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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23:14:59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준결승 1경기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픽토그램.svg
<colbgcolor=#C53434,#222222>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지역 예선 2007 아메리카 예선 | 2007 오세아니아 예선 | 2007 유럽선수권 |
2007 아시아선수권 | 2007 아프리카 예선 | 2008 최종 예선
예선 리그 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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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결정전


1. 개요2. 경기 전
2.1. 선발 포메이션
3. 경기 내용
3.1. 1회초~8회초3.2. 8회말: 이승엽의 부활3.3. 9회초: 윤석민의 깔끔한 마무리
4. 일본의 반응5. 총평6. 경기 후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

MBC 생중계 하이라이트
SBS 풀버전
일본 방송 버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4강 1경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문서. 대망의 한일전으로 이승엽의 극적인 홈런으로 유명한 경기다.

2. 경기 전

일본은 미국과의 져주기 게임을 통해 4강 상대로 쿠바보다는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한국을 선택했다. 이때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경기 시작 전 일본 대표팀 감독 호시노 센이치는 인터뷰를 통해 "이승엽?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라든지, "이대호도 약점은 있다. 투수들이 실투만 하지 않으면 된다"[1], "김광현은 슬라이더만 참으면 된다. 어찌됐든 왼손 투수 김광현은 두 번 연속인데 지난번처럼 호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라고 한국 대표팀을 폄하하는 인터뷰를 했다.

한국은 예선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주전 포수 진갑용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강민호가 대신 마스크를 썼다. 강민호는 훗날 인터뷰에서 "덕아웃에서 조계현 코치님이 계속 '민호야 침착하게 천천히 가자'라고 지시를 하셨다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라며 그날의 긴장감이 얼마나 컸는지 밝혔다.

한국의 선발 투수는 예선에서 호투한 김광현. 김광현은 이전 시즌인 2007년에 3승 7패에 평균자책점 3.62를 기록했으나, 2007년 한국시리즈를 기점으로 각성하며 2008년에는 이미 KBO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 한 명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에 맞서는 일본의 선발 투수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좌완 에이스 스기우치 토시야. 전 시즌에 15승 6패에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한 스기우치는 국제 대회에서 한국 타자들이 영 힘을 못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2][3]

2.1. 선발 포메이션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 2.svg

LF

CF

RF

SS

2B

3B

SP

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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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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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

3. 경기 내용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픽토그램.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Games of the XXIX Olympiad, Semi 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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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전, 8.22, 10:30, 베이징 우커쑹 스포츠센터 메인구장
중계방송사: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김현태, 이용철 / 파일:MBC 로고(2005-2011).svg 한광섭, 허구연 / 파일:SBS 로고.svg 배기완, 김상훈, 김성근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파일:WBSC 일본 국기.png 일본 스기우치 토시야 1 0 1 0 0 0 0 0 0 2 6 2
파일:WBSC 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김광현 0 0 0 1 0 0 1 4 X 6 10 1

3.1. 1회초~8회초

김광현은 1회에 안타와 수비 실책으로 맞은 1사 1, 3루 상황에서 땅볼을 유도하며 위기를 잘 넘기는가 했으나, 2루 베이스 커버를 두고 유격수와 2루수[4]가 겹치는 상황이 벌어진 데다가 그 와중에 던진 공도 방향이 좋지 않아 병살 플레이에 실패하면서 1실점을 했다. 3회에도 니시오카 츠요시를 출루시킨 뒤 폭투와 안타 등으로 추가 실점을 했고, 당시 아직 경험이 부족했던 김광현과 강민호[5]는 많이 긴장한 듯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몸이 확실히 풀렸는지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김광현은 혼자서 8이닝이나 소화하며 예상했던 것 이상의 호투를 펼쳐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강민호 역시 엄청나게 긴장해서인지 초반에는 쉬운 포구를 놓치거나 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공격에서도 3연속 폭삼을 저질러 구멍이 되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예상대로 스기우치 토시야의 페이스에 말리다가 4회 말에 G.G.사토의 실책[6]을 동반한 이용규의 2루타와 김현수의 연속 안타로 무사 1, 3루의 기회를 잡았으나, 이승엽이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한 점 만회에 그쳤다. 이때까지 이승엽은 정말 미친 듯이 까였으며, 심지어는 관중석에서도 한국 관중들의 야유가 나왔을 정도였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예상 외로 스기우치를 4회를 끝으로 빨리 내리고[7] 5회에는 카와카미 켄신, 6회에는 나루세 요시히사 등을 연이어 마운드에 올렸고, 7회말에는 철벽 마무리 후지카와 큐지까지 조기에 투입[8]하면서 승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7회말 1사에서 이대호가 후지카와로부터 볼넷을 얻어냈고[9], 김경문 감독은 바로 대주자 정근우를 기용했고 이어 고영민의 안타로 1사 1, 2루가 되었다. 이후 강민호가 삼진을 당했으나 대타 이진영의 적시타 때 정근우가 포수[10]의 블로킹을 피해 왼발이 살짝 홈플레이트를 스치는, 최고 수준의 홈 슬라이딩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진영은 당시 장염으로 인해 누워있다가 나갔다고 하는데[11], 그런데도 동점타를 쳐낸 걸 보면 역시 일본 킬러다웠다.[12] 우익수 이나바 아츠노리의 수비 위치가 앞으로 당겨져 있었고, 송구도 정확했기 때문에 김경문 감독의 대주자 기용과 정근우의 명품 슬라이딩 중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홈 승부를 걸지 못하거나 주자가 객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참고로 이때 이진영이 쳐낸 동점 적시타는 후지카와의 국제 대회 통산 유일한 자책점이다.[13] 다른 나라에게는 재앙과도 같던 후지카와였지만 한국 타자들에게는 쉽게 공략당하며 다시 한 번 불을 지르고 말았다.[14]

추가로 한국이 후지카와를 공략해서 동점을 만든 이후부터 일본의 불펜 운영이 어긋나기 시작했는데, 필승조이자 마무리인 후지카와를 조기에 투입했음에도 동점을 허용했기 때문에 다음에 낼 투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15] 일단 후지카와는 이종욱을 유격수 땅볼로 아웃시키며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7회말을 마무리했다.

