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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여성의 예복용 치마. 치마는 예복용과 평상용이 있는데, 스란치마는 적의(翟衣)나 원삼(圓衫), 당의(唐衣) 등의 예복 차림을 할 때 같이 입는 예복용 치마이다.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민가에서도 혼례를 치를 때 신부가 착용하였다.
2. 유형과 형태
스란치마는 평상용 치마보다 치마의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치마의 무릎 부분이나 밑단에 스란단을 배치한다. 스란단은 무늬를 금사(金絲)로 짜 넣거나, 금박(金箔)을 직접 찍거나 금박 찍은 스란을 덧대는 형태로 장식한다.스란치마는 배치된 스란단의 수에 따라 1단과 2단으로 나타나며, 스란단의 위치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스란단이 1단 있는 경우, 16세기에는 치마 중간인 무릎 부분에 위치하지만, 조선 말기로 가면서 치마 하단으로 내려간다.
출토 유물을 보면 모란, 연꽃, 포도, 동자 등 다양한 문양이 나타난다.
혼례를 할 때 입기도 했다.
2.1. 스란치마
덕혜옹주 별문생고사 부금 스란치마[1] |
스란단이 한 줄만 있는 경우에는 스란치마라고 한다.
2.2. 끌리는 스란치마
원주원씨 스란치마
은진송씨 스란치마
2.3. 쌍스란치마
청주 한씨 스란치마[2] |
위의 출토 복식은 중종과 문정왕후의 딸인 의혜공주의 손녀[3]가 광주 이씨 가문의 이집일(李執一: 1574~1613)에게 시집 갔다가 일찍 죽으면서 함께 묻힌 의복이다. 치마 중간 부위에 28cm 너비로 동자포도무늬를 금실로 짠 스란단을 두 줄로 댄 것을 볼 수 있다.[4] 이렇게 스란단이 두 줄일 때는 '쌍스란치마'라고 한다.
전교하기를, "남색 비단 동자(童子) 포도(葡萄) 쌍슬란(雙膝襴)과 연변(蓮邊)에 이금(泥金)으로 그린 치맛감 9폭을 대궐로 들이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0년 5월 23일
《연산군일기》 연산군 10년 5월 23일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이 말한 '쌍슬란(雙膝襴)'이 바로 쌍스란치마이다.
2.4. 대란치마
영친왕비 별문단 부금 남대란치마[5] |
조선 후기로 가면, 치마의 무릎 부분과 하단에 스란단이 1단씩 배치되는 '대란치마'가 등장한다.
즉, 17세기 이전에는 2단의 스란단이 치마의 무릎 부분에 있는 형태의 '쌍스란치마'였다가 17세기 이후에는 스란단이 각각 치마의 무릎 부분과 하단에 놓인 형태의 '대란치마'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