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top: 7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82647 3%, #31b675 3%, #31b675 6%, #89236a 6%, #89236a 9%, #f9d537 9%, #f9d537 12%, #db4e9c 12%, #db4e9c 15%, #026892 15%, #026892 18%, #e7e6d2 18%, #e7e6d2 21%, #b82647 21%, #b82647 24%, #f8e77f 24%, #f8e77f 76%, #b82647 76%, #b82647 79%, #e7e6d2 79%, #e7e6d2 82%, #026892 82%, #026892 85%, #db4e9c 85%, #db4e9c 88%, #f9d537 88%, #f9d537 91%, #89236a 91%, #89236a 94%, #31b675 94%, #31b675 97%, #b82647 97%)" 한복의 종류{{{#!wiki style="margin-top: 7px; padding-top: 5px; border-top: solid 1px; border-color: #683235; color:#683235; min-height: calc(1.5em +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tablewidth=100%> 남녀공용 | |||||||
상의 | 저고리 · 덧저고리 · 배냇저고리 · 색동저고리 · 삼 · 적삼 · 마고자 | |||||||
하의 | 바지 | |||||||
겉옷 | 반비 · 배자 · 장옷 | |||||||
신발 | 목화 · 꽃신 · 갖신 · 짚신 · 미투리 · 나막신 | |||||||
기타 | 무복 · 버선 · 상복 | |||||||
남성용 | ||||||||
평복 | 상의 | 사규삼 | ||||||
하의 | 잠방이 | |||||||
겉옷 | 포 · 백저포 · 도포 · 두루마기 · 창의 · 대창의 · 학창의 · 소창의 · 심의 · 중치막 · 쾌자 · 답호 | |||||||
예복 및 관복 | 단령 · 곤룡포 · 곤복 · 조복 | |||||||
융복 | 구군복 · 철릭 | |||||||
모자 | 갈모 · 감투 · 갓(흑립 · 주립 · 백립 · 초립 · 전립) · 금관 · 망건 · 면류관 · 문라건 · 복건 · 사모 · 삿갓 · 원유관 · 익선관 · 정자관 · 조우관 · 탕건 · 패랭이 · 휘항 | |||||||
전통장식 | 동곳 · 흉배 | |||||||
여성용 | ||||||||
평복 | 하의 | 치마 | ||||||
겉옷 | 쓰개치마 · 머리처네 | |||||||
속옷 | 가슴가리개 | |||||||
예복 | 상의 | 당의 · 견마기 | ||||||
하의 | 스란치마 · 대란치마 | |||||||
겉옷 | 노의 · 원삼 · 활옷 | |||||||
모자 | 틀:전통여성모자 | |||||||
전통장식 | 가체 · 노리개 · 떨잠 · 비녀 | }}}}}}}}}}}} |
영친왕 사규삼[1] |
1. 개요
조선의 남자 아이가 입는 평상복. 관례나 돌 등의 행사에서는 예복으로도 입었다.[2] 양옆과 뒷중심을 터서 네 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규삼은 옷자락이 네폭으로 갈라져 있는 데서 나온 명칭이다.현대에는 부모들이 주로 돌잔치 스냅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 입히기 때문에 유아용 한복으로 접할 수 있다.
2. 사규삼의 유래와 형태
사규삼은 결과복(缺骻服)이라고도 하며 남색의 견(絹) 또는 주(紬)로 만든다. 깃은 맞대어 있고 소매는 둥글며, 갓을 트고 뒤를 갈라놓았다. 금(錦)으로 깃 및 소매 끝과, 옷자락 양 갓과 밑에 선(襈)을 둘러 도련 양쪽과 끝을 가지런히 한다. 동자의 상복이지만, 세속의 중치막과 같아 대용할 만하다.
《사례편람》
《사례편람》
조선 후기에 편찬된 《사례편람》에서 사규삼을 결과복(缺骻服)이라고 썼다. 결과복이란 원래 중국에서 싸움터에서 입는 옷으로 일종의 융복(戎服)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남자 아이의 옷이 된 것이다.
영친왕이 10세 때 입은 사규삼의 앞면 소맷부리에는 수부귀(壽富貴), 다남자(多男子)라고 금박이 찍혀 있다. 이는 오래 살며(壽), 부유하고(富), 아들이 많기를(多男子) 기원하는 뜻이다.[3] 이처럼 어린 아이의 옷에 최대한 좋은 의미를 담아서 만들었다.
3. 여담
[1] 영친왕의 나이 10세 때 착용한 옷.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2] 평상복으로 입을 때는 복건과 같이 착용하고, 관례 때는 쌍계머리(雙紒: 쌍 상투)를 하고 착용한다.[3] 《장자(莊子)》의 〈천지(天地)〉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고대의 성군인 요 임금이 화(華) 지역을 방문했는데, 그 지역의 봉인(封人: 변경을 지키던 벼슬아치)이 요 임금에게 축복한 말이다.[4] 일성록, 정조 10년 병오(1786) 5월 12일(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