8회초는 김광현이 아라이 타카히로에게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실점 없이 8회초까지 막아냈다. 그렇게 스코어는 2:2 동점인 채 한국의 공격 차례이자 약속의 8회에 접어든다.

3.2. 8회말: 이승엽의 부활


일본은 이용규-김현수-이승엽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8회말 공격을 막기 위해 좌타자를 상대로 저승사자급인 좌완 이와세 히토키를 등판시켰다.[16] 선두 타자 이용규는 3유간을 날카롭게 뚫는 안타로 출루했고 김현수는 삼진 아웃되었다. 그리고 1사 1루 상황에서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이미 팬들의 기대는 싸늘히 식은 상황이었는데, 당시 이승엽은 베이징 올림픽 성적 23타수 3안타로 극도의 부진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이날 경기에서도 무사 1, 3루 찬스에서 병살타를 치는 등 까임 지분을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병살을 포함 당일 경기에 이전 세 타석에서 삼진 - 병살 - 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야구팬들의 기대치는 바닥을 찍었다. 해당 경기 기록까지 포함 이 타석 이전 26타수 3안타였다. 타율 0.115 타자에게 장타는 커녕 단타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셈. 이승엽을 끊임없이 기용하는 김경문 감독 외에는 아무도 이승엽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17][18] 일본의 배터리는 타격감이 좋지 않은 이승엽을 상대로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고집하면서 1볼 2스트라이크까지 몰아넣었고 허를 찌르려는 듯 몸쪽 승부를 걸었다. 그런데...
김현태: 자, 높게 떴습니다. 자, 우측에,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이용철: 넘어갑니다!!!
KBS 중계 멘트 중
한광섭: 아, 우측에 떴습니다.
허구연: 아, 큽니다!
한광섭: 자, 우익수. 자, 뒤로 뒤로 갑니다 뒤로 뒤로 뒤로...
허구연: 커요
한광섭: 이나바... 이나바...
허구연: 커요!! 커여어어어!!!!!!!!!!!
한광섭: 커요!! 어!! 넘어갔습니다!
허구연: 아-앍!! 느므가쓰요!!!
한광섭: 이승엽~!! 두 점짜리 홈런
허구연: 네에~!
한광섭: 이승엽 결국 해냅니다!
MBC 중계 멘트 중
배기완: 아~ 높이 뜨는데요?
김성근: 아~ 갔다.
배기완(김상훈): 으어어어?? (어?)어어어어!!!
김성근: 갔어.
배기완: 으어어어어어!!!!
김성근: 갔어.
배기완(김상훈): 아아아아↘↗아아아아(뜨아아앍!!!) 홈런입니다!!!!
(이후 배기완과 김상훈의 탄성과 웃음)
배기완: 이승엽입니다~!! 투런!!! 됐어요~!!
SBS 중계 멘트 중
MBC 한광섭 캐스터는 우측에 떴다면서 처음에는 잡힐 것처럼 말했지만[19][20] 허구연 해설은 크다고 외치다가 우익수 이나바 아츠노리가 타구를 포기하자 그제서야 확신에 찬 함성을 질렀다. 이어서 허구연 해설은 "지금 타구는 독도를 넘긴 것 같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한편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은 후 일본 측 중계를 보면 무려 11초 동안 말이 없었다.[21] 당시 일본에서는 이 해 이승엽이 극도의 부진을 보이자 그야말로 온갖 비난을 했었는데 그 와중에도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하라 다쓰노리만은 분명히 한국이 해낸다면 이승엽이 일 낼 거라고 예언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22]

끝까지 이승엽을 기용했던 김경문 감독의 승부수는 이 홈런 한 방으로 보답을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23타수 3안타[23]로 부진하던 이승엽이 좌타자 킬러이자 NPB에서 단 한 번도 안타를 때려내지 못한 이와세[24]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치면서 8회의 기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김경문 감독은 "감독이 욕을 안 먹으려고 하면 경기를 망친다. 승엽이 너 못 치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이런 심정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승엽은 경기 종료 후 기자가 소감을 묻자 눈물을 잠시 보이다가 "선배로서 후배들 보기에 너무 미안했는데 마음의 빚을 갚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25]

홈런의 충격과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김동주가 투수 정면으로 강한 안타를 때려내면서 이와세는 결국 강판되고 와쿠이 히데아키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정근우가 중견수 아오키 노리치카의 머리를 넘기는 큰 타구를 쳤으나, 아오키가 담장까지 따라가 점프해서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면서 아쉽게 물러났다.

그 뒤 타석에 들어선 고영민은 풀스윙으로 좌측으로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리고 빠던을 시전했지만, 생각만큼 힘이 실리지 못하고 펜스 앞에서 무난히 잡히는 구도가[26]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좌익수 G.G.사토공을 떨어뜨리는 어이없는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1루에 있던 김동주는 홈인했고, 이어 3타수 3삼진으로 고생하던 강민호마저 중전 2루타를 때려내 고영민을 불러들이며 점수 차이를 4점으로 벌렸다. 사토의 실책 때부터 이미 일본 중계 방송은 그야말로 멘붕의 집합체로, 이 영상의 6분 17초부터 보면 나온다.[27] 이때 허구연 해설은 "G.G.사또 고마워요. 아~ 지금은 글러브에 들어갔던 공이 나왔어요. 아~고마워요 사또"라고 말하며 아마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도중 본인이 남긴 어록 중 가장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이후 허구연은 인터뷰에서 사실은 아리가또라고 하고 싶었다고 농담을 했다. 그리고 WBC에서 아리가또 아오키를 시전했다[28]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의 필승조인 후지카와 큐지와 이와세 히토키를 무너뜨린 것이 주효했다. 만약 두 선수를 상대로 역전까지 가지 못했다면 뒤에는 한국 킬러인 우에하라 고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29]

3.3. 9회초: 윤석민의 깔끔한 마무리

9회초에서는 선발 김광현에 이어 마무리 윤석민이 등판해 3자범퇴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투수를 고작 두 명만 쓴 데다가, 선발 김광현이 무려 8이닝을 소화하면서 결승전을 대비해 다른 투수들을 총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그리고 결승전에서도 류현진이 8과 3분의 1이닝을 던져서 2명으로 끝냈다.

