나는 루피다'라는 생각으로 했다고 한다.[29] 송강호 曰, 보통 대선배와 작업하게 되면 배우겠다는 자세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동원은 일단 자기부터 잘 하고 보겠다고 이야기해서 물건이구나 싶었다고.[30] 공익 판정 사유가 습관성 탈골인데 커리어에서 강동원의 필모그래피에는 액션 영화들이 상당히 많고 많은 액션신들을 무리없이 소화하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강동원은 액션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도 탈골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데, 공익 판정은 데뷔 전에 받은 것이라고. 신검을 두 번 받았지만 두 번 다 공익 판정이 났다. 원래는 어깨 탈구 때문에 면제가 나와야 하는데 공익이 나왔다. 의사가 재검을 권유하였으나 그 후 데뷔해 재검받는 걸 포기했다. #실제로 습관성 탈골로 인해 공익뿐 아니라 면제 판정을 받은 연예인과 일반인이 꽤 있어, 공익 판정은 사실상 논란될 이유가 없었다.[31] 카멜리아(Camellia)는 대한민국의 부산을 배경으로 해, 사랑을 통한 대한민국, 일본, 태국의 아시아 3개국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이다. 태국의 위싯 사사나티엥, 일본의 유키사다 이사오, 한국의 장준환이 참여하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호가 제작을 맡아,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첫 상영했고, 일본에서는 같은 해 10월 25일 제23회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32] 별개로, 설 연휴를 노린 스크린 독점은 비판받았다.[33] 이한열 기념사업회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영화 ‘1987’의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출연하겠다고 한 배우는 세 명이 있었다고 한다.[34] 주인공이 착하다기보단 멍청함에 가깝게 그려져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35] 유튜브 채널 모노튜브 5화에서 자신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생각과 소신을 밝혔다. #[36] 노트북(영화) 감독[37] 현재까지도 아무런 정보가 없고 정확히 누가 감독을 맡았는지 모르는 상태.[38] 《기생충》,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헤어질 결심》 조감독[39] 본인의 성격상, 뭔가를 할때 완벽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부단히 노력한다고 한다.[40] 대표적인 경우로 원빈이 있다. 영화 아저씨 이후 작품 활동 하나도 없이 광고만 찍는 걸로 유명하며 이 점으로 인해 비판을 많이 받는다. 얼마나 공백기가 기냐면, 아저씨에 함께 출연한 김새론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작품이 하나도 없다.[41] 광고업계 관계자들이 본인과 일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과 잘 맞는 콘티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안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괜찮은 콘티가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연기 외적으로, 정확히 연기자로서가 아닌 본인 자신을 소비할 때 가장 까칠해진다고. 광고가 안 좋은 게 나오면 오랫동안 영향이 있으므로 절대 하루 이틀만 계산해선 안되며, 거액만 생각하고 광고를 선택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한다. 본인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42] 사형수, 도사, 초능력자, 북한 간첩, 탐관오리, 구마 사제, 사기꾼, 군인, 특기대원, 택배 기사, 유괴범, 베스트셀러 소설가,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세월의 법칙을 거스른 소년, 자객, 좀비 아포칼립스 생존자, 조로증을 앓는 아이의 아버지, 마술사, 한의사, 베이비박스 운영 단체의 비정규직 직원, 귀신을 믿지 않는 퇴마사, 살인청부업자,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진 몸종 등[43] 무술 감독 정두홍은 강동원의 액션에는 부드러움이 있다고 장점을 설명하면서, 전에 무용을 했던 영향을 받아서인지 2~3년에 걸쳐 익숙해지는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속 회전 액션을 두 번 만에 완성했다고 밝혔다. 영화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는 그가 액션 장면에도 감정을 넣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마저 눈빛으로 표현해 감정이 풍부하고 처절한 느낌의 액션이 완성되었다며 극찬을 했다.[44] 2020년 6월 16일 반도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예전에 상급자 코스를 거의 다 끝냈고 액션팀에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해서 영화 ‘반도’를 촬영할 때 액션 스쿨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45]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출처[46] 이처럼 필모와 연기가 훌륭한데도 소위 말하는 상 복이 없는 배우들이 몇 있다. 작품에 임할 때 개인보다 작품을 중시하는 배우들이 종종 그렇다. 상이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입지가 확고할 만큼 개성 넘치고 필모가 탄탄한 경우이다.