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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01 17:11:54

각반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9fa0c23b53747ebe6622f4d474d92913.jpg 파일:승마부츠2.jpg
군용 각반과 승마용 각반

1. 개요2. 역사3. 장점4. 단점5. 대중매체6. 관련 문서

1. 개요

/ Gaiters[1] / Puttee[2] / Spats

발목에 착용하는 보호대의 일종. 신발 안으로 돌이나 물, 눈, 진흙 등의 이물질 유입을 차단하고 미약하나마 보온성까지 챙길 수 있는 등 많은 장점으로 인해 세계를 막론하고, 특히 군사적으로 보병에겐 거의 필수적인 지급품이었다.

2. 역사

신발은 의외로 제조하기 힘들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물건이었으며, 특히 부츠처럼 발목 부위까지 보호하는 장화 계통의 신발은 제조비용이 높고 제조시간도 오래 걸려서 대량생산과 보급이 이루어진 시기는 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가능해진 물건이다.

따라서 활동, 작업, 전투시 발목을 보호하고 신발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할 필요가 높아졌기에 세계 각지에서 각각의 전통 의상에 맞는 각반 형태의 보호대가 만들어졌다. 일본에는 오쓰각반(大津脚絆), 에도각반(江戸脚絆), 츠츠케이각반(筒型脚絆)등 다양한 각반이 존재했고, 남자용 한복에도 대님 위에 덧차는, 행전이라는 각반이 있었을 정도다.

근대적인 각반의 경우에는 1700년대부터 유럽의 군복과 민간복에서 널리 사용된 보호대로부터 시작된다. 원래부터 갑옷이 보호해야 할 중요한 부위에 정강이와 종아리 및 발목이 포함되므로 해당 부위를 보호하는 보호대는 항시 존재했으며, 그 중에서도 정강이와 종아리를 보호하는 그리브(Greave)와 신발 부위를 보호하는 사바톤(Sabaton)이 갑옷이 쇠퇴하면서 일반 옷감 재질의 보호대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구체적으로는 당대 복장에서 자주 사용되던 모직제 스타킹 위에 보호용 다리 덮개용으로 길쭉한 리넨 재질의 각반을 채용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반은 1770년대부터 야전에서의 편의성을 위해서 종아리 중간 길이 정도로 짧아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19세기에는 승마용 각반이 따로 개발되었다. 각반의 재질은 일반적으로는 캔버스 천으로 만들었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가죽으로 제작했으며 천 재질의 각반에 가죽 외부 보호대를 추가한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군대에서 캔버스 천 재질의 각반을 대량으로 채용했기에 점차적으로 군용 장비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20세기 초까지는 군인의 육상용 전투복에도 각반을 착용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질척이는 참호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아이템이었다. 현대적인 전투화제2차 세계 대전 때 개발되기 전에는 육상 전투를 하는 장교기병은 긴 가죽장화를 신어 발목을 보호하고 바짓단을 정리했지만, 일반적인 병사수병들은 목이 짧은 단화를 신고 각반을 발목에 둘러 바짓단을 정리하고 발목을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군화는 지금의 고급 구두처럼 가죽 중창에 가죽 밑창을 꿰메어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힘들었다. 그래서 적당한 단화에 대량생산된 각반 한 켤래를 지급하는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정 급할땐 신발의 종류에 관계없이 각반만 착용해도 전투화 대용으로 써먹을 수 있기도 했다.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가장 익숙한 것은 일본군이 썼던 붕대형 각반이다.#1

그리고 지역 특성상 습지나 진창을 걸어야 할 일이 많으면 장화를 모든 군인에게 보급하는 것을 선호하는 국가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독일 국방군이나 슈츠슈타펠 등은 전쟁 초 물자가 넉넉할 때는 병사들도 육상용 전투화로 장화를 지급하다, 전쟁 중후반에 물자 부족 현상이 심화되며 천 재질의 각반과 가죽 단화로 갈아탔다. 그리고 소련군은 라스푸티차 속을 걸어야 했으므로 병사에게도 장화를 지급했다. 그러나 역시 보급의 문제로 붕대형 각반과 단화가 혼용되는 식으로 장화와 병행해서 지급됐다.