참고로 윤석민이 회상한 바에 따르면 이때 마무리 투수로서 등판을 위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는데, 올림픽 4강, 그것도 한일전이라는 심적 압박감이 너무 심해 불펜 피칭 때 공을 패대기치고 말도 더듬는 등 엄청 떨고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불펜에서 공을 받아보던 진갑용이 "얘는 도저히 안 되겠는데요."라며 코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을 정도.[30] 다행히 마운드에 올라가서는 긴장감이 사그라들며 제 공을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4. 일본의 반응

일본은 순리를 어기고 져주기 게임을 한 것에 대한 승부의 여신의 철퇴를 맞고 말았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당시 시범종목이었던 야구에서 우승한 이후 금메달을 따 본 적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한 수 아래로 여기던 한국을 잡고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을 따고자 했으나, 이 패배로 결국 좌절되었다. 거기다가 프로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수치로 다가왔다. 후에 서술할 대목이지만 프로 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2000 시드니 대회 이후 일본이 올린 최고의 성적은 2004 아테네 대회에서의 동메달이었다.[31] 더군다나 이 동메달 역시 한국과 미국 둘 다 참가하지 못한 대회에서 얻은 성적이라는 점에서 일본에게는 원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최대의 강적으로 보인 이 나오지 못한 대회에서, 거기다가 프로 선수들을 총출동시키면서까지 금메달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호주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동메달에 그쳤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32]

비단 올림픽뿐만 아니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든지, WBSC 프리미어 12에서도 프로 선수들 간의 대결에서 한국이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의 자존심을 긁어놓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그것도 자국 프로 리그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총동원한 경기에서 한국은 이기기도 많이 이겼지만, 졌던 경기에서도 허무하게 진 경기는 별로 많지 않다. 정말 진을 잔뜩 빼게 한 경기를 얼마나 치렀는지 모른다. 아시아 야구의 역사가 길고, 프로 야구의 역사도 기성세대 격인 일본에게 한국의 프로 출신 선수들이 이런 경기력을 지녔다는 점에 대해 일본은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4.1. 답이 없는 호시노 센이치의 경기 운영

이날 경기는 호시노 센이치의 막장 운영이 일본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현지에서는 특집 방송까지 편성하여 거의 그것이 알고싶다 급으로 깠다. 이 경기에서 호시노가 저지른 삽질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어쨌든 이 준결승전의 패배 이후 일본에서는 호시노 센이치, 이와세 히토키, G.G.사토삼대 역적으로 까댔으며 재일 드립도 성행했으나, 이후 한국도 2023 WBC한일전에서 이강철다양한 실책들로 인해 완패하면서 상황이 180도 반대로 바뀌었다.

5. 총평

한국이 힘으로 일본 야구를 눌러버렸다

경기 자체만 놓고 본다면 명백하게 우리나라 선수들이 힘으로 일본을 압도한 경기이다.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일본이 2루타와 3루타 홈런이 각각 2개 1개 1개로 0개 0개 1개인 한국보다 많았다. 하지만 한국은 몇 없는 찬스[36]를 잘 살렸고, 9회 아베무라타 등의 실책으로 자멸한 일본을 상대로 부족한 장타 갯수를 상쇄하여 경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37][38][39][40]

하지만 준결승 경기는 달랐다. 조별 예선과는 달리 김광현에게 꽁꽁 묶여 일본은 경기 내내 장타가 없었다.[41] 일본의 주된 득점 루트는 발빠른 타자[42]의 출루 이후 희생 번트로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보낸 뒤, 단타로 발빠른 주자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즉, 장타로 득점을 했던 조별 예선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실제 예선 한국전에서 홈런과 3루타를 각 한 개씩 기록한 아라이가 침묵하자 일본의 장타는 실종됐다.[43][44]

반대로 한국은 이승엽김동주, 이대호 등 라인업에서 장타능력이 있는 무게감이 있는 선수들이 많이 포진 되어 일본 투수들에게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45] 물론 당시 이승엽의 컨디션이 별로였다고는 하지만, 8회 홈런에서 볼 수 있듯이 부진한 와중에도 언제든지 중장거리 이상을 날릴 수 있는 파워와 테크닉을 보유한 선수가 이승엽이다. 부담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46][47][48][49][50] 그리고 일본도 단기전에서 장타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대호를 철저히 견제하여 3볼넷으로 출루시킨 것이다.[51]
결론적으로, 한국은 이승엽의 홈런과 결정적인 강민호의 2루타 등 경기 후반에서 일본 최고 투수들을 상대로 장타를 작렬시켰다. 바뀐 투수들[52]에게 각각 결승점과 쐐기점을 얻어냈다. 실제로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최고의 투수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후지카와 큐지카와카미 겐신을 이미 8회 이전에 소모하여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던 이와세 히토키와쿠이 히데아키를 등판시킨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와세의 베이징에서 컨디션이 별로였다고는 하나, NPB에서 최고의 마무리였고 이진영이 동점타를 뽑아낸 상대 투수 후지카와 큐지 역시 당시 최고의 투수 중 한명이었다.[53]우리 타자들은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의 중간 및 마무리 투수들을 모조리 제압하며 장타로 숨통을 끊어놓았고, 우리 투수들은 일본 타자들을 꽁꽁 묶으며 투타 모두 완벽하게 제압한 경기라고 평할 수 있다.

일본이 장타 없이 이렇게 무력하게 힘으로 진 경기는 정예 1군이 나섰던 경기들을 모조리 살펴봐도 2013 WBC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 2017 WBC 미국과의 경기[54]정도인데 이 두 나라는 애초에 일본이 수준차를 절감할 정도의 실력을 보유한 팀이다. 그런데 그런 경기력을 평소 한수 아래라고 생각해오던 한국 상대로 보였으니 일본이 특집 방송을 할만 했다.

베이징 올림픽으로 부터 멀리갈 것도 없이 당장 2008년 다음해 2009년 제 2회 WBC에서 일본은 한국을 만나 변비 야구를 보여줬다. 1라운드 순위결정전 경기에서 1:0으로 한국이 일본을 꺾었을 때도 안타 수는 한국보다 많았으나 장타도 없었고 잔루도 많았다. 2라운드 승자조 경기에서도 역시 안타수는 7:4로 한국보다 많았지만 역시나 장타는 없었고, 1라운드 순위결정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그 안타들이 찬스 때는 안터져 찬스 때마다 고배를 마셨으며 잔루가 매우 많았다. 그로 인해 1:4로 한국에 패배하였다.