[47] 주로 전화 목소리로 나오고 뒷모습과 실루엣만 살짝씩 나올뿐, 한번도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48] 단편 영화[49] 실제 스탭롤 상으로 이렇게 나온다. 제일 먼저 감독을 찾아온 강동원에게 장준환이 이 배역밖에 없다고 보여줬을 때도 이렇게 써뒀다고. 그리고 실제 배역은 스포일러.[50] 데뷔 후 첫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이다.[51] 매직 이후 21년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다.[52] 강동원이 출연한 1분짜리 프로모션 영상.[53] 소집해제 기념으로 공개한 특별 영상이다. 본 곡은 재편집해 "One Fine Day"라는 제목으로 앨범 Slow Tempo에 수록되었다.[54] 모노튜브 채널 브이로그를 재편집하였다.[55] 모노튜브 채널 동원목공소 영상을 재편집하였다.[56] 모노튜브 측의 기사에 따르면 강동원의 오랜 지인이 유튜브에서 유명인 브이로그 채널을 론칭하였고, 팬들을 위해 출연을 결심하였다고 한다.[57] 영화 반도 홍보. with 이정현, 이레[58] 영화 브로커 홍보. with 송강호, 이주영[59]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홍보[60] 영화 설계자 홍보. with 이동휘[61]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로 칭해지는 전설의 광고.[62] 실제로 2000년대 충무로 트로이카가 전부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설경구는 1994년 단역 출연 이후 30년 만에 《돌풍》으로, 최민식은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카지노》로 드라마에 복귀했으며, 송강호는 드라마 출연히 아예 전무했다가 데뷔 32년 만에 《삼식이 삼촌》으로 첫 드라마에 도전했다.[63] 전 모델.[64] 일행이 있는 곳은 원정 응원석인 1루 측 스카이박스다. 스카이박스 옆 방의 관객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날은 에릭 테임즈가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날이다. ##[65] 박석민이 홈런을 치자 강동원이 두 팔을 들고 환호했다고 언급했다. ##[66] 한 기사에서 "제가 부산 출신이라 가족들은 야구팀 응원할 때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 그런데 저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그 느낌을 좀 알겠더라. 지금도 무조건 롯데를 응원하지는 않는다. 지는 팀을 응원하기도 하고 그런다. 좀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나 보다."라는 인터뷰를 통해 부모가 롯데 팬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0년 6월 유튜브 라이브에서는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을 창원에서 보냈고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창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본인은 창원 사람이라고 칭했다. 비슷한 사례로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지만 본인이 부산 용호동 출신이라고 말하는 정형돈, 진주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를 마산에서 보내 본인의 고향이 마산이라고 말하는 강호동 등이 있다.[67] 얼굴마담 겸 안주 서빙 담당.[68] 심지어 단편영화조차 15세 이상 관람가였다.[69] 의외로 연예계 기사에 이런 오보나 왜곡 보도들이 꽤 많다. 한 기자가 단편적으로 어설프게 취재를 해서 올리면 다른 기자들이 그대로 갖다 베끼는 경우가 많고, 대충 직업 종류로 실제 부를 추측할 수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강동원처럼 대기업 부사장이라는 편견으로 실제보다 부유한 정도나 시간을 크게 보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부를 줄여서 보도했다 후에 시간이 지나 다시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직원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 사장이 부모라는 걸 취재해 평범한 가정인 듯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엄청난 부를 가진 경우도 있다.[70] 사원 아파트#[71]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지난 2005년 이종만을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계속해서 흠결 여부를 조사했고, 2009년 최종적으로 수록했다.[72] 1937년 7월 21일 "종로 3정목 대동광업회사 사장 이종만 씨는 19일 애국부인회 조선본부를 찾아가 황군위문품대로 금 1,000원을 기탁했다. 계원은 감격해 이를 취했다고 한다"[73] 1939년 7월 6일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장병들에게 보내는 위문대가 차츰 감소돼 가고 있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겨, 대동광주식회사 사장 이종만 씨와 전 회사원 일동이 현금 1000원을 지난달 28일 군 애국부에 헌금했다. 군 사령부는 이 뜻에 감격, 통조림 3,600개를 전선 제일선에 보냈다고 한다"[74]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이자 독립운동가 손정도의 딸로,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자 역시 독립운동가 손원일의 누나 손진실도 윤치호의 이복동생이자 윤치영의 사촌동생 윤치창과 결혼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