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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갓을 매는 데 사용하는 끈.2. 설명
갓을 끈없이 착용하면 바람에 날아가기 쉬운지라 머리에 고정하려면 갓끈은 필수였다. 갓끈은 장신구 역할도 겸했으며, 신분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갓끈을 사용했다.크게는 구슬로 만든 갓끈인 주영(珠纓)과 명주나 비단으로 만든 갓끈인 주영(紬纓), 견영(絹纓)이 있었다.
3. 종류
3.1. 주영(珠纓)
구슬로 만든 갓끈. 원 간섭기에 발립이 도입될 때부터 쓰였으며, 어떤 재료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명칭이 달라졌다.- 패영(貝纓)
호박, 산호, 청금석, 마노, 대모 같은 보석으로 만든 갓끈. 당상관 이상만 사용할 수 있었으나 산호로 만든 패영은 18세기에는 정3품 하계 이하 당하관이 사용하기도 했다.
- 죽영(竹纓)
대나무로 길게 만들고 사이사이 구슬을 넣어 만든 갓끈. 목영처럼 양반들이 사사로이[2] 사용하거나 신분이 낮은 계층이 사용했다. 구슬로는 호박을 넣기도 했으며, 대나무 재질이기에 바람이 잘 통하고 호박 구슬이 시원해 여름에 인기가 많았다.
3.1.1. 형태
- Y자형
구한말 부터 등장했으며, 현재는 U자형 갓끈 보다 널리 쓰이기도 한다.
3.2. 기타 갓끈
3.3. 구영자(鉤纓子)
| 철종의 어진에 묘사된 구영자(양전립과 주영 사이를 잇는 s자 고리) |
4. 오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는 시대불문하고 견영과 주영을 같이 찬 다음, 주영을 골반까지 늘어뜨린 경우가 자주 보인다.하지만 견영과 주영을 같이 차게 된 건 17세기 중후반 현종이 온양행궁에 행차할 때 갓끈이 끊어질까 우려해서 같이 쓰게 된 것인지라 현종 이전에 견영과 주영을 같이 하는 것은 고증오류라고 볼 수 있다.[3]
또, 숙종대에 이르러 챙이 달린 갓(笠)은 쓰는 것보단 얹는 형태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그 전의 견영과 주영을 같이 쓰는 모습은 주영을 치렁치렁 늘어뜨리는 형태일 가능성이 있지만, 영조대의 장군인 이창운의 초상 군복본을 보면 주영이 얼굴에 딱 맞는 사이즈로 조정되어 있기에 갓이 얹는 형태로 고착화되는 영조 치세 부턴 견영과 주영을 같이 쓸 때 주영을 치렁치렁 늘어뜨리는 것은 확실히 고증 오류라고 볼 수 있다.
5. 역사
끈으로 된 주영(紬纓)은 고려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이어 금은으로 만든 술그릇(金銀酒器)과 비단(羅緞), 모시베(紵布), 수달피(獺皮), 갓과 띠(笠帶) 등의 물건을 보내 장수인 아모간(阿母侃) 등에게도 모두 주었다.
고려사
고려사
띠 대를 쓴 것을 보아, 다회로 만든 주영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견영은 대우의 너비가 줄어든 숙종 때부터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 왼쪽부터 김시습 영정에 묘사된 갓끈, 이현보 초상에 묘사된 갓끈, 신윤복의 청금상련에서 묘사된 18세기의 갓끈. | ||
주영(珠纓)은 15세기 인물인 김시습 초상화에 나타난 것처럼 목 바로 아래까지만 내려왔는데, 16세기 문신인 이현보의 초상에선 가슴께까지 내려왔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갓의 모습으로 정착된 조선 후기 신윤복의 풍속화인 청금상련에 나온 것처럼 허리아래 고간까지 내려오게 된다.
"우리나라 초기의 풍속은 상고할 수 없으나 다만 김한훤당 은 연자영 [5] 을 사용하였다.연자란 못에서 나고 못은 속명으로 방축 이라고 하는 까닭에 이 연자영을 방축영 이라고도 한다.이것이 차츰 변하여 호박과 대모 따위로 만든 것 일지라도 이 연자영이라 이름만은 고치지 않았다.이로 본다면 이 연자영이 있기 전에는 이보다 더 나은 딴 갓끈이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옛날 검소한 풍속은 이와 같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익의 성호사설 중 [6] 출처(39.p 참고)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익의 성호사설 중 [6] 출처(39.p 참고)
6. 착용법
- 외고름 매기
주로 견영을 매는 방법. 가장 널리 이용된 방법이다.
- 견영과 주영 함께 매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7세기 중후반 현종이 온양행궁 행차당시 갓이 끊어질까 봐 견영과 주영을 함께 찬 것에서 시작되었다.
| U자형 갓끈을 휘둘러 맨 모습 | Y자형 갓끈을 휘둘러 맨 모습[7] |
- 갓 한쪽에 두 번 휘둘러 매기
주영(珠纓)을 갓 한쪽면에 두 번 휘둘러서 매는 방법. 18세기 초반 임하필기에 따르면 조현명이 갓 오른쪽에 주영을 휘둘러 맸는데, 그걸 박문수가 보고 따라 하면서 유행이 번졌다고 한다. 조선 후기 회화자료에서 주영이 나왔다 하면 무조건적으로 나오는 방법으로, 구한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8]
- 그냥 쓰기
18세기 중반까지의 쓰는 갓과 앞서 설명한 Y자 주영에 해당되는 방법
- 동심결 매기
일부 예관을 쓸 때 격식을 차려 갓끈을 매는 방법.[9]
- 뒤통수에서 한 번 더 매기
활 쏘기 등 활동적인 활동을 할 때, 견영이 걸리적 거리지 않게 매는 방법. 조선 후기 풍속화 등에서 확인된다.
- 옆에서 한 번 더 매기
주로 낮은 계층이 활동적인 활동을 할 때 견영을 맬 때 쓰는 방법. 이유는 갓끈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아서 뒤에서 묶는 게 불가능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7. 립(笠)외에도 갓끈을 쓴 관(冠)
갓은 흑립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기에 다른 갓들도 갓끈을 맬 수는 있었다.유건
면류관
사모
조건
귀건
자건
원유관
정자관
사방관
동파관
장보관
연건
연엽관
고후관
치포관
고깔
전건
조우관
금관
[1] 불투명한 호박석[2] 죽영은 시골에 있을 때나 쓰는 것이지 도시에 있을 때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3] 사실 17세기 후반 이후에도 이 방법은 널리 쓰이지 못한다. 애초에 오랜 행차 때문에 견영 하나만 매면 땀에 절어 끊어질까 걱정해서 쓴 건데 일상 속에선 더욱 쓸 필요가 없었고, 행사가 있을 때가 아니라면 널리 쓰이지 못했다.[4] 갓끈 굉,갓끈 영[5] 연꽃의 씨인 연자를 주영에 꿰어 만든 주영(珠纓)[6] 이후에는 호박․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도 모양이 연자와 유사하면 연자영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이다.[7]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본래 Y자형 갓끈은 그대로 아래로 늘어트리는 게 정석. 참고로 위 사진의 주영은 애초에 저런 형태로 쓸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8] 매는 방법은 의외로 쉬운데, 한쪽 구영자에다가 주영을 두 번 더 걸면 된다.[9] 흔히 알고 있는 리본 모양과 같이 보이지만, 전혀 다르게 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