결승전이라고 별 다를 바는 없었다. 한국은 추신수의 홈런, 이범호의 2루타 등으로 점수를 따낸 반면 일본은 15안타를 치고도 5점을 뽑는데 그쳤다. 15안타 중 장타는 단 두개 였고 제대로 된 변비야구를 보여주며 5안타 중 장타가 2개가 터진 우리나라에게 질 뻔 했다. 그나마 앞 전 두 경기와는 달리 찬스를 잘 살려[55] 엄청난 잔루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찬스에서 확실히 점수를 뽑고 찬스를 갈무리해주어 승기를 잡아오거나 굳히는데 용이한 것은 단기전에서 장타만 한것이 없으므로 중요 경기에서 고전할 때마다 이러한 소위 말하는 큰 것 한방을 쳐줄 해결사의 부재에 일본은 시달렸다.

실제 일본은 작전야구 및 스몰볼 야구를 표방하며 단기전에서 타자들의 장타 능력보다는 최소한의 점수만을 뽑아내어 투수들의 피칭능력을 앞세운 전략으로 강팀[56]과 맞붙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단판으로 맞붙는 국제 대회에서 장타 없이는 단기전에서 맥을 잡기가 어렵다. 물론 장타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야구는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 혹은 본인보다 윗 수준의 팀과 단판으로 맞붙는 한 경기에서 장타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실제 일본의 라인업에서 2008년 베이징 아라이 타카히로무라타 슈이치가 묶이거나, 2009년 WBC 조지마 겐지가 묶이거나 2013년 WBC에서 우치카와 세이치아베 신노스케가 묶이고 2017년 WBC에서 쓰쓰고 요시토모, 나카타 쇼가 묶이면 단기전에서 소위 말하는 '큰 것 한방'을 쳐줄 선수가 실종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57]

물론 이것도 강팀을 한정할 때 이야기다. 미국이나 푸에르토리코같은 팀과의 경기에서 타자들이 물타선이 되며 투수들의 선전이 빛이 바라였다. 약팀과의 경기는 여지없이 패버릴 정도의 타격 능력은 NPB 최고 타자들이므로 당연히 갖추고 있다. 다만, 강팀과의 경기에서 장타가 실종되고 수준차를 절감할 정도로 타자들이 무력해진다는게 문제.

이는 우리나라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2006년 WBC 미국과의 경기, 2009년 WBC 까지는 베네수엘라멕시코 등 중남미 강팀이나 일본 등의 비슷한 수준 혹은 이상의 강팀에게도 파워를 어느 정도 보여주었으나 당장 2013 WBC2017 WBC 메이저 대회 WBC에서 네덜란드에게 5:0으로 두 번이나 패배한 것이 대표적.

여하튼, 일본의 메이저리거를 제외한 NPB에서 난다 긴다하는 최정예 선수들을 차출하였는데 힘으로 완벽하게 밀려버렸으니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 2006 WBC 당시에는 일본이 당시 한국에 졌을 때 충격을 받기는 했으나, 1점차의 석패 정도였다. 무엇보다 4강에서 한국을 이기고 우승까지 했다. 이렇게 무력하게 패배를 당한건 처음이니 더 충격을 받을만도 하다. 실제, 일본이 1군 정예를 국제대회에 내보냈을 때 한국 투수들에게 타자들은 장타도 안터지고 무력하게 제압 당하며 본인들이 자랑하는 최고 투수들은 상대 타자들에게 철저하게 공략당해 진 경우는 사실상 이 경기가 처음이었다.

오히려 삿포로 참사 한일전 2:0게임 이나, 2006 WBC 준결승 6:0 게임 등 정예 1군간의 대결에서 이러한 무력감을 주고 이겼던건 일본이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입장이 반대가 되본 것. 이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 참패와 일본의 노메달 결과로 인한 참사가 다음해 WBC에서 김광현을 철저히 분석하여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됐다.[58] 게다가 특집 방송을 편성하여 한국야구의 우수성, 최근 상승세를 분석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본인이 한수 아래라고 평해오던 팀에게 오히려 수준차를 느끼는 경기를 했으니 야구가 국기인 일본이 특집 방송을 편성할만 했다.

6. 경기 후

올림픽 병역 특례 특성상 메달만 확보해도 병역이 해결되기 때문에, 경기를 이기는 순간 병역 특례가 확정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플라이를 잡은 다음 바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이용규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59]. 참고로 윤석민이 훗날 밝히길 자신도 세레모니를 했는데 이용규의 저 세레모니 땜에 카메라에 비춰지지도 않아서 묻혔다고 이용규한테 뭐라했다고 한다. 여튼 이 경기로 대표팀 선수 중 송승준, 이택근, 이대호, 정근우, 고영민, 권혁, 장원삼, 강민호, 이용규, 윤석민, 김현수, 류현진, 한기주, 김광현 등 총 14명이 군대 등으로 손실될 2년의 시간을 프로에서 뛰면서 벌 수 있게 되었고, 그 가운데 몇명은 그렇게 번 시간을 자원으로 빅 리그 진출에 도전하기도 하는등 개인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KBO의 흥행을 이끌었기에 한국 야구계에도 좋은 일이었다.