이런 현상과는 정반대로 미국 육군은 2차대전 때 기병이나 공수부대 등을 제외하면 장성부터 사병까지 훈련/전투시 M1938 각반을 착용했다. 후일 각반이 전투화와 일체화된 형태로 된 M1943 전투화의 도입으로 전쟁 후반엔 모든 장병들이 갈아찼다. 동시기 유럽의 군대들이 최소한 장교들은 장화를 신었으며, 전쟁이 진행되면서 물자부족으로 이쪽도 각반착용이 대세가 되지만, 여력이 있는 고위장성, 장교들은 종전까지 장화를 신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러한 평준화는 혁명적일 수도 있다.[3] 세계 역사속에서 수백 년 넘게 가죽 장화는 세계 열강국 육군의 장교들이라면 공히 착용했고, 일종의 권위라는 의미를 내뿜고 있었다. 병사들은 역시 역사 속에서 수백 년 넘게 계속 각반형태로 2차대전까지 신었다. 2차대전 이후 각국에서 재료나 품질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투화 형태의 군화를 장성과 병사에게 동일하게 지급하게 된 것은 군 역사에서 중대한 인식의 변화라 할 수 있다. 미군은 1944년 네덜란드 탈환전 즈음에는 전투복 각반을 폐지했지만, 미국 해군 의장대용 흰 각반 등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0년대에 일제가 남성들에게 국방색의 국민복과 각반을 착용하도록 강요했다. 독립 후에도 고등학교, 대학교 교련 시간에 전투화 대신 교련복 바지에 각반을 착용하게 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에는 대한민국 해군 의장대군악대의 의장병, 군악병 행사복에 쓰는 흰 각반 정도만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주로 미적인 용도의 각반은 spats라고 불리며 보호가 주목적인 gaiters와 구분된다.

의외로 영국군은 현대식 전투화가 보급된 지 한참 지난 1980년대까지 각반을 착용했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사진을 보면 목이 긴 전투화 위에 추가로 2차 대전 시기에 생산된 붕대형 각반을 찬 영국군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다만 정식으로 규정된 건 아니고 일부 병사들이 여러 이유로 개별적으로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투입되었던 SAS 대원들도 보온용 각반을 전투화 위에 착용했다고 한다.

요즘 군대에선 일부 의장대나 군악대의 행사용 피복 외엔 거의 안 쓰이지만 공사장 등에선 많이 쓰인다. 바닥에 요철이 많은 공사장에선 바짓단이 뾰족한 부분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부상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안전화에 각반을 하여 바짓단을 정리하게 한다. 요즘은 공사장에서 쓰는 각반에 반사테이프를 붙여 놓은 것도 존재한다. 이 각반은 주로 야간에 도로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안전을 위해서 착용하며 군대에서도 행군할 때 일부 인원에 한해 전투화 위에 두르기도 한다. 또한 등산가들이 겨울에 신발이나 바지 안에 눈이나 빗물이 안 들어가게 할 겸 방한도 하려고 입는 스패츠도 각반의 일종이다. 그리고 야구 선수의 경우에도 스타킹을 신지 않았다면 각반을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스키복, 보드복 바짓단 안쪽에는 부츠를 덮천으로 된 게이터/스패츠가 붙어 있다. 끝부분에 고무줄이 붙어 있어서. 부츠를 덮으면 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뭘 모르는 초보자들이 스키화나 보드화 안쪽에 스패츠를 넣고 신는 잘못을 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물집이 생기거나 까지게 되므로 반드시 부츠 위를 덮도록 신어야 한다. 겨을용 등산복에도 스패츠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실은 스키복은 등산복의 일종이기도 하며, 스키장 밖 다져지지 않은 눈에서 타는 일이 많은 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는 그 구분이 흐리다.

그리고 성공회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 주교나 부주교나 대성당의 주임 사제들의 일상용 성직복의 복장으로 각반이 채용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교회의 임무에 맞추어서 여러 관구 지역으로 승마를 해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해서 각반을 착용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으로 이동시에 승마를 할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각반 착용이 권위의 상징으로 바뀌면서 장기간 착용이 이루어진 것이다.#2

3. 장점

각반이 오랜기간 애용된 사유가 있다.

4. 단점

전투화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각반이 야전용으로는 결국 퇴출된 사유가 있다.

5. 대중매체

6. 관련 문서




[1] 보통 복수로 쓴다. shoes처럼[2] 감은 각반 혹은 가죽 각반을 의미한다.[3] 다만 패튼은 항상 기병용 장화와 철모를 쓰고 다녔다. 패튼 뿐 아니라 2차대전 장군들인 몽고메리, 맥아더 같이 한성깔 하는 양반들은 군복을 자기 마음대로 입고 다니는걸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