김광현은 이 경기에서의 호투로 차세대 일본 킬러라는 이미지를 가져가는 듯 했지만 1년 뒤 벼르고 나온 일본에게 제대로 공략당하며 안타깝게 콜드패의 원인이 되었고 일본 킬러 이미지도 봉중근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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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시노의 발언과 달리 정작 준결승전 당시에는 일본 투수들이 이대호에게 겁을 먹어 승부를 피했고, 세 타석 연속 볼넷으로 이대호를 출루시켰다.[2] 하지만 의외로 스기우치의 통산 대 한국전 성적은 8이닝 5피안타 3실점 ERA 3.38로, 못 던진 건 아니지만 NPB 내의 성적과 위상에 비해서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NPB 내에서 오히려 스기우치보다 NPB 성적이 못한 투수들인 통산 대 한국전 2경기 동안 12이닝 2실점 ERA 1.5의 와다 츠요시나 2006 WBC 준결승전 7이닝 무실점의 우에하라 고지, 2009 WBC 2경기 13이닝 3실점 ERA 2.08의 이와쿠마 히사시, 2006 WBC 2경기 동안 10.2이닝 1실점 ERA 0.88의 와타나베 슌스케 등이 스기우치보다 성적 면에서는 월등히 한국을 상대로 뛰어났다.[3] 사실 3실점 중 2실점은 후지카와 큐지의 분식회계(이종범의 그 유명한 2루타 맞다.)였던건 감안할 필요가 있다.[4] 당시 유격수와 2루수는 각각 박진만고영민이었다.[5] 당시 김광현은 만 20살, 강민호는 만 23살이었다. 2022년 기준 2002년생 투수와 1999년생 포수 조합. 올림픽 준결승, 그것도 한일전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어린 선수들로 올린 것이다. 당시 젊은 선수들의 인재 풀이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6] 이후의 그 실책이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렇지 이게 더 초보적인 실수였다.[7] 사실 이는 스기우치가 4회에 3안타를 내주며 흔들렸기 때문이다. 당시 SBS 해설이던 김성근은 4회 들어 스기우치가 공이 반 개에서 한 개 정도 더 높게 제구된다고 말했을 정도. 즉 스기우치의 이른 교체 자체는 올바른 판단이었다.[8] 사실 이는 후술되어있지만 엄청난 승부수였다. 당시 일본의 예선 풀리그 승리 공식은 8회 후지카와 - 9회 우에하라 고지 레퍼토리였다. 8회에 필승 카드인 후지카와를 당겨 등판시킨 것 자체가 굳히기를 위한 승부수였던 것. 그러나 그렇게 올라온 후지카와가 예상 외로 쉽게 동점을 허용하며 투수 운용도 같이 꼬여버리고 만다.[9] 이대호는 예선 풀리그의 홈런 때문에 이날 일본에게 철저히 견제당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세 타석 모두 볼넷으로 출루했다.[10] 당시 일본의 포수는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 야노 아키히로였다. 즉 수비 측면에선 최고의 베테랑이라서 뚫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11] 그래서였는지 안타를 치고 나가서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12] 훗날 이진영은 자신이 봤던 직구 중 후지카와의 직구가 최고였으며 마치 창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아무리 타이밍을 빨리 가져가도 공이 뻗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안타도 순간 글러브의 움직임을 보고 포크 볼이라고 판단했고 가운데로 밋밋하게 들어와서 칠 수 있었다고 한다.[13] 후지카와의 국제 대회 통산 성적은 13경기 11.2이닝 9피안타 14탈삼진 2볼넷 2실점(1자책) ERA 0.77. 성적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괜히 후지카와가 국제 대회에 숱하게 차출된 게 아니다.[14] 후지카와의 대 한국전 방화로 유명한 또 다른 예시는 2006 WBC에서 이종범이 쳐낸 결승 2타점 2루타에 의한 분식회계이다.[15] 사실 호시노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7회 후지카와, 8회 이와세 히토키다르빗슈 유, 9회 우에하라 고지의 계투진을 구상했지만, 후지카와와 이와세가 무너지며 이후 투수 운용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와세의 실점 이후 등판한 와쿠이 히데아키가 몸이 덜 풀린 것만 봐도 이러한 참패의 단초를 엿볼 수 있었다.[16] 그러나 정작 며칠 전 예선 한일전에서는 대타로 나온 김현수에게 적시타를 허용했던 적이 있었다. 다만 이는 일시적인 변수 정도로만 취급당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포수였던 아베 신노스케도 이와세를 상대로 왜 좌타자를 대타로 내는지 의아했었다고 밝혔다. 거기다가 이와세의 통산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고작 1할대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좌타자를 상대로는 극강의 투수였고 또 김현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미친 타격감을 보이고 있던지라 그때는 타격감이 미친 놈이라서 맞은 거지, 이번에는 아예 부진 중인 좌타자인데 '설마 이번에도 맞겠어?'라는 생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와세가 두 번은 안 당한다는 듯 김현수를 잡아내며 그 예상대로 가나 싶었지만...[17] 실제로 당시 경기장의 한국 야구팬들조차 "이승엽 빼라."라고 야유를 보냈으며, 이승엽 본인조차 "말씀은 못 드리지만, 감독님이 (저를) 대타로 바꿔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승엽 본인도 본인을 못 믿는 상황이였다.[18] 하지만 김경문 감독과 동갑내기이자 당시 이승엽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이던 하라 다쓰노리는 이승엽이 결국 일을 낼 거라고 예상했었다.[19] 실제로 보면 스윙도 풀 스윙으로 후린 스윙도 아니었고 약간 툭 갖다 맞추듯이 맞아서 타구음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던 데다가, 카메라의 앵글도 처음에는 외야에 머무는 플라이 볼 같이 잡혔기 때문에 홈런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허구연 해설도 처음에는 먹힌(외야로 뜬 공)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 게다가 이 타석 전까지 이승엽의 타격감을 생각해보면 넘어가기보다는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공이 높이 떴다.[20] 상대 투수인 다르빗슈 유도 훗날 본인의 블로그에서 여태껏 야구를 하며 그렇게 체공시간이 긴 홈런은 처음 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추가로 다르빗슈는 시합 후 이승엽이 "후배들의 병역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일본의 여러분들께는 죄송하다"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병역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 때문에 후배들을 돕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그런 홈런을 치게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작성했다. 또한 "'일본의 여러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에 이승엽이 한국에서 존경받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본인의 의견을 밝혔고 마지막으로 "솔직히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글을 끝마쳤다.[21] 이 영상의 4분 55초 지점을 보면 이승엽의 타격 때 중계진이 "큽니다! 큽니다! 큽니다아!!!!!"라고 외친 뒤 홈런임이 확인되자 침묵한다.[22] 나중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허구연은 이 홈런에 대해 "그거 삑사리 홈런이예요."라고 디스를 했다. 허구연은 농담식으로 말했긴 했지만, 이승엽은 의외로 타구가 잘 맞아 홈런이 나올 수 있었다고 훗날 밝히기도 했다.[23] 반대로 일본은 2008년 전반기 일본 리그 홈런 1위 장타율 1위무라타 슈이치를 라인업에서 빼버렸다. 무라타는 준결승 전까지 21타수 2안타로 이승엽과 비슷하게 부진하던 중이었다. 물론 무라타가 출전했다 해도 이승엽처럼 부활포를 터트려 줬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렇게 대비되는 포인트도 이 경기의 재미 중 하나였다.[24] 이와세는 이 경기 불과 며칠 전 베이징 올림픽 예선 한일전에서 8회에 이승엽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물론 그 후에는 다들 알다시피 9회에 김현수에게 적시타를 맞았고 이후에도 수비 실책 등으로 인해 3실점(2자책점)을 했지만...[25] 이날 선발로 나왔던 김광현은 이승엽의 방졸이었는데 이승엽이 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승엽의 은퇴식 전 엠스플 인터뷰에서 이때 회고를 한 바에 따르면 결국 홈런도 치고 마음고생을 푼 다음 느닷없이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이택근이 어디선가 라면을 구해와서 끓여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26] 사실 모든 방송사가 이승엽의 타구보다 고영민의 타구에 더 크게 반응을 했었다. 당시 SBS에서 해설을 하던 김성근은 맞자마자 "이건 갔다!"라고 말했지만 곧 잡힐 거 같자 "아 안 가나..."라고 혼잣말을 했다.[27] 사토의 실책이 나오자 캐스터는 제대로 멘붕에 빠졌고, 해설자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 1점은 정말 크네요. 이건 정말 큽니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실제로 이 일본 해설가의 지금의 1실점은 정말 크다는 코멘트는 그냥 넋두리만이 아닌 것이, 만약 사토가 고영민의 타구를 잡았다면 4:2로 이닝이 끝날 수도 있었고 다음 9회초가 일본의 공격이었기 때문에 추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추가 득점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이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는 입장이 되는 반면, 일본에게는 대량 실점을 면한 상황이 되므로 안정된 상태에서 공격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 프리미어 12 준결승전에서 한국은 9회초 3:0에서 4:3으로 역전했지만, 1사 만루에서 점수를 못 내고 오재원의 대형 타구가 중견수의 호수비에 걸리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해야 했다.[28] 2009 WBC 결승전에서 5회초 1사 1, 3루에서 1루 주자였던 아오키 노리치카는 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투수 정현욱을 상대로 3구째 삼진으로 물러날 때 2루 도루를 감행했는데, 타이밍은 세이프였지만 슬라이딩 과정에서 손이 베이스에서 떨어졌고, 이 틈을 노린 박기혁에게 태그 아웃되며 순식간에 3아웃으로 한국의 위기를 종결시켜 주었다. 이에 허구연 해설은 이를 "아리가또 아오키"라고 표현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29] 실제로는 이와세가 2-3-4번 좌타자들을 잘 처리하고 내려가면 다르빗슈 유를 원 포인트로 올리고 곧장 우에하라를 등판시킬 생각이었다고 한다. 전화기 이슈가 있었지만 호시노 감독의 답도 없는 투수 운용 때문에 일본은 피를 봤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의 플랜 B가 전무했고, 이 때문에 몸이 덜 풀린 와쿠이 히데아키가 계투로 올라와 그야말로 난타당하며 승부의 추는 한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30] 야구장 불펜에는 감독석과 연결되는 전화가 있다. 야구 경기를 보면 투수 코치들이 투수 교체 타이밍이 되면 감독석 근처에 있는 전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데, 이게 불펜 투수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전화를 거는 것이다.[31] 그 전까지 범위를 넓혀도 1984년에 처음으로 야구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원년인 1984년에만 1위를 차지해봤고, 그 다음 1988 서울 올림픽부터는 2020 도쿄 올림픽 전까지 일본은 야구 금메달과 관련이 없었다.[32] 이때 준결승에서 만난 호주의 선발 투수가 바로 훗날 한국에서 맹활약하게 되는 옥스프링이다. 6.2이닝 무실점 대호투를 보여줬다.[33] 참고로 이건 호시노가 한국을 얕잡아 봤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한국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으니 결승에 올라올 미국이나 쿠바에 대비해 이들을 아껴놓았다는 뜻이다. 두 선수 모두 훗날 메이저리그로 가서 성공을 거둔 선수들이라 사실상의 필승 카드임을 생각해 보면 정말 한국을 얕본 셈. 그러나, 다르빗슈 유의 경우에는 통산 한국전 성적이 그닥 좋지 못했고, 당시 다르빗슈 유의 베이징에서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단순히 메이저리거라고 해서 다르빗슈 유가 한국전에서 잘 던졌을 수도 있다는 것은 억까에 가까운 비판이다. 우에하라의 경우 한국 킬러로 명성이 자자하니 실제 등판했을 시 어마무시한 모습을 보여줬을 확률이 높지만 다르빗슈 유의 경우에는 통산 한국전 기록으로 보나 당시 컨디션으로 보나 좋은 피칭 내용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다르빗슈 유가 최고 투수인 것만은 분명하고 호시노도 다르빗슈 유를 내보내려 했으나 전화기 고장으로 인한 소통 문제로 등판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르빗슈 유의 경우에는 정상 참작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불펜 전화기가 고장났다면 즉시 관리 측에 수리를 요청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뻘짓을 저지른 것 때문에 저 참작 여지도 사라진다. 이 날 한국 대표팀도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즉시 경기장 관리자에게 수리 요청을 해서 수리를 마치고 전화기를 잘만 썼다.[34] 한국도 불펜 전화기가 고장났으나 경기장 관계자에 요청해서 수리를 해 전화기를 잘만 썼다.[35] 호시노의 실책에 쐐기를 박은 투수 교체로, 이와세의 정규시즌 성적은 훌륭했으나 올림픽 내내 부진에 빠져있었고 조별 예선에서도 김현수에게 역전 적시타를 허용한 바가 있다. 그리고 이 경기 패배로 이와세는 베이징 올림픽 최다패 투수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덕분이 일본에서는 레전드 of 레전드지만 한국에서는 ㅈ밥 취급당한다.[36] 실제 한국의 단 하나의 장타는 이대호의 2점 홈런이었다.[37] 실제 무라타가 공을 더듬었던 이종욱의 번트 타구는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고 낙구지점 파악 실패로 이를 놓치는 바람에 3:2로 이닝이 종료되지 못하고 4:2까지 점수가 벌어졌다. 포수 아베는 그렇게 출루한 이종욱의 딜레이드 스틸 때 2루로 송구하다 악송구를 범해 3루주자 김현수가 그 사이 홈을 밟아 5:2까지 점수가 벌어진 것이다. 9회말 한기주아라이와 무라타 등에게 장타를 내줘 경기가 송두리째 뒤집어질 뻔한 것을 생각해보면, 일본 수비진의 실책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장타로 인해 승부가 넘어갈 뻔 했던 경기.[38] 사실, 이종욱의 타구를 놓친 것은 무라타의 실책으로 기록되지는 않았고 기록원에 의해 이종욱의 내야 안타로 기록됐다. 하지만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흔히들 말하는 기록되지 않는 실책에 가깝다.[39]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이 실책성 플레이는 준결승전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다. 당시 베이징에서 무라타의 타격감은 최악이었는데, 수비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자 호시노는 준결승 한국전에서 무라타를 과감히 빼버린다. 최악의 타격 컨디션으로 인해 여론이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이승엽을 끝까지 믿고 라인업에 배정했던 김경문과는 대조적인 모습. 다만, 한국의 이승엽은 수비적으로 확실히 도움된 면도 크다. 반면, 무라타는 공격도 안터지는데 수비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라인업에서 배제된 것. 이와세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호시노는 웬만하면 선수들을 끝까지 믿는 편인데(대신 못하면 팬다..) 무라타는 수비까지 실망스러우니 준결승 한국전에서 번트 수비 보강 차원에서 3루수로 무라타 대신 유격수 나카지마를 3루수로 대신 출장시켰다. 물론, 무라타가 경기에 출전했다 해서 이승엽처럼 부활포를 터트려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베이징 이후 호시노를 대차게 까댔던 특집 방송에서도, 무라타 대신 출장한 3루수 나카지마(이후 미야모토 신야로 3루수 변경)가 무안타로 침묵했던 것을 고려해 볼 때, 결과론적 얘기지만 차라리 리그 전반기 홈런 1위 장타율 1위인 무라타의 무게감이 타선에 있기라도 했었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있었다. 실제 무라타는 한국과의 예선전에서 2루타를 날렸었다.[40] 실제 준결승에서는 나카지마가 3루수, 유격수로 가와사키가 출전했다. 가와사키는 준결승 전까지 부상이 있어 단 한경기만 출전한 상태라 경기 감각이 둔한 상태였다.(가와사키는 준결승 전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을 정도로 타격감이 둔했고 그래서 결국 다시 경기 도중 7회 가와사키 타석에 대타로 미야모토 신야를 투입해 나카지마를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로, 미야모토 신야를 그 대신 3루수로 수비 포지션을 변경했다.) 무라타는 준결승 경기 전까지 21타수 2안타였고, 나카지마는 19타수 7안타였다. 아무리 호시노라도 1할도 못치는 수비 불안한 홈런타자를 출전시키기는 더 이상 어려웠을 것이며, 그 때문에 가와사키가 부상임에도 리스크를 안고 유격수로 출장시킨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가와사키-나카지마 라인업이면 수비 보강효과가 그닥 크지도 않고(물론 가와사키가 나카지마보다 유격수 수비는 조금 더 낫지만, 나카지마는 3루수가 주 포지션도 아니고 무라타랑 비교해도 수비 포지션 우위라고 평할 정도의 수비력은 아니다. 무라타보다는 민첩해 번트 수비에서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가점을 받아 예선 때 번트 수비에서 실망을 준 무라타 대신 출전 했을 뿐.) 가와사키도 경기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무라타-나카지마를 내보내서 홈런 한방이라도 기대하는 것이 낫지 않았겠냐는 의미에서의 비판이지 다른 비판처럼 심도깊게 분석하고 비판한 내용은 아니다. 호시노의 성향상 무라타가 예선전 수비 실수만 없었다면 무라타가 출전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리 2008년 NPB 전반기 홈런과 장타율 1위의 타자라도 이승엽처럼 끝까지 믿어줬다 해서 홈런을 쳐줬을지는 모르는 것이기에 너무 결과론적으로 비판당하는 것이며 억까에 가까운 비판이다. 하지만, 저 번트 수비가 호시노로 하여금 준결승전에 경기 감각이 떨어진 가와사키를 무리하게 출전시킨 계기도 되었고 실제로 가와사키는 별 활약을 하지 못했기에 알게 모르게 준결승전에 영향을 주었다는건 틀린 표현은 아니다.[41] 단기전에서 장타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42] 니시오카 츠요시[43] 당시 일본의 라인업에서 4번 타자인 아라이를 제외하면 장타를 날릴 선수는 많지 않았다. 나카지마, 이나바에게도 장타력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들도 아라이나 무라타처럼 홈런 타자급의 무게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넉넉하게 잡으면 당시 라인업에서 G.G.사토(2007부터 2009년까지 3년 연속 장타율 5할 기록)와 아오키(MLB에서의 똑딱이질 때문에 이미지가 단타자로 고착화되었으나, 미국 진출전에는 장타율 5할도 심심치 않게 기록하고 20홈런도 기록해봤을 정도의 중장거리 교타자였다.) 정도 까지가 단기전에서 장타를 뽑아줄 펀치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08 올림픽 이전 전반기 성적에서 나카지마, 이나바, G.G.사토의 홈런 갯수는 각각 18개, 13개, 21개로 오히려 베이징 에서 4번을 맡은 아라이 다카히로의 8개보다 더 많았다. 실제 G.G.사토는 베이징 예선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2루타를 뽑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라인업 상 나카지마든 G.G.사토든 아오키든 단기전에서 홈런을 경계할 정도의 파워들을 보유한 타자들이 아니다. 사실상 아라이가 묶이면, 타격이 매우 부진했던 무라타가 라인업에서 제외된 가운데 김광현강민호 배터리 입장에서 홈런 정도의 장타를 내줄 부담이 확연히 줄어드는건 사실이다. 이외에도 니시오카가와사키는 홈런을 10개 넘긴 시즌이 각각 손에 꼽거나 없으며 규정타석에서 둘 다 장타율 5할대를 기록해 본 적도 없다. 이외에도 포수 야노는 2003년 부터 2006년 시즌까지는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파워를 보여주었으나 2007년부터는 장타율이 처참하게 떨어지며 현격하게 기량이 떨어진 노장의 수비형 포수가 된지라 공격력을 기대할 수 없었고 실제로 준결승에서도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침묵했다. 마지막으로 아라키 마사히로는 2번 타자로 출전하였는데 호시노에 의해 강제로 번트 셔틀이 됐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준수한 수비와 훌륭한 작전 수행 능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만 NPB 홈런이나 장타율 기록으로 볼 때, 장타 툴에 한정되어서는 똑딱이에 가깝다.[44]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준결승전에서 그렇게 안터지던 장타가 똑딱이 아라키의 솔로 홈런, 아오키의 3점 홈런 등 곧바로 다음 경기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터졌으나, 이번에는 반대로 투수이 총 3개의 홈런을 내주고 홈런만으로 6점, 2루타로 인해 2점까지 총 8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다...[45] 이외에도 김현수강민호 등도 장타력을 갖추고 있다. 그나마 장타를 경계하지 않을 정도의 타자는 당시 선발 라인업에서 이종욱이용규, 박진만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고영민의 경우에는 당시 전성기였던데다가 2007과 2008 시즌은 리그에서 어느 정도 펀치력을 보여주고 있었고 당시 베이징에서 타격 컨디션도 괜찮았다. 실제로 대만과의 예선 경기에서는 홈런도 기록했다. 이뿐 아니라, 베이징 예선을 겸한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일본 투수 나루세 요시히사를 상대로 1회 선제 홈런을 기록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전력 분석에서 장타를 경계하지 않을 타자는 이종욱과 이용규, 박진만 정도였을 것이다. 여러모로, 일본에 비해 수준 높은 장타력을 갖춘 당시 우리나라 타선이었다.[46] 그렇기에 선발투수 스기우치 등이 철저하게 유인구로 삼진을 유도해낸 것이다.[47] 이승엽에 대한 일본의 공포심을 주니치의 다니시게 모토노부의 이승엽에 대한 평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승엽이 벤치에서 쉬는 날이 가장 고마운 날입니다. 타율요? 1할을 쳐도 상관없어요. 부진요? 그런거 전혀 상관 없어요. 그냥 원초적인 공포에요. 그냥 무섭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벤치에서 쉬고 있으면 고마울 따름입니다.' 요미우리에서 이승엽이 부진할때도 클린업에 배치시킨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48] 애시당초, 일본의 자국 리그인 NPB에서 장타자의 바로미터인 30홈런을 3년 연속 기록했던 타자인데다가 일본 정상급 투수들인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이시이 히로토시 등의 투수들을 상대로 베이징 이전 국제대회에서 홈런을 작렬시켰던 이승엽이기에 부진하였다 하더라도 견제를 안할 이유가 없었다.[49] 게다가 그 홈런들도 부진한 와중에 터진 홈런들이었다. 마쓰자카에게 얻어낸 홈런의 경우에는 시드니 올림픽 조별 예선에서 터진 홈런이었는데, 당시 이승엽은 한일전 이전 시드니 올림픽 경기들에서 매우 부진하여 비난 여론이 생겼다. 심한 경우에는 국내용 아니냐는 비판까지 있었던 와중에 터진 홈런이었고 이승엽은 부진을 만회하는 속죄포를 쏘아올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시이 히로토시에게 얻어낸 홈런은 2006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에서 얻어낸 홈런이었다. 당시 이승엽은 감기 기운이있었고 도핑 때문에 감기약도 먹지 못하다가 경기에 출장하여 8회 전에 3타수 무안타로 번번히 찬스를 무산시키며 부진했다. 그런 와중 8회에 손목 힘만으로 이시이의 커브를 잡아 당겨 이치로 머리위를 넘어 그대로 담장까지 넘기는 홈런을 작렬시켰다. 여러모로 이승엽은 부진한 가운데 결정적인 홈런들을 만들어 낸 타자였고 이때문에 일본은 한국의 4번 타자를 철저히 견제한 것이다.[50] 그리고 이승엽의 뛰어난 파워에 대한 일본 야구인들의 생각은 장훈(야구선수), 마쓰나카 노부히코, 아베 신노스케이승엽의 파워에 관한 인터뷰 등에서도 드러난다.[51] 이대호이용규와 더불어 당시 우리나라 타선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게다가 이용규와 달리 언제든지 한방 쳐줄 수 있는 파워까지 겸비한 타자다. 이뿐 아니라, 예선 한일전에서 와다 츠요시를 상대로 이미 동점 2점 홈런을 날린 기억도 있다. 여러모로 일본은 이대호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52] 이와세 히토키와쿠이 히데아키다.[53] 후지카와는 일본 대표팀에서 뛰면서 자책점이 단 1점이다. 그 1점이 이날 나온 것. 이진영도 후지카와의 구위가 엄청났다며 극찬했다.[54] 홈런 한 방이 터지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55] 사실 일본 투수들이 매우 선방해서 5안타 5볼넷을 내주고도 3점으로 잘 묶어 이긴 것이지, 타자들이 찬스를 잘 살려 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앞 전 두 경기와 비교했을 때 잘 살렸다는 이야기다. 타자들이 15안타 5볼넷을 획득했는데 불과 5득점을 얻어내는데 그쳤기에 타자들의 집중력이 부족했다고 평할 수도 있을 정도다.[56] 약팀은 장타고 뭐고 그냥 패버렸다.[57]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장타가 정말 아예 안 터지는 것은 아니고, 2010년대 중후반 부터는 펀치력이 어느 정도 있는 선수들(ex: 야마다 테츠토, 사카모토 하야토)이 테이블 세터로 배정되어 2루타 이상을 곧잘 쳐내기는 한다. 실제 키쿠치 료스케의 경우에는 2017 WBC에서 초호화 라인업의 미국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58] 하지만, 김광현을 분석하니 다음으로는 봉중근에게 당하며 도쿄돔 안방에서 1:0 영봉패를 당하는 수모도 겪는다.[59] 특히 당시 일본대표로 출장한 미야모토 신야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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